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6. 5. 01:21

 

합의 현장에 있던 처지에서, 참으로 허망하다. 정부기관에 대한 불신은 이제 시대상이 되는 건가. 2005년 7월 6일,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과 ‘광릉숲 보존을 위한 환경단체 연대회의’는 어렵게 끌어온 논란을 마치고 ‘광릉숲 내 국립수목원 유리온실 건립 현안에 대한 민ㆍ관 협의회 합의문’을 작성한 바 있다. 하필 체계적 보전이 요청되는 광릉숲에 세계 최대 규모의 유리온실을 건설하겠다기에 녹색연합, 우이령 보존회,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그리고 환경정의가 연대해서 그 부당성을 지적했고, 오랜 논란 끝에 대안을 합의했건만 환경단체들은 결국 배신당할 모양이다.

 

수목원 측은 훼손된 조림지에 유리온실을 짓겠다고 생색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보전된 생태유산인 광릉숲은 열대식물 관람을 위한 유리온실의 대상지일 수 없었다. 더구나 인근 도시들의 개발 압력으로 안정성이 위협받는 생태계일 뿐 아니라 관통도로를 질주하는 대형 차량으로 거대한 전나무들이 죽어가지 않던가. 그런 판국에 광릉숲 보전을 연구하겠다던 국립수목원에서 숲을 항구적으로 훼손하는 유리온실을 광릉숲 복판에 지어 토종도 아닌 식물을 수집해 전시하겠다니, 도저히 방관할 수 없었다.

 

환경단체들은 생물종 다양성 확보를 위해 열대식물을 수집, 보관, 연구하는 온실의 필요성을 부정한 게 아니었다. 그런 온실을 교육에 활용하는 걸 환영하면서 광릉숲 이외 지역에 유리온실을 신축하자고 제안했고, 논의 끝에 대안을 합의한 것이다. 열대식물 유전자원과 관계될 유리온실은 교육 효과가 높은 지역에 국제 규모로 신축하고 문제의 터에는 1600여 제곱미터로 자생 식물을 연구할 유리온실을 짓돼 일반인의 관람은 제한하기로 했다. 또한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열대식물 유전자원의 보관과 연구를 위해 국제 규모의 유리온실이 완공되기 전까지 광릉숲의 유리온실에 한시적으로 보관하는 건 동의했다.

 

주요 일간지에 보도된 내용은 국립수목원에 대한 신뢰를 되묻게 했다. 산림청장을 비롯해 200여명이 참석한 3834제곱미터의 ‘열대식물자원 연구센터’ 개원식에서 “내년 하반기부터 일반인들에게 유리온실의 관람을 허용하겠다!”고 천명했다는 게 아닌가. 머리 좋은 박사들이 시대를 영특하게 반영했는지, “광릉숲의 역사ㆍ문화적 가치를 존중하여 생태계 보전을 위한 실천계획의 수립을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약속은 시행하지 않고 3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유리온실의 부지도 찾지 않더니, 합의와 달리 면적을 2배 이상 넓힌 유리온실을 관람용으로 개방하려는 태도를 느닷없이 연출한 거다.

 

일반인의 잦은 방문은 연구에 방해될 뿐 아니라 광릉숲의 보전에 역행한다는 걸 동의했던 국립수목원은 언론 앞에서 자신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그것도 공개적으로 허물었다. 이제 광릉숲만 위기를 맞은 게 아니다. 시민들은 정부 연구기관조차 신뢰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경향신문, 2009.6.10)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4. 21. 00:32

 

신록의 계절이다. 벚꽃이 꽃잎을 우수수 떨어뜨린 뒤 느티나무 가로수마다 보드라운 연두색 잎사귀를 선보인다. 이맘때 영동고속도로에서 보는 산기슭은 신록의 향연을 벌이는데, 요즘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울 때라고 생각한다. 한데 자라는 아이들에게 신록은 눈에 띄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리 알려줘도 시큰둥했다. 신록의 다른 이름은 젊음이고, 젊음은 아름답다. 젊은이가 아니라 젊음이 아름다운 거다. 그렇다고 나이듦이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다. 누구나 경륜이 쌓여야 세상사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던가.

