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21. 3. 17. 16:58

 

코로나19가 기승이어도 봄은 온다. 복수초와 산수유가 꽃망울 터뜨렸는데, 강 하구에 실뱀장어가 찾아온다. 이맘때 하구는 실뱀장어로 성황이다. 어부들이 모기장처럼 촘촘한 망을 펼친 하구를 향해 필리핀 깊은 해역에서 출발한 실뱀장어 떼는 본능에 순응하는데, 언젠가부터 모천에 불길한 기운이 스몄다. 대형 댐과 보로 하천이 오염돼도 찾아왔는데, 무던한 실뱀장어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것은 어부의 그물이 아니다. 화장품이다.

 

머스크(musk). 사향노루 복부에서 채취하는 사향은 어혈을 풀고 항균 작용을 하지만 무엇보다 치명적인 효능은 이성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은근한 향기에 있다고 전문가는 귀띔한다. 자연에서 구하기 대단히 어려운 만큼 가짜가 나돌고 고액을 헌납해도 진품은 구경하기 힘드니 대부분의 화장품에 포함된 머스크는 합성이다. <새로운 길>에서 젊은 윤동주는 아가씨가 지날 때 바람이 인다고 노래했는데, 그때 향기가 머스크와 비슷했을지 모른다.

 

한강하구의 어민은 그간 얼마나 많은 실뱀장어를 잡았을까? 길고 폭이 넓은 만큼 영산강이나 금강보다 많았을 텐데, 요즘은 통 보이지 않는다고 어민들이 하소연한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수많은 댐과 보가 중상류를 막고, 심곡 수중보가 하류마저 차단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하수종말처리장 네 군데에서 처리수를 방류하면서 자취를 감췄다고 울상이다. 대신 전에 없던 끈벌레가 우글우글 잡히고 올라오는 물고기는 등이 휜 기형이 드물지 않다는데, 그 현상을 조사한 연구자는 합성 머스크를 의심한다.

 

사진: 봄철 서해안의 하구에 모여드는 실뱀장어. (사진은 인터넷 자료실에서)

 

화장품과 향수는 물론이고 비누와 세제에 두루 포함되는 합성 머스크는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한다. 물속 동물 생태계의 번식에 장애를 일으킨다고 알려진 합성 머스크를 처리하려면 고액의 장비를 갖추고 큰 비용을 추가해야 한다. 그래도 완벽한 처리는 어려운 모양이다. 봄철이면 큰 기대를 품고 하구로 나오는 파주 어민들은 비누 냄새를 풍기는 끈벌레와 등이 휜 물고기를 쏟아버리며 한숨을 쉬는데, 우리는 어떤 대안을 찾아야 할까?

 

풍천장어라 억지로 믿던 사람들이 이맘때 실뱀장어로 양식한 민물장어를 포기해야 할까? 풍천장어를 포기할 수 없다면 화장품을 포기해야 할까? 민물장어 양식업계의 자본력은 화장품 업계와 비교가 불가능하다. 허용기준치를 정해 합성 머스크를 규제하는 국가도 있다는데, 파주 시의원의 요구를 업계가 받아들일지 미심쩍다. 규제해도 실뱀장어가 회복될지 알 수 없으니 당국의 고민이 클 것 같다.

 

하지만 어떨까? 화장하지 않는 사람도 아름답다. 하지만 실뱀장어가 찾지 못하는 생태계에서 사람은 온전할 수 없다. 합성 머스크 탓이 분명하다면 우리에게 어떤 선택이 남을까? 생존이 달린 문제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