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2. 3. 14. 12:04

생태적 가치 이상인 인천 갯벌

 

봄은 눈이 녹으면 온다. 삼라만상 생명체가 물로 생명현상을 이어가는 한, 생명이 움트는 봄은 눈이 녹아야 온다. 나무도 봄이 와야 실뿌리를 땅에 내리며 꽃눈과 잎눈을 펼치고, 북방산개구리도 알을 낳으러 얼음이 풀린 계곡에서 물이 고인 논으로 빠져나간다. 겨우내 갯벌 깊숙한 곳에서 추위가 풀리길 기다리던 생물들도 눈이 녹았으니 움츠렸던 몸을 일으킬 것이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식물성 플랑크톤이 번성할 테니 알을 낳아야 한다. 삼라만상의 동물들은 그렇듯, 제 새끼들이 깨어나는 시기를 먹을 게 많을 때로 맞춘다.

 

3월이 오면, 깊은 바다에서 꼼짝 않던 주꾸미들이 일제히 해안으로 다가온다. 때를 맞춰 어부들은 속이 빈 소라껍질을 밧줄로 엮은 소라방으로 주꾸미들을 유인할 텐데, 소라방을 풀어 넣으면 올라오던 주꾸미들이 제 집처럼 소라껍질 안으로 들어가 잠시 냉기를 견딜 터. 그때 밧줄을 뱃전에서 끌어당기는 어부는 잠시 후, 쌀쌀한 바닷가를 바라보며 입맛 다시는 이맘때 관광객의 식탁에 데쳐 올려놓을 주꾸미들을 식당에 부려놓을 것이다. 3월이 되면 주꾸미는 참 부드럽다. 남해안에서 인천 앞바다로 시기를 달리하며 올라오는 주꾸미는 오래 전부터 이맘때 주민에게 실한 단백질을 제공해주었다.

 

주꾸미만이 아니다. 겨우내 갯가의 두꺼운 얼음 아래 몸을 숨기던 숭어들도 산란과 성장을 준비한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면 갯벌 표면은 옅은 녹색으로 빛난다. 식물성플랑크톤이다. 커다란 입을 벌려 플랑크톤을 정신없이 훑어먹던 숭어들이 조간대에 미리 펼쳐놓은 정치망에 걸려들 테고, 주변 식당들은 손님맞이에 분주할 것이다. 육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유기물이 밀물과 썰물을 타고 조간대에 고르게 퍼지면 갯벌을 터전 삼는 생물들은 봄부터 활기가 넘친다. 식물성플랑크톤은 동물성플랑크톤에 이어 해삼과 멍게를 먹이고, 크고 작은 조개와 게와 밴댕이와 숭어가 자랄 터. 유사 이전부터 갯가를 터 삼는 사람도 자손을 번성시킬 수 있었다.

 

인천 갯벌은 예로부터 조수간만의 차가 큰 만큼 조간대가 넓었고, 한강과 임진강과 예성강이 쏟아내는 고은 흙과 유기물이 많은 만큼 수많은 어패류의 산란장이었다. 천연기념물 황복이 임진강에 올라 알을 낳는 것도, 2미터를 훌쩍 넘는 왕털갯지렁이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식하는 것도 갯벌이 있기에 가능했다. 봄과 가을이면 시베리아에 부챗살처럼 펴져 살던 온갖 도요새와 물떼새 종류가 깔때기처럼 강화도 인근의 갯벌에 모여들어 제 몸무게 두 배 가까이 먹어치운 뒤 다시 호주와 동남아시아 일원으로 부챗살처럼 날아갈 수 있는 건, 순전히 갯벌에 게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 헤이룽 강과 알류산열도에서 머물던 오리 종류들이 겨울철 강화 일원에 내려오는 이유도 같다.

