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1. 8. 9. 18:27

 

이변은 자주 발생하지 않아야 이치에 닿지만, 요즘 기상이변은 일상이 된 느낌이다. 전례 없이 추웠던 지난 겨울은 서해안의 주꾸미와 병어가 제철에 드문 이변으로 이어졌는데, 언젠가부터 비가 내리지 않는 장마전선 뒤에 정체전선을 동반하는 국지성호우가 빗발치더니 올해는 정체전선이 장마철 이전부터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예년보다 많은 비를 뿌린 장마철이 지나자마자 잠시 불볕더위가 몰아치는가 싶었는데, 그것도 잠시. 뒤를 이어 정체전선이 본격적으로 중부지방을 한동안 관통하면서 중국에서 몰려와 터진 물풍선들이 서울과 중부지방에 걷잡을 수 없는 수해를 안겼다.

 

예년보다 강력한 라니냐가 장마전선이 물러간 우리 해안으로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중국에서 발생한 물풍선이 북태평양고기압 전면을 따라 우리나라로 넘어와 시베리아에서 확장되는 한랭전선과 만나 한꺼번에 터진 이번 호우는 보기 드물게 짧은 시간에 많은 강수량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정도와 장소가 달랐을 뿐, 요사이에 발생하는 국지성호우는 지역을 돌며 해마다 계속되었으므로 누구라도 이번 호우를 기상이변으로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날이 날수록 심화되는 지구온난화는 적도 태평양의 수온을 5개월 넘게 섭씨 0.5도 이상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엘니뇨와 라니냐만 강력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이맘때 비가 잦은 남중국에서 편서풍을 탄 수증기가 몰려오는 현상은 자연스럽지만 지구온난화는 그 양을 증폭시켰을 텐데, 장강을 세계 최대로 가로막은 샨사댐은 우리나라에 오는 수증기를 그 만큼 추가할 것이다. 이제 2000년 이전에 거의 볼 수 없던 기상이변이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되는 형국이다. 국지성호우니, 100년 만의 폭우니 하는 상투적 소리는 이제 귀를 자극하지 못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폭우는 부자들이 모여 사는 서울 강남이나 산촌의 초등학교에 자원활동을 간 대학생을 희생시킨 강원도 춘천시 신북면이나 예외가 없는데, 산허리를 이리저리 끊는 임도가 무분별하게 개설되었으니 산사태는 크게 늘었을 게다. 다만 산간 마을에서 발생해 소외된 희생자를 언론이 크게 주목하지 않았을 뿐일 터. 지방자치단체 책임자의 상투적 엄청난 비보다 어떤 원인이 있을 게 틀림없는데, 우면산의 산사태는 하필 아스팔트 너머 서울 강남 부자마을의 아파트단지를 덮쳐 언론의 관심을 더 끌었다. 산사태 발생 여부가 알려지지 않은 인천은 어떤가. 바다가 가까우니 느긋해도 될 만큼 한가로울까.

 

1998년 강화도는 장마가 지난 뒤 하루 600밀리의 비가 내려 곳곳에 산사태를 일으켰고 지금도 그 상처를 안고 있다. 이후 우리나라 여기저기에서 내리는 하루 600밀리의 비는 큰 뉴스거리가 못 되었는데, 강화를 제외한 인천에서 눈에 띄는 산사태는 사실상 거의 없었고 그로 인해 희생된 시민도 드물었다. 하지만 홍수 피해까지 없었던 건 아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칠갑이 된 회색도시에서 빗물을 완충할 수 없는 만큼, 크든 작든, 홍수 피해가 예외 없이 발생했다.

 

흩뿌리는 정도가 아니라면, 양이 많든 적든, 내리자마자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흥건히 적시며 어디론가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은 비가 그치자마자 말끔히 사라진다. 그러므로 차창을 덮는 물방울과 와이퍼로 시야가 방해되던 자동차나 구두를 신은 보행자는 이내 편안해지겠지만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이번 서울 강남에서 보았듯, 도시는 순식간 물에 잠긴다. 배수관로에 이물질이 끼었다면 제거해서 같은 사고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지만 배수용량보다 많은 비가 한꺼번에 떨어질 경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만큼, 국지성호우의 강우량도 점점 급증하므로 하수구 맨홀 뚜껑이 튀어 올라올 정도로 배수관에 물이 넘치게 하는 비는 앞으로 얼마든지 재현될 것이다.

 

1998년 이후 기상관측 이래 최대였던 호우는 2000년 이후 거듭되고 있다. 이럴 때 호우 피해를 누적 경험한 도시는 기존 배수 체계를 확충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면적이 상대적으로 좁은 섬 지방처럼 금방 바다로 흘러들면 다행이지만 인천은 대도시다. 만조 때 큰 비가 내리면 배수가 어렵다. 그럴 때 배수관망을 타고 낮은 곳으로 흘러든 물을 한시적으로 보관했다 간조 때 배출해야 한다. 서울도 사정이 비슷하다. 한강 수위가 높아진 상태에서 수면 아래 지역에 쏟아지는 빗물은 쉽게 처리하지 못한다. 지하에 완충 용량이 충분한 저류소나 지상의 유수지에 빗물을 임시로 저장한 뒤, 한강 수위가 낮아진 뒤 방류하는 시설을 충분히 갖춰야 안전할 수 있지만 어쩌다 사용하는 철근콘크리트 완충 시설을 만족스럽게 갖추어 유지하려면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회색도시의 홍수 피해는 배수 여건에 좌우되는 경향이 짙지만, 빗물을 사전에 완충하는 무엇보다 효과적이다. 그러자면 도시의 보습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대안은 녹색이다. 떨어진 빗물을 전혀 흡수할 수 없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바닥보다 녹지가 보습력이 높고, 녹지보다 습지가 훨씬 높다. 도시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사이의 곳곳에 많은 녹지를 확보하고 그 녹지 중 일정 면적 이상으로 습지를 조성한다면 부담스런 강우도 능히 완충할 수 있다. 과거 논과 밭이 가까웠을 때, 도시는 수해에서 멀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물론이고 크고 작은 저수지가 골짜기를 지킬 때, 산사태는 드물었다.

