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8. 27. 12:38


일제가 추수한 쌀을 쓸어가던 시절, 저장해둔 보리가 떨어질 무렵 무척 배고팠다고 어려서 할머니에게 들었다. 권정생 선생은 가뭄이 심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지역의 할머니에게 들었다. 이삭이 채 여물기 전, 거지들이 몰려들어 허겁지겁 움켜쥔 보리를 손바닥으로 비벼 입에 털어 넣었다는데 그만, 배를 움켜쥐고 죽어갔다는 게 아닌가. 묻어주지 못한 시체가 여기저기 흩어졌다는 그 시절에서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요즘, 우리는 도저히 공감하지 못한다.


지금은 손이 가지 않지만 졸병 시절, 감춰둔 건빵을 누가 가져가면 참 원통했다. 제대 앞둬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서랍에 숨긴 과자를 훈련 뒤 찾아냈더니 쥐가 쏠았고 오줌까지 묻혔다. 그 쥐도 과자를 독점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그 과자를 버리며 가졌던 황망함이라니. 지금은 재현되지 않을 게 분명한데, 중복이면 삼계탕을 온전하게 먹는 요즘 군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사병에게 자신의 건빵을 건네주던 군종장교도 훈련 중에는 감춘다던데, 배고픔은 명예 실추보다 견디기 어려운가 보다.


배추 작황이 비참해 김치가 금치일 때, 단골 식당조차 더 달라는 김치를 난처한 표정으로 내어주지 않을 때, 멀쩡한 김치를 남기고 일어서는 젊은이들이 밉살스러웠다. 뷔페식당의 산해진미에 익숙한 요즘 젊은이들은 돈으로 따지면 20조 원이 넘는 음식을 쓰레기로 버리는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이 쌀을 포함해도 23% 정도에 머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경각심을 느낄까? 스마트폰에 온종일 고개를 숙이는 요즘 젊은이들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홍수와 가뭄이 빈발하면서 우리에게 식량을 수출하는 국가의 작황이 예년 같지 않다는 소식을 자신의 일로 걱정할 거 같지 않다.


물론 걱정하는 젊은이가 아예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먹는 거의 전량의 밀과 옥수수들을 수출하는 미국에 해마다 가뭄이 심화된다는 소식에 긴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친구와 나누며 대학 교정에서 게릴라 경작을 하는 대학생이 있다. 귀농학교 개근한 뒤 안정된 직장 걷어차고 고단한 귀농의 길로 들어서는 청장년층이 해마다 늘어난다. 하지만 자신이 버리는 음식에 민감해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민들은 세계 식량의 추이와 우리의 자급 현황에 관심이 없다. 굶주리는 지역의 고통은 남의 일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여론이 되고 그 여론이 우리의 경각심을 끌어올려 정책 대안을 모색하게 이끌 텐데, 아직 감지되는 절박함이나 정책적 움직임은 미약하다. 쌀을 제외하고 고작 3%만 자급하는 국가의 책임 있는 자세는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식량안보연구재단이란 게 있는 걸로 보아 민간 수준의 걱정은 없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인데, 그 방향이 바람직하지 않으니 걱정스레 주목하게 된다. 농작물의 유전자 조작을 찬성하는 그 재단의 이사장의 주장은 본질과 어처구니없이 거리가 멀다.


지금은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석유위기의 시대다. 과도한 화석연료 소비가 빚은 지구온난화와 그로인한 기상이변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곡창지대에 가뭄과 홍수를 교차시키며 기록적 흉작을 거듭하지만 그런대로 버티는 건 석유화학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석유를 가공한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가 경작지에 막대하게 살포하므로 척박한 땅에서 우리나라에 수출할 식량이 재배되지만 가격은 해마다 상승한다. 다국적기업이 지배하는 곡창지대는 생산하는 곡물보다 경작, 수확, 운송, 저장하며 들이붓는 석유의 칼로리가 10배 이상이다. 우리는 식량이 아니라 그 10배의 석유를 수입해 들이키는 셈인데, 퍼올리는 석유가 소비에 뒤처지기 시작한지 여러 해 되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급증하는 중국과 인도의 요구를 감당할 석유는 지구상에 없다. 이미 상당히 오른 석유는 가격을 낮추기 어렵다.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뛸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예상이다. 우리나라가 수입할 식량의 가격도 응당 오를 테지만 더 큰 문제는 수출할 식량이 부족하게 될 시기가 멀지 않다는 데 있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고통을 생각해보자. 위기는 시시각각 다가온다. 자동차와 반도체를 팔아서 벌어들인 돈도 소용없게 되기 전에 우리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해외의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대안일까? 그런 농작물은 기상이변에 매우 취약하므로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은 식량위기를 지금보다 훨씬 부추길 게 틀림없다. 환경변화에 이겨낼 유전자 다양성의 폭이 극단적으로 제한돼 있는 다국적기업의 씨앗에 의존하는 탓이다. 그런 씨앗이 생산하는 식량의 양이 당장 많아 보이더라도, 환경변화 이후 생산이 위축된다면 우리와 세계는 치명적 굶주림을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 농작물일수록 석유 소비가 많아야 하는데, 석유위기 시대에 우리 식량안보 대비에 가당하기나 할 텐가?