 

신록의 세상이 펼쳐지기 전, 그러니까 봄꽃이 만개할 때, 들과 산은 상춘객으로 붐볐다. 지방자치단체는 벚꽃이 만개할 때를 맞춰 축제의 마당을 연다. 서울 여의도는 차도를 개방하고 지하철 막차 시간을 연장해야 할 정도로 인파가 몰리고, 기회를 잡으려는 상인은 가족과 연인들을 얼마나 성가시게 만드는지 모른다. 하지만, 비록 허가 받지 않은 상인일지라도 호객이 지나치지 않다면 대개 양해한다. 그들도 봄을 맞는 생활인이므로.

 

아파트로 빼곡한 인천시 연수구의 한 이면도로를 장식한 가로수에도 벚꽃이 흐드러졌다. 마침 주말이라 가족과 연인 단위의 시민이 운집했는데, 모두들 행복한 표정이다. 오염에 특별히 약한 벚나무는 어떨까. 이면도로에도 교통량이 많아 그런지 오염물질로 시커먼 수피는 상처투성이다. 그래도 꽃은 화려하기 그지없는데,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다. 알았다! 꿀벌이 없었다. 아무리 살펴도 군중 속에 꿀벌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꽃처럼 벚나무 역시 나비나 꿀벌, 그 밖의 곤충이나 새가 꽃가루를 수정시켜야 번식이 가능하이다. 나비는 아직 드물 때고, 꽃가루 수정은 벌처럼 능하지 않다. 꿀을 빠는 새는 흔하지 않고 어떤 곤충도 꿀벌만큼 훌륭하게 꽃가루를 옮기지 못한다. 꽃은 꿀벌을 끌어들이려고 투자를 많았다. 화려한 꽃 안에 꿀을 담고 있다. 바람으로 꽃가루를 수정하는 나무를 보라. 소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꽃이 소문도 없이 피고 지는 그들은 키가 크고 수명도 길지 않던가.

 

우리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아 그렇지, 꿀벌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유럽을 비롯한 북중미 국가들은 이미 3, 4년 전부터 꿀벌이 줄어들었다고 아우성쳤는데, 정도가 덜했을지언정 우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 언론은 아직도 무심한데, 보라. 흐드러진 꽃 주변에 사람만 왁자지껄하지 꽃은 외롭기 그지없지 않은가. 벚나무들은 가을에 버찌를 매달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아파트단지의 녹지를 독차지한 직박구리들이 꿀벌대신 목련과 벚나무 가지를 활발하게 옮겨 다닌다. 참새보다 훨씬 큰 직박구리가 앉자 가지가 휘청거리는데, 직박구리가 많아 보여도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아파트단지 역시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꿀벌은 보이지 않는데, 도시라서 그런 것일까. 작년에도 그랬을까. 산이나 농촌과 떨어져 있어도 한 마리의 꿀벌도 접근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닐 텐데. 저 많은 꽃들의 가루수정은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산은 어떨까. 농촌도 사정이 비슷한 게 아닐까.

 

꿀을 얻어먹지 못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으니 걱정이다. 사람이 가루수분을 하는 건 한계가 있다. 사람이 감당할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이 일일이 수정할 꽃가루의 양이 많을 수 없는 걸 넘어, 문제는 유전자의 다양성이 크게 위축돼 종자의 질이 크게 후퇴할 것이며 그런 상태로 얻을 수 있는 농산물은 크게 줄어들 거라는 사실이다. 당장 대부분의 계절 과일을 먹지 못하는 것을 넘어 생태계에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먹이사슬에 채워져야 할 공간이 갑자기 사라질 테니.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했다던가. 꿀벌이 없으면 사람은 4년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해외 언론은 넘쳐나는 이동전화를 의심했다. 지구를 감싼 전자파가 집으로 돌아오는 꿀벌을 방해한다는 연구가 있다는 거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꿀벌이 왜 최근에,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사라지겠는가. 그게 사실이라면, 꿀을 잔뜩 채워놓고 찾아오지 않는 벌통을 바라보아야하는 양봉업자는 시민들에게 이동전화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할 수 있고, 시민들은 그 부탁을 귀담아 들어줄 것인가. 이동전화 제조회사와 이동통신회사들은 사업을 축소하려 할까. 그럴 리 없다. 인과관계가 명확해질 때까지 광고도 줄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과관계는 분명히 밝힐 수 있을까. 그 또한 확신하기 어렵다. 이제까지 경험을 미루어, 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반드시 중립적이거나 돈 앞에서 독립적일 거라 믿을 수 없다.