 

유럽의 도시들이 대개 그렇고 가까운 일본도 그런 녹지와 습지를 마련하려 노력한다. 도시 면적의 50퍼센트를 녹지로 바꾸는 걸 당연시하는 독일을 보자. 보행자도로에 가로수를 두 줄로 심고 그 사이에 풀을 충분히 심는다. 차도 중간에 나무를 넓게 심어 안전을 도모하는 도시는 외곽의 숲에서 도심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을 조성해 놓았다. 가로와 세로 녹지축은 물론이고 도시를 동심원으로 잇는 녹지축은 곳곳에 조성된 자투리녹지와 만난다. 무엇보다 부러운 건, 습지를 충분히 확보한 녹지를 도심에 넓게 배치하는 모습이다. 풍부한 보습력을 갖춘 만큼, 도시는 수해를 완충하면서 빗물을 지하로 스며들게 한다. 그뿐인가. 옥상과 벽에 풀과 덩굴성 나무를 심고 주차장 바닥에 잔디를 심은 블록을 깔았으며 심지어 전철 지상 구간의 레일 사이까지 잔디를 푹신하게 심었다. 덕분에 홍수 피해를 잊은 도시는 시원하고 시민들은 사용하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집중되는 강우량이 우리보다 적은 편이고 인구밀도가 우리보다 낮으며 멀지 않은 외곽에 숲이 잘 발달된 독일 도시를 우리나라와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의 녹지는 사실상 지나치게 좁을 뿐 아니라 보습력도 신통치 않다. 녹지축은 물론이고 도시의 공원에 습지는 거의 없다. 시 공원당국은 나무나 풀보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시설 도입을 더 선호하지 않던가. 간혹 화강암 바닥에 분수와 인공폭포를 덩그러니 만들었지만 여름 한철 보기 시원할 뿐, 빗물을 완충하는 보습력과 거리가 멀다. 여느 도시처럼 인천도 마찬가지다.

 

높은 산이 없고 바다가 가까운 인천에 중앙의 언론들이 한동안 주목할 정도의 수해는 자주 발생하지 않지만 녹지는 부족하고 습지도 거의 없다. 한남정맥을 타고 북쪽 가현산에서 남쪽 청량산까지 이어지는 외곽의 S자 자연녹지축이 있지만 도시를 관통하는 가로와 세로녹지는 조성하지 않았거나 부실하고, 주변의 공원과 이어지지 못한다. 도시는 그래서 덥고 빗물을 완충하지 못하며 시민의 일인당 에너지 소비는 독일보다 많다.

 

녹지축과 더불어 습지가 있는 녹지를 넓게 조성할 당시의 독일 도시보다 현재 인천의 재정 수입이 더 높을 텐데, 무관심하거나 과문해서 그런가, 시 당국은 아직 도시 녹지와 습지를 조성하는 일에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최근 인천시의회가 인천시 녹지 보존 및 녹화 추진에 관한 일부 개정 조례안을 발의하며 외곽 S자 녹지축의 훼손을 방지하려고 움직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고무적인 일이긴 한데, 도심 내의 녹지에 관심은 아직 부족해 보여 아쉽다. 그런데 얼마 전, 갈산근린공원 부지에 지하수가 용출되는 우물이 발견되자 시민사회와 일부 시의원이 습지생태공원으로 추진하자는 제안이 나와 반가웠다. 이제 시작인 셈인가. 희망적이라 다행인데, 섬과 농촌지역을 제외한 지역, 다시 말해 인구가 밀집된 인천의 도심에는 조성된 녹지와 습지가 태부족하다. 점점 심화될 국지성호우를 완충하기 대단히 버거울 수밖에 없다.

 

이번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경고를 한 국지성호우는 느긋한 인천도 예외가 아니라는 걸 강력하게 경고한다. 다른 지역보다 지구온난화 정도가 2배 가까이 높은 우리나라의 서해안은 앞으로 적지 않은 국지성호우 뿐 아니라 태풍이 들이닥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견하는 만큼, 인천은 대비해야 한다. 배수관망을 미리 검토해 모자라면 확충하는 한편 지상의 유수지와 지하에 저류지의 조성도 지역에 따라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도시의 보습력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더 많은 개발, 더 높은 건물을 지으려는 비용의 일부만으로 도시에 녹지와 습지를 우선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전에, 멀쩡한 외곽의 S자 녹지를 도로로 자르거나 뚫는 일은 자제해야 할 테고, 무엇보다 당장 생태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송도신도시 인근의 알량하게 남은 갯벌을 보전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더는 느긋할 수 없다. 남은 시간이 이제 충분하지 않다. (인천in, 2011.8.9)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0. 3. 29. 10:50

“한낮에 왕이 입을 열어 한밤중이라고 말하면, 현자는 달이 보인다고 말한다.” 이 땅의 ‘현자’는 누구인가.

 

1. 생태계를 이어주는 강

 

사람들의 왕래를 어렵게 하는 강은 국가나 지방의 경계를 이루지만 결코 장벽이 아니다. 오랜 역사 속에 형성된 개성의 소통을 가로막지 않는다. 대지에 영양을 제공하는 강은 혈관이다. 상류에서 하류, 왼쪽과 오른쪽, 바닥에서 땅속, 그리고 세월을 이어준다. 덕분에 모래와 자갈밭, 폭포와 깊은 소, 바위 사이에서 휘몰아치는 여울과 수면이 넓은 잔잔한 중하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들이 오랜 세월 어우러졌다.

 

강변의 습지에서 초원으로, 초원에서 강둑 너머 키 작은 숲으로 이어지며 강변은 자연스럽게 주변 산록과 연결된다. 산록을 적신 빗물은 커다란 바위를 휘도는 계곡을 지나 소로 모여들고 다시 강의 중류와 부드럽게 이어지다 하류를 거쳐 하구로 빠져나간다. 범람원과 연결된 강물은 주변의 습지와 땅속으로 스며들어간다. 강물의 높이는 인근 마을 우물의 물 높이에 영향을 주고 논에 물이 배어나오게 한다. 봄가을에 올라오는 어류들은 이듬해 강어귀로 내려간다. 강은 또한 마을의 문화와 역사도 연결한다.