 

사람에게 실한 단백질을 무한히 제공하는 갯벌은 어패류의 산란장이자 수많은 철새와 나그네새의 소중한 휴식처를 제공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드넓은 조간대는 재해를 완충한다. 높은 파고를 무너뜨려 해안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로 더욱 거세지는 태풍과 파도, 그리고 지진이 일으키는 쓰나미도 완충한다. 작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의 원인이 된 지진 이후의 쓰나미는 해안을 집중 개발한 지역에 더욱 커다란 피해를 안겼다. 그렇다면 요사이 인천은 안전할까. 서해안도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태풍의 안전권에서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데.

 

깊은 가을의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강화 남단의 분오리돈대에 올라 동막갯벌을 바라보자. 하늘과 노을에 반사된 드넓은 갯벌이 붉게 물들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 줄 모를 때, 하늘을 파도처럼 층층이 가르며 끼룩끼룩다가오는 기러기 떼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뇌리에 새긴다. 예서 시방 숨 쉬는 자신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하고, 함께 찾은 가족, 친구, 애인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표하고 싶게 한다. 서먹하고 소원했던 기억은 어느새 사라지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돈독함을 나누며 분오리돈대를 내려갈 수 있다. 장엄한 자연경관이 우리에게 베푸는 혜택이다. 세계 5대 갯벌의 중심부인 인천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강화갯벌이 바로 그렇다.

 

갯벌 1그램에 수 십 억에서 수 조 마리나 있다는 식물성플랑크톤이 불러들이는 생태계의 다양성과 생물체의 총 무게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그 생물들이 호흡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산소는 바로 갯벌의 식물성플랑크톤이 담당한다.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를 활발하게 제거하는 일도 식물성플랑크톤이 맡고, 탄산칼슘 껍질을 가진 조개와 게도 일부 분담한다. 갯벌은 색이 어둡다. 그만큼 햇볕을 잘 받으므로 여름철 뜨거운 육지로 습기를 내놓는다. 그런 갯벌이 편서풍 지대의 서쪽에 있는 우리나라는 복 받았다. 국토의 65퍼센트가 경사가 깊은 산이므로 평야가 좁지만 예로부터 많은 인구가 모자라지 않게 먹을 수 있었던 상당한 이유는 갯벌이었다. 강화 일원만이 아니다. 갯벌을 인체에 비견했을 때, 허파와 콩팥, 그리고 자궁이 되어준 까닭에 먼 조상부터 지금까지 한반도 서편에 기댄 민중의 삶은 안정될 수 있었다.

 

이젠 아니다. 강화갯벌은 생긴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4대강 사업이 가로막은 대형보가 모래와 고운 흙의 흐름을 차단했지만 조력발전으로 갯벌 자체가 수장 또는 매장될 처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발생이 거의 없는 전기를 알량하게 생산을 위해 막대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얻는 철근과 콘크리트를 부어서 식물성플랑크톤과 조개와 게들을 죽이거나 쫓아내려고 하지 않은가. 그러니 한반도의 지구온난화는 더욱 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갯벌이 제공해주던 양질의 단백질이 사라지는 만큼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수입할 텐데, 그런 육류는 대부분 석유 없이 생산은 물론 운송과 저장도 불가능하다. 그뿐인가. 육지로 불어오는 산소와 습기가 그만큼 줄어들고, 태풍과 지진과 파고와 쓰나미로 인한 파괴력은 돌이킬 수 없게 무서워질 게 틀림없다.

