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8. 10. 10. 19:45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 마크 제롬 월터스 지음, 이한음 옮김, 책세상, 2008

 

 

밤이 제법 쌀쌀해진 가을인데, 모기가 귓전을 스친다. 물리면 바둑알만큼 부어올라 며칠 동안 고통스럽게 했던 여름과 달리 쌀알만큼 붓는 가을에는 가렵다가 말지만 잠깐이나마 밤잠 설치게 하니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행동이 느려 신문지 뭉치로 너끈히 때려잡을 수 있지만 불을 켜자니 귀찮기 그지없다. 잡자니 귀찮고 놔두려니 성가신 가을모기는 여름에 번식하지 못한 일부 낙오자일까.

 

곤충인 모기는 겨울에 살지 못한다. 변온동물이므로 영하의 날씨를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전문가가 ‘지하집모기’라 칭하는 존재는 겨울에도 아파트를 맴돈다. 겨울에도 열기를 내뿜는 지하 정화조에 알을 낳고 번식하는 녀석들은 가을모기의 연장일까. 과문한 탓에 지하집모기가 가을이나 여름철의 모기와 같은 종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분명한 건, 가을모기나 지하집모기가 나타나는 현상은 사람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거다.

 

비슷한 일은 최근일수록 흔하다. 디디티를 뿌린 후 사라졌다 믿었던 메뚜기가 다시 떼로 몰려들었을 때, 준비된 디디티가 소용없게 된 현상도 그 예 중의 하나일 것이다. 메뚜기에 내성이 생겼기 때문으로 흔히 해석하는데, 내성의 원인은 무엇일까. 내성이 생기기 전과 후의 메뚜기는 같은 종일까. 야생 산사나무에 알을 낳던 북미의 파리는 산사나무를 밀어낸 사람이 사과를 심자 사과에, 블루베리를 심자 블루베리에 알을 낳았다. 사람의 시간 기준으로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산사나무에 알을 낳는 파리는 사과나 블루베리에 알을 낳는 파리와 짝짓기를 하지 않았다. 물론 사과나무에 알을 낳게 된 파리도 블루베리의 파리를 외면했다고 《핀치의 부리》의 저자, 조너던 와이너는 전한다.

 

인체 내에서 20분에 한 번 분열하는 미생물이 한 마리도 죽지 않고 10시간 거듭 분열한다고 치자. 몇 마리로 늘어날까. 자그마치 21억 4748만 3648마리다. 10시간이면 사람이 먹은 항생제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시간과 대략 일치한다. 미생물은 10시간 동안 30번 분열할 텐데, 사람의 30세대는 900년 정도다. 지금부터 900년 전은 우리나라에서 고려시대로, 그때의 의복은 물론 언어와 생활습관은 지금과 판이할 것이다. 체형과 골격도 상당히 다르니 시공을 초월해 한 자리에 모이면 매우 어색할 것이다. 연분은커녕 친분도 맺기 어려울지 모른다. 10시간 뒤의 미생물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찮다 생각했던 병원균을 치료하느라 환자의 진이 빠지는 사례가 병원에서 점차 늘어난다고 한다. 항생제가 듣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사이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는 건데, 과거의 질병이 강화돼 나타나거나 다른 지역의 풍토병이 창궐하는 현상이다. 의료진을 아연 긴장하게 그런 질병은 왜 발생하는 걸까. 항생제와 의약품 남용? 의약분업의 명분이 그러하므로 틀린 지적은 아닐 테지만, 그뿐일까. 정부는 양식 어류의 사료에 첨가하지 않아야 할 항생제 목록을 공개해야 했는데,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지만 항생제 남용에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건 옳지 못하다. 항생제 남용을 부추긴 요인을 포함해야 할 테지만, 사람의 생태계 교란을 무시하면 안 된다.

 

2004년 ‘북갤럽’에서 출간해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묻혔던 《에코데믹》이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책 안 읽는 세상이 빚은 출판사의 경제 사정으로 아까운 책이 독자의 곁에서 떨어졌는데, 반갑고 고맙게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항생제를 오남용하는 사람이 생태계를 함부로 파괴하면서 창궐한 6가지 질병을 실증적으로 들여다보는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은 멜라민 파동이 일으킨 식품오염 사건에 몸서리치는 독자들에게 다른 차원의 경고를 전한다. 자연을 지배했다며 교만해하는 인간에게 부메랑처럼 다가온 질병의 치명적 변주곡을 알리는 거다.

 

풀을 뜯고 되새김질하는 소에 소 도축 부산물을 강제로 먹여 발생한 광우병은 예전에 없었다. 소와 사람까지 쓰러져도 아무도 반성하지 않는다. 속임수를 일삼는 자본, 그 자본을 감싸는 정부의 억압 덕분에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즐겨먹는 이 사이에서 광우병은 다시 도질 게 틀림없다. 제약회사 연구실이나 대도시의 동물원에 보내기 위해 원시림을 파괴하며 원숭이를 잡자 발생한 에이즈는 현재 치료제 가격이 터무니없는 아프리카에서 더욱 기승을 부린다. 제국주의가 파괴한 대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원숭이까지 잡아먹는 아프리카 인들이 업보를 떠맡은 셈이다.