 

하지만, 강변의 자갈과 모래밭이 사라지면 강에 삶을 기대는 생물들은 쉼터는 물론 산란할 장소와 먹이를 찾을 수 없다. 본류와 차단된 지류, 지류를 잃은 본류의 생태계는 보존될 수 없다.

 

2. 4대강 사업과 생태환경의 위기

 

‘4대강 사업’은 뗏목을 타던 고즈넉한 시절로 돌이키는 ‘복원’이 아니다. 복원은 전면적이고 철두철미한 조사와 논의를 거쳐야지 청계천처럼 정책결정자의 의지로 전격 처리할 사항일 수 없다. 지금이라도 사업의 진행 속도를 낮추고 강을 살라지는 목적을 위한 대안들을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한다.

 

운하를 의심하게 하는 ‘4대강 사업’

현재 계획된 보에 갑문을 나중에 설치하면 쉽게 운하로 변경될 수 있다. 강바닥을 일정 깊이로 파서 수심을 유지하려는 보 계획은 갑문이 없어도 ‘구간운하’로 볼 수 있으며, 향후 ‘4대강 사업’에 투입된 예산을 매몰 처리한다면 운하 전환은 순조로울 수 있다. 갑문만 추가하므로 경제성이 있다고 우길 수 있다. 4대강 사업은 대운하가 아니고서는 목적이 없는 사업이다.

 

물 확보에 대한 억지 주장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로 국지적 폭우와 예년과 다른 가뭄과 홍수가 빈발할 것으로 예상하는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수자원을 추가 확보하겠다고 공언한다. 그래서 강바닥을 파낸 뒤 16개의 보를 설치하고 농업용 보를 높이며 작은 댐을 더 짓겠다는 건데, 과학적 타당성이 의심스럽다. 정부의 ‘수자원장기종합계획’은 2011년 낙동강은 물이 오히려 0.11억 톤 남고 2016년에 이르러야 0.21억 톤이 부족한 것으로 분석했건만 왜 낙동강에서 10억 톤의 물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지 타당한 이유를 밝히지 못한다. 가뭄은 주로 산골, 도서, 연안에서 발생한다. 강바닥을 파고 제방을 높이면 수면이 주변 농경지나 마을보다 높아져 홍수와 침수 피해가 늘어난다. 정부의 ‘수자원 확보’는 운하의 목적을 희석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강바닥 준설의 문제

‘4대강 사업’ 예산의 25퍼센트가 들어가는 준설은 5.6억 톤에 달하며 그 중 4.5억 톤은 낙동강에서 파낼 예정이다. 유역 종합 치수와 정비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만큼의 모래와 자갈을 파낼 합리적 근거 없이 홍수방어 목적을 둘러대지만, 이미 낙동강에서 토석을 준설한 물량이 2억 여 톤에 이르고 하상이 최대 9.4미터나 낮아져 홍수 방어 능력이 커졌다. 4.5억 톤이면 안동댐에서 낙동강 하구까지 200미터가 넘는 폭으로 6미터를 쌓아야 하는데, 준설토 야적 장소, 선별 기준, 처리 방법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다.

 

오니 준설의 문제

정부는 4대강을 ‘죽음의 강’으로 몰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 환경부의 환경백서는 4대강이 지속적으로 개선돼 한강은 Ⅰ급수, 낙동강은 안정적으로 Ⅱ급수, 금강과 영산강도 Ⅰ급수 수준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강바닥에 누적돼 쌓인 오염층이다. 2010년 1월 27일과 28일, 가물막이 공사가 밤낮 없이 진행되는 낙동강 유역에서 오니에 포함된 독극물인 비소가 미국의 기준치보다 높게 나타났다. 준설 때문으로 1300만 시민의 식수원을 위협하는 사태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오니에 포함된 중금속과 독극물이 준설로 밖으로 나와 강물에 녹을 경우 상수원을 심각하게 오염시킬 수 있다. 6가크롬도 한강과 낙동강에서 미국의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되었다.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담당자는 강바닥의 표층만 조사했다고 실토한 바 있다.

 

물과 오니를 한꺼번에 흡입 준설해도 안심할 수 없다. 현재 오탁방지막을 여러겹 설치했지만 그렇다고 흙탕이 하류로 번지는 현상을 막지 못하고 중금속과 독극물과 독성 미생물은 무방비상태로 흘러간다. 수온이 상승하면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준설한 오니를 인근 농경지나 산업단지에 성토하겠다지만, 그럴 경우 오염 피해가 지역에 전가될 것이다.

 

홍수는 지류에서 발생

국가하천은 2007년에 97퍼센트 이상 정비되었고 지방하천은 84퍼센트에 머물고 있다. 홍수 피해는 대부분 지방하천과 소하천에서 발생하므로 홍수 예방을 위해 본류를 개발하려는 정부의 안은 적절하지 않다. 2009년 7월 초, 나라 전체가 홍수를 겪었을 때 국가재난관리센터는 영산강 일부를 제외한 4대강의 본류에서 홍수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했다. 사전 수위 조절로 홍수에 대비하겠다고 정부는 다짐하지만 보는 오히려 홍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치수를 선도하는 국가들은 우리와 달리 하천 낮은 지대에 범람한 강물이 한동안 머무는 ‘홍수터’를 복원한다.

