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0. 3. 7. 13:23

2010년을 맞아 지구가 용트림하기 시작한 걸까. 갑자기 지구촌은 지진 공포에 휩싸였다. 1월 12일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인 카리브의 아이티에 진도 7.0 규모의 강진이 발생해 무려 30만을 넘는 사상자를 낳더니 다음 달 27일 남미의 칠레에서 리히터 8.8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800여 명의 인명을 사라지게 했으며 3월 4일에는 대만 산업도시 가오슝에서 진도 6.4의 지진이 발생해 100명 가까운 시민들이 부상을 당했다.

 

2004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세계적 휴양지를 뒤덮은 쓰나미도 지진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북서쪽 1600킬로미터 떨어진 해저 40킬로미터에서 발생한 진도 8.9규모의 지진 쓰나미를 불러들여 남아시아에서 30만 가까운 인파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인도와 스리랑카, 심지어 아프리카 해안까지 사망자가 속출하게 했다. 올림픽을 3개월 앞둔 중국의 쓰촨성에서 발생한 리히터 7.8규모의 지진도 4만에 가까운 희생자를 요구했는데, 끔찍했던 기억이 채 가라앉기 전에 발생한 이번 일련의 지진은 지진이 잦은 국가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와 같이 안전하다는 국가도 불안하게 한다.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상품 몇 개가 바닥에 떨어질 정도의 지진에도 언론이 호들갑을 떨 정도로.

 

사상자와 재물 붕괴의 규모를 비교하는 일은 불경하더라도 일단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에 지진이 발생하면 어느 정도의 피해가 생길까. 그 전에 일본의 걱정부터 들어보자. 1923년 진도 8.0 정도의 관동대지진으로 도쿄 근처 도시들에서 15만 이상이 희생된 기억을 잊지 않는 일본은 만약 진도 8.0규모의 지진이 도쿄에서 다시 발생한다면 1만 명 이상의 사상자에 21만이 넘는 부상자가 나오고 재산 피해가 112조 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대부분의 건물을 진도 7.0에 견디는 내진 설계로 짓는 일본이 그렇다는데, 최근의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 내진 설계라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는 어떨까. 언론은 아이티 정도의 지진이 서울을 덮친다면 사상자가 60만 명 이상 발생할 것으로 경고한 바 있다.

 

얼마 전 약속이 있어 저녁 6시 30분 경, 지하철 3호선 교대역에 내렸다. 2호선과 연결되던 교대역에 9호선까지 이어지면서 이용하는 승객이 무척 늘어난 교대역은 인파로 붐볐는데, 내리려는 시민만큼 타려는 승객도 상당했다. 등 떠밀려 내리자마자 자칫 다시 그 전동차로 밀려들어갈 정도였다. 거기에서 그친 게 아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승강장에서 출입구를 향하는 복도와 계단은 물론, 이어지는 지하2층까지 역사는 만원버스처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가끔 터지는 밀지 말라는 짜증 섞인 성화를 귓전에 흘리며 묵묵히 교대역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다른 대안은 없어 보였다.

 

5분이면 충분한 역사를 20분 가까이 땀 흘리며 빠져나오다 무심코 뒤돌아보다 별안간 아이티 규모의 지진이 지금 발생한다면 얼마나 처참해질까 하는 불경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무리 최첨단 장비와 몸을 아끼지 않는 구조대원이 있어도 감당할 수 없을 텐데 인파로 뒤엉키는 지하철역이 서울에서 어디 하나둘인가. 지하철 1에서 4호선까지 내진 설계 없이 지었다는데 희생자가 6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의 견해가 무력할 정도로 처참하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의 언론은 아이티 지진참사를 인재로 규정했다. 탐욕스런 미국계 다국적기업의 지배로 농촌이 황폐해지자 빈민들이 도시로 몰려와 허름한 집을 짓고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 자리에 지진이 발생하자 피해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일찍이 아이티를 식민지로 착취했던 프랑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 여부는 다른 공간에서 따지기로 하고, 칠레의 지진도 아이티처럼 가난한 이에게 피해가 집중되었다. 자금이 부족해 내진 설계를 외면한 건물이 주로 무너진 것이다. 지진 피해는 아니었지만 2005년 8월 미시시시 강변의 뉴올리언스를 침수시켜 만 명 가까운 시민들의 목숨을 걷어간 허리케인 카트리나도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를 재물로 삼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1995년 1월 일본의 대도시 고베를 강타한 지진도 6천여 명의 희생시켰는데, 대부분 중산층 이하였다. 방진 설계로 지은 고급 주택에 사는 계층에게 큰 피해가 돌아가지 않았지만 판잣집에서 석유곤로로 밥해먹는 가난한 계층과 더불어 목조 건물의 중산층은 호되게 당했다. 잦은 태풍을 이겨내기 위해 무거운 기와로 지붕을 얹은 중산층의 집은 직하 지진에 맥없이 무너졌을 뿐 아니라 불에 타버린 것이다. 전기로 취사를 해결하는 부자들과 달리 가스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당시 언론은 분석했다. 1923년 9월 동경만 일대를 뒤흔든 관동대지진은 어떤가. 혼란에 빠진 인파는 조선인이 불을 지른다거나 우물에 독을 탄다는 유언비어에 흥분, 조선의 복장을 한 동포는 물론이고 발음이 다르다는 이유로 중국인과 오키나와인까지 마구 학살했고, 그 와중에 요주의 인물로 등록된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 인권운동가 들이 제거되는 걸 방관하던 경찰은 학살을 모르는척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가.