 

흔해빠진 살모넬라균이 치명적으로 돌변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몸집을 순식간에 부풀리거나 우유를 펑펑 쏟아내도록 소의 천성을 왜곡시킨 사람의 이기심과 무관하지 않다. 항생제에 중독돼 죽지못해 살아가는 소는 살모넬라에 쉽게 감염된다. 그러니 그런 사육하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살모넬라균에 내성이 생기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수많은 동식물이 어우러졌던 숲을 남벌하자 발생한 미국인의 관절염, ‘라임병’도 마찬가지다. 천적이 사라진 뒤, 쥐가 들끓자 쥐벼룩도 퍼졌다. 폐에 물이 차올라 숨지게 하는 한타바이러스도 비슷한 이유로 창궐한다. 쥐가 옮기는 한타바이러스의 이름은 한탄강에서 비롯되었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숲을 제거한 뒤 발생했다는 건데, 미국에서 더욱 치명적인 한타바이러스가 중간지대에는 없고 왜 멀리 떨어진 대한민국의 비무장지대에 느닷없이 출현하게 되었을까.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의 저자는 철새의 길을 교란한 사람에 의해 웨스트나일뇌염이 미국에 퍼졌다고 주장하는데, 세계 곳곳의 독특한 생태계에 제한되었던 풍토병이 획일적 개발을 일삼는 사람의 분주한 이동에 의해 외지로 퍼져 발병하는 예는 웨스트나일뇌염 이외에도 많다. 댕그열병과 아프리카 황열병, 중국과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사스도 그 목록에 들어가고, 사람의 개발 행위가 계속되는 한 목록은 길어질 것이다. 그러니 어찌해야 하나.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반성과 자연스러움의 회복을 위한 행동이다. 신념으로 행동하려면 실상부터 알아야 한다.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은 적나라하다. (우리와 다음, 2008년 11-12월호)

 
 
 

서평·추억

디딤돌 2005. 5. 10. 16:12
 

《에코데믹》, 마크 제롬 월터스 지음, 이한음 옮김, 북갤럽 2004


작년 12월까지 아파트 18층의 아이들을 괴롭혔던 모기가 올해는 4월부터 극성이다. 전문가는 지하집모기 때문이라는데, 겨울에도 아파트를 떠나지 않는 그 모기가 전에 없이 우리 주변을 전천후로 맴도는 까닭은 무엇일까.

 

모기가 가장 극성일 때, 잘 나가는 미시 연기자를 동원한 텔레비전은 더욱 강화된 오렌지 향 모기약을 광고했다. 거대 선박을 타고 수개월 이동하는 과정에서 상하지 않게 하는 농약을 흠뻑 묻히고 우리나라로 들어온 미국산 오렌지는 값이 참 싸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돼지갈비 식당들은 이쑤시개 찾는 손님에게 서비스로 하우스 참외 대신 내준다. 오렌지는 요즘 왜 쌀까. 일본에서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농약 때문에 거절당한 오렌지를 우리에게 헐값에 넘겼다는 것이다.

 

그런 향이 좋다고, 이웃이 꽉찬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웽웽 대는 모기를 향해 사정없이 모기약을 분부하는 연기자는 오렌지가 잔뜩 담긴 봉투도 끌어안았다. 그리고 향울 음미하며 활짝 웃고, 모기 소리에 찡그렸던 이웃들도 함께 웃었다. 눈에 엑스표가 그려진 모기는 물론 후드득 떨어졌고. 인간의 승리일까. 다소 코믹한 광고에 속는 시청자들은 그리 생각할지 모른다. 그 모기약 광고, 올해도 유효할까.

 

에코데믹은 합성어다. 환경을 뜻하는 ‘Eco’와 풍토병을 뜻하는 ‘Endemics’을 조합해 ‘Ecodemics’, 즉 ‘생태병’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이 저지른 환경변화에 의해 과거의 질병이 무섭게 돌변하고, 타 지역의 풍토병이 인간의 이동수단을 타고 들어와 감당할 수 없게 창궐하는 현상을 에코데믹으로 해석한다.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병원성 미생물의 《에코데믹》 현상을 눈치채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인간에게, 인간의 백신 기술은 환경보전 없이 미생물을 이길 수 없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에코데믹》에서 지적하는 광우병, 에이즈, 한타바이러스들 뿐 아니다. 묵은 살충제에 끄떡없는 지하집모기, 바퀴, 개미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농작물에 살충제와 제초제를 듬뿍 뿌리는 가축 사료에도 항생제를 넣더니 자신의 몸에도 잔뜩 처방한다.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다음 세대의 건강을 위한 복음서인 《에코데믹》은 현 세대 인간의 반성을 촉구한다. 내일을 위한 오늘의 환경보전을 강력히 요구한다. (2005 환경책 큰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