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9. 12. 18. 19:54

 

《루가노 리포트》, 수전 조지 지음, 이대훈 옮김, 당대, 2006년.

 

 

새천년을 앞둔 1996년, 위임위원회가 천거한 ‘특별위원회’가 스위스의 쾌적한 호반도시 루가노에서 비밀리에 모였다. 특별위원회의 위원은 수선화부터 때죽나무까지 모두 9명.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감춘 그들에게 ‘특별히 의도하고 있는 열람자’를 위해 “21세기 자본주의 유지 방안”을 현실적으로 모색하라는 과제로 주어졌다.

 

1900년의 총생산량과 맞먹는 양을 불과 2주 만에 만들어대는 1990년대 말을 지나 곧 21세기가 되면 세계 생산 활동의 규모는 생태계와 생명을 유지시키는 지구 역량의 한계에 부딪힐 터. 그대로 두면 시장자본주의는 필히 침몰한다. 시장자유화 체제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자본과 기술의 투입으로 성장하지만 그 투입도 소용없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늘어나기만 하는 인구다. 그 인구는 빈곤한 국가나 부유한 국가의 빈곤층에서 집중된다. 성장에서 밀려나는 빈곤 계층은 시장자본주의 하에서 매사에 불안할 수밖에 없으니 사회는 결국 혼란을 맞게 될 것이다.

 

현인은 “가장 행복할 때 가장 속기 쉬운 법”이라고 했다. 갤브레이스는 “금융의 천재는 항상 금융이 몰락하기 직전에 나온다.” 고 했다. 행동이 필요한 시기다. 어차피 오늘날의 세계는 살아남은 사람과 퇴출당한 사람으로 나누어지는 법. 유산자와 무산자가 그들이다. 성장은 생래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비용과 생태적 비용을 요구하므로,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없도록 늘어난 인구를 줄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시장자본주의 성장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그게 살아남은 자들이 맡아야 할 운명이다. 자신의 결핍을 보상받기 위해 퇴출될 자들이 과격한 행동에 나서기 전에 신속하게 행동해야 한다.

 

다수가 부름을 받아 소수가 선택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이론은 기독교 복음서와 매우 유사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서가 잘 정비되어 있는 국가들 가운데 인구가 과도하게 많은 국가는 없다고 지적했다.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정당화했다. 그러니 생각해보라. 자본주의 문화는 좋든 싫든, 서구적 색채가 두드러지지 않던가. 산림파괴, 오염, 쓰레기로 뒤덮인 지구촌에 수십억의 잉여인구가 넘친다. 자본주의 체제에 부담을 주는 그들은 기생충에 불과하다. 시장자본주의가 정착된 지역에 들어온 이민자들도 대개 그렇다. 주거와 생활환경이 열악하고 교육수준이 낮고 수입도 형편없건만 아이를 많이 낳는 그들은 체제 부적응자다. 인구 최대다수의 행복과 복지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구상의 총인구를 줄여나가는 것이라는 데 특별위원회는 동의한다. 그래야 살아남은 사람들이 훨씬 유복해진다.

 

이론적 기반은 우생학이다. 플라톤부터 최근의 현인까지 사회를 안정화하기 위해 우생학은 불가항력이라고 말했다. 흔들리는 기업이 인원을 대폭 감원해야 비로소 주식가격이 오르지 않던가. 동의하지만 기생충을 어떻게 퇴출시켜야 하는지 고민하는가. 당신의 경이로움을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행사하시는 하느님은 늘 엄격하지만 잔인해보이기까지 하다. 우리는 하느님의 시험을 받아들여야 마땅하지만 인종말살과 같은 잔학한 방법은 곤란하다. 고비용이 들고 효율도 낮으며 너무 눈에 띄는 지난날의 방법은 일을 맡는 자에서 치욕과 모멸감을 안기므로 실패다. 특별위원회의 시나리오에 악역이 등장하면 절대 안 된다. 패배자가 갖는 성향을 유발시켜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걸 전제로 살아남는 자들이 그들을 보살피는 모습으로 연출해야 한다.

