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6. 7. 15. 17:48


차이코프스키는 어떻게 죽었을까? 그가 졸업한 페테르부르크음악원은 콜레라가 원인이라고 공식화한다. 필생의 작품인 제6교향곡 <비창>이 초연에서 무겁다는 비평을 받고 우울해진 차이코프스키가 식당에서 냉수를 마신 뒤, 그만 콜레라에 감염되었다는 내용이다. 끓인 물이 아직 식지 않아 그리 되었다는데, 자살설도 있다.


콜레라는 수인성 전염병이다. 콜레라균에 오염된 물을 마시면 발생하는데, 차이코프스키가 살던 18세기 말, 우리나라에 콜레라는 없었을까? 흔했다면 병명이 있었을 텐데, 없다. 유럽에 흔했던 콜레라가 없었거나 그 존재를 몰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물이 그만큼 깨끗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석회질이 많은 유럽의 강물은 마시기 어렵다. 생활하수나 공장 폐수를 정화처리 없이 내버렸을 18세기 말이라면 유럽인들은 강물을 바로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모래층이나 땅에서 여과된 강변의 지하수를 끓인 뒤 마셨을 텐데, 우리는 강물을 그냥 마셨고 아무 탈도 없었다. 당시 공장은 거의 없어도 생활하수는 그냥 버렸을 텐데.


콜레라와 장티푸스, 그리고 무시무시한 흑사병이 돌아도 감염된 사람이 없는 지역이 유럽에 있었는데, 그 지역의 강에 화강암으로 형성된 모래가 흘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크고 작은 강에 화강암 모래가 강물과 더불어 사시사철 흐른다. 화강암 모래가 흐르는 강은 겨울이면 두껍게 얼었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강은 거의 얼지 않는다.


낙동강 상류의 영주댐이 완공되기 전, 50대 전후의 답사단은 겨울철 눈 덮인 내성천을 찾았다. 달빛 아래 푹신한 눈밭을 구르며 강으로 접근한 일행은 살얼음을 깨고 입 대고 강물을 들이켰다. 살얼음까지 나누며 먹는데, 우리를 안내한 지율스님이 씨잇 웃으며 한마디 했다. “상류에 농공단지가 있다고. 하지만 탈이 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화강암 모래가 흐른 까닭이었다.


내성천의 명물인 예천군 회룡포에 아직 모래가 흐르지만 언제 멈출지 모른다. 1월부터 물을 담기 시작한 영주댐이 강의 흐름을 본격적으로 차단하면 멈출 것이다. 해마다 강물에 휩쓸리는 상류의 모래는 영주댐 바닥에 쌓이며 썩어 들어가고, 공급이 차단된 내성천의 모래는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회룡포의 휘돌아가는 강변은 자갈과 바위를 드러내고 육지로 변할지 모른다. 회룡포의 경관은 잊히겠지.


화강암은 단단한 석영과 장석, 그리고 잘 긁히고 부서지는 운모로 구성된다. 화강암 모래는 강물과 더불어 흐르며 긁힌 운모에 틈이 생기고, 그 틈에 미생물이 자리를 잡는다. 미생물은 강물에 들어온 유기물을 먹이로 삼으며 강을 정화하는데, 강에 깊게 쌓이고 가장자리에 넓게 펼쳐진 모래는 강물만 정화하는 게 아니다. 물을 흠뻑 머금으며 갈수기에 강을 적시고 주변 마을의 우물을 깨끗하게 유지하게 한다.


강에 댐이나 대형 보가 생겨 흐름을 가로막으면? 강물은 즉각 썩기 시작한다. 잘 냉장해놓은 생수도 뚜껑을 열고 밖에 내놓으면 상하기 시작하므로 상류의 생태계에서 온갖 유기물을 내려 보내는 강물은 더욱 빠르게 상할 것이다. 농공단지와 축산단지의 폐수가 충분히 정화되지 않고 내려오는 강물이라면 심각하게 썩고 말겠지. 유기물이 섞인 모래와 진흙이 바닥에 쌓이며 악취를 진동하게 만들겠지.