 

다행이라 해야 하나. 이동전화 중계소가 없는 지역과 전자파로 뒤덮인 곳을 비교했더니 이동전화와 큰 관련이 없는 연구가 나왔다고 한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의심하는 연구와 종자에 방사능을 조사하는 것이 원인이라는 주장도 대두된다. 그렇다고 논란이 종료된 건 아니다. 영향을 검증한 연구 못지않게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결과도 나왔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도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그 해결방법은 매우 어렵다. 온난화 때문이라면 꿀벌이 서서히 줄어야 하고, 더운 지방의 꿀벌로 교체되는 현상이 나타나야 하는데, 아니었다. 역시 가장 강력한 원인은 농약으로 드러났지만 농약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꿀벌이 사라지는 정확한 이유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원인을 알아야 대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걱정에 걱정을 더한 연구자와 양봉가들은 자연스럽지 않은 양봉문화와 더불어 획일적인 농산물 재배관행에 심각한 원인이 있다는 걸 최근 밝혀냈다. 결국 욕심이 문제를 일으킨 건데, 안일하기만 한 우리나라에서 연구한 건 아니다. 가장 많은 꿀을 가장 빨리 모으는 벌을 가장 대규모로 키우고 분양하면서 큰돈을 남보다 더 벌어들일 수 있도록 양봉방식과 벌을 획일화시킨 것이 문제를 일으켰으며,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벌을 한군데 모아 키우다보니 천적인 응애가 창궐하거나 미생물에 쉽게 감염되는데 그때마다 농약과 항생제로 해결해 면역이 아주 약해졌다는 거다. 근본을 살피지 않고 벌통부터 새로 구입하는 양봉산업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결론이었다.

 

자연에서 이 꽃 저 꽃을 찾아다니고, 경쟁을 통과한 여왕벌이 여러 수컷과 교배를 한 후 낳은 꿀벌은 질병이나 천적으로 피해를 보더라도 이내 회복되었지만 아몬드와 같이 단작에 의존하는 농장을 찾아다니던 벌통의 꿀벌은 속절없이 죽어갔다는데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유전적 다양성을 상실한 농작물은 어떤 해는 풍작이지만 어떤 해는 망친다.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약한 탓인데 그런 농작물은 지구온난화에 무방비일 수밖에 없다. 이제 꿀벌마저 그리 되었다는 것이다. 꿀벌이 없으니 결실이 없을 내일이 불안한데, 우리는 시방 너무 조용하다. (작은책, 2009년 6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6. 12. 24. 11:40
 


남자들의 잡담 중에 여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것은 군대와 축구 이야기라 한다. 그러니 군대에서 축구하던 이야기는 더 말해 무엇하랴. 지금 군대에서 축구하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운동을 줄기지도 않지만 운동하며 몸이 부딪히는 걸 질색하는 까닭에 군대에서 축구하던 이야기는 꺼낼 일이 없다. 남들 다 챙기는 비망록도 거절한 처지에 군대 이야기도 별 흥미가 없다. 그런데도 군대 얘기를 굳이 꺼내야겠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위해.

 

군의학교에서 위생병 교육을 마치고 배속된 곳은 어느 전방 포병대대. 배 아프다며 찾아온 이등병을 꾀병이라며 무섭게 몰아붙이던 선임하사는 붉은 소독약을 배에 쓱 발라주더니 훈련장으로 내쫓았다. 그 선임하사는 의무대 점호를 마치자마자 취사장에 가서 라면을 끓여오라고 다짜고짜 나를 내보낸다. 나간 김에 김치도 받아오란다. 자대에 막 배치된 새파란 졸병이 어떻게 라면을 끓여온담. 고참 취사병을 무슨 수로 깨운담. 밖에서 한참을 서성였고, 주번사령에게 들킬 것을 염려한 선임하사는 라면과 나를 포기해야 했다. 그때부터 영락없는 고문관이었지만 먼지 묻은 영자타자기를 능숙하게 다루면서 나에 대한 대우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다.

