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1. 4. 6. 18:38

자연스러움이라는 영성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나이 차가 큰 연인과 진전된 내일을 약속하려 할 때, 시샘이나 걱정을 섞어 참견하려는 친구가 꼭 있다. 그 친구에게 건네는 대답이 대개 그렇겠지만, 생각해보자. 나이는 진정 숫자에 불과할까? 새내기 학자의 참신한 생각이 노련한 선배의 권위로 번번이 무산될 때 비슷하게 내뱉고 싶어도, 사실 경륜은 무시할 수 없다. 한데 우리 사회에서 나이는 강고하다. 인생의 성패를 나이로 단정하려는 시선은 여전하다.

 

구내식당은 대개 12시에 문을 연다. 누구나 그 시간에 배고픈 건 아니지만 정한 시간에 일하고 쉬는 직장이니 이해하고자 한다. 하지만 누구나 직장에 들어가야 하고 제 나이가 있는 건 아니다. 취직 위해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대학교 입학을 위해 어려서부터 국··수에 골머리 아파야 하는 건 아닌데, 의당 그렇게 한다. 그 터널을 어렵사리 통과하고 중견 기업에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일로 혹사당하는 젊은이들은 시시각각 내가 누구이고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면서 시계만 본다.

 

시간에 매듭이 없건만 많은 사람은 정초 막히는 길을 뚫고 동해안을 향한다. 어떤 다짐이 필요했는지 모르는데, 11일 해 뜰 녘이어야 하나? 21세기 맞아 세계가 시끄러울 즈음, 시계 밖의 시간의 저자는 땅, , , 바람, 얼음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다. 7년 뒤 , , ,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에서 그는 땅의 세상 원주민이 권한 아야와스카 경험을 썼다. 선교사보다 무한히 친절한 원주민의 우울증 치료제였다. 원주민을 개종시킨 선교사는 약초로 만든 아야와스카를 사탄의 약이라며 저주했지만, 시계 없는 세상이 낯설어 어지러웠던 여행자는 심한 구토 뒤 말끔히 나았다. 아야와스카는 그들의 문화, 송라인이었다.

 

세상마다 다른 송라인에 우열은 없다. 반면 시계 안의 시간은 정확해야 한다. 당연히 우열이 엄격하다. 얼음 세상의 송라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선교사는 70가지 넘는 눈의 이름을 스노우(snow)로 통일시켰다. 그러자 눈의 특징과 방향을 잃은 이누이트는 사냥터에서 맥없이 죽었다. 예전에 없던 일이다. 송라인을 잃은 것인데, 우리도 잊었다. 몇 가지는 민요라며 새삼스레 기념하지만, 시계 안의 규칙대로 살아가면서 몸이 기억하던 노래와 춤사위를 잊었다. 백신이 할머니 약손을 대신하자 세상은 온기를 잃었다.

 

전쟁에 전진과 퇴각만 있는 건 아니라 그랬을까? 군사독재 정권이 구상한 강원도 일원의 군사종합훈련장은 십자 지형이고, 면적이 1억 평이라 했다. 전폭기는 물론, 함대까지 참여할 훈련이므로 면적이 커야 하고, 감당할 지역은 강원도뿐이라 했다. 지역 송라인을 기억하는 주민들이 저항했다. 그들의 초청으로 찾아간 점봉산. 식물을 전공한 선배는 목소리를 낮췄다. 귀엣말로 자신도 처음 만나는 극상림이라고 경외했다. 아름드리나무가 신전의 기둥처럼 드문드문 선 산록에 다채로운 풀숲이 내뿜는 신비. 선배는 자신을 낮췄다.