 

보는 수질 악화의 주범

보가 설치된 4대강은 계단으로 이어지는 호수처럼 흐름이 정체될 것이다. 고이는 물은 쉽게 썩는 건 상식이다. 정부는 수문을 수시로 열 수 있는 ‘가동보’라고 강조하며 수질 악화 전에 물을 뺄 수 있다고 주장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지천을 공격한 국지성호우를 대비해 계단 호수의 물을 황급히 빼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물을 황급히 비우면 하류 보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4대강의 보는 유속을 평균 10배 정도 느리게 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러면 갈수기에 더욱 악화될 테니 생활용수 활용이 불가능하다. 정부는 수량이 많으니 오염이 덜 할 것으로 주장하지만 수질이 문제다. 농약과 비료와 충분히 처리되지 않은 축산과 공업 폐수가 늘어난다고 콘크리트로 훼손된 하천에서 정화될 리 없지 않은가. 강정보와 달성보가 설치되는 대구시 성서공단은 지하수위 변화로 심각한 침수가 예상되고 낙동강 하류의 함안보는 지하수위 상승으로 농경지와 가옥 침수가 예상된다. 영산강의 죽산보에 물이 가득 찬다면 나주평야는 침수될 거로 조사되었다.

 

농업용 저수지의 물을 늘릴 근거는 없다

농업용 저수지의 제방을 높일 경우 수몰 면적이 늘어나고 그로인한 환경 피해와 보상 문제가 뒤따른다. 농사철에 사용하는 농업용수와 일 년 내내 이용하는 생활용수는 성격이 다른데, 필요와 공급량을 평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96개의 농업용 저수지를 높여 2.4억 톤의 물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계획은 무모하다. 정작 농업용수가 부족한 영산강과 섬진강 유역은 저수지 높이를 높이려 하지 않고 낙동강의 농업용 저수지 높이를 높이려는 처사는 운하의 물 높이 보전을 위한 저수용량 확보라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생태계의 필연적 악영향

준설은 강 본류에 걷잡기 어려운 흙탕물을 발생하게 만들어 수생식물의 성장을 방해한다. 또한 지천에서 급류를 타고 들어오는 낙엽이나 나뭇가지들이 보에 고여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메탄은 수질을 오염시키며 지구온난화를 그만큼 촉진할 것이다. 하천의 모래와 자갈의 준설은 그 환경에서 오래 적응돼 살아오는 생물종들의 생태계를 근원적으로 교란한다.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오로지 7월과 8월, 오직 한 계절에 겨우 두 차례 조사한 결과를 종합한 ‘4대강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환경영향평가서는 어마어마한 부피를 자랑해 들여다보는 이에게 고역을 안긴다. 한 계절 조사로 플랑크톤과 치자어의 변화는 예측할 수 없다. 오탁방지막으로 식물플랑크톤의 75퍼센트를 거를 수 있다는 주장에 근거해서 기재한 환경영향평가는 신빙성을 상실한다. 환경영향평가는 오탁방지막의 효과를 전혀 검증하지 않았으며 거르지 못할 것으로 예측한 25퍼센트가 하류에 미칠 영향과 그 저감대책은 제시되지 않았다.

 

공사 도중에 영향을 받더라도 공사 후에 보호수와 습지를 복원시킬 수 있다는 환경영향평가의 주장은 섣부르다. 대체서식지에서 한국특산 동물과 희귀동물, 천연기념물을 포함하는 보호대상 동물을 보전하겠다는 주장을 상투적으로 되풀이하지만 대체서식지는 서식지와 다를 뿐더러, 설사 대체서식지에 풀어준 뒤 모니터링 해도 보존은 장담할 수 없다.

 

허황된 어도와 샛강

명확한 목표 어종의 조사 없는 다목적 어도는 실효성이 없다. 흐름이 거의 없는 저수지 사이의 어도는 의미가 없다. 정부는 본류 주변에 샛강을 조성하겠다고 선심 쓰지만 기존 하천을 크게 변형시킨 샛강은 ‘생태하천’이라는 이름과 관계없이 생태계의 보존에 역행할 수밖에 없다. 생태계의 역동성은 계산으로 사전에 예측이 가능한 기계동작과 다르다.

 

3. 강을 위한 개발의 원칙

 

4대강 사업의 속도 조절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내용 중에서 동의할만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4대강 사업’의 개발 속도를 검토하면서 조절하며 시행하자고 제안할 수 있겠다. 준비 안 된 사업이 대부분 그렇듯이 실패한다면 우리는 천문학적인 예산 낭비와 돌이킬 수 없는 환경파괴는 물론이고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정부가 밀실에서 6개월 만에 급보한 예산 22.2조 원은 두 배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견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4대강 사업’은 수정되어야 한다. 훨씬 규모가 작은 개발도 그렇게 허술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사업 내용을 꼭꼭 숨기는 정부는 16개의 보 건설, 5.6억 톤의 강바닥 준설, 낙동강 배수갑문 증설 들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2개월의 설계로 3년 내에 마칠 예정이라는데, 설계만 2년이 걸릴 규모의 사업을 전문가의 정밀 검토 없이 밀어붙인다면 걷잡을 수 없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므로, 대안으로 ‘3단계 속도 조절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사업은 1단계로 시행하고, 과학적으로 일정 부분 그 타당성이 인정된 사업이지만 지역 차원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업은 2단계로 시행하며, 아직 과학적으로 그 타당성이 인정되지 않은 사업은 3단계로 진행하자는 것이다. 2단계 사업의 일부는 여전히 공학적 검토가 남았지만 사회적 합의를 위해 거버넌스를 먼저 구축할 필요가 있다. 3단계 사업은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기 위한 전제가 되는 과학적 검토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사업이 가져올 환경파괴를 비롯해 사업의 근거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른 대안으로 4대강 중 대표 하천을 먼저 선별해 정부의 마스터플랜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면서 모니터링을 수행하고 도출되는 문제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 다음 나머지 하천으로 사업을 넓히는 단계별 개발 방안을 제시한다. 그 1단계는 상대적으로 사업 규모가 작은 영산강이나 금강이 될 수 있다. 2단계는 진행되는 사업을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모니터링 하며 문제점을 찾아낸 뒤 대안을 충실하게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모니터링은 과학은 물론이고 인문과 사회적 측면의 접근, 법과 윤리적 판단을 종합해 실시해야 하고 결과의 분석과 대안 모색은 이해 당사자들의 민주적인 합의로 합리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를 바탕으로 3단계, 나머지 구간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것을 제안한다.