 

1990년대 말 현재 세계 인구는 60억. 2020년까지 세계 인구는 80억으로 늘어난다. 대부분 시장자본주의 성장과 무관한 지역의 인구이거나 가난한 이민자 계층이다. 그들의 인구를 억제시켜 2020년까지 40억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고맙게도 세계무역기구와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효과를 발한다. 빚을 갚기 위해 수출농산물 생산을 적극 장려한 뒤 식품 가격을 상승시켜보자. 기생충에 돌아가는 음식은 형편없어지니 질병에 대한 저항성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매춘부로 나설 테니 에이즈가 만연될 수 있다. 생활하수가 넘치고 곳곳에 생활쓰레기가 널릴 테니 말라리아를 비롯한 각종 질병이 다시 창궐하겠지만 이미 의료체계는 붕괴되지 않겠는가. 구소련을 보라. 평균 기대수명이 5년이나 줄었다. 패소가 붕괴된 멕시코를 보라. 기업이 줄줄이 도산하는 상태에서 음식 소비가 4분의1로 줄고 범죄가 횡행하는 가운데 자살이 속출하지 않았던가.

 

종교와 민족 사이의 내전이 유발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통신매체를 이용해 그들의 분열을 조장할 수 있겠다. 획일화를 유도하는 다국적기업의 역할을 기대해도 괜찮다. 과다한 석유자원이 들어가야 유지되는 녹색혁명은 처음 생산량이 늘어나는 듯 보이지만 이내 땅이 황폐화된다. 지속적인 관개는 염분을 축적시킨다. 기업을 피해 빈약한 저장시설에 보관하는 식량은 해충의 공격으로 어마어마하게 소실된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은 어떤가.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가 잡초로 옮겨가거나 해충 저항성 유전자가 해충을 더욱 강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 농산물을 심은 지역은 더욱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

 

끔찍한가. 희생자의 아우성은 처음 듣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겠지만 이내 소음으로 변한다. 그때 그들의 지역으로 가서 고통스러워하는 50명을 카메라 앞에서 구조하라. 카메라는 이면에서 제거되는 5만 명을 가려줄 것이다. 가족계획을 적극 지원해 아예 아이가 태어나지 않게 유도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 좋기로는 추수할 즈음 식량을 원조하는 거다. 그러면 그 지역의 식량산업은 붕괴된다. 이제, 경제고 위생이고 엉망이 된 환경에서 자기들끼리 아귀다툼하다 자멸하는 일만 남을 거다. 그야말로 일거양득.

 

내일을 담보로 신자유주의 교의를 강요하는 세계화를 적극 비판해온 수전 조지가 자본주의 화신이 비밀리에 작성한 루가노 리포트를 입수하여 폭로한 건 아니었다. 현재 시장자본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저지르는 행태를 《루가노 리포트》라는 가상의 특별위원회 보고서로 적나라하게 비판한 것이리라. 21세기를 다국적기업과 시장자본주의 횡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던지는 거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와다음, 2010년 1-2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8. 2. 2. 09:34
 

