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21. 1. 9. 18:28

 

1952년 겨울, 안개가 자욱한 날, 영국 런던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재앙을 맞아야 했다. 공장과 가정에서 연료로 사용하는 석탄이 배출하는 배기가스로 하늘이 언제나 뿌옇고 코와 눈이 매캐했어도 대안을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하에 풍부한 석탄은 산업혁명을 이끌어 부강한 국가로 이끈 연료가 아닌가. 시커먼 연기로 숲이 타들어 갔지만, 감내해왔다. 하지만 짙은 연기와 안개가 런던을 스모그로 뒤덮자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너 주 만에 호흡 곤란으로 4천 명이 넘는 시민이 쓰러졌다. 이후 만 명 가까운 시민들이 가슴을 부여잡고 목숨을 잃었다. 멕시코만 난류 덕에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도 겨울이 으스스한 영국에서 석탄만이 난방을 책임진 건 아니었다. 석탄을 모르던 시절, 옷을 두툼하게 입고 모닥불로 견디지 않았나. 다행히 석유와 가스가 석탄을 몰아냈고 영국에 1952년 같은 스모그는 재발하지 않았다. 이제 깨끗한 전기와 가스가 런던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대도시를 맑고 밝게 만든다.

 

눈앞의 스모그가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잘살게 되었나? 2001년 오존층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 과학자 파울 크루첸은 지층 연구자 모임에서 인류세(Anthropocene)를 제안했다. 지구의 온도가 안정된 만 천 년 전부터 홀로세(Holocene)라고 칭했지만, 탐욕스런 인류가 지층을 망쳐놓았다는 주장이었다. 언제부터 인류세가 명확해진 걸까? 많은 과학자는 1945년을 콕 짚는다. 그해 핵폭탄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상공에서 터졌다. 하지만 이전부터 핵폭탄 실험이 감행되고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며 1979, 1984, 그리고 2011년 핵발전소가 폭발했다.

 

무기를 보습()으로!” 2차대전이 끝난 뒤 연합군 총사령관 출신의 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평화를 앞세우며 핵발전소를 추진했다. 이후 우라늄은 사라졌을까? 우리야 알기 어렵지만 상당한 우라늄은 여전히 핵무기에 장착되었거나 장착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핵무기에 할당된 양보다 훨씬 많은 우라늄은 450기 가까운 세계의 핵발전소에 들어가 막대한 전기를 생산했지만, 핵무기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핵무기의 새로운 연료 플루토늄이 우라늄을 대체했는데, 플루토늄은 핵발전소에서 사용한 우라늄 핵연료를 재처리해서 대량으로 추출한다. 2차대전 무기가 3차대전 무기로 무섭게 바뀐 셈이다.

 

대략 4억 년 전 바닷속에 살던 동식물이 드디어 육지로 올라왔다. 이후 우여곡절을 겪었고 현재 200만 종 이상의 생물이 육지와 바다에 퍼져 살지만, 사람이 경작을 시작한 홀로세 이후 터전을 빼앗기며 곤란을 겪는다. 가축을 길들인 사람이 쇠를 손에 쥔 이후에도 견딜만했는데, 석유와 석탄을 태우면서 자연은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자연에 없는 석유 화합물을 퍼뜨리면서 생태계는 순환을 잃었고, 오로지 사람만을 위한 화석연료 과소비로 대기는 견디기 어렵게 뜨거워졌다. 이제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파멸적 에너지, 핵을 함부로 다루면서 인류세를 맞이했다. 4억 년 전 대기권에 초미세먼지와 방사능이 요즘처럼 많았다면 생물은 육지로 오르지 못했을지 모른다.

 

20113, 일본 동북부 대지진은 후쿠시마 해변의 핵발전소 4기를 처참하게 파괴했다. 자연재해를 완충하던 리아스식 해안을 매립하고 세운 발전소 중 설계수명을 무리하게 연장한 4기가 잇따라 무너졌는데, 사용 중이거나 사용 직후의 핵연료들이 상상하기 두렵게 녹아내렸다. 이후 10년이 지나가는 지금도 제어장치 잃은 발전소에서 막대한 방사능을 치명적으로 방출한다. 방호복 없이 다가가는 생명은 즉시 절명할 정도다.

