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3. 7. 8. 22:22

 

우리나라는 편서풍 지대다. 인천은 편서풍을 가장 먼저 받는다. 중국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서해안의 섬들을 지나 인천을 거쳐 수도권을 넘어 태평양을 향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기 오염물질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온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황사와 미세먼지가 그렇다. 하지만 우리나라 서편에 미세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굴뚝이 있다면 그 역시 육지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영흥도가 그렇다.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32킬로미터 떨어진 영흥도에는 시방 80만 킬로와트가 훌쩍 넘는 화력발전소 2기가 완공을 얼마 남기지 않고 열심히 세워지고 있다. 5호기와 6호기다. 원래 1호기와 2호기만 석탄화력으로 짓고 나머지는 필요할 때 인천시와 합의를 거쳐 액화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를 짓겠다고 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지키지 않아도 아무 탈이 없는 제도를 진작 만들어 놓았기 때문인데, 영흥도에 화력발전소를 짓는 주체인 남동화력주식회사는 7호기와 8호기도 석탄 연료로 추진하는 중이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면 인천시민의 저항 정도는 가뿐하게 무시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국가 권력이 뒷받침할 거라 믿는다. 실제 그리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세우는 이유는 있다. 연료가격이 해마다 1조원 이상의 차이가 있고 액화천연가스 하역 부두를 만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니 남동화력주식회사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인천이 희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데 연료비 1조원 아낀 대신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대량 발생으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제아무리 우수한 저감시설을 고장 없이 가동해도 황과 질소산화물이 추가로 발생시켜 인천시를 비롯한 주변 지역에 확산된다는 건 부정하지 못한다. 그로 인한 건강피해는 원가에 당연히 포함시키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절감은 지키기 어려울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후손에 전가된다는 것도 부정하지 못한다.


터빈을 돌린 고온 고압의 증류수를 식히는 온배수가 석탄화력 1기 당 1초에 1톤씩 쏟아져 나온다. 장차 현재 4기보다 두 배가 많이 배출되는 온배수로 인한 인천 앞바다의 해양 생태계는 얼마나 파괴될 것인가. 어획고는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 어민들의 손실은 어느 정도일까.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강행하고 있다. 그 피해는 원가에 포함되지 않았다. 액화천연가스를 사용해도 온배수는 발생하지만 석탄의 절반에 그친다. 황산화물과 먼지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 발생량도 절반에 그친다. 어떤 연료가 진정 경제적일까.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다. 그저 자신이 원하므로 지을 뿐이다. 영흥도에.


처음부터, 계획이 발표될 때부터, 아니 은근히 추진하려 할 때부터, 시민단체와 독립 전문가들이 타당성이 없다는 점을 누차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건만, 하고 싶은 대로 공사를 밀어붙인 사업은 영흥화력발전소에서 그치지 않는다. 권력을 등에 업고 사업을 뜻대로 진행한 듯 보이지만, 장차 파국을 맞을 게 분명한 사업으로 아라뱃길로 명칭을 마사지한 경인운하를 들 수 있다. 온실가스 규제가 수출입 상품에 적용될 때 국내 최대 규모를 고집하는 남동화력은 국내외 지탄을 면할 수 없을 텐데, 경인운하는 이미 파국이다. 애초 예측한 물동량의 1퍼센트도 실제 취급하지 못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당장 시민에게 피부로 다가오지 않지만, 결국 나타날 수밖에 없다.


수돗물 가격 인상은 결코 없을 거라도 장담 또 장담하며 4대강 사업 공사를 강행한 수자원공사는 슬며시 수돗물의 원수 가격을 올리려 든다. 아마 정부는 올려줄 것이다. 권력을 비호하는 정부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거 어디 한두 번이었나. 처음부터 수돗물 원수 가격을 올릴 것을 예정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를 속인 건데, 4대강 사업 역시 머지않아 파국을 맞을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흉흉하게 드러나는 징후가 그런 내일을 예견한다. 수자원공사는 자신을 비호하는 권력이 있으므로 당분간 조직을 유지할 테지만 동서고금을 통해 권력은 언제나 무상했다. 분노한 주권자들에 의해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4대강 사업 역시 온갖 거짓말로 사업을 강행했다. 애초 시민사회에서 누차 제기한 문제가 결국 드러나지만 감언이설로 밀어붙였다.


