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9. 11. 18. 21:50

 

올 김장은 언제 담글 거라고 아내는 일찌감치 못박아놓았다. 해마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하기만 했다. 마무리 된 뒤 집에 들어와 겉절이를 맛보았는데, 올해는 시간을 진작 알려준 거였다. 지금 이 시간에 장모와 아내, 그리고 작년에 이어 막내아들이 분주하다. 절인배추에 양념한 김치소를 비벼넣는다. 내년 초여름까지 밥상을 포기김치가 알차게 장식할 것이다.


내심 마음 단단히 먹었어도 이번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시간을 비어두려고 지나치게 무리했나보다. 기존 일정에 추가로 새벽 약속이 연이틀, 마다하지 않았더니 그만 감기몸살이 왔다. 하필 김장 전 날. 못 이기는 양, 또는 자청하며 앞장서던 23차를 굳이 마다하고서 몸을 덜덜 떨며 이른 시간 집에 도착했지만 준비 과정부터 외면해야 했다. 들어서자마자 이불 속에 들어간 나를 아내는 오전이 다 가도록 깨우지 않았다. 마침 집에 온 큰아들이 힘 들어가는 일을 후다닥 처리해놓고 나갔고 막내아들이 40포기에 들어갈 김치소를 손쉽게 버무린 모양이다. 마감 앞둔 원고를 쓰는 이 시간, 아내는 간간히 잔심부름만 부탁하면서 김장을 마무리한다.


아이 둘이 대학을 들어간 이후 수능에 도무지 관심을 두지 못한다. 아니 아이들이 어떻게 대학에 입학했는지 조차 잘 모른다. 다만 표창장 없이 입학하고 졸업 또는 자퇴한 이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미더웠다. 과정에서 다가오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대견할 따름인데, 그건 또래 남편들이 대개 그렇다. 그런 남편들은 김장김치를 맛있게 먹을 뿐 조합을 이루는 재료의 오묘함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짐작할 생각도 한 적 없을 게 분명하다.


지면이나 강의에서 우리와 세계의 다채로운 음식문화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처지에서 정작 1년 중의 큰 대사인 김장에 참여하지 못한 이중인격을 올해는 모면하려했지만 늦었다. 아예 방해되는 존재로 취급되어도 잔심부름하면서 눈동냥을 했다. 김장에 소외되어도 나름 성과가 있었다. 말과 글로 쉽게 표현해온 농민과 어민의 땀방울이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 김장김치에 우리 농민과 어민의 땀이 버무려진다. 100여 가지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는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재배한 것일까? 생산에 관계한 농민은 얼마나 될까?


무채와 고춧가루만이 아니다. , 마늘, 새우젓과 굴, 그리고 더 들어갔다. 매실청, 배즙, 더 무엇이 있었는데 조금 전 일이지만 기억이 어렵다. 채로 썰기에 충분한 크기로 재배한 무는 두툼한 배추와 더불어 유기농산물이다. 어릴 적 김장은 어느 이웃이 생산했는지 아는 농작물을 구입해서 담았지만 지금은 생활협동조합이 연결해준다. 누가 어떻게 재배했는지 몰라도 생활협동조합을 신뢰하기에 구입한 무와 절인배추는 건강한 땅에서 봄부터 흘린 땀이 배었을 것이다. 새우젓과 굴도 새벽에 출항한 어민의 억센 손에 담긴 마음이 오롯하게 어렸겠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양념과 젓갈이 빚어내는 맛도 다양하다. 인천 앞바다가 제 모습을 간직하던 1960년대, 담벼락 높이로 쌓아놓은 배추를 절여놓고 이웃이 모여 김장을 담글 때 우리 꼬맹이들은 그저 축제였다. 어른들도 같은 마음이기에 분주해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을 그 시절 인천, 지금과 달랐다. 토막을 낸 어린 갈치를 갖은 양념과 더불어 버무린 김치소를 사용했다. 김치 사이에 드러나는 졸깃한 갈치의 맛은 지금도 뇌리를 자극하지만, 요사이 고급이 된 갈치는 갯벌이 사라진 인천에서 알현하기 어렵다.