식량안보연구재단의 이사장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찬성한 특정 환경운동가의 변화를 앞세우지만 그런 이보다 실상을 알면서 반대로 바뀐 생명공학자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에 눈을 감는다. 유럽은 무역장벽으로 미국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차단한다고 오도하지만,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위험성 때문이라는 주장을 감춘다. 조작된 농산물의 유전자가 유기농산물을 오염시키는 사례가 미국에서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던가. 에볼라바이러스처럼 당장 인체에 피해가 없으니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중에 드러나면 인류는 돌이킬 방법이 없다. 생태계는 걷잡을 수 없게 파탄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얼어붙은 땅에서 농사를 짓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면 경작지를 늘릴 수 있다는 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의 생각은 단순하다. 그런 농작물이 생태계의 안정성을 크게 해칠 수 있다는 지점으로 사고가 확장되지 못했다. 농작물에서 빠져나간 조작된 유전자가 일으키는 생태적 오염 뿐 아니라 재배 과정에 더욱 많이 들어갈 석유는 고려조차하지 않았다. 그런 농작물을 우리나라에 심는다면? 식량안보? 우리 내일은 더욱 처참해질 것이다.


식량은 돈으로 사면서 자급에 금이 생겼다. 해외에 의존하면서 주권을 잃었다. 식량은 안보보다 주권이 우선이다. 지역에서 자급할 수 있어야 삶은 비로소 지속가능해진다. 멀지 않은 내일의 식량을 근원에서 걱정하는 시각이 우리 정부와 전문가 사회에 이리 없다니, 끔찍하다. (작은책, 2014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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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2011. 2. 9. 00:06

 

농경사회에서 한해를 시작하는 의미의 설. 요즘이야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이 부모가 계신 곳, 또는 부모의 영전을 모시는 곳에 모여 선조를 기억하며 마주앉는 데 큰 의미를 두겠으나, 농경사회에서 설 차례상은 자신을 태어나게 한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며 올 한해 농사를 기원한다는 데 뜻이 있겠다. 그래서 차례상은 설이든 한가위든 그 고장의 전통 음식문화를 반영하게 되었을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지만 설 차례상도 추석과 다르지 않으니 풍성한 게 틀림없는데, 요즘은 차례상보다 차례 마치고 식구들과 먹는 음식이 더 호화스럽다. 지방의 문화와 전통에 따라 특색을 갖는 상차림은 세월이 흐른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흩어졌던 식구와 마주앉은 밥상에 조상이 구경도 못한 음식이 올라올 게 틀림없다. 계절과 장소가 아주 생소한 열대과일과 양주만이 아니다. 역대 어느 황재 상차림이 부럽지 않다. 차례 핑계로 모처럼 가족이 고기와 여러 나물을 나누던 시절은 아늑해졌다.

 

설이 지난 뒤 한 신문의 환경전문기자는 풍성했던 설 식탁의 원산지를 따져보니 국산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쌀과 달걀, 약간의 채소 이외에 쇠고기와 당면, 표고버섯과 참기름은 수입이라고 고백하면서 국산 음식에서 얻는 칼로리를 가리키는 칼로리 자급률200849%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자료를 들어 독자를 주목하게 했다. 아울러 1980년대 초 30퍼센트에 불과해 위기를 느낀 일본은 최근 40퍼센트까지 끌어올렸지만 1970년 식량자급률이 81퍼센트이던 우리나라는 199043퍼센트에서 현재 27퍼센트로 곤두박질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라고 걱정했다.

