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5. 5. 29. 08:56


1987년인가?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한 후 독일에서 벌어진 불쾌한 일화를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현장에서 이항규 박사가 전했다. 그 내용을 환경에 관한 오해와 거짓말(모색 1998)애서 밝힌 그는 당시 박사과정을 마칠 즈음이라고 했다. 독일인 친구가 조심스레 다가와 방사성물질이 포함된 문제의 분유가 한국으로 팔려나간 사실. 그 불쾌한 일화를 들은 그는 고국으로 달려와 한동안 반핵운동을 했다.


체르노빌과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독일은 동유럽에서 오는 모든 트럭의 방사능 수치를 점검했는데, 젖소를 방목하던 바이에른 지방의 우유가 오염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 우유의 처리를 두고 논란을 벌이다 분유로 바꿔 석유 운반하는 기차의 원통 화물칸에 임시 보관했는데, 기아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에 보내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고 포기했던 그 분유를 한국 기업이 대부분 수입했다는 게 아닌가. 당시 한국은 식품의 방사능 기준치가 없었다고 한다.


학교에 운동장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우리는 믿지만 유럽의 많은 학교는 동네의 공공 운동장을 사용한다. 방과후 학원으로 일제히 몰려가는 우리 학생들은 학교에 운동장이 있으니 거기에서 논다. 수업 시간과 그 전후에 잠깐 뛰어놀 기회가 있는 학생에게 비 내리면 질척해지고 그치면 먼지 풀풀 날리는 운동장은 좀 미안스럽다. 그래서 잔디를 깔지만 시설과 관리운영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인조잔디를 제안한 걸까? 제법 근사한 인조잔디. 애초 반대 목소리가 있었지만 무시되었다. 품질기준이 없으므로 합법이라면서.


최근 녹색당은 납을 비롯해 카드뮴, 수은, 6가크롬, 벤조피렌과 같은 휘발성 유기화합물 들을 허용기준치 이상 함유하는 인조잔디가 174개 학교 운동장에서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런 내용을 보도한 JTBC는 다음날 그런 인조잔디에 일본에서 수입한 폐타이어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경악스럽게, 방사능 오염 때문에 일본에서 재활용이 금지된 후쿠시마 지역의 폐타이어까지 포함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전국 941개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았을 우리 아이들이 방사능과 오염물질을 폐에 흡입했다는 겐가? 유해성을 의심한 목소리를 묵살했던 교육당국은 지금 어떤 핑계를 궁리하고 있을까?


수입 비용이 싸므로, 어쩌면 돈을 받고 수입했을지 모르는 우리 기업은 국내에 관련 기준치가 없으므로 문제될 게 없다고 고개를 세우겠지. 영악하게 수입한 28년 전 분유는 아이들이 먹는 과자에 들어갔고 수년 전부터 수입한 일본 폐타이어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에 깔렸다. 영악한 기업인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아이, 이웃과 친지 아이의 입과 코로 그 위험 물질을 들어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걸까? 대부분의 국가가 금지하는 독성물질을 버젓이 수입하는 후안무치의 배경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기준치는 소비자보다 기업의 이익을 먼저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지나친 걸까?


2000년 개봉한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6가크롬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미국 서부 해안에 위치한 대기업이 함부로 버린 폐기물로 마을의 식수가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법정 투쟁에 나섰고, 온갖 회유와 협박 속에서 승리해 거액의 보상금을 받아낸다는 내용의 영화는 원인 모르게 시름시름 앓거나 암에 시달리는 주민들과 마음을 모아 증거를 수집해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감동적인데,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를 수입한 우리나라는 위험을 뻔히 알면서 6가크롬의 기준치를 정하지 않았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뒤에도 수입 식품에 대한 방사능 기준치가 없었다.


