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8. 4. 9. 00:56
 


언젠가부터 주민들이 골프장 계획에 찬성하고 나선다. 지금 전국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예정되는 골프장 조성 지역에서, 주민들이 발 벗고 반대운동에 돌입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주민들이 골프장 조성을 반대할 때, 환경단체는 운동하기 쉬웠다. 골프장이 지역사회와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알리고, 주민과 함께 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 요즘은 아니다. 주민들이 골프장의 문제를 잘 알면서도 반대는커녕 적극 유치하기도 한다. 그 사이 무슨 변고라도 생겼을까.


공개방송에 출연한 정부 고위 관료가 “바보들이나 투기하지 않은” 거라고 자신 있게 주장하기 이전부터, 우리나라의 부동산 거래에 이른바 ‘먹튀 현상’이 끼어들었다. 먹고 튀는 현상은 지역에 뿌리내리는 ‘정주의식’과 상극이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려면 먼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관심은 애정으로 이어진다. 애정을 가진 주민은 마을에 대한 문화와 역사에 자부심을 갖는다. 그런 주민일수록 마을의 축제와 정치에 참여하고 싶을 것이고, 같은 생각을 지닌 이웃과 반갑게 만날 수 있는 마을이라면 부동산 가격을 높이려는 이유로 이사 가려는 주민이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 마을에서 먹튀 현상은 흔하게 발생하지 않을 게 틀림없다.


은평뉴타운을 보자. 관련 홈페이지에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신 주거 공간 은평뉴타운, 균형 발전된 친환경도시 건축 재개발, 새로운 주거환경의 창조 재건축, 은평구가 새로운 주거문화를 만들어가겠습니다.” 하며 애드벌룬을 띄운 은평뉴타운은 강북의 강남을 꿈꾼다. 북한산 스카이라인을 거의 가로막는 은평뉴타운은 시방, 낮은 주택과 주변 경작지로 한가롭던 구파발과 진관내ㆍ외동 일원의 백만 여 평을 두둥실 떠올렸다. 2011년 10월에 입주 완료할 만6천여 세대의 4만5천 명은 고즈넉했던 과거의 흔적을 말끔히 지운 시멘트 공간에서 집값 비싼 뉴타운의 주민이 되었다는 데 자부심을 가질 것인가.


서울특별시 도시개발공사에서 ‘SH공사’로 개명한 서울시 투자 건설업체에서 ‘전면 수용방식’으로 개발한 은평뉴타운은 북한산 기슭의 절경을 독점한다. 변두리에 위치해 경제적 여유가 상대적으로 낮은 서울시민에게 주거를 허용했던 지역이었지만 우뚝우뚝 솟은 아파트 숲으로 개명하는 지금은 가난한 사람들의 출입을 봉쇄할 기세다. 한데, 2011년 이후의 주민들은 자신의 아파트가 터전 잃은 먼저 주민의 애환을 밟고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을까. 빈민으로 전락한 세입자는 물론, 평당 600만 원 받고 쫓겨난 주민이 있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을까.  


‘은평뉴타운’이란 그럴싸한 이름을 단 아파트단지가 기획될 때, 지역에 터 잡았던 한 환경단체는 주민들과 아파트단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려 무던히 애를 썼다. 도시 안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기운을 철근 시멘트로 칠갑해 차단하기보다 자연과 공존하는 공간으로 가꾸자며 발품을 팔았다. 한남정맥을 잇는 동ㆍ식물상을 조사하고, 그 분포를 제시하기도 했다. 법정 보호 대상인 맹꽁이의 서식처임을 밝히며 보전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환경단체의 뜻에 잠시 솔깃해하던 일부 주민마저 서울시가 풀어낸 돈다발에 마비된 결과였다.


평당 400만 원 이하로 평가하면 절대 팔지 않겠다는 펼침막을 곳곳에 붙인 주민들은 내심 300만 원까지 양보하려 했다. 다른 지역의 보상과 비교해 은평구의 마지노선을 그리 정한 거였는데, 웬걸! SH공사는 선뜻 평당 600만 원을 제시하는 게 아닌가. 그러자 빛바랜 펼침막이 순식간에 치워지고 엉뚱한 곳에 새로운 펼침막이 나붙었다. 자신의 지역도 은평뉴타운 대상지에 끼워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환경단체는 주민에게 물었다. 600만 원을 내준 SH공사가 아파트를 얼마에 분양할 거 같으냐고. 예전과 같은 평수의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을 거로 믿느냐고. 하지만 소용없었다. 먹고 튀면 그만이 아니냐는 ‘우문현답’이었다. 땅과 어우러졌던 공동체는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은평뉴타운 부지에 마을 공동체가 있었다. 보잘 것 없는 단층 양옥이지만 ‘한양주택’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200여 가구의 주민들은 대소사를 함께 나누고 있었다. 1972년 ‘7ㆍ4남북공동성명’ 이후, 남쪽으로 방문하는 북측 대표단에게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1978년 박정희 정권이 급조한 한양주택은 처음 조악했다. 천편일률적이었으며 날림이었다. 하지만 한양주택에 강제 이주해야 했던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마을을 돈독하게 가꿨다. 여기저기 꽃과 나무를 심어 획일적인 집과 비좁은 골목에 개성을 불어넣었고, 함께 김장을 담그고 명절도 준비하면서 주민들은 마을 공동체에서 두터운 정을 나누었다.


1996년 서울시의 ‘아름다운 마을’ 1호에 선정되었던 한양주택 주민들은 은평뉴타운에 자신의 마을이 포함되는 걸 한사코 반대했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한양주택을 근대 문화재로 보존하자.”는 문화시민단체의 소명의식과 차원을 달리하는, 뿌리내린 주민으로서 당연한 존치 요구였다. 하지만 서울시는 집요하고 무자비했다. 지장물과 토지조사를 거부하고 단체와 일인시위를 마다하지 않던 주민들의 행동을 보상금을 더 받아내기 위한 이기주의로 몰아붙이면서 한양주택을 은평뉴타운 부지로 포함시키는 행정력을 강행한 것이다. “시위를 계속할 경우, 시위 당사자에게 재개발 시 정해진 평수보다 적은 평수를 배당하겠다!”는 회유와 협박으로 접근, 한 가구 씩 정든 마을에서 떠나도록 유도한 것이다.


“희망을 가지고 한양주택을 지키기 위해 서울시청과 싸웠지만 지금은 절망 밖에 남은 것이 없다.”며 분노하고 또 불안해하던 한양주택 주민 대부분은 은평뉴타운에 정착하지 못했다. 기존 주민이 재개발 아파트단지에 입주할 가능성이 10퍼센트에 불과한 만큼, 은평뉴타운 부지의 옛 주민 90퍼센트도 은평구보다 저렴한 지역으로 주민등록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평당 600만 원이라는 당의정에 마음이 빼앗긴 주민은 물론이지만 다른 곳으로 이전하더라도 마을 사람들과 한데 모여 살고 싶다던 한양주택의 주민들까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골프장은 녹지가 아니다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작년 서운동과 남촌동의 그린벨트에 대한 골프장 조성을 승인했다. 당시 그 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할 때였다. 인천광역시 도시계획국장이던 이는 “골프장은 녹지”라는 주장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녹지는 생태계의 특징인 ‘생물종의 다양성과 순환이 배려되는 공간’이어야 하므로 영국산 수입 잔디 이외의 식생을 허용하지 않는 골프장을 녹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요지부동이었다. 도시계획위원회에 참여하는 위원 중 유일한 생태학자인 필자의 주장은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다고 폄훼했던 그 국장은 무슨 근거로 골프장을 녹지라고 우긴 것일까. 그 무렵, 인천시장이 골프장을 녹지라고 말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던 사실에 미루어, 인사권을 쥔 상급자의 눈치를 보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녹지에 대한 생태학자의 견해를 무시하는 공직자의 태도는 바람직하다고 여길 수 없었다. 녹지는 생태학적 개념으로 정의해야 옳다. 잔디가 녹색이므로 골프장이 녹지라고 주장한다면 당구대도 녹지로 보아야 한다. 녹색 안경을 착용하면 제 눈앞의 모든 게 녹지로 변한다.


