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서예

학인 2019. 12. 11. 04:48

 

 

 



 

[정보] 두고두고 같이 읽고 써보려고 옮겨놨습니다.

옥담시집(玉潭詩集)과 이응희(李應禧, 1579~1651년)선생에 대한 자료입니다.

 

 

비 오는 남산(연주곡)

 

옥담시집(玉潭詩集) 해제(解題)

 

17세기 향촌생활이 오롯이 담긴 빼어난 풍속시-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 시인으로서의 삶과 저술

 

이응희(李應禧, 1579~1651년)는 자가 자수(子綏), 호가 옥담(玉潭)이며, 본관은 전주(全州)로, 안양군(安陽君)의 현손(玄孫)이다. 성종대왕의 삼남 안양군은 귀인(貴人) 정씨(鄭氏) 소생으로 연산군과는 이복형제간이다. 이복형인 연산군이 즉위한 후 생모 윤씨(尹氏)가 폐출되어 죽게 된 것이 귀인 정씨와 엄씨(嚴氏)가 참소한 탓이라 여겨 두 귀인을 장살하였다. 그보다 앞서 안양군은 봉안군(鳳安君), 회산군(檜山君) 두 아우와 함께 연산군의 학정을 비판하는 직언을 올렸지만 연산군이 귀를 기울일 리가 없었다. 결국 안양군은 1504년(연산군 10) 충청도 제천에 유배되었다가 제주 적소(謫所)에서 원사(寃死)했다. 부인 능천군(綾川君) 구수영(具壽永)의 딸은 견성군(甄城君)의 노비로 넘어갔으며, 그 재산은 모두 몰수되는 참화를 입었다.

 

다행히 중종(中宗)이 반정으로 즉위한 후, 안양군은 작위가 회복되고 공회(恭懷)라는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그리고 국가의 예법에 따라 그 아들 이억수(李億壽)가 종남도정(從南都正)에 봉해졌고, 손자 이귀의(李貴義)는 덕풍부정(德豊副正)에 봉해졌으며, 증손 이현(李玹)은 여흥령(驪興令)에 봉해졌다. 그러나 왕실의 후손에게 세습되던 이러한 종친부(宗親府)의 벼슬도 관례에 의하여 여흥령 이현의 대에서 끝이 났다.옥담공은 여흥령 이현과 평산신씨(平山申氏) 계형(季衡)의 따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종실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였기에 평범한 향촌의 사족으로 살았다. 경기도 산본, 당시는 과천에 속한 산내곡(山內谷), 수리산 아래 선대부터 살던 집에서 책을 읽고 시를 짓는 일로 즐거움을 삼았다. 젊은 시절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그 뜻이 절실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5대손 이사영(李思永)의 〈선고부군묘지(先考府君墓誌)〉에는 옥담공이 광해군 때 대과(大科) 초시(初試)에 합격하였지만 광해군의 실정(失政)을 보고 벼슬에 뜻을 접었다고 하였다. 다음 〈나의 인생[我生]〉은 1625년 무렵 스스로의 삶에 대해 쓴 작품이다.

 

나의 인생[我生]

 

나의 인생 천지간에 일개 무능한 몸 / 我生天地一踈慵 [아생천지일소용]
마흔여섯 해 동안 얻은 것이 없어라 / 四十六年無所得 [사십륙년무소득]
글을 지어도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고 / 爲文未遂捿第□ [위문미수서제□]
검술을 배운들 어찌 만인을 대적하리오 / 學劍焉能萬人敵 [학검언능만인적]
늙은 부모께 좋은 음식도 못 올리고 / 堂中親老甘旨闕 [당중친로감지궐]
아내는 반찬거리 없다고 근심한다 / 室裏妻愁盤膳缺 [실리처수반선결]
아들 일곱은 비록 공부를 했다 하지만 / 有子七人縱云學 [유자칠인종운학]
겨우 글귀나 읽으니 무슨 소용 있으랴 / 摘句尋章何所益 [적구심장하소익]
한가한 중에 술상 차리고 이웃을 모으니 / 閑中置酒聚比隣 [한중치주취비린]
강개한 노래 높이 부르며 마음이 막막해라 / 慷慨高歌心漠漠 [강개고가심막막]
듬성한 백발이 이미 머리에 가득하니 / 種種白髮已滿巓 [종종백발이만전]
자연 따라 늙어갈 뿐 무엇을 아쉬워하랴 / 任天從衰何用惜 [임천종쇠하용석]
아아 타고난 운명이 진실로 이와 같으니 / 吁嗟賦命苟如此 [우차부명구여차]
술병 앞에서 오래 시름에 잠기지 말자꾸나 / 莫向樽前長戚戚 [막향준전장척척]

 

 

 

마흔여섯 해 살아온 인생을 조용히 돌아보았다. 글을 익혔지만 과거에 오르지 못하였고, 무예를 배운다 한들 나라를 위해 크게 쓸 재주가 되기는 어렵다. 네 번째 구의 학문(學文)은 학검(學劍)의 잘못이다. 이 구절은 항우(項羽)가 젊은 시절 글을 배워도 성취하지 못하고 검술을 배워도 성취하지 못하여 그의 숙부 항량(項梁)이 꾸짖자, 항우가 “글은 자기 이름만 쓸 줄 알면 되고 검은 한 사람을 대적하는 것이니 배울 것이 못 됩니다. 만인(萬人)을 대적하는 것을 배우겠습니다.” 한 고사를 따른 것이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라 부모님께 맛난 음식도 올리지 못하고 반찬거리 없다고 푸념하는 아내에게 부끄럽다. 자식에게 부지런히 글을 가르쳐 자신을 대신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쳐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자신은 그저 이웃의 벗들을 불러 술을 마시고 분수대로 살아갈 뿐이다. 옥담공은 이 시에서 다짐한 대로 살아갔다.

 

인조반정 이후에도 옥담공은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1625년에는 선영이 있던 산내(山內)에 새로 집을 짓고 그곳에서 평생을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무렵부터 스스로의 호를 옥담(玉潭)이라 한 듯하다. 집 동쪽에 선대에 파놓은 그리 크지 않은 못이 하나 있어 맑은 물이 흘러들었다. 그 곁에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옥담이라 하였는데, 이로써 호로 삼게 된 것이다.

 

옥담에는 여덟 가지 풍경이 있었다. 바람을 머금은 푸른 물결이라는 뜻의 함풍압록(含風鴨綠), 조그마한 구리 동전 모양의 파란 연잎이 떠 있다는 뜻의 청전소점(靑錢小點), 높은 산속의 아름드리 소나무라는 뜻의 용문노간(龍門老幹), 겨울에도 푸르른 빛을 자랑하는 바위틈의 소나무라는 뜻의 암변만취(巖邊晩翠), 햇살이 비치는 연못에 부리가 노란 오리가 노닌다는 뜻의 농일아황(弄日鵝黃), 해당화가 농염한 향기를 뿜는다는 뜻의 자금농향(紫綿濃香), 산골짜기에 막 돋아난 대나무라는 뜻의 해곡신총(嶰谷新叢), 해가 뜰 무렵 언덕이 먼저 붉게 타오른다는 안상선홍(岸上先紅)이 그것이다. 하나하나에 시처럼 운치 있는 이름을 붙였다.

 

옥담공은 초가로 된 집에 서재를 꾸미고 모재(茅齋)라 이름하였다.

다음 〈모재의 봄 풍경[茅齋春景]〉은 1644년 무렵 모재에서의 한적한 삶을 노래한 작품이다.

 

시인의 집에 봄도 반이 무르익으니 詩家春半老 [시가춘반로]
물색이 점점 더 고와지는구나 物色轉生嬌 [물색전생교]
버들가지는 바람을 받아 하늘대고 弱柳含風線 [약류함풍선]
대숲에 댓가지는 이슬에 젖었어라 叢篁滴露梢 [총황적로초]
제비는 와서 옛 둥지를 찾고 燕來尋舊壘 [연래심구루]
꾀꼬리는 지저귀며 새둥지 지킨다 鸎囀護新巢 [앵전호신소]
시인묵객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어 墨客無相過 [묵객무상과]
한가로이 혼자서 바둑돌을 놓노라 閑碁獨自敲 [한기독자고]

 

옥담공은 집을 시가(詩家), 곧 시의 집이라 하였으니 시인으로 자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러 시에서 스스로를 시옹(詩翁), 묵옹(墨翁)이라 일컫기도 하였다. 옥담공은 옥담을 사랑하면서 한가하게 시인으로서 평생을 보내었다. 향촌에서 사귄 벗들이나 인근 고을의 관원들과 어울려 시주를 즐겼다. 중년 시절에 관서 지역을 여행하고 호남과 영남 지역으로 나들이를 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잦은 일은 아니었다. 아마도 모친에 대한 지극한 효성 때문에 그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전염병이 돌아 모친을 모시고 다른 곳에 가서 잠시 살던 때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족을 이끌고 서해의 섬으로 들어가 지낼 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거처를 옮기지 않았다.

 

옥담공은 옥담으로 찾아온 벗들이나 인척들과 어울려 시를 짓는 일로 생애를 보내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지은 〈병이 오래되어[病久]〉에서 “아직도 시 다듬는 병이 남아 있어서, 때때로 좋은 시구 자주 찾노라[尙有攻詩癖, 時時覓句頻]”라 하였으며, 비슷한 시기에 지은 〈가을날 회포를 적다[秋日書懷]〉라는 시에서는 “사업은 시가 천 수요, 생애는 집이 몇 칸이라[事業詩千首, 生涯屋數間]”라 한 대로 칠십 평생 지은 시가 천 수에 육박하였다. 노년에는 여러 병이 겹쳐 나들이가 불편하였지만, 잠시 병이 나으면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근처 아름다운 물가로 나아가 시를 짓곤 하였다. 1651년 73세로 세상을 떠나던 그 해까지 옥담공은 시를 지으면서 이렇게 살았다. 그리고 나중에 행선략장군(行宣略將軍)으로 추증되었다.

 

옥담공이 평생에 걸쳐 지은 시는 1,050제(題) 가량 되는데, 그 중 연작이 많으므로 실제 작품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옥담공의 시는 《옥담유고(玉潭遺稿)》와 《옥담사집(玉潭私集)》으로 묶여 전한다. 《옥담유고》와 《옥담사집》에는 옥담공이 제작한 한시의 대부분이 수록되어 있지만 온전한 문집으로 보기는 어렵다. 《옥담사집》의 마지막 면에 “기축년 2월 12일 필사를 끝내다.[己丑二月十二日畢書]”라고 하였는데, 지질이나 글씨 등으로 보아 1769년 무렵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필사자는 알 수 없다. 잘못된 곳이 많은데 다행히 잘못 필사된 곳은 예전의 교정부호에 의하여 표시를 해두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옥담유고》에는 1623년 무렵까지의 시가 실려 있고, 《옥담사집》에는 그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은 시가 수록되어 있으니, 서명이 이처럼 달라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옥담유고》와 《옥담사집》은 저작의 시기별로 편집되어 있으므로, 《옥담시집》 1, 2로 부르는 것이 온당하다.

 

옥담공의 저술은 1960년 무렵 석판본(石版本)으로 인쇄되었는데, 《완산세고(完山世稿)》가 그것이다. 《완산세고》는 《옥담공고(玉潭公稿)》에다 《칠자연방고(七子聯芳稿)》와 《진사공고(進士公稿)》, 《정재공고(靜齋公稿)》를 합쳐 2책으로 묶은 것이다. 《옥담공고》는 《옥담유고》와 《옥담사집》에 실린 시 중 일부를 뽑고 그곳에 실려 있지 않은 몇 편의 글을 더한 것이지만, 〈만물편(萬物篇)〉 등 한시사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지 않아 자료적 가치는 오히려 크게 떨어진다. 《옥담공고》에만 보이는 것으로는 〈향로계첩의 발문[享老稧帖跋]〉과 〈석천선생의 제문[祭石泉先生文]〉, 〈명선대부 행 덕성부정의 묘지[明善大夫行德城副正墓誌]〉 등이 있다. 〈향로계첩의 발문〉에 따르면 유순인(柳純仁), 심부(沈溥), 유우인(柳友仁), 안홍제(安弘濟), 송규(宋珪), 이원득(李元得), 이경일(李敬一), 한덕급(韓德及), 안중행(安重行) 등과 절친하였다고 한다. 이들 인물 중 이경일은 같은 왕실로 영흥정(永興正)에 봉해진 사람인데 옥담공의 당숙이다. 한덕급은 제천현감을 지냈으며, 이원득은 조선 중기의 명상(名相) 이원익(李元翼)과 4촌간이다. 이들을 포함한 평생의 지기들은 역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기지 못한 평범한 향촌의 사족이었다.

 

《칠자연방고》는 옥담공의 일곱 아들의 시를 모은 것이다. 옥담공은 부제학(副提學)을 지낸 김위(金偉)의 딸인 경주김씨(慶州金氏)와 혼인하였다. 조선 중기의 명유(名儒) 송애(松厓) 김경여(金慶餘)가 그 처조카다. 옥담공은 김경여와 여러 차례 시를 주고받았는데 그의 문집 《송애집(松厓集)》이 온전하지 않아 옥담공과의 교분에 대한 자료는 실려 있지 않다.

 

옥담공은 두흥(斗興)ㆍ두성(斗成)ㆍ두양(斗揚)ㆍ두여(斗輿, 斗榮이라고도 한다)ㆍ두환(斗煥)ㆍ두평(斗平)ㆍ두광(斗光) 등 아들 일곱과, 윤진(尹璡)과 박종번(朴宗蕃)에게 출가한 두 딸을 낳았다. 〈유사(遺事)〉에 따르면 이들이 모두 문장에 뛰어나 세상에서 칠두문장(七斗文章)이라 칭송하였다고 한다. 안양군이 비명에 간 이래 옥담공에 이르기까지 그 후손들은 벼슬에 나아가지 않다가 옥담공의 아들 대에 이르러 비로소 과거를 보기 시작하여 아들과 손자대에 7인의 생원을 배출하게 되었다. 이두양은 생원을 하였고, 이두환은 생원을 거쳐 사옹원 봉사(司饔院奉事), 형조정랑(刑曹正郞) 등을 지냈으며, 이두광은 진사를 지냈다. 손자 대에 특히 이정석(李挺晳)은 공조좌랑(工曹 佐郞)과 합천군수(陜川郡守)를 역임하였다. 《진사공고》는 이정우의 시 1편과 문 1편을 묶은 것이고, 《정재공고》는 이두환의 현손(玄孫)이요, 이정규의 증손(曾孫)인 정재(靜齋) 이사영(李思永, 1728~1793)의 문집으로 몇 편의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2. 향촌생활을 그린 일상의 시

 

옥담공은 평생 시를 짓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으니 시인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불행히 당대에 그 이름을 널리 떨치지 못하였고, 또 그 저술이 후세에 널리 알려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현재 《옥담유고》와 《옥담사집》에 남아 있는 시만으로도 옥담공은 한국 한시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작가로 평가할 수 있다.옥담공 당대의 조선 시단의 추이는 송풍(宋風)에서 당풍(唐風)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으며, 일부 선진적인 문인들은 시필성당(詩必盛唐)의 구호를 외치는 명나라 복고파(復古派)의 문학이론을 수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향촌의 시인 옥담공은 문단의 풍상에 휩쓸리지 않고 두보(杜甫)의 시를 모범으로 하여 담박한 시를 제작하였다. 옥담공 한시가 이룩한 가치는 두보의 한적한 생활을 노래한 시를 잘 배우되, 스스로의 일상생활을 체화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다음 〈아침 창[朝窓]〉에는 향촌에서 담박하게 살아가는 옥담공의 생활상이 잘 드러난다.

 

 

아침 햇살이 산창을 비추니 朝日照山窓 [조일조산창]

초가집에 따스한 기운 생긴다 白屋煖氣生 [백옥난기생]

처자식은 삼과 모시를 삼고 妻孥執麻枲 [처노집마시]

어린 아들은 시경을 외우네 稚子誦詩經 [치자송시경]

문 앞에 개 한 마리가 짖더니 門前一犬吠 [문전일견폐]

약을 파는 행상이 지나가누나 賣藥行商過 [매약행상과]

올해는 곡식이 매우 비싸니 今年粟米貴 [금년속미귀]

그 값을 따질 수가 없어라 莫得論其價 [막득론기가]

 

 

수리산 산속의 집에 아침 해가 비치니 밤새 썰렁했던 초가집에도 온기가 돈다. 아침이 되자 늙은 처는 길쌈을 하고 아이는 그 곁에서 책을 읽는다. 한적한 마을에 개 짖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이따금씩 오는 약 행상이 지나간다. 올해는 흉년이라 곡가가 매우 비싸서 걱정이다.

 

산촌 마을에서 담박하게 살아가는 옥담공의 모습이 절로 한 편의 풍속화처럼 다가온다. 옥담공의 시가 두보의 시에 연원을 두었다고 하였거니와, 두보가 〈강마을[江村]〉의 마지막 두 연에서 “늙은 처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는데, 아이놈은 바늘 두드려 낚시 바늘 만드네. 병이 많아 필요한 것 오직 약봉지니, 늙은 내가 이외에 또 무엇을 구하랴[老妻畫紙爲棊局, 稚子敲針作釣鉤. 多病所須惟藥物, 微軀此外更何求]”라 한 것을 절로 연상하게 한다.

 

두보의 시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강마을〉에서 보는 것처럼 한적한 맛을 주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스케일 큰 웅장한 시를 짓기도 했으며, 복잡하고 난삽한 구절로 사람들의 골머리를 아프게 하는 작품도 남겼다. 옥담공의 한시에서는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시를 배워 창작에 응용한 사례도 찾을 수 있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읽을 수 있는 시는 바로 위에서 본 것과 같은 향촌 사회의 체험을 소박하게 읊조린 쪽이다.

 

〈콩죽[豆粥]〉에서 이 점이 잘 확인된다.-상강(霜降)

 

 

동짓달에 서리와 눈이 내리니 / 復月霜雪至 [복월상설지]

농가에는 월동 준비를 마쳤다 / 田家寒事畢 [전가한사필]

오지솥에는 콩죽이 끓는 소리 / 瓦釜鳴豆粥  [와부명두죽]

먹으니 그 맛이 꿀처럼 달구나 / 食之甘如蜜 [식지감여밀]

한 사발에 땀이 삐죽 나고 / 一椀輕汗出 [일완경한출]

두 사발에 몸이 훈훈하여라 / 二椀溫氣發 [이완온기발]

아내와 자식들을 돌아보면서 / 相顧語妻孥 [상고어처노]

“이 맛이 깊으면서도 좋구나.”/ 此味深且長 [차미심차장]

아내와 자식들은 웃고 돌아보며 / 妻孥笑相顧 [처노소상고]

“밥상에 고량진미 없는걸요.” / 盤膳無膏粱 [반선무고양]

“고량진미 말할 것 무엇 있나, / 膏粱安可說 [고량안가설]

고기반찬도 무상한 것 모르나?” / 肉食知無常 [육식지무상]

 

1625년의 작품이다. 이 해 가을 풍년이 들었다. 쌀 한 말이 베 한 자 값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다. 가을걷이를 마치고 겨울을 날 채비도 다 끝낸 동짓날, 가족들이 둘러앉아 콩죽을 먹는다. 한 사발 먹으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입맛이 돌아 한 사발 더 먹고 나니 기운이 난다. 처자에게 정말 맛있지 않느냐고 동의를 구한다. 처자는 고기반찬도 없는 평범한 콩죽이 대단할 것 있느냐 핀잔을 준다. 이에 옥담공은 높은 벼슬을 하여 진수성찬을 먹는 이도 언젠가 벼슬이 떼이고 나면 그뿐이니, 진수성찬이 무상한 것이라 하였다. 가난한 살림에서 오히려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처자를 다독인다. 저녁상을 마주한 가족의 단란한 모습이 선하다. 가족들의 대화가 시에 인용되어 있어 더욱 더 소박한 맛을 느끼게 한다.

 

〈새벽의 일[曉事]〉을 아래에 보인다.

 

닭이 울어 그치지 않으니 金鷄鳴不已 [금계명불이]

하늘 가득한 별들이 지는구나 滿天星斗落 [만천성두락]

집집마다 등잔 불꽃 피워놓고 家家燈花閙 [가가등화료]

시골 아낙들이 길쌈을 하누나 村婦事紡績 [촌부사방적]

산골 아이는 소를 먹이려고 山童亦飯牛 [산동역반우]

오지솥에다 콩깍지를 삶는다 瓦釜烹豆殼 [와부팽두각]

이윽고 소죽이 다 익으니 旣已爛牛食 [기이란우식]

소가 죽을 먹는 소리 들리네 聞粥粥牛食 [문죽죽우식]

소의 음식 소홀히 해선 안 되나니 牛食不可忽 [우식불가홀]

우리 집이 그의 힘으로 먹고 사는 것을 儂家食其力 [농가식기력]

 

금계(金鷄) : 천상(天上)에 있다는 전설상의 닭으로, 새벽이 올 때 이 닭이 울면 인간 세상의 닭들이 따라서 운다고 한다

 

한시는 기본적으로 사대부의 것이다. 사대부도 물러나면 향촌에 살지만, 시골살이가 몸에 딱 붙지는 못한다. 그러나 옥담공은 그러하지 않았다. 첫닭이 울었지만 아직도 깜깜한 밤인데도 모두들 일어나 부산하다. 아낙네는 등잔불을 켜고 길쌈을 하고 아이는 콩깍지를 삶아 쇠죽을 끓인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옥담공은 아이에게 한 마디 덧붙인다. “저 소란 놈이 우리 집 먹여 살리니, 소 먹을 것이라 하여 함부로 하지 말고 정성을 다하거라.”옥담공의 시는 이러하다. 옥담공은 근체(近體) 율시(律詩)와 같이 형식이 꽉 짜인 시도 잘 지었지만, 오히려 형식이 자유로운 고시도 많이 지었다. 자유로운 형식에 17세기 초반 향촌의 생활상을 자연스럽게 풍속화처럼 그려내었다. 이러한 작품과 더불어 옥담공은 향촌에서 생활하면서 보고 들은 것도 꾸밈없이 시로 드러내면서, 당시 향촌 하층민의 고통도 잘 형상화하고 있다. 〈숯장수의 고생[賣炭苦]〉을 아래에 보인다.

 

숯 파는 일 얼마나 고생인가 / 賣炭何苦業 [매탄하고업]

숯 팔아도 남은 양식이 없어라 / 賣炭無餘粮 [매탄무여량]

송곳 꽂을 땅 한 뙈기 없으니 / 身無立錐地 [신무립추지]

본업은 농사와 양잠이 아닐세 / 本業非農桑 [본업비농상]

아침엔 산에 들어가 나무를 베고 / 朝入山中伐山木 [조입산중벌산목]

저녁엔 구덩이 파서 숯을 굽는다 / 暮劚深坑燒碧炭 [모촉심갱소벽탄]

나는 재 낯에 묻어 얼굴은 시커멓고 / 飛灰入面狀貌黑 [비회입면상모흑]

뜨거운 불길에 몸이 뜨거워 땀이 흐르네 / 烈焰燻身流赭汗 [열염훈신류자한]

열 손가락 다 휘고 살갗은 다 텄는데 / 十指如鉤肌膚裂 [십지여구기부렬]

허름한 옷 너덜너덜 정강이도 못 가린다 / 短褐懸鶉不掩脚 [단갈현순불엄각]

고생스레 숯을 지고 저잣거리에 들어가니 / 辛勤擔負入城市 [신근담부입성시]

추위에 다리 얼어 힘없어 휘청휘청 / 凍脚無力行欹傾 [동각무력행의경]

아동들은 거리에 모여 손뼉 치며 웃나니 / 兒童亂街拍手笑 [아동란가박수소]

산귀신이 어이하여 이 대로에 왔느냐고 / 山鬼何能臻紫陌 [산귀하능진자맥]

올해는 날씨가 덜 추워 숯이 비싸지 않아 / 今年無氷炭不貴 [금년무빙탄불귀]

동쪽 서쪽 다 다녀도 하나도 팔지 못했네 / 足徧東西終未鬻 [족변동서종미죽]

집에 오니 처는 원망하고 아이는 배고파 우니 / 歸來妻怨子啼飢 [귀래처원자제기]

하늘에 하소연해도 하늘은 아득하기만 해라 / 仰訴皇天天漠漠 [앙소황천천막막]

사람이 타고난 운명이 저마다 다르니 / 人生賦命各有差 [인생부명각유차]

술과 고기 냄새 풍기는 고대광실을 보라 / 請見朱門臭酒肉 [청견주문취주육]

 

숯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민중의 삶을 걸개그림처럼 그렸다. 옥담공은 〈땔나무 파는 노래[賣薪行]〉를 지어 산에 들어가 나무를 해서 파는 가난한 사람에 대해 노래한 바 있다. 한양에 들어가 나무를 팔려 하니 나무 장사가 많아 팔리지 않고 시골에서 팔려 하니 제각기 나무를 해서 불을 때는 바람에 팔 데가 없는 가난한 민중의 삶을 담은 노래이다. 숯을 만들어 파는 사람의 생애는 그보다 더욱 고달프다. 겨울에 산에 들어가 나무를 하느라 손가락이 다 휘고 살갗은 터서 갈라질 지경이다. 힘들게 나무를 지고 와서 숯을 굽느라 얼굴은 온통 숯검정이다. 어렵게 만든 숯을 팔러 나섰지만, 아이들은 산에서 내려온 귀신이라 놀려댄다. 제대로 팔지도 못하고 집에 돌아오니 처는 원망하고 아이는 배고프다 운다. 옥담공은 이러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에 대해서 따뜻한 온정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옥담공의 시는 이러하다. 옥담공은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고 평생을 향촌에서 조용히 살았다. 벗이나 인척이 찾아오면 그들과 시를 지었다. 서당을 열고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일곱 아들이 장성한 후에는 그들을 불러 가족간에 시회(詩會)도 가졌다. 노년에 병마로 고생하였지만 이러한 삶은 그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생활을 담담하게 시에 담았다. 다듬고 꾸미기보다는 보고 듣고 겪는 일상생활을 담담하게 시에 담은 것, 이것이 옥담공의 시가 이룩한 개성이고 큰 성취라 할 수 있다.

 

 

3. 만물을 노래한 〈만물편(萬物篇)〉과 〈영조(詠鳥)〉

 

옥담공의 한시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시로 쓴 백과사전을 저술하였다는 점이다. 옥담공은 〈만물편〉이라는 280수 연작시를 제작하여, 인간세상의 만물을 하나하나 시에 담아내었다. 〈만물편〉은 세상만물을 음양류(陰陽類)ㆍ화목류(花木類)ㆍ과실류(果實類)ㆍ곡물류(穀物類)ㆍ소채류(蔬菜類)ㆍ어물류(魚物類)ㆍ의복류(衣服類)ㆍ패용류(佩用類)ㆍ문방류(文房類)ㆍ주거교량류(舟車橋梁類)ㆍ기구류(器具類)ㆍ기명류(器皿類)ㆍ악기류(樂器類)ㆍ기국류(技局類)ㆍ재물류(財物類)ㆍ축물류(畜物類)ㆍ금조류(禽鳥類)ㆍ수류(獸類)ㆍ행충류(行蟲類)ㆍ비충류(飛蟲類)ㆍ음식류(飮食類)ㆍ약초류(藥草類) 등으로 나누었다. 특히 어물류는 다시 동해산류(東海産類)ㆍ서해산류(西海産類)ㆍ강어류(江魚類)ㆍ천어류(川魚類)로 나누어 총 25류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그 아래 다시 280종의 사물을 배열하고, 하나하나의 사물에 대하여 오언율시를 지었다. 우리 한시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만물편〉은 백과사전처럼 25종의 유형을 설정하고 다시 그 아래 280개의 사물을 나열한 다음, 해당 사물에 대한 시를 붙였다. 〈만물편〉의 〈음양류〉에는 음양(陰陽), 금(金)ㆍ목(木)ㆍ수(水)ㆍ화(火)ㆍ토(土)의 오행(五行), 동(東)ㆍ서(西)ㆍ남(南)ㆍ북(北)의 방위, 춘(春)ㆍ하(夏)ㆍ추(秋)ㆍ동(冬)의 계절,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ㆍ흑(黑)의 색채, 조(朝)ㆍ모(暮)ㆍ주(晝)ㆍ야(夜)의 시간, 한(寒)ㆍ서(暑)의 기후 등 추상적인 사물을 먼저 다루었다.「화목류」에는 당시 문인의 주거 공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24종의 꽃나무를 들고 있다. 소나무ㆍ잣나무ㆍ대나무ㆍ국화ㆍ매화ㆍ황매화ㆍ모란ㆍ홍도(紅桃)ㆍ벽도(碧桃)ㆍ삼색도(三色桃)ㆍ장미ㆍ사계화(四季花)ㆍ작약ㆍ해당화ㆍ연꽃ㆍ산단화(山丹花)ㆍ옥매(玉梅)ㆍ진달래ㆍ철쭉ㆍ버드나무ㆍ단풍나무ㆍ오동나무ㆍ방초(芳草)ㆍ난초(蘭草) 등을 정원에 심거나 교외에서 쉽게 볼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과실류」에는 복숭아ㆍ오얏ㆍ살구ㆍ앵두ㆍ능금ㆍ포도ㆍ석류ㆍ모과ㆍ배ㆍ밤ㆍ대추ㆍ감ㆍ호두ㆍ은행ㆍ잣ㆍ개암ㆍ추자(楸子)ㆍ팥배ㆍ등자(藤子)ㆍ왕머루ㆍ유자ㆍ귤ㆍ밀감 등 23종을 들고, 이 과실들의 외형과 효능에 대해서 시로 읊었다.「곡물류」에는 쌀ㆍ찹쌀ㆍ메기장ㆍ찰기장ㆍ메조ㆍ차조ㆍ보리ㆍ밀ㆍ콩ㆍ팥ㆍ녹두ㆍ메밀ㆍ율무ㆍ수수ㆍ깨ㆍ들깨 등 16종을 시로 읊은 것이 수록되어 있다. 율무는 체증을 낫게 하고 떡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였으며, 들깨는 가래를 삭이고 들깨기름은 방습의 효과가 있으며 말린 잎을 달여 먹으면 악취를 제거한다고 하는 등, 각 곡물의 조리법과 효능 등을 두루 다루었다.

 

채소류를 다룬 「소채류」에는 수박ㆍ참외ㆍ오이ㆍ토란ㆍ상추ㆍ파ㆍ마늘ㆍ가지ㆍ아욱ㆍ생강ㆍ겨자ㆍ부추ㆍ차조기ㆍ동아ㆍ고사리ㆍ삽주ㆍ게목ㆍ순채 등 18종을 다루었다. 오이는 구이를 해먹기도 하고 물에 담가놓았다 먹기도 한다고 하였고, 파는 위장을 따뜻하게 하고 신장을 강하게 해준다고 하였으며, 차조기와 동아는 죽을 해먹는다는 등 채소류의 조리법과 효능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참외(眞瓜)〉를 예로 보인다.

 

 

참외라는 이름에서 ‘참’의 의미는 / 名眞意有在 [명진의유재]

그 이치를 내 따져 알 수 있다네 / 其理我能窮 [기리아능궁]

짧은 놈은 당종(唐種)이라 부르고 / 短體稱唐種 [단체칭당종]

긴 놈은 물통이라 부른다지 / 長身號水筒 [장신호수통]

베어놓으면 금빛 씨가 흩어지고 / 刳分金子散 [고분금자산]

깎아놓으면 살이 꿀처럼 달지 / 條折蜜肌濃 [조절밀기능]

품격이 전부 이와 같으니 / 品格渾如此 [품격혼여차]

서쪽 오이란 말과 한가지라네 / 西瓜語必同 [서과어필동]

 

 

참외는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그 이름이 보이니, 이른 시기부터 우리나라에 있던 과일이다. 비슷한 시기의 저술인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첨과(甜瓜)와 같다고만 하였고, 허균(許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의주(義州)에서 나는 것이 좋다. 작으면서도 씨가 적은데 매우 달다.”고만 적었다. 그러나 〈만물편〉에서는 길이가 짧은 품종이 있어 당종(唐種)이라 하고 긴 품종이 있어 물통[水筒]이라 한다는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수록하고 있거니와, 참외의 외형과 맛을 두루 잘 드러내었다. 서과, 곧 수박과 함께 이 시기 가장 맛난 과일로 대접받았음을 이 시에서 알 수 있다. 옥담공이 〈만물편〉에서 읊고 있는 곡물이나 과일, 채소 등은 우리 문학사에서 거의 시로 읊은 적이 없는 것들이다. 옥담공은 〈만물편〉에서 생활 주변의 사물들을 하나하나 오언율시에 담아 사전의 기능까지 겸할 수 있게 하였다.

 

〈만물편〉은 특히 어패류에 대해 가장 자세하다. 바다에서 나는 어패류를 「어물류」라 하고, 다시 동해와 서해에서 나는 어패류를 나누어 시로 읊었다. 또 강과 개울에서 나는 민물고기도 다시 나누었다. 동해에서 나는 11종의 어패류로 고래ㆍ자라ㆍ대구ㆍ방어ㆍ청어ㆍ문어ㆍ전복ㆍ가자미ㆍ은어ㆍ홍합ㆍ해삼 등을 들었는데, 그 중 고래와 자라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식단에 올리는 것들이었다. 은어는 동북 지방의 해안에서 나는 것으로 말려서 구워먹거나 간장에 졸여서 먹기도 하고 콩잎과 함께 먹으면 천하의 진미라 하였는데, 요즘 강으로 올라온 은어를 회로 먹는 것과는 풍습이 다소 다르다. 〈청어(靑魚)〉를 아래에 보인다.

 

 

푸른 청어가 남해에서 잡히니 / 靑鮮南海産 [청어남해산]

강으로 천 척의 배가 들어오네 / 江口入千䑹 [강구입천소]

알에는 황금 좁쌀이 소복하고 / 卵包黃金粟 [란포황금속]

창자에는 백설 같은 기름이 엉겼네 / 腸凝白雪膏 [장응백설고]

구워서 맛난 밥을 먹을 수 있고 / 炙宜餤美飯 [적의담미반]

말려서 향긋한 막걸리를 마신다네 / 乾可飮香醪 [건가음향료]

생선의 질이 이처럼 높지만 / 品貴能如此 [품귀능여차]

값이 높은 것만 걱정한다네 / 偏憂索價高 [편우색가고]

 

 

등 푸른 생선 청어가 남해에서 잡혀 1천 척의 배에 실려 도성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먼저 말한 다음, 배를 열면 노란 알이 소복하게 들어 있고 창자에는 맛난 기름이 엉긴 모습을 그렸다. 이어 구워서 반찬으로 하고 말려서 안주로 삼는 등 아주 좋은 생선이지만 값이 비싸서 문제라 하였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1570년 이후 청어가 잡히지 않는다 하였고, 허균의 〈도문대작〉에서 청어가 우리나라 도처에서 잡히는데 예전에는 가격이 쌌지만 당시는 어획량이 줄어 가격이 높아졌다고 하였으니, 옥담공의 시는 매우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 하겠다.

 

서해에서 나는 6종의 어물로는 홍어ㆍ민어ㆍ준치ㆍ조기ㆍ밴댕이ㆍ새우 등을 들었다. 민어는 탕으로 먹으면 좋고 회로 먹기에는 마땅하지 않으며 말려서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고 하였다. 준치는 회와 탕이 모두 좋고, 조기는 탕과 구이가 좋다고 하였다. 밴댕이는 상추쌈으로 보리밥과 함께 먹을 때 진미라 하였다. 해물에 따른 조리 방법을 자세히 적었으니, 옥담공의 실생활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강어류」로는 농어ㆍ숭어ㆍ웅어ㆍ뱅어 등 4종의 큰 민물고기를 들었는데, 뱅어의 경우 회를 뜨기 어려워 탕으로 먹는다고 하였다. 지금 날것을 통으로 먹는 것과는 풍습이 다르다. 「천어류」로는 개울에서 나는 잉어ㆍ쏘가리ㆍ붕어ㆍ게 등을 들고, 물고기의 특성과 함께 맛있게 먹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의복류」에서는 일반적인 의복 외에 여우가죽옷ㆍ양가죽옷ㆍ솜옷ㆍ홑옷 등 당시 가장 일반적인 옷, 그리고 관(冠)과 허리띠, 홀(笏) 등 8종에 대해 시를 지었다. 「패용류」에서는 노리개ㆍ수건ㆍ부채ㆍ빗접ㆍ지팡이ㆍ빗ㆍ도(刀)ㆍ검(劍)ㆍ활ㆍ화살 등 당시 선비들이 지니고 다니던 10종의 사물에 대해 시를 지었다. 「문방류」로는 붓ㆍ먹ㆍ벼루ㆍ종이ㆍ연적ㆍ향로ㆍ궤안ㆍ등(燈)ㆍ촛불ㆍ박산(博山)향로 등 10종을 들었다. 「주거교량류」에서는 배와 수레, 교량을 두고 시를 읊었다.

 

「기구류」는 20종에 이르는 집 안팎의 기물을 소재로 한 것이다. 그림병풍ㆍ소나무평상ㆍ발ㆍ장자ㆍ휘장ㆍ대자리ㆍ베틀ㆍ다듬잇돌ㆍ키ㆍ빗자루ㆍ말ㆍ저울ㆍ비녀ㆍ거울ㆍ가위ㆍ자ㆍ광주리ㆍ낮은등잔걸이ㆍ높은등잔걸이ㆍ무늬를 넣어 짠 자리 등 잡다한 생활용품을 다루었다. 「기명류」 역시 소반ㆍ숟가락ㆍ젓가락ㆍ가마솥ㆍ세발솥ㆍ술동이ㆍ술병ㆍ술잔 등 8종의 생활용품을 두고 시를 지었다. 「악기류」에서는 종ㆍ북ㆍ거문고ㆍ피리 등 4종을 시에 담았다. 또 「기국류」에는 바둑ㆍ박(博)ㆍ장기ㆍ투호(投壺) 등 4종이 나열되어 있다.

 

 「재물류」는 돈을 대신하여 쓸 수 있는 18종의 물건을 다루었는데, 돈 이외 황금ㆍ백옥(白玉)ㆍ은(銀)과 같은 귀금속, 사(紗)ㆍ나(羅)ㆍ능(綾)ㆍ단(段)ㆍ백주(白紬)ㆍ세포(細布)ㆍ추포(麤布)ㆍ백저포(白苧布)ㆍ면포(綿布)ㆍ견(繭)ㆍ견사(繭絲)ㆍ목면화(木棉花)ㆍ뽕[桑]ㆍ삼[麻] 등 화폐처럼 쓰이는 옷감류를 소재로 시를 지었다. 생활 주변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이러한 잡다한 사물을 소재로 연작 시를 지은 예는 〈만물편〉 외에 거의 찾기 어렵다.

 

「축물류」에서는 말ㆍ소ㆍ돼지ㆍ양ㆍ거위ㆍ오리ㆍ닭ㆍ개ㆍ고양이 등 9종을, 「금조류」에서는 까마귀ㆍ까치ㆍ부엉이ㆍ올빼미ㆍ박쥐 등 5종의 조류를, 「수류」에서는 기린ㆍ범ㆍ사슴ㆍ원숭이ㆍ여우ㆍ삵ㆍ다람쥐ㆍ쥐 등 7종을 다루었다. 벌레는 기어다니는 「행충류」와 날아다니는 「비충류」로 나누었다. 행충류로는 용ㆍ거북ㆍ뱀ㆍ두꺼비ㆍ개구리ㆍ지네ㆍ지렁이ㆍ개미ㆍ거미ㆍ귀뚜라미ㆍ철써기ㆍ사마귀 등 12종을 다루었고, 비충류로는 나비ㆍ잠자리ㆍ매미ㆍ왕벌ㆍ꿀벌ㆍ반딧불ㆍ모기ㆍ등에ㆍ파리ㆍ하루살이 등 10종을 다루었다.

