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10. 12. 01:10

 

음식쓰레기라. 불경하게도 음식을 쓰레기라 말하다니, 조상님이 들으시면 경을 칠 일이다. 밭에서 뽑은 농작물로 필요한 음식을 그때그때 준비했던 조상에게 음식쓰레기라는 말은 당치 않았다. 남은 음식을 부뚜막에 잠시 보관하던 조상은 99방울의 농부 땀이 스민 쌀 한 톨과 푸성귀 한 잎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건만, 농작물의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부엌과 냉장고가 커진 만큼 비만이 늘어난 요즘은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2009년 기준으로 전국에서 하루에 14천 톤의 음식쓰레기가 발생하고, 그 처리를 위해 연간 8천 억 원의 세금이 동원된다고 환경부는 최근 부리나케 발표했다.

 

14천 톤의 음식쓰레기는 가정에서 배출되는 걸까. 음식쓰레기의 가구 별 종량제를 준비하는 환경부는 발생량 20퍼센트를 줄여 1600억 원의 예산 절감 효과를 기대하면서 생뚱맞게 음식쓰레기 감소 덕분에 사회와 경제적 이익이 5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그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여태 위기의식을 보이지 않던 환경부가 5조 원의 이익을 내세우면서까지 음식쓰레기 발생을 줄이려 갑자기 나선 건 2013년부터 바다에 음식쓰레기를 버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때를 같이해 주부들에게 종량제 동참을 종용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음식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리고 있다. 쓰레기매립장에서 받아주지 않으니 처리 못한 음식쓰레기가 거리에 방치돼 악취와 위생상의 문제 뿐 아니라 걷잡을 수 없는 민원을 유발할 수 있는 까닭일 게다.

 

1992년 폐기물과 기타 물질의 투기에 의한 해양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런던협약에 가입한 우리나라는 1994년부터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의무의 이행을 대외적으로 약속했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음식쓰레기와 축산오폐수를 아직도 버리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국제적인 비난을 자초해왔는데,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걸까. 20063월 정부는 축산 오폐수는 2012년부터, 음식쓰레기는 2013년부터 바다에 버리지 않도록 하는 해양환경관리법 시행규칙의 입법을 예고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5년 동안 관련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며 세월을 보내던 정부가 내년부터 투기 단속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해마다 국민 한 사람에 100킬로그램에 해당하는 쓰레기를 안일하게 버리던 축산업자와 지방정부는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은 양, 허둥대고 있다.

 

주부에게 음식쓰레기 감량을 홍보하기 위해 요사이 인천시의 여성단체에서 배포한 자료는 음식물류 폐기물로 버려지는 식량 자원의 가치가 2005년 기준으로 18조 원에 달하고, 2009년 인천시에 감당한 처리비용이 262억 원에 이른다고 귀띔한다. 2011년 기준으로 다시 조사하면 20조 원에 가까울지 모르는데, 그 모든 음식쓰레기가 가정에서 나오는 걸까. 전국 인구의 대략 20분의1인 인천에서 262억 원이면 처리하는 음식쓰레기의 경제적 가치가 전국적으로 20조 원이라니.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경제적 가치를 계산하는 방식을 제시하지 않은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그저 주부들을 닦달하지만, 가정 이외에서 발생하는 음식쓰레기가 오히려 많은 게 아닐까. 가정보다 예식장이나 장례식장과 같은 집단 급식시설, 집단 급식 시설보다 식품회사에서 버리는 음식쓰레기가 훨씬 많지 않을까.

 

정부는 음식쓰레기 발생을 줄이면 지구온난화현상을 그만큼 완화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그 책임을 식구들의 건강을 염려해 좋은 음식을 장만하려 애쓰다 음식을 조금 남기는 주부가 몽땅 떠맡아야 하나. 대부분의 주부는 남기는 음식을 바로 버리지 않고 냉장고에 보관한다. 크고 작은 식품회사처럼 생산 과정에서 막대하게 발생하는 쓰레기를 막무가내로 버리지 않는다. 지구온난화를 보아도 그렇다.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하는 육류와 그런 육류의 수입을 자제하는 편이 음식쓰레기 발생 감소로 완화되는 정도를 크게 초월한다. 대규모 선박이나 비행기로 수출입하는 과정에 상당한 석유를 소비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운송용 석유는 육류의 생산에 들어가는 석유에 비하면 차라리 애교에 불과하다.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하는 쇠고기의 경우, 고기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곡물사료 16킬로그램을 먹여야 한다. 고기로 한 사람이 배부르면 15명이 더 먹을 수 있는 곡물이 사라진다는 의미가 되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사료로 가공되는 옥수수나 콩을 보자. 그런 곡물은 석유를 가공해 얻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뿌리며 거대한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으면 파종에서 재배, 수확에서 운송이 아예 불가능하다. 옥수수에서 100칼로리의 열량을 확보하려면 석유 1000칼로리를 퍼부어야 하므로 생각해보라. 수입 육류가 차지하는 지구온난화의 기여도는 얼마나 되겠는가. 수입 곡식보다 높을 것이고 우리 가정에서 배출되는 음식쓰레기보다 현저하게 높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런 육류와 곡물을 가공한 식품을 수입한다면 가격과 무관하게 그 식품이 기여하는 지구온난화의 정도가 무척 높을 텐데, 그런 식품은 대개 정부의 허가를 받은 자본이 수입한다. 주부들의 의지와 거의 무관하다.

 

식구와 밥상에서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버린다는 건 분명히 불경한 노릇이므로 가정도 음식쓰레기를 줄이는 게 당연히 낫다. 부득이한 일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주부들은 평소 음식쓰레기의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지만 그래도 줄일 여지가 있다면 줄이는 게 좋다. 냉장고의 크기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면 음식쓰레기는 줄어든다. 남기지 않을 만큼 음식을 준비할 테고. 식재료도 필요 이상 사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농작물도 음식이다. 농사를 짓는다면 좋겠지만 도시에서 거의 불가능할 테니 논외로 치고, 근처에 텃밭이 있다면 음식쓰레기는 그만큼 줄어든다. 가공 과정에서 배출되는 쓰레기가 적다. 농작물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도 줄고 운송 거리가 줄어드는 만큼 온실가스 배출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정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솔선수범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알뜰살뜰한 주부를 닦달하기 전에 기왕에 배출된 음식쓰레기를 사료로 가공하거나 바이오연료에 이은 유기질 퇴비로 활용할 수 있는 분명한 기술을 내놓아야 옳다. 그래야 음식쓰레기를 줄이려는 주부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 이전에 정부는 제철 제고장 음식으로 자급할 수 있는 여건의 회복에 전력을 다해야 할 뿐 아니라 육류를 포함한 가공식품의 수입을 가시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음식쓰레기와 축산 폐기물의 해양투기 단속보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행정이 아닐 수 없다. 그와 같은 일련의 노력 없이 그저 주부에게 음식쓰레기 줄이기를 요구하는 태도는 주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몰염치한 행정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다. (인천in, 2011.1011)