현행 우리의 제도는 도시개발의 무리한 확장을 억제하는 그린벨트에도 체육시설을 세울 수 있도록 규정한다. 오는 2014년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인천시는 많은 체육시설을 그린벨트에 조성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체육시설에 골프장도 포함된다. 따라서 그린벨트에 골프장을 조성하는 건 불법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한데, 그를 위해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용도 변경을 위한 심의가 필요한 모양이다. 서운동과 남촌동 그린벨트에 골프장을 조성하려는 인천시는 도시계획위원회에 심의를 의뢰했고, 현장까지 다녀온 위원들은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원장의 다수결 요구를 수용, 인천시의 계획을 일사천리로 승인해주었다. 인천시의 골프장 계획에 순응했던 일부 위원은 좀 민망했든지 그 자리에서 계양산의 골프장은 허락할 수 없다는 개인의 생각을 넌지시 피력했다. 대기업 롯데가 인천의 진산인 계양산에 골프장을 추진하는 걸 두고 한 마디 던진 것이지만, 결국 말 뿐이었다. 그 위원을 포함한 대부분의 위원들은 표결에 성급히 임하면서 롯데의 계획마저 지지했던 것이다. 다수결을 위한 필수 전제인 합의, 다시 말해, 표결 처리 여부를 묻는 합의절차는 물론 없었다. 


장 폴 사르트르도 일찍이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지식인의 비판적 행동을 요구하며 “소외받는 계층을 이해하고 대변해야 하는 지식인의 가치”를 역설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예나 지금이나, 동이나 서나, 많은 지식인은 권력과 돈 앞에 무력한 모양이다. 리영희 선생도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지식인이 부족하다는 걸 한탄했는데, 적어도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의 풍경은 다분히 그랬다. 소외받는 계층의 이해와 무관한 의사를 표명했을 뿐 아니라, 정의롭지도 않았다. 그 위원회의 직전 회의에서 보여준 자신의 주장을 간단히 번복하는 불소신을 감추지 않았다. 그 결과, 기회 있을 때마다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홍보하는 롯데는 부끄러운 지식인의 성원 덕분에 관문 하나를 무사히 통과했고, 이후 무슨 영문인지 계양산의 골프장 예정지 주변 녹지에 고독성 농약이 살포돼 알을 낳으려던 개구리가 무더기로 죽었다. 누구의 소행인지 아무도 모른다. 알아내려고 하지도 않는 가운데 나무들도 말라 죽었다. 자주 찾는 등산객들이 증언하듯, 일찍이 없던 현상이다.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았다는 계양산은 1990년대 초, 위락단지로 파괴될 위험에 처했던 곳이다. 당시 주식회사 대양개발은 골프연습장과 위락시설로 개발하려 했으나 ‘계양산 살리기 범시민운동 추진위원회’로 모인 시민사회는 여야 정치권과 힘을 모아 개발을 막아낸 바 있었다. 당시 인하대학교 교수였던 추진위원회 정요일 위원장과 현재에도 인하대학교 교수인 최원식 추진위원이 노랫말을 담은 노래 <계양산에 올라>를 가수 안혜경 씨가 취입해 보급하며 반대운동에 나섰던 ‘계양산 살리기 범시민운동 추진위원회’는 10만 명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개발을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인데, 계양산은 현재 심각한 위기 상태다. “인천의 역사, 부평의 숨결, 우리의 산소공장 계양산을 보존하자!”는 구호를 내걸었던 인천의 종교인과 법조인, 학계와 교육자들은 시방 어디에 있는가. 지금의 정치인은 왜 계양산 골프장을 찬성하고 나서나. 당시보다 인구가 늘어난 인천시와 계양구에서 계양산을 이용하는 시민의 수는 부쩍 증가했건만, 10만 이상이던 서명자는 왜 이 시점에도 조용하기만 한 걸까. 보급한 노래의 “테이프가 시민들에게 계양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뿐만 아니라 환경문제 전반에 대한 관심과 참여의 폭을 넓히는 기폭제가 됐으면 좋겠다.” 고 말했던 추진위원회 인사들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이 소유한 45만 평 중 9만여 평을 개발하겠다고 승인을 요청한 당시 대양개발과 달리, 롯데건설은 18홀 규모의 골프장과 시민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한데, 롯데건설은 집요하기까지 하다. 골프장을 골자로 한 개발제한구역 1차 관리계획을 1998년 신청했다가 시민단체의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2000년과 2003년 다시 시도했다 역시 실패했고, 2006년에 골프장 계획을 4번째 신청한 것이다. 이에 인천 45개 시민ㆍ사회단체들이 ‘계양산 골프장 저지 인천시민 대책위원회’를 발족, 골프장 개발 반대운동에 돌입했으나 현재 그 파급력은 미약하다.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승인하기 전에 20대 여성 활동가와 50대 목사가 계양산 소나무 위에 올라가 200일 넘게 릴레이 농성을 벌였고 계양산 인근에서 촛불집회를 거듭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참여는 무척 저조할 따름이다. 민간 자본의 계양산 개발을 허용하지 않겠다던 인천시도 수장이 바뀐 뒤 돌변했고, 재정 수입을 앞세우는 계양구도 골프장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데, 관리계획을 힘겹게 무산시켜왔던 시민사회의 반대 목소리는 이제 시민의 귀에 의미 있게 전달되지 못한다.


4번째 신청한 관리계획에서 롯데건설은 신격호 그룹회장이 소유한 계양산 북측 목상동과 다남동 일원 74만 평의 기슭에 27홀의 골프장과 수도권 최대의 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테마파크는 군사보호지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사실상 개발이 불가능했다. 롯데는 그 사실을 짐짓 모르는 체하며 발표했고, 그 계획을 믿은 일부의 주민은 골프장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려 했다. 자신의 토지가 부지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보상을 기대할 수 없었지만, 테마파크에 찾는 관광객이 발생시킬 수익을 기대했을 수 있었겠다. 롯데건설이 애초 27홀에서 훼손된 지역에 국한된 18홀로 골프장의 규모를 줄인 것도 시민사회의 반대 목소리에 양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언론에 연일 보도되는 나무 위 농성자의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의도로 보였다.


계양산 골프장은 아직 절차가 남았다.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주민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환경영향평가 때문에 개발이 보류된 전례가 없다. 예상되는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실시하는 환경영향평가는 개발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환경영향평가를 담당하는 기업은 환경영향평가를 의뢰한 자본의 눈치를 보며 평가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걸 개발회사는 잘 알기 때문이다. 환경영향이 예상되므로 개발을 변경하거나 규모를 줄이라고 보고서를 작성한다면 그 환경영향평가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이후 어떤 개발회사도 그런 기업에 환경영형평가를 의뢰하지 않을 터이니. 설악산이 설악산 인근 주민들의 소유가 아니듯, 계양산도 계양구민들만의 이해로 개발 여부와 방식을 판단할 수 없건만, 타 지역 주민을 배제하는 ‘계양발전협의회’는 계양구청장과 함께 “지역발전을 위해 골프장을 유치하자!”고 외치는 마당이다. 골프장이 녹지라는 인천시도 한몫 거드는데, 어찌 감히 환경영향평가로 문제를 지적할 텐가. 하루 1만 명의 시민이 찾는 계양산은 고라니, 반딧불이, 두꺼비를 비롯하여 삼지구엽초, 서어나무와 같은 희귀 동ㆍ식물이 서식한다. 그들의 권리는 누가 대변할 것인가.


