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2. 4. 10. 22:29

 

바다와 임하는 인천에는 화력발전소가 유난히 많다. 화석연료를 태워 발생시킨 고온고압의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화력발전소는 막대한 온배수를 가까운 곳에서 가져와야 한다. 터빈을 돌리고 나오는 수증기를 식혀야 다시 끓여 터빈을 계속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수증기 식히는 온배수로 바닷물을 사용하는 인천은 바다와 임한다는 업보로 지역에서 필요한 전기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전기를 생산한다. 남은 전기는 서울과 경기도로 보낸다.

 

화력발전소가 필요 이상 많은 인천과 없는 것과 다름없는 서울, 그리고 전혀 없는 경기도의 전력요금은 모두 동일하다. 불합리하다. 송전 거리가 길면 길수록 원가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지만 그렇다. 그런 불합리를 당연시하는 나라는 OECD에서 우리 밖에 없다. 전기 송배전을 한국전력, 단 하나의 기업이 독점하고, 한국전력의 의사결정을 지배하는 정부가 그런 정책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반면 발전시설과 송배전 시설이 지역에 따라 분산된 대부분의 국가는 발전소와 가까우면 전기요금이 당연히 저렴하다. 전기를 생산하면서 발생하는 대기오염물질, 온배수로 인한 불이익을 감안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송배전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바다와 임하지 않는 유럽의 많은 국가의 도시들도 지역에 발전소를 가진다. 주변에 작은 규모라도 강물이 흐른다면 적극 활용한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나라에 없는 냉각탑을 지어야 한다. 온배수를 다시 활용하려고, 또는 온도를 식힌 온배수를 하천에 방류해야 생태계 교란을 줄일 수 있는 까닭이다. 한데 온배수를 전적으로 바닷물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임해지역에 불이익을 강요한다. 인천이 그렇고 태안과 보령과 삼천포가 그렇다. 우라늄 핵을 분열시켜 얻는 에너지로 물을 끓여 전기를 생산하는 핵발전소도 마찬가지다. 울진과 영광과 고리와 영광이 그렇다. 만일 한강 정도의 수량이 흐르는 대도시가 유럽에 있다면 먼 곳에서 생산한 전기를 끌어올 리 없을 것이다. 온배수가 충분하지 않은가.

 

지역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두 배 이상이 생산되는 인천에 대규모 화력발전소가 다시 증설되고 있다. 이미 80만 킬로와트 급 4기가 가동되는 영흥도에 현재 2기가 추가 세워지는데, 다시 2기를 더 증설하려고 정부와 한국전력과 남동화력이 은밀히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 이번에도 예외 없이 정부와 발전소 측은 인천시와 인천시민의 의견을 소외하려 든다. 온배수로 어족자원이 황폐화되고 대기오염이 심화되고 있건만 기왕에 떠맡는 불이익이니 더 얹으라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그런 불합리를 서울과 경기도의 주민들은 관심 밖이다. 인천과 인천보다 더 먼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가져가 소비하는 서울은 전기를 생산하면서 생기는 불이익이 무엇인지 모른다. 가격도 같으니 그저 펑펑 쓸 따름이다. 가마 속에서 가마를 든 이의 고통에 무감각한 것이다,

 

모름지기 합리적인 국가라면, 지역에서 소비하는 전기를 지역 주민과 민주적으로 충분히 논의해 발전소의 규모와 방식을 투명하게 결정하여 지을 테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사회정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사회를 표방하는 국가라면 이제 달라져야 한다. 전기가 부족하다면 부족한 지역에 발전소를 지어야 옳다. 발전소 짓는 동안 당장 송전이 필요하다면, 전기가 남는 지역의 양해를 구한 뒤 가져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요금체계의 합리적 조절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어야 한다. 그래야 전기를 생산하면서 받는 불이익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고, 함부로 낭비하는 습관을 수정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전기가 남아도는 인천에 발전소를 더 지을 하등의 이유는 시방 없다.