 

체격, 용모, 학력, 취미, 출신들이 가장 뒤죽박죽된 젊은이의 집단이 군대일 것이다. 그래서 병사들의 개성은 아주 다양하다. 졸병 하나는 광이 나지 않던 내 군화를 두어 번 문질러 번쩍거리게 했다. 지방에서 장사했다는 그 병사가 아니었다면 소대원의 주말 외출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야심한 시각에 소주에 닭도리탕까지 챙겨오는 병사, 난로에나 들어갈 각목을 이러 저리 켜고 잘라 신발장을 만드는 병사, 플라스틱 막걸리 병에 라면을 넣고 스프레이 모기약에 불붙여 끓이는 병사도 보았다. 개성들이 뒤섞였으므로 군대는 유사시 위기상황을 잘 극복하리라.

 

후배는 제 경험담을 재미있게 풀어 놓는다. 군대 이야기는 아니니 안심하시라. 어찌하여 집에 들어온 요크셔테리어는 귀여움을 독차지했는데 새끼를 가지면서 골치 아파졌다는 것이다. 첫 번 배는 일찍 사산했고, 이번이 두 번째라며 이야기를 잇는다. 사람의 의료수가보다 비쌌지만 아이들 성화 때문에 겨우 한 마리를 제왕절개로 받았는데, 산후 비용까지 부담하자니 약이 오르더란다. 실밥 뽑으러 오라던 날, 수술부위를 들여다보니 잘 아물었고, 돈을 절약할 요량으로 직접 집도하기로 했다. 손톱깎이로 실밥을 잘라 한 올씩 뽑아냈는데 마지막 실밥을 제거하려는 순간, 배가 좍 갈라지더니 내장이 쏟아지는 게 아닌가. 작은 돈 아끼려다 거액을 날렸다는, 재미있다기보다 서글픈 경험담이다.

 

어떤 개는 젖꼭지의 수보다 많은 새끼를 낳기도 하는데 요크셔테리어는 왜 한두 마리 임신하는데 그치고, 제왕절개를 택해야 할까. 극도로 품종개량한 까닭에 면역이 약하고, 본성에서 멀어진 만큼 임신출산이 부자연스럽다고 후배는 수의사처럼 말한다. 요크셔테리어가 그럴진대, 요즘 인기 있는 ‘티컵 강아지’는 어떨까. 와이셔츠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강아지의 특징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 써야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감기에 위험하다 하니 찬바람을 조심해야 하고 사료도 특별해야 할 것이다.

 

오드아이 고양이가 있다. 분홍과 파란 홍채를 나눠 가진 고양이로, 사람 중에도 오드아이가 있다. 청주에 사는 한 여고생은 오드아이다. 그 학생의 부모는 정상이라는데, 파란 렌즈를 낀 것으로 선도 선생님이 오해한 적도 있다고 한다. 사람에게 오드아이가 발생할 확률은 어느 정도일까. 4800만 인구 중 한 명이지만 얼마 전까지 그 존재를 전혀 몰랐으니 더 낮을지 모른다. 오드아이 고양이의 확률도 비슷할 것인데 오드아이 고양이가 사람보다 흔하다. 오드아이끼리 교배시켜 고양이의 수를 늘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우연히 오드아이 고양이를 발견했다고 치자. 한 가지의 유전자에 의해 발현될 가능성이 높은 오드아이는 분명히 유전적으로 열성일 텐데, 그 고양이로 돈을 벌고 싶다면 그는 품종개량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먼저 오드아이를 정상 개체와 계속 교배시킨다. 그러면 정상 눈을 가진 새끼를 잔뜩 얻게 되는데, 새끼 고양이들은 오드아이 열성 유전자를 하나 가진다. 이번엔 열성 유전자를 가진 정상 고양이를 키워 그들끼리 집중 교배시킨다. 그러면 네 마리 중에 한 마리 비율로 오드아이를 가진 새끼 고양이가 태어날 것이다. 이제 거의 다 됐다. 마지막으로 오드아이끼리 반복 교배시킨다. 그러면 오드아이를 원하는 만큼 얻어내 비싸게 팔 수 있다. 근친교배로 얻은 오드아이 고양이들은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하다. 까다로운 사육조건도 세계적으로 유사할 것이다.