보전하려는 주민이 드물거나 목소리가 약할 경우, 개발에 대한 자연 생태계의 보전은 몹시 어렵다. 충분한 타당성과 환경성 검토 없이 추진되는 인천시의 골프장은 두 곳의 그린벨트와 계양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현재 굴업도도 위기다. 1994년에서 1995년, 가열찼던 덕적도 주민과 인천 시민사회와 환경단체의 행동에 힘입어 핵폐기장 위협에서 간신히 벗어난 굴업도의 역사와 문화와 생태계는 골프장을 추진하는 국내 굴지의 기업 시제이그룹(CJ)에 의해 파괴되기 직전인데, 시방 조용하다. 핵폐기장 반대운동에 참여했던 덕적도 주민과 인천시민도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골프장 추진 사실을 알지 못할지 모른다. 갯벌과 경작지를 비웃을 강화도 양사면 인화리의 골프장은 멸종위기동물인 금개구리와 맹꽁이의 생존을 위협한다. 강화군에서 계획되는 골프장은 더 있다. 바다에 인접한 길상면 선두리와 삼산면 석모도에도 들어설 예정이다.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송도신도시와 청라신도시 부지에도 기정사실처럼 포함돼 있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인천다움을 지우는 재개발


2007년 5월,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 모임’이 출범했다. 세칭 ‘배다리’라고 말하는 동구 송림동과 금창동 일원의 주민과 문화운동에 나서는 시민단체가 모여 신흥동 삼익아파트에서 동국제강 사이를 연결하려는 산업도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대책을 세우려고 ‘중구 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 주민 대책위원회’와 힘을 모아 행동에 나선 것이다.


‘배다리’는 인천 토박이 민중의 정서가 아련하게 깃든 곳이다. 1990년대 이전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한 세대 전부터 죽 늘어선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참고서와 사전을 구입했고, 당시 어른들은 1920년에 문을 연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기울이던 골목이었다. 배다리에는 인천의 근대 역사와 문화유적도 적잖게 보전되어 있다. 인천 최초의 근대 학교인 현 창영초등학교는 3ㆍ1운동이 인천에서 시작된 곳답게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건물이 남아 있고, 1892년 한국 최초의 사립학교인 동명학교와 영화학교가 자리 잡은 터에는 현재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으로 사용하는 당시의 여선교사 합숙소가 보전되고 있다. 1905년 지은 여선교사 합숙소는 르네상스 양식으로, 인천 기독교의 오랜 산실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도원고개라고 말하는 배다리 인근의 우각현(쇠뿔고개)은 1897년 3월 27일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를 최초로 연 역사의 현장이 아닌가. 제물포에서 노량진까지 이어주던 그 철도가 부설되기 전, 제물포에 도착한 외국인이 한양에 가려면 노량진까지 작은 배를 타거나 조랑말 잔등에 올라 뒤뚱거리며 진창길을 감내해야 했다고,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전한다.


헌책 골목에서 문학서적을 뒤적였을 인천의 전 문인협회장인 김학균 시인은 “배다리는 ‘베니스의 상인’과 같은 이야기 속에 빠지고 영국의 한적한 시골이 세계인의 머릿속에 살아있는 랜드마크 같은 ‘아이온 헤일리’ 촌”과 같은 골목이라면서, 헌 책방거리로 보전되지 못하는데 안타까워한다. “쓰레기를 시래기로 만들어먹고 조각 천을 모아 조각보를 만드는 민족”이 자신의 오랜 문화를 동강낸다는데 기막혀하는 그는 “배다리 문화를 헌책방과 더불어 인천인의 마음속에 남을 랜드마크로 만들어야 할 때”라고 시민에게 촉구하면서 “후손에게 보일 수 있는 것이라면 적어도 없어지지는 않게 해야 할” 선조의 역사적 책임을 되뇐다. 주민의 걱정도 산적하다. 폭이 50미터가 넘으니 공동체가 단절될 것이다. 통학로를 우회하려면 불편할 뿐 아니라 위험할 것이다. 설사, 고가도로로 계획이 바뀔지라도 문제는 남을 것이다. 보기에도 흉하지만 소음과 대기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게 아닌가.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으며 도로 개설에 대한 보상과 실시설계가 이미 완료되고 70퍼센트 이상 공사가 진행돼 계획 변경이 어렵다.”고 인천시 관계자가 주장했다지만, 산업도로 개설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누구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했는지 납득할 수 있게 밝히지 않을 뿐 아니라 논의를 회피하며 대안을 마련할 수 없다고 버티는 시당국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납세자인 인천시민의 처지에서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반문화적이요 몰역사적 오만이라고 본다. 시당국은 인천발전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도로 개설의 당위성을 주장하지만 주민들은 인천시를 신뢰할 수 없다. 연구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는 태도가 더욱 의심스럽게 만들지 않던가. 경찰력에 의지해 공사를 강행하겠다며 주민들을 몰아붙이는 시당국에 대해 주민들은 도로 무효를 포함해, 백지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지방행정 책임자의 문화 인식을 주문한다.


10년이 되었다는 산업도로의 개설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던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알토란 같이 남은 인천 민중의 근대유산을 지금이라도 지키려고 작은 힘을 모으고 있다. ‘배다리-우각로, 금창동 문화마을 구성안’을 구상하고 나선 것이다. 그 목록은 길다. 헌책방 거리에서 이어지는 구성안은 배다리 생활사 박물관으로 이어지며 의상과 재활용 수선 의류공방, 도시농업 지원센터, 친환경 생활용품점, 공동체 예술센터, 어린이 전용 소극장, 우리 소리 교육관과 야외 공연장, 고물품 거리, 목공학교, 공예방 거리, 재활용 가구점, 주택건설과 인테리어용품점, 주거문화 체험 공원, 친환경 먹을거리 체험 식당, 참교육과 민족의식의 역사교육관(창영학교), 여성교육 역사교육관(영화학교), 기독교 역사 자료관(창영교회), 자연과 노인의 거리, 재활용품 수집ㆍ수리ㆍ교환점에서 도원역과 철도역사 박물관까지 계속된다.


인천시 젊은 작가들의 요람인 ‘스페이스 빔’을 금창동의 인천양조장 건물로 옮긴 민운기 대표는 우각로 일대를 탐사하는 ‘인천 도시문화 탐사대’를 이끌며 ‘도시문화포럼’을 연다. 문화운동단체인 ‘퍼포먼스 반지하’는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으로 이름을 바꿔 우각로에 새롭게 터를 잡았으며 ‘1인 잡지’를 펴내는 최종규 작가는 배다리에서 ‘함께 살기’라는 간판을 단 도서관을 열었다. 인천의 내일을 이끌 청소년을 대상으로 배다리의 역사와 문화를 답사하는 인천의 젊은 문화인들은 헌책방 전시회, 영화제와 거리축제 같은 문화 행사를 기획한다. 민운기 대표는 “복합문화단지 추진 같은 시당국의 일방적인 사업 방식이 아니라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연대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소회를 밝혔다.


주민대책위원회가 제시한 대안을 놓고 지난 3월 10일 인천종합건설본부와 가진 협의가 다시 무산된 가운데, 임시의회를 연 동구의회는 3월 14일, ‘배다리산업도로 공사 재개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동구의회는 결의문을 통해 “배다리 산업도로 공사 즉각 철회와 인천시장이 공사 철회 이후의 복안을 주민 앞에 제시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배다리 문화 복원을 위한 인천시민 대토론회’의 조속한 개최를 촉구했으나 그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기술상 어려움을 핑계로 삼는 인천종합건설본부는 경찰의 지원을 받더라도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여전히 천명하기 때문이다.


천년고도에 핵폐기장을 만들려하고 백두대간을 넘는 경부운하도 가능하다는 세상이다. 기술적 가능성이 없다고 어찌 주장할 수 있을까. 주민들은 대안의 실현 가능성을 놓고 다시 협의하자며, 그때까지 공사를 중단해달라고 요구했건만, 인천종합건설본부는 안하무인이다. 경찰과 주민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불상사가 우려되는데 현장은 공사 재개를 거듭 시도한다. 시당국은 이미 9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고 주장하지만 문화와 역사 앞에 돈을 앞세울 수 있을까. 주민의 생명을 지키는 환경, 시민의 정주의식을 고취시키는 문화와 역사를 단지 돈과 속도를 위해 내주어야 할까. 대안을 반드시 찾아야 옳다. 젊어서부터 헌책방 아벨서점을 지키고 있는 57세의 곽현숙 씨는 외친다. “거두어 외곽으로 돌리시오! 엄청난 자산을 파괴 마시오! 백지로 하시오! 후대에 잘했다 하리오!”