 

금수강산의 거대한 나무를 대부분 베어낸 일제는 경사 급한 점봉산은 접근하지 못했는데, 그 후손은 합동훈련이라는 미명으로 우리 숲에 함포를 퍼붓는다는 것인가? 몸을 떨었던 주민과 환경단체의 노력이 효과를 보였을까? 함포가 제외되면서 훈련장 면적이 대폭 축소되더니 군사정권이 물러났다. 훈련장 계획도 흐지부지 사라졌는데, 강원도는 송라인을 보전하는가? 고속도로, KTX, 골프장과 스키장, 케이블카 계획으로 여전히 위협을 받는다. 피 말리는 속도와 경쟁을 요구하는 시계는 송라인을 외면한다.

 

사진: 수쳔년을 살았을 나무를 만나면 깊은 경외심에 사로잡힌다. 

 

어제를 향해 걷다의 저자는 여기에 사는 즐거움에서 조몬삼나무를 뵙고 만난 제비꽃 한 송이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7200년 살아온 조몬삼나무는 야쿠섬의 할아버지이자 송라인이다. 조몬삼나무가 계시니 여기에서 어제를 향해 즐겁게 걸을 수 있다. 시계를 버리는 삶인데, 미국 동부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여인은 자신의 경험을 나무 위의 여자에 썼다. 비명을 외면할 수 없어 무작정 서쪽을 찾은 그는 벌목 위기에 몰린 삼나무에 올라 2년을 맨발로 버텼다. 그제야 클린턴 행정부가 송리인의 비명을 들었다.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삼나무 숲에서 내려온 저자는 용기를 심어준 나무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며칠 전, 공영방송이 편성한 자연다큐를 보았다. 시베리아 아무르강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이어지는 장엄한 송라인을 소개했지만, 아쉬웠다. 큰고니, 마도요, 엽낭게들이 펼치는 서사시는 감동적이지만, 사실 아슬아슬하다. 굽이굽이 흐르는 아무르강이 온전하기에 번식할 수 있는 겨울철새들은 비좁아지고 오염된 을숙도에서 위기에 몰린 지 오래다. 아시아 최대 삼각주였지만 쓰레기매립장과 아파트단지로 버림받지 않았나. 대형 보와 댐으로 거듭 틀어막혀 백두대간의 모래와 영양분이 을숙도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은 귀띔하지 않았다.

 

자연이 만든 리아스식 해안은 태곳적부터 안전하다. 수많은 생물이 터를 잡아 번성했는데, 시계를 찬 인간은 그 자리를 메워 공항, 공단, 아파트단지, 핵발전소를 커다랗게 지었다. 10년 전 후쿠시마는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피하지 못했는데, 악몽이 최근 되살아났다. 1년 연기한 32회 도쿄올림픽은 가능할까? 태곳적 파묻힌 화석연료를 한꺼번에 탕진하려는 탐욕은 대기권에 온실가스를 쏟아냈고, 그린란드 빙하는 히말라야 빙하와 더불어 맹렬하게 녹는다. 200명을 집어삼킨 인도 북부 계곡의 얼마 전 쓰나미는 파괴되는 송라인의 경고다. 그린란드가 녹으면 해수면은 7상승한다. 인구 2600만의 상하이는 대책이 없을 텐데, 인천공항과 새만금은 견딜까?

 

제주도 제2공항을 대다수 주민이 반대하는데, 강행하려나? 김해공항이 비좁으면 탑승객을 줄이면 된다. 가덕도 바닷가에 공항을 다시 만들어야 할까? 한 시간 안에 서울로 가기 위해 백령도와 울릉도와 흑산도에 공항이 필요하단다. 면적 대비 세계 최장인 고속도로는 백두대간과 13개 정맥을 이리저리 끊었는데 KTX도 한몫한다. 2천만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은 GTX로 사통오달해야 인천을 비롯해 제1, 2, 3, 어쩌면 제4 신도시의 고층아파트가 잘 팔리겠지. 온실가스가 쏟아질 일만 남았다. 위기로 치닫는 기후변화는 북극권 제트기류를 풀었고 냉기가 미국 46개 주를 눈보라에 파묻었는데, 거기에서 그칠까?