 

담배 필터 크기의 핵연료는 수 미터의 지르코늅 합금관에 채워졌고, 그 대롱 수백 개를 다발로 뭉쳐서 핵반응로에 넣었을 텐데, 그 뭉치는 적어도 3개 이상이었을 것이다. 지진과 해일 충격으로 전기가 끊긴 후쿠시마 핵발전소 3기의 반응로에 냉각수 공급마저 멈추자 수천 도로 치솟던 핵연료들은 합금관을 녹이며 들러붙었고 두꺼운 핵반응로 강철을 뚫었을 텐데, 거기에서 그쳤을 리 없다. 그 아래 콘크리트 구조물을 녹이고 암반 아래 지하수를 끓일 뻔했다. 막지 못했다면 인류는 동아시아부터 겪어본 적 없는 핵폭발로 재앙을 맞았을지 모른다.

 

핵연료는 한계 무게를 넘으면 폭발한다. 다급한 동경전력은 위험을 무릅쓰고 물을 퍼부었고, 천만다행으로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덩어리져 있는지 모르는 핵연료 덩어리는 지금도 폭발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핵연료를 식히고 어디론가 배출되는 오염수다. 상당한 양은 초기 바다로 나갔고 지금은 대부분 회수해 정화한다고 관계자는 주장한다. 온갖 방사성 물질이 녹은 오염수를 여러 차례 정화해서 이제 삼중수소만 남은 상태로 저장탱크에 120만 톤 넘게 담아놓은 상태라고 일본 정부는 주장한다. 그 탱크를 발전소 터에 보관해왔는데, 탱크가 넘친다. 오염수는 추가되는데 더 놓을 데가 없다.

 

일본 신임 총리는 100만 톤이 넘게 보관하던 오염수를 태평양에 희석해 버리겠다고 한다. 대다수 일본의 어민은 필사적이고 시민 대부분과 주변국 시민들도 반대하지만, 대안이 없으니 강행하겠다는 자세다. 진정 대안이 없을까? 태평양에 버리면 수많은 어패류의 몸에 치명상을 입히며 축적될 테고, 그 어패류는 사람 몸에 들어가 방사능을 쏟아낼 것이다. 반감기가 13년인 삼중수소는 백여 년 이상 태평양의 생태계를 오염시킬 텐데, 대안이 없다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겠지만 위기의 순간을 연장할 수 있다. 지하에 거대한 시설을 만들어 안전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사진: 2011년 3월 대지진 이후 연거푸 폭발한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주변 부지의 모습. 원자로를 식힌 오염수를 대책 없이 담아놓은 탱크들이 넘치자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태평양에 희석해서 버리려고 한다. 아무리 희성해도 방사능 총량은 변하지 않고, 그 영향은 먹이사슬을 타며 농축돼 인류에 돌아온다. 핵발전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원초적 재앙이다. 그 재앙은 후쿠시마에서 멈출 리 없다. 25기를 가동하는 우리나라도 재앙의 올가미에 묶여 있다. 후손의 안전을 생각하는 최선의 대안은 당장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일이다.

 

영구히? 그렇다. 사람이 존재할 때까지, 시설이 부식되면 더 큰 시설을 지어 옮기길 반복하며 영구히 관리해야 한다. 인간이 멸종된 이후는? 뭉쳐 분열하는 핵연료는 결국 폭발하고 후쿠시마는 물론, 일본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는 방사능으로 초토화되겠지. 그 일원의 모든 생물은 치명상을 입어 연거푸 멸종하거나 돌연변이 되겠지. 그렇듯, 인간의 섣부른 과학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런 사실을 과학자는 진작 알았어도 핵발전소를 지었다. 자본의 이익과 국가의 패권 때문이었다. 후손이 그들을 법정에 세운다면 천벌 받을 짓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태평양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오염되었다. 미국은 자국민에게 참치 같은 대형어류를 먹지 말라 권유한다. 겨울철 제주도에서 잡는 방어의 상당수는 오염 정도가 심각한 후쿠시마 앞바다를 긴 시간 경유했을 것이다. 입맛 당기더라도 외면하는 게 현명하다. 원양어선이 잡은 명태, 대구, 고등어는 피하라고 전문가는 권고한다. 한데 오염수 120만 톤을 태평양에 추가한다고? 한번 버리면 계속 버리는 행위를 세계 어떤 정부도 막기 어려울 텐데?

 

전 세계 어느 원전 주변 지역에서도 삼중수소를 원인으로 하는 건강 피해 보고가 없었다!”라고 일본 관료가 주장했다는데, 조사하지 않았겠지. 삼중수소가 지하수에 많이 검출되는 울진핵발전소 주변 주민 사이에 갑상선을 비롯한 암 환자가 유별나게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30여 년 전 구소련 해군이 핵잠수함에서 발생한 오염수를 홋카이도 근처 해역에 버리려 할 때 일본은 뭘 했던가? 당시 소련이 국제 기준보다 낮다고 주장했어도 소련 대사관 앞에서 강력히 항의했고 오염수 투기를 막지 않았나. 이번에는 다른가?