인천시처럼 구도시에 근대문화유산을 남기고 있는 일본 요코하마 시는 외세의 요구로 개항한 흔적이라도 알뜰하게 보전한다. 옛 건물은 물론이고, 그 시절의 정취를 간직하려 애를 쓴다. 페리 제독이 차를 마시던 공간의 분위기도 재현해낼 정도다. 일본 최초의 근대 시가지와 상하수도는 물론이고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도 복원해 보전하려 노력하는데, 우리는 어떤가. 주민들을 경찰력으로 밀어내면서 간직된 역사유물까지 헐어내려 고집부리지 않은가. 몰려드는 관광객을 감탄하게 만드는 유럽의 도시들은 외곽에 시가지를 새로 조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유서 깊은 구도시의 역사와 문화는 반드시 보전한다. 남의 일일 따름인가. 지역의 문화와 역사는 시민의 정주의식을 돈독하게 만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지구온난화 시대를 앞둔 현재, 고민해야 하는 내일의 도시개발은 경제 우선이 아니어야 한다.



복원은 창조로 접근할 수 없다


‘인위적 실수?’ 형용모순이다. 실수는 인위적으로 범할 수 없다. 그런 표현을 구사하는 이의 정신 상태는 그리 건전해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감추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황우석 전 서울대학교 교수가 그랬다. 자신의 사기행각을 감추려 ‘인위적 실수’라는 말을 창조했고, 그로써 황우석 전 교수에 대한 세간의 의구심과 애증은 비웃음으로 변했다. ‘아름다운 살인’ 이라는 말이 가능할까. 새만금 간척사업을 친환경적으로 완수하겠다는 농림부장관의 발언을 놓고 당시 야당 국회의원이던 현 오세훈 서울시장이 ‘아름다운 살인’ 이라는 표현을 끌어들이며 대정부 질문을 했다. 갯벌을 매립하는 간척사업은 친환경일 수 없다는 거였다.


인천시는 현재 ‘각국공원’을 복원하려 한다. ‘중점 도시 재생사업’의 일환이다. 현 자유공원 일원인 중구 송학동 2만3천 여 평을 270여 억 원의 예산을 들여 ‘창조적’으로 복원하겠다는 건데, 그를 놓고 시민사회는 우려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이른바 ‘각국공원 창조적 복원사업’이다. 복원은 실측 자료와 고증을 거쳐 엄격하게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창조적’으로 무얼 어떻게 복원하겠다는 걸까. 인천상륙작전 당시의 함포로 파괴돼 사라진 5개 근대 건축물, 다시 말해 개화기 만국공원의 존스톤 별장, 세창양행 사택, 영국 영사관, 러시아 영사관, 그리고 알렌 별장을 복원하려는데 관련 자료가 없다보니, “복원에 욕심 부리지 말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재미있도록 근대건축물을 복원하라.” 라고 귀띔한 인천시장의 지시에 따랐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겠다. ‘창조적 복원’은 형용모순이다. 복원은 창조로 가능한 게 아니다.


“개항문화를 꽃피웠던 국제 항구도시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인천역에서 차이나타운을 지나 동인천역까지 이어지는 관광 인프라를 구축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것을 기대하며 동시에 다문화 체험이 가능한 박물관 도시의 역동적 문화를 각국공원에 창출”하겠다고 인천시는 당찬 포부를 밝힌다. 그를 위해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과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각국공원을 복원하겠다는 건데, 문제는 시민사회의 거부감이다. 제국주의가 수탈한 조차(租借)에 조성되었던 일제 강점기 전후의 공원시설을 수백 억 원의 세금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는가 물으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는 거야 바람직하지만 경제 활성화를 위해, 다분히 추측에 근거하는 복원에는 진정성이 깃들 수 없다고 시당국의 창조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게 아닌가.


“복원의 원형이 일제 강점기인가?” 묻는 시민사회는 “맥아더 동상이나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에도 역사성이 있다고 인정해야 하느냐.”며 시당국의 발상에 반박한다. 근대건축 전문가들과 지역사회는 외국인의 결혼이나 숙박과 같은 관광 목적으로 외국인이 소유한 사적 건물에 불과하므로 존스톤 별장과 세창양행 사택에 대한 문화와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복원해야 할 정도로 인천의 정체성과 관계있는 건축물이 아니라는 거다. 지금은 경제와 정치적 목적으로 개발을 남발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은 “생활 속에서 문화적인 풍요를 느끼며 살 수 있는” 도시 재생을 촉구한다. 우리 근현대사를 복원한다는 데 환영하면서도 역사에 대한 성찰이 성행되어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 “성과만을 따져 역사적 측면을 무시하고 졸속으로 추진하다가는 이도저도 다 놓쳐버릴까 걱정”하는 것이다. “옛 건물에 대한 짝퉁을 만들지 말고 과거의 흔적이 투영되고 이 시대 문화적 가치를 담은” “창조를 위해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논의”를 주문한다.


“공공기관이 오욕의 역사를 희화화하는데 앞장설 수 없다!”고 강조하는 시민사회는 ‘각국공원 창조적 복원’ 계획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지만, 인천시는 거부반응을 보인다. 겉으로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모습을 취하면서도 완벽한 복원이 불가능하니 “근접한 재현”을 고집한다. 지난해 말 인천시 도시공원위원회에서 원안이 부결되자 존스톤 별장의 위치를 옮기는 것으로 당초 계획을 일부 변경한 도시균형건설국은 중국과 일본의 자본까지 끌어들여 구도심 재개발 차원에서 결국 창조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다분히 경제적 관점이다. 그에 대해 지역의 건축 관련 대학교수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인천건축재단은 “올바른 역사의식과 인천의 성숙한 정체성 확립을 위해 금번 사업을 즉각 중단”을 요구하며 “사업의 근본적인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한 시민대토론회를 열고 민간이 참여하는 검증 기구”를 제안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흔히 복원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청계천은 복원과 거리가 멀다. 성과를 위해 역사의 흔적을 지운 배수시설에 불과하다. 논의와 검토를 생략한 채 그저 근사하게 치장한 청계천이라도 운집하는 관광객은 많다. 그만큼 시민들은 회색도시의 삭막함에 지친 것인데, 시민들은 원형이 훼손된 청계천에서 역사와 문화를 느끼지 못한다. 애초 만국공원을 일제는 서공원과 야마테공원으로, 해방 직후 우리 정부는 잠시 만국공원으로 칭하다 1956년 맥아더 동상이 세워지면서 자유공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시대 상황에 따라 이름이 바뀌는 공원을 ‘드라마 세트장’과 같이 꾸미는데 서두를 필요는 없다. 많은 전문가의 지적처럼 복원에 앞서 무엇보다 시급하고 절실한 것은 복원을 위한 인프라일 것이다. ‘창조적 복원’이라는 모순은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야 할 시대적 소명이 아니다. 논쟁은 치열할수록 나중에 약이 된다. 시민사회의 의지를 확인한 인천시는 ‘근접한 재현’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이참에, 근대 역사와 관련되는 국내외 자료를 꼼꼼히 수집 정리하여 인천에 여기저기에 흩어진 역사문화유산까지 복원하는 중장기 계획을 시민과 함께 세우면 어떨까.



먹고 튀자는 도시 재개발


인천시 연수구에 주민등록을 둔 시민들은 명절 때 고향을 찾아 멀리 떠나지 않는 것 같다.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 비치는 서울의 아파트단지 주차장이 텅 비는 것과 달리 빈틈이 없다. 명절 당일에는 오히려 차 둘 곳을 찾지 못해 애먹어야 한다. 연수구에 인천 토박이가 많이 모여 사는 모양이다. 연수구의 아파트단지는 조성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과거, 고즈넉한 갯벌과 농촌이었던 지역을 개발했다. 그런데, 좁은 골목과 낮은 지붕으로 둘러싸인 인천의 오래된 동네에서 연수구의 아파트단지로 이사 온 시민들은 서로 누가 누군지 모른다. 다른 곳의 사정도 비슷하겠지만, 아파트단지에 따라 이웃이 형성되지 않는다. 연수구 주민들은 주로 학교동창으로 모이고 교회나 직장 단위로 뭉친다.