한데 기준치는 안전을 말하지 않는다. 보통 동물실험으로 정하는 기준치는 국가마다 다르고 그 나라 경제 상황에 따라 바뀐다. 핵발전소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일반인보다 방사능 허용기준치가 100배 이상 높다. 일반인보다 방사능 내성이 100배 이상 높은 사람을 채용했을 리 없지만 그리 정한 이유는 뻔하다. 작은 비용으로 오래 일 시켜야하지 않겠나. 한술 더 떠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자 도쿄전력은 노동자의 허용기준치를 다시 2.5배 높였다. 방사능이 늘어나면 저항성이 갑자기 높아질 리 없건만. 토양과 시멘트에 적용하는 6가크롬의 기준치도 제각각이다. 그런 기준치는 인체나 생태계보다 그 수치 이내로 배출하는 기업에 안전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독일에서 수입한 분유가 들어간 과자를 먹었을 거의 한 세대 전 우리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았겠지. 역학조사가 있었을 리 없으니 당시 아이들의 건강에 어떤 특이사항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들이 낳은 아이에 특별한 이상이 있는지 여부도 당연히 알지 못한다. 인조잔디의 품질기준을 학교 운동장에 깔기 전에 마련했다면 뛰어놀 아이들의 건강을 먼저 배려했을지 짐작할 수 없지만, 이제라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문제의 인조잔디를 안전하게 걷어내 폐기하는 방안에서 그칠 수 없다. 비용이 들더라도 기준치를 초과한 운동장에서 뛰어놀았을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사전에 기준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준치는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의 건강을 우선 고려해야 마땅하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이라면 수출입과 사용에 엄격한 통제가 선행되어야 옳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방사능에서 자유롭지 않은 일본에서 적지 않은 해산물을 수입한다. 명태와 대구, 그리고 고등어가 그것이다. 폐타이어는 운동장에 한정해 사용하는 게 아니다. 시멘트 제작에 사용한다는 걸 대한민국 쓰레기 시멘트의 비밀(이상북스 2015)에서 최병성 목사는 폭로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일원의 고철로 만든 철근으로 지은 집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아이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대치동 입시학원이나 명품 옷이 아니다. 그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내일이다. 행복은 함께 누릴 이웃과 생태계가 건강하고 아름다울 때 살갑게 다가온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해산물은 누구의 수입을 고려하는가? 분명 소비자는 아니다. 운동장에 깔리거나 시멘트 원료에 들어가는 폐타이어도 마찬가지다. 돈벌이를 위해 아이들의 건강을 폐타이어와 바꾸려는 기업인은 제 자식의 내일을 망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작은책, 20156월호)

 
 
 

서평·추억

디딤돌 2012. 9. 11. 16:52

     4대강부터 무너지는 대한민국의 내일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최병성 지음, 오월의봄, 2011.

 

 

1년도 안 된 노트북컴퓨터가 고장났다면 출고한 제품의 내구성을 의심해야 한다. 요즘 대부분의 노트북컴퓨터 제조회사들은 1년 무상 수리 정도는 당연시 한다. 자기 회사 제품에 대한 신뢰를 고객에게 과시하는 것인데, 사용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내구성도 당하지 못할 수 있겠다. 밤낮없이 사용해도 1년 정도의 내구성이야 보장하겠지만, 어떻게 썼는가에 따라 1년 내 고장이 이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집어던지거나 못을 박는데 사용하지 않고 노트북 고유의 일을 했더라도, 노트북컴퓨터의 사용자가 최병성 목사라면 일찍 고장나는 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무상 수리를 마치기 전까지 아내 컴퓨터를 혹사시킨 최병성 목사는 노트북컴퓨터만 자주 고장내지 않았을 게 틀림없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얼마 되지 않는 스마트폰과 디지털카메라도 한두 대 고장낸 게 아닐 것이다. 그의 일상을 미루어보건데, 충분히 그럴 만지 않다. 이미 파워블로거로 정평이 난 그이. 그이에게 정확한 사진과 통쾌한 원고를 청탁하고 싶은 인터넷 언론과 잡지사가 어디 한두 군데인가. 한적한 곳에서 목회자의 길을 걸으려 했던 그는 팔자에 없었던 파워블로거에서 어느새 파워페이스부커가 되었다. 양심을 저버리지 못하는 자신의 타고난 약점을 도저히 숨길 수 없었나 보다.


영월에 동강이 있다면 서강도 흐른다는 뜻이다. 열화와 같은 시민들의 반대운동 덕분에 동강을 가로막으려던 영월댐은 무산되었는데, 그 와중에 서강은 위기에 처했다. 쓰레기 매립장과 중금속으로 오염된 쓰레기를 태우는 시멘트 공장 때문에 오염될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던 거다. 그때 최병성 목사는 고즈넉한 서강에서 목회를 하고자 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을 실천하는 그이는 자신의 눈앞에 버젓이 벌어지는 부조리를 못 본 체할 수 없었고, 카메라를 들고 분연히 일어나 현장 취재에 나섰고, 공부를 거듭하면서 썼다. 강이고 대기고 오염되거나 말거나 자신의 욕심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권력에 저항해야 했다.


그는 목회자의 길을 잠시 접어야 했다. 모르긴 해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그리 되었을 게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노트북컴퓨터가 사용 1년도 못돼 고장이 나겠는가. 열심히 현장을 뛰는 목회자의 소명은 고즈넉한 서강 가에서 평화롭게 주민과 만나는 목회 이상 의미가 있다는 계시, 하지만 그 계시는 어려운 고행이 아닐 수 없다. 4대강의 고통을 전해들은 최병성 목사는 서강에 머물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는 4대강의 고통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카메라와 노트북컴퓨터가 고장 나도록 다녔다. 가장 정확한 눈으로 썼고 기고했다. 그리고 모아 출간했다. 고통이 후대에게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한사코 감추려는 4대강의 진실을 전해야했다.


