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1. 7. 15. 11:17

 

구제역 소식이 한 인기 연예인의 이혼 뉴스로 슬며시 사라지더니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소식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뉴스로 자취를 감췄다. 초대형 태풍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막대한 바람을 몰고와도 언론은 후쿠시마 발 방사성 물질에 대한 언급이 없다. 시민들도 경각심을 잊은 건 마찬가지다. 드센 장마와 태풍으로 지연된 프로야구 게임보다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정부나 시민이나 핵을 대체할 재생 가능한 자원의 전기 확보에 무감각 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편서풍 지대의 서편에 있어도 그렇지, 자전축이 23도 이상 기울어진 지구에서 북반구의 바람이 반드시 동쪽으로 부는 건 아닌데, 우리나라는 지척의 핵발전소 사고와 일본의 후속 처리에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하다. 25년 전 구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발전소가 위치한 우크라이나보다 동북쪽 이웃인 벨라루스에 훨씬 큰 피해를 안겼지만 독일은 두 나라 이상 긴장했다. 이후 시민들의 반핵 분위기는 고조되어 핵발전소의 증설은 거부되었고 핵폐기물 이동과 임시저장도 심한 저항에 부딪혀야 했으며 지지가 늘어난 녹색당이 정가의 일선으로 부각되면서 핵발전소의 조기 폐쇄 의결로 이어졌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도 독일을 뒤흔들었다. 녹색당과 사민당 연정이 합의한 핵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을 후퇴시킨 기민당과 자민당 연합정권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는 일이 거푸 발생하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란 정권은 부랴부랴 전 정권의 핵발전소 조기 폐쇄로 정책을 되돌렸을 뿐 아니라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 보급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줄어드는 핵에너지만큼 전기를 보완하는 차원이 아니다. 온실가스 감소는 물론이고 일자리 창출과 경제의 획기적으로 비약시키기 위해, 소비 전기의 절반을 바람이나 태양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으로 지역에서 충당하는 계획을 세웠고, 시민의 행동이 선도하기에 계획은 순조롭게 당성하리라 기대한다.

 

독일에 흔한 지붕의 태양광 패널과 들판의 풍차는 점점 늘어나는데, 핵발전소 신설을 몸으로 막은 프라이부르크 시는 태양의 도시를 표방하고 나섰다. 세계 모범 환경 도시라는 칭송을 듣는 도시답게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신도시를 건설할 뿐 아니라 기존 도심의 에너지 체계를 개선한다. 프라이부르크만이 아니다. 인근의 작은 도시 쉐나우는 주민의 힘으로 기존 발전소를 매입해 재생 가능한 자원의 전기로 자급하기에 이르렀으며 근처 농촌마을인 징엔은 주민들이 졸라 콤플렉스라는 회사를 설립, 남는 태양광 전기를 판매할 뿐 아니라 가축 분뇨와 나무 부산물로 난방을 하면서 화석연료 사용을 90퍼센트 줄였다. 그들은 핵발전소는 물론이고 온실가스를 내뿜는 화석연료와 화력발전소에서 자유로워졌다.

 

일본은 어떤가. 소프트뱅크를 이끄는 한국계 기업인 손정의가 회사 정관까지 바꾸며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 전기를 생산 공급하는 사업에 적극 나서자 미쓰비시나 스미토모와 같은 대기업들도 신규 참여를 경쟁적으로 모색한다고 언론은 보도한다. 그에 발맞춘 일본 정부는 이른바 자연 에너지 특별조치법을 입안했다. 태양이나 풍력, 지열이나 바이오와 같은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 생산한 전기를 전력회사에서 일정 가격으로 모두 사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로, 거대 전력회사의 독점 공급 체계가 아니라 지역 자립의 분산 체계로 개선하려는 정책이다. 311일 대지진 이후 제한 송전으로 고생한 일본인들도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행동으로 속속 이어지는 모양이다.