핵발전소, 핵폐기장, 송전탑 모두 마찬가지다. 대형 다목적댐도 그렇다. 대규모 매립사업인 새만금은 아니 그런가. 한 줌 세력의 탐욕을 위해 권력과 손발을 맞춰 제도를 제 멋대로 만들고 사업을 강행했다. 문제를 제기하면 거짓말로 응대하면서 때때로 공권력을 동원해 반대 목소리를 억압했다. 그러다 파국을 만날 때면 새로운 변명과 거짓으로 모면하려 발버둥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전력공사, 수자원공사, 토지주택공사가 그랬다. 그 상층부 권력기관이 그랬다. 탐욕을 위해 민중에 폭력을 일삼고 권력층에 아부하는 그들에게 신뢰란 애초 존재하지 않는다. 자식 몸과 맘 건강하게 키우려는 시민들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데, 그들은 주권자인 시민사회의 신뢰 잃었다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태도를 바꾸려 들지 않는다.


정보와 통계를 독점하며 왜곡해 편집하고, 공권력과 언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권력이 무한하리라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그런 예는 동서고금 어떤 역사에도 없다. 신뢰를 잃은 권력은 뿌리를 잃은 것이다. 뿌리를 잃은 권력의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압제를 일삼던 공권력이 외면하자마자 힘을 잃는다. 밝은 햇살을 받으면 순식간 사라질 신기루거나 한 차례의 바람으로 날아갈 먼지일 뿐이다. 회전문처럼 돌아가는 자신들의 리그에 갇혀 안하무인격으로 시민사회의 신뢰를 마냥 저버린다면 그들의 내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가 뚜렷하게 웅변하는 사실이 그렇다.


아직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이들은 정권에 아부하는 권력의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지만, 결국 눈코와 귀와 피부를 가졌다. 고개를 돌리고 말 것이다. 신뢰를 잃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남은 건 파국이다. 아직 파국을 맞이하지 않았다고, 돌이킬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들이 얼마나 신뢰를 잃었는지 어서 헤아려야 한다. 그리고 사죄하고 서둘러 돌이켜야 한다. 비참한 파국을 면하려면 그 길 뿐인데, 아직도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으니 안타깝다. 대통령도 지난 624, “공공기관도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정도가 아니라 차라리 '없는 게 낫다'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지금여기, 2013.7.8., “신뢰 잃은 권력, 반드시 망한다로 변경)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4. 11. 01:03

 

최근 한 금융회사가 해커에게 고객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는 물론이고 비밀번호와 신용정보까지 유출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장에 나온 그 회사의 사장은 고객의 신뢰를 잃은 사고를 머리 숙여 사죄하면서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밝혔지만, 잠재 고객들은 정보를 해킹당하고도 두 달이나 몰랐던 회사에 자신의 돈을 선뜻 맡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금이나 현금다발이 아닌 컴퓨터의 숫자로 거래하는 요즘세상에서 금융회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신뢰가 아닌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방사능 유출에 대한 시민들의 걱정이 높아지자, 여당 대표가 작심한 듯 방사능 불안감을 조성하는 불순세력이 있다고 군사독재 시절이나 등장했을 색깔론을 내세워 세상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일본산 생선을 비롯해 전국 95군데의 방사선량을 측정해도 문제가 전혀 없었다면서 원내총회장에서 사회불안을 조성하고 국가를 전복시킬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불순세력에 대해서는 당당히 맞서 제압해야 한다!”고 포문을 연 그는 초등학교 휴교를 요구한 일본 대지진핵사고 피해 지원정책 전환을 위한 공동행동과 전교조, 그리고 학교장 재량으로 휴교가 가능하게 한 경기도 교육감을 좌파로 몰아붙였다고 언론은 건조하게 보도했다. 결코 선정적이지 않았다.

 

국민들을 패닉상태로 몰아갔다면서 언론의 선정성을 비난한 같은 정당의 정책위의장이 정수장에 비닐을 덮어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호들갑을 떤다.”면서 “10년 내내 목욕하고 마시고 물 뒤집어써도 아무런 해가 없을 정도의 방사선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폈는데, 한 네티즌은 그 정당 책임자들의 으름장에 울분을 표했다. 가족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퇴근한 저에게 모든 옷을 다 벗으라더니 얼마 입지 않았던 외투며 바지까지 몽땅 세탁기에 집어넣고 가차없이 빨아버리는 자신의 아내를 불순세력으로 제압할 겐가 분노한 것이다. 다른 네티즌은 자식 키우는 민중의 당연한 걱정을 불순세력의 소행의 결과로 몰고가는 그 정당의 대표를 방사능보다 무서운 존재라며 비꼬았는데, 제압할 것인가.