8개의 대형 보에 흐름이 차단된 낙동강이 그렇다. 3개의 대형 보에 흐름을 잃은 한강과 금강이 그렇다. 언론에 주목받지 못해 그렇지, 2개의 대형 보가 강물을 차단하는 영산강도 마찬가지다. 기준치 운운하는 환경부는 정화시켜 먹으면 이상이 없다고 엉뚱하게 주장한다. 그냥 떠서 마시던 물을 일부러 오염시킨 후 거액의 돈과 상당한 에너지와 불필요하던 기술을 총동원해 정화처리하면 그만이라는 건가? 환경부의 존재 이유를 묻고 싶다.


높이 10미터가 넘는 대형 보가 완공되자마자, 아니 공사가 진행될 때부터 우리 강에 오래 살아왔던 물고기들이 떼로 죽어나갔다. 이제 강은 수많은 동식물로 다채롭던 생태계를 잃었는데 드물거나 없었던 녹조가 봄부터 덕지덕지 불어나더니 난데없는 큰빗이끼벌레가 섬뜩하게 늘어났다. 바닥에 쌓인 진흙층에 산소는 전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얼마 전 낙동강 일원을 조사한 학자들이 밝혔다. 강이 아니라 무산소수괴라는 것이다.


처참하게 썩은 낙동강을 비롯한 4대강은 정부 관계자의 주장처럼 장마가 시작되면 살아날 수 있을까? 해마다 반복될 뿐 아니라 더욱 악화되는 수질은 그 동안 장마가 없기 때문이었다는 말인가? 강물에 공기를 주입하면 해결될 것으로 주장하는 관계자도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의 크기는 따지지 않겠는데, 그런 기계장치로 강물의 수질이 해결된 사례, 하나라도 제시하길 바란다. 도심 분수대나 어항 속의 물이 아니지 않은가!


환경단체는 작년부터 독성 조류가 낙동강에서 발견되었다고 전문가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발표했다. 그 조류는 많은 돈과 정성을 들이면 거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거르기 어려운 독성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 낙동강의 썩은 물로 농사지은 채소나 과일은 괜찮을까? 이미 단조로워지거나 사라진 물 속 생태계만이 아니다. 주변 물 밖 생태계는 건강할 수 있을까?


부산시는 굳이 고리핵발전소 인근 앞바다의 물로 수돗물을 만들어 시민에게 공급한다. 고리핵발전소는 방사성 물질을 지나치게 많이 바다에 배출하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 중 어떠한 장치로 거를 수 없는 삼중수소는 수돗물에 포함될 것이다. 마신 이의 몸을 한동안 구성하며 체내에 방사능을 내뿜을지 모른다. 지역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며 고리핵발전소 인근 바닷물을 수돗물로 공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 못할 사연은 묻지 않겠지만, 부산시민이 마시던 낙동강이 감당하기 어렵게 썩은 현상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부산시는 문제의 수돗물을 페트병에 담아 행사장에 풀어놓는다. 그러면서 그 물이 낙동강에서 취수해 만든 수돗물보다 방사능이 적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느슨하기 짝이 없는 기준치보다 낮다고 유난히 강조할 텐데, 그렇다고 안전한 걸까? 낙동강에 왜 방사능이 핵발전소 인근 바다보다 많은 걸까? 안전한 물을 공급해야 하는 부산시라면 마땅히 낙동강이 어떤 연유로 방사능에 오염되었는지 조사해야 옳다. 핵발전소 앞바다 물을 수돗물로 만들며 안전을 운운해야 하나?


오염된 낙동강은 대형 보 8군데의 수문을 활짝 열면 그 즉시 깨끗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강물이 다시 흐르며 화강암 모래를 흐르게 만들면 정화되기 시작할 테니까. 한꺼번에 활짝 열면 악취가 사방에 진동하면서 그나마 남아 있는 가녀린 생태계마저 파괴할 가능성이 있지만 투명하고 공정한 조사로 수문을 활짝 열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장차 4대강의 대형 보 자체를 걷어내야 하고 영주댐은 물을 담지 않아야 한다.