근교가 대단위 아파트단지로 개발될 즈음, 기존 동네의 오래된 주택들은 다세대주택으로 바뀌었다. 주택 200만호 공급이라는 정책 목적으로 급히 지어진 다세대주택은 날림이기도 했지만 프라이버시를 고려하지 않아 소음에 무방비였다. 찌개냄비를 주고받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었다. 주차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길은 비좁았고 오가는 자동차로 학교나 시장에 가는데 불편할 뿐 아니라 위험했다. 그래서 깔끔하고 자동차가 편리한 아파트로 이사하지 못한 주민들은 부동산 가치에 불이익을 받는 데 따르는 상대적 박탈감을 지울 수 없었고,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주민들은 얼굴을 서로 마주하며 살았다.


철근콘크리트의 수명과 관계없이 쏟아지는 재개발 민원은 다세대주택을 아파트로 변하게 한다. 살기 불편하다기보다 재산가치 상승을 위해 다세대주택은 고층 아파트단지로, 고층 아파트단지는 초고층 아파트단지로 모습을 달리하자는 주민의 목소리가 거세다. 이른바 도시 재개발과 재건축이다. 불편하기로 들면 다세대주택 이전의 동네가 훨씬 더했다. 연탄과 아궁이에 의존했던 동네의 지붕 낮은 골목에서 주민들은 교통사고보다 연탄가스 중독을 조심해야 했다. 재산가치 상승을 도모하려면 자주 이사 다녀야할 텐데, 내 아파트의 가격이 오르면 남의 아파트 값도 뛴다. 재산가치 상승의 과실은 독점하기 어렵건만 주민들은 재개발과 재건축에 왜 그토록 성화일까. 가난한 동네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며 살기보다 재산가치가 높은 지역의 주민으로 일신하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숱한 세입자가 소외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하지 못한다.


인천의 대표적인 달동네, 수도국산이 고층 아파트의 숲으로 변했다. 그 지역은 일본 제국주의자가 파놓은 수도국 주변의 산이었다. 바닷가의 조용한 소나무 언덕인 만수산 또는 송림산은 개항 이후 일자리를 잃은 가난한 제물포 백성과 625 이후의 고단한 피난민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해주었다. 이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을 남긴 ‘수도국산’의 달동네는 추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제물포항에서 노량진까지 수돗물을 공급해주던 수도국도 없다. 김중미의 《괭이부리 말 사람들》과 조혁신의 《거꾸로 한판》은 남았어도 인천의 애환을 오롯이 담은 그 소설의 무대는 이미 사라졌다. 좁은 골목에서 부대끼며 살았던 주민들 대부분도 수도국산을 떠나거나 쫓겨나고 말았을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존경심을 회복시키려는 환경운동을 하는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1999년 12월 30일, ‘인사동 골목길’에 제4회 풀꽃상을 드렸다. 자연에 ‘풀꽃상’이라 이름 붙인 상을 ‘주’는 게 아니라 ‘드리’면서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걸 깨달으려는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 하필 인사동 골목길에 풀꽃상을 드린 이유는 무엇일까. “인사동 골목길은 無河地域에 흐르는 개울과 같습니다. 이 길을 지날 때 우리는 한 마리 왜가리처럼 느긋해집니다.” 라고 말하는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제어되지 않는 속도와 큰길의 가치만 숭앙되는 메마른 땅에서 한줄기 개울처럼 우리를 느긋하고 고즈넉하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사람의 얼굴’을 회복시켜 주는 골목길의 정서적 가치”를 찾아 “우리의 발걸음에 여유를 주고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해준 인사동 골목길에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풀꽃상을 드린다고 ‘선정 이유’에서 밝혔다.


엘리베이터가 필요 없는 저층 아파트는 이웃이 만나 함께 숨 쉴 공간이 더러 있다. 하지만 20년만 넘으면 모조리 재개발 대상이란다. 숨 쉴 공간은 차례로 사라진다. 구월동 주공아파트를 기억해보자. 잘 자란 나무와 잔디가 만든 단지 내의 넓은 녹지에 이웃들이 만나 찻잔을 기울이고 배드민턴을 즐길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가로수 심을 공간도 없이 층 높은 아파트 건물이 빼곡한 단지에서 한 뼘 하늘조차 구경하기 어렵다. 시멘트 공간에서 이웃과 눈 마주치기 민망하고, 교통과 주차전쟁에 시달려 심호흡하기 꺼림칙한 마당이 되었다. 입주 가구 수를 무리하게 늘리려 용적률을 지나치게 높인 결과, 프리미엄은커녕 분양대금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불만이 터지는 그곳은 나름대로 역할을 한다. 역설적이게도 타 지역 재개발의 귀감이란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 용적률을 높여달라는 전국 곳곳의 민원을 잠재우는데 본보기가 된다는 거다.


20년 된 저층 아파트를 허는 분위기는 25년 된 멀쩡한 고층 아파트마저 용납하지 않는다. 50층이 넘는 초고층 아파트를 한결같이 지향한다. 재산가치 상승을 염원하는 중산층들이 선망하는 초고층 아파트는 겉보기 근사하다. 자동차를 지하로 집어넣은 아파트단지는 대지를 녹지로 덮었고, 건물 사이의 간격이 넓어 전망도 시원해 보인다. 그런 초고층 아파트, 사람 살기는 편안할까.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 경험한 사례를 생각해 본다. 18층에 위치한 아파트에 이삿짐을 옮기자 친구가 잘 키운 난을 선물했다. 가끔 물 한 번 뿌리면 된다면서. 한데 그 난은 무성했던 잎을 하나 둘 잃기 시작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시름시름 죽어가던 난은 베란다 밖으로 가로수가 보이는 3층으로 내려가자 잎을 다시 늘이기 시작했다. 초고층 아파트에서 대개의 화초는 잘 자라지 못한다. 나무와 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높이에서 사람인들 건강할 수 있을까.


초고층 아파트는 창문이 활짝 열리지 않는다. 환기는 오로지 전기로 가능한데 그 전기료가 만만치 않다. 통유리로 쏟아지는 햇살은 실내 공기를 사정없이 데워 에어컨 없으면 견디기 어렵게 만든다. 만일 단전된다면? 그 순간, 아파트 주민들은 피난 떠나야 할 것이다. 높은 층에서 주변을 내려다보는 눈이야 잠시 시원할 수 있겠으나 안락한 삶을 의탁하기에 적합한 높이는 아니라는 뜻일 게다. 우리나라에 부는 초고층 아파트 붐은 정상이 아니다. 요즘 세상에 어떤 나라가 우리 같은 초고층 아파트를 경쟁적으로 돋아 세울까. 땅값이 비싸고 인구가 많기 때문이라는 공급자의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 공화국》(후마니타스 2007)에서 주장한다. 그는 최근 우리나라 아파트 붐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제는 그런 초고층 아파트는 지구온난화를 더욱 촉진하며 석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경고에 역행한다는 점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갈수록 집값이 높다. 집값을 은행에 맡기고, 이자로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온 가족이 푹 쉴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음식 배달부에게 아이디카드를 발부할 정도로 폐쇄된 초고층 아파트일수록 인기리에 분양되는 기현상은 집을 주거보다 투기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주택 보급률이 100퍼센트를 넘어선 지 오래인 전국 곳곳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널려 있다. 이런 마당에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앙등하는 이유를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 경기 부양을 위해 아파트 전매를 허용하는 정책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자본 회전을 위한 주택 정책은 주민의 정주의식과 거리가 멀다.


투기를 위해 주민등록지를 이리저리 옮기는 시민에게 정주의식은 깃들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을 기대할 수 없다. 경험상, 돈을 좇아 떠나는 세태에, 지역의 축제나 의원을 뽑는 선거에 대한 참여도 시들할 게 틀림없다.