 

군홧발로 짓누르다 돈으로 언론을 매수한 군사정권의 시절을 그리워한 것인지, 여당의 정책위의장은 언론의 보도 태도를 문제 삼았지만, 언론을 제압하기에 앞서 그는 정부와 관계당국의 태도는 어떠했는지 유권자의 눈높이에서 직시해야 했다. 편서풍만 되뇌며 안전을 강변하다 외국에서 다른 발표가 나올 때마다 번복을 거듭하지 않았던가. 정부의 무사안일을 비판하는 건 제4부라 일컫는 언론의 당연한 책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방사능 물질이 공기와 빗물에 검출되자 담당 부처의 책임자는 하루 2리터의 물을 2년 반 마실 경우 엑스레이 한 번 촬영할 때 받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언론 앞에서 말했지만 시민들은 신뢰를 잃은 정부의 주장을 미더워하기 어렵다. 많은 보건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걱정해야 할 일은 일시적인 방사선량이 아니지 않은가.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방사성물질이 누출되는 한 방사능은 대기나 바다에 농축될 수밖에 없다는 건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다. 따라서 시민의 신뢰를 염두에 두는 정부라면 누적되는 방사선량을 알려주며 대책을 세워야 했다.

 

정보를 독점하는 정부는 시민을 홍보 대상이나 가르쳐주어야 하는 무지한 존재로 취급하려는지 알 수 없지만, 결코 불합리하지 않은 대조적인 과학 정보가 언론매체나 인터넷으로 즉각 알려지는 요즘, 대부분의 시민들은 정부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순진하거나 단순하지 않다. 시민들을 바보 취급하는 순간 정치권은 감당하기 어려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비록 언론을 통해 정부가 발표하는 정보만 들을 수 있을지라도, 엑스레이를 함부로 받지 않으려 하는 시민들은 정부가 밝히지 않은 사실을 안다. 기계로 검출한 방사선의 양이 극히 미량이라 해도 걱정거리라는 것을. 엑스레이처럼 몸을 투과하는 방사선과 달리 요오드나 세슘과 같은 방사성 물질이 몸에 극미량이라도 흡수될 경우 개인의 건강이 염려된다고 의학 전문가는 밝히지 않았던가. 반감기가 30년인 세슘을 보자. 근육이나 장기의 조직에 박힌 상태에서 방사능을 배출할 경우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방사성 물질이 호흡이나 음식을 거쳐 체내에 흡수될 확률은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복구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늘수록 커진다.

 

우리나라 여당 대표가 제압해야한다고 보는 불순세력은 누구인가. 목숨을 내놓고 수습하려 애쓰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직원들인가. 자료를 감추다 일본의 언론과 시민들의 비난을 받은 일본 동경전력 책임자인가. 극미량의 방사성 물질도 위험하다고 밝힌 의학 전문가인가. 그런 사실을 감히 보도한 우리 언론인가. 엑스레이 선량의 수천분의1 이하의 방사능이 섞인 빗물을 조금 맞았다고 다짜고짜 겉옷을 몽땅 세탁기에 넣은 이 땅의 아내들인가. 아니면 언론을 보고 정부의 무사안일을 비판한 네티즌인가. 이번 여당 책임자들의 불순세력 발언으로 으스스한 군사독재 시절을 기억해낸 시민들은 유권자다. 자식을 키우는 유권자에 으름장 놓은 정치인을 시민들은 기억할 게 틀림없다.