 

우리나라에서 안정적으로 자급하는 농산물은 쌀이 사실상 유일하지만 해마다 일정 물량을 수입해야 한다. 그렇게 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례상에 올라온 떡국이 국산이 아닐 가능성도 있는데, 국산 쌀이므로 당연히 국산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일본의 한 단체가 자국에서 생산한 밀로 가공한 우동의 국산화 비율을 40퍼센트 미만으로 분석해 화제에 오른 적 있다. 분명히 일본의 농경지에서 생산했지만 생산하는 과정에서 소비한 화학비료와 농약, 농기계와 그 무거운 기계를 움직이는데 쓴 석유, 농산물을 식품으로 가공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첨가물들은 수입에 의존했다고 냉정하게 계산한 결과라고 했다. 우리 언론의 환경전문기자는 자신의 차례상에 올라온 떡국이 국산이라고 판단했지만 생산과정까지 다시 고려한다면 국산이라 주장하기 민망해할지 모른다.

 

27퍼센트에 불과한 우리의 식량자급률을 농산물과 가공식품의 생산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기계 설비를 고려해 다시 분석한다면 얼마나 빈약해질까. 27퍼센트의 40퍼센트라면 11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우리 식량자급률을 걱정한 그 환경전문기자는 우리의 칼로리 자급률을 2008년 기준으로 49퍼센트로 잡았지만 내폭 낮춰야 옳을지 모른다. 기계화된 농촌에서 사용하는 석유 에너지는 도시의 가정보다 많다. 거기에 화학비료와 농약은 전량 석유로 가공했고, 수확한 농산물을 말리거나 저장할 때 들어가는 에너지도 만만치 않다. 한겨울에 출하를 준비하는 비닐하우스는 어떤가. 수입 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우리 농촌에서 생산한 농산물의 칼로리 자급률을 다시 계산한다면 마이너스로 나올 가능성이 오히려 높을 게다.

 

이집트의 민주화운동이 거세지자 경제계는 석유가격 상승을 우려했고 아니나 다를까, 수에즈운하가 통제되지도 않았건만 가격이 소폭 상승했다. 이집트 사태가 진정되면 국제 석유가격도 진정될 수 있을까. 많은 석유전문가는 고개를 젓는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산유국들이 실상을 밝히지 않아 그렇지, 이미 석유는 생산 정점을 지나갔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물건을 놓고 흥정하지 않고 돈부터 예치해 거래하는 석유시장은 소문에 극도로 민감하니 석유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리라 점친다. 이른바 선물시장이다. 국제식량도 선물시장에서 거래된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수요보다 생산이 모자라면 가격은 오르는 법이다. 게다가 가격이 소문에 연동하는 선물거래 체제에서 매점매석이 횡행하는데, 석유가격 하락은 기대할 수 있을까. 식량은 어떨까.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의 과소비가 원인인 지구온난화는 곡창지대의 사막화를 몰고오는데 그치지 않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풍수해를 낳았고, 세계 농업지대는 때 아닌 가뭄과 홍수로 예년 수확을 건지지 못하게 했다. 지난해 여름 러시아를 비롯한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는 극한 더위에 이은 화재로 밀 작황이 예년의 절반으로 뚝 떨어져 수출을 금지하기에 이르렀고, 그 여파는 러시아에서 밀을 수입하는 아프리카의 폭동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에서 밀을 수입하지 않았어도 우리나라의 밀가루 가격이 들썩들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러시아 주변국만의 사정이 아니다. 주요 식량 수축국가의 하나인 파키스탄과 호주의 사정도 전 같지 않다. 그 와중에 세계 최대의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마저 식량 순수입국이 되었다.

 

10배의 석유 칼로리가 부어져야 수확이 가능한 곡물을 사료로 사육하는 요즘 산업축산은 식량위기를 부추긴다. 주로 옥수수와 콩을 주원료인 사료를 16킬로그램 먹이면 쇠고기 살코기 1킬로그램을 얻을 수 있다. 돼지고기 1킬로그램은 소의 절반, 닭과 유제품 1킬로그램은 돼지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료를 먹여야 하는데, 세계 고기의 4분의1을 독식하는 미국의 식생활을 따르려는 국가는 늘어나기만 한다. 유럽과 일본, 우리와 중국이 그렇다. 유럽은 그래도 식량을 거의 자급하고 일본은 자급률을 높이려 애를 쓰는데 우리는 식량 증산에 도무지 관심이 없다. 아직 수출대금이 많이 축적돼 안심해도 좋다는 걸까.