 

녹색수도를 표방하는 청주는 고속도로 진출입구 주변에 태양광 패널을 단 주택들을 선보인다. 모르긴 해도 그 마을은 전기를 거의 자급할 거로 보이지만 우리나라에 그런 마을은 매우 드물다. 독일에서 오래 동안 실시했고 일본이 따르려 하는 이른바 발전차액보조금 제도가 유명무실해진 까닭이다. 재생 가능한 자원으로 집과 마을의 전기를 자급하려는 시민의 의지를 북돋는 제도가 발전차액보조금인데, 그 제도를 무력화한 우리 정부는 느닷없이 전력회사에 일정 비율로 재생 가능한 자원의 전기 생산을 의무화했다. 그러자 전력회사는 막대한 의무를 조력발전으로 메우려 갯벌을 파괴하고 태양광 발전 명분으로 산허리를 허물려고 벼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앙 집중 에너지 체계의 폐해다.

 

끔찍한 사고가 아니라도, 대형 전력회사에서 전기를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핵이나 화력발전은 핵폐기물이나 온실가스로 건강을 대대로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급자 위주의 에너지 정책은 필히 과소비로 이어진다. 반면 지역의 재생 가능한 에너지는 환경 피해를 최소화할 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과 절약에 관심을 높인다. 바로 독일이나 일본의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추진하는 동네 에너지의 장점이다. 핵발전소 밀도가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가 도입해야 할 대안이다. 자국의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겪은 일본 뿐 아니라 사고를 대비하려는 독일은 핵발전을 포기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정책을 바꾸려는데, 우리는 핵발전소를 고집한다. 후손에 대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야곱의우물, 20119월호)

 
 
 

서평·추억

디딤돌 2011. 4. 4. 23:33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 이유진 지음, 이매진, 2008.

 

오래된 할리우드 영화 황태자의 첫 사랑을 촬영한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선술집을 몇 년 전에 찾았다. 일정을 마친 일행이 느긋한 마음으로 예약된 시간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고맙게도 아리랑을 들려준 선술집은 실내가 어둑했다. 돈 많은 나라의 유명한 선술집답지 않아 궁금해 하는 우리에게 하이델베르크의 유적을 보전하기 위해 지역에 화력발전을 도입하지 않은 관계로 전기를 아껴 쓰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연구소는 인근 도시에서 전기를 끌어오지만 주민들은 작은 하천과 지붕에서 생산하는 전기에 만족한다는 거였다. 그날 그 선술집의 맥주는 기막혔다.

 

세계는 시방 방사능 비상이다. 예기치 못한 규모의 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일본 동북부, 세계 최고의 안전관리를 자부하던 동경전력의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침수되어 전원이 차단되자 사고는 걷잡을 수 없게 이어졌다. 수천도의 핵연료를 식히며 증기를 발생시켜 발전터빈을 돌리던 냉각수가 보충되지 못하자 수증기는 수소와 산소로 유리돼 발전소 실내에 밀집되었고 이어 발전소 외벽을 깨뜨리는 수소 폭발로 이어지며 다량의 방사능이 유출되었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냉각수 대신 소방차와 헬기로 바닷물을 냉각수를 퍼부어도 분열되는 핵연료의 열을 이기지 못한 연료봉과 격납용기가 파괴되면서 미증유의 막대한 방사능이 편서풍을 타고 대기와 태평양으로 유출된 거다. 사람의 힘으로 제어하기 어려운 일련의 사고는 동경을 비롯한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를 바싹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의 관련 전문가는 냉정하게 후쿠시마 핵발전소 반경 50킬로미터 이내의 주민을 소외시켜야 한다고 참견하기에 이르렀는데, 1986426일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고 이후 설정한 안전반경보다 넓은 면적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사고의 여파는 후쿠시마에 그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안전한 소금의 확보를 위한 사재기가 아비규환으로 연출되었고 미국과 유럽에 후쿠시마 발 방사능이 감지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와중에 일본에서 수입한 물고기가 잘 팔리지 않는 우리나라도 편서풍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계 400기가 넘는 핵발전소 중 수명이 다해가는 시설이 많고 그중 보도되지 않아 그렇지 아찔한 사고를 모면한 발전소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한결같이 시설이나 운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확신했을 터. 하지만 어느 곳의 어떤 핵발전소라도 사고가 나면 세계가 아연실색 긴장한다. 설계 시효가 끝나 연장 운영하는 고리의 우리 핵발전소는 안전하다 확신할 수 있을까. 일본도 설계를 믿고 방심하다 당했는데.