 

에드워드 제너가 백신을 최초로 찾아낸 1796년 이후 천연두는 200년 만에 사라졌다. 1956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백신을 맞은 뒤 소아마비는 자취를 감췄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1년 만에 1억 명의 세계인을 감염시켰다. 천연두 이전의 페스트, 코로나19 이전의 독감도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감염병들은 새로운 문명을 잉태하도록 이끌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오만해진 인류를 더 큰 위기로 몰았겠지. 자연은 아량이 넓었다. 자연의 경고를 한사코 외면한 인류는 위기를 증폭시켰다. 시계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지만, 자연은 아량을 잃었다.

 

최초 경작이 문제였을지 모르는데, 저장 식량으로 거침없이 늘린 인구가 도시에 밀집하자 감염병이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굽이치는 강과 리아스식 해안을 콘크리트로 매워 빌딩을 밀접시키자 그 안에 밀폐된 사람들이 쉽게 감염되고, 감염병은 비행장과 고속도로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농토마저 콘크리트로 칠갑하더니 모자라는 식량을 녹색혁명과 유전자조작으로 해결하겠다며 화석연료를 펑펑 태운다. 송라인 잃은 자연은 재난을 부르지만, 화석연료와 과학기술을 난폭하게 동원하는 인류는 오만불손하다.

 

시베리아의 영구동토가 녹으며 한대림이 불길에 휩싸인다. 메탄가스가 분출하기 때문인데 얼어붙었던 척추동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매머드만이 아니다. 티베트고원이 드러내는 동물도 이미 죽었지만, 동물을 감염시킨 바이러스는 살았다. 동토를 빠져나가 슬금슬금 퍼질 바이러스가 사람도 감염시킬 가능성을 학자들은 배제하지 못한다. 송라인 잃은 자연에서 우리는 영성을 느끼지 못한다. 백신이라는 시계가 콘크리트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시계가 지배하는 세상에 영성은 깃들지 못한다. 영성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조몬삼나무와 극상림에서 겸손해지는 인간은 송라인을 간직한 흙, , 사막과 얼음 세상에서 영성을 얻는다. 송도신도시가 없을 때, 아암도 갯바위에 걸터앉은 인천사람은 가없는 갯벌에서 영성을 느꼈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갈 우리는 가족과 이웃의 축복 속에 먼 길 떠나는 노인을 배웅하면서 영성을 얻는다. 요양원이 아니다. 침 튀기며 할렐루야! 외치는 밀폐공간보다 텅 빈 예배당에서 영성을 찾는 신자들이여, 내 탓이라 외치며 남 살피지 말고, 시계를 내버리고 힘껏 끌어안자. (가톨릭일꾼, 2021년 봄호)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6. 5. 26. 21:17


하필 미세먼지주의보가 내렸을 때 마스크 없이 만보를 걸었다. 저녁 무렵 하늘은 그리 뿌옇지 않아 안심한 게 화근이었을까. 그날 이후 목을 간지럽히던 감기는 보름이 지나도록 몸을 떠나지 않는다. 사실 피로가 겹친 상태에서 무리하게 걸은 면도 있다. 휴일도 거르지 않은 강의와 회의, 그리고 이어지는 뒤풀이를 일주일 이상 개근하면서 하루 만보를 고집했으니, 미세먼지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는지 모른다.


걷는 이 코앞에 미세먼지를 내뿜는 경유 차량에 대기오염 저감장치 부착을 아직도 의무화하지 않는 정부는 마스크 착용만 되뇌는데, 황사나 미세먼지를 걸러준다는 마스크는 만보걷기와 동반하기 어렵다. 선선한 밤이라 해도 이마에 땀이 솟을 정도로 걸을 때, 미세먼지용 마스크는 호흡을 가쁘게 만든다. 공기정화기가 가동되는 실내 헬스클럽에 등록해야 하나. 기계에 몸을 맡기기 싫으니 맑은 날 더 걷기가 자연스럽다 생각하는데, 그것 참! 맑은 날의 절반 이상은 미세먼지 상태가 나쁘다.