한 문학평론가는 4대강 사업으로 흐름을 잃어 썩어가는 강을 보고, “이제 누가 강에 나와 시를 쓸 것인지물으며 안타까워했다. 강은 물과 모래만 흐르게 하는 수로가 아니다. 수억 년 동안 생태계를 이었고 수만 년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이어지게 했다. 생명이 이어지고 이야기가 퍼지게 했다. 세계 곳곳에서 점점 심화되는 기상이변은 사상 초유의 호우를 4대강에 쏟아 넣을 수 있다. 대형 보가 도미노처럼 붕괴되면 감당하지 못할 재앙으로 이어질 텐데, 늦기 전에 수문을 열어야 한다. 후손의 정언명령이다. (야곱의우물, 20168월호)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4. 7. 17. 00:43


 포천시 수원산에서 발원해 남양주시와 구리시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왕숙천은 남양주시 진접읍의 팔야리를 거친다. 왕자들의 칼부림에 환멸을 느낀 태조 이성계가 왕궁을 떠나 한동안 머물던 함흥에서 마지못해 돌아올 무렵, 그는 삼각산이 가까운 지역에서 8일 밤을 지냈다고 한다. 태조가 숙영했던 하천이라 왕숙천(王宿川), 8일 밤을 지낸 곳이라 팔야리(八夜里)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1980년대 생물학과 신입생들은 토요일마다 야외실습 과목의 일환으로 수도권 생태계를 다녔는데, 왕숙천은 관찰과 채집의 대상지에서 빠지지 않았다. 주위에 식당이 없었던 시절. 학생들은 왕숙천 물을 떠서 쌀을 씻고 찌개를 끓여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수면 아래 떨어진 동전의 제조연도를 구별하게 했던 왕숙천은 예전의 모습을 잃었다. 1990년대 밀집된 인근 공단에서 폐수가 유입된 이후의 일이다. 공장의 하수처리가 강화되면서 많이 나아졌지만 한동안 시커멓고 끈적끈적했다.


퐁당퐁당. 투명한 하천에 동심원을 만들며 들어갔던 조약돌이 저음으로 푸웅덩빠지자마자 모습을 잃었던 왕숙천은 아무 생명도 거느리지 못하는 차라리 독극물이었다. 즐비한 가죽과 염색공장의 폐수가 차단되면서 왕숙천이 나아졌어도 살아난 건 아니다. 모래자갈과 더불어 물이 흐르면서 정화되기 시작했지만 상처는 남았다. 남양주와 구리를 지나 한강으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만과 민원은 줄었지만 한동안 코를 막아야 했다.


공장과 주택에서 나오는 폐수와 하수를 분리해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면서 우리 도시의 하천이 조금씩 맑아지고 있다. 모래가 흘렀을 때 한없이 투명했고 다양한 생물이 강의 생명력을 과시하게 했는데, 서서히 회복되는 중이다. 중랑천이 그렇다. 지금은 왜가리와 백로가 한가로이 거닐며 무언가 먹이를 찾아내지만 10여 년 전에 아무 생명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악취를 무릅쓰고 가까이 다가가면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와 붉은 실지렁이들이 오물거리기는 했다. 혐오스러워도 생명이 남아 있다는 안도의 한숨은 허용해주었다.


부여 낙화암에서 바라보던 백마강은 금강의 한 구간이다. 강가의 넓은 모래가 절경이던 백마강은 지금 없다. 금강이 생긴 이래 흐르고 흘렀던 모래를 굴삭기로 퍼올려 강가에 쌓아놓고 대형 보로 가로막자 수많은 전설을 품고 흐르던 백마강은 썩어가고 있다. 낙동강과 한강도 마찬가지다. 영산강도 그 모양이지만 새로 출범한 지방자치단체장이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으니 달라질 가능성이 생겼는데, 지난 정권의 ‘4대강 사업은 사람이 정착하기 훨씬 전부터 굽이치던 투명한 강을 썩어문드러지게 만들었다.