 

「음식류」에서는 밥ㆍ국ㆍ구이ㆍ탕ㆍ면ㆍ떡ㆍ만두ㆍ회ㆍ식해ㆍ소금ㆍ장ㆍ차ㆍ술 등 13종을 다루었다. 식염과 소금의 차이는 잘 알 수 없지만, 바닷물을 졸여 흰 소금을 만드는데 콩에 담가두면 붉은 빛이 돌며 단맛이 나고, 오이를 절여두면 색이 노랗게 된다고 하였으며, 식염은 쌀에 넣어두어 깨끗하게 하고 생선이 상하지 않게 한다고 하였다. 구이는 식전에 먹는 음식이라 하고 부잣집에서는 고기적을, 가난한 집에서는 채과(菜瓜)를 먹는다고 하였다. 장은 콩을 삶아서 가루를 낸 다음 소금을 뿌려 독에 담아두면 호박과 같은 붉은 빛이 도는 간장을 얻을 수 있고, 아래쪽에 노랗게 쌓인 된장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차는 중국 아산(丫山)의 이름난 품종을 수입하여 마셨다고 적고 있다. 음식에 대한 연작시 역시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만두는 옥담공이 매우 좋아한 음식인데, 아래 〈만두(饅頭)〉를 읊은 시를 보인다.

 

 

우리집 솜씨 좋은 며늘아기 / 吾家巧媳婦

물만두 예쁘게 잘 만든다네 / 能作水饅嘉

옥가루에 금빛 조를 소로 만들어 / 玉屑鞱金粟 [옥설도금속]

은빛 피에 싸서 쇠냄비에 띄운다 / 銀包泛鐵鍋 [은포범철과]

생강을 넣으면 매운 맛이 좋고 / 苦添薑味勝

짭짤하게 하려 장을 듬뿍 붓는다 / 醎助豆漿多

한 사발 새벽녘에 먹고 나면 / 一椀呑淸曉

아침이 지나도록 밥 생각 없다네 / 崇朝飯不加

 

 

만두는 고려시대부터 우리 식단에 널리 오르던 것인데, 〈도문대작〉에는 “의주 사람들이 중국 사람처럼 잘 만든다. 그 밖에는 모두 별로 좋지 않다.”고 짧게 적었고, 《지봉유설》에는 만두에 대한 기록이 없다. 물론 만두를 비롯하여 〈만물편〉에 등장하는 많은 음식을 두고 지은 시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만물편〉에서는 옥담공의 생활과 관련하여 물만두를 맛있게 먹는 법을 자상하게 소개하고 있다.마지막으로 「약초류」에서는 삼(蔘)ㆍ이출(二朮)ㆍ복령(茯笭)ㆍ황정(黃精)ㆍ산약(山藥)ㆍ후추(胡椒)ㆍ천초(川椒) 등 7종을 들고 있는데, 후추는 남방에서 수입하고 천초는 중국 촉(蜀) 지방에서 생산되던 것인데 우리나라에 가져와서 퍼졌으며 옥담공의 집에서 재배하였다고 하는 등, 약초의 유래와 효능 등을 시에 담았다. 약을 대상으로 한 연작시 역시 〈만물편〉에서만 확인할 수 있거니와, 〈만물편〉에 수록된 다양한 사물을 연작으로 노래한 영물시는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옥담공은 〈만물편〉 외에도 사물에 대한 연작시를 즐겨 지었다. 〈만물편〉을 제작한 1649년보다 훨씬 이른 때인 1615년 과천에 살던 벗 안처행(安處行)과 시를 주고받으면서 자연 현상을 두고 연작시를 지은 바 있다. 처음에는 하늘ㆍ해ㆍ바람ㆍ이슬ㆍ땅ㆍ달ㆍ서리 등 여덟 가지 사물을 두고 시를 지었는데, 나중에 구색을 맞추기 위하여 다시 여기에 성신(星辰)ㆍ은하수ㆍ무지개ㆍ안개ㆍ 노을ㆍ우레 여섯 가지를 더하여 도합 14종의 사물을 연작시로 노래하였다. 〈수재 안십구가 하늘ㆍ해ㆍ바람ㆍ이슬ㆍ땅ㆍ달ㆍ구름ㆍ서리 등을 읊은 8수의 시에 화답하다[和安十九秀才詠天日風露地月雲霜八首]〉와 〈수재 안십구가 이른 하늘ㆍ해ㆍ바람ㆍ이슬ㆍ땅ㆍ달ㆍ구름ㆍ서리 등을 읊은 8수의 시 다음에 성신ㆍ은하수ㆍ무지개ㆍ안개ㆍ 노을ㆍ우레 여섯 가지 형상을 생각하여 이를 넓힌 것에 차운하다[次安十九秀才所云詠天日風露地月霜八首後仍思星辰河漢虹霞霧雷霆六象以廣之]〉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든 사물은 〈만물편〉의 「음양류」에 해당하는 것이다. 여기서 젊은 시절 사물에 대한 영물시를 즐겨 짓다가 노년에 하나의 체계를 갖추어 온갖 사물을 두루 망라하여 〈만물편〉을 제작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만물편〉에 「금조류」를 두어 5종의 새에 대한 시를 수록하였는데, 새의 종수가 매우 빈약하다. 그 이유는 1646년 52수의 새에 대한 연작시를 이미 지은 바 있기 때문이다. 굳이 다시 새에 대한 연작형의 영물시를 지을 필요가 없기에 다루지 않은 새만 대상으로 하여 「금조류」를 갖춘 것이다. 따라서 천지(天地)와 일월성신(日月星辰) 등을 노래한 작품은 「음양편」에 넣고 새에 대한 영물시는 「금조류」에 넣어야 더욱 온전한 〈만물편〉이 됨을 알 수 있다.

 

옥담공이 새를 대상으로 한 방대한 영물시를 지은 것은 〈만물편〉보다 앞선 1646년 봄의 일이다. 이때 옥담공이 병이 들어 누워 있다가 산속에서 새들이 서로 다른 소리로 우는 것을 듣고 〈산새를 읊조린 18수[詠山鳥十八首]〉를 지었다. 황조(黃鳥)ㆍ정소(鼎小)ㆍ숙도(熟刀)ㆍ구욕(嘔浴)ㆍ호로(呼蘆)ㆍ부득(不得)ㆍ훈훈(燻燻)ㆍ소기섭(疎棄攝)ㆍ포곡(布穀)ㆍ산구(山鳩)ㆍ원사(願死)ㆍ호도(胡逃)ㆍ탁목(啄木)ㆍ종달(從達)ㆍ무조(武鳥) 등 15종에 달하는 우리나라 산새를 들어 오언절구로 시를 지었다. 새 이름은 울음소리에서 유래한 것이 대부분으로 당시 민간에서 부르던 명칭을 반영한 것인데 제목 아래 작은 주석을 넣어 울음소리와 별칭, 전설 등을 적고 있어 이 시기의 조류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황조(黃鳥)는 곧 꾀꼬리로 황앵(黃鶯)이라고도 한다. 정소는 예전에는 솥작다새라고도 불렀는데 곧 소쩍새로, 두견(杜鵑)이라고도 한다. 시에서는 풍년을 기려 솥이 작다[鼎小]라 운다고 하였다. 숙도(熟刀)는 민간에서 숙도조(熟刀鳥)라 부른다고 하였는데 곧 쏙독새다. 시에서는 효자가 부모에게 맛난 음식을 봉양하려다가 그 혼이 새가 되어 칼로 써는 소리를 내게 되었다고 하였다. 호로라는 새는 직박구리라는 텃새로 제호(提壺), 혹은 제호로(提葫蘆)라고도 하는데 그 울음소리가 ‘호로직죽(呼蘆稷粥)’으로 들려 호로로피죽새라고도 부른다.

 

 포곡(布穀)은 뻐꾸기, 산구(山鳩)는 메비둘기, 탁목(啄木)은 딱따구리를 가리킨다. 종달(從達)은 종다리로 종달새, 노고지리로도 알려져 있는 새다. 민간에서는 금종달(金從達)이라 부르는데 ‘욕귀(欲歸)’라는 울음소리를 낸다고 하고, 시에서는 버림받은 며느리의 혼이 붙은 새라 하였다. 구욕(嘔浴)은 민간에서 구욕조(嘔浴鳥)라 부른다 하였는데 시의 내용에서 오릉(於陵)의 진중자(陳仲子)가 청렴하여 불의(不義)한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 형이 가져온 부정한 거위를 모르고 먹었다가 나중에 알고 토하였다는 고사를 인용하였지만, 거위가 아니라 구욕조(鸜鵒鳥)를 가리키는 듯하다.

 

이 새는 팔가(八哥)라고도 하는데, 날 때에는 팔자(八字) 모양을 이루고 사람 소리를 내기도 한다. 원사(願死)는 울음소리가 ‘원사(願死)’처럼 들리는 새인데 다른 사람의 시에는 ‘욕사(欲死)’, ‘아욕사(我欲死)’, ‘사거(死去)’ 등으로 울음소리를 형용하기도 하므로, 죽고 싶다는 말을 표현한 듯하다. 새타령에서 ‘주걱제금(啼禽)’이라 한 것이 바로 이 새다. 여기서는 〈쏙독새[熟刀]〉를 예로 보인다.

 

 

효자가 맛난 음식 이바지하여 / 孝子供甘旨

부모님을 지성으로 받드네 / 爺孃奉至誠

남은 혼이 새가 되었나 보다 / 餘魂應化鳥

늘 쏙독쏙독 도마질 소리 내니 / 長作扣刀聲

 

시에서는 효자가 부모에게 맛난 음식을 봉양하려다가 그 혼이 새가 되어 칼로 써는 소리를 내게 되었다고 하였다. 쏙독새라는 이름 자체가 칼로 무언가를 써는 소리를 형용한 것이다. 실제 쏙독쏙독 하고 우는 새울음 소리가 도마질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새울음을 형용한 이러한 시를 금언체(禽言體) 시라 한다.

 

다른 금언체 시에서 다룬 나머지 새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호도(胡逃)라는 새는 울음소리가 ‘호도(胡逃)’와 비슷한데 오랑캐로부터 벗어나기를 염원하는 뜻을 시에 담았다. 그 음으로 보아 후투티라는 새를 가리키는 듯하다. 또 울음소리가 ‘소기섭(疎棄攝)’으로 들린다는 소기섭이라는 새에 대해서는, 어떤 집에 새로 들어온 처와 예전 처가 함께 절구를 찧는데 새로 들어온 처가 예전 처의 아이를 데려다 절구에다 넣고는 달아나버렸는데, 예전 처가 힘이 빠져 들고 있던 절구를 놓아 아이를 죽게 하였다는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부득(不得)은 ‘부득부득(不得不得)’이라 우는 새로, 굴원(屈原)이 임금으로부터 등용되지 못하자 한이 맺혀 이 새가 되었다고 하였다. 훈훈(燻燻)이라는 새도 울음소리가 ‘훈훈(燻燻)’으로 들리는데, 훈훈한 온기가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새라고 하였다. 무조(武鳥)라는 새는 활을 쏘는 것과 유사한 소리를 낸다고 하였는데 휘파람새 종류인 듯도 하다. 이러한 새는 다른 문헌에서도 이름이 확인되지 않아 어떤 새를 가리키는지 알기 어렵다.

 

옥담공은 여기에 더하여 더욱 다양한 종류를 덧보태어 〈여러 새를 읊조린 21수[詠群鳥二十一首]〉를 지었다. 여기에는 21종의 새를 두고 지은 오언절구가 연작으로 실려 있다. 봉황(鳳凰)ㆍ난조(鸞鳥)ㆍ공작(孔雀)ㆍ앵무(鸚鵡)ㆍ비취(翡翠)ㆍ백학(白鶴)ㆍ청조(靑鳥)ㆍ창응(蒼膺)ㆍ보조(鴇鳥)ㆍ야적(野翟)ㆍ자고(鷓鴣)ㆍ창경(鶬鶊)ㆍ전순(田鶉)ㆍ초료(鷦鷯)ㆍ치연(鴟鳶)ㆍ효오(孝烏)ㆍ희작(喜鵲)ㆍ연연(燕燕)ㆍ황작(黃雀)ㆍ검금(黔禽) 등이 그것이다.

 

〈만물편〉에서 대부분의 사물은 생활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지만 구색을 맞추기 위하여 용과 기린 등과 같은 상상의 동물을 넣은 것처럼, 여기에서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봉황이나 난새 등을 넣었다. 또 청조가 꾀꼬리의 별칭이지만 이미 앞서 꾀꼬리를 따로 다루었고 시에서 서왕모(西王母)의 사신으로 등장시킨 것으로 보아 신화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공작새나 앵무새, 비취새 등은 여러 경로로 조선에 들어와 있었지만 옥담공이 직접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시에서도 문헌 자료를 통하여 알 수 있는 내용을 다루었을 뿐이다.

 

그밖의 새는 대체로 생활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새들이다. 백학은 조선시대 문인의 뜰에서 키웠다. 창응, 곧 매는 사냥에 필수적이므로 키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조는 《시경》에 〈보우(鴇羽)〉라는 편명이 있어 문인들에게 익숙하고 예전에는 매우 흔한 새였는데 느시, 혹은 능애라고도 불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이 새는 ‘후후’ 소리를 내면서 운다. 시에서는 말을 조심한다는 점을 들었다. 야적은 들판에 흔한 꿩을 가리키고, 자고는 메추라기와 유사한 흔한 들새다. 창경은 꾀꼬리이다.

 

앞서 황조 역시 꾀꼬리인데 서로 종이 다른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전순은 메추라기로 그 맛이 매우 좋아 다투어 잡는다고 하였다. 초료는 뱁새로 굴뚝새, 붉은머리오목눈이라도 하는 조그맣고 흔한 새다. 효오는 까마귀로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 뜻에서 이른 것이고, 희작은 까치로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하여 이른 것이다. 연연은 제비, 황작은 참새를 이른다. 검금은 울타리에 숨어 사는 새로 인간사를 몰래 감시한다고 하였는데 어떤 새인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새는 모두 산이나 들판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옥담공은 물새를 빠뜨릴 수 없다고 생각하여 다시 〈물새를 읊조린 13수[詠水鳥十三首]〉를 더 지었다. 여기에 나오는 12종의 물새는 대붕(大鵬)ㆍ홍안(鴻雁)ㆍ노관(老鸛)ㆍ백구(白鷗)ㆍ청구(靑鷗)ㆍ백로(白鷺)ㆍ부압(鳧鴨)ㆍ노자(鸕鶿)ㆍ다곽(多霍)ㆍ원앙(鴛鴦)ㆍ비목(飛鶩)ㆍ정위(精衛) 등이다. 전설에 등장하는 대붕과 정위를 제외한 나머지는 흔히 볼 수 있는 바다새다. 홍안은 기러기, 노관은 황새, 백구는 흰 갈매기, 청구는 푸른 갈매기, 백로는 왜가리, 부압은 오리, 노자는 가마우지, 원앙은 원앙이, 비목은 집오리다. 다곽은 강직한 새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소리로 보아 따오기인 듯하다. 옥담공은 이들 새 하나하나를 대상으로 오언절구를 지어 새의 특성을 설명하였다.

 

이처럼 옥담공은 도합 47종의 새를 52편의 시에 담았다. 역대 새를 두고 이렇게 많은 시를 지은 시인은 없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새에 대한 시는 주로 금언체라는 특수한 양식을 따른 것이 많다. 한국 한시사에서 금언체가 일찍부터 발달하였지만, 제재로 삼은 새의 종류는 많아야 대여섯 종이다. 옥담공과 비슷한 시기에 유몽인(柳夢寅)이 지은 〈새소리 13편[鳥語十三篇]〉이 이 무렵까지 가장 다양한 새를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을 통틀어 구한말 최영년(崔永年)의 〈백금언(百禽言)〉 46수가 가장 방대한 규모라 할 수 있지만, 옥담공의 연작시에 비할 바 아니다. 옥담공이 제작한 일련의 새에 대한 영물시는 이 점에서 기릴 만하다.

 

 

4. 옥담시집의 가치옥담공이 어느 시대 사람인지 알지 못한 채

 

 《옥담유고》와 《옥담사집》을 보면 대부분은 18세기의 작품이라 생각할 것이다. 한국 한시사에서 옥담공의 시는 한 세기를 앞서 간 것이라 할 만하다. 평생 수리산 아래에 살면서 향촌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담담하게 적어나갔기에, 옥담공의 시는 17세기 풍속화를 재현한 것이라 할 만하다. 두보의 시를 배우되, 난삽함을 취하지 않고 평담함을 취하여, 향촌생활을 담박하게 묘사해 낼 수 있었던 것이 옥담공 한시의 가장 큰 성취다. 17세기 무렵부터 중국의 복고파(復古派)에서 시는 모름지기 고대의 참된 경치와 진실된 마음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러한 이론이 조선에 전해졌지만, 한시의 제작으로 실천된 것은 18세기 무렵에 들어서다. 18세기 조선 땅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조선 사람의 마음을 담은 시가 유행하게 되는데, 옥담공은 바로 그러한 시풍을 먼저 시범해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와 함께 17세기 무렵부터 백과사전식의 저술이 중국에서부터 수입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사 만물을 유형별로 나누어 기술하는 것이 유행하였는데, 옥담공은 그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더 나아가 특히 〈만물편〉에서 세상 만물을 시로 노래하였다. 시라는 정제된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시 안에 담은 사물에 대한 정보는 당시 비슷한 성격의 저술인 《지봉유설》이나 〈도문대작〉에 비해 그 양과 질에서 결코 모자람이 없다. 이 점에서 〈만물편〉과 산새와 물새를 두루 노래한 연작시는 단순한 문학작품을 넘어 동물학과 식물학, 혹은 생활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만하다.

 

옥담공 이전에 이러한 대작이 나온 적이 없었고, 그 후에도 없었다. 옥담공 이후 몇몇 인물에 의하여 연작형의 영물시가 나왔지만, 〈만물편〉이 삼라만상을 두루 다룬 데 비하여 이들은 특정한 부류에 국한되어 있다. 이 점에서 〈만물편〉은 우리 한시사, 혹은 우리 문화사에서 가장 이채로운 작품으로 대서특필 할 만하다.

전주이씨안양군파종사회 이상하 () 2009

 

 

 

 

 

옥담유고[玉潭遺稿]        

거처하는 곳 앞산 아래 못물이 맑고 깊어 완상할 만한데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곳에 집을 짓지 않았다. 석천 선생이 벼슬을 그만둔 뒤로 검곡에 와서 우거하다가 우연히 이 못을 보고 매우 좋아했다. 곧 잡목과 잡초를 말끔히 베어내고 못물을 깨끗이 준설하여 노닐고 구경하는 곳으로 삼고서 용연이란 이름을 붙이는 한편 시를 지어 뜻을 보였다. 이에 그 시에 차운한다 2수 ○선생의 성은 안이고 휘는 영헌이며 호는 석천이다 [소거전산하유연징심가상인구불벽석천선생파관지후래우검곡중우견차연심심호지즉개진망결기심위유상지소명왈용연잉작시이시지용차기운 이수 선생성안휘영헌호석천]

검곡의 한가한 분과 산골 이 못 / 검곡한인산곡연
우연히 서로 만나매 흥겨움이 끝없어라 / 우연상치흥무변
술병 잡고 날마다 화창한 물가에 가니 / 제호일일임청안
수면에 맑은 바람 불어 자리 앞에 온다 / 수면청풍도석전

하늘이 아끼고 땅이 감춘 곳 이 용연이니 / 천간지비차룡연
속된 사람이야 눈 앞에 있은들 어이 알리요 / 속객하지재안변
어느 날 선생이 이곳에 와 머무시니 / 일석선생림장구
풍광과 물빛이 전에 없이 아름다워라 / 풍광수색미무전

삼가 석천 선생께 답하다 2수 [봉수석천선생 이수]

평상시에 근심스런 생각 날로 고동치는데 / 단거우사일용당
하물며 산촌 막걸리를 항아리로 비웠음에랴 / 황부산료경소항
고맙게도 선생이 좋은 시구 보내주시어 / 뢰유선생전수구
읊으매 봄빛이 마른 창자에 가득하여라 / 음래춘색만고강

산골 집 고요한 봄날 삽살개는 조는데 / 산가춘적수령방
종일토록 사립문에 사람 발자취 끊겼구나 / 경일시문절세공
안장 없는 말을 탄 소년이 한 폭을 보내오니 / 잔기소년전일폭
시는 금수와 같고 붓은 기둥과 같아라 / 시여금수필여강

반가운 비가 내리기에 석천 선생께 바치다 2수 [희우봉정석천선생 이수]

기름진 은택이 들판에 가득하니 / 진진고택일서주
생각건대 올해는 큰 풍년 들겠네 / 상득금년대유추
상림에 기도하지 않아도 하늘이 감동했으니 / 불도상림천의격
우리 왕이 응당 원통한 죄수를 풀어주었으리 / 오왕응시종원수

삼춘에 비가 안 와서 농부들이 슬피 우니 / 삼춘불우곡농부
들판에 마른 보리 이삭 어이 차마 볼거나 / 인견서주맥적고
이제 단비가 연일 천리에 걸쳐서 내리니 / 감주련조천리작
백성들이 올해는 세금을 낼 수 있겠구나 / 려민금세가수조

석천 선생께 삼가 바치다[봉정석천선생]

홀로 솔문을 닫고 칩거한 지 이미 십 년 / 독폐송관이십춘
친한 벗 얼굴도 새삼스레 새롭게 보인다 / 친붕안면간래신
잠깐 일산 기울이고 글을 토론한 뒤부터 / 자종경개론문후
오랜 친구보다 우정이 나음을 문득 느낀다오 / 두각교정매고인

안송탄의 〈술회〉에 삼가 차운하다 안장은 휘가 홍제이고 헌호는 송탄이다 [봉차안송탄술회운 안장휘홍제헌호송탄]

임천이 고요하여 시끄러운 세상과 먼데 / 임천정산격진훤
여덟아홉 칸 집에 몇 이랑 논밭이어라 / 팔구간려수무원
해가 높다 아이가 말해도 여전히 누웠고 / 아보일고유와탑
손님 왔다 학이 전하고야 비로소 문을 연다 / 학전빈지시개문
창 앞에선 연하의 시름에 괴로워하였고 / 창전고피연하
교외에서는 자주 금수를 가지고 말하였어라 / 교외빈장금수언
신세가 세상의 영욕을 도무지 모르니 / 신세불지영여욕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는 것만 생각할 뿐 / 단능구포우구온

석천 선생의 시에 삼가 차운하다[봉차석천선생운]

듬성한 머리털 쇠한 얼굴에 거울 보고 놀랐나니 / 단발소용경리경
세상의 영광과 이익 따윈 마음에 대수롭지 않아라 / 총영성리불영정
상소하여 사직을 청할 제 말 외려 간절하고 / 장봉걸퇴언유간
시로써 행휴를 읊으매 글자가 더욱 맑아라 / 시영행휴자경청
일실에서 금서로 긴긴 날을 보내고 / 일실금서소영일
시내에 가득한 금조 보며 여생을 즐기네 / 만계어조악여생
근래에 면식이 오히려 더 강건하시니 / 이래면식유강승
자연과의 교분이 이미 이뤄졌음을 느낀다오 / 두각림천계이성

태진가인에게 주다[증태진가인]

한번 마외에서 결환을 내리고부터 / 일자마외증결환
섬궁에서 천년 동안 신선 반열을 따랐어라 / 섬궁천재읍경반
그 어느 해에 황정경을 잘못 읽어서 / 하년오독황정경
또 홍진 세상에 귀양 와 오래 돌아가지 못하는고 / 우적홍진구불환

송 영공에 대한 만사 송 첨지는 휘가 몽룡이다 [만곡송령공 송첨지휘몽룡]

청년 시절엔 자수 차고 구가를 치달렸건만 / 자수청년빙구가
오늘은 붉은 명정이 선영 산기슭에 멈췄어라 / 단정금일주추아
시든 꽃 가을 잎새엔 무궁한 한이 서렸고 / 잔화만엽무궁한
시골 벗과 술 친구들도 크게 탄식하누나 / 계우준붕역공차

임지지의 시 〈술회〉에 차운하다 이름은 국추이다 [차임지지술회운 명국추]

태을산 앞에서 벗님을 만나니 / 태을산전봉고인
거듭 청안 뜨며 날로 친하여라 / 중개청안일상친
가랑비 올 제 등잔 돋우는 삼경의 길손이요 / 도등세우삼경객
가을바람에 검을 보는 만리의 몸이라 / 간검추풍만리신
학업은 성취하지 못해도 효우는 성취했고 / 학업불성성효우
생업은 이루지 못해도 어진 덕은 이뤘어라 / 모생미수수현인
아아 세상에 지음의 벗이 드무니 / 차차세로지음소
식견 높으면 예부터 따르는 사람이 적은 법 / 독견종래필과륜

정산옹에 대한 만사 이름은 익이다. 산 아래 마을에 산다 [만곡정산옹 명익거산저촌]

검을 배우고 글을 배웠으나 모두 이루지 못해 / 학검학서개불성
영화도 없고 욕됨도 없이 장수를 누렸어라 / 무영무욕종하령
아들과 손주들이 장례 지내고 곡하니 / 기손기자장이곡
부디 잘 돌아가 길이 평안하시길 / 호거호귀유영녕

중양에 홀로 짓다[중양독작]

가을이라 중양절 좋은 날이 왔으니 / 구추가절속중양
울타리 아래 금빛 꽃술이 절로 노랗구나 / 리하금자자재황
홀로 맑은 향기 대하고 홀로 술 마시니 / 독대청향잉독작
이 중의 참된 흥취를 어떻게 헤아릴꼬 / 개중진흥약위량

앵두를 선물한 데 사례하는 뜻으로 지어 안송탄 십오 향장께 삼가 올리다[사혜앵도경정안송탄십오향장]

영롱한 신선 열매 붉은 빛 반짝이니 / 령롱선실영주화
상자를 열매 침이 고이는 걸 참을 수 없네 / 개합난감염치아
비로소 알겠어라 정이 이토록 무거워서 / 시식심정여허중
빗속에 따서 이 산가로 보내주셨구나 / 우중분적송산가

현 상인이 와서 삿갓과 짚신을 준 데 사례하다 3수 ○스님의 이름은 조현이다. 당시 관악산 삼일사에 머물고 있었다 [사현상인래증립혜 삼수 ○명조현시주관악산삼일사]

대삿갓과 미투리 두 가지를 갖고서 / 약립망혜휴량종
단출하게 이 초가집을 찾아왔구려 / 소연래방초려중
부끄럽게도 대접할 술과 음식 없으니 / 괴무주식근상대
이에 거친 시로 원공을 위로한다오 / 편파황사위원공

대삿갓과 미투리 두 가지를 갖고서 / 약립망혜휴량종
외로운 승려가 이 초가집을 찾아왔구려 / 고승래방초려중
만약 도롱이와 죽장을 얻는다면 / 약득사의화죽장
맑은 비 내리는 시냇가를 맘껏 거닐 텐데 / 계변청우임서동

대삿갓과 미투리 두 가지를 갖고서 / 약립망혜휴량종
은근한 정으로 이 초가집을 찾아왔구려 / 은근래방초려중
도롱이와 죽장을 끝내 얻는다면 / 사의죽장종교득
버들에 빗줄기 꽃에 바람 맘껏 찾아다니리 / 류우화풍임차궁

송 향장에 대한 만사 선조께서 과천의 전장을 왕래하실 때 시골 사람들과 많이 사귀셨는데 송 향장이 그 중에서도 가장 친했다 [만배송향장 선조徃래과천장사시원옹계우다소교접송장최위친후]

거문고와 술동이 곁에서 모신 세월이 기니 / 득시금준세월장
오늘 주인 떠난 빈집에서 곡함을 어이 견딜꼬 / 나감금일곡허당
음성과 모습이 길이 황천 속에 사라졌으니 / 음용영격중천리
한 폭의 만사에 만 줄기 눈물 흐른다오 / 일폭애사루만행

유종숙이 벽에 써 둔 시에 차운하다 2수 ○유종숙 우인은 유연광의 조부이다 [차류종숙벽간운 이수 류종숙우인류연광조]

선산 아래에 몇 칸 집을 지었으니 / 선산지하수간재
사정을 따를 뜻 지녀 효성이 끝없어라 / 지섭사정효불졸
춘당에 홀로 문안드림을 한탄하지 말라 / 막한춘당독정성
나그네가 천애벽지에서 우는 것만하랴 / 하여유자읍천애

몸이 주린들 마음이야 주린 적 있으랴 / 신뇌하증심역뇌
집은 가난해도 도는 가난함이 없어라 / 가빈유득도무빈
아내 없이 색동옷 춤 본다 상심하지 말라 / 휴상광대반의무
집안에서 삼난이 잘 모시고 있으니 / 당상삼란봉즐건

을묘년(1615) 봄, 기성(평양)을 지나다 감회가 있어[을묘춘과기성유감]

기봉의 유적이 얼마나 오랜 세월 겪었는가 / 기봉유적기경추
천추의 왕풍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어라 / 천재왕풍상미휴
흥망을 묻고자 해도 외칠 곳이 없는데 / 욕문흥망무처규
긴 대동강만이 오직 고금에 흐르는구나 / 장강유유고금류

안주 백상루에 올라[등안주백상루]

땅이 큰 거리라 사방으로 통하나니 / 지작통구달사추
보장이 되는 회해라 큰 고을이로세 / 보장회해시웅주
맑은 강가에 흰 성가퀴는 용처럼 누웠고 / 분성룡와청강상
큰 들판에 붉은 궁궐은 꿩이 나는 듯해라 / 단궐휘비대야두
옥새의 긴 구름은 만 리에 걸쳐 있고 / 옥새장운횡만리
동대에 뜬 푸른빛에 두 눈동자 열리는 듯 / 동대부취활쌍모
종일 난간에 기대어도 아는 사람 없어 / 빙란진일무인식
홀로 새 시를 가지고 나그네 시름 달랜다 / 독파신시위원수

관서 도중에서[관서도중]

한식날이라 양관에서 / 양관한식절
만 리 밖에서 비로소 귀향하는 사람 / 만리시귀인
새로 핀 매화를 꺾었으니 / 절득신매호
고향에도 봄 왔음을 멀리서 알겠노라 / 요지고국춘

안십구 수재가 하늘ㆍ해ㆍ바람ㆍ이슬ㆍ땅ㆍ달ㆍ구름ㆍ서리를 읊은 시에 화운하다 8수 ○안수재의 이름은 처행이다. 나중에 사마시에 입격하였는데 두양과 동방이다 [화안십구수재영천일풍로지월운상 팔수 안수재명처행후중사마여두양동방]


하늘[천]

태극이 막 나뉘어 건도가 이뤄지니 / 태극초분건도성
높이 하토를 굽어보며 스스로 가볍고 맑아라 / 존림하토자경청
육기를 고루 운행해 멈추어 쉼이 없고 / 균행륙기무정식
삼정을 배열하여 번갈아 세상 밝히게 했네 / 포렬삼정작대명
어진 덕이 흡족하여 큰 조화를 만들고 / 덕흡인홍견대화
만물을 기르는 은혜 깊어 뭇 생명 구제한다 / 은심복육제군생
재앙과 상서 번갈아 나옴은 사람을 통해 드러나고 / 재상질출유인견
화복과 존망을 우리 백성을 통해 듣고 내리도다 / 화복존망자아청

해[일]

자질은 양의 정기요 지위는 지극히 높아 / 질시양정위극존
언제나 황도를 운행하며 금빛으로 빛난다 / 매행황도요금돈
부상과 약목은 뜨고 지는 곳이요 / 부상약목승침처
양곡과 우연은 들고 나는 문이로세 / 양곡우연출입문
하늘의 덕을 대신해 사계절을 이루고 / 대덕황천성사절
땅에 밝음을 드날려 긴 어둠을 걷는다 / 양명하토게장혼
만물에 은택이 깊어 말로 다하기 어려운데 / 은심만물언난진
단지 밝은 빛이 복분 속을 못 비춤이 아쉽구나 / 지한소광암복분

바람[풍]

푸른 개구리밥 끝에서 표연히 일어나서 / 표연기자청빈말
만 가지로 세상에 붊에 각각 정이 있어라 / 취만인환각유정
순임금의 당에서는 능히 성냄을 풀고 / 우순당중능해온
초왕의 궁전 안에선 서늘함을 굴린다 / 초왕궁리전청랭
모래 날리고 지붕 뽑아 큰 일을 이루고 / 양사발옥성홍업
불을 끄고 뜨거움 돌려 효성에 감응했지 / 멸화회홍감효성
온화하고 상서로움도 무한히 좋지만 / 화난경상무한호
송죽에서 이는 찬 소리가 가장 사랑스럽네 / 최련송죽대한성

이슬[로]

음기는 오르고 양기는 내려 맑은 바탕 만드니 / 음승양강응청질
안개도 아니고 노을도 아니라 드날리지 않누나 / 비무비하역불양
달 아래 촉촉이 내려서 초목을 적셔주고 / 월하소소첨초목
바람 앞에 점점이 떨어져 의관이 젖는다 / 풍두점점습건상
송단에 밤이 오랠 제 거문고 소리 윤택하고 / 송단야구금성윤
죽오에 시각이 깊을 때 새의 꿈이 처량하리 / 죽오경심조몽량
옥색과 은빛을 띠는 날이 며칠이나 되는고 / 옥색은휘지기일
날씨 추워지면 맺혀 서리가 됨을 보겠지 / 천한잉견결위상

땅[지]

크도다 대지여 드넓어서 끝이 없으니 / 대재곤원광불궁
뉘라서 이목으로 홍몽한 세계 섭렵하랴 / 수장이목섭홍몽
진나라 배는 단지 삼산 밖에만 다녔고 / 진주지편삼산외
우임금 자취도 오직 팔해 안만 통했어라 / 우적유통팔해중
덕은 고명을 짝하여 만물을 낳고 / 덕배고명생만화
도는 유구함을 이루어 만사를 맡겨둔다 / 도성유구임군공
미미한 정성으로 은덕을 갚기란 어려우니 / 미성루의종난보
헤아려 보고야 비로소 대지의 공덕을 알도다 / 추격방지모씨공

달[월]

누가 수륜을 저 맑은 허공에 돌리는가 / 수파수륜년태청
하늘이 음의 정기를 단련시켜 만들었으리 / 천공응련중음정
밝은 빛이 소매에 드니 오흥이 일어나고 / 명광입수오흥발
흰 그림자가 가슴에 오니 한도가 이뤄진다 / 소영림회한도성
옥토끼는 옥가루 찧은 지 몇 해이며 / 선토기년도옥설
항아는 그 언제나 황정경 읽기를 마칠꼬 / 항아하일파황정
흐리고 밝음 둥글고 이지러짐이 얼마던고 / 음청원결지다소
달 보며 춤추고 술 마심을 그만두지 말라 / 대무함배차막정

구름[운]

뭉게구름이 갖가지 모양으로 피어오르니 / 애체유연종이형
산천의 맑은 기운이 절로 가볍고 깨끗해라 / 산천숙기자경청
망산에 광채를 띠어 왕업을 일으켰고 / 망산저채흥왕업
형악에서 구름 걷힌 건 나그네 정성에 감응해서였지 / 형악개음감객성
밤에는 처마에 머물며 표일한 흥취 바치고 / 야숙첨단공일흥
아침에는 산마루에 생겨나 시상에 젖게 한다 / 조생령수뇌시정
예부터 단비 내리는 은택엔 유감이 없지만 / 종래패택은무감
단지 뜬구름이 밝은 해를 가림이 한스럽네 / 지한부광폐대명

서리[상]

서늘한 자질 맑게 엉기니 기운은 금에 속해 / 상질응청기속금
반짝이는 빛은 눈인 양 무성한 초목에 뿌려진다 / 비광여설쇄번음
시국 근심에 몇 번이나 충신의 눈물 닦았던가 / 우시기식충신루
계절 감응에 유독 효자의 마음 아프게 했지 / 감절편상효자심
비취 주렴 성글어 달빛과 함께 들어오고 / 비취렴소화월입
원앙 장막 얇아 바람과 섞여 침노한다 / 원앙장박잡풍침
천공의 숙살은 늘 하는 일이건만 / 천공숙살상행사
굳은 얼음이 이어 오는 게 가장 한스럽네 / 최한견빙진차심

성신 안십구 수재가 지은 〈하늘〉ㆍ〈해〉ㆍ〈바람〉ㆍ〈이슬〉ㆍ〈땅〉ㆍ〈달〉ㆍ〈구름〉ㆍ〈서리〉 8수에 차운하고, 그 뒤에 이어 생각하여 성신ㆍ은하수ㆍ무지개ㆍ노을ㆍ안개ㆍ우레 여섯 가지 상(상)을 가지고 시를 지어 그 뜻을 넓혔다 [성진 차안십구수재소운천일풍로지월운상팔수후잉사성진하한홍하뢰정륙상이광지]

별들이 맑은 하늘에 나열되어 / 렬숙라청호
북쪽 축을 향하여 선회하도다 / 주환공북추
저녁에 보면 빛이 옥인 듯하고 / 혼간광사옥
밤에 보면 색깔이 구슬 같아라 / 소견색여주
구름 틈에서 멀리 깜빡거리고 / 운극요명멸
은하수 가에서 있는 듯 없는 듯 / 하변사유무
가장 어여쁜 것은 달빛 희미한 저녁 / 최련잔월석
많은 별빛이 서재에 비쳐드는 것이지 / 번채입서주

은하수[하한]

은하수가 삼경에 희게 빛나니 / 하한삼경백
가을하늘에 흰 깁 길게 펼친 듯 / 추천소련장
남북으로는 길이가 무한히 뻗었고 / 남북연무한
동서로는 일정한 너비가 있구나 / 동서무유강
옥빛 별들은 빠진 채 잠기지 않고 / 옥승침불몰
은빛 달은 새 빛을 마주하도다 / 은궐대신광
날을 계산해 근원을 탐구하는 이 / 계일궁원자
그 누가 다시 장건의 뒤를 이으리 / 하인부계장

무지개[홍]

앞 들판에 큰 빗줄기가 그치더니 / 대우전교헐
맑은 무지개가 백 척으로 드리웠다 / 청홍백척수
머리와 꼬리는 동서로 아득하고 / 수미동서형
청색과 홍색은 안팎이 기이해라 / 청홍표리기
다리가 이뤄져도 중은 안 건너고 / 교성승불도
활이 당겨져도 새는 두려워 않네 / 궁만조무의
만약 머리 싸매는 비단 삼는다면 / 약작전두금
미인을 즐겁게 하려 애쓸 게 있으랴 / 하로열취미

노을[하]

우연에 해가 잠길 제 / 우연장일축
하늘가에 지는 노을이 환해라 / 천제락하명
조각 조각 붉은 비단이 뜬 듯 / 편편부홍금
밝고 밝은 자줏빛 옥 빛나는 듯 / 소소요자경
창문으로 보이는 모습 몹시 곱고 / 편련당호유
주렴에 들어오는 빛 늘 사랑스럽다 / 장애입렴병
멀리서 생각하노라 등왕각에서 / 원상등왕각
따오기와 나란히 나는 그 광경을 / 제비일목횡

안개[무]

산천에 기운이 오르내리니 / 산천기승강
서리와 안개가 아침에 자욱해라 / 상무옹청조
들판 저편에 푸른 비단이 뜬 듯 / 야외부청기
시내 안에는 흰 깁이 덮인 양 / 천중멱소초
지척에서도 사물 분간하기 어렵다가 / 지척시난변
잠깐 사이에 문득 말끔히 걷힌다 / 수유홀이소
치우가 지금은 이미 죽었으니 / 치우금기사
안개를 피울까 근심할 게 있으랴 / 하환작분추

우레[뢰정]

쏟아붓듯이 큰 비가 내리는 날 / 대우번분일
우레가 그치지 않고 울리도다 / 뢰정진불정
마구 치달아서 푸른 허공 흔들고 / 분등흔벽락
요란한 소리로 하늘을 달리누나 / 굉갈전창명
우순은 능히 안색이 변치 않고 / 우순능무변
유령은 취하여 듣지 못한다 / 류령취막청
도깨비나 두억시니 같은 것들은 / 리매여망량
숲 속에서 필시 도망쳐 숨겠지 / 림하필도형

완산의 객관에서 밤에 읊다 이선복 영공이 전주 부윤으로 있었는데 내가 전주에 갔다. 때는 세제라 객관에서 이 시를 지었다. 이 해는 병진년(1616)이다 [완산객관야음 리선부령공위전부윤여객유전주시당세제어객관작지세재병진]

객지에서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밤중에 / 객리년광반야침
외로운 객관 등잔 아래서 홀로 길게 읊노라 / 한등고관독장음
종일토록 잡귀 쫓느라 시끌벅적 풍악 소리 / 숭조고조향나동
만 리 타향에서 부모님 그리는 마음 흔드누나 / 람살사친만리심

