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8. 7. 13. 22:02
 

작년에 이어 올해의 장마도 어수선하다. 비가 드물었어도 후텁지근해 빨래가 잘 마르지 않았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뙤약볕에 습기마저 없어 복중을 연상케 했다. 작년은 장마철이 끝나자마자 비가 이어졌는데, 올해는 어떨지. 마른장마 뒤의 지역 호우, 이어 국지성 호우, 그리고 난데없는 ‘가을장마’가 농부의 속을 뒤집었는데, 올해도 예년의 질서를 배신하는 건 아닐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상이변이 이태 계속된다면 징후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10여 년 전, 두꺼비가 황소개구리의 천적이라는 보도가 나와 많은 이가 놀란 적 있다. 두꺼비가 알을 낳던 이른 봄의 웅덩이에 황소개구리가 철모르고 동참했다 봉변당한 모습을 넘겨짚은 오보였다. 이른 봄부터 더웠던 그때, 새들은 번식 시기를 찾지 못했고 뻐꾸기는 알을 맡길 둥지를 구하지 못해 애태웠을 것이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의존했던 자연의 질서가 신뢰를 저버리자 많은 생물종이 갈팡질팡하게 된 것이다. 요즘은 그 정도가 더하다. 기상이변과 지구온난화는 뜻하지 않은 외래종 유입과 없던 질병이 창궐하게 해, 농정과 보건당국을 당황하게 한다.

 

소련이 역사의 뒤로 사라진 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을 펴내 세계적 논쟁을 일으켰다. 세상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수렴할 것으로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후쿠야마는 《트러스트》라는 책을 쓰며 자신의 견해를 조금 수정했다. 자유민주주의가 완벽하려면 신뢰가 구축되어야 한다면서. 우리는 흔히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지만 신뢰를 잃으면 전부 잃는 것”이라는 격언을 상기한다. 개성상인도 신뢰가 바탕이었다. 계약서 따위는 필요 없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따질 것 없이 사람의 세상에도 신뢰가 바탕이다.

 

후쿠야마는 《부자의 유전자 가난한 자의 유전자》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을 다시 써야 했다. 유전자조작으로 촉발될 돌이킬 수 없는 생태적 파국과 계층 간 불화는 그가 애초에 수렵될 것으로 믿었던 자유민주주의가 구축되는데 항구적 장애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신뢰의 문제였다. 후쿠야마는 지적하지 않았지만 사람에 의해 자연의 질서가 흔들리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초식동물인 소에 소 내장과 골격을 가공한 육질 사료를 강제로 먹이자 발생한 광우병도 사람이 자연의 질서를 흔든 까닭이었듯, 부모와 자식을 여러 세대 교배시킨 18세기 영국의 목양에서 스크래피가 발병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의 오랜 질서가 사람에 의해 깨졌기 때문이다. 사회의 신뢰도 상식에 준한다. 약속과 소통으로 구축되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근본적으로 신뢰에 대한 문제제기다.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연스러움이다. 대한민국 헌법 1조를 참조하면 된다. (경향신문, 2008.8.6)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8. 2. 2. 09:34
 

녹색평론 최근호는 발행인 김종철 선생과 원로 영문학자 김우창 선생의 ‘신념대담’을 실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대담에서 김종철 선생은 ‘FEC 자급권’을 소개한다. 일본의 경제사상가 우치하시 가츠토(內橋克人)라는 분이 오래 전부터 제창한 ‘FEC 자급권’은 식량(Food)과 에너지(Energy)와 돌봄(Care)은 자유무역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각 나라와 지역사회의 자급능력이나 자주적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제안이라고 김종철 선생은 덧붙인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은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이미 비참한데, 국내 농경지는 개발 유보지로 취급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개발 사업은 논밭을 갈아엎으니 이제 우리는 외국 식량에 굴종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는 더하다. 환경단체에서 내복을 입자고, 실내온도를 섭씨 18도에 맞추자고 제안하지만, 사둔 내복을 입을 일이 없을 정도로 천지사방의 겨울이 덥지만 거의 전량의 에너지를 수입한다. 돌봄은 아직 자급에 가까운데, 한미FTA 타결 이후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식량과 에너지와 돌봄은 국내와 지역 내에서는 사고팔아도 좋다지만 맹목적인 이윤추구는 지양해야 한다. 일찍이 이반 일리치와 칼 폴라니가 통찰했듯, ‘우정과 환대’로 나눌 것을 제안한다. 담거나 퍼가는 사람이 서로 모르는 ‘마르지 않는 뒤주’나 ‘밥퍼 공동체’ 같은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고, 산동네에 연탄 날라주듯 에너지를 마련해주며, 이웃집의 아기와 노인 보살피듯 의료나 복지를 제공하자고 한다. 그와 같은 우정과 환대는 내 얼굴을 기억하는 이와 거래하는 공동체에서 빛을 발할 것 같다. 팔면 그뿐인 국내외 교역에 우정과 환대는 끼어들 틈이 없을 것이다.

 

지금 세계는 가히 에너지 전쟁이다. 석유자원에 대한 살벌한 국제 경쟁은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까. 남의 자원을 가로챌 자본이나 군사력이 부족하니 한정된 자원을 선점하려 세계 오지의 생태계를 파괴해야 할까. 우리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경쟁은 전쟁을 낳을 수 있다. “태양은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발굴과 보급하면서 에너지 체계를 생태 친화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효율화와 절약을 말한다. 하지만 전국의 개발 열풍은 내일을 걱정하게 한다.

 

정부는 식량 자급을 위해 농경지를 보전하고 농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이를 우대해야 마땅한다. 소비자는 농사꾼에 빚진 마음으로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다가올 식량안보 시대의 마지막 보루이므로. 한데, 기후변화로 세계 식량 수급이 불안전하면서 가격 앙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절대농지를 해제하겠다는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의 발상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돌봄은 어떤가. 아이를 산후조리원에 맡기는 풍조가 만연되는 가운데 시댁과 친정 부모는 집을 은행에 맡기고 해외여행을 즐기란다. 의료는 국가에서 책임지는 국가도 많은데 감기 치료에 수백만 원이 들어가는 미국계 병원이 곧 진주할 예정이다. 받는 사람의 자존심까지 헤아리는 돌봄은 점점 실종된다.

 

식량과 에너지와 돌봄은 우정과 환대로 거래해야 한다면 돈과 땅과 사람은 절대 사고팔 수 없어야 한다고 김종철 선생은 지적한다. 그런데 어떤가. 카지노 판이 아닌데 세상은 돈을 사고파는데 눈이 뒤집혔다. 외환거래는 말할 필요도 없지만 국제 에너지와 식량 시장마저 투기장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돈다발을 든 투기꾼이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침 흘리는 일은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되고, 인력시장은 노예시장과 다르지 않다. 모든 걸 상품화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인데, 이제 우리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기승을 부리는 신자유주의에 더 큰 날개를 달아줄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낙담할 수만은 없다. 제국주의 시절에 독립운동이 펼쳐지고 군사독재 시절에 민주화운동이 꽃을 피웠듯, 신자유주의의 성장 지상주의에 맞서는 시민운동에 나서야 한다. 그에 앞서 우리는 사고팔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 2008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