 

벌써 십 수 년 전, 당시 월드워치연구소 소장이었던 레스터 브라운은 앞으로 중국을 누가 먹여살릴 것인가걱정했다. 세계 최대의 달러 소유국인 중국에서 지구촌의 농산물을 휩쓸어간다면 나머지 나라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으니 미리 자급을 준비해야 한다고 경고한 것인데, 우리는 ‘4대강 사업과 신도시 개발로 경작지가 위축되기만 한다. 논보다 생산력이 뛰어난 갯벌도 매립되었거나 매립 예정이고, 조력발전으로 파괴되기 직전이다. 그렇지만 우리 식탁은 여전히 풍성하다. 대부분 수입 농산물이거나 석유에 의존해 생산한 국산 농산물이고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가공식품이다.

 

설 차례상은 겉보기 풍성했다. 하지만 대부분 조상들이 외면했을 음식이었다는 걸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차례 뒤 식구들과 마주한 밥상은 더욱 화려했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은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경작지의 황폐화를 부르는 지구온난화와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키는 석유자원이 정점을 넘겼거나 넘기려는 시점이다. 자국민이 굶주리는데 식량을 수출하려는 민주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년의 세계 식량위기는 올해 심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측한다. 많은 기후학자들은 미국의 경작지도 안심할 수 없다는데 동의한다.

 

징후가 흉흉한 지금은 황제보다 풍성한 식단에 만족할 때가 아니다. 외국의 식량기지 확보보다 자급률 확대를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식량안보보다 식량주권이다. 바로 조상이 먹던 상차림의 회복, 다시 말해 제 철 제 고장 농산물로 자급하는 터전의 확보다. (지금여기, 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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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2010. 9. 14. 11:02

 

“그 많던 쌀과 옥수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우리나라의 이야기는 아니니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식량의 국제 거래 가격이 치솟았던 2006년에서 2008년 사이에 불거진 지구촌의 위기를 필리핀의 사회학자 월든 벨로가 그렇게 빗댔다. 식량전쟁을 둘러싼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꾸준히 고발하는 그는 위의 제목으로 책을 펴내 각국은 늦기 전에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년 전 국제 곡물 가격의 폭등은 최빈국들을 고통에 몰아넣었고 농토를 빼앗긴 민중은 무작정 굶주릴 수 없었는데, 대책에 미온적이던 정부는 거리에 나와 식량과 농지의 확보를 요구하는 자국민을 폭도로 몰며 무차별적으로 진압, 수십 명이 목숨을 잃은 비극이 발생했다. 국제미작연구소가 있을 만큼 쌀 재배환경이 우수했던 필리핀도 예외가 아니고 옥수수 원산지인 멕시코도 마찬가지였는데, 굶주림은 사회적 약자에 편중됐다. 남성보다 여성, 어른보다 어린이나 노인에게 집중돼 여아와 할머니들이 주로 희생되었다.

 

2년이 지난 올 여름, 거대한 산불로 더 뜨거웠던 러시아가 밀 수출금지 조치를 올해 말에서 내년 수확 이후로 연장했다. 러시아뿐이 아니다. 작황이 줄어든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도 러시아의 조치를 뒤따를 태세다. 그 여파는 당장 2년 전의 폭동이 재현될 조짐으로 이어졌다. 모잠비크 정부가 빵 값을 30퍼센트 올리겠다고 발표하자 마음 급해진 시민들이 식료품점을 탈취하는 소동을 일으켰고,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수백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대책 마련을 위해 부산을 떨지만, 러시아는 금수조치를 풀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회복되자마자 흉작이 온 이유를 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서둘러 분석하는데, 거기에 다른 요인을 더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중국 남부와 파키스탄 펀자브의 곡창지대, 그리고 북한 압록강 연변의 농토처럼 지구온난화를 원인으로 이해해야 하는 수해가 참혹했지만, 그 전에 농토는 물론이고 농토로 활용할 수 있는 땅마저 크게 줄었다. 개발 때문이지만 보전된 농토도 자급과 거리가 멀었다. 부자 나라의 기호식품을 위해 헌납해야 했거나 심지어 제 농토에서 충분히 수확하고 굶주려야 하는 일도 발생한다.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했던 장 지글러가 진저리치듯, 그 이유는 가혹한 외채에 있다. 세계은행이나 아이엠에프와 같은 국제 투기자본이 빌려준 돈으로 댐이나 고속도로를 개발하면 이익은 일부 특권층이 독점하지만 농토가 수몰 또는 잠식된 농부는 굶주려야 한다. 그뿐인가. 외채의 원금과 이자를 상환을 위해 정부는 수출작물을 강요한다.