 

다윈은 불독을 육종하는 현장을 방문한다. 사육사는 한 배에서 태어난 수많은 새끼 중 마음에 드는 개체만을 키워 교배시키는 작업을 반복했다. 다윈은 물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새끼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그 질문에 간단히 “셀렉션!”하고 대답한 사육사는 벽을 가리켰는데, 벽에는 목매달아 죽이는 둥근 철사가 줄지어 있었다. 불독을 품종개량하는 과정에서 그런 선택과 도태를 거친다면 자연에도 마찬가지 과정이 있을 터.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진화는 자연선택에 의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할 수 있을 때까지, 다시 말해 새끼를 낳을 때까지, 또는 그 이후까지, 자연에서 생존하는 개체의 비율은 얼마 되지 않지만, 육종할 때처럼 태어나자마자 무자비하게 죽는 건 아니다. 도태 과정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우연성이 적지 않게 작용한다. 생태계의 상호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자연, 다시 말해 생태계는 복잡할 뿐 아니라 때때로 변화무쌍하다. 다행히 암수가 짝을 짓는 유성생식은 다양한 유전자를 갖는 새끼들을 태어나게 하니, 변화무쌍한 생태계에 대처할 능력을 가진 개체를 남길 수 있다. 사람처럼 한 명을 잉태하건 두꺼비처럼 수천 개의 알을 낳건, 마찬가지다. 다음 세대의 유전자가 다양한 만큼 생김새나 환경 적응력은 다양하다. 우연과 필연의 혹독한 적응 과정을 요구하는 자연, 즉 환경은 다양한 유전적 개성 중 자신에 적응한 개체를 선택한다. 환경이 충분한 세월 동안 일정하면 그 환경에 적응된 유전자형이 선택되어 특정 생물종이 진화하고, 환경이 변화하면 자연선택의 험로를 반복하며 생물종이 새로 진화하거나 사라질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진화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개체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이다. 현 환경에 적응된 개체들은 바뀐 환경에 거의 불리하다.

 

이번에는 개체가 아니라 생물종 단위로 생각해보자. 유전적 개성이 다양한 개체들로 구성된 생물종은 변화무쌍한 환경에 유리하다. 살아남는 행운을 가진 개체가 있을 테니까. 생태계에 자생하는 생물종들이 대개 그렇다. 당시 생물종의 95퍼센트가 멸종된 6500만 년 전과 같은 격렬한 환경변화가 아니라면 앞으로도 그럭저럭 존재를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유전적 개성이 생물종 내에 축적된 덕분이다. 한데 농부들에 의해 육종된 가축은 환경변화에 약하다. 축적된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부는 가축의 특성, 즉 개성에 맞게 관리해야 한다.

 

대부분의 애완동물과 가축은 품종개량되어 생김새나 유전자가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사람이 세심하게 관리해야 특유한 품종이 보전되지만, 그렇다고 찬바람이나 유행병 정도의 환경변화로 몰살되는 경우는 드물다. 기상이변으로 적지 않은 개체가 희생되더라도 금방 회복된다. 자연스런 교배로 태어나는 가축은 유전적 다양성을 어느 정도 축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당의 닭은 사시사철 흙을 비집으며 돌아다닌다. 옛 문헌에도 나오는 구제역이 돼지나 소를 떼로 죽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개체는 조금 앓다 회복되거나 모르고 지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요즘 닭들은 병이 돌 때마다 떼로 죽는가. 요즘 돼지나 소는 구제역이 돌면 왜 일제히 죽어 널브러지는가.