목회 장소를 현장으로 옮긴 최병성 목사는 이미 에세이스트이고 시인이다. 장엄한 풍광에서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영월을 안내하는 가족과 함께 떠나는 영월 여행을 쓴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딱새에게 집을 빼앗긴 자의 행복론을 썼다. 또한 자신의 신앙심으로 자연을 찬미하는 이슬 이야기살아 있어 기도합니다, 그리고 소박한 기쁨을 썼다. 하느님의 명령으로 환경운동가가 된 최병성 목사. 그의 환경운동가 면모는 2010년 펴낸 강은 살아 있다에서 완연히 드러났고 2011년 이어서 펴낸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에서 분명해졌다. 창조 세계가 파괴되는 현장에서 몸서리치며 돌아와 노트북컴퓨터를 쉬지 않고 두드렸을 것이다. 구원을 바라는 목회자의 자세로.


말로 듣던 4대강의 현장을 시민들이 일부러 찾아가기 어렵다. 찾아간들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다. 깡패 수준으로 험상궂은 인력을 배치한 현장은 일반인의 출입을 폭력적으로 차단하지 않던가. 그래서 4대강의 참혹한 현장을 시민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싶어 하는 활동가들은 최병성 목사의 강은 살아 있다를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했다. 4대강 사업을 벌이는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제대로 알리고 문제제기 행동으로 이끌어야 하지 않은가. 지식 키우는 시민들이 실상을 알아야 해기 때문이었다. 4대강 사업이 강 살리기라고? 멀쩡한 강을 6미터 깊이로 파헤치면 홍수를 예방한다고? 강물을 가로막아 강물이 호수처럼 고이면 사용할 물이 늘어나며 철새의 낙원이 된다고? 얼토당토아니한 주장을 와해해야 했다.


환경단체 환경정의2010환경책 큰잔치에서 올해의 환경책’ 12권에 강은 살아 있다를 포함했다. 당면한 현실을 반영한 선정이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용의 진정성과 엄격함에서 실무위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적확하게 촬영한 사진을 제공하는 책이 아닌가. 언론을 통제하며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정부의 허구를 백일하에 뒤엎은 강은 살아 있다에 이어 최병성 목사는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를 이듬해 펴내야 했다.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내용을 추가한 걸까. 아니다.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는 근래 겪지 못한 혹한 속에서 24시간 강행한 토목공사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장차 어떤 파국으로 몰아갈지 밝히는데 주력한다.


환경정의 올해의 환경책으로 같은 저자의 책을 연속해 선정한 최초의 사례가 된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는 절박함에서 더욱 빛난다. 대형 보가 완공되지 않았어도 흐름이 막히자 강물이 바로 썩어가지 않던가. 4대강을 반드시 다시 흐르도록 살려야하므로 위험한 공사 현상을 구석구석 찾아간 최병성 목사는 가슴이 미어진다. 망가지는 4대강의 아름다움, 뭉개지는 생태계와 잘려나가는 강변의 나무를 보고 상처받는다. 엄동설한에도 밀어붙인 공사 현장에서 속절없이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보고 분통을 터뜨리고 만다. 정부 장담처럼 일자리는 창출되었나? 오히려 줄었다. 철새는? 다신 돌아오지 않고 있다.


비가 조금 내리자 노동자들이 죽어가며 쌓았던 모래들은 다시 강으로 흘러들었다. 억겁의 세월동안 굽이굽이 흐르며 강변과 강바닥에 쌓아놓았던 모래를 농경지에 동산처럼 쌓아놓자 강변과 지천이 맥없게 허물어진 것이다. 이른바 역행침식현상이다. 영주댐이 홍수를 막는다고? 어림도 없다. 영주댐은 낙동강의 상류, 내성천부터 위협한다. 모래가 사라지면서 완충 능력을 상실한 강은 홍수와 가뭄 피해를 반복해 입을 수밖에 없다. 강물도 오염을 피할 수 없는데, 영주댐은 내성천으로 흘러들어가는 모래를 차단한다. 낙동강의 대형 보들이 장차 운하로 바뀔 것임을 최병성 목사는 영주댐으로 증명한다. 물 모자라 배가 뜨지 못할 때를 대비하는 댐이라는 거다.