 

유라시아와 태평양 판의 경계면에 있는 일본과 달리 유라시아 판의 위에 있는 우리나라도 진도 6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이 단언하는데 진도 6이면 고베의 고속도로의 교각을 뉘어놓은 규모와 비슷하다. 핵발전소들은 진도 6 이상의 지진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다고 자랑하고 최근에 짓는 세계적 규모의 커다란 다리들도 안전을 장담하지만 문제는 그 나머지 대중 이용 시설들이다. 출퇴근에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는 중산층 이하의 시민들 위주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천재지변이 지진만이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그 피해 역시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될 게 분명하다. 지구온난화 이후 강도가 훨씬 강해진 태풍도, 전에 없이 빈번해졌을 뿐 아니라 정확한 예보가 불가능하다는 국지성호우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지구는 겉만 살짝 굳은 뜨겁고 무거운 액체다. 그 액체가 내부에서 천천히 이동하다 약한 지각을 움직이게 해 지진이나 화산이 발생하게 한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원주민과 야생동물은 자연의 자리를 감히 침범하지 않았다. 얇디얇은 지각 표면을 함부로 개발하는 근대 이후의 인간만이 과학기술을 앞세우며 자연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 강이 흐르던 수역과 바닷물이 들고나는 갯벌을 매립해 공장과 아파트를 세우고 골프장과 스키장을 위해 생태계를 절단내며 원시림을 파괴해 거대한 플랜트 농장과 목장을 확장하는 인간은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해를 두고 천재다 인재다 논란을 거듭한다. 다 돈 때문이다. 돈보다 자연에 가깝게 지내는 이는 재해로 인한 피해에서 비교적 멀다. 여진이 발생할 때마다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람들에게 인공 구조물은 공포 그 자체다. 바깥, 다시 말해 인공 구조물보다 자연스러운 공간에 나와야 비로소 안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시에 인파가 몰리는 초고층빌딩과 지하공간을 집중시킨다. 자연스런 강의 흐름도 뒤틀어 놓았다.

 

아이티보다 천 배나 강력한 지진일지라도 칠레의 인명과 재산 피해가 훨씬 작았던 건 내진 설계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인데, 진앙 가까이 많은 사람이 몰려있지 않았다는 점도 피해를 줄이는데 효과가 있었을 거로 전문가의 입을 빌린 언론은 짐작한다. 자연을 아이티처럼 뒤틀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쩌면 지진은 지각이 제자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아닐까. 살짝 굳은 지각 위에 사람들은 무거운 건물을 모아놓았다. 댐을 막아 물을 모아놓았다. 쓰촨성의 지진이 삼협댐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추정하는 목소리는 단순한 경고에서 그칠 수 없다.