공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8. 7. 00:27

 

서양인, 특히 미국인들은 우리나라 젊은이의 체형을 부러워한다고 한다. 늘씬한 8등신이라기보다 몸에 군살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그를 위해 밥을 덜 먹거나 피트니스클럽에 등록해 꾸준히 운동하는 이가 적지 않지만 그건 서구의 여느 나라도 마찬가지다. 왜 한국인은 서양인보다 날씬한 편일까. 음식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굶주림에 지친 어린이가 불룩 튀어나온 배를 부여잡고 쓰러져 죽어가는 지역의 시각으로 지독한 역설이지만 서구의 많은 국가에서 비만이 가난의 상징으로 바뀐 지 오래 되었다. 피트니스클럽에 등록하거나 다이어트에 돌입할 시간과 돈이 없기 때문이기 이전에 눈과 코를 자극하는 저렴한 음식이 지천에 널려있는 까닭일 텐데, 가난한 이에게 비만을 일으키는 요인은 음식의 양보다 질과 관련이 있다. 먹는 이와 땅의 건강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재배하는지, 무슨 가축을 어떻게 사육해 어떤 방식으로 가공했는지 전혀 모르는 음식에 도덕은 깃들 틈이 없다. 이웃과 나누는 ‘밥’이라기보다 요란한 광고를 앞세우고 나 몰라라 파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량에 양심은 대체로 절연되었다.

 

어느 한쪽에선 차려낸 음식의 40퍼센트 정도를 버리고 어느 한쪽은 한 국자의 음식도 접시에 나눌 수 없는 지구촌의 현실은 식량에 얽힌 역설을 발판으로 한다.

 

 

1. 지역을 떠난 식량

 

평화(平和)는 공평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사람은 예로부터 자신이 속한 마을에서 재배하는 농산물로 밥을 지어 먹었다.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가져오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나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제 마을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농산물을 즐겨 먹는 자는 그렇지 못한 자에 비해 지위가 우월하다. 농사는 이웃과 함께 땀 흘리며 상부상조하며 짓는다. 마을에서 함께 농사지은 이웃이 서로 나누는 농작물은 갈등을 일으킬 리 없지만 먼 마을의 낯선 농산물은 그렇지 않다. 재배하는 데 누구의 노력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알 수 없는 농산물은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다.

 

1) 지역에 따라 다양한 식량

 

가공식품에 익숙해진 요즘, 농작물이 식량의 원천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사람이 농작물을 재배한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사람은 진화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대부분의 세월을 자연에서 먹을거리를 사냥하거나 수집해 해결했다. 경작이 지금부터 대략 1만 5백 년 전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다이아몬드(2005)는 무수한 식물과 동물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사람의 울타리 안에서 재배하거나 사육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나머지는 길들이기 대단히 어려웠다는 거다.

 

오래 전 아프리카를 떠난 사람은 요즘 하와이와 이스터 섬까지 퍼졌지만 대부분 농사를 지어 식량을 구한다. 지역에 따라 독특한 농산물이 없지 않지만 재배하는 종류는 엇비슷한데 겉보기 같아도 지역에 따라 품종의 차이는 있다. 지역에 따라 쌀과 콩의 종류가 다르고 소와 돼지 품종이 다르다. 선조에게 물려받은 종자의 품종, 그리고 경작과 사육 기술을 환경에 맞게 개량하면서 다채로워진 결과다. 일반적으로 다른 지역의 농작물을 맛볼 기회가 거의 없는 사람들은 지역의 식량에 만족했을 것이다.

 

해마다 비슷한 수확을 기대하지만 어쩌다 뜻하지 않은 흉작이 오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이웃과 식량을 나눠 해결했을 테지만 식솔이 늘거나 수확량이 줄어든다면 마을의 이웃 일부가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 떠났을 것이다. 그런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마을은 늘 자급자족했고 이웃의 식성도 대체로 비슷했을 것이다. 한데 높은 산이나 넓은 강, 바다로 분리된 지역은 환경이 사뭇 다르다. 따라서 재배하거나 사육하는 농작물과 가축의 종류가 다를 수 있다. 재배하는 농작물이 다른 산마을과 들마을과 갯마을도 식성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 형성된 식성은 문화가 되었는데, 문화는 차이일 뿐 우열일 수 없다.

 

2) 식량의 상품화

 

옥수수의 원산지인 멕시코에서 주민의 오랜 주식은 또르띨라다. 옥수수를 갈아 반죽해 둥글게 펴서 화덕에 구은 또르띨라에 취향에 따라 으깬 풋고추나 양파나 토마토를 얹고 말아 먹거나 여유가 있다면 볶은 고기를 넣기도 한다. 가축을 사육하고 옥수수와 각종 채소를 재배하는 농부라면 식구의 밥상을 차리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거의 없을 것이다. 화덕은 물려받았고 땔감은 주변에서 구할 테니 식구 수에 맞게 그릇 몇 가지만 구하면 충분했다.

 

1990년 미국과 캐나다와 멕시코 사이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산 옥수수가 물밀듯 들어오면서 값싼 또르띨라가 조리하는 수고를 덜자 주민들은 화덕을 버리는데 그치지 않은 것이다. 싫든 좋든 화폐 경제권으로 편입된 것인데, 일단 편입되자 돈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자급자족할 때 요긴했던 정도의 돈으로 쪼들릴 수밖에 없는 농민은 돈벌이를 위한 농작물을 ‘상품’으로, 다시 말해 ‘농산품’으로 심어야했고 그것도 모자라면 더 많은 돈을 위해 미국의 공장이 몰려 있는 국경도시로 옮겨야 했다.