미세먼지가 나쁜 날이면 환기는 삼가야 한다고 전문가는 조언한다. 실내로 들어온 미세먼지는 어떡하나? 공기정화기로 해결하라는데, 공기정화기가 신접살림 목록에 오를 날이 멀지 않겠다. 환기가 어려운 실내는 대체로 건조하다. 가습기가 필요해지는 대목인데, 요즘 섬뜩해진 가습기는 신혼부부의 가전제품 목록에서 빠졌을까? 사실 첨가하는 살충제가 문제를 일으켰지 가습기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내막을 대충 알았으니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다른 살충제를 넣을까? 대부분의 살충제는 대개 자연에 없는 화학물질인데.


가습기에 수돗물을 넣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미끌미끌해진다. 더 지나면 물이 증발하면서 가습기에 자국을 남긴다. 곰팡이가 만든 흔적이란다. 생수도 마찬가지다. 증류수는 괜찮다지만 비용부담이 크다. 곰팡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내 집안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입주하기 전부터라면 그 곰팡이와 사람은 공생하는 셈인데, 가습기에 곰팡이가 생기면 몸에 얼마나 나쁜 걸까? 살충제의 부작용을 감춘 광고는 그 궁금증을 외면하고 효능만 강조했다.


곰팡이가 싫으면 가습기를 자주 닦으면 된다. 닦기 귀찮아 살충제를 넣을 텐데, 물을 충분히 머금은 수건을 여기 저기 널어도 실내 건조를 웬만큼 예방할 수 있다. 문풍지 한 장으로 바깥공기를 차단했던 시절, 방마다 빨랫줄이 있었고 전깃줄에 매달려 흔들리던 회중전등은 빨래 그림자를 방바닥과 벽에 너울거리게 했다. 난방이 허술하고 냉방을 꿈꾸지 못했던 시절, 우리는 미세먼지주의보를 몰랐고 감기도 흔하지 않았다. 빨래나 수건을 건조대에 보기 좋게 걸어두면 어떨까? 가전제품과 화학약품에서 그만큼 해방될 텐데.


유럽 가정에서 많이 사용한다고 하니 식기세척기도 우리 가전제품 목록에 등재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열성적인 광고와 그 가전제품을 자주 보여주는 드라마가 속속 등장하겠지. 식기세척기에 어떤 세제를 넣을까? 세탁기 세제와 다를까? 메르스 바이러스로 전국이 긴장할 때 강력하다는 손 세정제가 불티나게 팔렸다. 일반 비누가 메르스 바이러스를 씻어내는데 효과가 훌륭하지만 시민들은 손 세정제를 앞 다투어 구입했지만 세정력이 강할수록 피부에 해롭다는 사실은 알 수 없었다.


손 세정제로 피부에 이상이 생긴 피해자를 주목한 언론이 없으니 소비자는 진상을 파악할 도리가 없는데, 가습기 살충제 피해자는 1500명이 넘고 파악된 사망자만 239명이다.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화학제품의 수가 수만 가지를 넘는 세상에서 우리는 불안하다. 평생 먹는 식품첨가물이 300킬로그램을 초과한다는데, 환경호르몬은 도처에서 스멀거린다. 하나 같이 허용기준치 이내라는 걸 앞세우지만, 경험상 안심하지 못한다. 허용기준치 이내인 화학제품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두 가지 이상 몸에 들어올 경우 어떤 상승효과가 있는지 전문가들도 알지 못하는 세상이 아닌가.