 

과학기술 수준이 높다고 자랑하는 부자나라 일본에서 돈 핑계로 태평양에 독극물을 풀겠다고? 일본과 우리는 물론이고 모든 세상의 다음세대가 누려야 할 생태계를 통으로 위협하려 드는데, 용납할 수 있는가? 그런 일본 정부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규탄성명은 부족한데, 고장 잣은 핵발전소가 한둘 아닌 우리나라는 괜찮을까? 핵발전소를 50기 가깝게 가동하는 중국에 환경단체가 감시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중국에서 단 한 기의 핵발전소가 후쿠시마처럼 폭발하면 황해는 끝장난다. 아니 세계, 아니 세상이 끝장난다. 인류세가 마감될 것이다.

 

핵발전소는 대안을 거부한다. 대안은 한시바삐 없애는 일이다. 350ppm 이하로 낮추자던 이산화탄소 농도가 어느새 415ppm을 넘었다. 450ppm이면 파국을 면할 수 없다. 후손을 위협하는 핵이든, 생태계를 뜨겁게 달구는 화석연료든, 전기와 에너지 과소비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대안을 황급히 모색해야 한다. 석탄 모를 때 영국 땅에 사람이 살았다. 전기 모르던 우리 조상도 행복한 삶을 누려왔다. 진실을 직시하는 과학자는 인류세의 파국을 예견한다. 더 늦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 유기농산물을 나누는 어린 생명과 행복한 내일을 꿈꾸며 누릴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울림두레, 2020년 겨울호)

 

 
 
 

자원·에너지

디딤돌 2015. 1. 28. 19:41


방어회 계절이 돌아왔다. 해마다 이맘때 제주도 모슬포 인근 바다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방어를 드물지 않게 맞을 것이다. 그래서 괜스레 다급하다. 2011년 이후 방어회를 찾는 친구를 보면 말려야 했다. 수도권에서 활어회를 찾는다면 과장된 몸짓을 마다하지 말아야 했다. 이맘때를 하염없이 기다렸더라도 하는 수 없는 이유를 새삼 되새기려 한다.


1980년대 초, 동인천역 주변의 한 주점은 삼치구이를 넉넉히 내놓았다. 그 무렵 삼치구이는 가격도 저렴해 용돈이 궁한 대학생들이 즐겨 찾았는데, 요즘 그 골목은 제법 알려진 삼치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흔쾌하지 않다. 가격 부담이 없고 맛도 여전하지만 너무 어린 삼치를 내놓는 까닭이다. 석판이 좁을 만큼 넓적했던 구이는 요즘 필통 펼친 정도로 줄었다. 알을 낳기 전의 어린 삼치가 분명하다. 경쟁적으로 어린 삼치를 싹쓸이하는 어업은 지속 가능하지 않지만 동인천 삼치거리는 오늘도 북적인다.


고흥 앞바다에서 주로 잡히는 삼치는 여간해서 수도권까지 살려오기 어렵다. 대개 냉동 상태로 가져와, 주점은 구이로 손님상에 내놓는다. 부드러운 삼치회를 원한다면 고흥의 어촌을 찾아가길 어부들은 권한다. 고흥에 가도 활어회는 어렵다는데, 삼치보다 통통한 방어도 사정이 비슷하다.


몸이 1미터 가까이 자라는 방어를 낚시로 잡아 뱃전에 올려놓으면 몇 번 펄떡이다 이내 조용해지고 마니, 얼음물에 담가놓던가 냉동해야 수도권 식당에서 선어회로 내놓을 수 있다. 강력한 지진과 쓰나미 뒤 후쿠시마 바닷가의 핵발전소 4기가 연달아 폭발하기 전부터 양판점에 낮은 가격으로 선보였던 방어회가 그랬다.