완산의 객관에서 설날 경기전 성 재랑에게 삼가 드리다[완산객관신정봉정경기전성재랑]

강남에서 나그네 생활 중에 새해를 맞으니 / 려식강남세이신
객지의 썰렁한 술과 음식에 객회가 괴로워라 / 잔배랭자객회신
멀리서 생각하노니 재랑은 한적한 곳에서 / 요상재랑한적처
맑은 창가 고요한 궤안에서 정양하고 계시리 / 명창정궤양정신

완산 부윤이 보여준 시에 차운하다 부윤은 이선복이다 [차완산부윤시운 부윤리선부]

가시 숲에 난봉이 깃들어 오래 못 돌아가는데 / 지극서란구미회
빈 뜰에 새 발자국만 푸른 이끼에 찍혀 있어라 / 공정조적인창태
알지 못하겠네 그 언제나 조정에 돌아갈꼬 / 불지하일선차수
낭묘에는 정매를 조리할 사람이 없는 것을 / 랑묘무인조정매

완산 객관에서 월선을 생각하는 홍수재에게 장난스레 주다 홍수재의 이름은 봉일이다 [완산객관희증홍수재유회월선 명봉일]

깊고 그윽한 계전이 벽공에 솟았으니 / 계전음음용벽공
구름 사닥다리 아득히 높아 속세와 떨어졌다 / 운제천척격진종
선녀가 한 번 간 뒤로 소식이 없으니 / 선아일거무소식
누가 나공을 시켜서 다시 만나게 할꼬 / 수견라공득재봉

송십사 향장의 임당에 모여 술을 마시다 입으로 읊다 송십사 향장은 이름이 규이며, 송창주의 작고하신 조부이다. 때는 정사년(1617) 봄이다 [송십사향장림당㑹음구점 명규정사춘송창주선조]

몇 길 높은 대가 푸른 연못을 굽어보는데 / 수인고대압록당
화려한 술자리에 둘러앉아서 술잔을 잡는다 / 화연렬좌파경상
주인이 말하길 청화회 이 모임을 잇되 / 주인설계청화회
그렇지 않으면 철쭉을 두고 맹서한다 하네 / 부자유여척촉향

안송탄 십오 향장의 수연에 재계하느라 참석하지 못하여[안송탄십오향장수석이재계미참]

장막을 높이 펼쳐 잔치를 베풀어 / 운막고장설례연
축수의 잔 들고 술동이 앞에 춤추겠지 / 수상교거무준전
우리 집은 이 날 재계하고 있으니 / 농가차일방청계
흡사 산승이 좌선하고 있는 것 같아라 / 흡사산승좌수선

낙중의 삼창이 서로 만나 시를 읊었다는 말을 듣고서 그 시에 차운하다[문락중삼창상㑹부시잉차기운]

봉성의 고상한 모임에 날로 바쁘나니 / 봉성고회일상망
나라 위해 일신을 잊는 충성을 지녔어라 / 위국망사결촌장
사직과 백성들에게 복이 있을 줄 아노니 / 사직생령지유복
암혈에서도 솔잎 씹으며 살아갈 수 있어라 / 암간역보찬송향

초여름에 수리사를 유람하며 수리사는 수리산에 있다 [초하유수리사 재수리산]

지팡이 짚고 나막신 신고 초제에 오르니 / 부공섭교상초제
녹음 드리운 아래 선당이 반갑게 보여라 / 희견선당록수저
산새도 거문고와 술의 즐거움을 아는 양 / 산조역지금주악
맑은 숲에서 종일토록 화답하여 우누나 / 청림종일화상제

조십사 박사장과 안양천 가에서 만나 박사는 감사 조정호이다 [여조십사박사장상㑹안양천상 박사즉감사정호]

서로 약속해 시냇가에서 놀이를 벌이니 / 상기천상작청유
농어회와 순채국에 의미가 넉넉하여라 / 로회순羮의미우
좌중에 벗들이 모두 뛰어난 선비이니 / 좌상친붕개승사
강동 계응의 무리를 어찌 부러워하랴 / 강동하선계응류

동촌에서 저물녘 돌아가며[동촌모귀]

비단 같은 시냇물과 산빛이 늦은 봄에 고운데 / 계라산금영잔춘
필마로 돌아가는 동촌에서 흥이 더욱 새로워라 / 필마동촌흥경신
어느 곳 높은 누각에 술 가득한 동이 있는고 / 하처고루준유주
석양에 가인을 끼고 취한 몸으로 가도다 / 석양부취대가인

서촌에서 즉흥으로 읊다[서촌즉사]

소맥은 푸릇푸릇하고 대맥은 풍년이요 / 소맥청청대맥풍
매화는 다 떨어지고 살구꽃은 붉어라 / 매화락진행화홍
동쪽 집 울타리가 서쪽 집과 비슷하고 / 동가리락서가사
북쪽 들 소와 양이 남쪽 들과 같아라 / 북맥우양남맥동

이름이 나지 못해[명미양]

입신의 방도를 배움에 어두우면서 / 매학립신도
이름이 나지 못함은 부끄러워라 / 치궁명미양
나를 수재라 부름도 잘못이며 / 수재칭역오
나를 진사라 부름도 거짓인 것을 / 상사차지양
독서의 뜻은 일찍이 게을렀고 / 황권지증라
백발에 나이는 이미 늙었구나 / 백두년기앙
전원에서 다행히 고요히 사노니 / 전원행업적
소나무 침상에 포단 깔고 누웠노라 / 포천와송상

안송탄 십오장의 수연에서 즉흥으로 읊다 좌중에 자질들이 모두 참석했기 때문에 언급하였다 [안송탄십오장수석즉음 석상자질개참고급지]

화려한 잔치 자리에 따스한 바람 부니 / 화연기석난풍사
보배 나무 고운 난초에 좋은 기운 많아라 / 보수방란가기다
백 섬의 황류를 다 마셔 취해야 하리니 / 백곡황류수진취
산가지가 응당 가지에 가득한 향기 되리라 / 주주당작만지향

안십구 수재가 수리사에 노닐며 지은 시에 차운하다 안십구 수재는 이름이 처행이다 [차안십구수재유수리사운 명䖏행]

장하여라 이 좋은 유람이여 / 장재차승유
동행이 여덟아홉 쌍이었어라 / 동행팔구쌍
서로 부축하여 선도에 올라 / 상부척선도
높은 봉우리에서 구름 창을 연다 / 절정개운창
흐뭇한 마음으로 승려를 만나니 / 흔연견법려
호호 백발로 말이 수다스럽네 / 호수기언방
바위 모양은 서 있는 사자 같고 / 암형약두사
산의 형세는 나는 갈기 같구나 / 령세여비종
상서로운 구름은 자개가 솟은 듯 / 상운용자개
옥 같은 나무는 청당이 뒤집히는 듯 / 기수번청당
처마 앞에는 시원한 우물물이 있고 / 첨전렬옥정
바위틈에서 맑은 물줄기 떨어진다 / 암제현청종
종일토록 앉아 현담을 나누다가 / 현담좌종일
한껏 술을 마시고 얼큰히 취하니 / 훈훈취영항
맑은 바람은 토낭에서 일어나고 / 청풍기토낭
판각에는 금빛 등잔 흔들린다 / 판각요금강
함께 손잡고 월전에 나아가니 / 동휴즉월전
법고 소리 둥둥 재촉하누나 / 법고상최종
금가는 녹과 설이요 / 금가록여설
문장은 왕과 강이로세 / 문자왕여강
돌아갈 마음은 아득히 구름에 막혔고 / 귀심격운제
표일한 흥취는 무지개 돌다리를 넘는다 / 일흥초홍강
산신령이 이리와 범을 물리치거늘 / 산령가시호
호위하는 병사야 있을 필요 있으랴 / 위졸하론방
노숙의 기운 많다 말하지 말라 / 휴언로기중
신선 대추가 마른 창자 채우는 것을 / 선조충고胮
정신이 맑아서 잠이 적고 / 혼청소몽매
구름 속에 누워 송뢰를 듣노라 / 운와문송롱
그윽한 경치가 마음에 꼭 들지만 / 유매계이성
늘 그리워해도 다시 만나기 어려워라 / 상련난재당
마음이 한가하니 몸 이미 고요해 / 심한체기정
말을 해치는 속진의 굴레 벗었도다 / 해마리진강
이제부터 오개를 깨우치고 / 종금발오개
길이 마음 속 번뇌를 제거하고자 / 영원제진장
이별 앞에서 각기 서로 경계하는데 / 림분각상계
산 위에 해는 삼강이나 높이 떴어라 / 산일고삼강

조 상사가 윤인제의 정사에 제한 시에 차운하다 상사는 곧 용주 조 판서 경이다 [차조상사제윤린제정사운 상사즉룡주조판서동]

동군에서 벼슬 그만둔 지 세월이 오랜데 / 동군투잠세월다
종전부터 은거하는 곳이 난초 언덕이어라 / 향래서식재란파
물고기가 봉개를 받드니 연잎을 보겠고 / 어경봉개간하엽
댓잎이 용손을 안으매 죽순을 사랑한다 / 탁포룡손애죽아
바람이 외로운 솔에 드니 저물녘 곡조 울리고 / 풍입고송조탈곡
향기가 오랜 기와에 뜨니 봄 찻물을 쏟는 듯 / 향부로와사춘다
그윽하고 한적한 맛이 온통 이와 같으니 / 유한의미혼여차
지어 두신 맑은 시가 묻노니 얼마나 되오 / 류득청시문기하

책을 대하고[대서]

석양에 창 가에서 그윽한 경전 대하고 / 석양창리대유경
팔짱을 낀 채 잠심하니 만고의 마음일세 / 수수잠심만고정
아이들이 곁에서 시끄럽게 방해하면 / 약피아조방란괄
때때로 꾸짖고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 시시진금경존성

향리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 술자리가 반도 못 되었을 때 종형 신지헌이 집에 왔다는 말을 듣고 먼저 일어나 집에 돌아가며 여러 분들께 삼가 지어 바치다 신 종형의 이름은 광립인데 뒤에 당상관에 올라 선산 부사가 되었다 [향음미반문신지헌종형도가선기환가경정제장 신종형명광립후승당상위선산부사]

향리 사람 나가기 전에 내가 먼저 나가니 / 향인미출신선출
예의로는 그렇지 않지만 인정으론 그렇다오 / 례칙불연정칙연
멀리서 생각노니 비단 자리 구름 장막 속 / 요상금연운막리
석양의 풍악 소리가 봄 하늘에 떠들썩하리 / 석양가관료춘천

잠 깨어 일어나[수기]

한 그루 오동나무가 초가집을 덮었으니 / 일수오동호초려
맑은 그늘이 날마다 거처를 시원케 한다 / 청음일일상유거
소나무 침상에서 잠 깨니 남풍이 불어와 / 송상수파남풍동
주렴 아래 시서가 절로 덮였다 펼쳐지누나 / 렴하시서자권서

새끼 제비 다시 위의 시에 보운(보운)하다 [유연 경보상운]

한 쌍의 새끼 제비가 초가집을 맴도는데 / 일쌍유연요봉려
날며 장난하는 게 내 집을 사랑하는 듯하네 / 비희환여애아거
묻노라 숲에 둥지 튼 것은 옛날 언제였던고 / 차문소림재하세
오가다 날개를 펴 날 수 있을 것을 알겠노라 / 응지래거□익서

한가히 읊다 또 위의 시에 보운(보운)하다 [한음 우보상운]

천 봉우리 그림자 속에 몇 칸 초가집 / 천봉영리수간려
쑥대 문 소나무 울타리 처사의 거처로다 / 봉호송리처사거
진종일 문 앞에는 속된 사람 오지 않고 / 진일문전무속객
양보음 느긋이 읊으며 스스로 한가롭구나 / 한음량보자한서

남촌에서 노낙수를 만나[남촌봉로악수]

여든 나이에 허리 구부정한 한 늙은이 / 팔십구루일로옹
수염과 머리털 하얗게 세어 신선 같아라 / 상수설발등선옹
긴 노래 한 곡조가 외려 맑고 우렁차니 / 장가일곡유청장
외진 시골에 이런 노옹 있는 줄 뉘 알리오 / 수식궁촌락차옹

중양일에 석천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중양일차석천선생운]

삼추 가절이라 중양절에 이르니 / 삼추가절박중양
울 밑에 국화가 흥을 끌어 일으킨다 / 리하황화인흥장
꽃 앞에서 백주를 사양 말고 마시라 / 막석화전경백주
백륜의 무덤 흙을 소와 양이 밟는 것을 / 백륜분토천우양

성환으로 부임하는 홍 찰방을 삼가 전별하며 홍 찰방의 이름은 경정이다. 후일 한림이 되었다 [봉별홍찰방숙부임성환 명경정후위한림]

가을이라 중양절에 서로 이별하니 / 구추상별재중양
취한 채 국화잎 따서 술잔에 띄우노라 / 취철황화범옥상
공구가 낮은 지위라 말하지 말라 / 막도공구거하위
승전과 위리도 본래 나쁠 게 없다오 / 승전위리본무상

북청 판관으로 부임하는 한 파총을 보내며 한 파총의 이름은 응남이다. 이때 파총이 되어 갔기 때문에 신영이란 구절을 썼다 [송한파총부임북청판관 명응남시이파총출거고유신영지구]

절월로 분곤의 일 맡았으니 / 절월의분곤
거연히 동부를 차고 나가도다 / 거연출패동
서신 보내야 할 곳은 변방 멀리이고 / 음서사새원
이별을 말하는 곳은 도성의 동쪽일세 / 론별옥경동
막부에는 군자가 이어지고 / 막부군자락
신영에는 호추가 비었어라 / 신영호추공
풍진이 한해에 자욱하리니 / 풍진암한해
서둘러 전세를 반전시켜야 하리 / 조전막완공

추운 아침[한조]

장작 등걸 다 타고 재만 남으니 / 골돌소연헐
아침 내내 누워 일어나지 않노라 / 숭조구미흥
밝은 창은 아침 햇살을 머금고 / 창명함동욱
환한 처마는 고드름이 비쳐 든다 / 첨형영수빙
눈보라는 차가운 가지에서 울고 / 설뢰명한초
서리 맞은 새는 늦게 둥지에서 나오네 / 상금출만증
책상 앞에서 작은 붓을 호호 불건만 / 상두가소필
맑은 흥취를 글로 표현하기 어려워라 / 청취사난등

남을 대신하여 강 원수에게 보내다 원수의 이름은 홍립이다 [대인송강원사 원사명홍립]

도성 문에서 퇴곡을 마치니 / 도문추곡파
길보가 큰 병력으로 출정하도다 / 길보계원융
옥검에 천산의 달빛 비치고 / 옥검천산월
금과에 한해의 바람 불리라 / 금과한해풍
구름 같은 주둔군에 천 마을이 숙연하고 / 운둔천정숙
번개 같은 공격에 한 방면이 텅 비겠지 / 전격일우공
남궁의 화상(화상)으로 하여금 / 막사남궁화
이십팔 공신만 남기게 하지 마시라 / 유류입팔공

저물녘에[모의]

산이 높으니 차가운 해가 잠기고 / 산고한일몰
전원이 황폐해 새들이 마구 깃든다 / 원망란서금
두건을 젖혀 쓰고 솔숲 길을 걷고 / 안책림송경
옷깃을 헤친 채 대숲 가에 서노라 / 피금의죽림
봉우리 엿보는 건 초승달의 뜻이요 / 규잠신월의
골짜기에 깃드는 건 저녁 구름 마음 / 서학모운심
이러한 즈음에 한가로운 생각이 많아 / 차제다한사
시 읊조리기를 절로 금치 못하노라 / 청음자불금

외로운 밤[독야]

추운 밤중에 잠들지 못하여 / 한소고불매
베개 만지다 거문고 타노라 / 무침잉무금
고요한 일천 마을은 캄캄하고 / 적적천촌흑
쓸쓸한 일만 골짜기는 침침하다 / 요요만학침
별이 비쳐 오니 봉호가 열리는 듯 / 성림봉호동
구름이 머무니 옥계가 깊어라 / 운숙옥계심
처마 모퉁이에서 금계가 우니 / 첨각금계규
시름으로 흰 머리털만 늘어난다 / 청수빈상침

과천의 신원에 묵으며[숙과천신원]

어둑한 빛이 응달진 골짜기에 생기고 / 명색생음곡
차가운 연기는 늙은 나무에 엉겼어라 / 한연고수응
시냇물은 들 객점에서 나뉘고 / 계류분야점
객로는 산등성이를 휘감누나 / 객로요산릉
달은 떴는데 새벽길 나그네 시끄럽고 / 월출신정료
하늘이 밝아서야 게으른 길손 일어난다 / 천명권객흥
하인이 말에 오르라 재촉하니 / 복부최상마
읊은 시 쓰기 어려워라 / 음구사난등

서울로부터 집에 돌아와 안양천 가에서 즉흥으로 읊다 2수 [자경환가안양천상즉음 이수]

아스라이 먼 서울 길에 / 초체옥경로
낡은 갖옷에 얼어붙은 말채찍 / 폐구명동편
긴 다리는 평평한 들판 저편 / 장교평야외
짧은 비석은 석양 가에 있어라 / 단갈석양변
지친 하인은 길을 가기 힘들고 / 권복행난진
여윈 말은 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 리참보불전
나의 집이 점차 가까움을 아노니 / 오려지점근
어린아이가 동쪽 길에서 기다리네 / 치자후동천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니 / 위경부상재
점점 맑은 세상에 들어오는 듯해라 / 전전입청구
굽은 물가에는 오리들이 놀라고 / 곡저경부압
평평한 숲에서 자고새를 보노라 / 평림간자고
산과 들은 앞에서 끊어졌다 이어지고 / 산원전단속
시내와 골짜기를 꾸불꾸불 건넌다 / 계곡도기구
집에 돌아와 느끼는 많은 흥취를 / 다소환가흥
모두 몇 구절 시에다 싣노라 / 도장수구수

호남의 여관에서 밤에 읊다[호남여관야음]

세찬 바람이 낡은 집을 뒤흔드니 / 도풍파고옥
외로운 베개 냉기를 견디기 어렵네 / 고침랭난감
부서진 벽에는 주린 쥐가 찍찍 울고 / 훼벽명기서
빈 처마 아래엔 늙은 말 여물 씹는 소리 / 허첨흘로참
나그네 시름은 바닷물처럼 깊고 / 기수심해수
이별 그리움은 강물에 막혔어라 / 리사격강담
나그네 길이 아득히 멀기만 하니 / 객로천천원
고향집 서신을 가는 곳마다 외노라 / 향서저처암

폐현을 지나며[과폐현]

산 아래 옛 고을을 지나니 / 의산경고현
누각은 그저 빈 터만 남았구나 / 루각단유기
현송 소리 울리던 날은 언제던고 / 현송지하일
부들 채찍 걸어둔 건 얼마였던가 / 포편부기시
찬 연기에 석탑이 잠겨 있고 / 연한침석탑
조각구름에 이끼 낀 비석 누웠다 / 운단와태비
많고 많은 흥망성쇠의 역사가 / 다소존망사
부질없이 과객의 슬픔만 보탠다 / 도첨과객비

산촌의 저물녘 눈[산촌모설]

북풍은 초가지붕을 뒤집고 / 북풍권부옥
흰 눈은 황혼녘까지 내린다 / 백설도황혼
산객은 솥에 찻물을 끓이고 / 산객연다정
행인은 석문을 두드리누나 / 행인구석문
솔숲에는 흰 학이 서 있고 / 송림정소학
바위굴엔 검은 원숭이 숨었다 / 암두복현원
몇 집 따뜻한 온돌방에서 / 기처연상난
거문고 뜯으며 술을 마시는고 / 고금대록준

고묘[고묘]

적막한 산에 큰 무덤 하나 / 공산일대묘
상국의 무덤이 전해 오누나 / 상국장류전
석수는 천년이 지나 늙었고 / 석수천년로
이끼 낀 비석은 백세를 넘겼지 / 태비백세전
슬픈 바람은 풀숲에 불어오고 / 비풍황초리
잦아드는 눈발은 석양에 내린다 / 잔설석양변
향화는 어느 때에나 올꼬 / 향화하시도
와서 절하는 후손 아무도 없어라 / 무인배조선

고사리를 뜯어 현의 수령에게 보내다 수령은 과천 원님인 이분으로 연원부원군 광정의 아들이고 문과에 급제하여 군수에 이르렀다 [채미송현재 현재과천졸리분연원부원군광정지자문과관지군수]

인풍이 불어 북산 고사리가 싹텄기에 / 인풍취줄북산미
아침 내내 캐서 광주리에 가득하여라 / 채채숭조만거비
생각건대 영헌에 봄잠이 혼곤하겠기에 / 상득령헌춘수족
보드라운 새순 맛보시라 싸서 보내오 / 과봉분여완방비

송도에서 전회 척시에게 남겨두어 주다[송도유증전회척시]

일찍이 술자리에서 친근히 얘기했건만 / 증향준전설근친
십년 동안 풍진 속에 만나지 못하였어라 / 십년안면조풍진
어이 알았으랴 고도(고도)에서 서로 만난 곳 / 나지고국상봉처
유시 동쪽에서 묻혀 살고 있는 줄을 / 류시동두작은륜

가을날 비가 내려 고양의 신원에서 발이 묶여[추일조우고양신원]

서울 길은 아스라이 먼데 / 초체신경로
빗속에 발이 묶인 사람이여 / 기창체우인
등잔불 앞에서 누구와 친한고 / 등전수여반
외로운 검과 스스로 친할 뿐 / 고검자상친

봄밤에 달빛이 환하기에 벗을 찾아갔다가 문 앞까지 가서 보지 못하고 돌아오다[춘야승월방우도문부견원]

숲을 지나 골짜기 건너 고산을 찾으니 / 천림월학방고산
밤 깊어 대숲 속 사립문이 이미 닫혔어라 / 영죽시문야이관
깊이 잠든 주인 불러도 깨지 않아 / 침수주인호불각
나귀 돌려서 달빛 속에 돌아오노라 / 건려선책월중환

경신년(1620) 겨울에 관서로 가는 길에 송도를 지나며 2수 [경신동왕관서과송도 이수]

한수에서 용이 일어나던 날 / 한수룡흥일
신왕이 대전에서 내려왔지 / 신왕하전초
백성들은 옛 터전에 살고 있건만 / 은민류구댁
고려 사직은 폐허가 되었어라 / 진사단유허
왕업이 있던 황량한 성은 저물고 / 패업황성만
당시 벼슬아치들은 들판에 묻혔네 / 의관야초여
존망의 역사란 으레 이와 같나니 / 존망류약차
깊이 탄식하며 홀로 서성이노라 / 침탄독주저

서쪽으로 가서 옛 도성에 들어서니 / 서행입고국
흥망의 사적을 누구에게 물을거나 / 흥폐문인수
곡령에 왕의 기운이 그치자 / 곡령휴왕기
용만에서 의로운 군사 돌렸지 / 룡만반의사
높은 대에는 우거진 풀이 덮였고 / 고대황초편
사직단 터는 무너진 담장만 남았네 / 잔사패원유
해 저무는 청산에 홀로 섰노라니 / 독립청산모
차가운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온다 / 한풍자북취

총수산 옥류천에 남겨 제하다 총수산 허리에 흐르는 샘물이 바위 구멍으로 들어가 숨어 아래로 맑게 흐르다가 바위 아래 구멍으로 도로 나온다. 중국 사신 주지번이 이곳에 왔다가 매우 좋아하여 옥류천이란 이름을 붙였다 [유제총수산옥류천 총수산요유류천입암공은하령령환출암하두화사주지번유상심애명지야]

산 이름은 총수요 관서로 가는 길 / 산명총수로관서
다소의 행인들이 모두 이곳을 구경한다 / 다소행인차진관
맑은 경치가 시끄러운 거마를 싫어해 / 청경각혐차마란
짐짓 바위 가지고 흐르는 샘을 가렸네 / 고장암석엄명단

황주성을 지나며[과황주성]

험준한 요새에 큰 성이 버티고 변방 지키니 / 웅번과험공방우
흰 성가퀴가 우뚝하여 햇살에 빛나누나 / 분첩쟁영요일구
어이하면 목숨 바칠 미더운 신하 얻어 / 안득신신지사수
변방에 길이 근심이 없게 할 수 있을꼬 / 능령옥새영무우

대동강을 지나며[과대동강]

기성에 왕의 기운 그친 지 몇 해던고 / 기성왕기기년휴
한 줄기 맑은 강물만 만고에 흐르누나 / 일대청강만고류
낡은 갖옷 입고 필마 탄 천리 밖 나그네 / 필마폐구천리객
조각배 타고 홀로 건너매 시름이 이누나 / 편주고도기한수

연광정에 올라[등련광정]

천년이라 옛 성가퀴가 강 가에 섰는데 / 천년고첩의강미
위에는 높은 정자 백 척이나 아스라해라 / 상유고정백척위
햇살이 맑은 물결 비추매 물빛이 비단 같으니 / 일조징파광사련
그 누군들 사공의 시를 생각하지 않으리오 / 하인불억사공시

부벽루에 올라[등부벽루]

물결에 단청 비친 누각이 바위에 섰으니 / 비각류단기석두
안개 낀 물에 푸른 빛 모래톱이 비치었어라 / 연파부벽영중주
기둥 사이 홀로 서 있으니 바람이 시원해 / 영간독립풍소상
이 몸이 백옥루에 올라온 게 아닌가 하노라 / 의시신등백옥루

기린굴을 구경하며[관기린굴]

소문을 들은 지 오래요 보지는 못했는데 / 귀이증문구미적
내가 오늘에야 비로소 여기에 올라왔도다 / 아생금일시래척
그 옛날의 사적은 물을 길 없고 / 당년사적문무종
천년의 기이한 장관이라 한 자 굴만 남았다 / 천재竒관굴일척

기자묘를 배알하고[알기자묘]

구주의 아름다운 은택 동방에 있으니 / 구주옥택재동번
아름답고 순박한 풍속이 길이 변치 않누나 / 미속순풍영불훤
백마 타고 주나라로 갔던 일 지금 적막한데 / 백마조주금적막
천추에 무덤만 황량한 기슭에 남았구나 / 천추마염독황원

기자묘를 배알하고[알기자묘]

삼왕이 덕도 같고 공적도 같으니 / 삼왕동덕우동공
천고에 동토의 백성 큰 교화를 입었다 / 천고동민목화홍
앉아 계신 사당이 지금도 나란히 있으니 / 옥좌여금련보탑
먼 길손이 몸을 굽혀 공경히 예를 갖춘다 / 구루원객례처공

문무정을 구경하고 문무정은 평양성 안에 있다 [관문무정 재평양성중]

우물 이름 문무는 무슨 뜻에서 왔는고 / 정명문무종하의
그 옛날에는 틀림없이 좌우로 뚫렸겠지 / 인득당년좌우천
사람 없어 먹지 않아 속절없이 메워졌으니 / 인망불식공전새
아홉 길로 깊으나 샘물은 보이지 않아라 / 구인수심미견천

청천강을 건너며 안주성 서쪽에 있다 [도청천강 재안주성서]

도도한 장강이 북쪽에서 흘러오는데 / 곤곤장강자북류
천 길의 굳건한 성이 물결 가에 섰도다 / 금성천인립파두
이에 알겠노라 변방에 이 요새 만들어 / 종지옥새개천참
우리나라가 적을 이길 수 있게 했음을 / 능사방가제승우

백상루에 올라[등백상루]

성 한 쪽에 단청한 누각이 물을 굽어보나니 / 부수단루성일우
날 듯한 지붕 높이 솟아 구름 속에 들어간다 / 비훙상출입운구
누차 전란을 겪어도 늘 그 모습 변치 않으니 / 수경병선장의구
신명이 길이 지킨다는 걸 비로소 알겠구나 / 시식신명백대부

극락사를 유람하며 극락사는 정주에 있다 [유극악사 재정주]

세모에 머나먼 관하 밖에서 / 세모관하외
쓸쓸한 절을 한가히 유람한다 / 오유소사간
창은 하늘의 은하수와 통하고 / 창통은하활
문은 눈 덮인 산을 마주하네 / 문대설산한
보계에는 운하가 고요하고 / 보계운하정
인천에는 색상이 한가해라 / 인천색상한
속진의 마음이 이로부터 끊어지니 / 진심종차단
젊은 얼굴을 넉넉히 보전하겠구나 / 영득보소안

보산 현사루에 올라 가산 석포에 있다 [등보산현사루 재가산석포]

만리 타향 나그네 마음 괴로워 / 만리객심고
이른 아침 강 가 누각에 오르노라 / 신등강상루
외로운 노을은 하늘 저편에 떨어지고 / 고하천제락
한 조각 안개는 들판 중에 떠 있구나 / 척무야중부
고국에는 차가운 나무 우거지고 / 고국미한수
타향에는 작은 배가 매어 있어라 / 타향계소주
해가 지나도록 돌아가지 못하니 / 경년귀미득
동쪽으로 흐르는 물을 부러워할 뿐 / 도선수동류

정원성에서 사마 탁이민에게 주다 빙군이 정주 목사로 있을 때 얼자 광계가 관기 애금을 가까이하여 딸 옥생을 낳았다. 탁이민이 바로 옥생의 남편이다 [정원성중증탁사마이민 빙군위정주목사시얼자광계행관기애금생녀옥생이민즉기부]

칠년 만에 다시 만난 곳 / 칠재중봉처
관하에 한 해가 저무는 때 / 관하세모시
그리워한 세월 그 얼마였던고 / 상사증기일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시를 짓노라 / 괄목경제시
의기는 생사를 같이하고 / 의기동사생
우정은 고락을 함께한다 / 교정공험이
만남과 이별은 정해진 것이니 / 합리응유수
이별 앞에 너무 슬퍼하지 말자 / 림별막상비

여회 정주 여관에서 짓다 [여회 정주여관작]

옥새엔 두꺼운 얼음 덮였고 / 옥새층빙적
관하에는 도로가 험난하여라 / 관하도로난
고향집 서신을 어디서 얻을꼬 / 향서하처득
나그네 눈물은 마른 적 없어라 / 객루미증건
낡은 갖옷에 몸은 병이 들었고 / 구폐지성질
얇은 홑이불은 추위 막지 못한다 / 금단불장한
한밤중 차가운 달빛만 밝으니 / 중소상월백
멀리서 옛 송단을 생각하노라 / 요억구송단

여관에서 밤에 읊다 정주 여관에서 짓다 [여관야음 정주여관작]

방문을 열고 뜰에 나가서 / 개호출정우
배회하며 달을 바라보노라 / 배회첨계궁
먼 변방은 삼천리 끝이요 / 절새삼천리
긴 하늘은 구만리 허공일세 / 장소구만공
때를 근심하여 북극을 바라보고 / 수시간북극
돌아가고플 땐 남풍을 향하노라 / 욕반향남풍
잠 못 이룬 채 하늘이 밝아오니 / 불매천장효
추운 날 닭이 지붕 동쪽에서 운다 / 한계규옥동

정주에 묵으며 느낌이 있어[숙정주유감]

북쪽 오랑캐가 날뛰는 날 / 북로빙릉일
서쪽 관새가 소란스러웠지 / 서관조차홍
충원이라 일만 군사가 불쌍하고 / 충원애만졸
이적 땅에서 대군이 애통하구나 / 이적통원융
찬비는 허공에 가득 자욱하고 / 한우련공암
봉화는 새벽까지 붉게 타오른다 / 변봉달서홍
이 서생은 비록 강개하지만 / 서생수강개
뛰어난 전공 세울 길이 없구나 / 무로수기공

정주성에 올라[등정주성]

아득한 물가에 봄이 일찍 오니 / 극포삼춘조
성에 올라도 마냥 시름겹지는 않네 / 등성불진수
바람은 높아 들판 객점을 흔들고 / 풍고흔야점
얼음은 꽁꽁 얼어 강물을 끊었어라 / 빙새단강류
가는 말은 차가운 해를 보며 울고 / 정마시한일
사람은 가을에 수자리 서러 가누나 / 행인수새추
변방을 평안케 할 장한 책략은 없고 / 안변무장략
청영 생각만 속절없이 간절하여라 / 공절청영모

정원성에서 여수재에게 증별하다[정원성중증별여수재]

필마를 타고 관하에 가다 친구를 만나 / 필마관하봉고인
외로운 여관 등잔 아래서 정담을 나눴네 / 한등고관전상친
내일 아침 헤어지며 말을 모는 곳에서 / 명조기로휘편처
동쪽 성으로 고개 돌리면 새삼 서글퍼지리 / 회수동성암한신

고향으로 돌아가고파 정주 객관에서 [사귀 정주관]

여관에 따스한 봄 일찍 오니 / 려관양춘조
찬 물은 동쪽으로 서글피 흐른다 / 동류측측한
고향이 만 리에 떨어졌으니 / 향원격만리
돌아가고픈 마음 무단히 일어나누나 / 귀사기무단
한 척 잉어는 바다 속에 다했고 / 척리해중진
외로운 학은 구름 저편에 보노라 / 고학운외간
앞으로 갈 길을 헤아려 보니 / 전□굴지계
시내와 길 아득히 멀기만 해라 / 천로호만만

선천에 묵으며 좌영장으로서 오랑캐 땅에 들어가 힘써 싸우다 죽은 군수 김공 응하를 생각하며[숙선천억군수금공응하이좌영장입호력전사]

슬픔에 잠겨 옛 객관에 앉아 / 비량좌고관
좌장군의 일을 추억하노라 / 추억좌장군
힘은 다하고 하늘은 돕지 않았지만 / 력진천무조
몸이 죽어서 나라가 보존되었네 / 신망국이존
음산한 바람에 꿋꿋한 혼을 시름하고 / 음풍수의백
기우는 햇살에 충성스런 넋을 곡한다 / 사일곡충혼
누군들 임금의 은덕 입지 않았으랴만 / 숙불군의식
오직 공의 충의만이 홀로 드러났어라 / 유공의독문

정주 기생 향난에게 주는 한편 장난 삼아 정 종사에게 보여주다 정 종사는 바로 지금의 정 감사 두원이다 [증정주기향란잉희시정종사 종사내정감사두원]

아득한 이별에 만날 길 없으니 / 활별음용조
머나먼 한진에 청운이 막혔어라 / 청운격한진
그리움 품은 채 그리워만 할 뿐 / 상사증맥맥
소식을 듣는 건 진진을 통해서지 / 문문뢰진진
모획은 금하에서 씩씩하고 / 모화금하장
풍류는 옥새의 봄이어라 / 풍류옥새춘
난초 향기가 그대 오랜 짝이니 / 란향오구반
정겨운 마음이 더욱 더 친하여라 / 정의전친친

정주 목백이 뱃놀이를 하며 지은 시에 차운하다 정주 목백은 바로 허정식이다 [차정주목백유강운 목백내허정식]

바람 뚫고 대선(대선)이 큰 물결 누르는데 / 충풍대박압홍파
풍악소리 시끄럽게 연주하며 즐거이 논다 / 가관조굉□악사
사또가 경치 유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 불시사군탐승상
바다를 건너 나라 안정시키려 생각하는 게지 / 상사과해정방가

가을밤에 정영숙과 등잔 앞에서 호운하여 읊다 2수 ○정영숙은 바로 진사 정진영이다 [추야여정영숙등전호운 이수 내정진사진영]

밤 깊어 등잔 불빛 한쪽 벽에 차가운데 / 야구청등반벽한
술잔 들고 우정 나누매 정이 하염없어라 / 론교파주의만만
훗날에 혹여 금난에 함께 숙직하거든 / 타년당공금란직
달 밝고 동풍 불 제 옥난간에 기대리라 / 명월동풍의옥란

낙엽 진 외로운 마을에 찬 서리 내리는데 / 엽진고촌상락한
앉았노라니 맑은 밤은 참으로 길기도 해라 / 좌래청야정만만
처마 끝에 달빛은 마치 물빛처럼 시린데 / 첨단월색량여수
한 줄기 산바람이 돌난간에 불어오누나 / 일진산풍파석란

다시 앞의 시에 보운하여 영숙에게 주다 2수 [경보전운잉증영숙 이수]

삼척 가을 연꽃이 칼집 속에서 싸늘한데 / 삼척추련갑리한
시야에 뵈는 산길은 참으로 길고 길구나 / 망중산로정만만
어느 누가 황류주에 반쯤 취하였는고 / 하인반취황류주
하늘 가 열두 난간에 비스듬히 기댔어라 / 사의천변십이란

포의로 십년 동안 빈한하게 살았으니 / 포의십재임산한
소잔등에서 부르는 노래 괴롭고 길었어라 / 우배장가고차만
어느 날에야 푸른 하늘에 높이 날아서 / 하일청명진우익
의젓한 관복 입고 임금을 곁에서 모실꼬 / 하거옥패시주란

눈 내리는 밤에 이필선의 시에 차운하다 4수 [설야차리필선운 사수]

눈 속에 달빛 빛나고 은하수 밝은데 / 설월양휘하한명
그득한 잔으로 사생의 정을 모두 기울인다 / 심배경진사생정
그대는 음악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오 / 빙군막한무사죽
이 밤 음악 없음이 음악 있음보다 낫다오 / 차일무성승유성

앉았노라니 뜰의 나무에 눈꽃이 환하매 / 좌래정수설화명
이 밤에 조물주가 정이 있는 듯하여라 / 차야천공사유정
막걸리에 크게 취하고 크게 웃노라니 / 대취방료잉대소
처마의 닭이 문득 오경의 울음 우누나 / 첨계홀작오경성

초당에서 동틀 때까지 시 읊고 술 마셔 / 초당상영도천명
평생의 우정이라 잔 가득 술을 마시노라 / 강파심배백년정
봄이 오매 저물녘 강성에 꽃이 피었으니 / 춘래화발강성모
솔숲 사이로 갈도 소리를 듣고 싶구나 / 요청송간갈도성

-1수 빠짐-

겨울에 이필선이 방문해 준 데 감사하다[동일사리필선래방]

저물녘 황량한 마을에 눈 쌓였는데 / 적설황촌모
삭거하는 내 집에 사립이 닫혔어라 / 시문엄색거
청궁에서 강독하던 것 쉬고 / 청궁휴강대
백옥에 와서 금서를 묻는구나 / 백옥문금서
천천히 술 마시며 회포 나누는 밤 / 세작론금야
크게 노래하며 이별을 한탄하누나 / 고가한별여
바람 맞으며 늙은 잣나무 기대노니 / 림풍의고백
처음 먹은 심사 변치 말기를 / 심사물투초

향로계에 참여하기를 바라며 유종숙의 시에 차운하다 3수 [원참향로계차류종숙운 삼수]

예로부터 사람은 백발 노인 드무나니 / 고래인선백두인
게다가 전란통에도 살아남은 사람에랴 / 황부간과미사인
노년 즐기려 좋은 모임 꾀하고자 한다면 / 약욕향년모승회
일 주관하는 이는 응당 젊은이라야 하리 / 주장응시소년인

듣건대 제공들 예닐곱 사람이 / 문도제공륙칠인
노년에 술 마시며 즐기려 한다지 / 향년모작취향인
미천한 이 몸도 참여하고 싶으이 / 미생역욕래참의
훗날에는 나도 백발의 몸 될 테니 / 타일당위백수인

백발 사람은 황발 사람을 탄식하고 / 백발인차황발인
검은 머리는 흰 머리를 탄식하누나 / 흑두인차백두인
그 중에 세월이 베틀 북처럼 빠르니 / 개중세월비사급
행락은 모쪼록 노소를 따지지 말아야지 / 행악수문로소인

한 제천과 거문고를 가지고 기생을 데리고 수리사를 유람하며 한 제천은 이름이 덕급이다 [여한제천휴금기유수리사 명덕급]

소매 가득한 홍진을 떨치고 틈을 내어 / 만수홍진불자황
벗과 함께 술 가지고 산방에 들어왔어라 / 휴붕설주입산방
하늘 찌르는 봉우리들은 금빛 병풍 둘러친 듯 / 간천렬수위금장
땅에 널린 바위들은 옥빛 집을 빚어내는 듯 / 박지군암환옥당
밤이 추우니 거문고 줄이 끊어지려 하고 / 요슬야한현욕절
바람 고요하니 가는 노래 곡조가 막 일어난다 / 섬가풍정곡초양
인간 세상에 좋은 모임이 얼마나 되는가 / 인간승회지다소
함께 즐기는 이 자리의 흥이 가장 좋아라 / 차일동환흥최장