 

머지않아 인천 갯벌의 우아한 상징이 된 저어새가 날아올 것이다. 인천시가 송도신도시 인근에 손바닥만큼 남은 11공구마저 매립하면 애써 맞을 저어새는 먹이를 찾아 즉각 떠나고 말 가능성이 높다. 실제 작년과 재작년 저어새가 먹이활동을 한 주요 갯벌이 바로 11공구가 아니던가. 저어새와 더불어, 갯벌에서 온갖 단백질과 해조류를 무한하게 얻은 사람도 숨을 쉬어야 산다. 그리고 내 발이 자연과 닿아 있다는 걸 깨달을 때, 비로소 이웃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정주할 수 있다. 갯벌은 인천에서 그런 기댈 언덕이었는데, 어느새 회색 철근콘크리트와 아스팔로에 자리를 다 내주게 생겼다. 한데, 회색의 철근콘크리트에 포위되거나 아스팔트가 강요하는 속도에 지친 사람들은 이웃에게 차갑지만 자연의 숨결에 둘러싸인 사람들은 따뜻하다. 그래서 유서 깊은 도시들은 도시의 완성을 녹색으로 본다. 그래서 공원이 도심을 넓게 차지한다. 바다와 강을 소중하게 여긴다.

 

근대 들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크지 않은 어촌에서 거대한 도시로 면모를 거듭 일신한 인천에 나무가 우거진 녹지가 부족하더라도 갯벌이 드넓기에 언제나 주민들의 삶은 안정되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무엇 하나 지원되지 않으면 잠시도 버틸 수 없게 허약해졌다. 다만 바다를 곁에 두고 있다는 이유로 화력발전소가 밀집돼 전기는 과잉 생산하고, 사용하는 전기의 두 배 정도를 서울과 경기도에 공급할 따름인데, 남은 갯벌마저 파괴될 위기에 처했다.

 

인천에 300만 가까운 인구가 터 잡고 살고 있는데, 조력발전이라니. 어찌 그런 발상이 가당했던 걸까. 인천에 주소를 둔 시민들의 행동이 약했던 걸까. 재생 가능한 자연에너지는 갯벌이라는 자연을 죽이면서 얻을 수 없다. 인천에 조력발전은 안 된다. 봄을 맞은 갯벌에서 생명의 찬가가 아닌 장송곡부터 듣고 싶지 않다. (인천in, 2012.3.14)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2. 1. 21:04

 

식탁의 고기가 요즘처럼 풍요롭기 전, 우리는 동물성 단백질을 어디에서 보충했을까. 사위가 와야 닭 한 마리 잡던 조상은 마을 어떤 집의 특별한 날에 돼지 잡아 가끔 동네잔치를 벌였어도, 소를 잡는 경우는 몹시 드물었다. 여름철 몸이 허해졌을 때 키우던 개 잡는 사람이 좀 있었고, 겨우내 영양 부실했던 산골 마을 주민들은 개구리로 단백질을 보충했지만 그 양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조상이 먹었던 단백질은 상당 부분 바다에서 나왔다. 돈줄이나 있는 집은 조기, 민어, 대구 따위를 밥상머리에 올렸을 테고 그리 못되는 집은 망둥이나 꽁치, 조개젓과 꼴뚜기젓에 의존했을 것이다. 그래도 삼면이 바다인 덕분에 사시사철 동물성 단백질원은 끊어지지 않고 밥상에 올라갈 수 있었을 터.

 

10여 년 전, 세계적인 과학 잡지 네이처는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혜택을 돈으로 환산하면 해마다 33조 달러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33조 달러? 33조 달러면 우리나라 백년 예산에 맞먹는 물경 4경원이다. 그런데 네이처는 33조 달러 중 3분의2가 바다에서 나온다고 덧붙였다. 바다가 제공하는 단백질원만 따졌을 리 없다. 지구에서 만들어지는 산소의 약 70퍼센트가 바다에서 나온다. 자연정화 능력은 또 어떤가. 거기에 심미적 가치, 경관적 가치까지 더한다면 바다의 가치는 육지의 두 배에서 머물지 않을지 모른다.