썩어문드러진 모습은 괴기스럽기 짝이 없다. 수온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부터 녹조가 덕지덕지해진 강에 흉측한 생물이 나타나 보는 이를 경악하게 한다.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 그 생물은 큰빗이끼벌레. 정체되어 썩어가는 강물의 바위나 나뭇가지에 붙어 유기물을 먹으며 부정형 덩어리로 성장하는 큰빗이끼벌레는 오물을 담아놓은 비닐주머니처럼 강바닥에서 흐물흐물한다. 양동이에 담으면 이내 썩으며 악취를 진동하는 큰빗이끼벌레는 보는 이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녹조에 이은 큰빗이끼벌레의 광범위한 출현은 ‘4대강 사업이 빚은 수질오염과 생태계 교란의 결과라는 지적이 확산되자 환경부는 지난 74일 엉뚱한 해명에 나섰다. 큰빗이끼벌레는 오염된 곳에서 발견되고 독성이 없으니 안심하라는 것이다. 비가 오지 않는 상황에서 기온이 상승해 발생했다고 해명한 환경부는 ‘4대강 사업이 아니라 가뭄 때문이라는 투였다. 높이 10미터가 넘는 대형 보가 흐름을 차단하지 전에도 여름가뭄이 드물지 않았는데, 그때마다 녹조와 큰빗이끼벌레가 4대강에 스멀거렸다는 말인가?


환경부는 녹조는 정수과정에서 걸러지고 큰빗이끼벌레는 독성이 없으므로 수돗물은 안심해도 좋다고 주장하지만, 수억의 세월동안 다채로운 생명은 물론, 문화와 역사를 품고 흐른 강은 사람을 위한 상수원의 가치만 중요한 게 아니다. 강을 뒤덮을 정도로 심각해지는 녹조가 해마다 발생 시기를 앞당기고 드물던 큰빗이끼벌레가 4대강 여기저기에서 흉측하게 늘어나는 현상이 무엇을 웅변하고 어떤 대책을 요구하는지 환경부는 헤아려야 했다. 더 많은 에너지와 약물로 처리해야하는 수돗물이 환경부 대책의 전부일 수 없다.


6번 교향곡 비창의 초연에서 큰 호응을 받은 차이코프스키는 상기된 상태에서 미처 끓이지 않은 냉수를 들이켰는데, 유럽에 콜레라가 창궐할 때였다. 차이코프스키는 결국 콜레라로 사망했는데, 화강암 모래가 흐르는 강물을 떠 마신 유럽인들은 콜레라 풍파를 피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하천에 화강암 모래가 흐르는 우리나라는 복 받았다. 강물을 그대로 마실 수 있는 국가가 아닌가. 하지만 깊은 계곡이 아니라면 옛일이 되고 말았다. 왕숙천도 백마강도 정화시켜야 마실 수 있다. 녹조에 이어 큰빗이끼벌레까지 창궐하는 마당이 아닌가.


접촉하면 두드러기가 생기고 발진까지 발생시키는 큰빗이끼벌레는 정체돼 썩어가는 강물의 상징이 될지언정 환경부의 말처럼 깨끗한 물의 지표생물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방치해도 좋을 리 없다. 독성을 가진 녹조 못지않게 심각한 수질오염과 생태계 교란을 지표하는 큰빗이끼벌레의 출현은 우리에게 모래가 흐르는 강의 복원이 시급하다는 걸 웅변하지만, 큰빗이끼벌레는 죄가 없다. 썩은 물이라도 생명이 남아 있다는 한숨을 허용하지 않은가. (지금여기, 201479)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6. 12. 08:44

 

1970년대 후반. 대청봉 정상까지 한걸음에 오른 청년들이 화채봉으로 향했다. 가본 적도, 가는 길도 몰랐지만 좋다더라는 소문을 믿고 막연히 걸음을 재촉했던 사내들은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당황했다. 슬금슬금 좁아지던 길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돌아나가야 옳았지만, 누가 앞장섰는지 건각들은 내친 김에 덤불을 헤치며 계곡을 내려갔다. 그러길 두어 시간. 날은 어둑해졌고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적 없는 물길을 첨벙이다 넓은 바위가 편평해지면 계곡은 꼭 낭떠러지로 이어졌다. 양손에 든 기타와 가방을 진작 내버린 일행은 배낭과 엉덩이를 질질 끌며 한발 한발 내려가는데 썩은 나무에 발을 의탁하던 친구가 그만 머리와 다리를 뱅글뱅글 돌리며 아래로 떨어져 박히는 게 아닌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우리는 거의 울상이 되었는데, 어리둥절한 채 허공을 바라보는 친구. 배낭 덕분에 멀쩡했다며 우리를 안심시켜주었다.