최고운의 〈들불을 보며〉에 차운하다 최고운은 이름이 치원이고, 신라 사람이다 [차최고운관야소운 명치원신라인]

들판에 타는 불이 한창 분분하니 / 원중렬화정분분
기세야말로 초한의 군대가 치달리는 듯 / 성세여치초한군
교외에 처음엔 붉은 비단 뒤집히더니 / 교외초간번자금
시냇가에 홀연 붉은 구름이 일어난다 / 계두홀견기홍운
논밭의 새는 두려워 허둥지둥 날아가고 / 전금진포비상급
들판의 짐승은 놀라 죄다 떼지어 달아나네 / 야수경황주진군
산중에까지 불길이 번져 숲이 다 타니 / 연설산중림망소
난초와 가시나무가 함께 다 타겠구나 / 유란형극즉구분

안십구 수재의 시에 차운하다 이름은 처행이다 [차안십구수재운 명䖏행]

청정하여 속진의 생각 여읜 곳 / 소쇄리진상
암혈에서 구름 속 누운 지 오래 / 암간구와운
근원을 만나매 홀로 즐거울 테고 / 봉원응독악
뜻대로 사니 혼자 기뻐하겠지 / 득의인사흔
안석은 당시에 좀처럼 안 나왔고 / 안석시난출
상여는 부질없는 글만 짓누나 / 상여만속문
춘풍에 비단 같은 시구 보내오니 / 춘풍전금구
아름다운 기운이 가득 넘치도다 / 가기일분온

안수재의 〈상중이라 향로계 잔치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는데 억지로 초청하기에 와서 참여했다〉라는 시에 차운하다[차안수재조복불욕수참향로연강요래여]

내일 아침에 춘가가 출발하니 / 명조춘가발
그 행차를 수행하고자 하네 / 관개원수행
상중에 친구 계회에 참여하니 / 재복동장참
술자리는 부형과 관계되도다 / 연계부형□
종문은 그림 그린 일 남겼고 / 종문류회사
순자는 명성이 있었어라 / 순자유명성
늙은이 말이라 말하지 말라 / 막위사언모
모시는 예가 가볍지 않다오 / 도배례불경

눈 내리는 밤에 정영숙과 등잔 앞에서 연구로 고시를 차운하다 정영숙은 이름이 진영이다 [설야여정영숙등전䏈차고시운 명진영]

날 저물녘 군의 처소 찾아가니 / 일모심군주
산은 비었고 눈은 뜰에 가득해라 정진영 / 산공설만정
거리는 깊은데 인적이 고요하고 정진영 / 항심인적적
숲은 깊은데 새는 어둑하구나 이응희 / 림수조명명
학은 문전에 손님 왔다 알리고 정진영 / 학보문전객
사람은 영하의 별을 부른다 이응희 / 인호령하성
등잔불 돋우고 풍모를 마주하고 이응희 / 도등대미우
붓을 잡고 보고 들은 바를 쓴다 정진영 / 제필사첨령
밝은 거울처럼 정신 서로 통하니 이응희 / 옥경신상조
소단에서 그대만 홀로 깨었어라 정진영 / 소단이독성
뛰어난 재주는 나라의 주춧돌이요 / 竒재가주석
아름다운 시상은 시 적은 병풍에 들었다 이응희 / 조사입시병
만년에는 마음 멀어짐이 안타깝고 이응희 / 말로련심원
덧없는 인생에 술잔 멈출까 걱정일세 정진영 / 부생환주정
기약도 하지 않고 오늘밤 만나서 정진영 / 불기금석회
서로 십년의 정을 얘기하도다 이응희 / 상도십년정
세모에 씩씩한 검을 보고 이응희 / 세모간웅검
하늘은 긴데 큰 날개 없구나 정진영 / 천장핍신령
예전에 가졌던 제주의 뜻이 정진영 / 향래제주지
지금은 술병을 보기에 부끄럽다 이응희 / 금작치뢰병
우격이 천하에 두루 퍼지니 이응희 / 우격징천하
경파가 바다에 거세게 일어났네 정진영 / 경파노해정
장군은 머리털이 세려 하고 정진영 / 장군두욕백
장사는 검이 도리어 푸르다 / 장사검환청
목을 묶을 계책이 없진 않으나 이응희 / 계경비무책
단심을 기울여도 듣지 않을까 걱정일세 정진영 / 수단공미청
엽영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정진영 / 렵영수감루
내 늙은 모습에 손뼉을 치며 웃노라 이응희 / 저장오로형
잠 못 이루는데 하늘이 밝아오고 이응희 / 불매천장서
시 짓느라 고심해 머리털이 세겠네 정진영 / 심음발욕령
이별 앞에 정을 품고 바라보는데 / 림분간맥맥
흐르는 물만 절로 맑아라 이응희 / 류수자령령

한 제천이 향로연 자리에서 호운하기에 한 제천은 이름이 덕급이다 [한제천향로연석상호운 명덕급]

높은 산빛이 저물녘 자리에 떨어지는데 / 층악산광락모연
앞 다투어 일어나 노래하고 춤 추누나 / 가삼무수기쟁선
인간 세상 좋은 모임이 얼마나 되는가 / 인간승회지다소
뉘라서 지상 선인 우리들만 하리오 / 수등오제지상선

위의 시에 뒤미처 보운하다 5수 [추보상운 오수]

고령의 백발 노인들이 자리에 늘어 앉았구나 / 구령학발렬경연
좋은 모임 늘 있는 게 아니니 오래도록 즐기세 / 승회난상계출선
백세에 술 취하매 참된 흥취가 넉넉하니 / 백세취향진흥족
구태여 호흡하여 신선을 배울 것 있으랴 / 구허하필학신선

화려한 쟁반에 진수성찬 차려진 향로연 잔치 / 기식조반향로연
아름다운 시구를 남보다 잘 지으려 다툰다 / 가편려구투인선
거문고 비파 재촉해 떠들썩하게 연주하니 / 요금옥슬훤상촉
구름 타고 나는 신선 노릇 할 것이 없어라 / 우개운병파중선

저물녘에 생가 소리 술자리에 울리는데 / 박모생가인금연
지금까지 그 누가 가장 많이 마셨나 / 향래상전숙신선
옥산이 스스로 넘어져 사람들이 웃으니 / 옥산자도인사소
흡사 요지의 늙은 신선이 취한 것 같아라 / 흡사요지취로선

훌륭한 손님들 정연히 자리에 앉았나니 / 가빈질질재초연
꼽아 보매 연령이 모두 나보다 더 많아라 / 굴지년령진아선
종일 고래처럼 술 마셔도 취하지 않으니 / 종일경탄능불취
좌중의 사람들은 모두 취중의 신선이로세 / 좌간개시취중선

소생이 외람되이 이 술자리에 앉았는데 / 추생첨좌기라연
앵무가 서로 날아 감히 앞서지 못하도다 / 앵무교비불감선
양주로 춤을 추고 백설을 노래하니 / 위무량주가백설
술 취하매 광흥이 일어 신선이 움직이는 듯 / 취래광흥동군선

안십구 수재가 나의 연못 속에 세워놓은 바위를 조롱한 데 답하다 안십구 수재의 이름은 처행이다 [답안십구수재조여지중립석 명처행]

태액에 신선 산이 물속에 만들어졌으니 / 태액선산가수중
건원 연간의 허무한 일 일찍이 비웃었노라 / 허무증소건원중
연못에 바위 세운 나의 뜻을 아는가 / 농지립석군지부
바다 속에 우뚝 선 지주와 같다네 / 지주여간재해중

송십사장의 연당 가에서 열린 향로연에서 송십사장의 이름은 규(규)이다 [송십사장련당향로연석상 명규]

천 송이 연꽃이 흰색 붉은색 섞였는데 / 천타부용간백홍
높은 누대 한가한 곳에 신선들이 앉았어라 / 고대한처렬선옹
만약 태을진인의 모임이 아니라면 / 약비태을진인회
아마도 옥정궁에서 서로 만난 것이리라 / 의시상봉옥정궁

관서로 부임하는 안 점마를 보내며 안 점마의 이름은 홍중이다 [송안점마부관서 명홍중]

그대 공무를 기회로 관서 명승을 유람하니 / 관서승람자인공
말을 점고하러 가는 이 길 공허하지 않아라 / 열마금행차불공
총수산 앞에서 가던 길 멈추고 쉬리니 / 총수산전응주헐
새로 새긴 나의 시를 벼랑에서 찾아보구려 / 농시수멱신애중
경신년(1620) 겨울, 관서로 갈 때 총수산에 시를 적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여름날 누워서 즉흥으로 읊다[하일언와즉사]

처마 밑에는 제비 새끼 너댓 마리요 / 당상연추사오개
뜰 앞에는 병아리가 두세 무리로구나 / 정전계자량삼군
초가집에 누웠노라니 몹시도 무더워 / 모옥언와고염열
마을 저편 서산에 지는 석양이 반가워라 / 희견촌변산일훈

임술년(1622) 7월 기망에 벗들과 달을 구경하며[임수칠월기망여제우완월]

적벽의 맑은 놀이 벌인 임술년 가을 / 적벽청유임수추
그 풍류 천추에 계승하는 이 없었어라 / 풍류무계기천추
오늘밤 축을 두드리며 산간에서 취하니 / 금소격축산간취
맑은 강에서 뱃전 두드리던 가을에 비해 어떠한고 / 하사청강구설추

이 사평의 화답 이 사평은 바로 상국 이원익의 사촌으로 이름은 원득이다 [리사평화 사평내상국원익사촌야명원득]

소선의 놀이는 이미 천추의 옛일인데 / 소선구사이천추
임술년 칠월 가을을 오늘 또 만났어라 / 임수금봉칠월추
호일한 흥취야 시대가 간들 못할 리 있으랴 / 일흥기증수세하
향락을 즐기며 이 가을을 다 보내고저 / 욕장행악경삼추
신추에 서울로 들어가는 한 제천을 취하여 전별하며, 천렵하기로 약속하여 어서 돌아오길 재촉하는 뜻을 부채에 적어서 주다 한 제천의 이름은 덕급이다 [신추취별한제천입락약이천렵촉환즉제증선면 덕급야]

준마를 타고서 장차 도성으로 가니 / 화류장작봉성행
한 곡조 이별의 노래는 가고 머무는 정 / 일곡리가거주정
국화가 피기 전에 어서 돌아오시길 / 막대황화회준패
앞 시내에 은빛 붕어 가을에 살찌니 / 전계은즉로추청

정영숙의 시에 차운하고 한편으로 방문해 준 데 사례하다[차정영숙운잉사래방]

말 죽이고 수레 부수고 깊은 산골에 숨어 / 살마훼차심곡리
나물국 거친 밥 배불리 먹으며 늘 편안해라 / 려갱려식포상휴
푸른 산 지붕 위로 두견새 우는 달밤 / 청산옥상두견월
흰 물 흐르는 문 앞에 백로 노니는 가을 / 백수문전구로추
관단 타고 친구가 적막한 이 곳 찾아주니 / 관단고인심적막
궤안에 기댄 채 오늘 밤 시름을 풀도다 / 고오금석파청수
봄이 오자 약 팔러 저잣거리로 돌아가니 / 춘래매약귀성시
만날 기약은 도리어 번화한 거리에 두누나 / 환지가기자맥두

중추절 달 밝은 밤에 정영숙과 대작하며 집구하다 [중추월석여정영숙 대작집구]

반쯤 둥근 달이 구름 속에서 나오니 이응희 / 반륜명월출운갱
빈 헌함 성근 발에 한기가 드려 하네 정진영 / 허함렴소욕투한
맑은 이슬 떨어지고 벌레는 풀숲에 있는데 이응희 / 청로이령충재초
서늘한 바람 막 일고 잎은 산에서 우누나 정진영 / 량풍초기엽명산
술 한 동이 다 비우니 마음이 서로 통하고 이응희 / 일준경진간상조
시 몇 구절 짓고 나니 뜻이 더욱 한가해라 정진영 / 수구성래의경한
높은 벼슬 따위는 헌 신짝과 같으니 이응희 / 타자우청여폐사
이 그윽한 일을 세인들이 보지 못하게 하자 정진영 / 막교유사세인간

가을비[추우]

가을비가 하루 종일 내리니 / 추우련조모
산의 구름이 걷혔다 덮였다 / 산운개부혼
오동나무는 시든 잎이 많아 / 오동다병엽
낙엽이 사립에 수북이 쌓였네 / 령락옹시문

밤송이[률방]

실질이 없이는 명성을 얻기 어렵고 / 무실난능득궐명
속에 있으면 반드시 밖에 드러나는 법 / 유중필시형제외
실한 듯하며 허하고 있는 듯 없으니 / 기실약허유약무
나는 밤송이에 대해 이치를 알기 어렵구나 / 오어률방리난회

가을장마[추림]

가을장마 부옇게 나흘을 이어 내리니 / 추림막막련사일
축축한 습기가 방 안으로 배어드누나 / 호기침음입렴막
하늘 저편 돌아가는 기러기 소리 없고 / 천변귀안기무성
뜰에는 풀벌레 소리도 이미 끊어졌어라 / 정제공음역이절
이러한 때 노부는 문 닫고 시 읊으며 / 차시로부폐호음
말 타고 이웃으로 나갈 마음이 없다 / 안마무심사린출
큰 바람이 또 서북쪽에서 일어나니 / 대풍우종서북기
숲에는 잎 지고 골짜기들은 뒤흔들리네 / 요락천림탕만학
문 앞의 오동잎은 죄다 부서져 떨어지고 / 문전동엽진파쇄
지붕 위 겹이엉은 모두 걷혔구나 / 옥상중모전권탈
일어나 초가 누각에 올라 사방을 보니 / 기등모각빙사목
기상이 예전에 비해 사뭇 달라졌어라 / 기상수이어숙석
산천이 쓸쓸하고 하늘이 높아졌으니 / 산천소조천우교
이제부터 한 기운이 숙살을 행하겠구나 / 종차일기행숙살

머리털은 빠지고 치아는 듬성듬성하면서 미첩은 많이 두고 있다는 뜻으로 장난 삼아 월곡에게 주다 월곡은 한덕급이다 [희증월곡이두동치활다축미첩 월곡한덕급야]

제천 태수가 오래 벼슬이 없더니 / 제천태수구무관
치아 듬성하고 머리털 빠져 볼품 없어라 / 치활두동불족관
남들보다 뛰어난 무슨 풍정이 있길래 / 유심풍정능출중
동방 가는 곳마다 늘 여인과 즐기는가 / 동방수처매성환

어지(어지)를 받아 서울로 돌아가는 홍 한림 경정 숙부님을 전별하며 고모부이다 [봉별홍한림 경정 숙주응지환경 고모부]

성상의 윤음이 구천에서 내려오니 / 래이륜음자구천
은대에 다시 글 맡는 신선이 되셨네 / 은대중작장서선
창생들이 지금 바야흐로 고통 겪으니 / 창생차일방조채
임금 앞에서 거침없는 직언으로 아뢰시길 / 입주군전하패연

월곡의 방에서 학슬침을 보고[월곡방중견학슬침]

기우뚱한 기둥이 칠규의 하늘 지탱하니 / 의주능탱칠규천
위태하기가 강물에 뜬 뱃전을 벤 듯해라 / 위허각사침류현
고운 여인과 동침하는 밤엔 맞지 않고 / 난冝록빈운환야
그저 산창에서 달빛 짝하여 잘 제 제격일세 / 지합산창반월면

중양절 하루 뒤에 향로계를 열고자 하여 이십사장 사평을 초청하다[중양후일일욕행향로계음봉요리십사장사평]

가을의 좋은 날이 지금 또 돌아왔으니 / 구추가절우금회
머리 위에 광음은 이 때에 빨리 흐른다오 / 두상광음차제최
원컨대 중양절이 지나고 하루 뒷날에 / 원여중양후일일
강성에 낙엽이 질 때 함께 술잔 듭시다 / 강성황하공함배

이십사장의 시 〈호계〉에 차운하는 한편 향로계회의 날짜를 물려서 정하다[차리십사장호계운잉퇴정향로계회]

매월 어울려 놀다 날씨가 추워졌으니 / 축월종유한기뢰
중양절이 우리 모이기 그야말로 좋아라 / 중양단합회오조
붉은 잎 떨어지는 언덕 나무 경치도 좋고 / 홍귀안수의청적
노랗게 핀 시냇가 국화는 술에 띄울 만하다 / 황탁계화가백료
다른 분들은 비록 일 없어 모일 수 있다지만 / 제□수운무사고
공은 재계하느라 오지 못하는 걸 어이하리오 / 내공재좌미래오
좋은 만남은 열 번 물려도 약속 어김 아니니 / 가기십퇴비건약
좌중에 어찌 걸출한 분을 빼놓을 수 있으랴 / 석상기하사준모

이 사평 십사장의 시에 차운하다[차리사평십사장운]

낙엽은 지고 기러기 슬피 우니 / 목락애홍원
맑은 서리에 늙은 말은 울부짖는다 / 상청로기시
올해도 벌써 반 너머 지나갔으니 / 금년강반거
어이 술을 가지고 찾아가지 않으랴 / 하불주상휴

가을비 속에 정영숙과 심군진이 찾아왔기에 더불어 연구로 읊다[추우중정영숙침군진래방잉여연구]

그대의 그윽한 처소가 좋아서 / 애자유서정
사립문을 또 한 번 찾아왔다오 정진영 / 형문우일심
시를 품평하며 오늘밤에 술을 사 마신다 심군진 론시금석회고주
-1구 결락-
산에 내리는 비는 돌아가는 수레 만류하고 / 산우류귀철
시내에 부는 바람에 한가한 가슴 시원하구나 이응희 / 계풍상일금
앉아서 보노라니 도리어 부러워라 / 좌간환유선
외로운 새가 깊은 숲에 보금자리 트는 것이 정진영 / 고조택림심

연백으로 부임하는 안수재 십구를 보내는 한편 그가 준 유별시에 차운하다[송안수재십구부연백잉차기류별운]

독서를 마친 두릉의 길손이 / 독파두릉객
장차 호해로 먼 길을 떠나누나 / 장위호해행
가을바람은 나그네의 한이요 / 추풍유자한
지는 해는 그대 보내는 정일세 / 락일송군정
고향에는 종소리 저물녘에 울리고 / 고국소종만
황량한 대에는 들국화 환하여라 / 황대야국명
이제 우리가 이별한 뒤로는 / 자종수분후
누구와 더불어 취하고 깰거나 / 수여취환성

중동에 신자장이 찾아와 얘기하다 신자장의 이름은 정이고 자는 척시이다 [중동신자장래방화 명정자척시]

헤어진 지 삼년에 그대를 만나서 / 우자삼년별
한 이불 덮고 하룻밤 정겨웠지 / 련금일야정
다정하게 많은 얘기 나누노라니 / 은근다소화
산 위의 달빛에 새벽 창이 밝아라 / 산월효창명

안십구 수재의 시에 차운하다 1수 [차안십구수재운 일수]

그대 암랑의 그릇임을 중히 여겨 / 중자암랑기
임금께서 꿈속에도 보고 싶어하셨지 / 군왕몽상로
꽃 핀 마을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 화촌위주반
바람 부는 걸상에서 맞이해 시 읊었네 / 풍탑요시조
절조는 끝내 굽히기가 어려우니 / 절조종난하
세운 깃발이 그야말로 높아라 / 치현정자고
뉘라서 좋은 재주를 가지고 / 수장호신수
도도한 이 세상을 구제할거나 / 류속구도도

영흥정의 집에서 밤에 술을 마시며 호운하여 즉석에서 읊다 내가 영흥정에게 종숙 항렬이 된다 [영흥정가야음호운즉성 여위종숙행]

창안 백발이 등잔불 아래 비치는데 / 창안백발조청등
허물없이 마주하니 야승과 같아라 / 상대망형사야승
원컨대 긴긴 밤 맘껏 통음하고 / 원득장소인통음
내일 아침 헤어져 지팡이 짚고 떠나세 / 명조분산책고등

홍 한림을 대신하여 삼가 신 동지에 대해 만사를 짓다[대홍한림배만신동지]

한 병환 오래 끌다 결국 낫지 않으니 / 일병지리경미전
백계 흉몽을 갑자기 꾸고 말았어라 / 백계흉몽홀거연
높은 품계에 벼슬도 높이 올랐고 / 숭계자급관유달
장수를 바라서 수명도 더욱 길었네 / 종욕년수수경연
당 위의 외로운 난새는 옥거울에 슬프지만 / 당상고란비옥경
집안의 쌍구슬은 청전을 보존하도다 / 가중쌍벽보청전
진일에도 대궐에서 임금이 곡하니 / 불감진일풍신곡
확삭한 그 누가 사방 국경을 안정시킬꼬 / 확삭하인정사변

송오 숙부님의 시 〈술회〉에 삼가 차운하는 한편 이로써 나의 회포를 위로하다 3수 ○송오는 유순인의 호이다 [경차송오숙주술회운잉이위회 삼수 류순인호]

그럭저럭 칼과 책 둘 다 이루지 못해 / 서검유유량불성
낡은 갖옷 여윈 말로 평생을 보내누나 / 폐구영마도평생
만년에는 수구의 초심을 이루었고 / 수구만세초심수
사정에 날마다 올라 조상을 사모했지 / 일상사정영모정

관직에 오르려는 소원을 이루지 못해 / 타자우청원미성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인생을 보내누나 / 경전착정로오생
상체(상체) 꽃 핀 집에 늦은 봄바람이 부는데 / 체당화하춘풍만
서로 마주해 즐거움은 즉우의 정이어라 / 상대이이칙우정

몇 이랑 거친 전원에 맑은 취미가 만들어져 / 수무황원청취성
서적이 가득한 방 안에서 여생을 즐기누나 / 도서일실악여생
시골의 농부들이 때로 자리를 다투어 / 전옹산객시쟁석
서로 바가지에 술 권하며 늙은 정 위로한다 / 상속포준위로정

유 족장을 대신하여 삼가 조 부정의 만사를 짓다 유 족장은 바로 유우인이다 [대류족장배만조부정 즉류우인]

청마에 곤궁한 형편 보살펴 주신 은혜 입었고 / 청마휼궁몽후택
적계에 혼인을 맺은 것도 평생에 감사하였지 / 적계혼구감평생
깊은 정 갚지 못한 채 공이 먼저 세상 떠나니 / 심정미보공선졸
영전에 통곡하며 눈물이 갓끈을 흥건히 적신다 / 통곡령전루만영
누차 과거에 응시했으나 뜻을 펴지 못하셨으니 / 루거유래지미신
난봉이 가시 숲에 깃들어 어찌 몸이 편안했으랴 / 란서지극기안신
장수하셨고 후사를 두시고 승화하셨으니 / 수령유후료승화
그대가 어질고 선하였음을 비로소 알겠어라 / 시신오군필선인

아침 창[조창]

아침 햇살이 산창을 비추니 / 조일조산창
초가집에 따스한 기운 생긴다 / 백옥난기생
처자식은 삼과 모시를 삼고 / 처노집마시
어린 아들은 시경을 외우네 / 치자송시경
문 앞에 개 한 마리가 짖더니 / 문전일견폐
약을 파는 행상이 지나가누나 / 매약행상과
올해는 곡식이 매우 비싸니 / 금년속미귀
그 값을 따질 수가 없어라 / 막득론기가

황량한 마을[황촌]

황량한 마을에 11월이라 / 황촌십일월
울타리가 더욱 쓸쓸하구나 / 리락경소조
참새는 맑은 아침 햇살에 재잘대고 / 조작훤청욱
소와 염소는 저녁 들판에 풀을 뜯는다 / 우양목만교
마당에는 가득 곡식을 타작하고 / 영장등서직
담장 안에는 쇠꼴이 가득 쌓였어라 / 환도적추요
백성들은 평안히 살아가고 있으니 / 수역안경착
이 산중은 절로 적요하구나 / 산중자적요

저물녘에 눈을 보고 감회가 있어[모설유감]

차가운 바람이 만 리에 부니 / 음풍동만리
옥화가 천지에 가득 흩어진다 / 옥화천지산
시내는 평평해져 흐르는 물 막혔고 / 천평류수새
골짜기에 가득 차 긴 소나무 짧아졌다 / 곡만장송단
나는 새들은 보금자리 잃었고 / 비조실고림
길 가는 사람은 갈 길을 헤매누나 / 행인미거경
이 늙은이는 문 닫고 들어앉아서 / 로부폐문좌
붉은 화로 끼고 심성을 수양한다 / 단로양심성
나귀를 타고 어깨 쭝긋한 이 누구인가 / 건려숙용견
해진 신발을 끌며 발 드러낸 이 누구인가 / 폐리숙로족
누가 능히 배를 타고 있으며 / 수능범옥가
누가 민가에 누워 있는가 / 하인와백옥
저들은 모두 참된 흥취 얻었건만 / 피개득진흥
뉘라서 고인들의 자취를 따르리오 / 거능추왕촉

자월(음력 11월)에 남유하는 족장에게 부치다[자월기남유족장]

예전에 남주로 가는 그대를 보낼 제 / 억증송자유남주
가을 팔월이라 서리와 이슬이 날리었지 / 고추팔월상로비
술자리에서 함께 이별의 괴로움 말하며 / 준전공도별리고
복월이 안 되어 어서 돌아오겠다 했지 / 미반부월당조귀
이별한 뒤 석 달 동안 소식이 없으니 / 별래삼월무소식
모르겠소 무슨 일로 약속이 어긋났는지 / 불지하사가기위
산중의 자식들이 그대 기다린 지 오래니 / 산중아녀대자구
설날이 되기 전에 서둘러 돌아오구려 / 회편원진신정휘
조상의 산소에 올라가 향화도 올리고 / 척강선롱천향화
함께 예전처럼 취해 집에 돌아갑시다 / 공취작배환죽비

유종숙의 얼녀가 다시 좋은 배필을 얻었기에[류종숙얼녀득량필재]

우리 누이는 참되고 현숙하니 / 오매진차숙
재행을 진실로 비길 데가 없어라 / 재행고무륜
얼굴이 고운 탓에 박명한 팔자 / 박명홍안승
독수공방 홀로 지키며 살았지 / 고면금막춘
때가 와 좋은 배필을 만났으니 / 시래봉호필
하늘이 인연을 맺어준 것일세 / 천여결친인
문군의 총애를 잃지 말고 / 막실문군총
마침내 그릇 씻는 분 모시길 / 종행척기인

탄식[탄식]

어떤 사람이 등잔불 앞에 앉아 / 유객좌등전
한 번 읊조리고 세 번 탄식한다 / 일음삼탄식
허름한 옷은 팔꿈치도 못 가리는데 / 단갈불엄경
시서만 속절없이 뱃속에 가득해라 / 시서공만복
임금의 대궐에 청하고 싶으나 / 욕간천왕문
스스로 자랑해서는 안 됨을 알기에 / 자현지불가
그저 시골 농부나 되고자 하지만 / 욕위전사옹
미미한 재능이나마 하늘이 준 것을 / 미재천여아
한참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 지지량단구
큰 바람이 북쪽 집에 불어오누나 / 대풍취북사

붓을 호호 불며[가茟]

앞뜰에는 눈이 한 자나 쌓였고 / 전정설영척
북쪽 섬돌 가엔 송죽을 심었어라 / 북체봉송죽
싸늘한 바람이 노한 듯 울부짖어 / 음풍노도호
은거하는 집에 와 마구 부딪친다 / 촉살유인옥
벽에 걸린 등잔도 추위에 얼어 / 응한벽간등
작은 불꽃이 깜박깜박거리누나 / 명멸옥충직
붓을 호호 불며 고의를 시로 쓰니 / 가필사고의
갈팡질팡 성률을 이루지 못하네 / 종횡불성률
책상머리에는 아이들이 자는데 / 상두아녀수
코가 찢어질 듯 우레처럼 코를 곤다 / 뢰식비여렬

한정산에게 삼가 드리다 한정산은 바로 덕급이다 [봉기한정산 즉덕급]

회상하노니 예전에 조개 탈 때 / 억석조개비
사월이라 남풍이 시원하였어라 / 사월남풍장
농가에 대접할 술이 없기에 / 전가무주장
멀리까지 가 전송하지 못했나니 / 불득원우장
이별의 회포가 얼마나 초초했던가 / 리회하초초
서로 정을 품은 채 멀리 바라봤지 / 상간단맥맥
이제 장수가 달려가는 편에 / 금인주장수
잠시 그리움 담은 시를 쓰노라 / 잠사상사곡
술병을 찾으매 하늘의 달만 외롭고 / 문준천월고
거문고 잡으매 유수가 끊어지누나 / 파금류수단
남쪽 하늘은 운수 저편이니 / 남천격운수
목을 늘여 볼 뿐 날개가 없어라 / 인령무상안
그대 가서 작은 읍을 다스리니 / 군귀수소읍
지금은 아마도 교화가 맑을 테지 / 정화금응청
우리 형님이신 상공의 뒤 이어 / 오형상공후
필시 집안 명성 떨어뜨리지 않으리 / 필불추가성
남쪽 백성들이 고생하고 있으니 / 남민정조채
모든 부역을 부디 고루 부과하시길 / 만역수균평
이 친구의 바람을 깊이 생각하여 / 심회고인축
금옥 같은 명성을 무너뜨리지 마시라 / 물괴금옥명

이십사장 함열에게 삼가 부치다 이 첨지 원득씨이다 [봉기리십사장함열 리첨지원득보]

상공에게 좋은 아우 있으니 / 상공유가제
군왕이 어진 수령으로 뽑았네 / 군왕택현재
오마를 타고 고을로 부임하니 / 오마출백리
숙도는 백성들이 기다리던 바 / 숙도민소대
맹호는 북쪽으로 황하를 건너고 / 맹호북도하
해충이 고을에 날아들지 않아라 / 비황불입경
치적의 명성이 자자하게 들리니 / 정성파양양
이웃 고을에서도 모두 경외하네 / 린주개탄경
조정에서 높은 벼슬에 발탁하여 / 조의탁이질
성상께서 장차 보좌로 삼으시리 / 신정장보관
이 친구는 누추한 집에 지내다 / 고인수봉호
이 소식을 듣고 너무도 기뻐라 / 문차심비월
그 언제나 마주 앉아 술 마시며 / 하당대준주
이 송무의 기쁨을 펼쳐볼거나 / 전차송무희
백운 속에서 걸상 청소해 두고 / 소탑백운리
녹수 가에서 문을 열고 기다리니 / 개문녹수사
펄펄 날아서 한 통의 서신이 / 편편일봉서
멀리 남주로부터 부쳐 왔어라 / 원자남주기
서신 안에 있는 만단의 사연 / 중유만단사
진정을 토로한 내용 가득하구나 / 애애피정곤
하늘이 기니 헤어짐은 다같이 아득하고 / 천장별동형
물이 넓으니 그리움은 함께 멀어라 / 수사공원
봉함을 뜯어보니 완연히 대면한 듯 / 개함완상대
옥 같은 용모를 어느 때나 보려나 / 옥모하시견
남쪽 백성들은 유임하길 바라겠지만 / 남민종원류
이 늙은이는 그리움이 간절하구려 / 로부정권권
임기를 다 채워서는 안 되나니 / 과기불가만
유수를 누구와 함께 연주할거나 / 류수수공리
동풍이 푸른 풀에 불어오니 / 동풍취벽초
원컨대 금학을 데리고 오길 바라오 / 원수금학지

눈 내리는 날 모임에 초청을 받고 가서 이수재에게 사례로 바치다 3수 ○이수재는 이름이 덕해이다 [설일요집사정리수재 삼수 명덕해]

주인이 사람 보내어 나를 불러주기에 / 주인환아청의사
눈 속에 나귀 타고 돌길을 지나왔다오 / 옹설기려천석로
남촌의 여러분들이 여기에 다 모여서 / 남촌제로차함집
따스한 방에서 무릎 맞대고 정을 나눈다 / 촉등온방간담로
종일토록 얼큰히 취해 매우 즐거우니 / 훈훈종일악차담
창 밖에 찬바람이 거센 줄도 몰라라 / 불각창외음풍노
주인이 검곡 안에 그윽하게 은거하니 / 주인유서검곡중
초가집 조촐하게 송죽 속에 있도다 / 백옥소소송죽리

추운 날씨에 술상 차려 신선들 모으니 / 천한설주회군선
잔 가득한 막걸리에 정의가 흐뭇해라 / 만작황류정의치
쟁반에는 동해의 입 큰 대구 올라오고 / 반벽동명거구어
주발에는 서산의 오색 꿩을 삶아 오네 / 완자서산오색치
청산 아래에서 세상사는 말하지 않고 / 불론세사청산하
조용히 한가한 정을 취중에 토로한다 / 온파한정취중피

추운 들판에 하얗게 쌓인 눈을 밟고 / 답쇄경요일야한
동촌의 글 짓는 모임에 와서 참석한다오 / 래부동촌문자회
사립문은 송죽 속에서 반쯤 닫히었고 / 형비반엄송죽리
방 안에는 서적이 가득해 속세 밖일세 / 일실도서개물외
큰 잔에 가득 부어 오늘 밤새 마시자 / 심배대표영금석
이 모임에 시편은 누가 가장 잘 지을까 / 단장가편수최부
알지 못하겠다 고관대작의 큰 집에도 / 불지갑제청운리
얼큰히 취하는 이런 즐거움이 있는가 / 역유훈훈차악부

나의 인생[아생]

나의 인생 천지간에 일개 무능한 몸 / 아생천지일소용
마흔여섯 해 동안 얻은 것이 없어라 / 사십륙년무소득
글을 지어도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고 / 위문미수서제□
검술을 배운들 어찌 만인을 대적하리오 / 학검언능만인적
늙은 부모께 좋은 음식도 못 올리고 / 당중친로감지궐
아내는 반찬거리 없다고 근심한다 / 실리처수반선결
아들 일곱은 비록 공부를 했다 하지만 / 유자칠인종운학
겨우 글귀나 읽으니 무슨 소용 있으랴 / 적구심장하소익
한가한 중에 술상 차리고 이웃을 모으니 / 한중치주취비린
강개한 노래 높이 부르며 마음이 막막해라 / 강개고가심막막
듬성한 백발이 이미 머리에 가득하니 / 종종백발이만전
자연 따라 늙어갈 뿐 무엇을 아쉬워하랴 / 임천종쇠하용석
아아 타고난 운명이 진실로 이와 같으니 / 우차부명구여차
술병 앞에서 오래 시름에 잠기지 말자꾸나 / 막향준전장척척

연당주인 송십사 향장에게 삼가 바치다 송십사 향장은 이름이 규이다 [봉증련당주인송십사향장 명규]

어른 한 분이 계시니 자는 사온이라 / 유장유장자사온
천진한 성품을 지켜 속된 모습 없어라 / 성보천진무속태
네모난 연못 굽은 물가를 그대 조성했고 / 방당곡저자소개
마름 잎 연꽃을 사람들이 함께 사랑한다 / 릉엽하화인공애
좋은 날이면 언제나 손님을 초청하여서 / 량진매치장자차
술자리를 벌여서 좋은 모임을 여누나 / 설석사연개승집
가인이라 동교요가 늘 곁에서 모시고 / 가인상시동교요
옥기둥에 부는 바람이 맑고도 훈훈해라 / 옥주천풍청차흡
즐거이 놀다 옥산이 무너짐을 매양 보고 / 탐환매견옥산퇴
훌륭한 선비의 시편들이 권축을 이뤘도다 / 승사가편성권축
낚싯대로 붉은 비늘 물고기를 낚아올려서 / 간두견출적린어
금빛 쟁반에 눈 같은 회가 한 자나 쌓였네 / 회설금반고일척
은빛 순채를 또 물 가운데에서 따오니 / 은순차적수중앙
술 마신 뒤에 계응의 맛을 많이 보탰어라 / 주후다첨계응미
좋은 놀이 그치지 않아 봄 가고 가을 오니 / 량유불사춘부추
상 머리에 술값이 드는 것을 감히 아끼리오 / 감석상두주전비
들리는 말에 오랑캐가 요동성에 가득하여 / 전문시호만료성
중국의 신민들이 두려워하고 있다 하네 / 상도신민방공외

둔촌에 유숙하며 심 조대에게 주다 조대는 바로 심척시이다. 둔촌은 경치가 맑다 [숙둔촌류증침조대 조대즉침척시둔촌경징]

주인의 그윽한 집이 맑고도 한가로워 / 주인유거청차한
청산 아래 사립문은 낮에도 닫혔어라 / 시문화엄청산하
구름 속에 닭과 개 소리 저자와 멀고 / 운간계견원시조
묵객이 와 시 읊으매 속된 생각 없도다 / 묵객래음진려공
삼경에 촛불을 밝히고 그대를 마주하니 / 삼경명촉대미우
도타운 정의를 어떻게 다할 수 있으랴 / 정의올올하유궁
부디 그대 눈에 가득한 술 사오지 말라 / 빙군막고만안고
약솥에서 무르녹은 단사를 넉넉히 보노니 / 약정잉견단사융
번뇌 벗어난 무생의 이치 끝없이 말하는데 / 무생유유설불진
꼬끼오 하고 새벽닭이 지붕 위에서 우누나 / 악악한계명옥동

매신행[매신행]

어제 땔나무를 팔러 가서 / 작일매신거
오늘에야 땔나무를 팔고 돌아온다 / 금일매신귀
날마다 이렇게 땔나무를 팔건만 / 매신일부일
얼굴은 파리하고 배는 늘 주리네 / 함함복장기
한양성 안에서 땔나무를 팔자니 / 매신장안리
한양성엔 땔나무 파는 이 많고 / 장안다매신
시골에 가서 땔나무를 팔자니 / 매신전사간
시골엔 모두 땔나무 하는 사람 / 전사개신인
고생이야 비길 데 없지만 / 신근종무비
값은 겨우 엽전 몇 닢뿐 / 궐직수전가
본업이 평소에 미천한 일이니 / 본업소경천
어찌 높은 값을 부를 수 있으랴 / 하능멱고가
생계를 꾸림에 무슨 방책을 써서 / 자신용하책
세 번이나 천금을 모을 수 있을꼬 / 삼치천금다
치이의 그 방법 물을 길이 없으니 / 치이문무술
천고에 속절없이 탄식만 할 뿐일세 / 천재공차자

계해년(1623) 어머니의 생신에 수연을 열고[계해세자친초도일잠설수작]

어머니 나이 올해 일흔이니 / 친년금세당칠십
내 마음 한편 기쁘고 한편 두렵구나 / 아심일희유일구
평소에 좋은 음식 제대로 못 올렸으니 / 상시고궐봉감지
이 날 어찌 색동옷 춤이 없을 수 있으랴 / 차일녕무정채무
잠시 술과 음식 차려 친척들을 모으니 / 잠비주식회친척
친척이 다 모여도 대여섯 남짓일세 / 친척필회강오륙
상에는 비록 삼생의 고기 갖추었으나 / 두간종□삼생구
술잔 주고받는 예절은 자못 엄숙하여라 / 수초례절파건숙
어머니 얼굴은 기쁜 기색에 종일 환하고 / 자안유희진일화
눈에 가득한 아들 손주 자리에 죽 앉았다 / 만안아손렬장석
천추만세토록 늘 오늘 같을 수만 있다면 / 천추만세장약차
비록 누추한 초가에 살아도 마음 즐거우리 / 수재봉호역□열

정이회가 남겨준 시에 차운하다 정이회의 이름은 명원이다 [차정이회류증운 명명원]

작은 초가집 한 채 강성에 누웠으니 / 필문봉호와강성
귀밑 머리털 이미 반쯤 하얗게 세었네 / 쌍빈소소설반명
뜰 앞에 늙은 잣나무는 절개가 어여쁘고 / 로백정전련고절
골짜기 어귀 난초는 꽃다운 이름 사랑스럽다 / 유란곡구애향명
포의의 선비로서 승낙이 천금처럼 중하고 / 포의낙연천금중
고기 먹을 마음은 깃털 하나처럼 가벼워라 / 육식심정일우경
밤새도록 열렬하게 시국을 걱정하노라니 / 철야극담론세무
겨울 해가 이미 동쪽에 뜬 줄도 몰라라 / 불지한일이동생

산중가[산중가]