 

멕시코에 제한된 사정일 리 없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여러 차례 추진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도시의 공장에 농민을 보내야 했듯, 어느 나라나 산업사회 초기에는 농촌의 인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었다. 이른바 향도이촌(向都移村)이다. 정부는 노동자가 된 농민이 낮은 임금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농산품의 가격을 통제했고, 젊은이가 대거 빠져나간 농촌은 농촌대로 돈벌이를 위해 상품가치가 높은 농산품을 집중 재배하게 되었다. 그런 농업은 경쟁을 부추겼고 경쟁은 이웃과 지역을 넘어 국가 사이로 번졌다.

 

청송군과 영양군의 고추는 순창군과 경쟁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중국에서 값싸게 들어오는 고추와 생존권을 놓고 경쟁한다. 가공식품은 더하다. 영국이 수입하는 치즈는 영국에서 수출하는 치즈와 경쟁한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쇠고기는 미국산만이 아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들어오지만 캐나다의 쇠고기도 한우와 경쟁을 선언하고 있다. 다른 나라도 엇비슷한 사정이다. 농수축산물이 경쟁 상품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이익은 생산자나 소비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대부분 기업과 관련 자본에 돌아간다(보베 외, 2002).

 

 

2. 다양성을 잃은 농업

 

추석이면 굳이 승용차로 꽉 막힌 고속도로를 뚫고 고향에 다녀오는 이가 있다. 귀경길에 나설 때마다 부모는 트렁크에 하나 가득 수확한 한해 농작물을 가지가지 실어준다는 게 아닌가. 가격이 얼마 되지 않아도 자식들에 대한 부모님의 애틋한 정성을 몸으로 느낄 뿐 아니라 그 농작물로 밥 지어 먹을 때마다 고향 땅의 정취에 흠뻑 젖을 수 있다고 그는 고마워한다. 돈벌이를 위해 한두 가지 농산품만 심는 농촌이라면 언감생심 생각할 수 없는 호강이 아닐 수 없다.

 

1) 씨앗 주권이 사라지다

 

멀지 않은 과거, 적어도 농부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갈무리해둔 씨앗은 절대 먹지 않았지만 더 많은 수확을 보장한다는 씨앗을 종묘상에서 일괄 구입하는 요즘, 사정이 달라졌다. 수확한 농산품을 전량 시장에 내놓아야 하고 그렇게 하여 벌어들인 돈을 쥐고 끼니때마다 슈퍼마켓 식품 코너를 기웃거려야 한다. 내 땅에서 내가 농사지은 ‘농작물’은 팔아야 할 ‘농산품’이므로 먹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 거다. 농촌은 시방 늙었다. 여러 농산물을 재배하기 벅찬 농촌에서 ‘환금작물’, 다시 말해 돈이 될 농산품만 한둘 심는 일은 이제 이상스럽지 않다. 이른바 ‘소품종 다량생산’의 ‘단작’이다.

 

한 농산품만 재배하면 생태계가 단순해져 환경변화에 대한 완충력이 줄어든다. 홍수와 가뭄 피해는 물론, 해충의 피해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식물이 몰려있으니 해충은 급속히 늘어나는데 해충을 구제하는 천적이 없으니 상품가치를 잃고 싶지 않은 농부는 살충제로 해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단일 작물이 요구하는 영양분이 금방 부족해지니 농부는 비료를 뿌려야하는데 그 비료는 잡초까지 불러들인다. 살충제의 편의에 익숙해진 농부는 제초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환금작물의 씨앗은 자급자족할 때 뿌렸던 씨앗과 여러모로 다르다. 종묘상에게 구입해야 하는 씨앗은 다수확에 맞게 육종한 까닭에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좁다. 따라서 다수확을 기대하려면 씨앗이 요구하는 조건을 잘 맞춰야 한다. 맞지 않으면 수확이 보잘것없게 된다. 마을의 어른에게 물어 재배해도 소용없다. 종자회사에서 권고하는 매뉴얼을 참조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매뉴얼대로 농사지어도 실패했을 경우 종묘상이나 종자회사에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경제 논리로 보아, 수확량이 늘면 시장에서 가격은 떨어진다. 내 수확량이 늘어나는 대신 다른 농부는 형편없어야 큰돈을 차지할 텐데, 그러려면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 투자가 절실하게 된다는 거다.

 

1960년대 초 세상에 등장한 녹색혁명은 단작을 세계화했다. 다양한 씨앗을 여기저기 심던 농촌은 녹색혁명 품종의 씨앗에 맞게 농토를 획일적으로 다듬었고 씨앗이 요구하는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를 적기에 적량 살포해야하는 농부는 관개농업에 의존하게 되었다. 가격이 떨어지는 걸 막고 싶은 농부는 농산품을 구입하는 정부 또는 상인의 권고에 따라 재배 면적을 줄여야 했고 지역에 따라 농산품의 종류를제한하게 되었다. 이른바 ‘비교우위 농업’이 권장된 것이다.

 

비교우위 농업은 지역을 넘어 국가 단위로 넓어졌다. 고추와 마늘 주산지가 감자와 배추 주산지와 일치하지 않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옥수수와 콩은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옥수수와 콩만이 아니다. 어느새 우리나라는 식량의 4분의3을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대신 멀쩡한 농토에 공장을 지어 외화를 벌어들인다. 우리만이 아니다. 국제미작연구소가 있을 정도로 쌀농사의 적지인 필리핀도 농토에 공장을 지었다. 그런데 벌어들이는 외화보다 국제 곡물의 수입 부담이 크자 식량 위기가 심화되었고 사회혼란을 피할 수 없었다(벨로, 2010).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에 기대 자국의 식량기지를 없앤 혹독한 대가를 치룬 것인데, 국제 농산품 재고가 모자라는 시기가 온다면 우리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녹색혁명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화학농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땅이 황폐화된 것이다. 이제 농부는 감산을 피하기 위해 농약과 비료를 뿌린다. 그러자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기업이 감언이설로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특정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농산물이므로 그 제초제를 뿌려도 끄떡없을 것이니 제초제로 잡초를 모두 죽인 농토에서 우리가 개발한 콩과 유채와 같은 농산품을 심으라고 세계의 농부들을 유혹하고 나선 것이다. 살충 효과를 가진 유전자조작 면화나 옥수수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씨앗은 오래지 않아 부작용을 드러냈다. 씨앗에 포함된 조작된 유전자가 주위의 엉뚱한 식물로 옮겨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사료로 먹는 가축이나 심지어 사람에게 예측 못한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김은진, 2009).

 

이제 다수확 품종을 심는 농촌은 씨앗을 갈무리할 필요가 없다. 아니 하면 안 된다. 계약 위반이므로 적발되면 적지 않은 벌금을 물어야 한다. 종자기업이 통폐합되면서 농부는 그 나라 농촌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계 기업의 씨앗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주권을 잃은 것이다.