요사이 수도권의 횟집의 커다란 어항은 보란 듯 방어를 전시한다. 길이가 50센티미터 정도? 어리다. 아직 한 번도 알을 낳지 않았을 게 틀림없다. 좁은 어항을 맴도는 어린 방어는 무척 답답하겠지만 죽지 못한다. 물에 충분히 섞은 항생제가 죽지 못하게 방해할 텐데, 커다란 방어는 항생제를 넣어도 살려올 수 없다고 한다.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해 수도권 횟집 어항의 방어는 피하고 싶지만 다른 이유로 방어회를 마다한다. 항생제 걱정도 있지만 그건 다른 활어도 비슷한 실정이다. 눈 질끈 감고 넘어갈 수 있지만 방사성 물질은 피해야 하지 않겠나. 몸으로 들어가 알파선을 내뿜는 플루토늄이라면 특히. 알파선은 종이도 뚫지 못한다지만 몸에 들어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게 몸 구석구석에 알파선을 내놓으며 몸속 유전자 배열을 붕괴할 것이다.


지옥의 여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플루토늄은 원래 자연에 없었다. 핵발전소의 핵분열 과정에서 형성되는 강력한 방사성 물질이다. 핵연료의 93%를 차지하는 우라늄238은 안정되어 핵분열에 동참하지 않지만 핵연료의 7%에 불과한 우라늄235는 중성자를 맞으면 핵분열하며 막대한 열과 중성자를 내놓는다. 그 중성자 하나를 받은 우라늄238이 플루토늄239가 되는데, 플루토늄의 원자핵은 무척 불안정하다.


알파입자의 방사선을 내놓는 플루토늄239는 반감기가 무려 24000년 이상이다. 문제는 그 방사선의 독성이 매우 강력하다는 사실이다. “지옥의 여신인 이유다.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 핵물질의 도난을 우려한 전문가들은 플루토늄 1그램이면 60만 명을 폐암으로 사망하게 만들 정도라고 경고했다. 반감기의 10배 기간이 지나야 안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플루토늄 근처에 적어도 25만 년 동안 다가가지 않아야 한다. 자그마치 25만 년이다.


사용을 마친 핵연료에 대략 1%의 플루토늄이 포함되는데, 핵무기를 염두에 두는 세력은 그 플루토늄을 분리 정제하고 싶어 한다. 500킬로그램 정도의 순수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북한은 핵무기 폭발실험을 강행한 바 있다. 핵확산금지를 천명한 우리나라는 사용 후 핵연료를 커다란 수조에 보관하며 안전을 감시하지만 일본은 정제해왔다. 대략 50만 톤을 보유한다는 일본은 플루토늄을 일부의 핵연료로 활용하는데, 후쿠시마 3호기가 그랬다.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은 플루토늄을 폭발시켰다. 후쿠시마 3호기도 폭발했다. 19458월의 나가사키와 20113월의 후쿠시마도 상당한 플루토늄을 배출했을 것이다. 나가사키는 폭탄이므로 화력이 순간 막대하더라도 천지사방으로 배출된 방사선은 즉각 줄어들었다. 후쿠시마는 다르다.


지진과 쓰나미로 전기 공급이 끊어지자 냉각수 공급이 중단된 원자로 안의 핵연료들은 수천도로 상승해 들어붙으며 20센티미터 두께의 강철을 뚫었다. 이어 1미터 가까운 철근콘크리트를 뚫고 땅 속으로 내려가며 지하수맥을 거듭 오염시킬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플루토늄이 지하수를 타고 후쿠시마 앞바다로 스며든다. 20113월 이후 적어도 하루 300톤 이상의 지하수가 폭발한 핵발전소를 지나 바다로 나간다.


플루토늄은 무척 무겁다. 바다에 가라앉을 텐데, 바닥에 많은 어패류가 알을 낳으며 산다. 커다란 어류의 주요 먹이인 까나리와 오징어도 그 중 하나인데, 방어는 회유하며 덩치를 키운다. 덩치만큼 먹는 양도 상당할 텐데, 제주도에서 쿠로시오 난류를 따라 오호츠크 일원의 태평양으로 회유하는 방어의 많은 개체들이 후쿠시마 앞바다를 경유하며 바닥의 어패류를 허겁지겁 먹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덩달아 플루토늄까지.