깊은 산 속에 사는 삶이 좋아서 / 유거애산심
산 속에다 집을 지어 놓았도다 / 축실류산간
산에 들어가 산을 나오지 않으니 / 입산불출산
산에 깃들어서 늘 산에 사노라 / 서산장재산
북산이 이문 보낸 일이 우스워라 / 이문소북산
벼슬하는 첩경은 남산이 아니라네 / 첩경비남산
늘 옥산이 무너지는 듯하니 / 장위옥산퇴
빙산이 높음을 어찌 부러워하랴 / 거선빙산고
여산은 저잣거리와 멀었고 / 려산원시조
화산에는 우거진 숲이 많아라 / 화산다림고
산이 밝으니 산의 멋이 넉넉하고 / 산명족산취
산이 수려하니 산의 흥이 많아라 / 산수요산흥
산 늙은이는 산문을 닫고 / 산옹엄산문
산 나그네는 산길을 오누나 / 산객래산경
산 바람은 산골짜기에 불고 / 산풍산곡향
산 달은 산창에 환히 비치며 / 산월산창명
산 종은 산사의 새벽에 울고 / 산종산사효
산 범패는 산사의 저녁에 들린다 / 산범산선석
산 두견새 울음에 산죽이 갈라지고 / 산견산죽렬
산새 울음에 산 꽃이 떨어지며 / 산조산화락
산이 푸르니 산 비가 걷히고 / 산청산우권
산이 희니 산 구름이 덮였다 / 산백산운멱
산 정기는 산 아래서 캐고 / 산정산하채
산 고사리는 산 위에서 꺾는다 / 산궐산두절
산 노래에 산 물이 푸르고 / 산가산수록
산 광주리에 산 단풍이 붉어라 / 산거산풍적
산 서리는 산 다리에 있고 / 산상재산교
산 눈은 산 허리에 밝아라 / 산설명산복
산 사내는 산 너머에서 밭 갈고 / 산부산외경
산 아낙은 산 앞에서 들밥 내온다 / 산부산전엽
산성에는 세상 풍진이 적고 / 산성소풍진
산야에는 좋은 풍경 많아라 / 산교다풍치
모름지기 산 북쪽 사람이 / 수령산북인
산 남쪽 일을 모르게 해야 하리 / 물식산남사

연못 안에 반석을 놓아 물고기가 들어가 사는 곳을 만들고[치반석지중이위의어지소]

북산이라 산발치에서 반석을 옮겨 와서 / 북산산족이반석
연못 속에 놓아 두어 물고기 굴 만들었다 / 안치지중작어혈
네 개의 돌로 떠받쳐 빈 공간을 만드니 / 탱지사석공기중
그 안에 물고기 몇 섬이라도 숨겠구나 / 기중가용어수석
깊이와 길이를 병혈에 비길 수 없지만 / 심장수미의병혈
들어가면 마음대로 번식할 수 있어라 / 입처유능자번식
물고기 물고기야 너는 살 곳 얻었으니 / 어호어호여득소
편안한 집 비워둔 주인보다 외려 낫구나 / 유승주인광안댁

적괴 이괄이 패전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문적괴괄패사]

우리 국가가 중흥하던 날에 / 한실중광일
풍진이 북녘 변방에서 일어났지 / 풍진기한추
임금의 파천 소식 듣자마자 / 재문파옥련
이미 적의 괴수를 잡았다 하네 / 이보득흉추
하늘의 뜻 끝내 속이기 어려워 / 천의종난망
서울이 홀연 수복되었어라 / 경사홀견수
다사다난 속에 나라가 흥성하나니 / 흥방재다란
이제부터 이 나라에 근심이 없으리 / 종차국무우

능금을 심고[종림금]

집 곁에다 이름난 과일 심으니 / 방사이명과
갖가지 종류의 새들이 날아오누나 / 래금품류수
심어서 기른 지 몇 해만에 / 재배성수세
무성한 세 그루가 되었어라 / 번무즉삼주
비로소 눈송이 같은 꽃 보았고 / 시견화함설
이윽고 구슬 같은 열매 보았도다 / 아간자영주
일생 동안 아무 하는 일 없으니 / 일생무사업
여기에다 공력을 들여야겠네 / 어차착공부

밤벌레가 등잔불에 모여드는데[야충취등화]

푸른 등잔불 벽에 걸렸으니 / 청등괘벽상
등잔불 그림자 온 방을 비춘다 / 등영조일실
날벌레 사방 문으로 들어오니 / 비충입사문
어지러운 모습이 눈보라 같구나 / 잡란여풍설
어떤 놈은 등잔불에 달려가서 죽고 / 혹부등화사
어떤 놈은 등잔불에 부딪쳐 탄다 / 혹박등화멸
사람에게 매우 미움을 받을 뿐 / 어인고견증
제놈들에겐 끝내 이익이 없어라 / 어거종무익
우리 사람도 이 벌레와 같아서 / 오인류차물
욕망에 골몰하느라 자신을 잊지 / 골욕망기생
탐부는 재물을 위해서 죽고 / 탐부순어재
열사는 이름을 위해서 죽으며 / 렬사순어명
몸을 망치는 건 술이요 / 망신유국얼
수명을 깎는 건 여색이어라 / 촉명아미부
세상 사람들 다 욕망에 빠져서 / 도도점닉인
전거의 비유를 알지 못하는구나 / 불식전차유

비가 개어[우청]

맑은 그늘이 비 온 뒤에 생기니 / 청음생우후
상큼한 경치가 산가에 가득하여라 / 숙경만산가
득득한 모습으로 잠자리는 날고 / 득득청정무
제비는 비스듬히 날아오누나 / 비비연자사
창 앞에는 개미 행진을 보고 / 창전간의진
뜰 가에는 벌들이 분주하구나 / 정반료봉아
묵객은 아무 일도 없이 한가해 / 묵객혼무사
새로 지은 시가 날로 많아진다 / 신시일우다

정영숙이 남겨준 시에 차운하다 정영숙은 이름이 진영이다 [차정영숙류증운 명진영]

관단 타고 친구가 석문에 이르러 / 관단고인진석문
소매 속 남전옥을 꺼내 내게 주누나 / 수중유아람전옥
왕의 문 어느 곳에 좋은 값이 없으랴 / 왕문하처무선가
지극한 보배를 부질없이 이곳에 던지는가 / 지보만투애지북
그대가 참으로 생각이 깊다는 걸 아노니 / 지군차계성장원
화씨의 일 척 벽옥은 값을 인정받기 어렵지 / 화씨난수벽일척
내 장차 이 옥을 보배로 간직하리니 / 오장지지온독
옥을 다듬자면 하룻밤은 기다려야 하리 / 조탁공수대일석

긴 여름[영하]

뜰의 오동은 짙푸르고 바람은 고요하니 / 정오응벽정풍가
지붕 위의 맑은 그늘 한낮에 더욱 짙어라 / 옥상청음오경다
한가로이 거문고 잡고서 긴 여름 소일하노니 / 한파옥금소영하
그 누가 지팡이 짚고서 이 산가를 찾아줄꼬 / 하인부장도산가

여름날에 송십사장의 유거를 방문하여 송십사장은 이름이 규이다 [하일위방송십사장유거 명규]

필마 타고 남촌으로 한가한 분 방문하니 / 필마남촌방일인
소나무 아래 각건 쓴 모습이 천진하여라 / 각건송하견천진
고담 나누느라 해 져도 돌아가는 것 잊었는데 / 고담일석망귀거
모르는 사이 산 앞에서는 소낙비가 몰려왔구나 / 불각산전취우진

가을 매미[추선]

가을 바람이 늙은 나무에 이니 / 추풍기고수
늙은 나무에서 가을 매미 울어댄다 / 고수한선명
매미가 날마다 날마다 울어대니 / 한선일일명
맑은 소리가 상성을 따르는구나 / 청향수상성
상성이 몹시도 격렬하니 / 상성최격렬
듣는 이들이 모두 슬퍼라 / 문자개비상
슬퍼하나 말할 수 없으니 / 비상불가설
동방에서 울게 하지는 말라 / 막교명동방
동방에선 그나마 울어도 되지만 / 동방유가명
선비들 집에는 가까이 못 가게 하라 / 막근사사당

백로[백로]

맑은 시냇가의 새여 / 유조청계상
목은 길고 옷은 백설처럼 희도다 / 장경백설의
바람을 맞으며 누구를 기다리는가 / 림풍하소대
종일토록 이끼 낀 바위에 서 있구나 / 종일립태기

시골 노인의 집[야로가]

푸른 산 아래 해 저무는 / 일모창산하
사립문 시골 노인의 집 / 시문야로가
뜰에는 무엇이 있는고 / 정중하소유
서리 맞은 국화 몇 떨기 / 상국수총화

어떤 길손[유객]

어떤 길손이 사립문 두드리기에 / 유객구시문
맞이해 이끼 낀 헌함에 앉았노라 / 영좌태헌상
서로 마주한 채 아무런 말 없이 / 상대묵무언
그저 풍암 위를 돌아보누나 / 단고풍암상

가을 파리[추승]

파리란 놈이 방 안에 들어와 / 창승재옥방
날마다 앵앵거리며 소란스럽다 / 일일분영영
앵앵거리기를 그치지 않더라도 / 영영종불이
서늘한 가을바람을 어이하랴 / 내차추풍량

가을밤에 나그네로 한양에 유숙하며 감회가 일어[추야객숙장안감회]

장안이라 팔월의 밤에 / 장안팔월야
별들이 푸른 하늘에 총총하여라 / 중성라청천
궁궐의 종은 자운 속에 울리고 / 궁종자운리
지친 나그네는 청루 가에 섰도다 / 권객청루변
대궐에 올리고픈 소회 있건만 / 유회달면류
임금님 앞에 들어갈 길이 없어라 / 무유입왕전

종형 신함종이 벼슬을 버리고 수감되었기에 종형은 바로 신광립씨이다 [종형신함종이기관피수 즉신광립보]

획옥에도 들어갈 수가 없고 / 화옥의불입
목리에게도 변명해서는 안 되니 / 목리기불대
우리 임금이 이러한 뜻 불쌍히 여겨 / 오군민차의
죄인들을 많이 관대히 용서하셨지 / 죄벽다관대
형이 와서 감옥에 들어갔으나 / 형래입원비
포승에 묶인 것은 형의 죄가 아닐세 / 류설비기죄
담장 머리에 까치가 짖었으니 / 장두작보희
조만간 석방될 것을 기다린다오 / 탈방조석대

바위 위 소나무[암송]

백년이 된 바위 위 소나무 / 백세암상송
옹종하여 재목감이 못 되네 / 옹종불가재
재목감이 못 되기 때문에 / 유기불가재
도끼의 재앙을 면할 수 있었지 / 내면부근재
대들보는 비록 책임이야 막중하지만 / 동량수임중
쓸모없이 오래 사는 나무만 못하네 / 불여산목생
풍상에도 오래도록 시들지 않고 / 풍상장불조
홀로 세한의 정을 지키고 있구나 / 독보세한정

저물녘 집으로 돌아가며[모귀]

먼 산봉우리에 아스라이 석양이 지는데 / 원수미망락일사
흰 구름 그 아래가 바로 나의 집이로세 / 백운저처시오가
읊는 시가 껄끄러워 지어내기 어려우니 / 청시고삽음난취
시야에 산천이 아득히 저문 것도 몰랐노라 / 불각천원망리사

밤에 집으로 돌아가며[야귀]

먼 하늘 밝은 달이 산을 환히 비추는데 / 원천명월조산명
한양에 돌아가는 사람은 밤에도 길을 간다 / 락하귀인상야정
생각건대 저 사람 집안에 자녀들이 있어 / 상득가중아녀재
화로에 밤을 구우며 밤 늦도록 기다리겠지 / 지로소률좌심경

9월에 청계산 동쪽 기슭에 노닐며[구월유청계산동록]

깊은 가을 승경에 들어가니 / 심추입이경
골짜기에는 맑은 서리가 날리누나 / 동학청상비
돌길에는 유람하는 사람이 적고 / 석경유자소
끊어진 다리에는 행인이 드물다 / 단교행인희
말 타고 시 읊으며 시냇가에 가서 / 음안사계두
눈길 가는 대로 맑은 흐름 굽어본다 / 종목림청류
갓끈을 씻고 또 발을 씻으니 / 탁영부탁족
맑은 흥이 참으로 유유하여라 / 청흥량유유
한가한 틈은 한때일 뿐이요 / 투한재일시
백년 평생 늘 근심에 잠기지 / 백년우사족
천 척의 홍진 속에서 골몰하니 / 홍진몰천척
뉘라서 안목을 뜰 수 있으랴 / 숙능개안목
심화(심화)가 밤낮으로 오장을 들볶으니 / 고화전일야
세속 떠나 담박하게 놀 길이 없어라 / 말유유담박
젊은 시절이 그 얼마나 되리오 / 소장지기시
세월이 이미 빠르게 흘러간다 / 년광역이박
몸을 편안히 할 규방이 좋고 / 안신가규방
맑은 경치 구경도 즐길 만해라 / 청적역가열
세속의 사람들에게 이르노니 / 기어류속자
도도한 세파에 골몰하지 말라 / 도도물골몰

땔나무를 하는 산골 사내[산부절신]

산골 사내 서둘러 땔나무 하여 / 산부절신급
초가집에 밤중 땔감을 대누나 / 백옥공야설
푸른 연기가 토방에 가득하니 / 청연족토상
매서운 찬바람도 두렵지 않아라 / 불파한풍렬
비록 두터운 갖옷 입지 않았지만 / 수무착중구
온몸에 온기가 가득 스며든다 / 혼신온기철
장안의 고대광실에 사는 사람이 / 장안갑제인
이 좋은 맛을 알까 두렵구나 / 공지차미족
그들이 이 좋은 맛을 안다면 / 약지차미족
백성들은 어디에 의탁할거나 / 제민하소탁

신원으로 가는 도중에 신원은 과천 동쪽에 있다 [신원도중 재과천동면]

아스라한 한길이 한강 나루와 닿았는데 / 초체주행접한진
평평하기는 숫돌 같고 곧기는 띠 같아라 / 평여지면직여신
남쪽에서 오고 북쪽으로 가는 이 무수한데 / 남래북거인무수
모두가 다투어 잇속을 노리는 사람들뿐 / 진시쟁취리굴인

늙은 말[로마]

늙은 말이 시든 풀 씹으니 / 로마흘쇠초
피부가 날마다 수척해지건만 / 피부일수고
때로 구유 아래에서 우는 것은 / 시명조력하
흡사 장도를 치달리는 듯하여라 / 약혹빙장도

담배[남초]

남국에 풀이 하나 있는데 / 남국유일초
염제도 예전에 맛본 적이 없지 / 염제상무전
비록 신선의 불사약은 아니지만 / 수비불사약
먹으면 풍연을 다스릴 수 있어라 / 복지치풍연
늘 손에 담뱃대를 들고서 / 장시수아관
쉼 없이 빨고 연기를 토하네 / 탄토무휴□
골초라고 사람들이 웃지만 / 방인소성벽
나는 스스로 시속을 따른다 / 아자능순속
시속을 따름이 나쁘지 않나니 / 순속역불악
외톨이 행동은 아무 이익이 없지 / 독행무소익

추운 밤의 다듬이소리[한저]

서릿바람이 그치지 않고 부는데 / 상풍취불철
추운 밤 다듬이소리 이웃에서 들린다 / 한저명서린
어젯밤 문전에 찾아왔던 아전이 / 작석문전리
세금 독촉하며 주인을 꾸짖었지 / 최조견주인

외로운 마을[고촌]

산 아래 외로운 마을에 늦서리 내리니 / 산하고촌락만상
올 가을의 벼농사는 모두 타작하였어라 / 일추화가진등장
전원에도 편안히 사는 즐거움 있으니 / 전간자유안거악
무엇하러 벼슬하여 태창의 곡식 먹으랴 / 해대하수식태창

송십사장의 실내에 대한 만사 송십사장의 이름은 규인데, 후실을 잃었다 [만곡송십사장실내 명규상후실]

이 분이 시집 와서 부덕이 훌륭했건만 / 지자우귀부덕冝
일생에 아들이 없는 게 늘 한스러웠지 / 일생장한시무아
홍안이 늙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 홍안미개선조로
백발 홀아비가 외로운 밤에 슬퍼하누나 / 백수환옹독야비

까마귀 부리[오훼]

주린 까마귀가 고목을 쪼니 / 기오탁고수
고목에서 찬바람이 일어난다 / 고수생한풍
찬바람은 날마다 불어오고 / 한풍일일취
까마귀는 끝없이 쪼아대누나 / 오탁장불궁
아무리 끝없이 쪼아댄다 하더라도 / 수능탁불궁
뉘라서 너의 주림을 생각해 주랴 / 숙능념이기
너의 주림은 근심할 게 없고 / 이기불족휼
단지 증삼을 위해 슬퍼하노라 / 단위증삼비
증삼을 세상에 아는 이 없고 / 증삼세막지
네가 쪼는 것도 그칠 때 없어라 / 이탁무헐시

흰 구름[백운]

가을 골짜기에 이는 흰 구름 / 백운기추학
봉우리 같고 솜뭉치 같아라 / 여봉부여서
오는 것이 본래 자취가 없거니와 / 기래본무적
가는 것도 정녕 정처가 없구나 / 기거환무처
무심하면서도 도리어 유심하며 / 무심각유심
형체가 있는 듯 형체가 없어라 / 욕체여미체
하늘과 땅 사이에 날아다니니 / 비양천지간
만고에 속절없이 유유하구나 / 만고공유유

가을날 척질 신자장이 유곡 찰방이 되어 돌아가는 길에 방문했기에[추일척질신자장위유곡찰방귀로력방]

대낮에 사립문을 닫고 지내니 / 백일엄시문
산성에는 가을 낙엽이 날린다 / 산성추엽비
이끼 낀 뜰에는 삽살개가 졸고 / 태정수령방
돌길에는 다니는 사람이 드무네 / 석로행인희
문을 두드리는 관리 행차 있더니 / 박탁유관행
문 앞에 그대의 행차가 이르렀구나 / 문전군패종
혹여 골육의 정이 아니라면 / 당비골육정
어찌 이처럼 찾아주었으랴 / 하능차진중
산중에는 술과 음식이 없어 / 산중무주식
다과만 상 위에 차려놓았다 / 다과라상전
손을 잡고서 인사를 나누니 / 악수서훤량
서로 그리워한 지 몇 해였던가 / 상사증기년
그대는 청운의 선비가 되었고 / 군위청운사
나는 임하의 사람이 되었으니 / 아위림하객
영고의 길이야 비록 다르지만 / 영고종이로
교결한 마음은 예전 그대로지 / 교결동소억
만날 기약은 절로 있으리니 / 상봉자유기
무엇하러 이별을 탄식하리오 / 별리하족탄
자네 영남으로 돌아간 뒤에 / 군귀령표후
잊지 말고 서신을 보내주구려 / 물체남중한

귀뚜라미[추공]

귀뚜라미가 앞뜰에서 울어 / 추공정제명
밤마다 슬픈 소리 다급하여라 / 야야비성급
어찌하여 이러한 소리를 내어 / 호연유차성
이렇게 만감이 교차하게 하는가 / 사아만감집
가을의 기운은 참으로 싸늘하니 / 추지일기신률렬
벌레로 가을을 욺은 하늘이 시켰지 / 이충명추천사령
오호라 하늘이 그렇게 시켰으니 / 명호천사령
어찌 너의 소리에 만감이 일지 않으랴 / 안득불감이지성

가을 회포[추회]

가을 빛은 절로 소슬하고 / 추광자소슬
가을 물은 비단처럼 환해라 / 추수명여기
광사의 회포가 없는 건 아니나 / 비무광사회
밤낮으로 시름겨운 생각 많구나 / 일석다수사
바위 가에서 가을 국화를 따니 / 암변적추화
자잘한 꽃잎 한 줌도 못 되어라 / 세쇄불영국
그리운 사람에게 부치려 하니 / 욕기상사인
아득한 산 너머 소식이 끊겼어라 / 천산단소식
방황하며 오래도록 떠나지 못하는데 / 방황구불거
남쪽 골짜기에 땅거미가 지누나 / 명색생남곡

좋은 선비[가사]

한양에 좋은 선비가 있는데 / 락하유가사
베옷 걸치고 배는 늘 주린다 / 피갈복장기
길게 양보음을 읊조리며 / 장음량보구
희황의 시대를 아득히 생각한다 / 면억희황시
임금이 불러도 조정에 가지 않고 / 유조불입국
글이 있어도 조정에 올리지 않네 / 유서불입부
편안한 수레는 내 탈 것이 아니고 / 안차비아승
좋은 폐백은 내 가질 게 아니라네 / 속백비아취
그저 소원은 아무런 시비 없이 / 지원무시비
낙토에서 몸소 농사나 짓는 게지 / 궁경재악토

보금자리 찾는 새[숙조]

보금자리 찾는 새 급히 숲에 들어가 / 숙조투림급
서쪽 봉우리에 가을 해가 잠기는구나 / 서봉추일침
나는 사람이면서 새만도 못한데 / 인이불사조
날 저물어 밤은 빨리도 찾아든다 / 모야상침침

장송과 세류[장송세류]

산 위의 장송은 푸르디 푸르며 / 령상장송벽부벽
문 앞의 세류는 파랗고 파랗구나 / 문전세류청차청
자라는 계절에는 빛깔이 같지만 / 절당장양간동색
날씨가 추워진 뒤엔 마음이 다르지 / 세한지후이기정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 군불견
모두 임금 은혜 입은 상신이지만 / 의군식군진상신
오직 이제만이 능히 간쟁하였지 / 유견이제능간쟁

가을빛은 엷고[추광박]

먼 봉우리에 가을빛은 엷고 / 원수추광박
가까운 숲에 나뭇잎은 드물어라 / 전림목엽희
주인은 시름에 술 취해 누워 / 거인수취와
날 저물도록 사립문 닫혀 있다 / 일모엄시비

기심을 잊고[망기]

물 맑아 물고기 셀 수 있고 / 수청어가수
산 가까워 새가 잘 찾아든다 / 산근조능순
모두 기심을 잊은 것이니 / 등시망기사
온통 한가로워 물외의 몸이로세 / 혼한물외신

뱀이 바위틈에서 나와 연못 물 위에 떠 있기에 때려서 죽이려다 그만두다[사출석간부우지수욕타환지]

긴 뱀이 바위틈에서 기어 나와 / 장사정석간
머리 치켜들고 맑은 물 위에 떠 있네 / 교수부청란
맑은 물이 잔잔하고 드넓으니 / 청란평차활
사방을 돌아봐도 숨을 곳이 없네 / 사고수무의
독한 뱀이 제 살 곳을 잃었으니 / 독충실기소
잡아 죽일 기회는 바로 이 때라 / 포살당기기
돌을 쥐고 또 몽둥이를 쥐고서 / 지석차지정
서성이며 나오길 기다린다 / 반환사기출
물고기가 끓는 솥에 들어간 셈이니 / 유어재비정
실오라기 목숨이 경각에 끊어지리라 / 루명경각절
문득 생각건대 군자는 / 홀문군자인
남의 위태로운 틈을 타서는 안 된다지 / 인위비기지
동물이 사람과 다르지만 / 수운물이인
이 도리는 다 같은 것이라 / 차도동일리
손을 거두고 바위 위에 앉아 / 감수좌석상
문득 아무것도 못 본 체한다 / 홀약무소시
뱀도 이런 마음을 아는 양 / 사호사유지
머리 돌려 제 굴로 돌아가누나 / 회수환기혈
뉘라서 뱀의 보답을 계산하여 / 수능계기보
감히 명주를 얻으리라 생각했으랴 / 감위명주득
이 일은 나만 홀로 알 뿐 / 차사독기지
남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네 / 방인막능식

비가 올 듯[욕우]

깊은 가을날 비가 올 듯 / 욕우심추일
산중에 나뭇잎이 흩날리는데 / 산중엽정비
울밑에 몇 떨기 국화꽃만 / 리변수총국
초췌한 모습으로 꽃잎을 지킨다 / 초췌수방비

기러기 울고[안규]

먼 남쪽 하늘에 기러기 울고 / 안규남천원
후미진 북쪽 섬돌에 귀뚜라미 우네 / 공음북체심
지음의 벗은 천 리 밖에 있는데 / 지음천리격
한가히 휘파람 불며 거문고 만진다 / 한소무장금

갑자년(1624) 가을에 일이 있어 여주에 갈 때 두모포에서 배를 타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다[갑자추이사왕려주자두모포승주소류]

산의 형세는 겹겹이 모이고 / 산세중중합
강의 흐름은 굽이굽이 통한다 / 강류곡곡통
외로운 배로 종일토록 가며 / 고주행진일
위험한 고비를 하늘에 맡기노라 / 이험신묘공

강물 속 반석[강중반석]

강물 속에 반석이 있으니 / 강중유반석
물 위에 나온 게 겨우 몇 자 / 수출재수척
흐르는 물결이 날마다 부딪치니 / 류파일용당
벼랑 모서리 깎은 듯 날카롭다 / 애각여신삭
내 아노라 조물주의 조화가 / 오지조화공
이처럼 사물을 빚어내는 줄 / □능여방박

배로 저도를 지나며 박 감사의 정자 터를 보고 감회가 있어 박 감사는 바로 박자흥이다 [주과저도앙견박감사정기유감 즉자흥]

큰 정자가 강물 속에 솟아 / 룡루기강심
우뚝이 푸른 하늘에 닿았지 / 돌올릉창궁
누가 이 높은 정자 지었는가 / 아수가고정
멀리 도성 거리와 통하누나 / 자맥요상통
다리 건너 팔진미를 보내오고 / 목도송팔진
성상의 조서가 대궐에서 왔지 / 휘음래법궁
나날이 늘 즐거이 놀았으니 / 환오일부일
백년토록 이와 같으리라 했건만 / 백세운여사
고명의 집은 귀신이 엿보는 법 / 고명귀소감
즐거운 일이 도리어 슬픔이 됐어라 / 악사환성비
사람이 죽고 정자도 허물어지니 / 인망정역파
잡초만 무성하고 적막하구나 / 적막황원무
사물은 성하면 반드시 쇠하느니 / 물성칙□쇠
이 이치는 속일 수가 없어라 / 차리난가무

배를 끌고 여울을 거슬러 오르며 2수 [견주역탄 이수]

백 길이나 깊은 여울 물결을 거슬러 가며 / 역절파두백장탄
진종일 배를 끌고 오르느라 고생을 겪는다 / 견주진일상간관
시름겨워라 지척 거리도 끝내 못 나아가니 / 수간지척종무진
인간 세상 행로가 어려움을 비로소 알겠노라 / 시식인간행로난

협곡 속에서 배를 끌고 백 척을 나아가니 / 협리행주견백척
고생스럽기가 흡사 하늘에 오르는 듯하여라 / 간관흡사상천제
마치 이 몸이 파강에 있는 것만 같은데 / 황여신재파강상
단지 벼랑에서 우는 원숭이만 없을 뿐일세 / 지흠청원협안제

배를 타고 두미를 거슬러 오르며[주기두미]

십 리 맑은 강물이 깊고도 잔잔하니 / 십리청강심부평
강에 비친 양쪽 봉우리 그림자 분명하여라 / 량변봉영도강명
긴 바람이 곧바로 돛단배를 보내니 / 장풍직송포범거
선사를 타고 옥경으로 오르는 듯하여라 / 의시선사소옥경

저녁에 파사성 아래 배를 정박하고[만박파사성하]

파사성 옛 성벽이 강가에 서 있는데 / 파사고벽의강분
무너진 성가퀴와 누각이 석양에 비치누나 / 패첩잔루조석훈
아득한 옛날 흑룡강에서 정벌하여 싸울 때 / 막의흑룡정전일
어느 누가 장수가 되어 삼군을 주둔했던가 / 하인지절주삼군

여강 앙덕촌을 지나며 이 상공 원익이 무신년 폐조(광해군) 초에 홍주로 귀양왔다가 여강 앙덕촌에 방귀전리되었다. 계해년(1623) 반정 때 조정에 돌아와 재상이 되었다 [과려강앙덕촌 리상공원익무신폐조초적홍주방귀려강앙덕촌전리계해반정환입상]

여주 고을에 별세계가 있으니 / 려향유별구
그 지역 경치가 맑고 땅이 외지다 / 궐구청차벽
앞으로는 큰 강물을 굽어보고 / 전림대강수
뒤에는 긴 송백이 서 있구나 / 후유장송백
일찍이 듣건대 이 상공이 / 증문리상공
죄를 받아 이곳에 와 살았는데 / 피견래서식
풍광은 비록 참으로 아름다우나 / 풍광종신미
칩거하며 문 밖을 나오지 않았으며 / 두문신불출
물고기가 있어도 낚시하지 않고 / 유어불증조
나물이 있어도 뜯지를 않았다지 / 유채불증철
반정으로 나라가 새롭게 바뀌어 / 주방명유신
성스러운 임금께서 등극하시니 / 성벽림환우
강호에서 와룡을 일으키니 / 강호기와룡
조서가 와서 옛 사람 구했지 / 봉조래구구
붉은 신발로 돌아가 침착하시니 / 적석귀궤궤
황각의 자리에 꼭 맞는 분이었지 / 황각차기인
만년에 경사 있음을 기뻐하니 / 모생희유경
팔방이 다 같이 태평의 기운이어라 / 팔방동일춘
그런데 나는 맡은 일이 있어서 / 이아유간사
양월에 상류 쪽으로 돌아가노니 / 양월귀상유
조각배로 푸른 물결 거슬러 올라 / 편주소벽류
저물녘 강가에 배를 정박하노라 / 만박강지주
상공이 살던 집 손으로 가리키니 / 지점상공댁
숲 저편에 몇 칸 초가집이어라 / 림변수간옥
이 분은 검소한 덕이 있으니 / 사인유검덕
그 정치가 필시 훌륭하리라 / 기정필불식
지금 내가 와서 덕을 우러르니 / 금아래앙덕
마을 이름 헛되이 얻은 게 아닐세 / 촌명불허득

협곡의 강물을 거슬러 오르며 여강에서 읊은 것이다 [기협류 여강]

먼 하늘에 가을 기러기 우니 / 원천상안규
외로운 길손 가장 먼저 슬퍼라 / 고객최선비
협곡 길 송강이 험하니 / 협로송강험
배로 강물 거슬러 오름이 더디네 / 주행소수지
노니는 물고기는 놀라 발랄하고 / 유어경발랄
한가한 백로는 사람을 따르는 듯 / 한로약상수
찬비가 저물녘에 급히 내리니 / 한우만래급
가벼운 노가 지탱하지 못하누나 / 경장불자지

강기러기 여강에서 읊은 것이다 [강홍 여강]

백 천 마리 구비진 물가에 떼 지어 모이니 / 천백위군집곡저
행렬인 듯 대오인 듯 군대를 정돈하는 듯 / 약행약오약진려
바람 앞 흰 물결에 찬 깃털을 씻고 / 풍전백랑쇄한모
강물 덮은 낙조에 가벼운 솜 흐르는 듯 / 폐강락일류경서
강에서 밤 불빛이 짐짓 깜박거리니 / 강중야화고명멸
죄 없는 네 종을 쫓지 말라 / 막장이노무죄거

원앙 여강에서 읊은 것이다 [䲶앙 여강]

하늘 저편에서 쌍으로 날고 / 천제쌍비거
모래톱에서 날개 나란히 간다 / 사두비익행
아아 날짐승의 성품도 / 차재금조성
이처럼 곧은 정절 지키는구나 / 여시보견정

강물에 흘러가는 나무 등걸[류사]

어느 산의 고목이 뽑혀서 / 하산발고목
강물에 떠내려 오는가 / 표탕하강류
알지 못하겠네 며칠이 걸려 / 불지능기일
천진에 도착할 수 있을지 / 귀도천진두

여씨의 강가 정자에 올라 여강에서 읊은 것이다 [등여씨강정 여강]

높은 정자 아스라이 찬 강물 가에 섰나니 / 위정표묘침한강
일대의 풍광이 팔방에서 빙 둘러쳤어라 / 일대풍광옹팔창
백구 한 점이 가벼이 날아 상쾌한 흥 보태고 / 구점경경첨상흥
기러기 행렬이 줄 지어 가 시상을 어지럽히네 / 안행진진란시강
여울 소리 철썩철썩 은하수가 떨어지는 듯 / 탄성석력천하락
산의 형세 울뚝불뚝 지맥이 내려앉은 듯 / 산세층등지맥강
이 중에서 한가히 보매 어느 경치가 가장 좋은가 / 개리한첨수최승
황포 돛이 탈없이 가을 배에 걸려 있는 것일세 / 포범무양괘추쌍

갑자년(1624) 겨울에 두성의 혼사로 횡성에 가며 쌍령 도중에서 짓다[갑자동이두성혼사왕횡성쌍령도중작]

깊은 산길이 적적한데 / 적적심산로
주린 까마귀 고목에서 우누나 / 기오고수제
나그네 길 오늘 밤에는 / 객행금일석
어느 곳에서 묵을거나 / 하처가안서

지평 도중에 두성의 혼사로 횡성에 갈 때 지은 것이다. 이하 6수이다 [지평도중 이두성혼사왕횡성시소작이하육수]

막막한 높은 산은 끝없이 뻗어가고 / 고산막막행무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끝없이 흘러간다 / 대수유유거무궁
진종일 말 타고 가도 사람 보이지 않으니 / 경일휘편인불견
이 몸이 호중에 들어간 것 아닌가 하노라 / 차신의시향호중

이뢰를 건너고 갈령을 넘으며 지평에 있다. 한 시내에 아홉 나루가 있고 한 길이 아홉 구비이다 [도리뢰유갈령 재지평일천구도일로구곡]

아홉 구비 긴 시내 아홉 구비 비탈길 / 구곡장천구절파
도중에 흰 바위들이 삐죽삐죽 솟았구나 / 도중백석기차아
인생에 깊은 산 속 나그네 되지 말라 / 인생막작심산객
도깨비 광풍이 이곳에 유독 많으니 / 망량광풍차지다

갈령을 지나며[과갈령]

말 앞에 산봉우리가 우뚝이 솟았는데 / 유산돌올마전기
험준한 바위들이 내게로 떨어질 듯해라 / 유석금증향아락
처음 보아서는 길이 통하지 않을 듯하더니 / 초간홀약로불통
곧바로 나아가매 바위틈이 열려 기쁘구나 / 직진방흔암쇄벽
사방으로 뚫린 험한 돌길을 밟고 걸어 / 방통곡달답락각
진종일 산길에서 수십 리를 가노라 / 진일산정행수십
내 원컨대 천공이 두들기고 깎아서 / 아원천공하추착
험준한 길 숫돌처럼 평평히 깎아주기를 / 삭진기구평여지
그런 뒤에 시인 묵객들이 이곳에 오면 / 연후소인묵객도차지
시 읊느라 수염을 꼬아 끊으며 퇴고하다 / 음자년단정고추
채찍 드리운 채 말에 몸 맡겨도 넘어지지 않으리 / 신마수편능불지

저물녘 이정촌으로 가며 이정촌은 횡성 길가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만향리정촌 횡성로방촌명]

산의 숲 우거졌는데 시내는 상하로 흐르고 / 산목삼삼계상하
바위 산 우뚝한데 길은 동서로 나 있구나 / 암만촉촉로동서
우러러보면 그저 하늘 한 쪽만 보일 뿐 / 앙면지간천일편
알지 못하겠네 어느 곳에서 사람이 사는지 / 불지하처유인서

횡성을 보니 읍리가 넓게 펼쳐졌기에[견횡성읍리평광]

큰 산 긴 골짜기에 험한 길을 따라 / 태산장협로기구
종일 여윈 말 몰아 한 치 한 치 왔어라 / 경일리참촌촌구
읍에 나오매 드넓은 평지 보여 반가우니 / 출곽희견평지활
이 몸이 비로소 선계에 이른 듯하여라 / 황연신시도선구

횡성 김 교관의 별업에서 김 교관은 두성의 빙군인 김유이다 [횡성금교관별업 즉두성빙군금유]

어느 해에 여기 와 집을 지었나 / 하년래복축
별업이 이미 촌락을 이루었구나 / 별업이성촌
그대 복지에 사는 것을 보니 / 견군거복지
다시는 도원을 말하지 말아야겠군 / 무부설도원

역신을 보내며[송역신]

어린 종에게 역질 준 명신을 잘 만났나니 / 호치명신역소동
근래에 그대 예우한 것이 더욱 공손했었지 / 이래숭봉례미공
이제 술과 떡을 대접해 정성껏 보내노니 / 금장주병근상송
동서든 남북이든 마음껏 떠나가시구려 / 임거서남여북동

저물녘 동촌으로 가며 을축년(1625) [만향동촌 을축]

방초 우거진 긴 들판에 비 갠 경치 환한데 / 방초장교제경명
한 쌍의 백로가 앞 물 가에 앉누나 / 일쌍구로하전정
짧은 신발 낮은 모자로 절름발이 나귀 타고 / 단화저㡌건려상
시를 많이 읊어도 심정을 다 표현하지 못하겠네 / 다소청음불진정

봄날 정 좌랑을 방문하여 정 좌랑의 이름은 응운인데 시로 세상에 이름났다 [춘일방정좌랑 명응운이시명어세]

만학천봉은 온통 금수를 놓은 듯한데 / 만학천봉금수광
두 사람 격의 없이 앉아 술을 마시노라 / 일준상대량소광
현담을 나누느라 석양이 지는 줄도 몰라 / 현담불각사양진
허겁지겁 말을 타고 긴 협곡길 나온다 / 망착귀편협로장

저물녘의 정취[모의]

어둑한 빛이 남쪽 골짜기에 일고 / 명색생남곡
갈까마귀는 먼 산으로 날아가누나 / 한아도원잠
처마 아래 시름겨워 홀로 섰노라니 / 모첨수독립
초승달이 동쪽 숲에서 떠오르누나 / 신월출동림

솔잎과 국화를 복용하며[복송국]

흰 해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니 / 백일서부동
한 해는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아라 / 년광약류수
젊은 얼굴이 어느덧 늙어졌으니 / 소안각성로
이 생애 어찌 장구히 살 수 있으랴 / 차생녕구시
날아오르는 신선술 배우고 싶지만 / 욕학비승술
단약을 만들기가 쉽지 않구나 / 단사미이조
불사하는 신선술 배우고 싶지만 / 욕학불사법
호흡하는 도를 얻기가 어려워라 / 구허난득도
애오라지 늙음을 물리치는 약으로 / 료장각로제
솔잎과 국화를 때로 복용하노니 / 송국시능복
늙는 나이는 끝내 붙잡을 수 없고 / 퇴령종미□
젊음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어라 / 부소유가득

그리운 사람[소사]

저물녘 빗줄기가 산촌을 덮으니 / 산우멱모촌
병든 나뭇잎이 앞뜰에 떨어진다 / 병엽추전정
귀뚜라미는 뜰 가에서 울어대고 / 추공정제명
들국화는 울타리 가에 푸르구나 / 야국리변청
빈 집에 홀로 편안히 앉았노니 / 허당독의석
그리운 사람은 먼 길에 있어라 / 소사재원도
한 통의 서신을 부치고 싶지만 / 욕기일봉서
남쪽 하늘 아래 물결이 드넓구나 / 남천파호호

산비[산우]

산바람은 시내에서 울고 / 산풍명간곡
산비는 길게도 오는구나 / 산우도래장
들판 저편에서 늦더위 물리치고 / 야외오잔서
처마 끝에서 저녁 서늘함 보내온다 / 첨단송석량
서책을 때로 읽을 만하고 / 간편시가열
거문고 술도 즐기기 좋아라 / 금주차의장
원컨대 이 맑고 한가로운 생각을 / 원파청한사
자수하는 곳에다 전해 주었으면 / 장전자수장

산달[산월]

산달이 내 옷깃을 비추고 / 산월조아의
산바람이 내 두건에 불어온다 / 산풍취아책
산보하며 뜰을 둘러보니 / 산보요정제
흰 이슬이 소나무 아래 떨어지네 / 백로송하적
옛날에도 서늘한 가을 노래했던 / 면억영량천
고인의 심정이 나와 꼭 같구나 / 고인심일계
이런 까닭에 군자는 / 소이군자인
천백 년 위로 상우하는 게지 / 상우천백세

백로음[백로음]