 

양수발전이란 게 있다. 해발고 400미터 이상 차이가 나는 두 곳에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어 위 저수지에서 아래로 물을 흘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의 발전소다. 한두 시간 전기를 생산한 뒤 다시 아래 저수지의 물을 위로 끌어올리느라 기껏 생산한 전기의 1.5배 가까이 소비해야 하는 양수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는 수력이라고 애써 강조하지만 독일의 한국계 에너지 전문가는 핵발전소의 사생아라고 혹평했다. 소비량이 작은 밤에도 끌 수 없는 핵발전 때문에 전기는 남아돌고, 그 전기를 활용해 아래 저수지의 물을 끌어올린 뒤 소비량이 급격히 올라가는 낮에 전기를 생산하는 양수발전은 핵발전소가 없다면 만들 까닭이 없기 때문인데, 양수발전소는 우리의 수려한 자연 생태계를 여기저기에서 파괴한다.

 

생태계만이 아니다. 핵발전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용 후 핵연료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자손손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거의 영구적으로, 사용 후 핵연료에 우라늄이 분열할 때 생기는 플루토늄이 포함되는데, 반감기가 24천년에 달하는 플루토늄은 1그램으로 100만 명을 폐암에 걸리게 할 정도의 맹독성 방사능이 분출한다. 수명 30년 안팎에 불과한 핵발전의 열매는 현 세대가 독점하는 대신 그 치명적인 쓰레기를 수백세대의 후손에게 떠넘기는 발전 방식은 누가 뭐래도 친환경도 아니다. 후손을 위한 발전은 더욱 아니다. 그런 핵발전소가 일본과 우리나라에 곧 100기 이상 가동될 모양인데 현재 10여 기 가동하는 중국도 70여 기를 계획한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의 핵발전소에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당대와 후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나. 화력은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수력은 생태계를 파괴하며 우리나라에서 조력은 해양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게 훼손하는데, 전기 없이 하루도 편히 살 수 없는 우리는 어떤 대안을 찾아야 하나.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발굴하자는 이야기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진지하게 나오지만 태양과 바람으로 핵이나 화력만큼 막대한 에너지를 생산할 것 같지 않다. 그런 에너지를 태양과 바람으로 얻으려면 막대한 면적의 땅과 바다를 확보해야 하고 엄청난 자본이 필요할 게 틀림없다. 전기가 모자라면 우리의 에너지 집약산업 뿐 아니라 가정이나 사무용 건물, 어려 종교 시설이나 시장과 농어촌도 지금과 같은 삶을 유지하지 못한다. 인구에 비해 국토가 좁은 우리 땅에서 얻는 태양이나 바람 에너지로 지금과 같은 생활을 보장할 수 있을까. 그와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는 핵이나 화력발전보다 생산비가 월등하게 높다는데,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대표적 환경단체 중의 하나인 녹색연합에서 젊음을 바친 이유진은 그런 답답한 마음을 가진 보통 시민들에게 희망의 대안을 제시한다. “동네 에너지가 희망이라는 거다. 돈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중앙에서 집중적으로 생산해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공급 체제가 아니라 동네에서 생산해 얼굴을 마주하는 이웃과 논의해 전기를 생산해서 나누는 지역 자급 체제를 주장하는 거다. 100만 킬로와트 급 발전소 한 기를 만드는데 대략 1조 원 이상의 자금이 들어가는데 동네에서 어떻게 그런 막대한 돈을 어떻게 염출해 전기를 생산하고 나눌 수 있겠는가 많은 이는 의심하겠지만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를 쓴 이유진의 설명은 명쾌하다. 동네 규모에 따라 소박하게 마련하자는 거다. 다음 세대의 생명까지 생각한다면 그 이외의 방법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많은 국가와 도시에서 이미 실현하는 사례를 들면서 우리도 당연히 가능하다는 걸 전하려 노력한다.