1979년 미국 드리마일이나 1986년 구소련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경험에서 우리는 몸을 투과하는 방사선보다 몸 안에서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방사선이 훨씬 위험하다는 걸 배웠다. 피해가 후손으로 이어지는 원인은 대개 먹어서 몸에 들어온 방사성 물질에 있었다. 그러므로 친구들이여. 이맘때 방어회의 입맛을 집요하게 방해하는 행동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맛난 회감이야 많지 않은가. (뜻밖의소식, 20152월호)

무서운 일이네요. 정부가 힘쓰지 않는다면 시민단체가 앞장 서서 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6. 12. 08:44

 

1970년대 후반. 대청봉 정상까지 한걸음에 오른 청년들이 화채봉으로 향했다. 가본 적도, 가는 길도 몰랐지만 좋다더라는 소문을 믿고 막연히 걸음을 재촉했던 사내들은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당황했다. 슬금슬금 좁아지던 길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돌아나가야 옳았지만, 누가 앞장섰는지 건각들은 내친 김에 덤불을 헤치며 계곡을 내려갔다. 그러길 두어 시간. 날은 어둑해졌고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적 없는 물길을 첨벙이다 넓은 바위가 편평해지면 계곡은 꼭 낭떠러지로 이어졌다. 양손에 든 기타와 가방을 진작 내버린 일행은 배낭과 엉덩이를 질질 끌며 한발 한발 내려가는데 썩은 나무에 발을 의탁하던 친구가 그만 머리와 다리를 뱅글뱅글 돌리며 아래로 떨어져 박히는 게 아닌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우리는 거의 울상이 되었는데, 어리둥절한 채 허공을 바라보는 친구. 배낭 덕분에 멀쩡했다며 우리를 안심시켜주었다.


이튿날 반나절을 더 헤맨 끝에 아무도 다치지 않고 인적 없던 계곡을 벗어났지만, 헤진 바지에 엉덩이를 드러내며 첨벙이는 순간에도 청년들은 생생한 기억을 전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 친구들은 지금 흩어져 살지만 자주 만나 술잔 기울인다. 누구라도 심각하게 다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치러야했다면, 다시는 마음 편하게 만나지 못했으리라.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에 내 이럴 줄 알았지. 우물쭈물하다가라고 썼다던데, 우리는 우물쭈물하다 기회를 놓치거나 독선으로 치달아 일을 그르칠 때가 잦다. ‘아라뱃길로 이름을 분칠한 경인운하가 그렇다. 기획 단계부터 비판적 검토가 빗발쳤지만 정부는 독선으로 밀어붙였다. 경인운하에 현재 화물을 실은 배가 거의 왕래하지 않는다. 18킬로미터에 불과한 경인운하를 오가는 화물선에 화물을 실으려는 화주가 없기 때문이다. 인근 잘 뚫린 도로로 20분이면 넉넉한데 어떤 화주가 트럭과 화물선에 물건을 거듭 옮기며 하루 이상의 시간을 버리고 초과운임을 받아들이겠나.


경인운하는 애초 계양산 일원 주민들이 홍수 피해를 예방하려 계획된 굴포천 방수로에서 출발했다. 생각해보자. 수해가 빈번한 곳에 마을은 형성될 리 없다. 계양산 인근의 다남동과 벌말은 김포평야가 주변에 온전할 때 수해는 거의 없었다. 드넓은 논이 빗물을 완충했던 건데, 부천시 중동과 상동 신시가지의 대단위 아파트, 인천시 삼산동과 계산동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김포평야가 개발되면서 사정이 바꿨다. 아스팔트와 철근콘크리트에 쏟아진 빗물은 낮은 곳을 향해 거침없이 휩쓸리기 시작한 것이다.


갯벌 매립으로 공업단지나 신도시를 조성할 때 충분한 면적의 유수지를 확보하듯, 아파트단지를 넓게 만들 때 반드시 수해를 완충하는 습지를 확보해야 했지만 외면했다. 아파트를 더 지어 분양했을 따름이다. 그러자 수해는 애꿎은 지역으로 전가되었다. 신문 1면을 장식할 사고가 여태 발생하지 않은 4대강의 16개 대형 보 역시 수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도도하던 강물을 틀어막았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은 어떤 물폭탄을 상류지역에 떨어뜨릴지 모르는데, 신중하게 관리한다면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누가 시장으로 당선되느냐에 따라 다를 텐데, 20091, 주민 5명과 경찰 1명을 불에 타죽게 한 용산역 주변의 개발은 어떤 논의로 진행될까? 초고층 빌딩이 화려했던 애초 계획은 희생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중단되었다. 투자자에게 보장되는 돈벌이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사업 규모와 내용이 바뀌면 다시 진행될까? 용산역 주변의 개발은 규모가 비슷한 독일 베를린의 화물철도터미널 개발의 예와 크게 대비된다.