아침에 백로가 동쪽으로 날아가더니 / 조간백로동비거
저녁에 백로가 서쪽으로 날아 돌아온다 / 모간백로서비환
날아오고 날아가는 건 결국 무슨 뜻인가 / 비래비거경하의
아침저녁 구름 낀 물가에서 물고기 노리누나 / 조모규어운수만
물고기 노리는 데 너무 열중하느라 / 규어여불급
네 자신이 편안하지 못해 보인다 / 견여신무안
물고기 노리기를 그칠 수 없으니 / 규어불가지
이는 목숨이 달린 것이기 때문이지 / 소이구명관
사람으로서 새만도 못하여 / 인이불여조
편안히 누워 늘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린다 / 언와장기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림은 괜찮지만 / 기한불족휼
그저 이 몸이 늘 한가하길 바라노라 / 단원신장한
한가함이 백로보다 낫다면 / 신한승백로
평생 무엇이 즐겁지 않으리오 / 일생하불환

가을에 심 척장의 유거를 방문하여 심 척장은 이름이 전인데, 뒤에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추일방침척장유거 명전후위동지]

집은 그윽하고 산세가 험하니 / 댁유산세조
티끌세상과는 아주 멀어졌구나 / 진세영상망
원숭이와 학은 풍상에 늙어가고 / 원학풍상로
소나무 대나무는 세월 속에 자란다 / 송황세월장
주렴을 여니 푸른 소매가 가깝고 / 개렴취수근
걸상을 쓰니 푸른 구름 서늘해라 / 소탑벽운량
본래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세계이니 / 자시홍황계
누가 이 은거하는 곳 찾아올 수 있으랴 / 수능방우장

초여름에 사신사를 유람하며 초천현 남쪽 태을산에 있다 [초하유사신사 재초천현남태을산]

말을 타고 산림 속에 들어가 / 기마입산림
비로소 초제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 시섭초제경
산에 날씨 맑으니 햇빛이 환하고 / 산청일색경
시냇가 나무 맑은 그림자 흔들려라 / 간목요청영
돌길은 이끼가 끼어 미끄럽고 / 석경태선활
바위 모서리는 칡넝쿨이 빽빽하구나 / 암각등라밀
구름은 산에 자욱한데 / 운관정심수
절은 산속 깊은 곳에 있어라 / 선관장산격
승려는 스스로 한가로워서 / 거승자한일
길손을 보고도 곤란한 기색 없네 / 견객무간색
산사 주방은 음식 없어 부끄러우니 / 산주괴무식
그저 다과만 상 위에 올려왔구나 / 다과진상전
현담을 오랫동안 나누다 보니 / 현담구불염
태양이 서쪽으로 떨어지는구나 / 요령수서연
집에 돌아갈 생각이 급해지니 / 모첨귀사박
속세 몸이라 속세가 그리워진다 / 예수최진심
집에 돌아와 소금을 어루만지는데 / 귀래무소금
등라 사이로 달이 동림에 떠오르네 / 라월생동림

이 정자 보가 방문했기에[리정자 보 견방]

푸른 창 아래 서로 마주해 / 상대벽창하
맑은 용모 사랑스레 보노라 / 애간미우청
회포를 토로할 제 간담이 드러나고 / 토회간담로
일을 논할 때는 귀신이 놀랄 정도 / 론사귀신경
준걸인 그대는 시무를 알건만 / 준걸지시무
무능한 나는 세정에 싫증나네 / 소용염세정
은근한 정 나누는 오늘밤 만남 / 은근금석회
좋은 우정이 평생에 이어지길 / 란계백년성

동쪽 집의 분국[동가분국]

서리 뒤에 노오란 한 섬의 금수염 / 일곡금자상후황
높은 풍모 빼어난 절조 침상을 마주했네 / 고표일조대한상
부탁하노니 그대 아름다운 꽃송이 꺾어서 / 빙군막절황황타
술병 앞 소매 가득한 향기를 줄이지 마오 / 감각준전만수향

늙은 잣나무[로백]

일만 골짜기에 풍상이 무겁고 / 만학풍상중
일천 산에는 초목이 시들건만 / 천산초목조
뜰 앞에 몇 가지 잣나무만은 / 정전수지백
홀로 세한의 자태를 지키누나 / 독보세한조

송십사장 집의 벽에 걸린 그림에 제하다 송십자장의 이름은 규이다 [제송십사장벽간화 명규]

바위틈의 꽃은 늘 지지 않고 / 암화장불락
산새는 지저귀어도 소리가 없다 / 산조어무성
꽃 지고 새 소리 들릴 때까지 / 화락조성란
그대 길이 술 마시며 한가롭기를 / 청군장취성

가을날에 서쪽으로 간 벗을 생각하며[추일억서유우생]

서리 내리는 하늘에 기러기 소리 / 상천문일안
외로운 밤에 이별 회포가 새롭구나 / 독야회별신
만 리 밖 등잔불 앞에 있을 나그네 / 만리등전객
삼추라 이 가을 말 위에 있을 사람 / 삼추마상인
오랜 시일 산 넘고 물 건너며 / 의상경발섭
책과 검을 늘 지니고 다니겠지 / 서검구상친
그 언제나 글을 토론하던 곳에서 / 하일론문지
술잔을 놓고 그간의 고생 얘기할꼬 / 개준도고신

저물녘 협곡을 지나며[협중만행]

협곡 안에는 가을도 이미 다해 / 협중추기진
서리 맞은 잎이 누렇게 흩날리누나 / 상엽이황비
여우와 토끼는 빈 숲에서 달아나고 / 호토림공주
용과 뱀은 물이 빠져 드물어졌다 / 룡사수락희
돌배는 붉은 열매가 보이고 / 당리홍견실
넝쿨은 푸른 빛으로 싱싱하여라 / 등자록증비
석양의 흥취를 맘껏 누리다가 / 령득사양흥
말 등에 몸 내맡기고 돌아가누나 / 수편신마귀

시내의 돌[계석]

푸르고 누른 빛 돌이 있는데 / 유석청황색
그 모습 무어라 비길 데 없어라 / 형용무비륜
봉우리 같지만 삐죽하지 않고 / 여봉비초준
산줄기 같지만 가파르지 않구나 / 사악불린순
한 구멍이 가운데 쪽에 뚫렸고 / 일혈통중곡
세 모서리 고르게 겉을 깎은 듯 / 삼우삭외균
계곡 속에서 오래 정기가 모여 / 응정계학리
물결에 떠돈 지 몇 천 년이런가 / 표전기천춘

북을 치며[격皷]

가을 산 아래서 북을 쳐서 / 격고추산하
둥둥 울리며 백신을 제향한다 / 감감향백신
완구는 좋은 제사가 아니고 / 완구비호사
촌사는 그 제사가 정결하여라 / 촌사사명인
무당을 따라 신을 맞이하고 보내며 / 영송수령격
제사 정성은 마을 사람에 맡겨둔다 / 건성임토인
굴평이 지금 있지 않으니 / 굴평금불재
누가 새 죽지사를 지을꼬 / 수작죽지신

참새[유작]

참새가 뜰의 나무에 날아와 / 유작래정수
가만히 앉아서 달아나지 않네 / 안정불피구
지저귀며 깃들 곳 있음을 기뻐하고 / 개개흔유탁
자득하여 몸 온전함을 즐거워한다 / 득득하전구
비록 기심을 잊은 사람 만났더라도 / 종우망기객
모름지기 색거의 근심을 가져야지 / 수존색거우
세간의 무한히 많은 손들이 / 세간무한수
모두 활을 잡고 있으니 / 개시협탄도

남한산성 중수 2수 ○광주에 있다. 인조반정 후 훈신 이서 등이 건설하고 중수했다. 병자호란 때 성상이 이 성에 들어가 겨울부터 봄까지 고수하다가 강화를 맺은 후 어가가 환도하였다 [남한산성중수 이수 ○재광주반정후훈신리서등䢖설중수병자란주상입성자동지춘고수강화후차가환도야]

천년의 땅에 우뚝한 옛 성첩 / 고첩천년지
중수한 조정의 생각 훌륭하구나 / 중수묘산장
성 둘레는 칠 리가 족히 되고 / 주조칠리족
한 사내가 막을 험준한 요새로다 / 위험일부당
샘물은 삼군이 마실 만큼 넉넉하고 / 천부삼군흡
창고에는 백전을 치를 군량 쌓였지 / 창영백전량
인화에다 지리까지 겸하였으니 / 인화겸지리
어찌 강하지 않다 할 수 있으랴 / 안득불운강

백이의 금성이 정녕 험준하니 / 백이금성험
천추에 영원히 무너지지 않누나 / 천추구폐황
뉘라서 국가의 운명 이어서 / 수능면국보
옛 요새인 이 성을 중수했는고 / 중설고관방
흰 성가퀴는 높아 하늘에 닿고 / 분첩릉소한
붉은 누각은 가파른 벼랑에 섰네 / 단루의절강
목숨 바쳐 지킬 충신이 많으니 / 신신다효사
외적을 반드시 무찌를 수 있으리 / 관적필감당

수리산 수리사에 묵으며[숙수리산사]

지팡이 짚고서 산사에 오니 / 장석래산사
사는 중 한 명에 정갈하여라 / 거승일쇄연
숲의 바람은 밤에 송뢰 울리고 / 림풍명야뢰
소나무에 뜬 달은 매미를 벗하네 / 송월방한선
묘함을 없애도 향은 외려 묘하고 / 거묘향유묘
마음이 깊으니 도가 곧 깊어라 / 심현도즉현
여기서 홀연 이 세상을 잊으니 / 홀언망세계
연화로 생긴 병이 낫는 듯하여라 / 연화병여전

번민을 달래며[자견]

솔잎과 눈을 먹을 겨를 없으니 / 미가찬송설
연화의 창자를 치료하기 어렵구나 / 수차연화장
검은 티끌이 흰 옷을 더럽히고 / 치진의염소
흰 머리털이 검은 살쩍에 들어오네 / 백발빈침상
세상 득실은 광가를 부르며 잊고 / 득실광가외
일신 영고는 통음을 하며 잊는다 / 영고통음방
저 좋은 천명을 즐길 뿐이니 / 악부천명호
무엇하러 서둘러 다니리오 / 하필갱황황

기와[도와]

흙을 깎아 기와를 구워서 / 착토번기와
지붕을 이어 눈비를 막는다 / 개위방우설
사람이 맨땅에 거처하면 병드니 / 인생토처병
그래서 집을 짓는 것이지 / 소이위우실
훌륭해라 옛날의 성스런 왕들은 / 의여고성벽
그 거처가 매우 비좁았건만 / 기거단용슬
어이하여 지금 세상 사람들은 / 여하금세인
필부들도 모두 큰 집을 짓는가 / 필부개하옥
푸른 기와를 인 천만 칸 집들이 / 벽와천만간
산골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구나 / 련영만산곡
기와 굽는 일 이로부터 많아지니 / 와공자차다
번거롭고 바쁘지 않을 수 있으랴 / 득불번차극

사냥매[구응]

푸른 매가 날개를 가다듬으니 / 창응정신핵
드높은 기상이 창공을 찌르누나 / 일기릉창궁
수호 같은 눈 번개처럼 움직이니 / 수호목광질
온갖 새들 비명 지르며 달아난다 / 백조비군공
아아 사나운 맹금의 성질로 / 차재지조질
오래도록 사냥꾼에게 부려지니 / 구위구상궁
만 리를 날 뜻 없는 게 아니나 / 비무만리지
줄에 묶인 몸임을 어이하리오 / 내차조선장
누가 능히 나의 속박을 풀어서 / 수능해아혈
날개를 저어 날 수 있게 해줄꼬 / 거핵능비양
위로는 높은 하늘의 붕새를 쳐서 / 상격구소붕
털과 피가 바람에 흩날리게 하고 / 모혈표풍간
아래로는 깊은 숲 속 범을 쳐서 / 하격장림호
잡은 짐승들 산처럼 많이 쌓아두어 / 적취여구산
한편으로는 주인에게 보답하고 / 일능보주인
한편으로는 내 가슴 후련히 풀고 / 일능쾌심억
돌아와 마음껏 주린 창자 채우고 / 귀래임기포
내 뜻대로 바윗골 어디로든 가련만 / 암학종오적

유 족장의 집 벽에 걸린 이 정자의 시에 차운하다[류족장벽간차리정자운]

암랑에서 육식하는 것은 운명에 달렸으니 / 육식암랑명소관
지금은 초야에 은거하여 늙어가시네 / 우장금일로구산
창에 달빛 밝은 제 도사의 시 읊조리고 / 시창월백음도사
휘장에 맑은 바람 불 때 공안의 책 읽는다 / 서황풍청대공안
농사일 마쳤을 때 술 마시기가 참 좋고 / 농정파시상정호
고담을 쉴 때에는 수담이 한가롭도다 / 고담휴처수담한
속진의 발자취가 형문 밖에 이르지 않아 / 진종불도형문외
푸른 바위 사이 돌길을 실컷 볼 수 있어라 / 승견창암석경반

돌개바람[회풍]

돌개바람 쏴쏴 산골짝에서 일어나니 / 회풍석석기산곡
유수처럼 빠르고 말처럼 치달리누나 / 질여류수치여마
긴 숲에는 우수수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 장림알알용지가
낙엽들이 휘돌면서 어지러이 떨어지네 / 락엽회회경부하
이 늙은이 나가 보고는 그만 겁에 질려 / 로부출간겁충습
옷깃 여미고 황급히 달려 집에 들어온다 / 섭의황황추입문
잠깐 사이 불어와 지붕의 이엉에 부딪쳐 / 수유래촉옥상모
이엉을 곧바로 하늘 높이 날아올리누나 / 직상모옥간천운
천지를 경륜하는 기운이 자못 많으니 / 경륜천지기파다
동서남북 모두에 미치는 풍화가 있어라 / 서북동남개유풍
동남풍은 만물을 기르는 바람이요 / 동남풍속장만물
서북풍은 농사를 이루는 바람이건만 / 서북풍능성세공
아아 이 북풍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 오호북풍자하방
이 바람은 없어야지 있어서는 안 된다 / 차풍가무불가유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 군불견
그 옛날 요순(요순)의 시대에는 / 당우상세
온화한 바람 단비에 백곡이 잘 여무니 / 화풍감우백곡등
이러한 북풍은 그 당시 불지 않았으리라 / 차풍기시응불후

을축년(1625)에 큰 풍년이 들었기에[을축세대유년]

올해는 큰 풍년이 들었으니 / 금년대유추
쌀 한 말이 베 한 자 값이로세 / 두미포일척
사방에서 백성들은 즐거워하고 / 사경민환우
조정에는 창고가 넉넉하여라 / 조가창름족
그 누가 정치를 잘하였기에 / 수능섭리선
이러한 아름다운 상서 이루었나 / 치차가상진
위로는 주선과 같은 임금 계시고 / 상유주선군
아래에는 방소와 같은 신하 있어라 / 하유방소신
군신이 한 자리에서 도유하니 / 도유일당상
온화한 바람이 천지에 가득 불어 / 화풍분인온
단비가 되어서 단비를 내리니 / 화감주감주
팔방이 한 구름 은택을 입었어라 / 팔방동일운
높은 땅과 낮은 땅 가릴 것 없이 / 오사급구구
오곡이 논밭에 가득 여물었구나 / 화가영전주
지붕 이엉처럼 수레 채장처럼 / 여자차여량
집집마다 곡식이 쌓여 있어라 / 양양만가실
아아 이 늙은 몸이 / 우차로부신
태평한 날을 다시 보게 됐구나 / 부견함포일
임금을 근심함이 바로 농사 때문이니 / 우군정위차
군국이야 말할 필요가 있으리오 / 군국하수설

호드기 소리를 듣고[문가]

어디에서 부는 호드기 소리인고 / 하처금가동
물 서쪽 건너서 맑은 소리 들려온다 / 청음격수서
바람에 섞여 끊어졌다 이어졌다 / 화풍문단속
달빛에 끌려 다시금 높았다 낮았다 / 야월경고저
고향 떠난 나그네는 눈물을 닦고 / 식루리방객
멀리 아내를 생각하며 탄식하노라 / 흥차억원처
새벽녘에 와선 백설이 불어오니 / 효래취백설
서리 기운이 더욱 싸늘하구나 / 상기전처처

대나무를 북돋워주며[봉죽]

푸른 대가 본래 외롭고 곧으니 / 록죽본고직
굳센 절개는 겨울 여름이 없어라 / 경절무동하
군자의 절개에다 비겨 본다면 / 비지군자인
고락에도 관계없이 변치 않는 게지 / 이험무불가
그래서 내가 차군을 사랑하여 / 이아애차군
옮겨 심은 지 세월이 지났어라 / 이재경세월
낯선 땅에 외로운 뿌리 내리니 / 고근탁이토
가지와 잎이 무성하기 어렵지 / 지엽난무밀
한여름에도 쑥쑥 자라지 못하거니 / 성하불수수
한겨울에 하물며 울창하리오 / 륭동황울울
서리 찬바람이 한창 매서우니 / 상풍정름렬
푸른 잎이 죄다 시들고 말았네 / 록엽진위이
아아 세한의 자태가 / 차재세한자
여느 초목처럼 누렇게 잎 지지만 / 황락동중목
누른 잎 떨어짐이 어찌 그 본성이랴 / 황락기기성
제 땅을 떠나 제 본성이 다친 게지 / 리토상기천
아이를 불러서 낙엽을 긁어모아 / 호동취목엽
튼튼하게 뿌리 쪽을 북돋워주어 / 복봉완차견
이에 그 뿌리를 따뜻하게 해서 / 어언난근본
추위에 얼어 죽지 않게 하노니 / 사면한동렬
봄이 와도 행여 죽지 않는다면 / 춘래당불사
틀림없이 용손이 나올 수 있으리 / 정득룡손출
용손이 만약 크게 잘 자라면 / 룡손약장성
서리와 눈 이기는 지조 볼 수 있고 / 가견릉상설
내 죽지 않고 오래 산다면 / 오생구불사
해마다 그 열매를 먹을 수 있으리 / 세세담기실

겨울밤에 정공과 유숙하며 얘기를 나누다[동야여정공류화]

오랜 이별 끝에 다시 만난 밤 / 활별중봉야
외로운 등잔불 하나 차가워라 / 고등일수한
회포 있어 깊은 정 토로하지만 / 유회심견토
술이 없어 즐겁게 놀 수 없구나 / 무주불성환
백설을 읊는 건 얼마나 괴로운가 / 백설음하고
청춘은 머물러 두기 더욱 어려워라 / 청양주경난
그대는 자기 재능 드러내지 않으니 / 탄군수자현
빈 골짜기에 그윽한 난초만 늙어간다 / 공곡로유란

콩죽[두죽]

동짓달에 서리 눈이 내리니 / 부월상설지
농가에는 월동 준비를 마쳤다 / 전가한사필
오지 솥에는 콩죽이 끓는 소리 / 와부명두죽
먹으니 그 맛이 꿀처럼 달구나 / 식지감여밀
한 사발에 땀이 조금 나고 / 일완경한출
두 사발에 몸이 훈훈하여라 / 이완온기발
아내와 자식들을 돌아보며 / 상고어처노
이 맛이 깊고도 좋다고 했더니 / 차미심차장
아내와 자식들은 웃고 돌아보며 / 처노소상고
밥상에 고량진미가 없다고 하네 / 반선무고량
고량진미를 어찌 말할 수 있으랴 / 고량안가설
육식은 무상한 것임을 아노라 / 육식지무상

남의 상여를 보고 감회가 일어[견인령여유감]

십 리라 황량한 마을은 먼데 / 십리황교원
황천길을 인도하는 해가 소리 / 해가인로장
유소는 금빛 봉황이 토하고 / 류소금봉토
푸른 깃발에 채색이 빛난다 / 유벽채휘
흰 운삽(운삽)은 찬 달빛에 흔들리고 / 소삽요한월
붉은 명정(명정)은 새벽 서리에 나부낀다 / 단정불효상
사람이 살다 이 날에 이르면 / 인생도차일
만사가 그만 망양인 것을 / 만사이망양

안 좌랑 병풍에 석양군이 그린 바람 불 때의 대나무ㆍ비 올 때의 대나무ㆍ서리 맞은 대나무ㆍ눈 속의 대나무ㆍ죽순ㆍ떨기 대나무ㆍ고죽ㆍ어린 대나무ㆍ마른 대나무ㆍ늙은 대나무 등 열 종류의 묵죽을 보고 안 좌랑은 바로 안홍중이다. 종실 석양군이 묵죽을 잘 그렸다 [견안좌랑병간석양군소화풍우상설순총고눈고로십종묵죽 좌랑즉안홍중야종실석양군선묵죽]

병풍에 그린 열 가지 묵죽 / 십종병간죽
높은 품격이 저마다 좋구나 / 고표면면의
바람이 오면 서늘한 기운 일고 / 풍래생삽상
비에 흠뻑 젖어 드리워진 모습 / 우중색리피
눈이 눌러 옥가지 나직하고 / 설압저경초
서리가 맑아 옥가지 빛나누나 / 상청영옥지
용처럼 늠름한 풍모 맘에 들고 / 순룡련위표
추위에도 푸르른 절개 사랑하노라 / 고절애한자
어린 잎은 새로운 자태를 머금고 / 눈□함신태
떨기 가지는 푸른 장막 울창해라 / 총조울취유
마른 몸이 그래도 우뚝 섰고 / 고형유삭립
늙은 줄기는 여위었건 말건 / 로간임구쇠
이를 그린 공자 훌륭하여라 / 쇄묵다공자
그림이 터럭만큼도 틀림이 없구나 / 호리득불차

밝은 달이 방문에 들어오기에[명월입호]

밝은 달이 방문에 들어오니 / 명월입호유
맑은 빛이 방 안에 가득해라 / 청광만일실
마치 수정처럼 맑게 보이고 / 간여수정형
마주하면 빙호처럼 깨끗해 / 대약빙호결
정신이 맑고 뼛속도 서늘해져 / 혼청골역랭
밤이 새도록 잠이 오지 않누나 / 철야무몽매
뉘라서 능히 옥황상제께 아뢰어 / 수능주옥황
달빛이 늘 이대로 변치 않아서 / 월색장불이
하늘에는 그믐과 초하루가 없고 / 상천무회삭
땅에는 어둡고 캄캄함이 없으며 / 하지무혼묵
깊은 산 외진 골짜기 속에도 / 심산궁곡중
밝고 밝기가 대낮처럼 환하여 / 교교명여주
두억시니는 자취를 감추고 / 리매둔기적
도깨비는 끝내 멀리 도망쳐 / 망량종원주
천하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 능령천하신
암흑 속 사람이 안 되게 할꼬 / 물작장야인

흐르는 강물[강류]

질펀하게 동쪽으로 흐르는 물 / 양양동류수
어느 때 서쪽으로 다시 돌아올꼬 / 하시서부환
천 이랑 대해를 향해 흘러가며 / 조종천경해
만 겹의 산들을 휘감아 도누나 / 회호만중산
몇 곳의 나루 정자 지나가며 / 기처진정과
이별의 눈물이 많이 보태졌을까 / 다첨별루잠
이 봄 들어 빗줄기를 보소서 / 춘래간우각
흘러간 네가 돌아온 줄 아노라 / 지이태태태

시냇가에서[천상]

사람들은 시냇물을 보고서 / 중인견천수
돌아오지 않는다 슬퍼하지만 / 도상불부환
나는 이 물 돌아오는 것이 / 오위차수환
며칠 내로 빨리 돌아오리라 여긴다 / 속재수일간
하늘이 시냇물을 치면 / 상천격천수
시냇물이 말라 없어지지만 / 천수학차갈
잠깐 사이에 비가 퍼부으면 / 수유우번복
시냇물이 다시 넘쳐 흐른다 / 천수부창일
하늘의 도는 진실로 이와 같으니 / 천도구여차
만물은 아주 가는 이치가 없어라 / 물무거진리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 군불견
소낙비가 지나갈 때 잉어가 떨어지는 것을 / 취우과시추소리
물이 하늘로 안 올라갔다면 물고기가 어찌 떨어지리오 / 수불상어기추

제비가 와서 둥지를 틀기에[연래소]

한 쌍 두 쌍씩 제비들이 / 일쌍양쌍연
처마와 방문을 날아서 돈다 / 비비요렴호
진흙을 물고 나날이 와서는 / 함니일부일
튼튼하게 제 집을 지었구나 / 작루완차고
어느 곳인들 깃들 나무 없으랴 / 하소독무목
감히 내 집에 와 둥지를 트느냐 / 감래소아옥
근일에는 너 때문에 자주 놀라니 / 근일수경공
정신이 바싹 타는 것 같구나 / 령연차훈작
아아 제비와 내가 / 우차물여아
저마다 몸 깃들일 곳이 있나니 / 탁신개유소
나 또한 늘 인에 의거하여 / 오역의어인
춥고 굶주려도 떠나지 않는다 / 한기차불거

검의 노래[검가]

검의 시의가 원대하니 / 검지시의원의재
검의 쓰임이 오늘과 같지 않았도다 / 검지위용비금사
창룡검은 아득한 옛날 갈천이 주조한 것이고 / 창룡원출갈천주
설악검은 또 헌황이 남긴 것이라지 / 설악우득헌황유
철주의 정기 흐려지니 두 마리 용이 나오고 / 철주륜정량룡출
검광이 움직였다 하면 삼군이 패주했네 / 성문동색삼군피
모공은 검을 잡고 나아가 초왕을 위협하고 / 모공안진겁초왕
계자는 서나라로 돌아갈 때 묘소 나무에 검을 걸었어라 / 계자환서현묘지
풍생은 기이함을 좋아해 검 자루를 어루만졌고 / 풍생호기무괴구
조나라 사신은 부유함을 자랑해 주옥으로 장식했지 / 조사과부장주옥
진왕이 한 번 잡으매 제후가 서쪽으로 오고 / 진왕일안제후서
연객이 싸서 돌아오니 밝은 해가 캄캄해졌지 / 연객도귀백일흑
항왕은 한 사람 대적하는 것을 배우지 않았고 / 항왕불학일인적
맹씨는 필부의 일이라 능히 말했었네 / 맹씨능언필부사
대택에서 뱀을 베어 죽여 제업을 이루었고 / 참사대택성제업
말을 죽여 제단에 올리고 토지를 나누었지 / 형마교단렬토지
돼지 어깨죽지를 썰어 먹으니 장사라 일컬었고 / 절식돈견칭장사
군중에서 일어나 검무 추니 용호가 노한 듯했네 / 기무군중룡호노
홍문에서 연회를 마치자 옥두를 때려 부수었고 / 연파홍문당옥두
남궁에서 술 취하여 다투다 기둥을 쳤지 / 주감남궁쟁격주
소하는 총애를 입어 어전에도 차고 갔었고 / 소하유총대상전
동방삭은 해학을 하며 고기를 잘라 먹었지 / 방삭해회능작육
충신은 보검을 빌려 영신의 목을 베고자 했고 / 충신욕차단녕신
영주는 책상을 찍어서 강한 적을 무찔렀어라 / 영주작안파경적
장군이 검으로 산을 가리키니 산에서 샘이 솟고 / 장군지산산출천
열사가 검광을 날리니 구름 색깔이 변했으며 / 렬사양망운변색
용광은 위로 두우 사이를 쏘고 / 룡광상사두우간
신물은 마침내 연평 안에서 합쳤어라 / 신물경합연평리
몸을 막는 것은 멀리 두초당을 사모하고 / 방신원모두초당
검무를 잘 추기로는 공손씨를 일컫는다 / 선무묘칭공손씨
촉 땅의 검각(검각)이 우뚝하니 이름이 헛되지 않고 / 촉각쟁영명불허
이씨 심보 사악함은 무엇으로 비길 수 있을까 / 리복섬사능취비
고운 여인이 검무 배우매 남의 간장을 끊고 / 선연능학단인장
천자라는 이름 참으로 까닭이 있어라 / 천자지명진유이
헤어질 때 증표로 주니 누가 불평하랴 / 림분파증숙불평
이별 아쉬워 미소 띠니 귀신이 시름한다 / 석별함소수신귀
허리에 찬 늙은 물건은 광채를 움직이고 / 요간로물동광망
소매 속에 푸른 뱀은 담기가 크도다 / 수리청사추담기
천하에 검을 잡은 사람 분분히 많으나 / 분분천하악검다
몇 명의 남아가 강개한 의분 풀었나 / 기개남아터강개
나도 한밤중에 검을 어루만지는 사람이니 / 아역중야무검인
한 번 용천검을 잡고 변방을 평안케 했으면 / 일파룡천평사새

새벽의 일[효사]

금계가 울어 그치지 않으니 / 금계명불이
하늘 가득한 별들이 지는구나 / 만천성두락
집집마다 등잔 불꽃 피워놓고 / 가가등화료
시골 아낙들이 길쌈을 하누나 / 촌부사방적
산골 아이는 소를 먹이려고 / 산동역반우
오지솥에다 콩깍지를 삶는다 / 와부팽두각
이윽고 소죽이 다 익으니 / 기이란우식
소가 죽을 먹는 소리 들리네 / 문죽□□죽
소의 음식 소홀히 해선 안 되나니 / 우식불가홀
우리 집이 그의 힘으로 먹고 사는 것을 / 농가식기력

질풍[질풍]

질풍이 불어 초가지붕을 걷으니 / 질풍권부옥
밝은 해도 얼어붙었나 빛이 없어라 / 백일동무색
사방 들판에는 시냇물이 말랐고 / 사야천택학
하늘과 땅에는 기운이 막혔구나 / 천지기폐새
이러한 때에는 마음이 울적해져 / 차시소환의
문 닫고 들어앉아 나가지 않노라 / 폐문신불출
오직 정녀만 가까이할 수 있고 / 유능근정녀
찬 샘물을 끓이는 것만 일삼을 뿐 / 단사팽한천
청한하기가 한 번 취하기보다 나으니 / 청한승일취
성현을 잔으로 따르려 하지 않노라 / 불구짐성현

쇠병[쇠병]

회상하노니 스무 살 소년 시절에는 / 억석소년이십시
기력이 강하고 피부도 탱탱하였지 / 기력강강기부실
만 권 서적을 읽느라 시일이 부족하고 / 수간만축일불급
높은 바위산 오를 때도 걸음이 빨랐네 / 척강천암행보질
그러나 지금은 쉰 살이 다 되어 노쇠하니 / 이금쇠병근반백
엉성한 흰 머리털이 양쪽 귀밑 덮었어라 / 소발소소피량빈
마을에선 가는 곳마다 겉으로만 존경하고 / 향린도처편양존
술자리나 기생집에서 모두 싫어하누나 / 주석화장개견빈
동촌에 고맙게도 좋은 시벗이 있어서 / 동촌뢰유호시붕
달 밝은 밤이면 늘 한가한 정을 토로한다 / 매파한정론월석
고아한 노래 한 곡조에 귀신이 있으니 / 고가일곡유귀신
세월이 간다고 늘 시름에 잠기지 않노라 / 막용류년장척척

바람이 쏴쏴 불어[풍절절]

아침에 보니 구름 색깔이 검더니만 / 조첨운색흑
저녁에 보니 하늘에 해가 나왔어라 / 만견천일출
이윽고 싸락눈이 조금 내리더니만 / 아간미산령
다시금 바람 소리 쏴쏴 들리누나 / 부문풍절절
어이하여 겨우 하루 사이에 / 여하일일간
기상이 천만 가지로 바뀌는가 / 기상천만상
천지에는 기운이 오르내리고 / 천지기승강
음양이 서로 부딪치며 뒤바뀌니 / 음양자상탕
맑고 흐림 조석으로 달라지고 / 음청이조석
밝고 어둠 잠깐 사이에 나뉜다 / 명암사수간
아아 조물주의 권능이여 / 차재조화권
참으로 크니 누가 범할 수 있으랴 / 호대수능간

따스한 겨울 날씨[동난]

골짜기 어귀에 바람이 따스하니 / 곡구풍습습
겨울인데도 얼음과 눈이 적구나 / 현동소빙설
시내에는 물이 흐를 판이고 / 천중수욕달
산길에는 미끄러운 진창 많아라 / 산경다니활
흡사 이월 날씨 같아서 / 혼여이월천
풀 위에 아지랑이 보이누나 / 초두간야마
음양이 어긋난 것이 아니라 / 불시음양건
겨울이 따스해야 풍년이 든다네 / 년풍재동난
겨울이 따스해야 풍년이 드니 / 년풍재동난
절후를 따져서 무엇하리오 / 절후하족산

‘눈을 감음과 입을 닫음’을 우연히 기억해 시를 지어 자식들에게 보이다[이합안함구우기시제자]

눈을 감음은 양생하는 일이요 / 합안양생사
입을 닫음은 보신하는 방도로다 / 함구보신도
우뚝한 저 선각자들께서는 / 탁피선각인
이 두 가지가 좋음을 아셨네 / 지사이자호
내가 이 도리를 실천한 지가 / 오능행차도
지금에 어언 삼십 년인데 / 어금삼십년
늙은 나이에도 머리털 검고 / 년쇠빈발흑
혼란한 세상에도 목숨을 보전했네 / 세란구명전
아아 너희 어린 자식들아 / 차차소자배
이 지극한 말을 잊지 말라 / 물체사언지
이 말을 혹 믿지 못하겠거든 / 사언당불신
이 늙은 아비의 경우를 보거라 / 청간로부사

눈이 내릴 듯[설욕락]

참담하게 숲의 나무들이 울고 / 참참림목명
쏴쏴 바람이 계곡을 흔드누나 / 수수계곡동
음산한 하늘에 눈이 내릴 듯 / 음음설욕락
어둑어둑 산색은 얼어붙었어라 / 암암산색동
나무꾼은 낫질을 서두르고 / 초부절신급
목동은 소몰이를 재촉하네 / 목수구우촉
하늘이 아직 캄캄해지기 전에 / 태천미혼흑
아낙과 아이들 모두 방에 든다 / 부자개입실
산성에는 범과 표범이 많으니 / 산성다호표
날 저물면 집 밖에 나가선 안 되지 / 모야무경출

녹기[록기]

녹기가 가벼운 발을 구르며 / 록기돈경족
외양간 구유에서 길게 우누나 / 장명조력간
시국이 위태하니 치달리고 싶고 / 시위사빙력
세상 어려우니 큰 일 맡으려는 게지 / 세난임투간
빼어난 기운은 운해를 가르는 듯 / 일기횡운해
씩씩한 마음은 벌써 옥관을 지난다 / 웅심도옥관
뉘라서 능히 이 말을 타고서 / 수능과차마
치달려 연연산에 오를꼬 / 치상연연산

눈 내린 밤의 달[설월]

산에 뜬 달이 백설을 비추니 / 산월조백설
맑은 빛이 양쪽 다 청결하여라 / 청광량자결
사람들은 달이 눈을 비춘다 하고 / 인언월조설
다시 눈이 달을 비춘다고도 하네 / 부위설조월
이 두 말이 모두 분명치 않으니 / 이설개불명
같이 밝아서 서로 비추는 것을 / 동명자상조
같이 밝아서 서로 비추니 / 동명자상조
만고에 늘 교교히 밝아라 / 만고항교교

병인년(1626) 5월에 오랜 가뭄 끝에 큰 비가 내리기에[병인세오월구한대우]

산골 사람들이 가뭄을 걱정하니 / 협인우한기
논바닥이 죄다 거북 등처럼 갈라졌네 / 전주진구탁
호미를 메고 날마다 논밭에 가건만 / 하서일일귀
안타깝게도 벼와 기장 말라 죽었구나 / 화서민탁탁
봄 농사가 이미 아무런 효과 없거늘 / 동작이무공
가을 수확을 어찌 얻을 수 있으리오 / 서성안가득
때는 바야흐로 유월 초인데 / 시유륙월초
큰 비가 천 리에 걸쳐 내린다 / 대우긍천리
앞 시내에 홀연 물이 불어나더니 / 전천홀창일
흰 물살이 벌써 땅에 가득하구나 / 백수이만지
농부들은 만나서 서로 축하하고 / 전부우상하
장사치들도 길 가며 서로 기뻐한다 / 상려행상경
올해 농사도 지난해와 같아서 / 금년사거년
쌀 한 말 값이 삼사 전 밖에 안 되리 / 두미삼사전
이 늙은이는 따로 기쁨이 있으니 / 로부별유희
성현을 마시는 일 그치지 않는 것일세 / 불철짐성현

동쪽 시냇물이 불어난 것을 보고[관동계수창]

장맛비로 시냇물 불어나 / 적우계수창
시냇물이 한 자나 높아졌구나 / 계수일척상
세차게 흘러서 대 아래를 지나니 / 분류과대하
급하기가 마치 치달리는 준마이어라 / 급약치준마
바위에 부딪치면 흰 뱀이 일어나는 듯 / 촉석백사기
푸른 바위에 맑은 구슬이 끓어오르는 듯 / 창석명주비
한참을 가지 않고 이 광경을 보노니 / 탐간미구거
혹 정신을 허비할까 걱정이 된다 / 혹공신정비
정신을 허비한들 무슨 상관이랴 / 신정비하손
그저 속진의 번뇌 말끔히 씻었으면 / 단원진심정
속진의 번뇌를 길이 씻는다면 / 진심약장정
나의 거처가 시종 정해지리라 / 아거종시정

별밤[성야]

반짝반짝 별들이 맑은 밤하늘에 가득하여 / 착락군성만태청
은하수 너머 멀리 밝은 북신을 향하누나 / 격하요공북진명
본래 형혹성의 광망이 다 사라졌으니 / 유래형혹광망진
우리나라가 태평해질 것임을 알겠노라 / 인득오방향태평

바람 앞에 서서[림풍]

비단 장막 같은 뜬구름 흩어지고 / 초막부운진
맑은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오누나 / 청풍자북래
화양건을 불어서 벗기려 하니 / 화양취욕탈
속진의 생각들이 함께 걷히는구나 / 진포여구개

잠에서 깬 뒤[수파]

훈풍이 언뜻 불어 서늘한 기운 보내오니 / 훈풍사동송미량
빈 집에 사람은 없고 해는 한가히 길어라 / 허실무인백일장
산새가 한 번 울어서 낮잠을 깨우는데 / 산조일성경주몽
박산향로에는 아직도 향 연기가 남았구나 / 박산유설미소향

밤에 읊다[야영]

밝은 달은 구름 끝에서 나오고 / 명월출운단
하늘 바람은 쉬지 않고 부누나 / 천풍취불휴
그 옛날 맹호연을 생각하노니 / 유회맹호연
좋은 밤에 노닐기를 좋아하였지 / 호작량소유
이 사람이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오래 / 사인몰이구
맑은 뜻을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 청의수능지
빈 집에서 홀로 잠들지 못하고 / 공재독불매
정신이 말똥한 채 슬퍼하노라 / 경경도상비

저녁 정황 2수 [석황 이수]

서쪽 봉우리 낙조에 동쪽 봉우리 보이고 / 서잠락조동잠견
남쪽 포구에 맑은 구름 북쪽 포구 멀어라 / 남포청운북포원
백로 한 쌍이 한가로이 날아가니 / 구로일쌍한자거
이 몸이 그림 속에 있는 게 아닌가 하노라 / 차신의재화도간

동쪽 산에 달이 떠서 서쪽 산 비추고 / 동산월출서산조
북쪽 성곽에 인 구름 남쪽 성곽에 난다 / 북곽생운남곽비
지친 새는 천천히 푸른 나무로 돌아가고 / 권조지지환벽수
시름겨운 사람은 적막 속에 사립을 닫는다 / 수인적적엄자비

산전[산전]

바위 곁 산전을 진종일 경작하여 / 암반산전진일경
메조를 많이 심어 밭에 가득 자랐다 / 황량다종만휴생
호미로 김 매어 잘 여물었으니 / 서황거예능성숙
이 밖에 생계 위한 일 더 하지 않노라 / 차외영생경불영
앞산[전산]

산이 문 앞을 빙 둘러쳤는데 / 유산환공대문전
산 위에는 푸른 솔 백천 길이어라 / 산상청송장백천
사철 가릴 것 없이 늘 울창하니 / 불계사시능울울
우리 자손 면면히 이어지리라 / 자손응시보면면

백출을 복용하고[복출]

반백 살이 가까우니 기혈이 쇠약해져 / 반백년침기혈쇠
날이 갈수록 눈 흐리고 머리털 쇠누나 / 안혼두백일상수
산중에 고맙게도 신령한 백출 있으니 / 산중뢰유다신출
복용하면 불로장생 기약할 수 있으리 / 복식장생서가기