주민을 생각하지 않는 개발들


요즘, 서구의 인사들은 “시청을 서구로!” 외치며 건배를 제의한다고 한다. 경제자유지역 청라지구가 개발되는 중이고 가정오거리 재개발이 추진되는 만큼, 지리적으로 인천의 중심부에 위치한 서구, 그 중 가정동의 뉴타운에 인천광역시 청사를 새로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롭게 건배 제의를 하는 서구의 인사들은 인천공항과 북항이 가까운 서구가 서울과 빠르게 연결되는 걸 장점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직선화가 이루어지는 경인고속도로가 인천공항 제3연육교와 연결되는 곳에 시청사가 들어서야 한다는 걸 보면. 그럴싸한가. 하지만 다른 지역도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는 얼마든지 내세울 수 있다. 시청은 터미널과 다르다. 지역의 정체성, 다시 말해 인천의 문화와 역사를 얼마나 아우르는가. 시민의 정주의식에 얼마나 밀착될 수 있을 것인가 들이 위치 선정의 중요한 열쇠가 되어야 한다. 서울이나 공항과 가깝다거나 지리적인 중심이라는 주장은 인천의 정체성과 큰 관계가 없다. 더구나 휘황찬란한 계획으로 입안된 가정오거리 지역은 예정된 뉴타운에 자신의 터전을 내주어야 하는 기존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는 곳이다. 정주의식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는 거다. 현재 청사가 비좁은 것이 사실이므로 이전이나 확충의 필요성이 증가한다지만 행여, 시청사 이전을 다른 구청보다 먼저 제안했다는 점을 홍보하며 민원을 자극하고 지역갈등을 조장한다면 결코 바람직한 지방행정이라고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서구청 관계자들이 충분한 논의를 전제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인천시는 독일 캠핀스키 호텔그룹과 용유도와 무의도 일대 20여 평방킬로미터에 문화 관광 레저복합단지를 조성하는 개발사업 기본협약을 주민 모르게 맺었다. 그러자 그런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하며 나선다. “해상관광단지를 만든다며 10년 가까이 개발을 못하게 하더니 불투명한 사업 추진”으로 우롱했다고 분노하는 주민들은 “자본금이 2억8천여 만 원에 불과한 회사가 어떻게 80조 원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느냐!” 따지며 캠핀스키와 맺은 기본협약의 해지와 더불어 유원지 개발지구 해제와 상업지구 전환을 요구한다. “자본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 못했다.”고 밝힌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사업이 지연될 경우, 협약 해지 요건이 되는지 검토할 수 있다.” 하면서도 사업 추진 의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천시를 성토하는 주민들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개발을 원한다. 하지만 주민들의 방안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 주민이 소외되지 않는 개발은 바람직하지만 전국의 유명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방식의 개발은 곤란할 것이다. 뜨내기를 대상으로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는 관광지가 아니라 용유도와 무의도의 문화와 역사를 배려하는 관광지 개발을 위해, 정주의식을 가진 시민들과 개발 방안을 먼저 논의했으면 한다. 외국 자본 유치 여부는 그 이후에 논의해도 충분할 것이다.


경인운하도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며 추진된다. 추진하려는 측은 경제성 자료가 있다는 걸 내세우지만 경제성을 맞추기 위해 정부가 연구기관에 여러 차례 압력을 가한 의혹은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강화군 인근의 섬을 제방으로 연결하는 조력발전도 일방적으로 추진할 태세다. 친환경 에너지원 발굴을 내세우지만, 기실 제방으로 연결되는 지역의 땅값 상승을 염두에 두는 모습으로 보인다. 게다가 갯벌을 파괴하는 개발을 친환경으로 치장하는데, 그 과정에서 대안에너지 학자나 생태학자의 동의를 구했다는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개발 세력이 성격을 정의하면 곧 친환경으로 규정되어 추진되는 풍토는 다음 세대의 환경과 생명의 기준으로 볼 때 범죄에 가까울 것이건만, 도무지 거침이 없다. 송도신도시 인근의 남부소각장과 청라도에 세운 청라소각장은 충분한 동의와 검토 과정을 민주적으로 거쳤던가. 송도 앞바다의 가스인수기지를 생각해보자. 연약지반에 대형 가스저장탱크를 세우는 데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무시했던 한국가스공사는 요즘, 체육관 크기의 탱크를 비우며 수리하느라 거액을 들이며 수선떨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그 안전성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인천시민의 불안은 멈출 수 없다.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이 지나자마자 인천사회를 들끓게 하며 들어선 영흥도의 유연탄화력발전소는 시민들과 협약으로 맺은 약속을 거듭 어기고 있다. 애초 2기만 유연탄화력으로 약속하더니 4기로 추가했고, 다시 6기로 늘이려 하면서 앞으로 8기 이상으로 확장할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천시민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질소와 황산화물에 의한 대기오염과 온배수로 인한 바다 생태계의 훼손이 심화될 뿐 아니라 산성비로 인해 농작물 수확에 악영향이 발생할 수 있고, 타고 남은 석탄재가 발생시킬 먼지와 대기오염 물질은 더욱 축적돼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건만, 영흥도 주민은 물론 인천의 시민사회도 조용하기만 하다. 투쟁하다 지친 시민들마저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소 당국의 홍보자료에 길들여진 것일까. 그 사이, 정주의식이 희박해진 건 아닐지.


수익성을 우선 고려하는 인천의 개발은 초고층 아파트를 지향하는 주택 재개발이 대표적이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연수구에서 요즘 논란되는 수인선도 자기 지역의 이익부터 챙기려는데 혈안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협궤열차의 추억이 사라진 수인선이 아직 승객 전용인지 화물 수송을 겸할 것인지, 지상에 노출될지 지하로 들어갈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역사의 위치를 놓고 철로 좌우 측 주민들의 감정싸움이 격화된다. 하지만 정작 10여 년 전에 뜨거웠던 지하화 논란은 주민들의 귀에 성의 있게 전달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수인선을 지하로 넣은 자리에 녹지를 조성해 철로가 갈라놓은 지역을 다시 만나게 하자던 먼저 주민들의 주장이 역사 위치 싸움에 밀려 삭으러든 까닭이 무엇일까. 편리한 접근성을 원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자신의 주택가격 상승을 기대한 건 아닐까.


주거지 인근에 러브호텔이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고 격렬하게 행동했던 연수구 옥련동의 주민들도 옛일을 잊었다. 미국 파라마운트와 ‘무비 테마파크’ 설립하겠다는 대우자동차판매 주식회사의 발표에 환영하거나 침묵한다. 역시 주택가격 상승을 기대했을 것이다. 개발자는 인천의 랜드마크와 아시아 최고 테마파크로 주민들을 현혹하지만 기실, 인근에 건설할 초고층 아파트 분양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도시 미관을 저해하고 교통 악화와 대기오염을 염려하는 뜻 있는 시민들이 ‘묻지마 개발’을 반대하며 서명에 돌입했지만 주민들의 호응이 미약하다. 매립 당시의 용도에 맞게 ‘친환경적 시민휴양지’를 조성하라는 요구는 전처럼 강력하지 않다.


주택 재개발 현상에서 벌어지는 주민 사이의 갈등은 이제 새롭지 않다. 오로지 먹튀 현상에서 비롯되었을 텐데, 이제 변해야 한다. 회색 공간에서 지친 시민들을 위해 도시를 돈벌이나 이윤을 위한 투기 공간으로 개발할 수는 없다. 눈길이 마주치면 인상을 쓰는 익명의 도시를 살가운 공간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자동차보다 사람이 편하고 목표나 속도보다 시민들의 참여로 문제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아름다운 도시’를 연출할 때가 되었다.