 

요즘 가축들은 소비자의 최종 목적에 맞춰 유전적 개성이 세분화되었다. 일상의 환경변화로 쉽게 도태되지 않았던 전통의 가축은 이제 찾기 어렵다. 거듭된 근친교배로 유전적 다양성을 잃어버린 개체로 교체된 것이다. 과학기술이 그 과정을 견인했다. 오드아이 고양이를 세상에 내놓듯 전문가들이 상품성 있는 품종을 육종해 특허를 출원한 것이다. 물론 연구비는 자본이나 기업을 지원하는 정부가 제공했고, 연구자는 그들의 이익에 충성한다. 이른바 ‘과학축산’이다. 채택하는 자에게 큰돈을 벌게 해준다고 속삭이는 과학축산은 자본과 친할 뿐, 개개의 농부는 대상에서 제외한다. 유전적으로 단순한 개체는 엄격한 환경 투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특정 목적에 부합하는 가축은 유전자가 단순한 만큼 성장 과정과 생산을 예측할 수 있다. 과학축산의 특징이다. 과학축산을 받아들인 업계는 다양성을 간직하는 전통 방식을 폐기해야 한다. 과학축산이 지시하는 대로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조절할 수 있는 축사에 가축을 가두어 지정된 사료를 먹여야 한다. 가축의 본성도 철저히 억제해야 한다. 심지어 교배시키는 번거로움도 버렸다. 대신 유전적으로 동일한 새끼들을 한목에 공급받는다. 과학축산은 동종업계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다. 남보다 많은 이익을 빨리 뽑아내기 위해 발육단계가 일정한 개체들을 닦달한다. 좁은 공간에 밀집시킨 가축에게 적은 사료를 주면서도 병 없이 금방 살찌게 하려고 항생제와 성장호르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른바 ‘공장축산’이다. 효율을 숭상하는 공장은 예측 가능해야 경쟁력을 발휘한다. 다양성은 금물이다. 정 맞는다.

 

공장축산은 소비가 뒷받침되어야 존재 가능하다. 사위 와야 씨암탉 잡고, 모내기 끝나야 도야지 잡는 풍토는 곤란하다. 도살도 공장에서 책임진다. 위생설비 갖춘 공장에서 부위 별로 선별 포장해 규격을 맞춰 판매한다. 돌돌 말린 불고기용과 넓게 썬 스테이크용 쇠고기를 대형 식품매장에서 구입하는 소비자는 식재료를 보고 공장축산의 실체를 감지하지 못한다. 사육 35일 만에 다리가 묶여 자동 포장되는 병아리는 병아리가 아니다. 복중에 집중 소비될 삼계탕 재료일 따름이다. 낙농제품이나 육가공식품도 마찬가지다. 개도 그렇게 하잔다. 축산자본은 때 맞춰 현란한 광고를 내보내고 시민들은 전에 없던 질병에 시달린다. 그러자 생명공학이 질병 치료를 선언한다.


 

 

인체에 감염될 수 있다는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연거푸 발생돼 방역당국은 지쳐버렸다. 23번 국도 또는 중국에서 날아온 철새가 조류독감을 전파했다고 추측하던데, 왜 철새들은 떼로 죽지 않을까. 유전적 다양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발생농장에서 반경 3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가금류를 일제히 살처분한 당국은 주변 방역에 만전을 기할 것이다. 이미 100만 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를 살처분했다는데, 살처분의 실체는 무엇일까. 누구를 위한 행정 조치일까.

 

우리나라에서 살처분은 아직 낯설다. 공장축산이 도입된 지 오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우병으로 혼이 난 유럽은 영국을 중심으로 수십 만 마리에 달하는 소를 일제히 살처분했고, 구제역이 돌자 발생 지역 인근의 양을 모조리 살처분해야 했다. 우리도 경험했다. 2002년 구제역이 발생한 경기도 안성시 일원에서 수만 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한 사례가 있다. 살처분은 죽인다는 의미를 가진 건조한 행정용어다. 당국은 많은 가축을 한꺼번에 고통 없이 죽여 지하수가 오염되지 않게 위생매립한다면서 텔레비전 화면을 시청자에게 보여주는데, 시민단체의 생각은 다르다. 고통 없이 죽이기는커녕 산채로 매립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2년 살처분된 돼지는 상당수 생매장됐다. 공포에 질려 버둥대는 돼지들을 굴삭기 삽날로 찍어 죽이며 파묻었다.