 

2) 다국적기업 등장

 

비교우위 농업은 다국적기업의 전횡을 낳았다. 막대하게 수확한 농산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팔 수 없는 농부는 결국 다국적기업에 넘기게 되고, 다국적기업은 농산품의 국제교역에 주도권을 차지하고 말았다. 그들이 농산품의 구입과 판매 시의 가격을 통제하는 만큼, 생산자나 소비자는 다국적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다국적기업들은 서로 경쟁한다. 통폐합해 규모를 키우는 다국적기업은 농산품 생산과 가공, 운송에 적극 개입할 뿐 아니라 관련 산업을 수직 계열화했다. 농산품과 사료, 축산과 육가공을 지배하는데 그치지 않고 국제 교역에 주도권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다국적기업에 좌지우지되는 국제 곡물은 이제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 상품이 소비자에게 인도되기도 전에 대금을 주고받는 선물거래는 소문에 민감하다. 수출국의 흉작 소식은 재고와 관계없이 가격을 치솟게 만드는 것이다.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국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오른 가격으로 식량을 구입해야 한다. 외화가 부족하다면 폭동을 감당해야 할지 모르는데, 투자자의 이익에 우선해야 하는 다국적기업은 생산자와 소비자, 외화가 없어 굶주리는 지역의 사정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3) 공장식 축산업의 등장

 

다수확 품종을 집중 재배하면서 남아도는 농산품을 사료로 가공하면서 축산업이 거대하게 변했다. 방목하던 목장은 거의 사라지고, 그 자리를 공장식 축산업이 차지한 것이다. 공장식 축산도 가축을 다수확 품종으로 획일화시켰다. 소, 돼지, 양, 닭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좁아지고, 그 만큼 사육 환경이 획일화되었다. 이제 모든 가축은 예측 가능한 시간 내에 몸집이 어느 이상 늘어나야 한다. 그를 위해 유전자조작 옥수수와 콩을 가공한 사료를 먹이며 성장호르몬을 주입한다. 그래야 어려도 덩치가 커지는 가축을 빨리 도살해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좁은 사육장에 유전자가 단순한 가축을 밀집시켜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에 질병이 창궐하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다. 따라서 항생제를 사전에 처방하는 농부는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 상처를 입히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서로 쪼지 못하도록 병아리의 뾰족한 부리를 진작 뭉툭하게 자르거나 서로 물어뜯지 못하도록 돼지의 꼬리를 잘라내는 것이다. 그렇듯, 공장식 축산에서 가축의 생명은 종중되지 않고 오로지 상품으로 취급될 따름이다.

 

가축들은 습성에 맞지 않는 사료에 의존하면서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지만 그 전에 도살할 테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문제는 인수공통 질병이 인간에게 만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류독감을 비롯해 구제역과 수족구병 만이 아니다. 영국에서 시작돼 세계를 긴장시키는 광우병도 공장식 축산이 원인을 제공했다.

 

4) 문화를 잃은 식량

 

요즘 돼지고기는 세계가 똑같다. 미국산 삼겹살이 우리 삼겹살과 맛이 같다. 품종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계란도 우유도 마찬가지고 쇠고기와 닭고기도 그렇다. 농산품만이 아니다. 그 가공식품도 세계가 똑같다. 식재료와 식단 뿐 아니라 조리방법까지 세계가 공통인 까닭에 다국적기업이 공급하는 패스트푸드는 물론이다. 식성의 세계화라기보다 음식에 깃든 문화마저 상품으로 획일화된 것이다.

 

슈퍼마켓에 전시된 수많은 가공식품의 상표는 제각각이지만 재료는 엇비슷하다. 쇠고기는 옥수수의 가공식품이고 계란과 소시지도 마찬가지라고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마이클 폴란(2008)은 주장한다. 그 뿐이 아니다. 설탕을 대신하는 당분으로 옥수수가 가공돼 음료수에 들어간 이후, 비만 인구가 세계적으로 급증했다. 옥수수 덕분에 값싼 육류가 흔해지고 칼로리가 높은 음료수를 거푸 마시면서 여유가 없는 계층의 몸이 불어난 것이다. 이제 서구사회에서 비만은 가난의 상징이 되었다. 식량에 칼로리는 지나치게 높지만 필수 영양소가 부족하게 되면서 성인병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소아비만과 소아당뇨병도 전에 없이 늘었다.

 

 

3. 황폐화된 식량 환경

 

최근 미국과 유럽은 꿀벌이 사라진다고 아우성이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그리 밝지 않다. 꿀벌이 사라지면 사람은 많은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 어쩌면 생존이 어려워질 수 있다. 꿀벌의 집단이 붕괴하는 현상은 사람의 욕심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많은 꿀을 빨리 모으는 품종을 양봉농가에 집중 보급한 결과,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좁아진 꿀벌은 면역력이 떨어지고 환경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벌통 관리에 애를 먹는 양봉농가가 애벌레에 알을 낳는 응애의 공격을 차단하고자 살충제를 뿌렸건만 살충제가 오히려 꿀벌을 공격하게 되었는데 피해는 거기에서 그친 게 아니다. 가루수정을 위해 꿀벌을 필요로 하는 아몬드 농업이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대하게 밀집되면서 꿀벌 집단 붕괴 현상이 커진 것으로 제이콥슨(2009)은 주장한다. 많은 아몬드를 빨리 여는 나무를 넓은 면적에 획일적으로 심자 꽃이 피는 2주일 동안 미국은 물론 유럽의 꿀벌까지 총동원해야 했는데, 그때 질병을 공유한 벌들이 가루수정을 마치고 다시 퍼져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수입하는 세계 아몬드 수요의 80퍼센트를 캘리포니아에서 떠맡고 있다.

 

1) 전용되는 식량기지

 

우리 정부는 농토 확보 명분으로 매립한 새만금 일원의 갯벌을 다시 도시로 개발하려고 한다. 개발로 사라지는 농토를 대신하겠다던 그 갯벌은 수많은 어패류의 산란장일 뿐 아니라 자연스런 식량보고였지만 대부분 사라졌다. 칼로리와 영양분은 물론이고 가격으로 볼 때 육지의 어떤 농토보다 경제적 가치가 높지만 한시적 개발 이익을 위해 선조가 물려준 갯벌을 매립하고 만 것이다. 막대한 플랑크톤의 탄소동화작용으로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지구온난화를 예방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상승된 해수면을 타고 넘어오는 파고를 완충하는 조간대를 우리는 당대에 잃었다. 후손의 생명은 그만큼 위협받을 것이다.