 

녹색혁명은 기대 이상의 식량 증산을 한동안 가져왔지만 세계 인구를 급증하게 했다. 정부 보조금을 휩쓸어가는 다국적기업의 수완으로 헐값의 잉여식량을 먼 지역까지 대량으로 수송하자 비만 인구만 늘어난 게 아니었다. 구호식량은 역설적으로 배고픈 인구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기아로 죽는 인구보다 굶주린 상태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의 수가 많은 건 기초 의약품 덕분인데, 빈국들은 자급자족 기반을 확보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얼마 안 되는 농토에서 수확량을 보전하려 애쓰지만 현혹되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녹색혁명이 일러준 화학농법, 다시 말해 자본과 석유 없이 도전할 수 없는 산업적 화학농업이므로 댐이 필요할 뿐 아니라 농기계를 써야 한다. 석유를 가공해 얻는 화학비료와 농약은 토양 생태계를 괴멸시켜 땅을 딱딱하게 만들지 않던가.

 

요즘 화학농업은 소출을 늘리지 못한다. 미생물과 지렁이를 잃은 땅은 기름진 표토와 자생력을 잃었으니 화학비료와 농약을 더 많이 뿌려야 유지할 수 있는데, 경작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농부는 ‘환금작물’, 다시 말해 돈벌이를 위한 다수확품종을 심으려 한다. 하지만 한두 품종의 작물은 해충과 잡초를 끊임없이 끌어들이니 농약의 양은 날로 늘어나게 되고, 해충과 잡초의 내성이 강화되니 농약의 독성은 독해지기만 한다. 이제 흉작을 피하려면 더욱 혹독한 화학농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다국적 종자기업에서 구입하는 그런 씨앗은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무척 좁아 환경변화에 무기력한 게 보통이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우치하시 가츠토는 ‘FEC 자급권’을 설파한다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은 귀띔한다. “식량(Food)과 에너지(Energy)와 돌봄(Care)은 자유무역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각 나라와 지역사회의 자급능력이나 자주적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제안”이라는 것이다. 그 세 가지를 모두 자급하는 국가는 요사이 극히 드문데,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식량 사장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문제가 심각해진 밀과 마찬가지로 옥수수와 콩도 몇 국가에서 생산을 독점한다. 돈이 많든 적든, 주곡은 그나마 자국에서 어느 정도 확보하려 노력하지만 불가항력이고, 견과류와 육류는 언감생심이다. 먹지 않아도 당장 생명에 지장이 없는 과일이나 기호식품은 물론, 채소까지 해외에 의존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수입 식량을 황제 부럽지 않게 먹든, 구호식량으로 입에 풀칠만 하든, 소비자는 식량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국제곡물 가격은 점점 불안해진다. 지구온난화가 야기한 엘니뇨와 라니냐는 차라리 애교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비웃는 투기세력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1996년 세계의 생산량이 3퍼센트 줄어들자 곡물 가격이 갑자기 두 배 앙등한 이유는 투기자본이 제공했다. 수확량 10퍼센트 변동이 30퍼센트 가격 변동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전문가들이 ‘가격 탄력성’이라 말하는데, 탄력성이 유난히 큰 식량은 대개 시카고에서 선물로 거래한다. 돈을 직접 교환하는 외환거래나 물건을 놓고 벌이는 미술품 경매와 달리 예측할 수 없는 수확량을 근거로 거래하니 가격은 소문에 따라 춤을 추지 않을 수 없다.

투기자본의 돈벌이와 관계없이 사료값 인상으로 고기값이 오를 테고, 가공식품도 덩달아 값을 올릴 것이다.

 