몸에 해로운 화학제품에서 악취가 나도록 제조하는 경우가 있다. 부탄가스가 그렇지만 가습기 살충제보다 독성이 강한 모기약은 향기를 좋게 제조했다. 모기약 광고가 향수 광고를 흉내를 내니 모기약을 뿌리고 출근하는 사람이 등장할까 겁난다. 엄격하게 안전성을 연구했을 화장품은 마땅히 안심해야 할까? 화학물질의 안전성은 넘어가자. 화장품과 자외선 차단 크림, 그리고 치약에 들어간 미세한 플라스틱은 썩지 않고 생태계 먹이사슬을 돌고 돌아 사람의 몸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부메랑이다.


미국은 미세한 플라스틱의 사용을 규제하려는 법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우리는 무소식이다. 화장품의 플라스틱만이 아니다. 화학섬유로 만든 옷 한 벌을 세탁기로 세탁하면 1900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나온다고 영국 BBC방송에서 보도한 적 있는데, 화학섬유를 규제한다는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미세 플라스틱을 대신할 천연 물질은 많지만 금방 상해 조금씩 냉장보관하면서 사용해야한다니 귀찮을 거 같다. 화학섬유 없이 맵시 있는 옷은 만들기 어려운 걸까? 화장기 없는 얼굴에 맵시가 조금 모자란 옷을 당당하게 입으면 어떨까? 안 보이던 맵시가 오히려 돋보일 텐데.


지금까지 예로 든 화학물질은 애교에 불과하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퍼붓는 다국적기업 몬산토의 화학물질, 제초제 라운드업의 주요 성분인 글라이포세이트에 비교하면 가소로울 지경이다. 세계보건기구가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그 성분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생태계에 피해를 주었는지 거의 파악하지 못했다. 몬산토가 돈과 권력으로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연구자에게 압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미 발생할 피해는 끔찍하고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텐데, 무슨 사연이 숨었는지 어느 국가도 규제에 나서지 않는다.


미세 플라스틱 없는 치약으로 이를 닦을 수 있듯,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고 건강한 농산물을 얼마든지 재배할 수 있다. 손 세정제 없이 온갖 균과 바이러스를 씻어낼 수 있고 살충제 없이 실내의 건조를 막을 수 있다. 화학섬유가 들어가지 않은 옷으로 개성을 창조하고 몸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다. 광고를 앞세우는 산업체의 광고에 속지 않아도 건강한 대안을 너끈히 찾을 수 있다. 바로 자연스러움이다. 조상의 지혜를 반영하는 자연스러움으로 자신과 생태계의 건강을 훨씬 도모할 수 있다. (작은책, 20166월호)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0. 3. 7. 13:23

2010년을 맞아 지구가 용트림하기 시작한 걸까. 갑자기 지구촌은 지진 공포에 휩싸였다. 1월 12일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인 카리브의 아이티에 진도 7.0 규모의 강진이 발생해 무려 30만을 넘는 사상자를 낳더니 다음 달 27일 남미의 칠레에서 리히터 8.8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800여 명의 인명을 사라지게 했으며 3월 4일에는 대만 산업도시 가오슝에서 진도 6.4의 지진이 발생해 100명 가까운 시민들이 부상을 당했다.

 

2004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세계적 휴양지를 뒤덮은 쓰나미도 지진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북서쪽 1600킬로미터 떨어진 해저 40킬로미터에서 발생한 진도 8.9규모의 지진 쓰나미를 불러들여 남아시아에서 30만 가까운 인파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인도와 스리랑카, 심지어 아프리카 해안까지 사망자가 속출하게 했다. 올림픽을 3개월 앞둔 중국의 쓰촨성에서 발생한 리히터 7.8규모의 지진도 4만에 가까운 희생자를 요구했는데, 끔찍했던 기억이 채 가라앉기 전에 발생한 이번 일련의 지진은 지진이 잦은 국가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와 같이 안전하다는 국가도 불안하게 한다.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상품 몇 개가 바닥에 떨어질 정도의 지진에도 언론이 호들갑을 떨 정도로.