 

4. 4대강을 살리기 위한 실천방안

 

유황 보전의 중요성

‘유황(flow regime)’이다. 하천의 유지수량을 따지는 게 아니라 유량과 유속과 수위를 비롯한 계절에 따르는 강의 변화 일체를 보전해야 한다. 여름철에 강우가 60퍼센트 이상 집중되는 우리나라 강의 특징을 보전하는 일이다. 홍수가 밀고 가는 토사와 영양염류를 삼각주에 내려놓아야 농산물의 양과 품질이 보장될 뿐 아니라 그에 적응된 숱한 생물종들을 다채롭게 보전될 수 있다. 사람도 그에 밀접하게 연계되었기에 건강하게 살아왔다. 댐을 더 만들지 않겠다는 것을 전제로, 기존 댐을 적극 활용해 자연스런 유황을 모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거버넌스의 시대

흐름이 단절된 강이 복원된 사례도 있다. 댐을 아예 헐어낸 경우도 없지 않지만 유황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이 많았다. 막대한 물을 홍수처럼 방류해 강의 고수위를 주기적으로 확보하면서 넓었던 범람원을 다시 적시는 일이다, 독일의 라인 강처럼 일부를 헐어 범람원을 어느 정도는 확보할 수 있다. 보와 강변의 둑을 헐어낸 독일 뮌헨의 이자 강은 도시 구간의 유역을 배 이상 넓혀 범람원을 다시 제공하자 마을을 덮치던 봄철의 홍수가 범람원을 적시면서 드물어지고 시민들의 레크리에이션과 휴식공간은 그만큼 넓어졌다.

 

미국의 많은 강을 댐들이 겹겹이 가로막게 된 데 육군공병대의 권력이 한몫을 했기 때문이었다. 거버넌스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강을 성공적으로 복원하고자 한다면 거버넌스가 제몫을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우리의 정부처럼 금권을 무기로, 과거 우리의 독재정권처럼 공권력을 무기로 댐을 강제로 지었듯, 유황 복원이나 댐 제거 역시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한다면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상대를 존중하면서 길고 고된 시간을 참고 인내해야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도 여러 차례 들어서 잘 안다. 이제 자식 키우는 우리가 그 거버넌스를 실천할 순간이 왔다.

 

강의 개성이 배려되면서 아름다움이 보전될 때,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재난은 우리에게 멀었을 것이다. 조상은 강과 범람원을 한계 내에서 이용하며 문화와 역사를 이어왔지 함부로 강을 틀어막거나 범람원을 개발하지 않았다. 유황이 보존되었던 거다. “4대강 살리기”로 위장된 운하사업 예산이 다수당이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다. 마음이 초조하지만, 한반도의 강은 내일을 향해 흐른다. 생명을 이어지도록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남았다.

(2010.3.4, ‘불교계 4대강 사업 심포지엄’ 생태분과 발제원고 요약)

강은 산을 뚫지 못하고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 백두대간의 원리(산자분수령)라고 합니다. 사람은 자연스레 강을 중심으로 모여들어 마을(洞)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강을 경계로 행정구역을 나눈 것은 조선조에 와서 본격화 되었다고 합니다. 일종의 통치 전략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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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추억

디딤돌 2010. 1. 11. 10:42

 

샌드라 포스텔, 브라이언 릭터 지음(2009), 최동진 옮김,『생명의 강』, 뿌리와이파리.

 

 

“한낮에 왕이 입을 열어 한밤중이라고 말하면, 현명한 사람은 달이 보인다고 말한다.” 페르시아의 천문학자이자 시인의 시 <루바이야트>의 한 구절을 『생명의 강』의 저자들은 인용한다. 2003년에 발간한 『생명의 강』의 저자들이 이명박 정권과 그 정권을 향해 도열한 이 땅의 지식인을 염두에 두고 그 시를 거론했을 리 없다. 이집트의 독재자 자말 아브단 나세르 대통령이 아스완 하이댐 건설을 결정하자 평소 적절성을 의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돌연 순종적인 태도를 연출한 데 대해 한 익명의 관료가 그 시의 구절을 들어가며 비아냥거렸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산샤댐과 남수북조사업, 리비아의 대수로공사의 예를 들며 “민주적인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수많은 나라들은 여전히 중앙에서 결정해서 아래로 내려보내는 정책결정 방식을 사용”한다는 걸 덧붙이면서.

 

『생명의 강』의 저자들이 새판을 위해 책 내용을 수정한다면 시방 한국의 4대강(섬진강을 포함하면 5대강)에서 한겨울에도 꽝꽝 언 강물을 파헤치는 (토건) ‘살리기’ 사업도 조명할지 궁금한데, 사실 우리나라의 상황은 과거의 이집트, 얼마 전의 리비아, 최근의 중국과 다른 점이 있다. 공안당국의 서슬 퍼런 사찰이 횡행했던 군사독재 시절이라면 모를까, 지금 우리의 지방정부와 현자들은 공안당국에 의한 신체적 두려움보다 금전적 약삭빠름에 의지해 알아서 제 양심을 파는 분위기가 아닌가. 돈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텐데, 막대한 액수의 연구용역을 머리에서 지운 일부 토목학자와 사운을 좌우할 광고수입을 포기하는 몇 안 되는 언론사는 학생과 독자 앞에서 떳떳하려 애쓴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기온을 거듭 경신할 때 4대강 사업에 몰두하는 낙동강 일원을 지율스님의 안내로 다녀올 기회를 가졌다. 불교계에서 주관하는 4대강 심포지엄의 일환으로, 참여자 틈에 끼어 가물막이 현장을 찾은 것이다. 풍산면 마애리 마애유적지 주변의 하천은 누치로 보이는 물고기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한가롭고, 그 물고기를 노렸을 법한 수달의 발자국이 눈 덮인 얼음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병산서원 주변의 회룡포는 드넓은 모래를 거치며 눈부시게 깨끗해진 강물이 투명한 얼음을 만들어놓았다. 햐얀 눈으로 푹신해진 어성천 모래톱에서 어린애가 된 일행은 얇은 얼음을 조각내 깨먹으며 모처럼 자연 앞에서 가슴을 열었다. 그렇듯 수백 미터가 넘는 범람원을 넓게 펼치며 영겁을 흘러온 낙동강은 수많은 생명을 품고 내일을 향해 흐르고 있지만 남으로 내려가면서 무지막지한 삽날에 숨통이 조여지고 있었다.