 

화력발전소가 지나친 인천은 대기오염물질 뿐 아니라 온실가스 방출 정도가 무엇보다 심각하다. 지구온난화를 철저하게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화력발전소 증설은 어느 공간이든 합당치 않다.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과 온배수로 감당하기 어려운 불이익을 강요받아야 했던 인천은 이제라도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 태양이나 바람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시급히 확충해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생산하는 전력량이 늘어나는 만큼 수명을 다한 화력발전소의 운전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바람과 태양 에너지 자원이 다른 지역보다 특별히 열악하지 않는 한, 얼마든지 설치 운영은 가능하다. 참고로 2022년까지 자국의 핵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한 독일은 바람과 태양 에너지가 충분하기 때문인데, 우리나라가 독일보다 햇볕이 강할 뿐 아니라 바람도 모자라지 않는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 전문가는 우리나라 국토의 2퍼센트 면적에 태양광 에너지 시설을 설치하면 전기를 자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밤에 발전이 안 되고 흐른 날이면 발전량이 줄어들 걸 감안한다면 4퍼센트로 면적을 늘리면 될 것이라 덧붙인다. 우리 도시의 면적은 대략 15퍼센트 정도라고 하니 도시 면적의 3분의1만 태양광 에너지 생산 시설로 덮어도 전기 생산량은 충분하다는 단순한 계산이 나온다. 도시에는 지붕이 넓은 공공시설이나 사설 건물이 많다. 그런 건물의 지붕과 옥상을 잘 활용하면 당장 꽤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적어도 화력발전소 증설을 불필요하게 될 게고, 그만큼 대기오염물질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 바다도 비로소 안정될 것이다. 영흥도에 화력발전소 증설이 추진되는 인천이 정부와 발전당국의 적극적 후원으로 즉각 추진해야 할 사업이다.

 

2014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인천에도 지붕이 넓은 공공시설이 많다. 앞으로 태양광 에너지 생산 시설을 너끈히 확충할 수 있을 것인데, 학교와 아파트의 옥상도 활용할 수 있고 여름에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아스팔트 주차장을 이용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완공된 숭의동의 인천 축구 전용경기장의 지붕은 아쉽다. 태양광 전기 생산 패널을 잘 배열하면 건물의 외관이 수려해지기도 하는데, 아쉽다. 청구서를 전혀 보내지 않는 태양 에너지를 적극 수용하는 만큼 인천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줄어든다. 지붕의 발전소에서 화력을 대체하는 만큼 지구온난화를 뒤로 미룰 수 있다.

 

이번 겨울 내복을 입지 않았다. 천지사방이 더워 입기 불편했기 때문이다. 유사 이래 우리 조상은 전기 없이 수 천 년을 잘 살아왔다. 핵이나 화력일 경우는 물론이지만 태양광이라도 전기는 낭비할 자원은 아니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게 지내야 자연도 사람도 건강하다. 지구온난화 시대를 앞두고 우리는 자연스럽던 조상의 삶을 돌아보며, 전기 효율화로 생산량을 줄일 뿐 아니라 소비 자체를 최대로 줄이는 삶을 서둘러 모색해야 한다. 고갈이 눈앞인 석유는 물론이고 매장량이 급히 줄어드는 다른 화석연료만이 아니다. 위험천만한 핵연료도 탐욕스런 낭비 앞에 한계가 분명하지 않은가.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인천in, 2012.4.10)

안녕하세요....

 
 
 

자원·에너지

디딤돌 2011. 7. 15. 11:17

 