동서로 분단된 이후 50년 동안 사용하지 않자 우리의 비무장지대처럼 온갖 풀과 나무들이 가득 들어왔지만 다시 철도화물터미널로 환원하는데 이견이 없는 듯했다. 그런데 누군가 아쉬움을 표시하며 보전을 제안했고, 절차는 중단되었다. 이후 개발과 보전의 타당성과 방향을 놓고 다양한 논의가 활발하게 펼쳐졌고 논의 과정에 베를린 시민의 참여는 당연히 배려되었다. 수십 차례의 공청회 끝에 철도 환원과 녹지 보전을 반영하는 최종 2안을 상정하기로 했고, 시민들은 다수결로 결정하자는 합의를 이뤄냈다. 현재 녹지는 보전돼 있다.


논의에 참여한 시민들은 다른 의견을 납득 가능하게 절충한 2개 안을 민주적으로 만들어냈고, 논의가 충분한 만큼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자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개발을 선호했던 시민들도 즐겨 찾을 만큼 철도화물터미널 부지의 녹지는 베를린의 자부심이 되었다는데, 위험사회를 펴낸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시민의 민주적인 참여가 위험사회를 예방한다고 주장한다. 철거를 반대하는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개발 방향과 시기를 결정했다면 용산역 주변의 주민과 경찰의 생명은 희생되지 않고 투자자의 적정 이익도 보장되었을 것이다. ‘4대강 사업과 경인운하는 지금과 같은 모습일 수 없었을 게 틀림없다.


샤를 드골 대통령이 반대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해 잔뜩 만든 프랑스의 핵발전소들은 시방 낡았다. 아무리 엄격하게 관리하고 통제해도 크고 작은 사고가 빈발하니 가동을 급작스레 중단해야할 때가 많다. 지금까지 7등급 규모로 발생한 핵발전소 사고의 원인은 제각각이었다. 앞으로 어떤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할지 점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관리와 운영이 투명하다면 사고 확률은 줄어든다. 부정과 비리가 발을 붙이지 못할 뿐 아니라 수명연장이나 폐쇄를 합리적으로 결정할 것이므로.


기계가 낡으면 고장은 필연이다. 구조가 복잡한 기계는 고치기 어려운데, 핵발전소가 특히 그렇다. 후쿠시마에서 보았듯, 낡은 핵발전소의 사고와 고장이 미치는 파장은 상상을 불허한다. 시민들이 납득할 정도의 민주적 토론 끝에 자국 핵발전소의 가동을 즉각 멈추거나 차례로 폐쇄하고 있는 독일은 프랑스에 전기를 수출한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햇빛과 바람으로 전기를 충분하게 생산하는 까닭에 핵발전소가 멈출 때마다 전기가 부족해지는 프랑스에 수출할 수 있다는 거다. 청구서를 내밀지 않는 태양과 바람은 간단한 발전설비만 요구한다. 사고 규모가 작아 주민들도 쉽게 고칠 수 있다.


인간 없는 세상에서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대부분의 인공 구조물은 금방 부서지거나 고장을 일으키겠지만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연결하는 유러터널은 예외적으로 천년 정도 버틸 것으로 예상했다. 그만큼 지역의 환경이 안정적이고 시공이 철저했다는 건데, 유러터널은 공사 전부터 철두철미한 검토를 거쳤다. 기술과 경제 측면에서 그치지 않고 정치는 물론 인문과 사회 영역까지 놓치지 않았기에 민원이 발생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관리하는 까닭에 사고가 없었다.


완공되었지만 경인운하와 4대강 사업은 내세운 애초의 목적을 충족시킬 구조물이 아니다. 그 시설은 토목자본에 경이로운 이익을 안겼을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으로 설계 시공하고 관리 운영하는 발전소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걷잡을 수 없는 피해와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을 치룰 수밖에 없다는 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배웠다. 노후해 폐기해야 선박을 적당히 수리해 규정 이상의 화물을 대충 싣고 안전조항을 무시할 때 어떤 참사를 빚을 수 있는지 우리는 세월호에서 보고야 말았다.


지하수가 넘쳐흐르는 땅은 핵폐기물 처분장의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 지금 핵폐기물 처분장을 짓는 경주가 그렇다. 장차 어떤 사고를 일으킬까? 지구온난화는 해수면 상승 뿐 아니라 태풍과 해일을 거세게 만드는데, 파고를 완충해오는 갯벌은 끊임없이 매립된다. 우리 내일은 안녕할까? 사고 가능성을 외면하는 개발은 눈앞의 탐욕에 충실하지만 내일의 안전을 백안시한다. 이제 안전을 등한시하는 독선적 개발은 멈춰야 한다. 시민과 함께 다시 검토해 개발의 방향과 성격을 바꿔야 한다.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다. (작아, 2014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