 

태양과 바람만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단 그 두 가지를 생각하면, 태양과 바람은 소비자에게 영수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시설을 갖추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발전 이후 발생하는 온실가스나 방사능과 같은 치명적 환경문제는 거의 없다. 사실 핵과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의 가격이 싼 건 환경과 후손에 미치는 피해를 원가에 가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자손손과 생태계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화석연료나 핵을 사용하는 발전의 비용은 지금보다 현저히 높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50년 이후 사용하는 전기의 전부를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 원대한 목표를 착착 진행하고 있는 덴마크와 독일과 같은 국가들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생산 단가가 오히려 가장 저렴하다고 산정했다. 후손의 생명을 염두에 둔 조상이 편중되지 않게 계산한 결과였다.

 

바다에 풍력발전 단지가 거대한 덴마크, 생태주거 단지의 거의 모든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붙인 독일, 민간기업과 관료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메카를 꿈꾸는 중국 더저우에서 세계는 많은 경험을 공유하지만, 비록 규모는 작더러도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동네는 많다. 이유진은 충남 홍성군의 여러 사례를 들며 그 동네 사람의 의견을 밝게 전한다. 광주와 제주에도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찾는 동네가 있다. 유채와 가축의 배설물과 같은 훌륭한 에너지원도 찾아내는 동네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걸 확인한다. 하지만 아직 초보단체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의사당과 청와대의 넓은 지붕을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없을까 묻는 이유진은 해외에서 시도하는 적극적인 시민의 자세를 눈여기며 우리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새삼 다짐한다. 생각해보라. 독일의 바람이 삼면이 바다이자 산악국가인 우리보다 강할까. 우중충한 날씨가 많은 유럽의 태양이 우리보다 밝을까.

 

일본의 경제평론가 우치하시 가츠토(內橋克人)식량(Food)과 에너지(Energy)와 돌봄(Care)은 자유무역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각 나라와 지역사회의 자급 능력이나 자주적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이른바 ‘FEC 자급권을 제창했다. 먹을거리를 나누는 일, 노인과 아이와 병약자를 보살피는 일은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돈을 주고 맡기기보다 평소 얼굴을 마주 대하며 희로애락을 나누는 이웃과 의논해서 해결해야 지속가능하고 바람직하다는 의미의 주장인데, 그거에 하나 더. 에너지도 다르지 않다는 게 경제평론가의 주장이다. 논밭 일을 서로 땀 흘려 거들고 땔나무를 나누는 일은 이웃 사이에 허물없이 지내는 동네에서 자연스럽다. 춥고 헐벗은 이를 따뜻한 품에 안을 수 있는 이는 동네에 있다. 두터운 가죽과 털을 잃고 사나운 인상과 억센 근육도 없으며 손톱과 발톱과 이빨이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은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 서로 돕지 않았다면 이제까지 생존했을 리 없다.

 

싫든 좋든 외부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가여운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석유위기 시대, 그리고 핵발전과 방사능 위기 시대의 대안은 환경이나 생명보다 돈과 권력을 추앙하는 중앙 집중의 자본에 맡길 수 없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에서 이유진은 독자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 것인데, 핵산업에 관련하는 자본을 배려하려는지, 우리와 중국 정부는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여전히 선언한다. 그 점에서 매우 애석하게도 미국 오바마 행정부도 마찬가지인데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사뭇 달라 보인다. 핵에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던 독일의 메르켈 정권은 실각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고 해외 언론들은 전한다.