요리를 욕망하다에서 마이클 폴란은 발효식품을 이야기하면서 김치를 예로 들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마이클 폴란의 글은 언제나 생생하고 진정성이 감동으로 전달되는데, 경기도 남쪽 도시에서, 100여 가지 김치는 손맛이라는 이현희 씨의 말에 받은 무한한 감동으로 책을 마무리했다. 손맛? 처음 통역이 전한 그 말뜻이 아리송했지만, 손맛은 사랑의 맛이라는 의미를 마음 깊이 되새긴 것이다.


어릴 적 커다란 배추 200포기 이상 담았던 김장은 요즘 20포기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 담은 40포기 김장의 일부는 장모가, 더 조금은 큰애가 가지고 가고 나머지는 5개월 가까이 우리 식탁을 든든하게 지켜줄 것이다. 큰일을 마친 아내는 내가 원고를 마칠 즈음, 편안해진 마음으로 겉절이를 내놓겠지. 큰맘으로 준비한 관현악 정기공연을 마친 지휘자의 마음이 그렇겠지. 갯벌을 매립해 화려하게 망가뜨린 인천이지만 여전히 펼친 올해의 음식문화 종합예술, 김장김치 담기를 마무리한 시간, 이 아름다운 전통이 내내 이어질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지금여기, 2019.11.18.)

 
 
 

도시·인천

디딤돌 2011. 9. 13. 20:53

 

인천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친구의 초대로 땅값 비싼 강남을 갔다. 그는 어릴 적 먹던 음식을 내주는 식당으로 안내했고 예약 없이 자리 잡기 어렵다는 그 식당에서 내놓은 생굴과 박대구이와 꽃게탕을 만났다. 그런데 그것 참. 인천 여느 식당보다 형편없이 작은 양을 내놓으면서 신선한 편도 아니면서 가격이 두 배를 훌쩍 넘는 게 아닌가. 서울에서 모처럼 만난 고향의 음식을 연실 상찬하던 친구에게 꼭 인천으로 오라고 초대해야 했다. 훨씬 신선하면서 맛이 빼어날 뿐더러 가격이 절반에 불과한 식당에서 고향의 맛에 푹 젖어보라고.

 

인천이 고향인 친구가 아니라도 좋다. 먼 곳에서 찾아온 친지에게 인천시민은 어떤 음식을 내놓는 게 좋을까. 덕적도 인근의 갯바위에서 챙 넓은 모자를 눌러쓴 아낙들이 태양을 등지고 앉아 하루 종일 캐내는 굴, 우리가 석화라고 말하는 생굴부터 맛보라고 권해야 할 것 같다. 남도의 커다랗지만 물컹한 생굴과 차원이 다른 맛에 취하기 시작하겠지. 4월이면 주꾸미, 5월이면 밴댕이 구이나 무침, 6월이 지나면 병어를 감자와 쪄서 내놓으면 좋겠다. 언제나 준비되는 꾸덕꾸덕 말린 박대구이도 기막힐 테고 밥 대신 바지락 죽이나 국수를 내놓는다면 한 끼 식사로 그만일 터. 물텀벙이 찜이나 탕을 권한다면 뭐라 말할까.

 

물텀벙이? 그게 뭐지?”하고 물을 텐데, 그냥 아귀라고 알려주면 재미가 없다. 인천 이외 지방에서 흔히 아구탕또는 아구찜이라고 하는 음식은 물텀벙이 요리처럼 아귀를 재료로 사용한다. 하지만 바다에서 풍부한 물산을 사시사철 건져올렸던 인천은 그물에 걸린 아귀를 재수 없다며 버렸다. 그때마다 바닷물 속으로 텀벙 텀벙들어가는 아귀를 인천의 어부들은 물텀벙이라 했고, 그걸 찜이나 탕으로 요리했으니 물텀벙이찜이나 물텀벙이탕이라 말하는 건 아주 자연스럽다. 그런 인천 앞바다 이야기까지 전해야 흔해빠진 아귀찜이나 탕을 먹을 때보다 정취가 한층 오를 거다.