구제역 소식이 한 인기 연예인의 이혼 뉴스로 슬며시 사라지더니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소식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뉴스로 자취를 감췄다. 초대형 태풍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막대한 바람을 몰고와도 언론은 후쿠시마 발 방사성 물질에 대한 언급이 없다. 시민들도 경각심을 잊은 건 마찬가지다. 드센 장마와 태풍으로 지연된 프로야구 게임보다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정부나 시민이나 핵을 대체할 재생 가능한 자원의 전기 확보에 무감각 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편서풍 지대의 서편에 있어도 그렇지, 자전축이 23도 이상 기울어진 지구에서 북반구의 바람이 반드시 동쪽으로 부는 건 아닌데, 우리나라는 지척의 핵발전소 사고와 일본의 후속 처리에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하다. 25년 전 구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발전소가 위치한 우크라이나보다 동북쪽 이웃인 벨라루스에 훨씬 큰 피해를 안겼지만 독일은 두 나라 이상 긴장했다. 이후 시민들의 반핵 분위기는 고조되어 핵발전소의 증설은 거부되었고 핵폐기물 이동과 임시저장도 심한 저항에 부딪혀야 했으며 지지가 늘어난 녹색당이 정가의 일선으로 부각되면서 핵발전소의 조기 폐쇄 의결로 이어졌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도 독일을 뒤흔들었다. 녹색당과 사민당 연정이 합의한 핵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을 후퇴시킨 기민당과 자민당 연합정권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는 일이 거푸 발생하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란 정권은 부랴부랴 전 정권의 핵발전소 조기 폐쇄로 정책을 되돌렸을 뿐 아니라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 보급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줄어드는 핵에너지만큼 전기를 보완하는 차원이 아니다. 온실가스 감소는 물론이고 일자리 창출과 경제의 획기적으로 비약시키기 위해, 소비 전기의 절반을 바람이나 태양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으로 지역에서 충당하는 계획을 세웠고, 시민의 행동이 선도하기에 계획은 순조롭게 당성하리라 기대한다.

 

독일에 흔한 지붕의 태양광 패널과 들판의 풍차는 점점 늘어나는데, 핵발전소 신설을 몸으로 막은 프라이부르크 시는 태양의 도시를 표방하고 나섰다. 세계 모범 환경 도시라는 칭송을 듣는 도시답게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신도시를 건설할 뿐 아니라 기존 도심의 에너지 체계를 개선한다. 프라이부르크만이 아니다. 인근의 작은 도시 쉐나우는 주민의 힘으로 기존 발전소를 매입해 재생 가능한 자원의 전기로 자급하기에 이르렀으며 근처 농촌마을인 징엔은 주민들이 졸라 콤플렉스라는 회사를 설립, 남는 태양광 전기를 판매할 뿐 아니라 가축 분뇨와 나무 부산물로 난방을 하면서 화석연료 사용을 90퍼센트 줄였다. 그들은 핵발전소는 물론이고 온실가스를 내뿜는 화석연료와 화력발전소에서 자유로워졌다.

 

일본은 어떤가. 소프트뱅크를 이끄는 한국계 기업인 손정의가 회사 정관까지 바꾸며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 전기를 생산 공급하는 사업에 적극 나서자 미쓰비시나 스미토모와 같은 대기업들도 신규 참여를 경쟁적으로 모색한다고 언론은 보도한다. 그에 발맞춘 일본 정부는 이른바 자연 에너지 특별조치법을 입안했다. 태양이나 풍력, 지열이나 바이오와 같은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 생산한 전기를 전력회사에서 일정 가격으로 모두 사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로, 거대 전력회사의 독점 공급 체계가 아니라 지역 자립의 분산 체계로 개선하려는 정책이다. 311일 대지진 이후 제한 송전으로 고생한 일본인들도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행동으로 속속 이어지는 모양이다.

 

녹색수도를 표방하는 청주는 고속도로 진출입구 주변에 태양광 패널을 단 주택들을 선보인다. 모르긴 해도 그 마을은 전기를 거의 자급할 거로 보이지만 우리나라에 그런 마을은 매우 드물다. 독일에서 오래 동안 실시했고 일본이 따르려 하는 이른바 발전차액보조금 제도가 유명무실해진 까닭이다.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 집과 마을의 전기를 자급하려는 시민의 의지를 북돋는 제도가 발전차액보조금인데, 그 제도를 무력화한 우리 정부는 느닷없이 전력회사에 일정 비율로 재생 가능한 자원의 전기 생산을 의무화했다. 그러자 전력회사는 막대한 의무를 조력발전으로 메우려 갯벌을 파괴하고 태양광 발전 명분으로 산허리를 허물려고 벼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앙 집중 에너지 체계의 폐해다.