 

낙단보와 달성보에서 두산과 현대건설이 물길을 차단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게다가 연실 퍼올리는 모래와 자갈이 인근 국도를 잇는 다리를 주저앉게 할까 두려웠는지 교각 주위에 토사를 쌓아 물길을 막고 있었으며 더욱 가관인 것은 가물막이 현장은 야간 조명을 켜고 24시간 밤샘작업을 강행하는 모습이었다. 인제대학교 박재현 교수가 강력하게 제기한 경남 함안과 창녕과 의령군의 침수 가능성을 진지하게 주목했는지, 관리수위를 애초 7.5미터에서 5미터로 낮추겠다고 수자원공사가 1월 6일에 밝힌 문제의 함안보 역시 일행의 접근을 한사코 거부하는 GS건설에 의해 물막이공사가 쉴 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낙동강을 계단처럼 만드는 보의 마지막을 장식할 함안보는 하폭이 유난히 좁은 지역을 틀어막을 태세인데, 점점 강도와 빈도가 격렬해지는 국지성호우를 어찌 감당할지 동행한 전문가들은 적잖게 염려하는 모습이었다. 평상시에도 산악지대에서 몰아치는 폭우가 황강과 남강에서 휘돌아 거세게 모여드는 병목이 아니던가.

 

일 년 중에 가장 비가 많았던 날의 강수량을 가장 적었던 날의 강수량으로 나눈 값을 ‘하상계수’리고 하는데, 여름 한철에 강우가 집중되는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 독일의 수치가 14인 것과 대조적으로 300이 넘는 게 보통이다. 그러므로 장마철이나 기상이변과 같은 호우가 빗발칠 때 둑을 타고 넘을 것처럼 노도와 같던 강줄기도 갈수기에는 아주 좁은 면적만 적시며 얌전히 흐른다. 크고 작은 댐과 농사용 보로 이따금 흐름이 끊어지지만 적어도 4대강은 예나 지금이나 멈추지 않았고, 덕분에 좁은 국토에 높은 밀도로 모여 사는 5천만은 갈증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모내기철에 바닥을 깊게 판 사람들이 물을 퍼올릴 때마다 강에 생명을 온전히 의탁하는 물고기들의 갈증은 여간 심각한 게 아니었을 테지만.

 

낙동강을 보자. 기존의 댐 이외에 8개의 보가 강의 흐름을 계단처럼 멈칫거리게 만들 것이다. 높이가 10미터가 넘는 보에 의해 10억 톤 이상의 물은 항시 고일 것이며 관리수위를 넘기는 물만이 예전의 10배나 천천히, 찔끔찔끔 흐를 것이다. 고인 물이 여름마다 썩는 건 명약관화하지만 예서 검토하지 않기로 하면, 여기저기 1미터 높이로 흐름을 가로막은 기존의 농사용 보도 넘기 어려워하는 낙동강의 물고기들은 어떻게 움직일지 염려하게 될 것이다. 낙동강에는 특산종이 유난히 많은데, 걱정하지 말란다. 어도(魚道)를 물고기가 충분히 뛰어넘는 계단으로 완만하게 설치할 테니 상관없단다. 그럴까. 넓은 강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지 못할지언정 기존 보보다 사정이 나아질 것인가.

 

2000년 북미수저생물협회 연례회의에서 기조연설을 계기로 만난 세계물정책프로젝트 의장인 샌드라 포스텔과 자연보전협회 담수이니셔티브 의장인 브라이언 릭터는 『생명의 강』을 쓰기로 의기투합했다고 밝혔다. 연설을 무슨 내용으로 했기에 의기투합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지도에 분명히 그려져 있는 강이 실상 모두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댐으로 흐름이 멈췄기 때문이란다. 흐르지 않는 순간 강은 자신이 품었던 숱한 생물과 그들의 생태공간의 대부분이 사라지게 만든다는 거다. 거기에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강에 삶을 기대왔던 사람들 역시 엉망이 된다고 『생명의 강』 저자들은 미국과 세계 곳곳의 강에서 구체적인 실상을 제시하며 증언한다.

 

저자들은 강의 흐름을 막는 걸 댐이라 지적했을 뿐, 우리 4대강 사업에서 내세우는 ‘보’라는 용어는 일체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들의 시각으로 4대강의 보는 분명히 댐일 것이다. 실제로 세계댐위원회는 15미터 이상의 높이를 가진 댐을 대형으로 분류하지 않던가. 그래서 그런가. 우리 정부는 4대강에 예정하는 댐을 ‘대형보’ 이라고 얼버무린다. 사실 높이 100미터를 훌쩍 넘기는 초대형 댐이든 우리나라에 765개 있는 대형 댐이든, 아니면 10미터가 넘는 ‘대형보’든 1미터에 불과한 기존 농사용 보든, 느려질지언정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어도를 착실하게 만들면 물고기도 어느 정도 이동할 수 있다. 한데 저자들은 왜 강이 흐름을 잃었다고 강변하는 걸까.