 

바다 중에서 생태적 가치가 가장 높은 곳은 대륙붕이고, 대륙붕 중에서 단연 갯벌이다. 세계의 해양학자들은 면적으로 5번째이지만 생태적 가치로 볼 때 최고라고 우리나라 갯벌의 가치를 평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조수간만의 차가 큰 만큼 조간대가 드넓지 않던가. 서해안 갯벌은 해안에서 수 킬로미터로 펼쳐진다. 그 넓은 조간대에 날아드는 도요새와 물떼새, 오리와 기러기 종류의 종다양성은 철새를 연구하는 조류학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우리 갯벌은 반드시 보전해주기를 권고하는 람사 국제 보호 습지에 해당하는 세계 3대 철새 이동통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서편, 드넓은 갯벌의 펄 1그램에는 10억 마리 이상의 식물성플랑크톤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생물 밀도가 대단히 높고 식물성플랑크톤이 생산하는 산소 생산량도 엄청날 게 틀림없다. 따라서 식물성플랑크톤을 먹는 동물성플랑크톤이 많을 게고, 그 플랑크톤을 먹는 온갖 동물이 풍요로울 수밖에 없다. 펄을 조금만 뒤집어보자. 백합, 가무락, 바지락, 동죽과 같은 조개 무리가 그 모습을 켜켜이 드러낸다. 갯벌이 게 있기에 꽃게, 박하지, 칠게, 밤게, 콩게 들이 어우러지고 각종 새우들이 바다에 몸을 숨기는데, 이들은 대개 탄산칼슘(CaCO3) 껍질을 가지고 있다. 대기 중의 대표적 온실가스, 다시 말해 이산화탄소(CO2)를 효과적으로 제거해준다.

 

갯벌이 육지의 서쪽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큰 자랑이다. 산소가 충분된 신선한 바람을 서해안에서 육지 쪽으로 언제나 공급해 줄뿐 아니라 넓은 갯벌에서 증발하는 막대한 수증기를 몰고와 금수강산을 촉촉하게 적시지 않던가. 광활한 갯벌의 빼어난 정화능력도 주목해야 한다. 1평방킬로미터의 갯벌은 대형 하수종말처리장 하나 이상의 정화 능력과 맞먹는다니, 갯벌 보전돼 있다면 민원이 시끄러운 하수종말처리장이 없어도 수질오염을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한때 건물을 세울 수 없고 자동차도 다니지 못하는 까닭에 갯벌을 못 쓰는 땅이라 치부했던 적이 있었다. 갯벌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아직도 그 관행을 버리지 못하는 이가 바닷가의 개발을 주도한다. 최근에도 논으로, 공장부지로, 공항으로, 아파트 부지로 갯벌을 매립해왔고 매립한 곳에 조성된 공장과 건물은 자동차들과 더불어 이산화탄소와 대기오염 물질을 낮밤을 가리지 않고 내뿜는다. 갯벌에서 채취하는 단백질의 가격에 비해 개발로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다는 논리를 여전히 내세우면서.

 

사실 갯벌 매립은 고려 시대부터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농민들이 삽으로 소박하게 매립할 적에 갯벌의 생태적 피해는 대체로 무시될 수 있었다. 하지만 땅의 부가가치에 눈이 어두운 기업과 정부가 중장비를 집중 동원하며 본격적으로 매립하면서 갯벌은 돌이킬 수 없게 파괴되었다. 한없이 제공하던 단백질을 물론, 생태적 안정성마저 희생되고 말았다. 매립한 갯벌에 농토를 일궈 쌀을 수확하게 한 후,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몽땅 빼앗아갔던 일제가 제정한 이른바 ‘공유수면매립법’이 아직까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일 텐데, 그 법은 누구의 소유물일 수 없는 공유수면을 매립하면 매립한 자에게 소유권이 돌아가도록 탐욕을 보장한다. 현재 우리나라 갯벌의 대부분은 위기에 처해 있다.