 

끔찍한 사고가 아니라도, 대형 전력회사에서 전기를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핵이나 화력발전은 핵폐기물이나 온실가스로 건강을 대대로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급자 위주의 에너지 정책은 필히 과소비로 이어진다. 반면 지역의 재생 가능한 에너지는 환경 피해를 최소화할 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과 절약에 관심을 높인다. 바로 독일이나 일본의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추진하는 동네 에너지의 장점이다. 핵발전소 밀도가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가 도입해야 할 대안이다. 자국의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겪은 일본 뿐 아니라 사고를 대비하려는 독일은 핵발전을 포기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정책을 바꾸려는데, 우리는 핵발전소를 고집한다. 후손에 대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야곱의우물, 20119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1. 10. 14:52

 

환경단체에서 운영하는 생활협동조합은 손으로 전기를 일으켜 가동하는 충전식 라디오나 회중전등을 판다. 5, 작은 손잡이를 열심히 돌리면 라디오는 한 시간, 전등은 3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태엽이 풀리는 힘으로 움직이는 시계나 장남감도 주위에 흔했는데 통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 페달로 충전시킨 배터리로 텔레비전이나 세탁기를 사용하는 다리 튼튼한 이가 있다던데, 흔해빠진 건전지에 밀렸는지 태엽은 거의 사라졌다.

 

어릴 적에 과학잡지를 보고, 손으로 거대한 톱니바퀴를 땀을 뻘뻘 흘리며 돌리면 우리집 전기료 적정은 꽤 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발전기가 불가능한 건가 궁금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해 풀렸다. “덥다고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집안이 시원할까?” 묻는 물리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이 궁하고 아리송했지만 이후 에너지 보전의 법칙이라 일컫는 열역학 제1법칙을 이해하면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각인했다.

 

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이 지구온난화 시대에 맞을 석유위기를 걱정한다. 머지않아 석유 생산량이 정점을 지날 것으로 주장하는데, 사실 석유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끌어올릴 따름인 사람은 수억 년 전 생성된 석유를 잠깐 사이에 흥청망청 소비했다. 땅 속 석유의 압력이 남아 있을 때 끌어올리는 에너지가 많지 않아 우린 값싼 석유를 한동안 사용해왔지만,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다. 끌어올리는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올라온 석유에서 얻는 양보다 크다면 유정에 분명히 석유가 남았더라도 사용할 수 없다. 유정에 물을 부어 석유를 밀어올리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

 

세계적으로 석유 소비량은 줄어들 기세를 보이지 않는데, 생산량이 감소한다는 예상이 나오면 어떤 혼란이 초래될까. 국제 석유는 선물로 거래한다. 눈앞에 석유를 놓고 상인과 흥정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 인도할 석유의 가격을 미리 정하는 식이다. 그 경우 석유는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선물 계약서가 거래되면서 소문에 따라 석유 가격이 부풀거나 폭락하기도 한다. 정점이 멀지 않았다는 소문, 매장량이 막대한 유전이 개발될 거라는 소문이 투기를 부추길 것이다. 투기가 반영된 결과, 실제 거래되는 석유가격은 배 가까이 튀겨졌을 거로 의심하는 전문가도 있다.

 

올해 들어 세계 석유 가격이 오르기만 한다. 비축량이 충분하다지만 급증하는 사용량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을 것이다. 새로운 유전이 발견된다지만 매장량은 그리 많지 않다. 끌어올리는 양이 소비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결국 가격은 오르지만 불안을 증폭시키는 소문은 가격 앙등에 기여할 게 틀림없는데, 가격 오르기 전날 주유소에 길게 줄을 잇는 일반인들은 석유에 얽힌 소문의 정황을 알지 못한다. 그저 효율 좋은 자동차라는 위안으로 핸들을 놓지 못하며 불안하기만 하다. 석유정점이 오긴 오는 건지, 이미 지났다는 말도 있는데, 그때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 도무지 종잡지 못한다. 다만 조금 내리다 금세 뛰어오른 경험에 익숙해지면서 석유 가격이 획기적으로 떨어지지 않을 거로 체념할 뿐이다.