 

피로에 지친 실무자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밀폐된 계사에 이산화탄소를 불어넣은 후 실내온도를 섭씨 41도로 상승시켜 안락사시키고, 죽은 가금류를 부대에 담아 위생매립한다는 교범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단다. 손해를 더 감당할 수 없는 업자는 보일러를 가동을 꺼리고, 이산화탄소는 구멍 숭숭 뚫린(제대로 밀폐되었다면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계사를 빠져나가 가금류들이 죽지 않더라는 것이다. 구석으로 몰아 날갯죽지를 움켜쥔 억센 팔은 살아있는 가금을 부대에 처박았고, 삐악 소리가 나는 부대들을 그냥 매장했다는 것이다. 하긴, 안락사가 가축에 대한 선행은 아니다. 가축이 불쌍하다기보다 죽이는 사람을 위안하고자 안락사를 선택하는 건지 모른다.

 

그 엄청난 가금을 안락사시키면 상황 끝인가. 살처분된 대부분의 어린 생명들은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조류독감이 돈다고 모두 감염돼 죽는 건 아닐 텐데. 죽은 닭 사이를 겅중겅중 뛰는 놈도 더러 있다. 유전적 다양성이 더욱 비참해지더라도 살아난 개체를 활용해 조류독감에 강한 품종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살처분은 기회를 봉쇄한다. 당국은 감염 확산을 줄이려는 고육책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확실한 살처분이 대내외로 공인돼야 수출입 자본과 가공식품 업계는 그 지역의 닭을 나중에라도 외면하지 않을 게 아닌가. 돈을 아끼려거나 가축의 죽음에 가슴 아파 살처분을 주저한다면 그 일원의 공장축산은 망하고 만다. 관련 자본과 정부는 끓여먹으면 괜찮다는 광고와 고위 공직자의 닭고기 만찬 장면을 거듭 방영하고, 잠시 위축되었던 과학축산과 공장축산은 가동을 멈추지 않는다.

 

뼛조각이 발견돼 되돌아간 미국산 쇠고기에서 기준치 이상의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사료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해명을 요구했다니 곧 알려질 테이지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어째 심상치 않다. 광우병의 원인을 제공하는 뼈가 검출되면 안된다는 합의조건에 따라 미국으로 돌려보낸 것은 당연한데, 이번엔 재경부와 외교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게 아닌가. 그들이 언제부터 소비자를 생각했는지 “국내 축산 농가의 소득 보호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의 권리도 중요하다”며 생색내는 재경부의 고위 공직자는 이내 본색을 드러낸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다루는데 이성적이고 냉정한 접근”을 요구하면서 “국민 건강을 볼모로 국제 사회에서 통하지 않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다. 때를 같이해, 생후 30개월 이하의 미국산 소를 도살한 쇠고기의 수입을 강행한 농림부는 문제의 쇠고기를 모두 반송했으므로 소비자 안전에 문제가 없다며 불을 끄는 기민함을 보였다. 농림부보다 재경부나 외무부의 힘이 강할 것이다.

 

생후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도 불안해하는 일본 소비자단체는 21개월 소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자국의 예를 상기하며 한국의 무모한 조치에 아연실색하는데, 생후 20개월이나 30개월 된 소는 덩치가 큰 송아지에 가깝다. 어린 소를 대량으로 먹어도 괜찮은 것일까. 하지만 아무도 도살된 어린 소에 조의를 표하지 않는다. 자국 비육우를 고도로 품종개량한 미국의 과학축산은 유전자 조작한 콩과 옥수수는 물론 성장호르몬도 주입했고 동물성 사료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몸무게가 장하다. 미 당국은 뼈와 뇌를 사료에서 제외했다고 주장하지만 내장과 같은 도축장의 부산물이 뼈와 섞여 사료로 가공되는 현장을 국내의 한 언론인은 확인해 공개했다. 광우병이 발생한 목장에서 쇠고기를 수입하는 우리 정부는 미국 측 주장을 근거로 죽은 소의 치아 마모 정도가 8년생 이상이라고 되뇌지만, 소비자단체의 견해는 다르다. 젖니일 가능성도 있건만 전문가들이 인정하지 않는 치아 마모 상태로 나이를 판정하려는 터무니없는 태도가 수상하다는 것이다. 농림부는 왜 현지 조사 보고서를 여태 공개하지 않을까.