 

바지락은 반지락이다. 경상도에서 국수를 국시라 하듯, 남도의 자존심 가진 어부는 아직도 바지락을 반지락이라 부른다. 국시는 경상도에서 먹어야 맛이 나듯 남도의 바닷가에 가면 반지락 칼국수를 먹어야 풍미를 느낄 텐데, 바지락이나 아귀는 우리 서남해안 어디에든 잘 잡히고. 관련 음식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맛은 지역의 문화와 어우러질 때 더욱 정겹다. 전주비빔밥은 전주에서 먹어야 제맛이듯, 충무김밥과 자리물회도 충무와 제주도에 가서 먹을 때 풍미가 얹어질 게 틀림없다. 그러므로 물텀벙이찜과 탕은 인천에서, 석화도 인천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한데, 인천시민들은 그 절절한 사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드디어 자장면에서 해방되었다고 반기는 짜장면은 전국 어느 곳에 가도 맛이 비슷하지만 선린동 차이나타운에 가야 더욱 당길 것 같은데, 그건 사람들이 짜장면이 바로 그곳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쫄면1970년대 인천 인현동의 맛나당에서 명칭이 시작되었다는데, 맛나당이 지금 어딘가에 있나? 수 킬로미터 이상 줄을 서는 이른바 자장면 축제기간의 선린동 차이나타운처럼 성황을 이루는 장면을 인현동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건, 젊은이에게 그토록 인기가 있는 쫄면이 어느 식당에서 시작되었는지 우리 사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알리려 노력한 이가 인천에 없었다는 걸 웅변한다.

 

전국으로 성황리에 퍼진 짜장면과 쫄면과 달리, 물텀벙이는 자신의 이름을 전국으로 알리는데 무슨 연유로 실패한 걸까. 용현동의 물텀벙이 골목이 성황인 걸로 보아 맛이 없을 리 없다. 남도의 반지락과 경상도의 국시가 바지락과 국수에 밀려 제한된 곳에 명맥을 유지하듯, 별 의미를 담지 않은 아귀찜과 탕에 밀린 탓이다. 경합을 벌이던 반지락이 밀렸다면 물텀벙이는 아예 경합하려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맛깔스런 인천의 문화를 세상에 알리기보다 그저 갯벌을 매립하며 개발하기 바빴던 인천의 아쉬운 자화상이다. 생굴은 알아도 석화를 모르는 이가 인천에도 많다. 밴댕이로 무치는 회무침의 고소한 맛은 알아도 이듬해 봄에 먹는 강화 순무김치 속의 밴댕이 맛은 인천시민들도 대부분 모른다. 김장김치 속의 갈치 토막을 겨우내 골라먹던 맛을 기억하는 인천시민, 몇이나 될까?

 

작은 참조기로 담그는 젓갈을 황석어젓이라 말하는데, 인천에서 잡는 해산물을 주로 내놓는 어느 식당에 가니 황석어찜을 내놓았다. 젓갈과 전혀 딴판이고 맛도 그만이라 기회가 닿으면 손님을 모시고 간다. ‘조기찜과 맛도 모양도 다르니 눈이 휘둥그레진 손님은 황석어가 참조기와 같다는 걸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 다른 지역의 식당에도 같은 식단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밴댕이 회무침과 구이처럼 인천다운 맛을 안내하는데 황석어찜이 하등의 지장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물텀벙이 요리와 석화, 그밖에 인천의 여러 음식문화를 짜장면처럼 세상에 알리면 어떨까. 문화의식과 역량을 지금보다 높인다면 어렵지 않을 텐데.

 

학자들은 넓은 의미에서 삶의 방식을 문화라고 말한다. 음식문화가 그 가운데 하나로, 갯벌로 둘러싸인 인천은 채취하는 어패류가 많듯 음식문화도 다양했을 게 분명한데, 갯벌이 거의 사라진 현재, 시민마저 인천의 음식문화를 잘 모른다. 관심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반증하는데, 개발 피로가 만연된 회색도시 인천도 이제 달라질 필요가 충분하다. 번듯한 건물과 규모가 큰 공장, 휘황찬란한 쇼핑센터와 속도가 빠른 아스팔트에서 시민들은 문화를 찾지 못한다. 제 지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삶에서 시민들은 비로소 문화를 느끼고 지역에 뿌리내리고 싶어진다.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와 지역 문화를 안내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길 것이다. 이제 가을이다. 시와 시민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많이 늦은 일을 이제라도 챙겨야 한다. (인천in, 2011.9.13)

 

어릴 적 김장김치속의 밴댕이가 기억나는군요.
요즘 김장할 때 밴댕이를 넣는걸 본 적이 없습니다.
황석어젓..저는 황새기젓으로 기억합니다 ^^*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1. 3. 23:49