환경단체의 문제 제기에 귀를 기울여 아쉬우나마 대안을 마련한 개발 현장도 있다. 경서동 신시가지 인근 경인고속도로 직선 예정 구간의 습지에 무리지어 나타나는 맹꽁이와 금개구리를 위해 대체 서식지를 마련하고 보전하려는 건설업체의 모습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다만 기존 서식지를 위해 도로 계획 자체를 변경하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호주는 자국 금개구리의 보전을 위해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의 계획을 바꿔, 국제적으로 호응을 얻었다. ‘타산지석’은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요긴하다.



정주의식을 위해


사람 냄새가 나는 골목과 광장이 필요하다. 정주의식을 먼저 생각하는 유럽의 도시들은 차를 타고 멀리 떠나야 하는 주거공간보다 걸어서 이웃을 만날 수 있는 공간 배치에 고민한다. 건물 뒷골목보다 녹지로 둘러싸인 공원에서 사람들은 살가워진다. 5분 걸어 도착할 수 있는 녹색 공원에서 이웃을 반갑게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도시, 자전거로 직장과 관공서와 시장을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는 도시는 우리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유럽의 도시에서 더는 꿈이 아니다. 그 지역에 우리 같이 초고층 아파트는 보이지 않는다. 초고층은커녕 고층도 드물다. 고층 아파트를 시대착오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즐겨 찾는 녹색광장과 찻잔을 든 주민들이 삼삼오오 이야기 나누는 골목이 키 낮은 주택 사이에 배려되는 유럽의 도시들은 보기에 아름답다. 그런 공간에 가면 편안함을 느낀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칠갑된 바닥에 생명을 입양할 필요가 있다. 쏟아지는 빗물을 생태공간으로 완충하는 이른바 ‘비오톱(biotop)’은 녹지공원과 생태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풍수해와 온난화를 완충할 뿐 아니라 예방한다. 이웃과 관공서와 직장과 학교를 가깝게 이어주는 자전거 도로는 주민들의 건강을 도모한다. 보행자 도로에 줄을 긋는 방식이 아니다. 자동차 도로를 희생시키는 자전거 도로를 마련하고, 보행자 도로 가장자리에 가로수를 심듯 자동차 도로와 자전거 도로 사이에 가로수를 심어 자전거를 타는 시민을 가로수 터널로 보호한다면 도시는 더욱 녹화되고 안전하며 건강해질 것이다. 지붕이 넓은 관공서나 체육시설에 ‘햇빛 발전’ 장치를 달아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고 바닥 넓은 곳에 빗물 재활용 시설을 마련하면 장차 발생할 에너지와 물 부족 걱정을 덜 수 있다. 프랑스처럼 하수 중간처리 시설을 도시 곳곳에 마련하여 처리된 물을 허드레용으로 사용한다면 도시도 깨끗해질 뿐 아니라 자원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을 지향하는 도시의 얼굴이다.


재개발에 얽힌 주민들의 갈등은 때로 살인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정주의식이 결여된 데에서 오는 끔찍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주민들의 갈등은 먹튀 현상이 몰고 온 필연적인 부작용이라는 걸 외면하면 안 된다. 먹튀 현상을 부추기는 투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행정당국은 물론, 시민사회도 고민해야 한다. 시민 대다수가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한 관심이 낮은 인천은 내일을 위해 어떻게 개발해야 하나. 결국, 정주의식이다. 비록 외세에 의해 개방되고 매립에 의해 확장된 도시라고 해도 300만에 육박하는 시민들이 살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돈 벌면 이사 가고 싶어 한다고 통계는 주장한다. 그런 인천시민들을 인천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참여하려는 시민들과 논의해서 방향을 찾는다면 돈 벌어도 이사 가고 싶지 않은 마을 공동체로 인천을 가꿀 수 있지 않을까. (황해문화, 2008년 여름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7. 10. 1. 12:35
 


피할 수 있다면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집에 들어와 기분 좋게 피곤할 때 소파에 깊숙이 앉아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지만, 그 이외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개의 커피는 불공정한 무역으로 들어왔다. 돈을 모르고 순박하게 잘 살아오던 지역의 울창하거나 기름졌던 지역을 막대하게 훼손한 자본이 주민들과 생태계를 착취해 독점 수출 판매하는 상품 중의 하나가 커피다.


언젠가 어떤 모임에서 이른바 ‘공정무역’으로 수입한 커피를 맛 볼 기회가 있었다. 설탕도 커피용 크림도 공정무역과 관계없기에 뜨거운 물에 커피만 넣어 마셨는데, 잘 태운 누룽지를 끓여낸 맛이었다. 다른 이도 맛에 큰 점수를 주지 않는 눈치다. 공정무역 제품은 질이 낮을까.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본이 만들어 낸 맛에 우리가 이미 길들여졌다는 점이다. 공정무역은 커피에 머물지 않는다. 아직 많지 않은 농산물과 수공예품에 제한되지만 독점 자본의 횡포에 맞서려는 이들은 착취되는 생산지를 기꺼이 찾아갈 것이다. 제 값 치룬 제품을 소비자에게 바로 가져가려고.


국내 교역의 과정에서 자본의 착취와 폭리는 없던가. 이자 수익을 노리고 빛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자본에 의해 속절없이 희생되는 먹잇감 인생은 국경 이내에도 얼마든지 널렸다. 그 인생들은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에서 제 땀 흘리며 가족 부양하는 순박한 장삼이사다. 시방 시중 배추가 한 포기에 7000원이란다. 그 이익은 누가 챙길까. 김치가 금치인 마당에 소비자는 아닐 터. 이 땅의 농부들이 챙길까. 밀가루가 금가루란다. 미국 땅의 농부들이 이익을 챙길까. 터무니없다. 유기질 씻겨나가 땅에 온갖 화학비료와 농약을 치고 트랙터로 땅을 가는 농부는 빚에 치일 따름이다.


국내 굴지의 자본이 주인인 대형 양판점은 인구 많은 주거지마다 터를 잡았다. 그 양판점 안에는 ‘고객님’이 붐비고 밖에는 승용차가 붐빈다. 승용차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가까워도 들고 나오는 물건의 양을 감안할 때 다른 수단도 없다. 알뜰주부도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맞는 종업원 안내에 쉽게 이끌리고, 시중보다 저렴해 하나 둘 올리다보면 카트에 쌓인 물건은 어느새 지갑의 허용범위를 넘어선다. 커다란 냉장고에 쟁여두고 베란다 창고에 쌓아놓은 물건은 낭비를 부른다. 쓰레기와 카드 수수료도 전 같지 않다.


레이저프린트 용지를 사러 양판점에 갔다. 한 박스만 살 요량으로 걸어가 낯모르는 종업원의 과장된 인사를 뒤로, 사방에서 감시카메라가 번뜩이는 매장으로 들어섰다. 한데 전에 봐두었던 상표가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산더미 같았는데 다 팔렸나. 대신 다른 상표가 선반을 독점하고 있다. 양판점에서 만든 상표다. 상자를 들여다보니 전에 봐둔 상표와 같은 용지라고 밝혀놓았다. 그런데 값은 구석으로 밀려난 상표의 용지보다 10퍼센트 이상 싸다. 같은 품질인데 누가 비싼 상표의 용지를 선택할까. 두 박스를 사려다 차가 없어 참았다. 나오는 길에 예정에 없던 문구들을 이것저것 챙겼고, 낑낑대며 계산해야 했다.


용지가 떨어져갈 때 미뤄 놓았던 인쇄를 서두르면서 생각해본다. 단지 표장만 바꿨을 뿐인데 양판점 상표의 용지가 훨씬 싸다니. 수상하다. 원 상표의 가격에 거품이 있었던 걸까. 그럴 수 있지만 가끔 납품업체 사장의 하소연이 언론에 보도되는 걸 보아 아닐 가능성이 높다. 종이가 확보되자 인쇄에 거리낌이 없는 소비자를 위해 나무는 얼마나 베어지고 제지공장 종업원은 얼마나 혹사당할까. 10퍼센트 낮게 납품하고도 적정 이윤을 보장받으려면 제지공장의 주인은 지출을 줄여야 한다. 걸핏하면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에서 자유롭고 싶어질 수 있다. 공장 자동화와 비정규직을 선호하다 아예 해외에서 몰려오는 값싼 산업연수노동자를 찾으려 들지 모른다.


