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5. 7. 17. 01:35


50만원이 아니라도 좋다. 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스위스는 월 70만원이라고 했다. 소득 수준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대략 30만원? 하지만 우리나라는 임대료가 지나치다. 전월세나 주택 구입으로 지불해야 하는 은행이자가 만만치 않다. 그뿐인가. 건물이나 상가 임대료가 물건의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러므로 월 30만원이면 모자라겠다. 50만원이면 어떨까? 넉넉하지 않더라도 기본적 삶은 가능하지 않을까? 이른바 기본소득이다.


부자든 가난하든, 나라를 구한 사람이든 전과자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일률적으로 일정액의 기본소득이 입금된다면 사회는 어떻게 바뀔까? 거리에서 인터뷰를 했더니 많은 사람은 나태해질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뜻하지 않은 돈이 들어오니 술 마셔 없애거나 과도한 쇼핑으로 날릴 거로 대답한 이에게 인터뷰를 시도한 이는 당신은 어떨 생각인지 다시 물었다고 한다. 대답은 아니요. 저는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겁니다.” 또는 그렇다면 돈벌이 때문에 억지로 하는 지금 일을 집어치우고 싶네요.”


국가에서 모든 국민이나 거주민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국민배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국민의 범위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과거나 현재에 국가에 기여했거나 기여하고 있는 국민, 그리고 내일의 국가에 기여할 미래세대에게 배당한다는 개념이다. 국민이 있어야 국가는 존재한다. 신체조건이나 지능의 차이와 관계없이, 성별과 나이는 물론 직업의 다양성과 무관하게 모든 국민은 국가 안에게 제 역할에 충실하게 임한다. 그런 국민은 지분을 가진 것이니 국가는 배당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호의호식할 정도의 배당은 아니다.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원하는 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일자리를 찾을 것이다.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오로지 돈벌이 때문에 붙잡는 일, 스트레스를 받으며 심신이 피곤해지는 일은 마다할 게 틀림없다. 저임금에 혹사당하는 감정노동은 차차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아르바이트에 매달려야하는 대학생이나 젊은이들은 비로소 자신의 길을 찾아 몸과 마음을 수련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더 잃고 선배와 만나 토론할 기회를 더 만들 것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이는 체력을 연마하고 악기를 다루는 이는 연습할 시간을 늘릴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로 넘치는 사회는 그 만큼 건강해질 것이다.


고객을 상대하며 감정을 주고받는 일자리의 임금수준이 상승하거나 자신을 왕이라 믿는 고객이 노동자를 제멋대로 대하는 일은 줄겠지. 불소가스가 누출돼 소중한 목숨을 내놓게 했던 반도체 공장은 철저한 통제와 관리에 투자를 늘리겠지. 파업 노동자를 완력으로 밀어내는 구사대나 쫓겨날 세입자를 폭력으로 제압하는 직종은 사라지겠지. 대신 큰돈은 벌지 못해도 마음에 품던 활동에 몰두하는 이는 늘어날 것이다. 시민단체나 협동조합이 활발해지고 창작이나 정치활동에 더욱 적극적일 수 있겠다.


독일의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은 라이프치히에 대규모 공장을 지었다. 임금이 낮은 국가로 투자하지 않아 호평을 받았지만 시민들이 기대했던 일자리는 창출되지 않았다. 공장을 전면으로 자동화했기 때문이었다. 일자리를 늘리지 않은 폭스바겐은 공장 신축으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지만 분배는 감소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예는 도처에 차고 넘친다. 공장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는 돈이 없으니 경제활동에 소외된다. 대신 부자들의 호화스런 소비행각은 더욱 유별나게 튀겠지. 그런 사회에 위화감은 커질 뿐, 공동체는 돈독해지지 못한다. 돈의 순환이 정체되는 만큼 경제수준도 뒷걸음칠 것이다.


일자리가 사라지니 젊은이의 취업 기회는 박탈된다. 직장 이탈자의 재취업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인건비를 줄이려는 자본의 경영방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은 없다. 그런 상황을 벗어나려는 국가에서 기본소득을 지불한다면 세상은 바뀐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라도 희망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 은퇴한 이도 새로운 기회를 능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 다만 기본소득의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국가가 고심해야할 텐데, 기본소득 전문가들은 다양한 방법을 안내한다. 투명하고 엄격한 과세하고 예산 편성을 획기적으로 개편한다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당장 지원할 재원이 모자란다면 수혜 대상자를 제한하며 시작할 수 있다. 노인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월급이 많은 직장에서 은퇴했든 퇴직금을 듬뿍 받았든, 웬만한 노인은 벌어들인 재산의 대부분을 자식에게 이러저러한 이유로 넘기고 수중에 돈이 부족하다. 손주에게 쥐어줄 용돈이 없어 자식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면 서글프다. 사회적 합의로 어느 연령 이상의 노인 모두에게 일정액을 기본소득으로 제공한다면, 그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면, 이 나라의 노인들은 지금보다 훨씬 건강해질 것이다. 경륜을 발판삼아 남은 삶을 더욱 보람 있게 이어갈 것이다. 기존의 노인 관련 예산을 조정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그 방면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농촌부터 기본소득을 지불하자는 정당도 있다. 권력과 이권에 눈이 어두운 기존의 거대 정당은 물론 아니다. 농촌에 농민만 있는 건 아니지만, 기본소득을 받는 농민과 농업 관련 일에 종사하는 이는 땅과 자신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농작물을 먹는 소비자를 위해 유기농업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겠다. 젊은이가 모이면 시골은 활발해지고 농토도 효율적으로 관리될 것이며 지금처럼 처참한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높아지겠지. “소비자는 왕이라는 구호에 속아왔던 도시의 소비자들은 농촌의 생산자에게 감사해하는 마음을 비로소 가질지 모른다.


유럽에서 100년이 넘는 기본소득 논의를 우리는 이제 시작했다. 스위스와 핀란드는 기본소득을 정책에 반영할 준비에 나섰다는 소문이 들린다. 기본소득의 개념을 알리기 급급한 실정이지만, 우리도 타당성을 폭넓게 논의할 때가 되었다. 돈 없이 가족과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돈은 생명체의 피와 다르지 않다. 공기와 물처럼 생명 유지에 없어서 안 되므로 국가는 국민 개개인에게 자존심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일정액을 지불해야 하는 게 정의롭지 않을까? 기본소득의 개념이 거기에 있다. (야곱의우물, 2015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