 

최근 몇 년 동안 어김없이 닥쳤던 기상이변이 올해는 두드러지지 않았고 계절의 변화도 제법 뚜렷했다. 덕분에 들판은 대풍을 맞았다. 오로지 우리의 주곡인 쌀이 그렇다는 건데 농민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쌀 소비량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풍작은 쌀값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작년의 재고가 아직까지 남은 상태에서 정부의 수매량이 진작 제한돼 있는 마당인데, 벌써부터 쌀값 폭락의 기미가 돌지 않던가. 일부 농민들은 벼가 익은 들판을 트랙터로 갈아엎거나 도시에 나락을 들고 나와 눈물로 대책을 호소한다.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쌀을 과자로 가공하거나 막걸리를 빚어 소비해야 농민이 재배한 쌀이 높은 가격으로 팔려나갈 텐데, 수입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런 판국에 우리 쌀을 선뜻 가공식품으로 수매할 수 없는 노릇인 모양이다. 쌀로 라면을 만든다 해도 소비가 획기적으로 늘어나는 건 아니다. 참다못한 일각의 경제 결정론자들은 남아돌면 가격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으니 생산을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우리나라에서 “쌀은 단순한 상품이기보다 생명의 기반”이라는 농민들의 절규를 잠시 외면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자. 남아돈다고 현재 고민하지만, 우리나라의 쌀은 기후온난화 이후에도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을까.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는 최소 2개월 분량의 곡식을 보관해야 한다고 권고하는데, 지금 전국의 창고에 쌓인 쌀은 기상이변으로 내년에 흉작이 와도 충분히 버틸 정도일까.

 

어떤 이는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면 식물의 탄소동화작용이 더 활발해져 식량이 증산될 가능성을 점치지만 순진한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와 탄소동화작용의 관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상승한 기온으로 식물의 활동이 저하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병해충의 증가와 강수량의 감소는 식물의 생산량을 크게 줄일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얼마 전 호주의 연구진은 지구온난화로 고유 동물 1700여 종이 멸종할 수 있다고 밝혔다는데, 호주의 고유 야생동물만이 위기를 맞는 건 아니다. 우리 산천의 야생동물도 예외일 수 없으며 다양성을 잃은 농작물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사람은 제 밥상부터 걱정할 게 뻔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밥상은 안전할까.

 

영국의 한 연구팀은 햇빛을 많이 반사하는 농작물을 재배하면 지구온난화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발표했다고 올해 초 한 언론이 재미있다는 듯 보도했다. 밀이나 사탕수수와 같은 농작물 중에서 잎의 번들거림이 심한 품종을 심는다면 기온을 대략 섭씨 1도 정도 낮출 수 있어 더위와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그만큼 예방할 수 있다고 영국의 연구자는 주장하는 모양이다. 햇빛을 반사하면서 소기의 농작물까지 얻을 수 있는 환경 친화적 농작물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큰 비용 없이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는데, 좀 황당하게 들린다. 그에 반해 우리의 대책은 영국의 연구자보다 실질적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주요 작물의 생육과 병충해 발생을 평가하고 과일나무의 생산성과 품질의 영향을 사전에 검토하며 가뭄과 홍수에 대한 취약성을 다각도로 조사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겠다는 거다.

 

우리 정부의 대책에서 눈에 띄는 건 농지는 물론이고 녹지도 보전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대목이다. 2005년을 기준으로 국립산림과학원이 녹지의 경제적 가치를 산출한 적 있다. 수자원 함유 측면에서 17조5456억 원, 대기 정화 측면에서 13조4276억 원, 토사 유출 방지 측면에서 12조4348억 원, 산림 정화 측면에서 6조487억 원으로, 이와 같은 산림의 공익적 가치를 모두 합하면 물경 65조90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작물의 광합성 작용에 의한 식량 생산, 깨끗한 물 공급, 산소 제공, 온도 조절, 온실가스 흡수 등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며 논의 가치를 새삼 강조한 연구자는 “국가 차원의 식량안보와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농지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연구자의 발표와 관계없이 우리 농토는 각종 개발로 잠식되기만 한다.