주말이면 인근 공단의 산업연수원생과 불법 고용된 외국 노동자들이 양판점을 찾는다. 값이 싸니 저마다 한 보따리씩 들쳐매고 계산대를 빠져나가는데, 계산대에 앉은 종업원은 대개 비정규직이다. 매장에 서성이는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종업원도 비정규직이다. 그들은 시간급이고, 급여도 대단히 박하다. 낯모르는 ‘고객님’들에게 반가운 듯 인사를 건네야 할 의무가 있고 이 물건 저 물건을 펼치며 소비자의 눈길을 유혹해야 할 책임을 진다.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지 살피는 눈길이 매장에 감도는데, 양판점 자본은 비정규직 종업원의 행동을 감시하는 직원도 비정규직으로 교체한다. 고분고분한 비정규직을 발탁해 종업원 사이에 갈등과 질시를 유발시키며 수익을 더 짜내려는 것이다.


생산직 노동자와 판매직 종업원의 고혈을 빨고 생태계와 자원의 고갈을 부추기는 양판점이 들어서자 아파트 주민들은 집값이 오를 것이라며 반색했다. 대신 이웃의 얼굴과 취향을 기억하던 구멍가게는 모조리 문을 닫았다. 파리채 휘두르다 떠난 가게주인은 어디로 간 것일까. 문 닫은 구멍가게는 ‘명퇴’한 사람이 잠시 차지한다. 말이 좋아 명예퇴직이지 이른 나이에 직장에서 내쫓긴 신세인데, 그이도 어느 틈에 사라진다. 간판업자를 먹여살리던 구멍가게 주인들은 양판점 종업원을 자원했을지 모른다.


굴지의 양판점 자본은 승승장구한다. 지역의 문화요 역사인 산의 허리를 파헤쳐 골프장을 짓거나 여기저기 초고층 빌딩을 지어 찬란하게 분양한다. 덕분에 고용이 늘었다며 통계자료를 들먹이는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희색이 만연한데, 고혈이 빠져나간 비정규직 피고용자는 오늘도 고단하다. 가난한 소비자로 전락한 노동자도 찾아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양판점은 그렇게 가난한 노동자와 소비자를 양산한다. 가난한 노동자와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자본은 누구의 몸에 빨대를 꽂는 것인가.


최근 유기농산물 직거래운동이 활발하다. 누군가 웰빙 풍조라고 힐난하지만 혼자만의 웰빙은 불가능하다. 내 웰빙을 보장하는 이의 웰빙을 배려하지 않으면 웰빙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유기농산물의 생산이 지속가능하도록 땅과 농부의 내일을 배려하는 웰빙이어야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바로 이어주는 공정한 거래다. 공정한 거래는 오늘의 달콤함보다 내일의 지속가능성을 먼저 생각한다.


공정하게 거래할 품목을 유기농산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믿을 수 있는 구멍가게를 마을에 되살리는 것도 훌륭한 대안이다. 좀 비싸고 질이 떨어지더라도 국산을 구입하려는 물산장려운동이 일제 강점기에 왜 필요했는지 새삼 상기해보자. 신기루 같은 돈을 남보다 더 벌거나 못 번 이웃이 수시로 드나드는 마을에서 문화와 정주의식은 생겨날 수 없다. (인권오름, 2007년 10월 9일?)

좋은 글 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도시·인천

디딤돌 2006. 12. 25. 16:26


지난해를 마무리하거나 새로운 해를 맞으며 사람들을 두루 만난다. 위장이 부대끼고 대리운전 사업이 호황을 누릴 정도다. 망년회나 신년회에서 술잔 부딪히자마자 나누는 요사이 대화거리는 단연 아파트다. 억울하다거나 뒷걸음치다 운을 밟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파트가 올라 기분은 좋지만 세금 폭탄으로 가계가 휘청한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세금은 다 냈단다. 세금 이상 아파트 값이 올랐고, 더 오를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서울시의 후분양 전환으로 투기 조짐이 수그러들었지만 평당 1500만원의 분양가로 주변 아파트 값 상승에 기여한 은평뉴타운을 생각해 본다. 개발 예정 지역 주민들은 평당 400만원 이하로 땅을 절대 내놓을 수 없다고 애초 배수진을 쳤는데, 서울시가 투자한 공영개발회사인 SH공사는 600만원을 제시했고, 서슬 퍼렇던 내용의 현수막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북한산의 경관이 가까워 더욱 고즈넉했던 마을을 주민들과 함께 보전하려던 시민단체는 그만 맥이 빠지고 말았는데, 한양주택을 제외하고, 개발 대상에 자기 지역을 포함해달라는 청원 이외에 이렇다 할 주민 소요는 없었다고 담당자는 밝힌다.

 

은평뉴타운 예정 지역에 위치한 한양주택은 박정희 정권이 날림으로 지은 그저 그런 집단 가옥이다. 한데 주민들은 똘똘 뭉쳐 자신의 공간을 개발에서 제외해달라고 끈질기게 버텼다. 재산가치 상승을 기대했기 때문이 아니다. 정붙여 살던 공동체를 보전하고 싶은 까닭이었다. 낡은 집을 개성 있게 수리한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마을길을 가꾼 한양주택은 숱한 희로애락이 배인 오랜 공동체였다. 꽃으로 장식된 골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주민들은 보상금 받아 뿔뿔이 흩어지는 걸 상상하기 싫었던 것인데, SH공사는 한양주택의 탄원을 끝내 무시했다. 심지어 보상금 인상을 노리는 행위로 몰아붙여 주민의 가슴에 상처가 남게 만들기까지 했다.

 

자신의 터전을 평당 600만원에 내준 주민의 대다수는 은평뉴타운에 입주할 수 없다. 서울시에서 땅값이 가장 저렴해 이사온 은평구에서 밀리면 어디로 가나. 보상금으로 전세살이를 시작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세입자는 어찌한담. 세입자의 고달픈 사정에 눈여기지 않는 기존의 주택단지는 정주의식보다 돈으로 개발을 유인한다. 다정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집이나 땅을 주민들의 합의로 보전하면서 개발하는 방안은 돈 앞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요즘 주택은 투기공간이 되고 말았다. 먹고 튀면 그만이다.

 

내 주민등록이 기재된 지역을 어떻게 가꾸면 좋을까. 정주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누가 단체장이나 의원에 출마하는지, 출마의 변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려 않는다. 저평가된 아파트가 어디인지 자료를 뒤적이는데 바쁜 주민들은 제 지역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이웃집이 살아가는 모습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남의 집 노인이나 아이 돌보아주는 이웃은 도시에서 이미 사라졌다. 요양소나 산후조리원에 맡겨야 한다. 이삿짐을 날라주는 풍경은 전설이 되었고 손님 사정 이해해주는 단골가게도 없다. 미련이 남지 못하는 주거공간에 투기가 판치는데, 정주의식은 기대하기 어렵다.

 

아파트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인구에 비해 일류대학에 입학 비율이 낮다는 건 모르는 시민도 없지만 인천을 상징하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는 시민도 거의 없다. 그들은 돈 모으면 타 도시로 떠나려 한다. 정주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정주의식은 투기와 반비례하는데, 2007년 인천은 어떤 도시를 지향해야 할까. 문화에 무게가 실리지 않은 2007년 이전의 계획, 다시 말해 갯벌 매립, 천지사방의 골프장, 투기를 부르는 신도시 개발은 시민의 정주의식에 얼마나 기여할까. 2007년 벽두를 맞아, 인천에서 다시 인천을 찾는다.

 

후기: 옮겨가고 남을 인천대학교 부지도 아파트로 도배가 될 공산이 크다고 한다. 인천시에서 투자한 공영개발 방식이 그렇다 것인데, 프랑스 파리가 자랑하는 몽마르트 언덕처럼, 문화와 자존심이 가득한 공간으로 꾸밀 용의는 과연 없어야 하는 것인가. (인천신문, 2007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