녹색평론 최근호는 발행인 김종철 선생과 원로 영문학자 김우창 선생의 ‘신념대담’을 실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대담에서 김종철 선생은 ‘FEC 자급권’을 소개한다. 일본의 경제사상가 우치하시 가츠토(內橋克人)라는 분이 오래 전부터 제창한 ‘FEC 자급권’은 식량(Food)과 에너지(Energy)와 돌봄(Care)은 자유무역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각 나라와 지역사회의 자급능력이나 자주적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제안이라고 김종철 선생은 덧붙인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은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이미 비참한데, 국내 농경지는 개발 유보지로 취급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개발 사업은 논밭을 갈아엎으니 이제 우리는 외국 식량에 굴종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는 더하다. 환경단체에서 내복을 입자고, 실내온도를 섭씨 18도에 맞추자고 제안하지만, 사둔 내복을 입을 일이 없을 정도로 천지사방의 겨울이 덥지만 거의 전량의 에너지를 수입한다. 돌봄은 아직 자급에 가까운데, 한미FTA 타결 이후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식량과 에너지와 돌봄은 국내와 지역 내에서는 사고팔아도 좋다지만 맹목적인 이윤추구는 지양해야 한다. 일찍이 이반 일리치와 칼 폴라니가 통찰했듯, ‘우정과 환대’로 나눌 것을 제안한다. 담거나 퍼가는 사람이 서로 모르는 ‘마르지 않는 뒤주’나 ‘밥퍼 공동체’ 같은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고, 산동네에 연탄 날라주듯 에너지를 마련해주며, 이웃집의 아기와 노인 보살피듯 의료나 복지를 제공하자고 한다. 그와 같은 우정과 환대는 내 얼굴을 기억하는 이와 거래하는 공동체에서 빛을 발할 것 같다. 팔면 그뿐인 국내외 교역에 우정과 환대는 끼어들 틈이 없을 것이다.

 

지금 세계는 가히 에너지 전쟁이다. 석유자원에 대한 살벌한 국제 경쟁은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까. 남의 자원을 가로챌 자본이나 군사력이 부족하니 한정된 자원을 선점하려 세계 오지의 생태계를 파괴해야 할까. 우리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경쟁은 전쟁을 낳을 수 있다. “태양은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발굴과 보급하면서 에너지 체계를 생태 친화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효율화와 절약을 말한다. 하지만 전국의 개발 열풍은 내일을 걱정하게 한다.

 

정부는 식량 자급을 위해 농경지를 보전하고 농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이를 우대해야 마땅한다. 소비자는 농사꾼에 빚진 마음으로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다가올 식량안보 시대의 마지막 보루이므로. 한데, 기후변화로 세계 식량 수급이 불안전하면서 가격 앙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절대농지를 해제하겠다는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의 발상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돌봄은 어떤가. 아이를 산후조리원에 맡기는 풍조가 만연되는 가운데 시댁과 친정 부모는 집을 은행에 맡기고 해외여행을 즐기란다. 의료는 국가에서 책임지는 국가도 많은데 감기 치료에 수백만 원이 들어가는 미국계 병원이 곧 진주할 예정이다. 받는 사람의 자존심까지 헤아리는 돌봄은 점점 실종된다.

 

식량과 에너지와 돌봄은 우정과 환대로 거래해야 한다면 돈과 땅과 사람은 절대 사고팔 수 없어야 한다고 김종철 선생은 지적한다. 그런데 어떤가. 카지노 판이 아닌데 세상은 돈을 사고파는데 눈이 뒤집혔다. 외환거래는 말할 필요도 없지만 국제 에너지와 식량 시장마저 투기장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돈다발을 든 투기꾼이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침 흘리는 일은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되고, 인력시장은 노예시장과 다르지 않다. 모든 걸 상품화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인데, 이제 우리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기승을 부리는 신자유주의에 더 큰 날개를 달아줄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낙담할 수만은 없다. 제국주의 시절에 독립운동이 펼쳐지고 군사독재 시절에 민주화운동이 꽃을 피웠듯, 신자유주의의 성장 지상주의에 맞서는 시민운동에 나서야 한다. 그에 앞서 우리는 사고팔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 2008년 2월)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7. 2. 26. 00:58
 

입춘이 막 지난 한낮이라 바람이 제법 차다. 응달에 잔설이 남았음직한 2월의 냉기는 뺨을 스치고, 외투에 손 찌른 채 티 없이 맑은 하늘 아래 천천히 걷는 기분은 모처럼 상쾌하다. 지하철이면 벌써 도착하고 남았을 테지만 지금은 더 없이 느긋하다. 버스나 지하철 길을 따라 걸으면 조금 더 가까울 테지만, 거기는 감시 카메라 눈치 보는 자동차들의 배기가스로 속을 거북할 뿐 아니라 참기 어렵게 시끄럽다. 아파트가 빼곡한 연수구에서 인천광역시의 청사로 가늘 길, 도시계획위원회의 회의 시각은 아직 멀었다.