 

사상자와 재물 붕괴의 규모를 비교하는 일은 불경하더라도 일단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에 지진이 발생하면 어느 정도의 피해가 생길까. 그 전에 일본의 걱정부터 들어보자. 1923년 진도 8.0 정도의 관동대지진으로 도쿄 근처 도시들에서 15만 이상이 희생된 기억을 잊지 않는 일본은 만약 진도 8.0규모의 지진이 도쿄에서 다시 발생한다면 1만 명 이상의 사상자에 21만이 넘는 부상자가 나오고 재산 피해가 112조 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대부분의 건물을 진도 7.0에 견디는 내진 설계로 짓는 일본이 그렇다는데, 최근의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 내진 설계라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는 어떨까. 언론은 아이티 정도의 지진이 서울을 덮친다면 사상자가 60만 명 이상 발생할 것으로 경고한 바 있다.

 

얼마 전 약속이 있어 저녁 6시 30분 경, 지하철 3호선 교대역에 내렸다. 2호선과 연결되던 교대역에 9호선까지 이어지면서 이용하는 승객이 무척 늘어난 교대역은 인파로 붐볐는데, 내리려는 시민만큼 타려는 승객도 상당했다. 등 떠밀려 내리자마자 자칫 다시 그 전동차로 밀려들어갈 정도였다. 거기에서 그친 게 아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승강장에서 출입구를 향하는 복도와 계단은 물론, 이어지는 지하2층까지 역사는 만원버스처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가끔 터지는 밀지 말라는 짜증 섞인 성화를 귓전에 흘리며 묵묵히 교대역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다른 대안은 없어 보였다.

 

5분이면 충분한 역사를 20분 가까이 땀 흘리며 빠져나오다 무심코 뒤돌아보다 별안간 아이티 규모의 지진이 지금 발생한다면 얼마나 처참해질까 하는 불경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무리 최첨단 장비와 몸을 아끼지 않는 구조대원이 있어도 감당할 수 없을 텐데 인파로 뒤엉키는 지하철역이 서울에서 어디 하나둘인가. 지하철 1에서 4호선까지 내진 설계 없이 지었다는데 희생자가 6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의 견해가 무력할 정도로 처참하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의 언론은 아이티 지진참사를 인재로 규정했다. 탐욕스런 미국계 다국적기업의 지배로 농촌이 황폐해지자 빈민들이 도시로 몰려와 허름한 집을 짓고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 자리에 지진이 발생하자 피해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일찍이 아이티를 식민지로 착취했던 프랑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 여부는 다른 공간에서 따지기로 하고, 칠레의 지진도 아이티처럼 가난한 이에게 피해가 집중되었다. 자금이 부족해 내진 설계를 외면한 건물이 주로 무너진 것이다. 지진 피해는 아니었지만 2005년 8월 미시시시 강변의 뉴올리언스를 침수시켜 만 명 가까운 시민들의 목숨을 걷어간 허리케인 카트리나도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를 재물로 삼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1995년 1월 일본의 대도시 고베를 강타한 지진도 6천여 명의 희생시켰는데, 대부분 중산층 이하였다. 방진 설계로 지은 고급 주택에 사는 계층에게 큰 피해가 돌아가지 않았지만 판잣집에서 석유곤로로 밥해먹는 가난한 계층과 더불어 목조 건물의 중산층은 호되게 당했다. 잦은 태풍을 이겨내기 위해 무거운 기와로 지붕을 얹은 중산층의 집은 직하 지진에 맥없이 무너졌을 뿐 아니라 불에 타버린 것이다. 전기로 취사를 해결하는 부자들과 달리 가스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당시 언론은 분석했다. 1923년 9월 동경만 일대를 뒤흔든 관동대지진은 어떤가. 혼란에 빠진 인파는 조선인이 불을 지른다거나 우물에 독을 탄다는 유언비어에 흥분, 조선의 복장을 한 동포는 물론이고 발음이 다르다는 이유로 중국인과 오키나와인까지 마구 학살했고, 그 와중에 요주의 인물로 등록된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 인권운동가 들이 제거되는 걸 방관하던 경찰은 학살을 모르는척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가.