 

‘유황(flow regime)’이었다. 다시 말해 단순히 하천의 유지수량을 따지는 게 아니라 유량과 유속과 수위를 비롯한 계절에 따르는 강의 오랜 변화 일체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보전되고 있는지 여부였다. 장마철 이후 여름철에 60퍼센트 이상 집중되는 빗물로 갑자기 불어나는 물줄기는 물론이고 건조주의보가 경보로 바뀌는 봄철의 갈수기 수량까지 얼마나 자연스레 보전되는가를 눈여겨보는 저자들은 세계 60퍼센트 이상의 강이 80만 개의 크고 작은 댐에 의해 자연스러웠던 유황을 잃었다는 걸 지적한다. 일부 물고기들이 어렵사리 이동할 수 있다고 해도 숱한 생명의 흐름과 순환은 차단되고 말았다는 사실에 방점을 두는 것이다. 댐으로 인해 숱한 생명을 잃은 강은 저자들의 시각으로 그저 갇힌 물길이지 강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생명을 품은 강이 게 있기에 문화와 역사를 꽃피웠던 사람에게 저자들의 시각은 아주 당연한 것임에 틀림없는데, 『생명의 강』은 확보된 하천 유지수량과 어도만으로 안심하려 했던 독자에게 뒤늦은 깨달음을 선사한다.

 

강은 사람이 마실 물, 농사지을 물, 공장에 공급할 물, 배를 띄울 물을 저장하는 수로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그건 사람이 말하는 수자원이고, 생명유지에 더 없이 중요한 식량을 주위 생태계의 온갖 생물들에게 한계가 없이 제공한다. 첨벙거리며 천렵하던 기억은 겉보기 복원된 양재천에 한정하던 게 아니지 않은가. 『생명의 강』저자들이 생각하는 목록을 보자. 수질정화와 폐기물 처리, 홍수와 가뭄의 완화, 서식지 제공, 비옥한 토양의 유지, 영양분의 공급, 해안 염수지대의 유지, 미적 가치와 만족도 제공, 레크리에이션 기회의 제공, 그리고 생물다양성의 보전이 추가된다. 사람에게 돌아가는 이익의 목록은 물론 아니다. 강이 품는 모든 생명가치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혜택의 목록이지만, 그 덕분에 사람도 이제까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다. 콜로라도강 1000킬로미터를 오르내리며 홍수로 휩쓸려온 쥐와 토끼까지 잡아먹던 1.3미터의 거대 물고기 파이크미노는 1935년 후버댐이 가로막으며 300만년에 달하던 역사를 접었다고 한다. 후버댐을 헐면 파이크미노는 돌아올 수 있을까.

 

홍수는 반드시 억제해야 하는 재난이 아니다. 홍수가 와야 신선한 모래와 자갈이 골재채취로 엉망이 된 강변에 다시 쌓이기 때문은 아니다. 홍수가 밀고가는 토사와 영양염류를 삼각주에 내려놓아야 양질의 소출을 보장하는 농산물 때문만도 아니다. 생태계의 흐름과 순환이 홍수, 그리고 홍수 이후의 가뭄과 밀접하게 연계되고 있는 까닭이다. 미국 중서부 하천에는 프레리피시가 사라졌다고 한다. 홍수가 와야 알을 낳는데 댐이 도무지 홍수를 허락하지 않는 탓이다. 댐이 흙탕을 내려놓게 만들자 투명해진 콜로라도강에서 토종 물고기들은 느닷없는 변고를 맞았다. 곤충의 눈에 드러나면서 먹이를 제대로 잡아먹지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도입 어종인 송어나 잉어에 쉽게 잡아먹히게 된 게 아닌가. 한데 거기에서 그친 게 아니었다. 계절에 따라 섭씨 0도에서 30도까지 변하던 수온이 9도를 유지하면서 생애주기를 잃고 만 것이다. 홍수로 잠긴 들판과 숲에 알을 낳던 메콩강의 어류 90퍼센트가 댐이 들어선 뒤 사라지자 어부는 터전을 잃었다. 물고기를 잃은 토착민은 식탁에서 단백질을 잃었을 테고.

 

그까짓 돈 안 되는 물고기! 관개로 얻는 농업용수로 사료를 생산해 돼지와 닭을 대량으로 사육하면 되잖아! 그럴까. 아프리카 남부 잠베지 강의 볼망태두루미는 특이하게 홍수가 빠질 무렵 얕은 물에 둥지를 짓고 하나의 알을 낳는다. 그때 둥지가 물에 쓸려내려가지 않을 테고 먹이도 풍부하며 천적도 드물지 않던가. 그렇게 오랜 세월 습성이 강에서 적응된 볼망태두루미는 댐이 홍수를 차단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강돌고래는 어떤가. 산샤댐이 세워지면서 양자강에서 이미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강돌고래는 아마존에서 명맥을 유지하지만 대부분의 큰 강에서 멸종위기에 몰려있다. 댐으로 산란장을 잃은 연어는 어떤가. 가을철 올라오기 무섭게 사로잡아 인공수정 시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가.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연어의 유전자는 아주 단순해 환경적응력이 떨어지지만 문제는 더 있다. 자신이 태어난 장소를 정확하게 기억해내지 못하는 탓에 모천을 쉽사리 찾지 못한다는 게 아닌가. 그 연어. 노도와 같은 홍수가 강에서 바다로 빠져나간 뒤 상류를 향해 몰려올라간다고 어부들은 말한다. 홍수로 깨끗해진 상류까지 올라가 한동안 수량이 충분할 자갈 아래에 수천 개의 알을 낳을 것이다.

 

미시시피강이 빠져나가던 멕시코만은 죽음의 수역이 되어간다. 댐들이 강물을 겹겹이 막자 수많은 어패류들이 알을 낳던 드넓은 삼각주가 바싹 말랐을 뿐 아니라 매립해 개발했고 질소 성분이 가득한 관개용수가 스며들면서 조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폭발한 조류로 산소가 고갈되면서 어떤 생물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거다. 영양분 가득한 홍수가 주기적으로 염분을 희석시키면서 풍부한 어장을 오래토록 형성했던 바다가 댐이 생긴 이후에 죽음의 수역으로 돌변하는 현상은 멕시코만에서 제한되는 게 아니다. 홍해와 발틱해가 그렇다고 한다. 화학비료로 지독하게 오염되었다는 영산강에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2개의 대형보를 세울 거라던데, 장차 우리 서해안에 무슨 변고가 일어날지 우리 어부들은 짐작하고 있을까.