 

시민이 정부의 발표 내용을 미더워하려 해도 그리 못하는 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방사능에 국한하는 게 아니다. 등록금 반값을 공약으로 지지를 호소했던 후보가 정권을 잡은 뒤 공약 이행을 위한 신뢰할만한 정책을 펴지 않았다는 걸 분명히 기억하는 시민들은 밀양과 부산 사이에 갈등을 유발시킨 뒤 백지화한 동남권신공항에 대한 약속위반만을 잊을 리 없다. 이동통신비의 인하를 약속했던 책임자가 우리나라의 통신비가 참 싸다고 말한 사실도 기억할 게 틀림없는 시민들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방사능 유출에 대한 정부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운하가 아니라 4대강을 살리려는 사업이라고 강변하는 정부의 홍보는 어떤가. 지구온난화 대책이라는 주장, 홍수와 가뭄의 대책이라는 주장, 생태계를 보전한다는 주장, 과연 신뢰할 수 있나. 아무리 제압하려고해도 4대강의 흐름을 가로막는 사업의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하는 시민단체와 전문가의 목소리는 결코 묻히지 않는다. 시민들은 장마와 국지성호우가 얼마나 무섭게 쏟아지는가에 따라 올해든 내년이든, 현 정부의 신뢰를 다시 물을 가능성이 높다.

 

노력하기에 따라 잃은 돈은 금방 복구할 수 있고 한 번 잃은 건강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회복될 수 있지만 무너진 신뢰는 여간해서 되찾기 어렵다고 흔히 말한다. 해킹당한 금융회사는 뼈를 깎는 반성과 노력을 고객에게 보여준다면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겠지만 정부, 아니 정권은 어떨까. 유권자의 기억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은 요즘세상에 없다. 무너진 신뢰를 진정 회복하고 싶다면 정책 결정에 앞선 정부는 시민들의 불편부당한 생각을 투명하게 묻는 자세가 필요할 텐데, 요즘 정부와 여당에서 보여주는 행태는 백년하청 같다. (인천in, 2011.4.13)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3. 14. 21:38

 

지진에 이은 쓰나미와 핵발전소 내의 수소 폭발. 일본에서 연일 일어나는 사상 최악의 재해가 언제 진정될지 모르는 가운데, 이웃나라의 어려움을 바라보는 우리는 막연한 위로보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방법을 찾고 싶어진다. 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가깝고 먼 나라”, 일본. 민족의 뿌리를 도려내려 했던 그들의 침략의 역사가 진정한 반성과 화해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걸 결코 잊지 않는 우리들이지만, 역사적으로 조금 거슬러 올라가 유전자나 언어로 비교하면 가장 가까운 사이의 민족이라는 걸 충분히 안다. 그렇기에 요즘 양국의 젊은이들은 어느새 장단점을 서로 이해하며 다독거리는 관계로 성숙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두 민족에게 상대의 희로애락은 남의 일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과 우리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처한 환경이 분명히 다르다. 적어도 4천 년 이상 달랐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그런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않은 눈앞의 불행 속에서 남 탓 하지 않고 차분하게 사태를 받아들이며 서로 격려하며 내일을 대비하는 일본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신선한 감동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만일 우리에게 같은 사고가 발생한다면 일본사회와 같은 모습이 재현될 수 있을까. 아이티공화국에 지진이 벌어졌을 때 약탈에 이은 폭력이 난무했다. 그저 남의 일일까. 1995년 삼풍백화점이 붕괴되고 구조 활동이 한참일 때 좀도둑이 극성이었다. 우리에게 그저 옛날의 일일 뿐일까.

 

일부 사재기하는 이가 없지 않다지만 약탈은커녕 새치기도 없이 남은 물건을 나누려는 심성이 일본의 시민사회에 확립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아무래도 부자든 가난한 자든, 나와 내 식구의 어려움이 사회의 따뜻한 배려로 극복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른바 보편적 복지가 뒷받침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려움을 극복할 때까지 정부나 사회에서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남의 물건에 손을 댈 이유가 없다. 새치기나 사재기는 불편부당한 지원에 대한 확신이 있는 공동체에서 위험하고 쓸데없는 행동일 뿐이다.

 

1976년 중국 당산을 뒤흔든 대지진 때 사람들은 누구나 가난해도 이웃이나 상점을 약탈하지 않았다. 당시 개방되기 전인 중국은 지금보다 신속한 복지전달 체계가 확립되었다고 믿기 어렵지만 당산 주민들은 나보다 먼저 이웃을 보살폈고 한 톨의 쌀도 나눴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당시 일본 외교관은 감동의 눈물을 적셨다고 경험자는 전한다. ‘보편적 복지체제가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없었지만 서로 믿고 돕던 이웃이기에 아무도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같은 해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 세계 최고의 부자동네인 뉴욕에서 10시간 동안 정전이 발생했을 때, 강도, 상해, 강간이 빈발했던 이비규환과 비교할 수 없었다고 역사학자들은 전한다.