 

이론적으로 태양과 바람과 지열만으로 우리는 원하는 에너지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다고 전문가는 확신하지만 재생 가능한 에너지 역시 중앙 권력과 자본에 의해 머나먼 사막에서 집중적으로 가져온다거나 막대한 자본을 끌어들여 일방적으로 발굴해야 한다면 의미가 없다. 지역과 동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에너지 정책은 의존과 불신, 그리고 낭비와 사고를 낳을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의 주민들처럼 지역에서 소박하게 생산한 에너지에 맞게 삶의 방식을 관리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는 시방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를 지나치게 낭비하고 있다. 낮은 밝고 밤은 어두워야 하듯,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워야 정상이건만, 지구온난화와 방사능 위기를 자초한 사람들은 지독한 에너지 낭비로 겨울 같은 여름, 여름 같은 겨울을 만끽하다 자신의 건강마저 잃었다. 이제 위기는 흉흉한 내일을 거듭 경고한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이웃과 후손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자급할 희망을 모색해야 할 텐데,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는 그 빛을 비춰줄 것이다. (인천in, 2011.4.?)

 
 
 

도시·인천

디딤돌 2010. 9. 3. 13:01

 

태풍 곤파스가 할퀴고 지나간 다음날 또 한바탕 비가 떨어졌다. 삼복더위를 밀어낸 정체전선이 아직도 중부지방을 떠나지 않기 때문인 모양이다. 여름 장마 뒤의 가을장마. 그 전후에 태풍. 사실 이런 구도의 기상은 일찍이 인천에 없었다. 기상 전문가들은 역시 지구온난화를 원인으로 꼽는다. 다른 해역보다 섭씨 2도 이상 높은 동남아와 제주도 인근 해상까지 북태평양 고기압이 세력을 확장했다는 것이다. 태풍 3개가 한꺼번에 발생한 것도, 그 중 하나인 곤파스가 예년의 이맘때와 달리 일본이 아니라 우리 서해안으로 진로를 바꾼 것도 원인이 거기에 있다고 한다.

 

러시아의 대화재와 식량감산이 밀 수출 금지로 이어지자 아프리카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이때, 더욱 심화되는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거나 완화시켜야 한다는 다짐은 생존을 위해 절박한 행동이 되어야 한다. 식량의 4분의3을 해외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의 처지는 사실 아프리카보다 심각할 수밖에 없다. 다국적기업의 씨앗에 종속된 요즘의 지구촌은 재배하는 농작물은 대부분 지구온난화나 기상이변에 취약한 품종이다. 따라서 우리보다 지구온난화에 민감해야 할 국가도 드물 것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수입할 식량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수도권 제1의 곡창지대인 강화는 고려조부터 갯벌을 대규모로 간척한 곳이다. 덕분에 몽골의 내침에도 수십만의 인구가 버틸 수 있었다지만 그건 쌀만 생각한 편협한 계산이다. 갯벌은 육지에서 가장 높은 열량을 생산하는 논보다 10배나 많은 영양분을 베푸는 까닭이다. 육지의 영양물질을 한강을 거쳐 수천 년 동안 내려놓은 강화의 갯벌은 우리 밥상을 지켜온 어패류의 오랜 산란장이고 성장터전이다.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먹고살 수 있었던 것은 고려 때나 지금이나 갯벌에 게 있기 때문이다. 농한기가 없는 갯벌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들어가 풍성하게 먹고 남을 어패류를 맨손으로 채취해 이웃과 나눌 수 있었다.

 

갯벌에 무한히 많은 생명이 깃들 수 있는 원초적 힘은 플랑크톤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10미터가 넘는 강화 일원의 너른 갯벌은 거대한 스펀지다. 고운 개펄 속의 미세한 틈마다 하루에 두 번 밀려왔다 나가는 바닷물이 배어들면 1그램에 10억 마리 이상 분포하는 식물성플랑크톤이 광합성에 매달린다. 덕분에 식물성플랑크톤을 먹는 동물성플랑크톤이 수천만 마리 따라 들어오니 수많은 조개와 게들이 몰려들고, 어류와 새들이 보금자리를 틀 수 있었다. 수천 년 이상 맨손으로 어패류를 채취하던 우리 조상은 갯벌의 식물성플랑크톤이 생산해내는 엄청난 산소를 들이마셨고, 조개와 게들이 성장하면서 두툼해지는 탄산칼슘 껍질은 이산화탄소를 효과적으로 제거해주었다.