 

버스와 트럭들이 승용차 사이를 질세라 질주하는 아스팔트를 피해 그린벨트로 접어드니 타이어의 마찰음과 신호 대기를 못 참고 시근덕거리는 디젤엔진 소리가 이내 삭으러든다. 승용차 두 대가 겨우 지날 정도의 시멘트 도로엔 자잘한 자갈이 흩어졌고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귀에 전해지는 발자국 소리가 정겹다. 개찰구에 다다르기 전에 울리는 경적은 망신당하기 싫으면 서두르라는 성화다. 작년부터 시큰거리는 무릎을 다그쳐 두 계단 세 계단을 뛰어내려야 닫히는 자동문 사이로 전동차에 올라탈 수 있는데, 오늘은 차라리 한가하다. 오랜만에 호사를 누린다.

 

개업식장을 수놓을 양란과 장례식장 벽을 가릴 화환이 들여다보이는 비닐하우스들을 지나면 추레한 기억을 감추지 못하는 지붕 낮은 집들이 오후 햇살에 나른하고, 나무무늬 마감재를 보란 듯 내미는 여기저기 조립식 건물들은 색다른 메뉴를 자랑하는 주변부 식당이다. 파란 하늘 사이로 참나무 가지는 가볍게 흔들리고, 양지바른 사면을 덮은 국수나무 덤불은 겨울 햇살 아래 따뜻하다. 한데, 덤불 아래 잔설 대신 쓰레기가 지천이다. 담뱃갑과 음료수 캔 사이에서 나풀거리는 비닐 끈들. 한때 돈 주고 샀던 물건일 텐데, 엔트로피가 높다. 가만, 어디서 ‘쓰쓰- 삐이 삐이’ 깨끗한 소리가 귀전을 맴돈다. 가냘프지만 단호하다.

 

곤줄박이다. 같은 과인 박새 무리와 잘 어울리는 흔한 텃새. 산지나 평지의 활엽수림에 주로 서식하며 곤충의 유충을 먹지만 낙엽 떨어진 이후 작은 나무열매를 딴다고 조류도감이 건조하게 전하는 곤줄박이는 고운 줄이 박혀 그런지 참 고운데, 그 새를 만났다. 광릉수목원 보호림 내에 자리한 평화원은 문 닫은 고아원인데, 평화원 주변의 양지바른 관목을 겨우내 떠나지 않던 곤줄박이를 눈에 밟히게 보았던 게 1980년대 초반이니, 벌써 사반세기가 흘렀다. 그 곤줄박이를 내가 사는 인천에서 만난 것이다. 그것도 골프장으로 바뀔 위기에 몰린 그린벨트에서.

 

검은 턱에서 이어진 검은 띠가 흰 배 사이를 지나고, 검은 머리와 흰 뺨과 잿빛 날개가 무채색인 박새 무리와 달리 곤줄박이는 알록달록하다. 흰 뺨과 부드럽게 이어지는 크림색 이마 뒤로 검은 머리가 붉은 갈색 등까지 연결되고, 검은 머리는 디시 크림색 세로줄로 도드라진다. 검은 턱 아래 붉은 갈색 배가 따사로워 보이는 곤줄박이는 밝은 회색 날개를 펄럭이며 나뭇가지 사이만 바삐 오가는 것은 아니다. 검은 부리로 가는 가지를 톡톡 치며 먹이를 찾는데 그치지 않고 등산객의 손바닥에 앉아 땅콩을 물어가기도 하는데, 뾰로통한 박새 무리와 달리 사람에게 곁을 잘 주는 곤줄박이는 한때 점쟁이 새장에서 운세 적힌 종이를 뽑아내는 앵벌이로 신세 망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온갖 새의 자태는 물론 소리까지 다운받는 세상이 되더니, 앵벌이를 마다않던 곤줄박이마저 필요 없어진 걸까. 도시 자연공원에서 땅콩 펼쳐주는 손바닥으로 반갑게 내려앉던 곤줄박이는 삭막한 회색도시에서 더 없는 위안이었는데, ‘친환경적이며 건전한 실외 체육활동’을 위한 골프장으로 그린벨트로 덮어씌우려 안달하는 인천시에 의해 오랜 터전을 빼앗길 것인가. 장차 300만을 훌쩍 넘을 시민의 적어도 4.4퍼센트는 골프를 즐길 것이라 예측하는 인천시는 세금 많이 내는 시민을 위한 놀이시설도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수천억의 예산을 계산한다. 세금을 적게 내는 나머지 95.6퍼센트는 부자들의 체육활동을 위해 소외되어야 하나.