유종숙이 세상에 은거하여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것을 달갑게 여기기에 이름은 인보이다 [류종숙감어은륜 명인보]

세인들은 거개가 구차히 얻기를 좋아해 / 세인거개귀구득
세상 작태란 늘 속진 속에 달려가거늘 / 속상매고추진환
숙부가 은거하는 것을 나는 사랑하노니 / 이아애숙감은륜
청산 속에서 솔잎과 눈을 먹은 지 오래 / 구찬송설청산간
장안으로 가는 길 나서지 않고 / 장안유도불감향
청운의 사닥다리 오르지 않는다 / 청운유제불감상
이 어찌 결신난륜하고자 하는 것이리오 / 차기결신란윤모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에 나갈 수 있도다 / 방지유도역가곡
앞에 공손히 꿇어앉아서 그 도를 물으니 / 상전장궤문기도
말이 띠를 내려가지 않아도 먼저 심복하도다 / 언불하대심선복
숙부를 따르고 싶으나 한 해가 저물어 / 욕왕종지세장모
바람이 쓸쓸하게 초가집에 불어오누나 / 천풍슬슬취모옥

병인년(1626)에 벼와 기장 농사가 매우 잘 되었기에[병인세대유화서]

지난 해에 논밭에 벼와 기장 가득하더니 / 거년전중화서만
올해도 벼와 기장이 논밭에 가득하구나 / 금년화서만전중
올해도 지난해도 모두 풍년이 들었으니 / 금년거년세개숙
배 불리 먹고 즐거워하는 농부가 많아라 / 함포고복다전옹
농부들이 배 두드림은 진실로 까닭 있으니 / 전옹고복실유유
백성의 즐거움 즐거워하는 우리 임금 정성 때문 / 악민지악오왕성
우리 임금이 진실로 백성의 즐거움 즐거워하시니 / 오왕진실악민악
어찌 성인의 백성이 되길 즐거워하지 않으랴 / 하불악위성인맹

가을 장마[적우]

오랜 비가 완전히 걷히지 않아 / 적우비전헐
흐릿한 빗발이 그치지 않누나 / 몽몽쇄불휴
밥 짓는 연기 푸른빛으로 젖고 / 주연청경습
섬돌에도 물이 젖어 흘러내린다 / 초수윤환류
푸른 물결이 막 뒤집혀 일렁이고 / 취랑번초동
누른 구름은 베어 거두지 못했네 / 황운할미수
김매는 농부는 참으로 고생하누나 / 서부신차고
도롱이에 삿갓 쓰고 논두렁에서 밥 먹는다 / 사립반전두

하늘의 구름[천운]

하늘에 흰 구름이 많아 / 상천다백운
흰 구름이 서쪽으로 동쪽으로 가누나 / 백운서부동
동쪽 서쪽으로 감에 뜻이 없나니 / 동서본무의
그저 하늘의 바람을 따를 뿐 / 단자수천풍
하늘의 바람은 그 언제나 그칠꼬 / 천풍기시헐
흰 구름은 길이 없어지지 않는다 / 백운장불멸
바람과 구름은 만고에 길이 있고 / 풍운만고존
하늘과 땅은 다 같이 다함이 없네 / 천지동무진
다함이 없고 또 다함이 없으니 / 무진부무진
한 기운은 소멸할 때가 없어라 / 일기무시민

유월에 초승달이 발에 비쳐들기에 아이들을 시켜 시를 짓게 했는데, 말구에 주(주) 자를 쓴 것이 모두 온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두 수를 지어 보았다 2수 [륙월초월입첨령아조작시말호주자개미온득여수시철 이수]

초승달이 고운 모습으로 나무 위에 걸려 / 섬월연연괘수두
새로운 빛이 느릿느릿 서쪽 누각에 들어온다 / 신광염염입서루
어느 누가 섬궁의 계수나무를 베었는가 / 하인반작섬궁계
틀림없이 천공이 배를 만든 것이리라 / 정시천공조득주

옥황상제 머리 빗은 은빛 빛을 / 은소즐파옥황두
하늘 가 열두 누각에 높이 걸어 두었구나 / 고괘천변십이루
내가 가져오고 싶으나 여덟 날개 없으니 / 아욕취래무팔익
누가 날 위해 은하수 오르는 배 매어줄꼬 / 하인위계기하주

씨아에서 목면의 씨를 빼는 광경을 보고[견면차목면거핵]

쌍룡이 두 봉우리 사이에서 얽혀 싸우니 / 쌍룡전전량봉간
대낮에 가벼운 구름이 만 갈래로 쏟아진다 / 백일경운사만단
벽력 소리 진동해 천지가 움직이더니 / 벽정성진천지동
잠깐 사이에 큰 우박이 산처럼 쌓였어라 / 수유대박적여산

흥을 달래며[견흥]

좋은 절기라 가을이 가까운데 / 호절신추근
사립대문이 물을 향하여 선 집 / 시문수면가
어죽으로 쟁반의 음식이 넉넉하고 / 羮어반미족
기장밥 지어 내니 향기가 많아라 / 취서반향다
죽장은 비틀걸음을 가누기에 알맞고 / 죽장의경보
등나무 침상은 취해 노래하기에 좋구나 / 등상가취가
자연 속에 사니 맑은 흥취가 많아 / 림거청흥부
날마다 그저 시를 읊조리노라 / 일일단음아

병인년(1626) 윤유월 보름에 좁쌀과 청채를 보고 기뻐서[병인세윤륙월망일희견속미청채]

윤유월도 반이 지나 가을이 오니 / 윤륙월반생추절
농가에 햇곡식이 많이 보여 좋구나 / 전가희적다신물
절구에 가득한 황금은 향긋한 좁쌀 / 황금만구속미향
쟁반에 수북한 백옥은 새로운 청채 / 벽옥숭반청채신
닭은 집 아래서 날아 무리로 뛰놀고 / 계비사하이등군
물고기는 시냇물에서 자라 낚시할 만하다 / 어장천중감하륜
편안히 제 땅 곡식 먹음이 임금 은혜이니 / 안식토모식군은
금마와 태창은 내가 바라는 바 아니로세 / 금마태창비오원
낙토에서 농사를 지으며 늙어가노니 / 궁경악토로장지
어찌 남의 녹 먹어서 원망을 부르리오 / 기가대포초인원

남촌의 제공들이 광릉의 벗들과 함께 뱃놀이를 하기로 약속했다는 말을 듣고[문남촌제공여광릉제우동약유선]

제공들이 좋은 유람을 하고자 / 군공요량적
통지를 보내 벗들에게 알렸구나 / 견서통상호
초가을이라 물이 한창 드넓으니 / 신추수정활
맑은 물에 배를 띄워 노시겠지 / 범주유청호
술과 악기를 배에 싣고 / 재주여관현
노소가 모두 한가한 심정 / 소장동한포
바람이 가벼우니 물결이 그치고 / 풍경파랑식
하늘빛은 참으로 높게 틔었으리 / 천색득요곽
적벽의 그 흥취를 생각하노니 / 유회적벽흥
천추의 뒤에 그 때와 꼭 같아라 / 천추공일적
중류에서 계수나무 노를 저으며 / 중류탕계즙
교룡이 몹시 성냄도 두려워 않고 / 불파교진고
공명을 친다는 노래를 부르니 / 가격공명부
시에 맑고 참된 곡조가 많아라 / 시다청진조
빼어난 경치는 하늘이 준 것 / 기관천소향
비단 장막에는 초승달이 걸렸겠지 / 초막현신월
흔연히 저마다 술잔을 비우지만 / 흔연각진상
백 병의 술을 어이 다 마시리오 / 백호나운갈
이 늙은이는 더위 먹은 병으로 / 로부영서병
좋은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 불득동화연
속절없이 좋은 광경 상상하며 / 도사승상극
물 건너편에서 침만 흘릴 뿐 / 격수공수연
부끄럽게도 한 편의 시를 가지고 / 수장일편옥
멀리 술자리 앞에 부쳐 보낸다오 / 원기청준전

맑은 밤[청야]

오래 내리던 비가 막 갠 밤에 / 적우신청야
하늘은 높고 달은 참 밝구나 / 천고월정명
처마는 비어 구름이 가득 머물고 / 첨허운만숙
바람이 고요해 이슬 더욱 맑아라 / 풍정로환청
물 건너편에서 벌레 소리 끊어지고 / 격수충성단
높은 둥지에는 새의 꿈이 놀라 깬다 / 위소조몽경
창에 기대 시상에 잠긴 시인은 / 의창인멱구
외로운 그리움을 읊어내기 어렵구나 / 고사영난성

저녁 어스름[박모]

저녁 어스름에 서늘한 바람 이니 / 박모량풍발
가을 구름이 만 조각으로 떠 있구나 / 추운만편부
병이 나은 건 더위가 다 갔기 때문 / 병소연서진
시 읊기 적은 건 마음이 쉬기 때문 / 음소위심휴
술을 대하니 대작할 이 없어 걱정이요 / 대주수무초
회포를 풀자니 옛 친구들이 생각난다 / 론금억구유
동쪽 숲에서 지는 석양을 보며 / 동림간석조
난간에 기대 맘껏 눈길을 보내노라 / 도의빙쌍모

유거[유거]

속세를 멀리 떠난 지 오래 / 절세리군구
태일의 언덕에 은거하노라 / 유거태일아
높은 집은 적막한 물가요 / 고재빈적막
참된 경지라 무하에 드누나 / 진경입무하
약초를 캐느라 숲을 다 뒤지고 / 채약수림편
꽃을 옮겨 심느라 땅을 많이 판다 / 이화촉지다
소중에 한가한 흥취가 많아 / 소중한흥족
소나무 아래서 차를 달이노라 / 송하자전다

신추에 정삼 덕훈이 방문했기에 이름은 형원이고, 벼슬은 직장에 이르렀다. 형주의 증조이다 [신추정삼덕훈래방 명형원관지직장형주증조]

옥을 써는 좋은 계절을 만나 / 절옥봉가절
초가을 해가 기울려 하누나 / 신추일욕사
얘기도 흡족히 나누지 못해 / 담봉교미흡
이별이 아쉬워 높이 노래한다 / 석별차고가

적막[적막]

장년 나이에 마음이 적막해 / 장행심적막
초가집에 지친 몸을 누였노라 / 모각와잔해
중이 외나무다리 건넘을 보고 / 야각간승도
학이 솔숲에 돌아옴이 보인다 / 송림견학회
거적문에선 늘 손님을 물리치니 / 석문장빈객
이끼 낀 길엔 인적 없은 지 오래 / 태경구무매
잠 깨어 양보음을 읊조리노라니 / 수파음량보
맑은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오누나 / 청풍자북래

초가을[신추]

서늘한 바람이 촌락에 부니 / 량풍동허락
초가집이 절로 서늘하구나 / 모각자청랭
병든 잎은 숲에서 떨어지고 / 병엽림중추
가을 매미는 비온 뒤에 운다 / 잔선우후성
거문고 노래로 긴 밤 보내노니 / 금가료영석
술과 시에 맑은 흥이 넉넉해라 / 주부유여청
여름 절기도 이제 다 갔으니 / 절서주명진
신추가 늙은 내 마음에 맞구나 / 신추로아정

변방 소식[변보]

듣자하니 용사의 무리들이 / 문도룡사중
우리 땅 잠식할 마음 품어 / 유회천식심
서로 대치하다 군사는 늙어가고 / 상지병욕로
무력을 겨루니 염려가 깊어라 / 각장려환심
파목은 지금 어디에 있는고 / 파목금안재
선광이 불끈 노해 정벌하리니 / 선광혁노림
오랑캐 망할 운수 이미 정해졌으니 / 망호운기속
속히 적의 괴수 사로잡을 수 있으리 / 응속월지금

윤 6월 15일 밤에 달을 읊다 2수 [윤륙월십오야영월 이수]

십오야라 은빛 달이 떠오르니 / 십오은섬출
맑은 빛이 팔방에 두루 비친다 / 청광편팔해
소나무에 들어 금빛이 반짝이고 / 입송금쇄쇄
섬돌에 비치니 눈빛이 하얗구나 / 당체설애애
어로를 구별해 책을 다 볼 수 있고 / 어로간서질
사현을 술잔에서 변별하도다 / 사현변주배
토원에 사람은 이미 떠났건만 / 토원인이거
금잔에 술 마시던 일 속절없이 생각한다 / 공상작금뢰

옥토끼의 둥근 빛이 환한 밤 / 옥토원광야
은두꺼비 광채가 빛나는 때 / 은섬요채시
발을 드리워도 빛이 새어들고 / 수렴휘경투
자리를 옮겨도 그림자는 따른다 / 이좌영환수
만학에는 옥빛 굴이 환하고 / 만학명요굴
천림에는 옥빛 가지 비치누나 / 천림영로지
그리워하며 멀리서 금자를 수놓을 제 / 요련도금자
맑은 경치가 더욱 처량하겠지 / 청경전처비

심장의 모재에서 〈도팽택가계주수양도〉를 보고[침장모재견도팽택가계주수양도]

팽택이 한가히 읊조리며 벼슬 그만두고 / 팽택한음해인귀
조각배 타고 밤낮으로 가 고향집에 이르렀지 / 편주일석도형비
전원의 물색은 전혀 변한 것이 없는데 / 원중물색혼무개
무엇보다 옛날 모습 그대로인 수양버들이 눈에 띄네 / 최견수양대구휘
심장은 이름이 보준(단준)이다. 동지중추부사가 되었고 광주 하도에 산다

참새 쫓기[구작]

참새란 놈이 논밭 곡식 먹으며 / 황작식전속
떼를 지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 군비래숙홀
이에 내가 동복들을 시켜서 / 어언명동복
종일토록 줄곧 쫓게 하였으나 / 경일구불철
참새란 놈 몹시도 교활하여 / 작성최간힐
요리조리 피하며 기막히게 훔친다 / 변회교투절
장대 휘둘러도 달아나지 않고 / 휘간차불기
소리쳐 쫓아도 겁내지 않누나 / 질축종무파
가는 듯 마침내 도로 오고 / 약거경환래
잠자는 듯 다시금 내려오니 / 여몽선부하
아이들은 기력이 바닥나서 / 아동진기력
밤낮으로 소리치지 못하누나 / 일석호불득
하늘이 만물을 만들어 낼 때 / 황천부만물
참새는 누굴 위해 세상에 나왔나 / 황작위수출
난봉은 없어서는 안 되지만 / 란봉불가무
참새는 외려 없어도 괜찮으며 / 황작유가무
난봉은 없애서는 안 되지만 / 란봉불가거
참새는 외려 없애도 괜찮을 텐데 / 황작유가거
세상에 내어놓고 없애지 않으니 / 기부차불거
하늘의 뜻을 끝내 알기 어려워라 / 천의종난지
아아 이 참새란 놈은 / 우차차황작
작게 영리하지만 크게 어리석구나 / 소힐환대치
어디인들 먹이가 없을까만 / 하소독무식
굳이 사람의 곡식을 먹네 / 취식필인속
사람의 곡식을 먹기 때문에 / 유기식인속
그물에 걸려 종족이 다 죽지 / 망라섬기족
그대는 보라 높은 집 위에 / 군간고당상
제비가 와서 깃들어 살지만 / 현조래서식
제비는 사람에게 해물이 아니라 / 위금불해물
매일 가까워도 서로 잘 지내며 / 일근무상혹
해마다 옛 둥지를 찾아와서 / 년년방구소
해마다 즐거이 깃들어 사는 것을 / 세세흔상탁

남쪽 들판의 저녁 풍경[남교만조]

벼가 익어가는 남쪽 들판 저편에 / 화가남교외
나귀 타고 가노라니 흥이 각별해라 / 건려흥불군
논에는 푸른 물결 가득 출렁이고 / 영주번취랑
성곽 저편까지 누른 구름 일렁인다 / 만곽동황운
시골 늙은이들 서로 만나는 곳에서 / 야로상봉처
농사 얘기로 석양이 지는 줄 몰라라 / 농담도석훈
돌아올 제 산길이 비좁아서 / 귀래산경협
이슬이 잠방이를 다 적시는구나 / 행로습라곤

거미줄[주망]

은빛 실이 뱃속 가득 나와서 / 은사생만복
처마 틈에 비스듬히 줄을 친다 / 첨극괘횡사
빗방울 젖어 거미 그물 뒤집히고 / 대우번주망
바람결에 비단 장막 흔들리누나 / 인풍불기라
반딧불 걸리니 별이 움직이는 듯 / 형리성욕동
금빛 부서짐은 달빛이 비쳐든 것 / 금쇄월천화
이르노니 꽃을 찾는 나비들아 / 위보탐화접
날아다니다 걸릴까 걱정일세 / 비비공견차

한적[한적]

동산에 나무는 푸르고 꾀꼬리 가벼이 나는데 / 원목청청앵전경
정원에 꽃은 적적하고 새 울음소리 맑아라 / 정화적적조음청
주인은 한단의 베개에서 꿈을 깨어 / 주인각몽감단침
한가히 책상 앞 거문고를 잡고 퉁긴다 / 한파상전옥주명

봉우리가 늘 푸른 빛으로 처마 앞에 마주하니 / 유봉장대첨전벽
한 마리 새가 언제나 뜰 나무에 와서 운다 / 일조매래정수명
산사람은 이러한 때 무슨 일을 하는가 / 산객차시하소사
바둑알 가지고 소나무 바둑판에 놓아 본다 / 희장기자락송평

서늘한 비[영량우]

산비는 서늘한 기운 작은 섬돌에 보내고 / 산우취량도소지
흰 구름은 더위 끌고서 시냇가를 둘렀어라 / 백운타서옹천미
대문 앞 금빛 곡식에는 향기가 떠 있으니 / 문전금속부향기
그야말로 농가의 유월 시절이로구나 / 정시전가륙월시

매미 소리를 듣다 2수 [문선 이수]

비온 뒤 슬픈 매미 울음 그치지 않아 / 우후비선인불휴
맑은 음향이 이어져 와 한낮에 시끄럽네 / 청음역역오래조
뉘 집 베틀 위에서 붉은 비단을 짜다가 / 수가기상도홍면
손길을 멈추고 서글피 먼 시름을 일으키나 / 초창정사기원수

수놈 암놈 번갈아 요란스레 울어대니 / 웅음자창질상명
남쪽 정원에서 들리다 북쪽 정자로 옮겼네 / 재청남원우북정
옥황상제가 적막한 생활 불쌍하게 여겨 / 의시옥황련적막
잠시 하늘 음악을 서생에게 나눠 주나 보다 / 잠분천악향서생

비가 그쳤기에[우지]

오랜 비가 아침에 말끔히 그치더니 / 숙우조전헐
저물녘 시내에는 바람이 부는구나 / 계풍만경소
하늘이 열리니 맑은 들판 드넓고 / 천개청야활
구름이 흩어지니 옥빛 봉우리 높아라 / 운산옥봉고
물의 학은 높은 둥지에 서 있고 / 수학위소립
산의 비둘기는 우거진 나무에서 운다 / 산구암수호
사립문에는 아무도 오지 않아 / 시문인불도
밤새도록 그저 붓으로만 놀리네 / 종석단휘호

막 날이 개어[초청]

아침의 빗줄기 산문에서 걷히더니 / 조래우각게산문
집 아래 시냇물이 저녁에 더욱 시끄럽네 / 옥하계류만경훤
사람은 구름 반쯤 걷힌 옥봉우리 보고 / 인대옥봉운반권
학은 이슬 도로 흩날리는 소나무로 돌아간다 / 학귀송수로환번
앞 들판에 풀빛은 젖은 망사 치마인 듯 / 전교초색라군습
북쪽 물가 안개 빛은 푸른 흔적 띠었구나 / 북저연광취대흔
홀로 술 떠서 마시고 홀로 취하니 / 독작포준잉독취
이 중에 맑은 흥취를 어떻게 말하리오 / 개중청흥약위언

한거[한거]

검 한 자루의 생애 늙을수록 더 외로우니 / 일검생애로경단
내 사는 몇 칸 초가 험한 산에 기대어 있네 / 수간모옥의잔안
소나무 침상 부들자리에 잠이 늘 넉넉하고 / 송상포천면항족
현미밥 나물국이 내 분수에 편안하구나 / 려식려갱분소안
반곡은 땅이 외지니 마음이 절로 속세와 멀고 / 반곡지편심자원
종산은 구름이 적막하니 마음도 함께 한가해라 / 종산운적의구한
울타리 가에 고운 국화꽃을 많이 보노니 / 다간눈국리변정
가을 꽃잎 피거든 저녁에 따서 먹으리라 / 잉대추영가석찬

흰 물은 무정하게 대나무 난간을 두르고 / 백수무정요죽란
푸른 산은 늘 그렇듯 처마 끝에 들어온다 / 청산유소입첨단
문 앞에 이끼 밟히니 외로운 중 오는 게고 / 문전태파고승도
골짜기 어귀 구름 개니 한 마리 학 돌아오네 / 곡구운개일학환
여장을 짚고 고요히 저물녘 화단 가 거닐며 / 려장만이화오정
나의를 입고 한가로이 때로 버들마을 지난다 / 라의시불류촌한
빗질하매 머리털 천 올이 하얗게 세었건만 / 소변빈발천경백
인간 세상 행로의 어려움은 알지 못했노라 / 불식인간행로난

농가[농가]

농가에선 날마다 밭 갈고 김매는 일 / 농가일일사경호
한가로운 세상에 농사 지어 먹고 사는구나 / 한작제민식토모
죽순 데치고 아욱 삶으니 아침 반찬 넉넉하고 / 소순자규조찬족
좁쌀 찧고 기장 익히니 저녁 밥그릇이 그득해라 / 용량취서석반고
나라의 녹봉을 받아먹는 게 무슨 일인가 / 창반름식지하사
나라에 내는 세금도 절로 고생스럽지 않네 / 리포전조불자로
세상을 살며 화복을 범한 적이 없으니 / 신세미증간화복
복랍에 송료 마시고 취하는 것만 기다린다 / 만기복납취송료

우중에 뜰의 풀을 매며[우중제정초]

윤유월 경신이라 내리던 비 그치기에 / 윤륙경신시우헐
아이 불러서 뜰의 풀을 다 매게 하노라 / 호동촉진정중초
뜰에 풀 다 없어져 뜰 중심 넓어졌건만 / 정중초진정심관
나의 단전을 일찍 못 넓힌 게 후회스럽다 / 회아단전확불조

하 도인의 집 벽에 제한 이동악의 시에 차운하다 동악은 곧 사백인 이안눌 씨이다 [차리동악제하도인옥벽운 동악즉사백안눌보]

예전에 소를 타고 진나라 관문을 나가서 / 승우당일출진관
십년 동안 바닷가 산속에 자취를 감추었어라 / 천재장종해외산
단약의 기이한 술법이 여윈 몸 가볍게 하고 / 단조술기경수골
청낭의 신기한 비법이 젊은 얼굴 지키누나 / 청낭법비보소안
창 앞의 백호는 순하게 잘 복종하고 / 창전백호순능복
상 아래 청룡은 길들어 절로 한가롭다 / 상하창룡요자한
바둑 마치고 선옹들이 흩어져 간 뒤 / 기파선옹분산거
바둑판에는 검은 돌 흰 돌만 놓여 있구나 / 평간흑백자반반

윤유월 24일 비 온 뒤 밤중에 앉았노라니 풀벌레가 일제히 우는 소리가 들리기에 감회가 일어 즉시 읊다[윤륙월廿사일우후야좌문초충제성명유감즉음]

촉직 소리가 실솔 소리와 섞여서 / 촉직성화실솔성
찍찍 귀뚤귀뚤 산골집 뜰에 가득해라 / 요요적적만산정
그야말로 공자의 삼천 제자들 중에서 / 혼여공석삼천자
증점의 슬과 안회의 금이 함께 울리는 듯 / 점슬회금일병명

아침에 밖에 나와 손님을 전송하며[신출송객]

산 위에 성근 별 두셋이 반짝이고 / 잠상소성삼량명
지붕 위의 닭이 오경이라 우는구나 / 신계옥두오경성
손님이 문 나서니 하늘이 밝아오는데 / 객자출문천색백
서로 손을 잡고 먼 이별을 아쉬워한다 / 림분악수원리정

신 판관 자구가 내방했기에 이름은 이우이다 [신판관자구래방 명역우]

한번 이별한 뒤 십년 동안 소식이 뜸했는데 / 일별십년음문소
문득 오늘 밤 만나니 그저 탄식할 뿐일세 / 홀봉금석단희허
우리 문중 가까운 친척이 몇 사람 있는가 / 오문강근기인재
더구나 그대는 멀리 호서에 살고 있는 것을 / 황자원서호우거

장맛비가 내리기에 유종숙에게 삼가 드리다 이름은 우인이다 [구우경정류종숙 명우인]

열흘에 걸친 장마로 북쪽 시냇물이 불어 / 적우련순창북계
집안에 있을 뿐 지팡이 짚고 외출하지 못했어라 / 두문미득동청려
창 앞에 소나무 대나무가 늘 눈에 삼삼하니 / 창전송죽장삼목
날이 개길 기다렸다가 맘껏 구경하러 가리라 / 요대신청만안휴

사직 주상 인조께서 계해년(1623) 3월에 반정하셨다. 그리고 5년 뒤 정묘년에 청인이 침공하여 관서의 고을들을 함락시키고 평산에 이르러 강화를 맺고 물러갔다. 그 해 4월에 주상께서 강도로부터 서울로 돌아오셨다 [사직 주상반정어계해삼월후오년정묘청인공䧟관서제도지평산강화이영기년사월주상자강도환경]

사직이 다시 회복되는 날에 / 사직중회일
문성이 이미 규성에 모였어라 / 문성이취규
바야흐로 칼과 화살촉 만드는 때요 / 시당주봉적
고래를 베어 죽이는 시운이로다 / 운속참경예
옥촛불이라 어진 인재 등용하고 / 옥촉조현준
천리마가 끄는 난여를 타셨어라 / 란여가결제
이 늙은이 태평성세에 살며 / 로부생수역
암혈에서 은거를 보전할 수 있구나 / 암혈보유서

군공[군공]

성스런 임금께서 용흥하시는 날 / 성주룡흥일
군공들이 초려에서 일어나도다 / 군공기초려
양구는 칠리에서 숨어 살았고 / 양구□칠리
물고기 뱃속에 든 삼려를 탄식한다 / 어복탄삼려
궁궐에서 약법을 선포하고 나니 / 약법동정파
백성 집에선 원망을 펼 수 있어라 / 원호백옥터
묘당에서 버리는 인재가 없건만 / 묘당무기물
초야의 선비는 주저하는구나 / 림수역주저

백수[백수]

참된 세계는 홍진 밖에 있고 / 진경홍진외
이내 생애는 백수 가에 있어라 / 생애백수변
밭에 물을 주어 채소를 내다 팔고 / 관원소자죽
낚시 드리워 붕어를 자주 낚는다 / 수조즉빈견
입을 헹구고 나니 정신이 상쾌해지고 / 수구신초상
술잔을 띄우니 흥이 누차 도도해라 / 류상흥루원
백년 평생 늘 이와 같다면 / 백년장약차
무엇하러 굳이 신선이 되려 하리 / 하필강구선

가는 세월을 탄식하며[탄서]

그 언제나 교목에 옮겨갈꼬 / 교목천하일
그윽한 곳에서 스스로 즐기노라 / 유서단자오
의상은 성스런 임금 드리우셨고 / 의상수성주
빈한한 선비는 서검으로 늙어간다 / 서검로한유
절후가 바뀌어 꾀꼬리 울음에 놀라노니 / 절서경황조
세월이 백구처럼 빠름을 슬퍼하노라 / 년광도백구
교외 사립문은 낮에도 늘 닫혔으니 / 교비상주엄
적적한 시름은 처자식이 달래 주누나 / 수적파처노

저녁에 앉아서[석좌]

서늘한 바람은 산마루 넘어오고 / 량풍도령수
산 위에 뜬 달은 숲 위로 나온다 / 산월출림초
맑은 이슬은 또르르 떨어지고 / 옥로번환락
외로운 구름은 돌아가 사라지네 / 고운반자소
벌레 소리는 끊어졌다 이어지고 / 충성문단속
시상에 잠겨 퇴고하는 중일세 / 시사속추고
맑은 밤에 앉았음은 기쁘지만 / 종희청소좌
해 뜨면 시끄러움을 어이하리오 / 기여일출훤

어버이 연세[친년]

일흔세 해가 이르렀으니 / 칠십삼년지
본래 기쁨과 두려움이 깊은 법 / 유래희구심
색동옷 입는 것 노자를 따르지만 / 반의추로자
뜻을 봉양함은 증삼에게 부끄럽네 / 양지괴증삼
열정을 원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 렬정비무원
전성하려던 옛날 마음을 저버렸다 / 전성부숙심
다만 땅의 이로움을 통해서 / 단능인지리
내 정성을 다해 받들어 모실 뿐 / 공봉진오침

화답을 구하는 김 대언에게 삼가 부치다[경기금대언구화]

보리피리 불고 죽마를 타던 날엔 / 취총기죽일
타향으로 헤어지리라 생각지 못했는데 / 불위이향리
나는 백석으로 노년을 마치고 / 백석종오로
그대 청명을 지녔음을 기뻐하노라 / 청명희자지
창가 매화에서 그대 고결한 인품 생각하고 / 창매사옥결
들보에 비친 달빛에서 그대 얼굴 보는 듯 / 량월견지미
약을 팔러 저자로 돌아갈 제 / 매약귀성시
깊은 가을에 좋은 만남 이루길 / 심추작호기

나의 노쇠함[오쇠]

옛날 어린 시절에는 / 석아해수시
타고난 기품이 많이 허약하여 / 품기다불족
오랜 세월 질병을 안고 살아 / 장년포질병
모습이 이처럼 쇠잔하게 됐어라 / 형해임잔옹
어떤 때는 위로 기운이 뜨고 / 혹시상성만
어떤 때는 가운데 기운이 텅 비어 / 혹시중기공
이에 책을 읽을 수 없었으니 / 자언불가독
시서의 공부를 이루지 못했어라 / 미수시서공
중년에는 약을 잘 복용하여 / 중년사복식
신체가 제법 충실해졌기에 / 구각파충실
그나마 분전을 파고들 수 있어 / 유능색분전
못한 공부를 수습할 수 있었지만 / 역가수기실
이미 노년에 이르렀으니 / 년령홀이모
쉰 살이 다가오는 나이였어라 / 오십장언지
잠자리도 편안할 때가 드물고 / 당침소안온
음식도 입맛이 좋을 때가 없으며 / 대식무감미
책을 보면 눈꼽이 끼려 하고 / 관서안욕치
글씨를 쓸 땐 손이 떨리려 하네 / 림지수욕전
그래서 근래 네댓 해 동안은 / 이래사오년
세월만 속절없이 흘러갔구나 / 세월공전전
고인의 시구나 한가로이 읊고 / 한음고인구
때가 이르면 그저 붓을 휘두를 뿐 / 시지도휘한
문장이 이미 황폐해졌으니 / 문원이취황
문맥이 꿰어지기 참 어렵구나 / 사맥성난관
단상(단상)은 모을 수 없어 괴롭고 / 편의고무종
척자는 짝이 없어 가슴 아파라 / 척자상무반
깊이 생각해도 오랫동안 이루지 못하고 / 침사구미졸
억지로 찾아서 끝내 반만 이룬다 / 강멱종성반
아아 이 늙은이의 일이란 / 우차로부사
일마다 모두 엉성하고 무능하여라 / 사사개소산

형문[형문]

형문이 대낮에도 닫혀 있으니 / 형문관백일
외진 거리가 더욱 깊고 그윽해라 / 궁항전심유
병든 지 오래라 신발에 먼지가 앉고 / 병구진생리
나이가 늙으니 머리에 눈이 내린 듯 / 년쇠설재두
탁주를 때때로 혼자서 마시지만 / 탁료시자인
좋은 시구 주고받을 사람 없구나 / 가구탄무수
고요히 홀로 거처함을 기뻐하노니 / 유희단거정
무엇하러 힘들여 한만의 유람 하리오 / 하로한만유

초당에서 밤에 읊다 2수 [초당야음 이수]

비 온 뒤에 높고 낮은 귀뚜라미 울음 / 실솔고저우후성
별들이 출몰하니 구름이 환하게 밝네 / 성진출몰운두명
밤 이슥한데 푸른 창가에 기대노니 / 야심사의벽창하
수염 꼬아 끊음은 고금의 정이어라 / 년단음자금고정

서쪽 산 위에 몇 그루 소나무가 보이고 / 수주송수간서령
저무는 봉우리에 돌아가는 두세 마리 갈까마귀 / 삼량귀아견모잠
밝은 달이 문득 솟아 구름 위가 환하니 / 명월홀생운수백
시내에 가득한 은빛이 눈 안에 잠기누나 / 만천은색안중침

중국 사신이 한강을 유람했다는 말을 듣고 중국 사신의 이름은 왈광이다 [문화사유람한강 명왈광]

누선을 타고 한강을 유람하며 / 루선유한수
비단 닻줄 매고 맑은 놀이 벌였네 / 금람작청유
물 가에 서서 선악을 연주하고 / 의저표선악
중류에서 뱃노래를 불렀어라 / 중류발도구
푸른 봉황 깃발이 펄럭이니 / 정기번취봉
사신 행차에 백구가 놀랐구나 / 사절기사구
도성 백성들 자기를 바라보며 / 자기도민망
아름다운 왕명 받들고 왔다 모두 말하네 / 함칭봉명휴

성상께서 은대에 술을 하사하셨다는 말을 듣고 김 대언에게 부쳐 주다[문은䑓사주기증금대언]

은대는 지위와 명망이 높나니 / 은대숭지망
후설이라 임금을 가까이 모시지 / 후설접요미
옥촛불 빛에 감을 전해 주는 밤 / 옥촉전감야
금잔에 술을 따라 줄 때 / 금뢰명주시
향 연기는 드리운 패물 따르고 / 향연수위패
은총은 논사의 신하에 들어간다 / 은총입론사
어수의 만남에 서로 기쁜 일이 / 어수상환사
멀리 혜유에까지 들려오누나 / 요문도혜유

7월 2일, 풀벌레가 침상 아래서 울기에[칠월초이일초충명우상하]

어떤 벌레가 침상 아래서 찍찍 울어댄다 / 유충즐즐명상하
옷 줄 추위 아닌데 어찌 찾아왔느냐 / 한미수의하근인
어젯밤 서늘한 바람이 지붕 모서리에 불더니 / 작야량풍취옥각
감히 추운 시절에 앞서 몸을 잘 감추는구나 / 감선시절호장신

처질 김유선이 연적을 부쳐 주기에[처질금유선기송연적]

조카가 내 심부름꾼을 만나서 / 질랑봉아사
멀리 옥두꺼비를 보내왔구나 / 원기옥섬서
둥근 것은 천체를 따른 것이요 / 원정의천체
안이 빈 것은 태허공을 본뜸이라 / 중공상태허
졸졸 샘처럼 물이 흘러 나오고 / 연연천출혼
방울방울 이슬인 양 물방울 떨어져 / 적적로처서
붓과 벼루 이제부터 윤택하리니 / 필연종자윤
이내 회포를 쓰고도 남음이 있구나 / 서회즉유여

규방의 원망[규원]

교하 저편으로 백마를 타고 / 백마교하외
낭군은 출정하여 북군에 갔어라 / 랑정부북군
옥문관은 천 리 밖 꿈속에 뵈고 / 옥관천리몽
붉은 난간엔 향로 연기뿐 / 주함일로훈
한가한 밤 금자를 수놓나니 / 금자도한석
규방에 세월이 빨리 감이 슬퍼라 / 운병도극훈
자연히 용모가 시들어가니 / 자연안모사
붉은 치마 더 이상 입을 수 없구나 / 무부착홍군

대나무를 심으며[종죽]

이내 생애 녹록하여 남의 틈에 끼어 사니 / 오생록록측인생
매사를 다 남을 통해 이루거나 못 이루거나 / 매사인인성불성
대나무 볼 땐 유독 남의 비웃음을 잊고서 / 간죽독망인소벽
남을 시켜 앞뜰에 가득하게 많이 심노라 / 천인다종만전정

누각에서 조망하며[루조]

검은 구름장이 하늘 끝에 드리우고 / 운흑수천말
푸른 산들이 저 들판을 둘러쌌어라 / 산청옹야두
저물녘에는 비가 많이도 내리니 / 만래다우세
산객이 바람 부는 누각에 앉았노라 / 산객좌풍루

유종숙의 집 벽에 적다[제류종숙옥벽]

아득히 높은 산 아래 / 막막고산하
구름 속에 홀로 닫힌 사립문 / 운중독엄비
대나무 성그니 향 절로 가늘고 / 죽소향자세
소나무 늙으니 그림자 더욱 희미하다 / 송로영환미
뜰의 학은 길들어 사람을 가까이하고 / 정학순능압
섬돌의 쥐는 잘 먹어서 살이 쪘구나 / 계오득식비
주인은 마음이 고요하고 / 주인심정적
찾아온 손도 기심을 잊었어라 / 래객역망기

안십오 향장 집의 벽에 적다[제안십오향장옥벽]

집을 지은 것이 어느 해던고 / 착실지하세
뜰의 솔이 이미 아름으로 자랐구나 / 정송이만위
각건을 쓰고 시 읊으며 취하나니 / 각건음부취
벼슬하려던 계획은 어긋났어라 / 차복계환위
대나무 재배는 고절이 사랑스럽고 / 양죽련고절
꽃을 심는 건 뭇 향기가 좋기 때문 / 재화위중비
행여 그대가 여기 집 짓지 않았다면 / 당비현복축
이 맑은 경치 뉘 덕분에 볼 수 있으랴 / 청경저수의

한가한 정[한정]

초가집이 시냇물 가에 섰으니 / 초옥림계수
사립문이 푸른 봉우리 마주한다 / 시문대취미
손님이 오면 놀란 학 울음 들리고 / 객래문학경
장사치가 이르니 닭 나는 게 보여라 / 상도간계비
국화를 기르며 긴 여름 소일하고 / 양국소장하
아욱밭 김매며 석양을 기다린다 / 서규대석휘
자연 속에는 즐거운 일 많으니 / 림천다악사
무엇하러 높은 관직을 바라리오 / 하필원금비

흰 오리[백압]

눈처럼 하얀 흰 오리가 / 백압백여설
둥둥 연못에 헤엄친다 / 부부유소중
쌍쌍이 출몰하는 게 보이고 / 쌍쌍간출몰
두 마리씩 동서로 맘껏 다니네 / 량량임서동
종일토록 깃털을 물에 적셔도 / 경일첨모우
끝내 몸이 젖는 법 없어라 / 종무습체궁
일생 동안 늘 물에만 있으니 / 일생장재수
양조와 성품이 아마도 같으리 / 양조성응동

호남의 벗이 보낸 답서의 지미에 적다[제호남우생보서지미]

먼 길손이 서신을 전해주고 돌아가기에 / 원객위전음신귀
봉함을 뜯어보니 흡사 용모를 대한 듯해라 / 개함옥모견의희
편지 보며 그리운 마음을 알리고 싶으나 / 림전욕보상사의
만 리 먼 강호에 기러기가 날지 않는 것을 / 만리강호안불비

안 좌랑의 모정에서 즉시 읊다 안 좌랑은 이름이 홍중이다 [안좌랑서정즉금 명홍중]

모정이 작은 못가에 있는데 / 모정림소택
울타리 안은 무하의 세계라 / 리락경무하
수초에 서리 내려 잎이 시들고 / 수행상최엽
갈대에 바람 부니 눈꽃을 인 듯 / 풍로설대화
평평한 초원은 시야에 아득하고 / 평무일안원
늘어선 산들은 기이한 자태 뽐낸다 / 렬수중기과
셋이 앉아서 오래 현담을 나누느라 / 정좌담현구
해가 저물도록 기심을 잊었노라 / 망기일욕사

가을밤에 홀로 읊으며 벗을 생각하다[추야독음사우]

문 닫으니 세상 시끄러움 그치고 / 문엄훤효식
뜰은 텅 비었는데 반딧불 난다 / 정공형화비
바람은 맑아 은빛 이슬 무겁고 / 풍청은로중
밤이 깊어 옥승별이 드물어라 / 야구옥승희
잠자던 새는 놀랐다 다시 자고 / 숙조경환정
친한 벗은 약속해 놓고 오지 않네 / 친붕약미귀
그 언제나 술병을 마주하고서 / 하당대준주
꽃이 핀 달밤에 함께 즐길거나 / 화월공청휘