 

지구온난화 시대에 우리 밥상을 지키려는 일이 이렇듯 힘에 겹다. 결국 소비자인 시민이 앞장서야 할 텐데, 우리의 음식문화를 능동적으로 보전하는 행동에서 비롯해야 하지 않을까. 생산자도 물론이지만 소비자들도 석유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덜 들어가는 유기농업으로 제철에 생산한 제 고장 농작물을 구입해서 먹으려는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 우리 고유의 조리방법으로 음식을 만드는 거다. 우리의 땅과 환경과 생태계에 가장 어울리는 음식문화를 스스로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우리 음식의 장점을 다시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밥은 물에 끓여서 먹지만 많은 반찬은 농작물을 날 것 그대로 씻거나 데쳐서 먹는다. 에너지는 물론 영양분 파괴도 최소화하는 조리 방법이다. 영양분의 흡수를 극대화시키는 발효도 빼놓을 수 없다. 김치와 깍두기도 마찬가지지만 바다에서 건지는 수많은 젓갈도 발효시켜 먹는 고유의 음식이다. 된장과 고추장은 자체로 빼어난 전통 발효식품이 아니던가. 어쩌다 기름에 부쳐서 먹는 경우는 있어도 기름에 통째로 빠뜨려 튀기는 조리법은 우리 음식문화에 거의 없었다.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몰려 살아도 우리나라 가구에 들어가는 평균 식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작고 영양이 충실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자부해왔다.

 

전통의 두레처럼 우리의 농사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짓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으며 사람과 가축의 똥을 땅에 돌려주는 순환농업에 의존하므로 에너지를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그뿐인가. 식단의 대부분이 태양 에너지가 가장 먼저 집적된 농산물, 다시 말해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채식이었다. 단백질은 주로 콩으로 섭취했고 육식은 바다나 강에서 잡아 올린 물고기 위주였다. 특별한 날이 되어야 먹는 가축의 고기는 생태계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얻었다. 방죽에서 풀을 먹이거나 외양간에서 짚이나 콩깍지를 푹 삶은 여물을 주며 소를 키웠고 식구가 남긴 음식을 활용해 돼지와 닭과 개를 먹였던 거다. 석유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 농사와 식생활이 빚은 우리의 음식문화는 전통적으로 지구온난화와 아무 관계가 없었다.

 

우리의 최근 식량 사정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사라지는 면적만큼 농토가 새로 확충하지 않건만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우리의 인구는 시방 무섭게 먹어댄다. 제철은 그만두고, 제 땅에서 수확하는 농작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대부분 막대한 석유를 소비하며 생산한 농산물과 그 가공식품이며, 그런 농산물을 사료로 먹여 키운 가축의 고기와 우유와 그 가공식품이다. 그런 농축산물과 가공식품은 대부분 먼 거리를 이동하는 거대한 외국 배에 실려 도시의 넓은 식품매장에 부려지고, 밝은 조명 아래 화려하게 진열된다. 그 만큼 지구온난화에 역행하고, 그 대가로 돈과 농토가 모자라는 지역의 인구들은 굶주린다. 반면 넘치는 지역의 인구는 지나치게 먹어 찐 살을 빼려고 거액의 돈과 에너지를 퍼붓는다. 그 정도의 에너지와 돈이면 지구촌의 모든 굶주림을 막을 정도다. 개발에 집착하는 일부 지역 인구들의 몰염치한 석유 낭비가 빚은 지독한 역설이다.

 

대안은 이 땅의 조상이 늘 그랬던, 밥의 자연스러움이다. 지구온난화를 최대로 막을 수 있게 도와줄 뿐 아니라 지나친 육식으로 생기는 성인병을 예방하고 퇴행성 질환을 진정시키는 제철 제 고장 농작물과 밥상이다. 자연스런 밥상을 기후변화 시대의 대안으로 적극 추천하면서 아울러 세계에서 유일하게 취사와 난방을 겸하는 우리의 부뚜막을 새삼스레 생각해본다. 그리고 절제다. 추우면 있는 옷 더 껴입고, 내 땅에서 생산된 농작물을 조금은 모자라게 먹는다면 어떤 복잡한 대책보다 기후를 안정시키거나 지구온난화를 지체시키는데 도움이 클 게 틀림없다. 낭비가 부른 군살도 절로 빠질 게다. (사이언스올, 2009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