이튿날 반나절을 더 헤맨 끝에 아무도 다치지 않고 인적 없던 계곡을 벗어났지만, 헤진 바지에 엉덩이를 드러내며 첨벙이는 순간에도 청년들은 생생한 기억을 전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 친구들은 지금 흩어져 살지만 자주 만나 술잔 기울인다. 누구라도 심각하게 다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치러야했다면, 다시는 마음 편하게 만나지 못했으리라.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에 내 이럴 줄 알았지. 우물쭈물하다가라고 썼다던데, 우리는 우물쭈물하다 기회를 놓치거나 독선으로 치달아 일을 그르칠 때가 잦다. ‘아라뱃길로 이름을 분칠한 경인운하가 그렇다. 기획 단계부터 비판적 검토가 빗발쳤지만 정부는 독선으로 밀어붙였다. 경인운하에 현재 화물을 실은 배가 거의 왕래하지 않는다. 18킬로미터에 불과한 경인운하를 오가는 화물선에 화물을 실으려는 화주가 없기 때문이다. 인근 잘 뚫린 도로로 20분이면 넉넉한데 어떤 화주가 트럭과 화물선에 물건을 거듭 옮기며 하루 이상의 시간을 버리고 초과운임을 받아들이겠나.


경인운하는 애초 계양산 일원 주민들이 홍수 피해를 예방하려 계획된 굴포천 방수로에서 출발했다. 생각해보자. 수해가 빈번한 곳에 마을은 형성될 리 없다. 계양산 인근의 다남동과 벌말은 김포평야가 주변에 온전할 때 수해는 거의 없었다. 드넓은 논이 빗물을 완충했던 건데, 부천시 중동과 상동 신시가지의 대단위 아파트, 인천시 삼산동과 계산동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김포평야가 개발되면서 사정이 바꿨다. 아스팔트와 철근콘크리트에 쏟아진 빗물은 낮은 곳을 향해 거침없이 휩쓸리기 시작한 것이다.


갯벌 매립으로 공업단지나 신도시를 조성할 때 충분한 면적의 유수지를 확보하듯, 아파트단지를 넓게 만들 때 반드시 수해를 완충하는 습지를 확보해야 했지만 외면했다. 아파트를 더 지어 분양했을 따름이다. 그러자 수해는 애꿎은 지역으로 전가되었다. 신문 1면을 장식할 사고가 여태 발생하지 않은 4대강의 16개 대형 보 역시 수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도도하던 강물을 틀어막았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은 어떤 물폭탄을 상류지역에 떨어뜨릴지 모르는데, 신중하게 관리한다면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누가 시장으로 당선되느냐에 따라 다를 텐데, 20091, 주민 5명과 경찰 1명을 불에 타죽게 한 용산역 주변의 개발은 어떤 논의로 진행될까? 초고층 빌딩이 화려했던 애초 계획은 희생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중단되었다. 투자자에게 보장되는 돈벌이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사업 규모와 내용이 바뀌면 다시 진행될까? 용산역 주변의 개발은 규모가 비슷한 독일 베를린의 화물철도터미널 개발의 예와 크게 대비된다.


동서로 분단된 이후 50년 동안 사용하지 않자 우리의 비무장지대처럼 온갖 풀과 나무들이 가득 들어왔지만 다시 철도화물터미널로 환원하는데 이견이 없는 듯했다. 그런데 누군가 아쉬움을 표시하며 보전을 제안했고, 절차는 중단되었다. 이후 개발과 보전의 타당성과 방향을 놓고 다양한 논의가 활발하게 펼쳐졌고 논의 과정에 베를린 시민의 참여는 당연히 배려되었다. 수십 차례의 공청회 끝에 철도 환원과 녹지 보전을 반영하는 최종 2안을 상정하기로 했고, 시민들은 다수결로 결정하자는 합의를 이뤄냈다. 현재 녹지는 보전돼 있다.