 

석유는 사실 난방이나 자동차를 위해 태워 없애기 아까운 자원이다. 의식주는 물론이고 의학을 비롯한 각종 산업에 요긴하게 사용하는 석유는 정점이 지나면서 가격이 급등할 텐데, 우리는 어떤 대안을 모색해야 할까. 집과 직장과 시장과 관공서와 공원 사이가 먼 도시는 자동차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다. 도시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대중교통과 자전거는 대안이 아니고 오토바이는 자동차와 사정이 같다. 전기자동차는 아직 가격이 높고 충전도 쉽지 않다. 수소자동차? 자동차에 넣을 수소를 물을 분해해 얻으려면 수소를 태워 나오는 에너지보다 많은 석유가 들어간다.

 

대부분의 전기는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태워 얻는다. 종류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화석연료는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이산화탄소를 대기에 내놓고 석탄의 경우 적지 않은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한다. 핵발전? 그건 이산화탄소에 비교할 수 없이 끔찍한 핵폐기물을 감당할 수 없게 내보낸다. 한 세대 전기 펑펑 쓰자고 10세대 이상의 후손에게 핵폐기물을 떠맡길 수 없다. 게다가 사용 후 핵연료는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 위험 덩이리다. 전쟁이나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후손을 재앙으로 불안하게 만들 수 없는 노릇이지만, 핵발전이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안도 아니다. 핵연료의 채굴, 정제, 운송을 비롯해, 안전해질 때까지 핵폐기물을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 총량을 감안한다면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의 배출량이 그리 줄어들지 않는다.

 

온실가스도 줄이고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바이오 연료를 제시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떨까. 콩이나 옥수수를 가공한 디젤이나 에탄올을 사용하면 매연이 거의 없다지만 산업농업으로 생산하는 그런 곡물을 연료로 가공하는데 들어가는 석유 에너지를 상정한다면 어처구니없다. 드넓은 농토에 무거운 기계로 씨를 뿌린 뒤 석유를 가공해 생산하는 화학비료와 화학농약을 듬뿍 살포하며 콤바인으로 수확해 트럭과 대형 선박으로 수송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산업농업은 곡물에서 얻는 에너지의 10배의 석유 에너지를 소비한다. 바이오 연료로 가공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바이오 연료로 얻는 에너지에 육박할 정도다. 그뿐인가. 자동차 한 대에 넣을 연료를 위해 200킬로그램의 콩이나 옥수수가 들어가는데, 한 사람이 1년 먹을 양에 달한다. 바이오 연료가 늘어날수록 석유위기와 지구온난화는 심화되고 굶주리는 인구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최근 이산화탄소를 모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 나와 대안에 골치가 아픈 이의 눈을 크게 뜨게 만들었다. 이미 늘어난 대기의 이산화탄소가 아니라 앞으로 굴뚝으로 나올 이산화탄소를 모으겠다는 계획인데, 모은 이산화탄소 처리할 구체적 방법은 아직 없다. 기술 개선으로 이산화탄소를 모으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줄였어도 기껏 모은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날린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미국은 채굴이 끝난 유정에 넣은 뒤 폐쇄하는 방안을 모색하지만, 지진과 같은 사고를 견딜 수 있는 기술의 영구적 완전성을 확신할 수 없어 실행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만일 가스나 메탄올로 합성할 수 있다면? 이산화탄소를 자동차와 난방 연료는 물론 플라스틱으로 가공할 수 있다는 맹랑한 제안이 나왔다는데, 그게 가능할까. 연구비에 목마른 과학자들은 경제성까지 운운하며 물주를 유혹하는 모양이지만, 열역학법칙을 무시한 얼빠진 속임수에 불과하다.

 

이제와 같은 낭비구조를 놔둔 에너지 대책은 불가능하다. 이미 대기에 농축된 430ppm의 온실가스를 350ppm 이하로 줄이지 못한다면 온난화는 계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그렇다면 자동차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도시와 농촌으로 당장 바꿔야 한다. 그런데 반성하지 않는 자가 구상하는 대안은 터무니없게 끔찍하다. 후손의 환경을 담보로 흥청거린 당대부터 희생할 대안을 찾아내야 하는데, 도무지 탐욕을 버리지 않는다. 냉장고를 열어놓는다고 집안이 시원해지는 게 아닌데. (작은책, 2011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