금수조치를 단행한 러시아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정부는 자국이 생산한 식량을 국내에 우선 공급하려 애쓰지만 다국적기업과 계약을 맺은 농장주의 생각은 다르다. 수출 이익이 크다면 다국적기업에 곡물을 넘기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2008년 카자흐스탄은 자국의 밀에 수출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해야 했고, 같은 해 중국과 우크라이나도 수출세를 대폭 올렸다. 국제 곡물상이나 거대 농장주는 최빈국에 대한 분배보다 이윤에 관심이 큰데, 돈이 충분한 국가라면 국제 선물시장을 노크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는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그렇듯 수출관세는 식량의 무기화와 무관하지 않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에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곡물수출 금지를 단행하자 비롯된 ‘식량무기’라는 말은 소련 해체 후 쿠바 경제봉쇄 때 재현되었다. 그렇다면 썩을 정도로 남아도는 쌀을 굶주리는 북한에 한사코 제공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태도는 식량무기와 관계없는지 생각해볼 문젠데, 특정 국가 사이에 배타적 무역 특혜를 베푼다는 자유무역협정, 다시 말해 FTA는 식량 무기화를 더욱 무섭게 만들 수 있다. 망하지 않을 만큼 받는 보조금으로 생산한 막대한 잉여 농산물을 특정 국가에 헐값으로 수출하면 그 나라 농업기반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자본이 국가를 고발할 수 있는 이른바 ‘투자자 직접 소송제’를 반드시 요구하는 미국과 맺는 FTA는 무너진 농업기반을 돌이키기 어렵게 한다. 정부의 규제나 지원 때문에 손해를 입었다며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할 경우, 개별 정부가 승소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북중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된 이후 미국의 잉여 농산물이 마구 들어가자 옥수수로 자급하던 멕시코의 농업기반은 초토화되었다. 뼈 빠지게 농사짓느니 미국계 공장에 취직해 달러를 벌어 가족과 밥 사먹는 게 경제적이라 믿게 만들었는데, 착각이라는 게 금세 드러난 것이다. ‘노동 유연성’라는 아리송한 언어로 치장했지만 해고가 자유로워진 자본은 임금을 거듭 낮추는데, 바이오디젤이나 에탄올로 가공하는 게 이익이 크다고 계산하는 곡물상이 수출량을 대폭 줄이자 옥수수 가격이 치솟은 게 아닌가. 농토가 사라진 상황에서 저임금에 허덕이거나 해고된 멕시코인은 자국에서 난민이 되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세계무역기구는 식량을 상품목록에서 예외로 인정하지 않는다. 2003년 세계적 휴양도시인 멕시코 칸쿤에 모인 세계무역기구의 각료들은 농민들의 진입을 막은 철망 위에서 이경해 열사가 자결한 소식을 들어야 했다. 이경해 열사는 식량 무기화를 막으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타국에서 마지막 남은 목소리를 외친 것이었다.

 

세계 식량 무역을 틀어쥔 몇 안 되는 곡물상의 대표 격인 카길은 제재 기능을 가진 세계무역기구의 규정을 입안했다. 다국적기업인 카길은 국적이 없지만 미국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미국의 이익에 우선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잉여식량을 독과점하며 수출하는 국제 곡물상 간부는 미 정부의 고위 공직자 자리를 돌고 돈다. 이른바 ‘회전문 현상’이다. 따라서 수출관세를 매겨 곡물가격이 올라도 다국적기업의 이윤은 줄어들지 않고 가난한 국가는 굶주릴 수밖에 없으며 돈이 있어도 곡물상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수입국은 수출국에 복종을 맹세해야 할지 모른다. 잉여 농산물의 언제까지나 안정될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4분의1을 차지하는 미국에도 예외가 아닌데.

 

윌리엄 엥달은 1970년대 미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의 발언, “석유를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 국가들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식량을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 인민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를 돌이키며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거의 없는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파괴의 씨앗이라고 경계했다. 다국적기업이 독점 공급하는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피하지 못한다면 인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전 조지는 부자나라의 호의호식을 연장하려면 세계 인구를 3분의1 이상 줄여야하는데, 그때 식량 무기화가 주효할 것으로 섬뜩하게 예고했다. 그러므로 식량의 4분의3을 수입해야 하는 우리는 생존을 위해 다국적기업에 고개 숙이고 수출국에 충성을 맹세해야 할까.

 

돈이 아무리 많아도 먹을 게 없으면 굶어야 한다. 스페인 지배 하의 남미 포토시에서 부자들도 한 때 쥐를 잡아먹어야 했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식량 자급부터 독립이 시작된다고 했다. 식량은 안보 차원에서 수입하는 상품일 수 없다. 주권 차원에서 생산기반을 확보해야 하고, 소비자는 무던한 생산자에게 고맙고 미안해해야 옳다. 쿠바는 미국의 철두철미한 경제봉쇄를 도시농업으로 극복할 수 있었으니 식량 수출국과 다국적기업에 굴종할 수 없는 국가의 시민들은 식량주권 회복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기상이변을 속출하게 하는 지구온난화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거듭 경고하는 이때. (시조, 2010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