논의에 참여한 시민들은 다른 의견을 납득 가능하게 절충한 2개 안을 민주적으로 만들어냈고, 논의가 충분한 만큼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자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개발을 선호했던 시민들도 즐겨 찾을 만큼 철도화물터미널 부지의 녹지는 베를린의 자부심이 되었다는데, 위험사회를 펴낸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시민의 민주적인 참여가 위험사회를 예방한다고 주장한다. 철거를 반대하는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개발 방향과 시기를 결정했다면 용산역 주변의 주민과 경찰의 생명은 희생되지 않고 투자자의 적정 이익도 보장되었을 것이다. ‘4대강 사업과 경인운하는 지금과 같은 모습일 수 없었을 게 틀림없다.


샤를 드골 대통령이 반대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해 잔뜩 만든 프랑스의 핵발전소들은 시방 낡았다. 아무리 엄격하게 관리하고 통제해도 크고 작은 사고가 빈발하니 가동을 급작스레 중단해야할 때가 많다. 지금까지 7등급 규모로 발생한 핵발전소 사고의 원인은 제각각이었다. 앞으로 어떤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할지 점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관리와 운영이 투명하다면 사고 확률은 줄어든다. 부정과 비리가 발을 붙이지 못할 뿐 아니라 수명연장이나 폐쇄를 합리적으로 결정할 것이므로.


기계가 낡으면 고장은 필연이다. 구조가 복잡한 기계는 고치기 어려운데, 핵발전소가 특히 그렇다. 후쿠시마에서 보았듯, 낡은 핵발전소의 사고와 고장이 미치는 파장은 상상을 불허한다. 시민들이 납득할 정도의 민주적 토론 끝에 자국 핵발전소의 가동을 즉각 멈추거나 차례로 폐쇄하고 있는 독일은 프랑스에 전기를 수출한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햇빛과 바람으로 전기를 충분하게 생산하는 까닭에 핵발전소가 멈출 때마다 전기가 부족해지는 프랑스에 수출할 수 있다는 거다. 청구서를 내밀지 않는 태양과 바람은 간단한 발전설비만 요구한다. 사고 규모가 작아 주민들도 쉽게 고칠 수 있다.


인간 없는 세상에서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대부분의 인공 구조물은 금방 부서지거나 고장을 일으키겠지만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연결하는 유러터널은 예외적으로 천년 정도 버틸 것으로 예상했다. 그만큼 지역의 환경이 안정적이고 시공이 철저했다는 건데, 유러터널은 공사 전부터 철두철미한 검토를 거쳤다. 기술과 경제 측면에서 그치지 않고 정치는 물론 인문과 사회 영역까지 놓치지 않았기에 민원이 발생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관리하는 까닭에 사고가 없었다.


완공되었지만 경인운하와 4대강 사업은 내세운 애초의 목적을 충족시킬 구조물이 아니다. 그 시설은 토목자본에 경이로운 이익을 안겼을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으로 설계 시공하고 관리 운영하는 발전소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걷잡을 수 없는 피해와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을 치룰 수밖에 없다는 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배웠다. 노후해 폐기해야 선박을 적당히 수리해 규정 이상의 화물을 대충 싣고 안전조항을 무시할 때 어떤 참사를 빚을 수 있는지 우리는 세월호에서 보고야 말았다.


지하수가 넘쳐흐르는 땅은 핵폐기물 처분장의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 지금 핵폐기물 처분장을 짓는 경주가 그렇다. 장차 어떤 사고를 일으킬까? 지구온난화는 해수면 상승 뿐 아니라 태풍과 해일을 거세게 만드는데, 파고를 완충해오는 갯벌은 끊임없이 매립된다. 우리 내일은 안녕할까? 사고 가능성을 외면하는 개발은 눈앞의 탐욕에 충실하지만 내일의 안전을 백안시한다. 이제 안전을 등한시하는 독선적 개발은 멈춰야 한다. 시민과 함께 다시 검토해 개발의 방향과 성격을 바꿔야 한다.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다. (작아, 2014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