 

재경부와 외무부의 으름장에 농림부가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에서, 광우병이 불거지자 불고기 파티로 대응한 김대중 정권과 당시의 내각이 생각난다. 당시 방송에 나온 정부의 한 실무자는 “살코기는 괜찮다!”, “끓어먹으면 된다! 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광우병으로 숨진 소비자 중 영국인이 특히 많았던 이유는 당시 농업장관의 허위사실 유포에 근거한다. 자국 쇠고기를 기피하는 시민을 향해 4살배기 딸을 대동한 장관이 “영국산 쇠고기는 안전합니다!” 라고 텔레비전 이벤트를 결행한 이후 대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재경부는 “소비자 안전을 빌미로 삼지 말”고 뼛조각 들어간 미국산 쇠고기 수입하라고 막무가내다. 빌미라니. 뼛조각이 들어가면 안된다는 건 세계의 상식이거늘 이 땅의 재경부는 어느 땅의 소속인가. 동물성 사료를 먼저 주기 시작한 영국은 단지 30개월이 넘었다는 이유로 멀쩡한 소를 죽여 소각하느라 국가의 재정이 휘청했는데, 자국 소비자가 광우병으로 쓰러져도 대대적으로 살처분하지 않은 미국은 자국의 자본 이익에 그처럼 각별한데, 한국 소비자의 건강을 얼마나 눈여겨볼까. 재경부를 비롯한 정부는 답해야 한다.


 

 

미국식 생활을 글로벌 표준으로 단정하는 정부는 우리에게 한미FTA를 받아들이라고 성화다. 가축을 비롯한 생물종은 점점 획일화되는데 환경변화는 종잡을 수 없다. 미국식 생활을 선진이라 치부하는 인간의 획일적이며 거침없는 개발로 생태계가 단순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양성이라는 완충장치를 잃었다. 우리의 삶과 언어와 의식마저 획일화가 강요되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자본이 지휘하는 획일주의, 그 획일주의를 숭배하는 과학기술은 언제까지 인간만의 안락한 삶을 보장할 수 있을까. 거대한 축사와 같은 인큐베이터는 예측 불가능하게 변화되는 환경 하에서 속수무책일 경우가 더 많은데.

 

살처분은 유전자가 단순한 가축에 한정되는 게 아니다. 부메랑으로 작용할 살처분은 결국 인간 자신의 내일을 살처분하는 것이다. 예측 가능한 사육은 과학축산의 전유가 아니다. 기업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려는 교육은 아니 그런가. 유치원까지 내려간 선행학습은 가축의 속성사육과 무엇이 다른가. 아직 인간의 품종개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좋은 유전자를 획일적으로 치환하겠다는 생명공학에 대한 환호는 우생학을 섬뜩하게 예고한다. 개성을 무시하면 서열이 득세할 텐데.

 

조류독감은 중국의 철새가 옮긴, 단순한 현상일 수 없다. 생태계를 획일적으로 재단한 우리가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그 까짓 동물 죽이는 게 대수인가. 대수다. 동물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면 인간의 생명도 결국 가벼워진다. 우리는 현 환경에 적응돼 있는데 환경은 요사이 무섭게 변한다. 이런 추세로 50년이 지나면 현존하는 생물종의 3분의1이 사라질 것으로 생태학자들은 경고한다. 획일화를 추구하는 과학이 환경변화에 대한 우리의 적응력을 위태롭게 하는데, 뚝배기에 쏙 들어가는 닭을 35일 만에 생산하는 과학축산은 젖소의 유방을 몸무게의 8분의1로 확대하려할 뿐, 살처분을 조금도 애처로워하지 않는다. 내일을 살처분하는 획일주의가 몹시 두렵다. (녹색평론, 2007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