 

강의 유황을 보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몇 국가는 댐에서 홍수를 유발시켜 자연적인 유황을 흉내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걸 저자들은 소개한다. 하지만 어설픈 흉내로 한계가 있다는 것도 예시한다. 그렇다고 세운지 얼마 되지 않는 댐을 헐어낼 수는 없는 일. 댐에 얽혀 있는 이익세력이 어디 한둘인가. 물론 수명이 오래되었거나 더는 수익을 낼 수 없는 소형 댐을 헐어내자 유황에 기대던 생태계가 점차 복원되는 사례를 저자들은 소개하지만, 이해 관계자들과 충분한 사전 협의로 예산을 만든 뒤 댐을 허는 일은 현재로서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모를 리 없다. 따라서 댐을 더 짓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기존 댐을 적극 활용해 자연스런 유황을 어떻게 모방할 수 있을지 고민하자고 독자에게 제안한다. 이미 늘어날 대로 늘어난 도시의 인구가 강에 목숨줄을 걸고 있는 현실에서 생명의 강과 공존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리라. 저자들은 여러 선구적인 연구를 소상하게 소개하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호주의 사례를 주목한다. 그 나라의 민주주의가 성숙해지면서 실효성 있는 연구를 보장해주었다고 덧붙이면서.

 

아주 드문 예에 불과하겠지만 『생명의 강』은 복원의 예도 소개한다. 댐을 아예 헐어낸 사례도 있지만 유황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이 많았다. 그로서 빈약해진 강의 생태계가 다시 풍요로워지고 레크리에이션이 활성화되면서 수익이 오히려 늘어났다는 걸 독자에게 알려준다. 댐 철거나 유황복원을 요구하는 환경운동으로 독자들을 유도하고 싶은 마음의 발로일지 모르는데, 우리에게 꿈같이 요원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일부러 막대한 물을 홍수처럼 방류해 강의 고수위를 주기적으로 확보하면서 넓었던 범람원을 다시 적시는 일, 우리의 수자원당국은 이해라도 할 수 있을까. 범람원을 벌써 매립해 아파트나 공장지대로 개발했더라도 독일의 라인강처럼 일부를 헐어 범람원을 어느 정도는 확보할 수 있다. 보와 강변의 둑을 헐어낸 독일 뮌헨의 이자강은 도시 구간의 유역을 배 이상 넓혀 범람원을 다시 제공했다. 그러자 마을을 덮치던 봄철의 홍수가 범람원을 적시면서 드물어지고 시민들의 레크리에이션과 휴식공간은 그만큼 넓어졌다. 그런 복원, 우리에게 운 좋으면 다음 정권이 꿔야할 꿈이 될 것인가.

 

미국의 많은 강을 댐들이 겹겹이 가로막게 된 데 육군공병대의 권력이 한몫을 했다는 걸 밝히는 『생명의 강』 저자들은 강을 성공적으로 복원하고자 한다면 거버넌스가 제몫을 다해야 한다는 걸 새삼 주장한다. 현재 우리의 정부처럼 금권을 무기로, 과거 우리의 독재정권처럼 공권력을 무기로 댐을 강제로 지었듯, 유황 복원이나 댐 제거를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처리한다면 소귀의 성과를 얻지 못한다는 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상대를 존중하면서 길고 고된 시간을 참고 인내해야 값진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 우리도 여러 차례 들어서 잘 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 그런 거버넌스의 그 실천에 임할 수 있을까.

 

4대강 사업의 낙동강 지역을 지나는 길에 재작년 10월 제10회 람사르총회를 대비해 새롭게 단장한 우포늪을 잠시 찾았다. 덤불이 있어야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박새와 같은 텃새, 그 텃새를 노리는 새매나 족제비들이 보전될 거라는 걸 배려한 것일까, 우포늪 주위의 산록에는 덤불이 그대로 있었다. 다른 지역이라면 화재 핑계로 지저분하다며 제거하고 말았을 텐데. 사실 숲 가장자리에 덤불이 있어야 숲도 숲의 동물도 보호된다. 덤불이 있어야 숲이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의 유역마다 넓게 펼쳐지는 모래밭과 그 사이에 갯버들이 아무렇게나 자라나는 크고 작은 물웅덩이들은 수많은 생명들의 다채로운 터전일 것이다. 낙동강의 생태계를 지켜온 무수한 생명가치들은 제 터전에서 타고난 개성을 발휘하며 다가오는 봄을 만끽할 텐데, 아름답지 아니한가.

 

제복을 입힌 듯 일사불란한 모습을 아름답다 칭송했던 때가 우리나라에 있었다. 지금 정권이 잃어버렸다고 한 10년, 그 이전의 군사독재정권이 “하면 된다!”며 시민들을 윽박지르던 시절이었다. 순환과 다양성으로 유지되는 생태계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배려와 개성으로 숨 쉬는 공간”이다. ‘개성이 배려되는 곳’이 ‘생태공간’이라는 뜻이다. 다양성이 보전되는 생태계는 급격한 환경변화에도 안정을 쉽게 잃지 않는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의견과 개성이 존중될 때 건강하지 않은가.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개성이 배려될 때 빛나는 아름다움!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4대강은 아니 그럴까.

 

강의 개성이 배려되면서 아름다움이 보전될 때,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재난은 우리에게 멀었을 것이다. 조상은 강과 범람원을 한계 내에서 이용하며 문화와 역사를 이어왔지 함부로 강을 틀어막거나 범람원을 개발하지 않았다. 유황이 보존되었던 거다. 4대강 사업이 ‘살리기’라고? 운하는 다음 정권의 몫이라고? “4대강 살리기”로 위장된 운하사업 예산이 다수당이 힘으로 밀어붙인 실정이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다. 2003년에 미국에서 발간한 책을 굳이 2009년에 최동진이 번역한 까닭이 그렇다. 『생명의 강』 독자의 뇌리에 거버넌스를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걸 각인시킬 게 틀림없을 터이므로. (환경과생명, 2010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