 

육상에서 쏟아내는 유기물질을 자연스레 정화하니 인체의 콩팥, 산소를 생산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니 인체의 허파, 수많은 어패류들이 알을 낳고 자라니 인체의 자궁에 비견될 수 있는 갯벌이 서편에 있다는 건 주목할 만한 자랑이다. 산소를 공급해줄 뿐 아니라 편서풍에 습기를 띄워보내니 육지는 목마르지 않을 수 있다. 그뿐인가. 넓은 조간대가 파고를 낮춰 태풍이나 해일로 인한 피해를 완충시킨다. 인천과 수도권은 그 덕분에 역사 이래 태풍과 파도로 인한 자연재해가 크지 않았다. 강화 일원의 갯벌은 우리의 문화와 역사의 중요한 축일 뿐 아니라 생존을 위한 비빌 언덕이었다고 풀이할 수 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를 돈벌이 기회로 삼으려는 세력이 강화의 갯벌을 파괴하려 든다. 조력발전을 위해 갯벌에 제방을 막아 바닷물의 흐름을 차단하려는 행위가 마치 지구온난화를 대비하려는 신재생에너지 창출이라도 되는 양 시민사회를 호도하고 나선다. 제방 사이의 통로로 바닷물의 흐름을 좁혀 발전터빈을 돌리면 이산화탄소가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누가 감히 갯벌의 순기능을 파괴하는 조력발전이 지구온난화를 극복할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겐가.

 

강화도 남단과 영종도 북단을 잇는 인천만조력발전은 17킬로미터의 제방을 필요로 하고 강화도에서 교동도, 서검도를 거쳐 석모도까지 잇는 강화조력발전은 8킬로미터가 넘는 제방이 있어야하는데, 그 규모의 제방 안에 들어갈 막대한 모래는 해양생태계의 기반인 갯벌을 준설해 가지고 올 것이다. 제방과 발전시설을 세우기 위해 철근 시멘트를 나르고 붓는 행위에서 대기에 필연적으로 내뱉는 이산화탄소도 무시할 수 없지만, 발전소 가동으로 지구는 더욱 온난화될 것이다. 갯벌의 탄소동화작용, 어패류의 산란과 패각 성장으로 이산화탄소가 흡수되는 순기능은 사라진다. 화력발전과 비교해 상쇄할 이산화탄소의 양으로 단순히 판단할 사항이 아니다. 조력발전은 생존의 기반인 갯벌을 당대에 질식시킬 것이다.

 

국가의 경제적 이익에 봉사하는 듯 과장하는 조력발전 추진 세력은 신재생에너지원 발굴을 위한 노력인 듯 표정을 관리하지만, 그건 발전시설 개발업체의 홍보용일 뿐이다. 조력발전으로 챙기는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량’ 만큼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를 더 지을 수 있다는 계산이 숨었을 수 있다. 올해 3월 국회에서 통과한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ㆍ이용ㆍ보급 촉진법’ 개정안은 화력발전소 비중을 줄여 지구온난화를 조금이라도 완화하자는 취지다. 발전사업자 돈벌이를 자원하려는 제도일 수 없다. 2012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2퍼센트, 2022년까지 10퍼센트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라는 법에 갯벌을 파괴하는 조력발전을 포함시키려는 행태는 손쉬운 돈벌이를 위해 후손의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과 다르지 않다.

 

최근 세계적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1950년대 이후 식물성플랑크톤 양이 40퍼센트나 줄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지구온난화를 그 원인으로 파악하는 논문은 식물성플랑크톤의 감소로 산소 발생이 줄어들 뿐 아니라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면서 지구온난화는 더욱 가속될 것으로 주장했다. 나아가 해양생태계가 황폐화될 것으로 덧붙였다. 해마다 1퍼센트 씩 줄어드는 식물성플랑크톤은 농토에서 영양분이 여전히 흘러드는 인도양은 예외하고 주장했는데, 강화에 세계최대의 조력발전을 두 곳이나 세워 갯벌을 파괴하려는 인천 앞바다는 어떤 내일을 예고할까. 생명을 희생양으로 전기를 구해야 옳은가. (리뷰인천, 2010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