 

바다와 같던 중국의 황하가 갈수기에 마르는 것은 농토를 도시와 공업단지로 전용하면서 강물을 돌렸기 때문이다. 어디 황하 만이랴. 식량기지를 개발하는 곳은 우리나라와 중국뿐이 아니다. 이제 화학농업의 한계가 드러나는데 세계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다. 앞으로 늘어난 세계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할지 걱정스러운 상황에서 외채에 시달리는 국가는 기존 농토에 헐값으로 수출되는 화훼작물이나 기호식품을 재배한다.

 

2) 석유위기 앞의 농업

 

지금은 석유 농업이다. 화학비료는 물론이고 살충제와 제초제도 석유를 가공해 만든다. 기계화된 현대농업은 석유 없이 파종, 경작, 수확, 건조, 운반이 불가능하다. 1000칼로리의 옥수수를 수확하려면 그 10배의 석유를 쏟아야 하고, 그렇게 재배한 옥수수를 10킬로그램 먹여야 쇠고기 1킬로그램을 겨우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고기로 배불리면 그 10배의 옥수수를 소비하는 셈이고 다시 그 10배의 석유를 낭비하는 꼴이다.

 

최근 석유위기를 극복하려는 수단의 일환으로 바이오연료를 공급하려는 정책이 지구촌의 일각에서 섣불리 추진되고 있다. 옥수수나 사탕수수로 디젤과 에탄올을 정제하겠다는 건데, 그를 위해 소비되는 석유는 둘째 치고, 자동차 한 대에 주유하는데 들어가는 에탄올은 한 사람이 1년 소비할 곡물을 가공해야 한다고 환경운동가는 주장한다(마슬린, 2010: 141). 지구온난화를 대비해 도시에 ‘농장건물’을 짓겠다는 사람도 있다. 에너지 효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LED와 태양빛을 실내로 끌어들여 농산품을 수경재배하겠다는 계획이 그것이다(경향신문, 2009.7.1). 뉴욕 맨해튼에서 경제성 있다는 농장빌딩을 우리나라에 추진하고 있는데 과연 타당할까. 제안자는 30층 높이의 건물을 짓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도 물론이고 수경재배를 위해 들어가는 화학물질도 에너지 투입 없이 공급될 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땅에 뿌리 내리지 않은 농산품이 먹는 이에게 장차 안전할지 함부로 짐작할 수 없다.

 

3) 식품 첨가물의 확산

 

다국적기업의 거대한 화물선에 실려 오대양과 육대주를 장시간 누벼야하는 농산품은 중간에 상하면 상품가치를 잃는다. 따라서 수확 후 농약 살포는 필수적이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공장식으로 밀집시켜 사육하는 가축처럼 바다나 호수에서 양식하는 어류도 항생제와 호르몬을 비롯한 많은 화학약품을 투여한다. 또한 한 번 가공하면 오래 유통시켜야 하는 가공식품은 맛과 색이 변하지 않은 상태로 상품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수많은 화학약품을 첨가하고 세계 곳곳에 지점을 확보한 패스트푸드 역시 동일한 맛과 향을 유지하려고 합성 첨가물을 넣는다.

 

넨시 드빌(2008)은 “슈퍼마켓이 우리를 죽인다!”고 경고하고 안병준(2005)은 “아이에게 과자 대신 차라리 담배를 주는 게 낫다.”고 어처구니없어 한다. 아토피는 오염된 대기만 원인이 아니다. 우리 몸의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식품 속의 첨가물과 무관하지 않다. 한 사람이 평생 320킬로그램을 섭취한다고 야마모토 히로토(2006)가 주장하는 화학물질이 그것이다.

 

4) 음식 쓰레기, 해양오염, 그리고 남획

 

늘어나는 음식 쓰레기는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바다에 버려 해양오염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데, 어장의 물고기들이 허겁지겁 버리는 그 쓰레기를 먹기도 한다. 결국 우리 식탁에 오를 물고기들이다. 미국은 음식 쓰레기가 전체 쓰레기의 40퍼센트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미국이나 우리나 단지 유통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건드리지 않은 멀쩡한 식품이 쓰레기로 둔갑하기도 한다. 버리는 식품으로 굶주리는 세계의 인구를 충분히 먹일 수 있는 양이다.

 

남획으로 인한 해양어류의 고갈은 양식업의 규모를 키우고 있으나 그로 인한 해안의 파괴는 쓰나미의 피해를 키울 뿐 아니라 어족자원 보전에도 역행한다. 많은 양식장이 어패류의 산란장을 파괴하고 들어서는데, 항생제에 찌들거나 세균에 감염된 오폐수가 걷잡을 수 없게 배출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와 캐나다 일원의 생명공학 연구소에서 비정상적으로 덩치를 키운 유전자조작 어류의 양식을 연구하고 있다. 만일 그런 어류가 양식장을 빠져나가 조작된 유전자를 퍼뜨릴 경우 어떤 생태적 피해가 확산될까. 사전에 그 규모를 파악할 수 없을 뿐더러 대책을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5)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

 

지난 100년 동안 섭씨 0.7도 정도 상승한 지구촌의 기온은 태풍과 허리케인의 강도와 횟수를 늘렸고 경작지를 메마르게 했을 뿐 아니라 사막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세계 평균보다 정도가 심해 1.4도 높아진 우리나라의 해역은 이미 아열대화 되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보라문어와 같은 난대성 어류가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명태와 대구와 같은 한대성 어류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해초가 우거졌던 바위에 백화현상이 두드러지게 늘어나는데, 육지도 마찬가지다. 감나무의 남방한계선이 북상하면서 사과의 재배지가 높은 위도로 점차 옮겨가고 있다.