 

기상관측 이래 최대의 추위가 한창일 때 ‘살리기’라는 단어를 부적합하게 사용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낙동강 지역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가물막이 공사가 24시간 강행되는 현장은 필요 이상 방문자의 출입을 차단하고 있었는데, 낙동강의 가장 하류를 차단하는 ‘함안보’ 공사 현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른 현장과 마찬가지로 방문자를 현혹하는 조감도를 커다랗게 설치한 함안보는 유난히도 좁은 강폭을 가로막고 있었다. 함안보의 관리수위를 애초 정부가 계획하는 7.5미터로 유지할 경우 경상남도 함안과 창녕, 그리고 의령군의 넓은 영역이 침수될 것으로 인제대학교 박재현 교수가 지적한 지역이기도 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함안보 공사를 책임지는 수자원공사는 관리수위를 5미터로 조절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고작 2.5미터 낮추는 정도로 침수 지역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학자들의 지적과 관계없이, 정부의 마지못한 관리수위 조절은 급하게 진행한 ‘4대강 사업’이 얼마나 졸속인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평상시에도 지리산에 폭우가 몰아치면 황강과 남강의 물길이 거세게 몰려든다고 증언한다. 함안보 아래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은 앞으로 온존할 수 있을까. 막대한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보 자체는 끄떡없을지 모르지만 범람하여 강변의 지지옹벽이 무너진다면 인근의 재앙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물 한 방울은 보나 댐을 허물지 못하지만 노도와 같은 물줄기는 다르다. 2000년에 결국 헐어낸 연천댐은 붕괴된 게 아니었다. 당시 건설업체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퍼부은 집중호우는 노도와 같은 강물이 되어 연천댐 상류의 지류를 범람했고, 사람의 개발로 굽이치던 물줄기와 범람원을 주택단지와 농공단지로 잃은 강은 직선으로 단장된 물길을 광포하게 흐르다 연천댐을 밀어내며 좌측의 제방을 일거에 무너뜨린 것이다. 그로 인해 하류의 농촌은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감당해야 했는데, 지구온난화는 국지성호우의 빈도와 강도를 더욱 심화시킨다, 함안보는 멀쩡할 수 있을까.

 

굽이치던 강의 자연스런 흐름이 삽날에 의해 좁은 직선으로 획일화되면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의 가난한 계층에 전가된다. 물이 흐르던 자리에 택지와 공장지대를 만든 자들은 안전한 중심부로 멀찌감치 떨어지고, 중심부에서 배제된 자들이 몰려와 희생양이 되고 마는 현실. 지구촌 자연재해의 한결같은 모습이다. 언젠가 제방이 무너지면서 7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수몰돼 죽어야 했던 김해 일원은 제방을 높여 개발한 낙동강의 범람원이었다. 오랜 세월 강이 차지했던 자연을 사람이 함부로 개발한 뒤 발생한 인재였지만 피해는 오로지 그 땅을 불하받은 농부와 가축에 한정되었다. 개발업자와 복구사업자는 이래저래 큰돈을 벌어들였을 것이다.

 

500년 지나면 강물은 제자리를 찾는다고 말한다. 인간이 제아무리 많은 돈과 장비로 가로막는다 해도 자연은 제 흐름을 결국 되찾고 말 거라는 것인데, 큰 비가 내리자 산골의 집을 가로질러 계곡이 새로 만들어진 현상은 사람이 계곡을 메워 집터를 만들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피해였다. 기름진 땅에서 풍요로웠던 농촌이 보전되었다면 지진으로 인한 아이티의 재앙은 그토록 끔찍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협댐으로 400억 톤 가까운 물을 틀어막아 정체시키지 않았다면 쓰촨성 인민의 희생은 없었을지 모른다. 진정 무서운 것은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 사람이 만든 구조물에 의해 구속되어 움츠러들었던 자신의 몸을 들썩일 때 발생한다. 지구온난화의 의한 기상이변만이 아니다. 올 겨울을 휩쓴 강추위와 강설은 여름철의 강우에 대비하라는 걸 암시하는데, 4대강 사업은 우리를 걱정스럽게 한다. 자연이 제자리를 찾으려 할 때, 자연의 자리를 차지한 사회적 약자들부터 돌이키기 어려운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자세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접근이어야 한다. 독일은 개발했던 강가를 다시 범람원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강폭을 3배로 늘려 조성한 범람원은 평소 많은 인파가 즐기는 유원지로 활용되다 홍수 때 도시의 피해를 완충시켜 주었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알려진 함안군의 상림은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이 조성한 인공림이다. 태수로 부임한 최치원은 둑을 쌓고 나무를 심자 홍수 피해를 지금까지 막고 있다.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이었던 자들은 이제 힘을 모아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 깊이 새겨보아야 한다. 남아시아든, 아이티든, 뉴올리언스든, 고베든, 그리고 우리든 마찬가지다. 자연재해의 대안은 바로 자연스러움의 회복에 있다는 것을. (안전뉴스, 2010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