 

아침 10시에 열어 오후 5시까지 문을 닫지 않는 민들레 국수집은 밥을 먹으러 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푸는 게 아니라 그들을 섬긴다 생각한다. 그 국수집은 입 다물고 줄을 서서 들어와 앉아야 하루 한 끼 제공하는 엄격한 복지기관의 밥집이 아니다. 누구든 언제든 찾아와 편안하게 밥을 나누는 쾌적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아무도 얻어먹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배려하기 때문이다. 서울 세운상가 한쪽에는 넥타이를 맸든 넝마를 걸쳤든, 무조건 1500원을 받는 국밥집이 있었다. 결코 친절하지 않은 그 국밥집 주인은 모자라면 밥이나 국을 얼마든지 얹어주었지만 밥값을 깎아주지도, 더 받지 않았다. 언제나 공평했기에 찾는 손님은 모두 편안할 수 있었다.

 

과거의 수입과 지위와 행실이 어떠했든, 일정 나이가 든 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연금이 사회적으로 만족스럽게 똑같다면 노인 사이에 위화감이나 불안감은 없을 것이다. 똑같은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면 젊은 나이부터 노후대비를 위해 몸과 마음에 맞지 않는 일로 지치거나 병들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돈을 더 벌어들이려 아등바등할 일도 없지만 많은 돈을 남긴 이를 그리 부러워할 일도 없을 것이다. 보편적이기 때문일 텐데, 같은 맥락으로, 학교급식을 제공하는 일도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돈이 없는 집의 아이에게 딱지를 붙이고 밥을 주는 복지가 아니라 누구나 똑같은 대우를 받는 보편적 급식이라면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드는 사회에 신뢰가 더욱 두터워지지 않을까.

 

여러 경험을 미루어본다면, 복지 앞에 돈은 부차적일 수 있다. 1976년 당산이 그랬을 것이다. 물론 시장이 끌고가는 현대사회에서 돈으로 제공되는 복지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돈보다 위안, 불편부당함, 자신의 일처럼 돕는 이웃이 있는 사회라면 남보다 많은 주머니의 돈은 오히려 불편한 존재일 수 있겠다. 일본인의 호응으로 많은 돈을 번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큰돈을 선뜻 기부하는 것은 나누고자 하는 마음의 일환일지 모른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얼른 달려가고 싶어도 몸이 따를 수 없으니 돈이라도 나누려는 심사일 게다. 중소기업의 희생으로 큰돈을 벌어들인 대기업이 초과 이윤을 더 나누는 행위도 그럴 것이다. 경영 일선에서 빠져나온 세계적 부자들의 조건 없는 기부는 속죄나 허영심보다 나누려는 심사에서 비롯되어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금은 불편부당한 사회를 충분히 지향하는 수준에서 징수되어야 타당할 것이다.

 

일본의 세금이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지 알지 못한다. 일본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마련된 보편적 복지와 그 전달 체계가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역시 모른다. 이번 재해를 계기로 보도되는 일련의 화면만으로 섣불리 짐작하기 없지만, 정부의 조치를 대체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이는 일본사회는 시민사회에 정부와 이웃에 대한 믿음이 든든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제공하는 복지와 규제가 보편적이라고 믿기에 가능해진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돌이키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보여주는 일본인의 질서 있는 행동과 이웃에 대한 도움과 배려는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네 고층아파트 숲처럼, 몇 년을 함께 살아도 뜨내기처럼 인사도 없이 지낸다면 돕고 싶어도 돕지 못한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 사이에 믿음이 생기기 어렵지 않은가.

 

정부든 개인이든, 돈이 있든 없든, 보편적 복지는 먼저 신뢰가 바탕이 된 사회라야 뿌리내리기 쉬울 것이다. 낮은 주택이 어깨를 나란히 한 작은 도시에서 불행과 희망을 나누는 일본인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면서 또한 따뜻한 그들의 사회에 부러움도 느낀다. 그들은 어깨를 부딪치며 낯붉히는 타인들로 북적이는 도시보다 쓰나미에 약했더라도 닥친 불행은 능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믿음이 바탕이 된 보편적 복지가 더욱 단단해지겠지. (인천in, 201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