 

온난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열대과일을 재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농작물의 경작은 기온만이 변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온난화되면서 토양미생물의 종류와 분포 상황이 바뀌고 강우의 양과 시기가 변하면 당장 기존의 농작물부터 잃게 될 테지만 그렇다고 아열대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조건이 쉽게 조성될 리 없다. 열대과일은커녕 식량위기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사막화도 걱정이다. 많은 예산과 인력으로 나무를 심고 초지를 조성하는 중국도 내몽고 일원에 확산되는 사막화를 진정시키지 못하는데 몽골의 사정은 더욱 열악한 실정이다. 앞으로 사막화되는 초원은 가축 방목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해양 곳곳의 어장 역시 전에 없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해수 이동이 변하기 때문인데 그 뿐이 아니다. 다수확 품종 위주의 지나친 품종개량으로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줄어든 농산품이 온난화된 기후에 견딜 수 없다면 내일의 식량 사정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4. 다시 지역으로

 

기아 인구가 많은 아프리카라고 해서 기름진 경작지가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은 외채가 국가를 짓누르고 해외 기업이 경작지를 독차지하는 탓에 굶주린다. 부정한 정권에 제공된 외채였고 그 외채에 대한 이자를 어느 정도 챙겼다면 이제 탕감할 때가 되었다고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 출신인 지글러(2008)는 주장한다. 굶주리는 지역에 그때그때 식량을 공급하는 자선은 한시적 대책에 불과하다. 지글러의 주장처럼 떳떳하지 못한 외채였다면 탕감하여 수출용 농산품 재배에 매달리는 일이 줄어들도록 배려해야 하고, 동시에 자신의 땅에서 평화롭게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안을 모색하는 편이 근본적으로 바람직할 것이다. 지역의 식량을 지역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식량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어야 평화가 유지된다. 그를 위해 식량은 안보가 아닌 주권 차원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윤을 앞세우는 기업이라면 모를까, 제 나라의 사정이 어두워져도 식량을 수출하는 국가는 드물다. 다국적기업이라면 국제시장에 식량이 부족할 때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안정된 식량을 확보하려면 각국 정부는 식량기지를 해외에 마련하기보다 국내에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토를 확보하는 게 안정적이다. 바로 ‘식량주권’이다.

 

식량이 무기 또는 투기화 된 마당에 축적한 외화로 식량을 수입하려는 자세는 석유위기가 멀지 않은 시대의 대안일 수 없다. 분배의 불균형이 있는 세계 식량은 위기의 경계에 있을지언정 뿐 모자라지 않는다. 위기는 위험과 기화를 동시에 제공한다. 우리는 위기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이때, 예측할 수 없는 환경변화에 최대한 견딜 수 있도록 농산물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그를 위해 지역은 제철 제 고장 농산물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다품종 소량 생산의 가능성을 타진해야 하고 그를 전제로 농토를 확보해야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자면 농사에 종사하는 인구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할 텐데 당장 어렵다면 지역의 자치단체는 유럽과 일본처럼 도시 근교에 텃밭을 조성해 분양하는 방법을 선행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안전한 식량은 자신이 농사지은 농작물이나 사육한 가축이지만 당장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면 신뢰할 수 있는 이가 생산했거나 키운 농산물이나 축산물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신뢰할 수 있는 생산자를 알지 못한다면 그런 농산물을 판매하는 상점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서구의 유기농 마켓이나 우리나라의 생활협동조합이 그런 상점의 예가 된다. 생활협동조합의 소비자 조합원이 되어 생산자 조합원이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업으로 힘겹게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내놓은 제철 제 고장의 농산물과 축산물을 흔쾌히 구입하며 가족과 밥을 지어 먹는다면 땅도 살리고 농민도 살리고 나와 가족의 내일도 살릴 수 있다. 가격이 비싼 만큼 넘치지 않게 구입해 다 먹는다면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고 비만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

 

진정한 유기농산물의 자격은 제철 제 고장에서 생산해야 얻을 수 있다. 운송 과정에서 많은 석유를 소비한 수입 농산물은 유기농산물의 자격을 잃는다. 유기농 커피와 같은 기호식품이나 운송 과정에서 농약을 뿌리지 않은 유기농 열대과일은 먹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 다만 아직 피할 수 없다면 생산자의 권리를 수용한 ‘공정무역’ 농산물을 구입하는 편이 바람직하리라. 폴란(2009)은 ‘음식’을 먹으라고 권한다. 상품이 아니라 음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덧붙여 음식 쓰레기를 되도록 줄이고 몸이 비대해지지 않도록 과식을 삼가하고 주로 채식을 하자라고 제안한다. 아무래도 가축을 공장식으로 사육하는 과정에서 식량이 낭비되고 물과 에너지가 과소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인심과 환경이 지금보다 좋았던 시절, 우리 조상의 식성이다. 우리나 세계나 자연스런 식단에 언제나 답이 있다. (방송대 교재, <세계의 정치와 경제> 중, 2010년 12월 발행 예정)

 

 

참고문헌

 

김은진. 2009. <유전자조작 밥상을 치워라>. 도솔.

안병준. 2005.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국일미디어.

Bello, Walden. 김기근 옮김. 2010. <그 많던 쌀과 옥수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더숲.

Bové, José, François Dufour. 2002. 홍세화 옮김.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울력.

Deville, Nancy. 이강훈 옮김. 2008. <슈퍼마켓이 우리를 죽인다>. 기린원.

Diamond, Jared. 김진준 옮김. 2001. <총ㆍ균ㆍ쇠>. 문학사상.

Hiroto, Yamamoto. 손성애 옮김. 2006. <오염된 몸, 320킬로그램의 공포>. 여성신문사.

Jacobsen, Rowan. 노태복 옮김. 2009.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 에코리브르.

Maslin, Mark. 조홍섭 옮김, 2010. <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 한겨레출판.

Pollan, Michael. 조윤정 옮김. 2008. <잡식동물의 딜레마>. 다른세상.

Pollan, Michael. 조윤정 옮김. 2009. <행복한 밥상>. 다른세상.

Ziegler, Jean. 양영란 옮김. 2008. <탐욕의 시대>. 갈라파고스.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5. 4. 00:54

 

해마다 8조 원 어치의 음식쓰레기를 버린다며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4인 가족이 대략 70만 원에 이르는 음식을 남겨 버린다는 계산이 나왔는데, 요즘은 그 배 이상의 음식쓰레기가 배출된다고 한다. 가구당 150만 원에 달하는 셈이니 한달에 12만원 어치의 음식을 버리는 꼴인데, 이웃을 둘러보자. 그렇게 정신 나간 집이 있기는 있는 걸까.