 

유라시아와 태평양 판의 경계면에 있는 일본과 달리 유라시아 판의 위에 있는 우리나라도 진도 6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이 단언하는데 진도 6이면 고베의 고속도로의 교각을 뉘어놓은 규모와 비슷하다. 핵발전소들은 진도 6 이상의 지진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다고 자랑하고 최근에 짓는 세계적 규모의 커다란 다리들도 안전을 장담하지만 문제는 그 나머지 대중 이용 시설들이다. 출퇴근에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는 중산층 이하의 시민들 위주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천재지변이 지진만이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그 피해 역시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될 게 분명하다. 지구온난화 이후 강도가 훨씬 강해진 태풍도, 전에 없이 빈번해졌을 뿐 아니라 정확한 예보가 불가능하다는 국지성호우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지구는 겉만 살짝 굳은 뜨겁고 무거운 액체다. 그 액체가 내부에서 천천히 이동하다 약한 지각을 움직이게 해 지진이나 화산이 발생하게 한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원주민과 야생동물은 자연의 자리를 감히 침범하지 않았다. 얇디얇은 지각 표면을 함부로 개발하는 근대 이후의 인간만이 과학기술을 앞세우며 자연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 강이 흐르던 수역과 바닷물이 들고나는 갯벌을 매립해 공장과 아파트를 세우고 골프장과 스키장을 위해 생태계를 절단내며 원시림을 파괴해 거대한 플랜트 농장과 목장을 확장하는 인간은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해를 두고 천재다 인재다 논란을 거듭한다. 다 돈 때문이다. 돈보다 자연에 가깝게 지내는 이는 재해로 인한 피해에서 비교적 멀다. 여진이 발생할 때마다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람들에게 인공 구조물은 공포 그 자체다. 바깥, 다시 말해 인공 구조물보다 자연스러운 공간에 나와야 비로소 안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시에 인파가 몰리는 초고층빌딩과 지하공간을 집중시킨다. 자연스런 강의 흐름도 뒤틀어 놓았다.

 

아이티보다 천 배나 강력한 지진일지라도 칠레의 인명과 재산 피해가 훨씬 작았던 건 내진 설계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인데, 진앙 가까이 많은 사람이 몰려있지 않았다는 점도 피해를 줄이는데 효과가 있었을 거로 전문가의 입을 빌린 언론은 짐작한다. 자연을 아이티처럼 뒤틀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쩌면 지진은 지각이 제자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아닐까. 살짝 굳은 지각 위에 사람들은 무거운 건물을 모아놓았다. 댐을 막아 물을 모아놓았다. 쓰촨성의 지진이 삼협댐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추정하는 목소리는 단순한 경고에서 그칠 수 없다.

 