 

대개 내기와 희롱으로 얼룩지는 골프장이 건전하다는 인천시의 얼토당토아니한 주장을 예서 토 달지 않겠다. 다만, 골프장도 녹지라며, 골프장으로 그린벨트의 환경 가치를 높인다는 근거 없는 주장에 어처구니가 없다. 군사독재의 유일한 생태정책이 그린벨트였는데, 그린벨트 해제는 누구의 민원이던가. 외지인이 주로 소유한 그린벨트가 없다면 토건국가의 불도저는 도시를 어떻게 파헤쳤을까. 생각만으로 아찔하지 않은가. 강제로 지정한 그린벨트의 여러 문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하지 않다가 부자들의 질펀한 놀이를 위해 파괴하려 들다니, 온실과 음식점을 피하며 제 모습 드러내는 곤줄박이는 가녀린 터전마저 잃어야 하나. 나무와 숲으로 보전해야 할 그린벨트에 우리의 오랜 기후와 문화와 정서와 부딪히는 외래 잔디를 깔고, 그 잔디의 관리를 위한 고독성 농약과 화학비료를 흥건히 뿌릴 텐데.

 

우수와 경칩을 지나면 개구리가 울지만, 개구리만이 아니다. 박새 무리와 헤어지는 곤줄박이는 잎눈이 싹을 틔우는 계절을 맞아 인적 드문 산록에서 짝을 구하는데, 입춘이 겨우 지난 2월, 회색도시의 헐벗은 녹지에서 한 녀석이 울었다. 지구가 아무리 더워졌다지만 벌써 짝을 찾으려는 건가. 종족보전에 의협을 느끼면 번식이 빨라지는 경향이 생물에 있는데, 그래서 그런가. 비닐 쓰레기라도 주워 둥지를 틀 그 곤줄박이는 흰색 바탕에 갈색 무늬가 있는 6개 내외의 알에서 몇 마리의 건강한 자손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의 성과 생존을 교란하는 농약은 자연의 생물이라고 예외로 두지 않는데.

 

시장원리에 충실한 신자유주의는 노동유연화를 무기로 세금 많이 내지 못하던 앵벌이를 착취대상에서 유연하게 말살한다. 칼 폴라니는 최근의 시장원리보다 우정 어린 협력이 인간사의 본질이었다고 증언하는데, 신자유주의를 숭상하는 인천의 CEO 시장은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강력히 추구한다. 앵벌이들의 알량한 무대까지 독차지한 자들은 곧 흥청망청한 행태를 배타적으로 과시할 텐데, 그린벨트를 보전하고 싶을 우리 앵벌이는 장차 어떻게 될까. 장차? 이미 신세가 결정되었다. 골프 치는 대학교수 위주로 구성된 인천광역시 도시계획위원회는 마침내 골프장 안건을 다수결에 부의, “파괴된 녹지를 연결하기 위해” 원안 가결한 것이다. 이제, 세금 적게 내는 나는 무슨 낯으로 곤줄박이를 만날 수 있을까. (물푸레골에서, 200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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