 

매립으로 인한 막대한 이익은 당장 개발자의 수중에 들어가겠지만 한시적인데, 피해는 영구적이며 후손에게 전가된다. 억척 아낙들이 맨손으로 채취했던 갯벌의 다채로운 단백질원이 퇴출된 이후 농약 흥건한 수입 사료로 살찌운 육류의 소비가 늘어났지만 우리 시민들의 몸은 전에 없던 질병에 노출되고 말았다. 고혈압, 뇌와 심혈관 질환, 당뇨병, 대장암과 유방암과 같은 퇴행성질환이 그것이다. 그런 식단은 가난한 나라의 식량 사정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세계의 기후와 환경은 그만큼 악화되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우리 어린이들의 아토피성 피부병운 무엇을 웅변하나. 언론마다 걱정을 더하는 지구온난화와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눈앞의 탐욕이 빚은 필연이라 해야 할 것이다.

 

우리 해양연구소는 일찍이 갯벌의 생산성은 육상 생산성의 최고인 논보다 무려 3배가 넘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심미적 가치까지 따지면 5배가 넘을 것으로 평가하는 학자도 있다. 갯벌에서 단백질원을 채취하는 어부들은 김을 매지 않아도 비료와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농한기 없이 사시사철 일정한 소득을 챙길 수 있었다. 이렇다 할 장비도 기술도 힘도 필요 없이 그저 억척스러움만 있으면 누구나 채취할 수 있기에 ‘맨손어업’, 또는 ‘관행어업’이라 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시할머니가 처음 시집왔을 때도 그 시할머니의 시할머니가 시집왔을 때도 그랬다. 썰물을 따라 들어가 힘이 부칠 때까지 허구헛날 한 가마니 이상 잡고 또 잡아도 언제나 그만큼의 먹을거리를 내주는 갯벌은 갯일하는 아낙네만의 소득원에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 민족 역사의 오랜 단백질 원천이자 문화였다.

 

봄과 가을 무렵 넓은 갯벌을 뒤덮을 듯 몰려다니는 도요새와 물떼새, 겨울철이면 습지마다 빼곡하게 모이는 수많은 오리와 기러기 무리는 우리나라에서 흔한 나그네와 철새지만, 그들이 정작 펴져 사는 지역에는 무척이나 보기 어려운 존재라고 한다. 도요새와 물떼새를 보아야 그 지역의 농부들은 기쁜 마음으로 들로 씨 뿌리러 나가고, 화가는 화구를 챙기며, 시인은 시를 쓴다고 한다. 최근 호주와 뉴질랜드 일원의 원주민들은 우리나라 당국에 갯벌 보전을 간절히 부탁한다고 조류학자와 문화인류학자들은 전한다. 그 지역에서 도요새와 물떼새들은 봄의 전령이요 희망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마르지 않는 산소와 수분 공급처인 갯벌은 생명체의 필수 원소인 황의 절대적 순환장소라고 제임스 러브록은 자신의 저서 《가이아》에서 주장했다. 갯벌은 자연정화 장소일 뿐 아니라 수많은 어류의 산란장이고 해산물의 무궁한 보고다. 육상의 모든 생물은 바다에서 기원했고, 지금도 동물 분류군의 대부분은 바다에 산다. 인간도 결국 바다에서 진화한 것이리라. 따라서 바다는 지구촌 수많은 생명체의 자궁인 셈이고, 그중 현재 그런 가치가 빼어난 갯벌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생명의 끈’이다.

 

지구 생명체의 마지막 존재라도 되는 양, 인간은 자신이 태어나도록 이끈 자궁을 마구 오염시키는 와중인데, 우리나라는 특히 갯벌 매립으로 자신의 내일마저 질식시키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후손도 먹고 숨 쉴 수 있어야 산다. 요란한 장밋빛 개발 구호도 생명이 건강할 때 비로소 효과를 빚을 수 있다. 내내 건강해야 할 자신의 노후를 생각해보더라도 갯벌 보전은 물론이고, 복원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식량의 4분의3을 수입에 의존하는 처지에 더는 주저할 일이 아니다. (사이언스올, 2009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