예정대로라면 4대강 사업은 벌써 완공을 선언해야 했지만 사업 전부터 숱하게 예고했던 문제점이 계속 드러나면서 지연되고 있다. 두툼한 철근콘크리트 보의 이음새와 한가운데에서 물이 샐 뿐 아니라 보 상류 쪽 바닥이 커다랗게 패어나가, 홍수 때 10미터가 넘는 보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가능성을 보인다. 여름이 되자 보 주변의 강물에 녹조가 급격히 늘면서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녹차라떼를 연상하게 하고, 고인 강물은 아메리카노 커피를 빼닮았다. 대형 보에 막힌 4대강을 이대로 놔둘 수 없다는 게 명백해졌다. 22조에 달하는 세금을 더러워진 강물에 쏟아 버렸을지언정, 생존을 위해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된다.


     국토의 1퍼센트인 4대강을 파괴해 여의도 13배의 경작지에 물을 공급한다는 정부의 자랑을 냉정하게 분석하여 그 면적이 고작 논의 0.23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혀낸 최병성 목사는 수선한 노트북컴퓨터가 또 고장나는 한이 있더라도 4대강 관련 책자를 다시 써야할지 모른다. 강은 살아 있다는 공사 전의 허구를 밝혔고,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는 공사 중에 드러나는 문제를 명백하게 제기했다면, 완공 후 다시 살린 대안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책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반니, 2012.9.20.)

 
 
 

서평·추억

디딤돌 2010. 6. 14. 09:10

《강은 살아있다》, 최병성 지음, 황소걸음, 2010.

 

그리스와 월드컵 일전으로 응원 없는 거리가 한산했던 그 시각, 4대강은 시뻘건 피를 콸콸 흘렸다. 굴삭기로 밤낮없이 뜯겨나간 강어귀마다 전날 밤부터 내린 비로 불어난 황토를 연실 토해냈건만 강가에서 천렵하던 기억을 간직하는 시민 대다수는 그 시각 붉은 티셔츠를 입고 열광하고 있었다.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언론이 노동조합을 탄압으로 하던 바로 그 시각.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인 회색도시일수록 강변으로 떠나고 싶은 시민이 많은 것과 관계없이,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 태양을 공전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굽이쳐 흐르는 한반도의 4대강은 현 정권의 삽날 아래 급살당하고 있다. 온갖 생물이 어우러지던 금모래와 은모래를 잃고 숨을 헐떡인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야 바다도 강도, 그리고 인간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성경 말씀을 가슴에 새긴 한 목사는 강변의 아름다운 교회를 남겨두고 현장으로 나가야했다.

 

강은 흘러야 건강을 유지하는 생명이다. 하느님의 창조세계에서 생명을 물려받은 모든 가치들의 비빌 언덕인 강이 죽으면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럼에도 모래와 자갈을 경부고속도 위에 수십 미터 쌓을 정도로 파낸 뒤 10미터가 넘는 철근콘크리트 제방과 보로 가로막아 강을 죽일 참인가. 오로지 토목자본의 일시적 탐욕을 위해 후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를 차마 볼 수 없던 최병성은 청지기가 되겠다고 하느님과 맺은 약속을 지키려 《강은 살아있다》를 펴냈다. “살리기”라는 말로 언어를 모독하면서 언론을 억압하며 자행하는 악행의 실상을 자식 키우는 시민들에게 알려야 했다.

 

홍수와 가뭄은 강의 생명현상이다. 지금 우리보다 잔혹하지 않았더라도, 감히 강의 생명현상을 방해했던 유럽과 미국과 일본은 원래의 모습을 최대한 복원하면서 재해를 막으려 애를 쓴다. 청계천은 복원인가. 복원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해야 했건만 온갖 문화재를 치워낸 자리를 번지르르 꾸민 배수로에 불과하지 않던가. ‘4대강 사업’이 녹색뉴딜이라고? ‘녹슨 삽질’로 규정하는 최병성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진실을 전한다. 거짓을 이기려면 진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과연 ‘물 부족 국가’일까? ‘4대강 사업’으로 홍수와 가뭄을 예방하고 철새의 낙원이 되며 수질을 개선할 수 있을까? 정권이 힘을 잃는 순간 들통 날 거짓으로 일관하는 ‘4대강 사업’의 진실을 알면 시민들은 행동에 나설 것이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할 수 있다. 사랑하면 행동하게 된다. 빗물의 절반 이상이 집중되는 장마철이 곧 온다. ‘4대강 사업’이 부를 공사현장의 작은 재앙은 머지않아 제방붕괴와 같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질 텐데, 그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데 분노가 인다.

 

이번 62지방선거의 결과는 우리를 뿌듯하게 했다. 시민의 의견을 소중히 듣지 않은 자의 독선과 오만은 반드시 심판된다는 사실이 새삼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강은 살아있다》는 월드컵과 장마의 열기 속에서도 독자의 마음가짐을 더욱 다지게 할 게 틀림없다. 행동으로 이어질 유권자의 마음가짐이다. (시사in, 2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