기상관측 이래 최대의 추위가 한창일 때 ‘살리기’라는 단어를 부적합하게 사용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낙동강 지역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가물막이 공사가 24시간 강행되는 현장은 필요 이상 방문자의 출입을 차단하고 있었는데, 낙동강의 가장 하류를 차단하는 ‘함안보’ 공사 현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른 현장과 마찬가지로 방문자를 현혹하는 조감도를 커다랗게 설치한 함안보는 유난히도 좁은 강폭을 가로막고 있었다. 함안보의 관리수위를 애초 정부가 계획하는 7.5미터로 유지할 경우 경상남도 함안과 창녕, 그리고 의령군의 넓은 영역이 침수될 것으로 인제대학교 박재현 교수가 지적한 지역이기도 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함안보 공사를 책임지는 수자원공사는 관리수위를 5미터로 조절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고작 2.5미터 낮추는 정도로 침수 지역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학자들의 지적과 관계없이, 정부의 마지못한 관리수위 조절은 급하게 진행한 ‘4대강 사업’이 얼마나 졸속인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평상시에도 지리산에 폭우가 몰아치면 황강과 남강의 물길이 거세게 몰려든다고 증언한다. 함안보 아래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은 앞으로 온존할 수 있을까. 막대한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보 자체는 끄떡없을지 모르지만 범람하여 강변의 지지옹벽이 무너진다면 인근의 재앙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물 한 방울은 보나 댐을 허물지 못하지만 노도와 같은 물줄기는 다르다. 2000년에 결국 헐어낸 연천댐은 붕괴된 게 아니었다. 당시 건설업체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퍼부은 집중호우는 노도와 같은 강물이 되어 연천댐 상류의 지류를 범람했고, 사람의 개발로 굽이치던 물줄기와 범람원을 주택단지와 농공단지로 잃은 강은 직선으로 단장된 물길을 광포하게 흐르다 연천댐을 밀어내며 좌측의 제방을 일거에 무너뜨린 것이다. 그로 인해 하류의 농촌은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감당해야 했는데, 지구온난화는 국지성호우의 빈도와 강도를 더욱 심화시킨다, 함안보는 멀쩡할 수 있을까.

 

굽이치던 강의 자연스런 흐름이 삽날에 의해 좁은 직선으로 획일화되면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의 가난한 계층에 전가된다. 물이 흐르던 자리에 택지와 공장지대를 만든 자들은 안전한 중심부로 멀찌감치 떨어지고, 중심부에서 배제된 자들이 몰려와 희생양이 되고 마는 현실. 지구촌 자연재해의 한결같은 모습이다. 언젠가 제방이 무너지면서 7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수몰돼 죽어야 했던 김해 일원은 제방을 높여 개발한 낙동강의 범람원이었다. 오랜 세월 강이 차지했던 자연을 사람이 함부로 개발한 뒤 발생한 인재였지만 피해는 오로지 그 땅을 불하받은 농부와 가축에 한정되었다. 개발업자와 복구사업자는 이래저래 큰돈을 벌어들였을 것이다.

 

500년 지나면 강물은 제자리를 찾는다고 말한다. 인간이 제아무리 많은 돈과 장비로 가로막는다 해도 자연은 제 흐름을 결국 되찾고 말 거라는 것인데, 큰 비가 내리자 산골의 집을 가로질러 계곡이 새로 만들어진 현상은 사람이 계곡을 메워 집터를 만들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피해였다. 기름진 땅에서 풍요로웠던 농촌이 보전되었다면 지진으로 인한 아이티의 재앙은 그토록 끔찍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협댐으로 400억 톤 가까운 물을 틀어막아 정체시키지 않았다면 쓰촨성 인민의 희생은 없었을지 모른다. 진정 무서운 것은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 사람이 만든 구조물에 의해 구속되어 움츠러들었던 자신의 몸을 들썩일 때 발생한다. 지구온난화의 의한 기상이변만이 아니다. 올 겨울을 휩쓴 강추위와 강설은 여름철의 강우에 대비하라는 걸 암시하는데, 4대강 사업은 우리를 걱정스럽게 한다. 자연이 제자리를 찾으려 할 때, 자연의 자리를 차지한 사회적 약자들부터 돌이키기 어려운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자세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접근이어야 한다. 독일은 개발했던 강가를 다시 범람원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강폭을 3배로 늘려 조성한 범람원은 평소 많은 인파가 즐기는 유원지로 활용되다 홍수 때 도시의 피해를 완충시켜 주었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알려진 함안군의 상림은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이 조성한 인공림이다. 태수로 부임한 최치원은 둑을 쌓고 나무를 심자 홍수 피해를 지금까지 막고 있다.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자들은 이제 힘을 모아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 깊이 새겨보아야 한다. 남아시아든, 아이티든, 뉴올리언스든, 고베든, 그리고 우리든 마찬가지다. 자연재해의 대안은 바로 자연스러움의 회복에 있다는 것을. (안전뉴스, 2010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