 

사실 가정에서 버리는 음식쓰레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을 마구 쓸어가는 예식장 피로연장을 보면, 뜨내기를 단체로 받는 식당의 음식쓰레기가 상당할 테지만, 사실 거기보다 훨씬 많은 곳은 식품회사다. 식품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뿐이 아니다. 유통기간이 지났거나 나중에 밝혀진 식재료의 오염으로 겉보기 멀쩡한 상태로 쓰레기가 되는 가공식품의 양이 상당하리라 생각한다. 멜라민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버린 가공식품의 양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버리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국가가 인정하는 조리사 자격증이 없어도 엄마의 감자 요리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싹이 올라왔더라도 엄마는 식구들 탈나지 않게 잘 다듬는 까닭이다. 집에서 만든 빵도 그렇다. 식구들은 빵에 어떤 재료를 넣었는지 잘 알기에 문제가 생겨도 원인을 금방 파악할 수 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앞집에서 만든 과자를 먹고 탈이 났다면, 곤란할 수 있겠다. 자칫 서먹해질 수 있으니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꼬치꼬치 캐물을 수 없다. 견딜 수 있다면 넘어가는 편이 나을 테지만, 음식에 문제가 있다면 먼저 그 집에서 물을지 모른다. 댁은 괜찮았냐고. 마안하다고. 그 집은 괜찮은데 우리집에 탈이 났다면? 식구 중에 특이체질이 있는지 궁금해지겠지.

 

어떤 과자회사 전직 간부는 아이에게 과자를 주느니 차라리 담배를 주라고 말했다. 물론 역설적인 주장이다. 아이에게 담배를 권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담배보다 종류가 많지만 하나 같이 위험한 과자의 첨가물들을 생각하고 그렇게 푸념했을 거라 이해하면 될 듯하다. 어떤 엄마들은 차라리 아이를 굶기잔다. 실제로 굶길 리 없는 엄마는 아이들이 즐겨 먹는 가공식품을 조사한 뒤 그렇게 한탄했다. 어떤 이는 슈퍼마켓이 우리를 죽인다고 경고한다. 더 이상 먹을 게 없다는 이도 있다. 도대체 얼마나 오죽하면 그럴까.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자. 남자 어른들에게 한때 인기가 높았던 육체파 여배우가 있다. 담배보다 습관성이 없고 몸에 미치는 악영향도 작으니 대마초를 허용하라고 주장하는 그는 자신의 주장에 답할 수 있는 국내외의 과학과 경험적 증거를 제시하는데도 우리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한데 그이가 제시하는 증거는 오해를 부를 만하다. 대기업에서 세계인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담배와 아는 사람과 숨어서 만들어 피우는 대마초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마초와 비교하려면 옛날 할머니들이 피웠던 곰방대 속의 담배를 택해야 했다.

 

생각해보자. 흡입을 위한 대마초의 판매를 정부에서 허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담배처럼 시장 석권을 노리는 기업에서 대마의 품종개량에 나설 것은 물론일 텐데, 대마초 제조 과정에서 첨가물을 다수 섞지 않을 거로 확신할 수 있을까. 설탕과 조미료를 비롯해 벌꿀, 박하, 수많은 향료, 그리고 접착제까지 포함하면 수백 종류에 달하는 첨가물이 고온으로 타면서 연기와 함께 폐 깊숙이 흡입되는 게 담배다. 많은 의사들이 흡연이 암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첨가물에 있는데, 거기에 크든 작든 환각작용까지 더해질 대마초는 과연 담배보다 안전할까. 그런데, 과자회사 전직 간부는 담배에 들어가는 첨가물이 과자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다.

 

엄마가 과자를 만든다고 하자. 온갖 재료를 넣어 빚은 밀가루를 프라이팬에 얹고 노릇노릇하게 구운 뒤 밥상에 올려놓을 것이다. 밀가루가 프라이팬에 들러붙으면 긁어내면 된다. 잘 살피며 구울 테니 버려야 할 정도로 탄 과자는 거의 없을 테지만, 있어도 그 과자에 들어간 비용 때문에 화를 내는 엄마는 없을 것이다. 식구나 이웃과 나눌 과자를 허투루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광고로 눈과 귀를 현혹하는 대기업의 과자는 어떤가. 여러 법규로 엄격하게 규제한다지만 엄마가 만들어주는 과자보다 안전하지 않다. 어떤 재료가 어느 정도 들어갔는지 먹는 이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 탈이 나도 원인을 모른다.

 

낸시 드빌은 광우병보다 더 위험한 공장 가공식품을 판매하는 까닭에 《슈퍼마켓이 우리를 죽인다》(기린원, 2009)고 주장하는데, 대기업의 가공식품을 보자. 히트 상품이 나오자마자 유사 상표가 범람하는 풍토에서 그런 식품들은 첨예한 경쟁을 치러야한다. 경쟁 회사보다 빨리 많이 팔아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까닭에 한꺼번에 반죽한 많은 밀가루에 미각을 자극하는 식재료를 섞어 구울 텐데, 구워낸 후 식재료 본래의 맛과 향이 변질될 수 있다. 따라서 한번 맛을 본 소비자들이 계속 선택하게 만들려면 갖은 향료를 넣고 보기 좋게 꾸며야 하는데, 그러자면 식용이라 칭하는 색소를 다양하게 첨가해야한다. 자동화된 공장의 어느 공정에서 반죽이 막혀 생산이 정지된다면? 공장은 원인을 찾아 반죽을 제거하고 다시 기계를 가동을 하는 불편보다 그로 인해 입을 손해에 더 민감해할 것이다. 따라서 식품회사는 반죽이 기계에 들러붙지 않기를 바랄 거고, 그에 필요한 물질을 미리 첨가할 것이다. 그 때문에 맛과 향이 변성되면 안 되므로 관련 화학물질이 다시 첨가할 텐데, 그런 물질들은 인체에 좋을 리 없다.

 

평소 기업윤리를 강조하던 대기업의 과자를 사먹고 탈이 났으므로 당연히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아주 순진한 소비자가 된다. 문제를 순순히 인정하는 순간 기업은 자신의 이미지가 추락하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과자에 들어간 수많은 첨가물들은 하나 같이 기준치 이하를 과학적으로 만족시켰고 공장의 시설 기준은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더 없이 위생적이다. 게다가 같은 과자를 먹고 탈이 났다고 문제를 제기한 소비자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집요하게 보상을 요구한다면 식품회사는 개인의 특이체질 때문에 나타난 증상을 빌미로 문제를 제기하는 별스런 소비자로 취급하다가 급기야 영업방해로 고발할 수 있겠다. 소비자는 어떤 물질이 탈을 일으켰는지 밝히기 어렵다.

 

소비자는 배가 아픈 원인이 과자 때문이라고 얼른 생각하지 못한다. 과자와 함께 먹었던 음료수도 있지만 그 전에 먹은 패스트푸드도 의심할 수 있다. 밤을 새도 일을 마치지 못해 생긴 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짐작할 수 있고, 유통기간이 지난 제품을 구입한 게 문제라며 자신을 탓할 수 있다. 일단 몸이 아프니 병원에 가서 처치를 받았고 비용도 치렀다. 회복되면 잊고 말지만 같은 증세가 계속되거나 심화되면 병원비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과자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나중에 뇌리를 스쳐도 이미 시간이 지났고, 과자봉지에 깨알 같이 채워진 글씨를 세심히 읽어도 소용이 없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수많은 성분들을 무슨 목적으로 얼마나 첨가했는지 도무지 설명이 없지 않은가.

 

일본의 저널리스트 야마모토 히로토는 《오염된 몸, 320킬로그램의 공포》(여성신문사, 2006)에서 평생 우리가 먹는 식품첨가물이 자그마치 320킬로그램이라고 지적하면서 가공식품 포장지에 기재된 개개의 첨가물이 얼마나 위험한 물질인지 소상하게 밝히지만 그 때문에 식품회사가 곤혹을 치르는 건 아니다. 식품에 섞여 들어오는 양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일축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은 독이다. 다만 양과 농도가 문제일 뿐, 밥도 독이 될 수 있다. 독이 될 정도로 먹자면 그 전에 배가 터져 죽고 말 것이다. 우리는 과학적으로 안전이 확인된 정도, 다시 말해 ‘기준치 이내’로 첨가했으니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문제를 제기하려면 얼마든지 제기하라!” 하고 강변한다면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친 소비자는 대처할 방법이 없다.

 

식품회사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식품첨가물의 기준치는 안심할 만할까. 기준치는 역학조사나 축적된 경험으로 산출된 수치가 아니다. 새로 개발한 식품첨가물의 안전성을 역학조사로 충분히 확인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야 하므로 기업이 선호할 리 없다. 실험에 사용한 동물의 절반이 죽을 때까지 투여한 양을 과학적으로 ‘LD50(lethal dose 50%)’, 다시 말해 ‘반수치사량’이라 하는데, 대부분의 기준치는 동물실험으로 얻은 몸무게 당 반수치사량을 사람에 적용하면서 구한다. 다만 ‘마지널 이펙트’(marginal effect)라 하여, 사람의 안전을 도모하려고 동물에서 얻은 수량을 줄이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기준치를 허용기관에서 실험해 산출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이 화학물질인 식품첨가물을 개발한 기업에서 기준치의 수량을 제출하고 정부기관은 서류를 검토해 시판을 허가할 뿐이다. 수준 높은 연구자와 장비가 많고 예산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미국의 FDA(식품의약품안전청)도 숱하게 개발되는 화학약품의 안전 기준치를 일일이 연구해 검토할 수 없다.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개발회사에서 책임지는 원칙으로 허가해주는 게 보통이다.

 

동물실험의 결과를 사람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을까. 미국의 저명한 의사인 레이 그릭과 역시 저명한 수의사 진 스윙글 그릭은 《오만과 탐욕의 동물실험》(다른세상, 2005)과 《가면을 쓴 과학 동물실험》(다른세상, 2006)에서 동물에서 얻은 결과를 사람에 적용할 경우 위험할 때가 오히려 더 많다는 걸 근거를 들어 고발한다. 그렇다면 식품첨가물이 기준치를 만족하므로 안심해도 좋다는 식품회사의 논리는 가당치 않은데, 더 큰 문제는 상승작용이다. 기준치를 만족하는 개개의 식품첨가물이 체내에서 만났을 때 위험성이 상승할 수 있는데, 한두 가지가 아닌 화학물질의 상승작용을 일일이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안전성 여부는 인체에 대한 광범위한 역학조사와 오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미루어 짐작해야 한다. 문화에 따라 다양하지만 누구나 확신하는 전통 식품의 안정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가공식품은 많은 농산물을 섞어 한꺼번에 조리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는 게 보통이다. 그때 성분표시가 생략되거나 왜곡된 1차 가공식품이 2차 가공 과정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멜라민이 포함된 분유를 재료로 사용한 가공식품이 그랬다. 성분 표시가 명확하더라도 열이나 압력을 가하며 가공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물질이 합성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물질은 제품 포장지에 표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안정성을 미리 확인할 수 없다. 담배가 그런데, 과자가 담배보다 더하다니 걱정이다. 가공식품의 첨가물만이 아니다. 미생물을 제거하려 농작물에 조사한 방사선이 식품에 예측할 수 없는 물질이 섞이게 할 가능성도 있고 가축과 양식어류에 포함된 항생제가 인체에 들어가 항생제 내성을 강화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예 타고난 유전자를 교란한 유전자조작 농산물과 그런 농작물을 재료로 가공한 식품, GMO는 괜찮을까.

 

유기농업을 고집하는 근교에서 밤샘회의를 할 때 경험했던 일이다. 장마철이 지나 무더운 여름이었다. 회의마다 늦는 이가 꼭 있게 마련인데, 그는 미안했던지 근처 가게에서 포도 한 상자를 사왔다. 준비해간 유기농 포도를 먹어치운 먹은 우리는 그 포도까지 다 먹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동이 트기 무섭게 일어나야 했다. 얼굴에 달라붙으려는 파리들의 집요함 때문이었는데, 이상한 건 유기농 포도 껍질에 바글거리는 파리들은 나중에 사온 포도의 껍질은 거들떠보려 하지 않는 점이었다. 오래 두어도 상하지 말라고 농약을 뿌렸다는 걸 우리에게 알려준 시골의 집주인은 아침부터 화장실을 들락거렸는데 우리는 아무렇지 않았다. 진정 아무 문제가 없었던 걸까.

 

‘다음을 지키는 엄마 모임’은 자신의 아이들이 아토피와 같은 질환으로 고통을 받는 원인이 가공식품이라는 걸 간파하고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시공사, 2000)를 써야 했다. 공급자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첨가한 화학물질이 아이들과 소비자에게 돌이키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행동이었다. 그들은 대안을 제시했다. 그건 주부가 안심할 수 있는 농산물을 구입해 집에서 조리해 가족과 나누는, 불과 한 세대 전에는 아주 자연스런 밥상, 다시 말해 상식에 있었다. (사이언스올, 2009년 5월 첫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