벼루에 매화ㆍ대나무ㆍ구름ㆍ학ㆍ산ㆍ물을 새겨 놓았기에[화연각매죽운학산수]

좋은 장인이 오랜 시일 공들여 / 량공비세월
귀신의 솜씨인 양 조각했구나 / 조탁절신기
대나무 곁에 매화는 피려 하고 / 영죽매장탁
구름 찌르며 학은 함께 난다 / 충운학병비
맑은 물결은 잔잔하게 자고 / 청란간불동
푸른 산은 가까운데도 희미해라 / 취수근환미
묵객들이 어루만진 지 오래이니 / 묵객마사구
몇 번이나 붓 휘둘러 시를 지었을꼬 / 시성필기휘

맑은 가을 2수 [고추 이수]

쓸쓸히 낙엽 지는 소리 들리고 / 소소문목엽
바람 소슬한 가을이 또 왔어라 / 삽삽부고추
산골의 해는 흐렸다 다시 밝고 / 곡일음환백
시내에 구름은 흐르다가 머물다가 / 계운거부류
시 읊으며 흰 머리털 스스로 가련해 / 자련음빈소
이 마음 쉬도록 뉘라서 위로해 주랴 / 숙위차심휴
새 시구 적었다가 늘 고치고 / 신구제상개
글씨를 쓰려다 글자 다시 찾는다 / 림서자경수

간밤에 서리가 내리더니 / 작야전상신
산중에 흰 기러기 날아왔어라 / 산중백안래
소슬한 찬바람 소리에 놀라노니 / 한풍경삽삽
머리털 세어서 참으로 하얗구나 / 쇠빈정애애
들국화는 울타리 가에 곱게 피고 / 야국리변정
지당의 연꽃은 수면 위에 꺾였어라 / 지하수면최
한 해도 이제 반이 지났으니 / 일년금과반
술잔 잡는 것 망설이지 말자 / 휴석파금배

호서로 가는 안 좌랑을 보내며[송별안좌랑유호우]

초목이 시들어 가는 늦가을에 / 초목청추만
호서로 멀리 나그네는 떠나누나 / 호중유자귀
기러기는 그대 옷소매 따라 멀어지고 / 안수정몌원
구름은 그대 말안장 좇아서 날아간다 / 운축거안비
이별의 뜻은 금굴에서 보겠고 / 별의간금굴
가슴 속 기약은 저 햇빛을 가리킨다 / 금기지일휘
돌아오는 길 응당 지체하지 않겠지 / 환차응불체
학발의 어버이가 문 밖에서 기다리니 / 학발의교비

가을밤[추야]

풀숲에 벌레 울음소리 급한데 / 초제충성단
성긴 별빛은 담담하고 밝아라 / 소성담월명
가을바람은 멎었다 불었다 하고 / 금풍취단속
은빛 이슬은 싸늘하고 맑게 내리네 / 은로하처청
잠들지 못해 외로운 등잔불만 환해 / 불매고등경
길게 읊조리매 온갖 감회가 일어난다 / 장음백감생
질그릇 사발 술잔이 만족스러워 / 와구짐기족
소갈이 든 장경처럼 맘껏 마시노라 / 소갈임장경

청나라 군사가 안주성을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정묘년(1627) 정월에 청나라 군사가 안주성을 포위하여 함락시키니 병사 남이흥이 전사했다. 청나라 군사가 평산에 이르러 강화한 뒤에 물러갔다 [문청병䧟안주성 정묘정월청병위䧟안주성병사남이흥사지청병지평산강화후환퇴거]

철마가 서쪽 변새에 돌진하여 / 철마천서새
깊이 쳐들어와 기세 더욱 강하니 / 장구세전강
뉘라서 즉묵을 지킬 수 있으랴 / 수능보즉묵
이미 수양을 잃고 만 것을 / 이시실휴양
아이들도 모두 활과 창 들고 나섰고 / 관삭영아진
창을 놓고서 장사들은 죽었어라 / 투과장사망
금구가 이제부터 이지러졌으니 / 금구종차결
무슨 수로 이 강토를 지킬거나 / 하이수봉강

초여름[초하]

사월이라 남풍이 불어오니 / 사월남풍지
농가에 해는 바야흐로 길어라 / 전가일정장
제호는 가까운 언덕에서 울고 / 제호명근안
포곡은 사방에서 소리치누나 / 포곡환무방
농가의 반찬으로 산고사리 삶고 / 농향소산궐
누에 치려고 밭두둑의 뽕을 딴다 / 잠공철맥상
늙어 가매 계절 변화에 놀라나니 / 쇠년경절서
양쪽 귀밑에 흰 머리털이 늘었구나 / 쌍빈각첨상

5월[오월]

계절이 여름날에 속하니 / 절속주명일
서쪽 전원에 더운 기운 생긴다 / 서원서기생
제비 새끼는 지저귀기 시작하고 / 연추능해어
꾀꼬리 어미는 이제 노래하지 않네 / 앵모시무성
눈 같은 고치를 켜서 흰색 이루고 / 견설조성백
구름 같은 모를 꽂아 푸른색 가득해라 / 앙운삽만청
고요히 보매 눈에 느낌이 많으니 / 정관다감목
사물은 스스로 변천해 가는구나 / 군물자천경

변구[변구]

바야흐로 여름철을 맞으니 / 주명당절서
무더위가 지금 한창이구나 / 욕서금방행
지저귀기 시작한 건 새끼 제비요 / 해어분추연
노래하지 않는 건 늙은 꾀꼬리라 / 무성적로앵
고치를 켜니 눈처럼 새하얗고 / 성조설백견
모를 꽂으니 푸른 구름 움직이네 / 앙삽동운청
사물이 시절을 따라 변천하니 / 품물수시변
어찌 마음이 서글프지 않으랴 / 운하불창정

또 변구[우변]

한여름에 훈풍이 불어오니 / 중하훈풍지
농가에 때 맞춰 비가 내린다 / 전가시우행
귀여운 꾀꼬리는 목소리 쇠고 / 교앵성욕로
새끼 제비는 말할 줄 아는구나 / 추연어능성
모를 꽂으니 구름이 막 움직이고 / 앙삽운초동
고치를 켜니 눈처럼 뽀얗게 환해라 / 견조설욕명
계절이 사물을 따라 변천하니 / 절수군물변
어찌 마음에 놀라지 않으리오 / 하이불심경

골짜기에 들어가서[입곡]

지팡이 짚고 어둑한 골짜기 들어가니 / 장책귀음학
이끼 낀 협곡에 경사진 길이 있어라 / 태심협로경
시냇가 꽃은 저마다 종류가 있건만 / 계화각유종
산의 새는 도무지 이름을 모르겠구나 / 산조총무명
향기로운 풀은 숲 저편에 모였고 / 방초림변합
맑은 샘은 바위 구멍에서 우네 / 청천석두명
적성은 속절없이 아스라이 머니 / 적성공표묘
어찌 가서 은거하고 싶지 않으리오 / 안득비하정

높은 누각에서 여름에 읊다[고각하영]

사방에 산이 와 날마다 에워싸고 / 사산래일옹
높은 누각은 긴 들판을 굽어보누나 / 고각부장교
모이 먹는 참새는 처마에서 시끄럽고 / 포작훤첨극
둥지 트는 꾀꼬리는 나무 끝에서 운다 / 소앵환수초
꿈꾸며 게으른 탓에 잠이 늘고 / 수증연몽라
책을 던졌기에 시가 껄끄럽네 / 시삽용서포
외출하지 않은 지 석 달이 지나니 / 불출경삼월
친한 벗들도 절로 사귐이 끊어진다 / 친붕자절교

농가의 우중 풍경[전가우중즉사]

농가에 장맛비 내려 농사일 어긋나니 / 적우산가농□휴
밭에서 보리 베어 서둘러 아침 짓는다 / 전중예맥급조취
생나무는 습기를 띠어 푸른 연기 이니 / 생신대습청연기
그야말로 밥 짓는 계집종 투덜댈 때일세 / 정시주환작탄시

우연히 남령(담배)을 얻어 김 상사를 불러 함께 먹으며[우득남령봉요금상사공䬲]

남쪽에서 온 한 봉지 신령한 풀 / 일봉령초자남전
습증과 풍병을 다스리는 기운이 있어라 / 격습공풍기독전
좋은 사람 함께 먹고자 오시게 하여 / 요득가인로장구
함께 담뱃대 쥐고 앉아 푸른 연기 뿜는다 / 공휴아관좌청연

새집 을축년(1625) 봄에 산내에 새집을 짓고 뒤미처 이 시를 지었다 [신옥 을축춘구신옥우산내추술차시]

선대의 터전 이어 새집을 지어 / 창옥승선업
여덟아홉 칸 집채를 지었는데 / 경영팔구간
겨우 무릎을 들여놓을 만하지만 / 재아용슬호
머리 부딪치는 고생은 면하겠구나 / 응면타두간
제비와 까치는 제 집 생겼다 기뻐하고 / 연작흔상탁
닭과 돼지도 편안히 살 수 있게 됐네 / 계돈득자안
이 집에 거처한 뒤로 틀림없이 / 정종원처후
기쁨이 집안에 가득 넘치리라 / 환희일문란

여름 밤 산가 마루에서 본 풍경[하야산헌즉사]

한여름 무더위가 몹시 심하지만 / 성하고염열
밤 마루에는 풍경이 아름다워라 / 소헌미경과
구슬이 빠진 듯 별이 시내에 비치고 / 주함성조간
금이 새는 듯 달빛이 안개를 뚫는다 / 금루월천하
이슬이 무거우니 매화꽃이 촉촉하고 / 로중매혼습
바람이 싸늘하니 대나무 운치 많구나 / 풍처죽운다
앉았노라니 함께 구경할 사람 없어 / 좌래무공상
그윽한 흥을 시에 담아서 읊노라 / 유흥속음아

이 정자가 부채를 준 데 사례하다 2수 [봉수리정자유선 이수]

쇠를 녹일 무더위에 땀이 마르지 않으니 / 욕서류금한미건
가슴 헤치고 맨머리로 소나무 난간에 앉았노라 / 피금로발좌송란
옥경의 신선 벗이 나를 지성스레 생각해 주어 / 옥경선반근상념
맑은 바람 한 줄기를 나누어 보내주었구려 / 분송청풍일진한

펄럭펄럭 한 쌍의 백설처럼 흰 부채를 / 쌍선편편백설애
우리 벗이 나를 위해 죽헌에 보내셨구려 / 고인분송죽헌래
시원한 맑은 바람이 품 안에서 일어나 / 청풍삽상회중발
천일주에 취한 산옹을 깨워주는구나 / 성득산옹천일배

빗줄기 기세[우세]

붉은 햇살 막 걷히고 빗줄기가 오니 / 홍영초수우세래
먹구름이 들판을 덮고 가벼운 우레 울린다 / 운음수야동경뢰
저편 숲에 새들은 놀라 서로 모여드니 / 림변조작경상집
그야말로 농부가 서둘러 보리타작 할 때로세 / 정시전옹타맥최

보리를 햇볕에 말리다[폭맥]

햇볕 좋은 뜰에 누른 구름을 펼치나니 / 중정백일포황운
긴긴 여름 더운 날씨 불타는 듯 뜨겁구나 / 장하염염기사분
모르는 사이 산 앞에 빗줄기가 이르는데 / 불각산전행우지
주인은 마루에 앉아 삼분을 대하누나 / 주인당상대삼분

서촌에서 저물녘 길을 가며[서촌만행]

제비는 쌍쌍이 어지러이 날아 풀을 스쳐 지나고 / 란연쌍쌍략초과
들판 난초는 산하에 두루 흐드러지게 피었어라 / 야란개만편산아
동촌의 묵객이 서촌으로 가며 / 동촌묵객서촌거
동남풍이 얼굴에 많이 불어대건 말건 / 일임훈풍불면다

쉬는 삶[언식]

은거하여 한가히 세월 보내며 / 서지한일월
자연에서 몇 성상이 흘렀던가 / 림학기성상
손수 심은 소나무 대나무는 늙었고 / 수종송황로
몸소 가꾼 기장과 보리는 자랐어라 / 궁경서맥장
쉬는 삶을 자연히 달게 여기나니 / 자연감언식
늦게 세상에 나감을 싫어함은 아닐세 / 비염만추창

회포를 읊다[영회]

생각이 어지러우니 몸이 늙어 / 념란신전로
외진 시골에서 세월만 흘러간다 / 궁촌세월경
조정은 바다 섬으로 바라보고 / 조정첨해서
왕업은 이미 신경을 떠났어라 / 왕업거신경
세상사는 그저 이나 잡을 뿐 / 세무공문슬
터무니없는 생각은 청영하고 싶어라 / 광모단청영
서생은 부질없이 비분강개할 뿐 / 서생도강개
국가의 장성이 될 길이 없구나 / 무로작장성

여름날 안 공부가 생각나기에 호서의 우거로 부치다[하일억안공부인기호서피우]

그대는 남포의 누각에 올라 / 군등남포각
긴긴 여름 홀로 창에 기대겠지 / 장하독빙롱
오랜 비는 이어진 산들에서 개고 / 적우련산청
외로운 노을은 바다에 떨어져 붉다 / 고하락해홍
시름에 잠긴 나머지 시가 이뤄지고 / 시성수서외
고향을 그리는 중에 술잔을 들테지 / 배주망향중
유원의 만남이 더없는 다행이니 / 막행류원회
오랜 병을 잊을 수 있는 건 같아라 / 능망구병동

남포[남포]

남포의 풍광이 아름답고 빛나니 / 남포풍광미차휘
지팡이 짚고 날마다 물가에 이르노라 / 부공일일도태기
한 쌍의 갈매기는 왔다가 도로 떠나고 / 일쌍구로래환거
두 마리 잠자리는 앉았다 다시 난다 / 량개청정좌경비
풀을 스치며 벌을 잡는 어린 제비 빠르고 / 략초탐봉유연질
숲을 뚫고 나비 쫓아 늙은 꾀꼬리 돌아가네 / 천림진접로앵귀
두건 젖혀 쓰고 홀로 서매 맑은 흥 많아 / 안건독립요청흥
모르는 결에 석양빛이 벌써 옷에 가득해라 / 불각사양이만의

여름날 이 교서가 강도로부터 찾아왔기에[하일리교서자강도래방]

군사들은 남북으로 흩어져 달아나 / 조찬분남북
세상이 전쟁으로 가득했던 가을에 / 간과만지추
아득히 강해에서 우리 이별한 뒤 / 창망강해별
아스라이 수운의 시름에 잠겼었지 / 초체수운수
술잔을 잡으매 같이 청안을 뜨고 / 파주동청안
글을 토론하매 둘 다 백발이어라 / 론문공백두
다시 만날 날이 그 언제런고 / 중봉지기일
손을 잡고 다시금 머뭇거린다 / 악수경엄류

수졸[수졸]

수졸하는 것이 장왕과도 같고 / 출졸여장왕
한거하는 것은 은둔한 듯하여라 / 한거은사륜
시국 위태하니 근심이 나라에 있고 / 시위우재국
세월이 가니 늙음이 사람을 따른다 / 세거로수인
원래 세상 평정할 무략이 없거늘 / 무정원무술
유관이 어찌 몸을 그르치는 것이랴 / 유관기오신
평소 행실은 돈독하고 공경스러우니 / 소행유독경
이 마을 풍속이 아마도 순박하게 되리 / 촌속서환순

아침 누각에서 들을 바라보며[조각야망]

동 틀 무렵에 초가 누각에 오르니 / 평명등초각
온갖 경치가 흥을 일으키누나 / 공흥경다안
간밤의 안개는 산에 짙게 끼었고 / 숙무서산중
맑은 구름은 산허리에 한가롭다 / 청운반령한
중은 와서 들판의 다리를 건너고 / 승래경야최
백구는 가서 시냇가에 점점이 앉누나 / 구거점계만
용면의 솜씨를 얻어서 / 욕득룡면수
맑은 풍광을 그림에 담고파라 / 청광입화간

여름 구름[하운]

푸른 허공의 바탕이 변화했으니 / 변화청공질
보건대 색색이 사랑스럽구나 / 간래색색련
바람 앞엔 얇은 버들솜 같고 / 풍전여박서
비온 뒤엔 무거운 솜과 같아라 / 우후사중면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듯 일어나고 / 렬화치환기
높은 봉우리에 떨어질 듯 걸렸구나 / 위봉락욕현
뉘라서 은택 내리는 것을 가지고 / 수장패택물
하늘을 가린다고 잘못 말했는가 / 착도만차천

한여름의 절구[중하절구]

나무 저편 꾀꼬리 소리 분간할 수 없고 / 격수앵아어미분
숲속의 꿩 새끼는 움직여 무리 이루누나 / 중림치자동성군
섬돌 앞 파초 잎은 난새 꼬리처럼 펄럭이고 / 계전초엽번란미
뜰 아래 석류꽃은 다홍치마마냥 붉어라 / 정하류화휘천군

고요한 중에[정중]

빈 누각 매우 한가해 해는 뉘엿뉘엿 / 허각한다백일지
적적한 사립문에 그 누가 찾아오는가 / 시문격적도래수
갈건으로 매양 연명의 술을 거르고 / 갈건매록연명주
오동잎에는 늘 자미의 시를 적노라 / 동엽상제자미시
옥기둥 높은 누각에 침상은 고요해 / 옥주고탱상상정
청평은 날 칼집 속에서 슬피 우는구나 / 청평장□갑중비
시국 위태해도 나라 구할 계책 못 올리고 / 시위미헌평방책
때로 높은 산에 가서 자지나 캐노라 / 시향고산채자지

경월에 감회가 있어[경월유감]

난리가 지금 해독을 끼치는데 / 란리금막의
시국의 소식은 전해 듣지 못하네 / 시사미문전
절서는 이미 삼복이 지났으니 / 절서경삼복
풍광은 한 해의 반이 갔구나 / 풍광반일년
이른 아침에는 남쪽 논밭에 가고 / 침신남무왕
한낮에는 북창 가에서 자노라 / 정오북창면
편안히 살 수 있는 곳 좋아서 / 자희투안지
이 산골에 들어와 한가히 사노라 / 한거입동천

시국에 감회가 일어 2수 ○정묘년(1627) 정월에 청나라 군사가 의주를 함락시키고 이어 제군을 함락시켰다. 어가가 강도에 들어가 남이흥을 시켜 안주를 지키게 했는데 남이흥이 전사하였다. 청나라 군사가 평산에 이르러 강화를 청하기에 종실 원창군을 왕자로 삼고 볼모로 보냈다. 청나라 군사가 원창군을 데리고 갔다 [감시 이수 ○정묘정월청병䧟의주전䧟제군차가입강도사남이흥수안주사지청병지평산청화이종실원창군위왕자위질청병퇴거]

전란의 먼지가 나라 안에 가득하니 / 황진현갑만중주
임금과 왕자 공주 배 타고 피난했네 / 취개금지범해주
포로를 묶어서 흑수에까지 가고 / 속전진부련흑수
공사 간에 통곡 소리 청구를 덮는다 / 공사연곡권청구
빈 성에 원융의 뼈를 피눈물 흘리며 묻고 / 혈매원사공성골
끌려가는 왕손의 갖옷을 눈물이 적시네 / 루습왕손출새구
슬퍼라 난리를 풀 사람 아무도 없으니 / 추창무인능석란
장군이 어느 날에나 투구를 벗을거나 / 장군하일탈두무

철마와 병기가 북쪽 변새 진동하니 / 철마금창동북변
위세가 매우 커서 투편할 정도일세 / 병위공극세투편
수양이 이미 함락되니 충혼이 끊어졌지만 / 휴양이함충혼단
즉묵이 그래도 온전해 나라 명맥 이어지네 / 즉묵유전국보면
관문을 나온 맹상은 범의 소굴 벗어났고 / 관출맹상위호혈
뗏목을 타고 돌아온 박망은 용천을 띠었어라 / 사회박망대룡천
기미 한 방책을 그 누가 내놓을 수 있으랴 / 기미일책수능화
보국안민의 방법으로 이보다 나은 게 없지 / 보국안민막차현

십오야의 달[십오야월]

십오야 추운 밤에 돌난간에 기대 서니 / 십오한소의석란
한창 둥근 달빛이 참 많이도 보이누나 / 다간월색정단단
영마루 위에 막 떴을 땐 금거울을 연 듯 / 초승령수개금경
하늘 중앙에 올라가서는 옥쟁반을 건 듯 / 전상천중괘옥반
검은 토끼 절구 가에 빛이 절로 가득하고 / 현토저변광자만
항아의 창 밖에는 그림자 깎이지 않았어라 / 항아창외영무완
누가 옥황상제에게 청해 달을 늘 둥글게 해 / 수간상제동현망
맑은 빛이 길이 세상을 두루 비치게 할꼬 / 장사청휘편세간

소쩍새 소리를 듣고[문정소]

외로운 밤 산중에 소쩍새가 우는데 / 독야산중정소호
남쪽 들녘에서 울더니 곧 동쪽 언덕에서 우네 / 재문남맥우동고
무슨 마음으로 이 새는 풍년을 기원하며 / 하심차조기풍양
무슨 마음으로 호로는 죽로를 외치는가 / 저성호로환죽로

훈상인에게 주다[증훈상인]

북산으로부터 외로운 중이 석장을 짚고서 / 장석고승자북산
석양 무렵 아스라이 멀리 나를 찾아왔다 / 초초래문석양간
청낭을 홀연 열더니 신령한 풀을 남겨두어 / 청낭홀탁류령초
이 서생의 중늙은이 얼굴을 더 늙지 않게 하네 / 주득서생반로안

시사십육운 정묘년(1627) 청나라 군사가 물러간 뒤 지은 것이다. 상산이 격파되었다고 한 것은 안주성이 함락되었고 즉묵이 위태하다고 한 것은 용골대가 산성을 포위한 것을 말한다. 일표는 어가가 강도에 들어갔음을 말한다. 천구는 종묘가 강도에 들어갔음을 말한다. 왕손은 원창군을 말한다. 사자는 박증을 말한다. 황옥을 맞이했다는 것은 어가가 환도했음을 말한다 [시사십륙운 정묘퇴병후작야상산파안주성䧟즉묵위위룡골위산성야일표위차가입강도야천구위종묘입강도야왕손위원창군야사자위박증야영황옥차가환도]

국가의 운수가 어려운 날 / 국조둔전일
서쪽 변방이 무너진 때에 / 서관실수시
군사를 지휘할 좋은 장수 없거니 / 원포무상장
누가 결사적으로 적진에 돌격하랴 / 음혈숙등비
힘이 다하여 상산이 격파되었고 / 력갈상산파
병사가 지쳐서 즉묵이 위태하였지 / 병잔즉묵위
봉화 연기는 바닷가에 이어지고 / 봉연련해대
적군의 기세는 임치를 에워쌌어라 / 병기요림치
일표는 강국에 이르렀고 / 일표림강국
천구가 바닷가에 왔어라 / 천구전해미
건곤이 촉금 쪽에 치우쳤고 / 건곤편촉금
종사는 용자에 부쳤어라 / 종사기룡자
백성들은 어육이 되는 화를 입고 / 어육생령화
병졸들은 충원이 되는 슬픔 겪었네 / 충원갑졸비
노약자들은 포로로 끌려가고 / 진부수로약
재물은 공사 간에 바닥났구나 / 연화진공사
왕손의 검은 온갖 보배로 장식했고 / 백보왕손검
사신이 갖고 가는 재물은 천금이었지 / 천금사자자
기미의 방책이 참으로 좋고 / 기미호대계
우호를 맺음이 또한 좋은 법 / 수호역량규
검각에서 황옥을 되돌려 / 검각회황옥
장안에 임금 행차가 들어갔네 / 장안입취기
치세 도모함은 임금의 새로운 생각이요 / 도치신성사
우러러보느니 예전 성군의 얼굴일세 / 첨망구요미
종묘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 맑고 / 묘모청여고
원릉은 숙연하여 허물어지지 않았다 / 원릉숙불휴
선리의 왕업이 거듭 빛나고 / 중광선리업
한관의 위의를 다시 보도다 / 부도한관의
율리에서는 마음이 비록 멀지만 / 률리심수원
오계의 공적비가 어찌 늦은고 / 오계송기지
어이 한 말의 피를 가지고 / 안장일두혈
이 몇 줄의 시를 쓸거나 / 사진수행사

호중[호중]

쓸쓸한 초가 누각에 솔과 계수 쌓였나니 / 초각소소송계퇴
아침저녁 경치 좋아도 시기하는 이 없어라 / 조혼경색호무시
시내 바람이 서늘한 기운 보내오건 말건 / 계풍임송사량지
산 위의 달은 늘 맑은 빛 자랑하며 온다 / 산월상과제색래
출서는 이미 다 기울였고 계서는 익었으며 / 출서이경계서숙
석류꽃은 다 졌고 연꽃이 이제 피었구나 / 류화간진우화개
호중에 절로 고요한 건곤이 있으니 / 호중자유건곤정
무엇하러 멀리 한만의 유람을 할 게 있으랴 / 하필장유한만외

고요히 앉아[정좌]

한가히 높은 집 소제하고 잠을 청하니 / 한소고헌각수매
빈 뜰은 적적한데 이끼만 고요히 끼었다 / 공정적적정매태
한 조각 그늘이 문득 처마 끝을 지나니 / 편음숙홀첨단과
산 앞을 돌아가는 두루미인 줄 알겠네 / 지시산전수학회

아침에 일어나서[조기]

백발의 산인이 혜유를 얻고는 / 상발산인권혜유
베옷을 막 입고 아침 햇살 마주한다 / 마의초착대조휘
구름이 골짜기 어귀에 깊으니 시내 빛 어둑하고 / 운심곡구계광암
안개가 시내 다리를 누르니 들판 빛이 희미해라 / 무압천교야색미
무능한 몸 스스로 출사하지 않으리라 기약하고 / 저산자기시불용
산야에 묻혀 살며 길이 세상을 멀리하도다 / 암거장여세상위
한가한 중에 늘 여름 가을을 보내노니 / 한중매송염량과
틀림없이 하얗게 센 머리털을 보게 되리라 / 회견세화빈상귀

동지[동지]

시냇가엔 네모난 연못 연못가엔 단이라 / 계상방당당상단
유인이 한가로이 넉넉한 별천지 차지했구나 / 유인한점별구관
천 가닥 실버들은 바람에 하늘대고 / 천사약류견풍세
백 척의 높은 솔은 햇살 가려 차가워라 / 백척장송예일한
긴 밤에도 고아한 회포는 여전히 시구 찾고 / 영석고회유멱구
노년에 깊은 취미는 물결 구경에 있어라 / 로년심취재관란
이곳의 기이한 형상 보고 싶으면 / 욕간차지진기상
서산 쪽으로 봉우리들을 보아야 하리 / 수향서산앙중만

쯧쯧[돌돌]

쯧쯧 관서의 일이여 / 돌돌관서사
사십 개 고을이 바람에 날려갔구나 / 풍비사십주
남아여 그 누가 절의가 있는가 / 남아수절의
백성들이 모두 포로로 잡혀갔어라 / 민물입부수
업하에는 비록 병사들이 모였으나 / 업하병수취
양양의 수비는 이미 위태한 것을 / 양양수이위
종군하여 적을 무찌를 책략 없어 / 종군무장략
부질없이 두 줄기 눈물만 흘리노라 / 도부루쌍수

독서[독서]

만년에 봉창 가에서 설경을 일삼노니 / 만세봉창사설경
귀밑에는 흰 머리털이 이미 천 올이어라 / 빈변상발이천경
휘장 드리우고 걸상 뚫은 공부는 매우 근면했고 / 하유천탑공수절
눈에 비추고 반딧불 주머니 만들어 뜻이 성실했어라 / 영설낭형지자성
글자는 어려운 것 지나치니 응당 두찬의 설일 테고 / 자즉과난응두설
글은 깊이 알려 하지 않노니 도연명의 마음이로다 / 서무심해견도정
먹과 붓이 때로 내 앞에 올라오니 / 현령관자시상진
새로운 시심 움직여 날마다 시를 짓노라 / 최동신시일불정

안 공부가 호서의 피우에서 부쳐온 시에 차운하다 안 공부는 바로 안 정랑 홍중이다 [차안공부자호서피우중기운 즉안정랑홍중]

초가을이라 병든 잎 먼저 떨어지려 하고 / 신추병엽욕선조
날 저무는 산촌 집 문에서 나무꾼이 보인다 / 일석산문견채초
강호에 서신은 드물고 구름은 아득한데 / 택국서희운묘묘
초당에 사람은 누웠고 꿈길은 아스라해라 / 초당인와몽초초
창 밖에 비 오는데 함께 술 마실 벗 없으니 / 방준미속등전우
달 밝은 밤 금슬을 함께할 사람 누구인고 / 금슬수동월만소
얼마나 다행인가 하늘이 옥 같은 시 보내니 / 하행천교전편옥
소나무 걸상에서 읽으매 마음이 멀리 달려간다 / 피음송탑의환요

안 공부가 호서에서 부쳐온 시에 차운하다[차안공부호서기운]

서쪽 변방에서 온 봉화가 금용을 비추니 / 서관봉화조금용
구중에서 옥식이 늦다는 소식이 들리누나 / 옥식유문간구중
준걸인 그대는 필시 세상의 실무를 알 것이니 / 준걸필능지세무
위태한 시국 구제할 소장을 기탄없이 올리라 / 지위휴석일장봉

유종숙 백씨ㆍ중씨 형제분이 한 집에서 해로하는 것을 축하하며 순인ㆍ우인이다 [하류종숙백중해로일당 즉순인우인]

자형의 봄뜻이 늙었어도 / 자형춘의로
해가 긴 때 즐거이 어울린다 / 지일호상이
승부 겨룸은 바둑 한 판이요 / 승부기일국
슬픔과 기쁨엔 술 열 잔이라 / 비환주십치
한 집에서 머리가 함께 무겁고 / 일당두공중
나란히 잠자매 몸이 모두 노쇠했다 / 련탑체구쇠
백년 동안 강피를 함께하니 / 백세동강피
훈지를 길이 서로 불겠구나 / 훈호영서취

병이 많아서[다병]

이끼 낀 길에 인적이 끊어지고 / 태경인행단
개울 가에 사립문만 홀로 있구나 / 시형독간미
가을 만나매 시 읊느라 더욱 고심하고 / 봉추음경고
병이 많아서 일어나는 게 늘 늦어라 / 다병기상지
의관을 갖추고 손님 맞는 게 걱정이오 / 속대수영객
술자리에선 술잔 다 비우기 겁난다 / 당연겁진치
세월은 급박하게 흘러가니 / 년광상촉박
희게 센 머리털 천 올이어라 / 쇠삽빈천사

정 원외에게 삼가 올려 화답을 요구하다 정 원외는 바로 좌랑 응운 씨인데 계해년(1623)에 벼슬을 그만두고 광주 아래 도성촌에 내려가 살았다 [봉정정원외구화 즉좌랑응운보계해작㪚하거광주하도성촌]

숲 속에서 함께 속세 피해 사니 / 림간동피속
산 아래 두 개의 사립문이 있어라 / 산하량형시
나의 뜻은 한갓 광간할 뿐이오 / 아지도광간
그대의 재주는 홀로 노성하구나 / 군재독로성
꽃 피는 봄 처마 아래 술 함께 마시고 / 첨화춘주공
비 오는 저녁 창가에 바둑을 둔다 / 창우만기쟁
세상사는 전란 속에 있으니 / 세사간과리
이 생애에 고락을 같이하누나 / 영고일차생

호사스런 길손[번화객]

가벼운 갖옷 빠른 말을 탄 호사스런 길손 / 연구쾌마번화객
나는 듯한 수레에 채찍 울리며 마을 지나간다 / 비개명편과별촌
평생토록 농사짓는 일은 알지 못하고 / 신세불지경가사
임금 은혜 보답하고자 한다고만 말하네 / 단언종욕보군은

정 원외 형에게 삼가 드리다[봉정정원외형]

서로 사는 마을이 우명의 거리에 있으니 / 유촌상주격우명
푸른빛 산허리 하나를 나누어 차지하였어라 / 분점운산일취횡
귀신을 울리는 그대 시는 만 섬의 보배 구슬 / 읍귀군시주만곡
시국을 상심해 나의 머리는 흰 털이 천 올이어라 / 상시농빈설천경
담요 없으니 고헌이 들르게 하지 말고 / 무전막치고헌과
만안을 기울인 묵은 빚은 갚기가 어렵구나 / 흠채난모만안경
우리 우정이 담수 같음을 다행으로 여기노니 / 자행교정여담수
노년에 함께 백구의 맹약을 맺고자 하오 / 쇠년동결백구맹

맹추 초열흘 밤에 앉아서[맹추초십일야좌]

맑은 가을 선선한 바람이 작은 집에 드는데 / 청추소풍입소당
이 늙은이 다리 뻗고 앉아 가을 바람 쐬노라 / 로부기좌작추량
구름 가에 이지러진 달은 부서진 금가락지인 듯 / 운단결월금환파
헌함 너머 밝은 은하수는 길게 펼친 흰 깁이런가 / 함외명하소련장
세 갈래 길에 낙엽이 지는데 반딧불이 보이고 / 삼경엽저간습요
한 연못에 연꽃 고요하니 원앙이 잠자누나 / 일지하정수䲶앙
뜰에 가득한 이슬이 옷소매를 적시니 / 만정백로점의수
술병 앞에 높고 맘껏 마셔 취해야겠다 / 합대방준취십상

규방의 정 2수 [규정 이수]

울며 낭군과 이별한 뒤 세월이 얼마나 흘렀나 / 읍별랑군세기경
빈 규방에서 홀로 지내며 늘 잠을 못 이루누나 / 공규척영구경경
군대가 자새로 옮겨가 서신을 부치기 어렵고 / 병이자새서난기
전투가 금하에서 벌어지니 소식에 늘 놀란다 / 전합금하보매경
피눈물은 은연중에 외로운 촛불 따라 다하고 / 혈루암수고촉진
꽃다운 마음은 헛되이 조각구름 따라가누나 / 방심허축편운정
젊은 얼굴 이미 시들어 전혀 옛모습 아니니 / 소안이사비전성
낭군을 만나도 응당 옛날 같은 정은 없으리 / 상견응무구일정

먼 변방에는 해마다 전란이 그치지 않으니 / 원수빈년불해병
낭군은 한 번 가서 변방의 성에서 늙어가네 / 랑군일거로변성
떠날 때 심은 나무는 까치가 둥지를 틀고 / 귀시종수감소작
뱃속의 아이는 이미 자라 장정이 되었어라 / 유복생아이작정
촛불만 헛되이 타고 마음은 끊어지는 듯 / 금촉허소심단절
거문고 타고 난 뒤 눈물만 줄줄 흐르누나 / 요금탄파루종횡
들리는 소문으론 화친을 맺기로 했다니 / 전문국유화친책
관군이 전쟁 그만두고 돌아오길 기다리리 / 잉대관군언패정

정 원외 형의 술자리에서 취중에 지어 주다[정원외형석상취증]

정형의 높은 풍모 그 누가 당하랴 / 정자고풍숙감당
자칭 늙고 소광한 몸이라 말하누나 / 자칭신시로소광
삼장에서 지은 부는 앵무를 능가하고 / 삼장작부릉앵무
일대를 울린 시는 봉황을 능가한다 / 일대명시가봉황
백부에서 일찍이 참된 어사가 되었고 / 백부증위진어사
계산에서 지금 병든 옛 관원이어라 / 계산금병구조랑
좋은 날 만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우니 / 량진회면성난사
꽃 앞에서 열 잔을 통음하고 취합시다 / 통음화전취십상

가을날 연못가에서 김 상사 중사와 연구로 짓다 김 진사 채문이다 [추일련당상여금상사중사聮구 즉금진사채문]

작은 연못에 풍경이 저무는데 이응희 / 소당풍색만
그윽한 경치에 기심(기심)을 잊노라 김채문 / 유상각망기
연잎이 깨지니 물고기는 덮개 없고 이응희 / 하파어무개
이끼 생기니 물에는 옷이 있구나 김채문 / 태생수유의
금빛 시드는 국화를 대하고 이응희 / 금잔상국대
비단잎 단풍 든 숲가에 있노라 김채문 / 금엽로림의
저물녘 앉았으니 산도 저물어 가 이응희 / 좌석산장석
안개 저편에 지친 새가 돌아가누나 / 연변권조귀

귀경하는 태묘령 안팔수를 삼가 전별하며[봉별안팔수태묘령귀경]

용천이 오래도록 두우의 분야에 숨었으니 / 룡천구칩두우분
땅에서 파냈을 당시에 세상에 알려졌어라 / 굴촉당년세유문
며칠이나 한가한 틈 얻어 백수를 읊었던가 / 기일투한음백수
오늘 길을 얻어서 청운에 오르는구나 / 금진득로상청운
숲 속의 고사리는 비록 캐지 않지만 / 림중자궐수무채
몸에 찬 은어는 태우기 쉽지 않아라 / 신상은어미역분
채복을 입고 환향함을 모쪼록 서두를지니 / 채복환향수경조
매일같이 백발의 어버이 문에 기대 기다린다오 / 조조학발의문근

겨울날 정 원외 형과 사신사에 노닐며 사신사는 태을산에 있다 [동일여정원외형유사신사 재태을산]

벗과 함께 산사에 노니노니 / 휴붕유보지
선경 유람 소원을 이루었도다 / 선상원무위
골짜기 깊어 겨울에도 따스하고 / 곡수동생난
산이 높으니 달은 작게 빛나누나 / 산고월소휘
사찰 건물은 새로 지은 것이고 / 림궁신동우
바위 틈 국화는 옛 향기일세 / 암국구방비
셋이 앉아서 현담을 맘껏 나누니 / 정좌현담극
속진의 마음 지난 잘못을 깨닫노라 / 진심오작비

눈 내린 뒤 호서로 귀근하는 안 형부를 보내며[설후봉별안형부귀근호서]

추정을 허락하는 왕명을 받고서 / 추정인명허
채복을 입고 남쪽 고향에 가누나 / 채복향남서
눈 녹아 물이 분 하교는 멀고 / 설창하교원
구름에 묻힌 바닷가 나무는 아득해라 / 운매해수미
짧은 해에 가는 행차를 재촉하고 / 정초최단경
새벽 닭 울음에 길을 나서리 / 행패동신계
동쪽으로 나는 해오라기 되지 말라 / 막작동비로
임금 수레를 끄는 천리마를 뽑으니 / 란여간결제

부령에 귀양 간 김 교관이 생각나서 김 교관은 두성의 빙군으로, 이름은 유이다. 무진년 역적 이인거의 공초로 죄에 연루되었다가 용서를 받아 부령에 귀양갔다 [유회금교관적거부녕 금교관내두성빙군명유무진리인거역구사련몽유거부녕]

대궐문 밖에서 만나 작별하고 / 면별청문외
갈림길에서 그저 한숨만 쉬었지 / 림기단일희
모습은 저 변방 멀리 떠나갔고 / 음용관새조
소식이 전해오는 것도 드물었네 / 소식우린희
목숨은 그물에 걸린 기러기요 / 성명홍리망
심정은 굴레에 매인 말이어라 / 심정마집기
가련해라 그대 백발이 된 때에도 / 련군두백일
정건과 같은 굶주림에 시달리다니 / 번작정건기

겨울날 동촌에서 그윽한 모임을 가졌다. 안 형부는 기생을 데리고 오고 구 안협은 매를 어깨에 얹고 개를 끌고 와서 서로 호방함을 자랑하기에 장난 삼아 이 시를 써서 보내다[동일유회동촌안형부협기구안협응견상과호방회이희통]

형부 낭중은 기생을 데리고 오고 / 형부랑중휴분대
관동 태수는 창황을 데리고 왔네 / 관동태수대창황
서생은 이런 맛 참으로 알기 어려우니 / 서생차미진난식
속절없이 술병 앞에서 주정이나 부린다 / 공향준전작취광

동촌에서 밤에 술을 마시다가 먼저 집으로 돌아가며[동촌야음선출환가]

은은하고 맑은 노래 점차 멀리 들리고 / 은은청가청점요
말 앞에 쌍 횃불은 숲의 가지 비춘다 / 마전쌍거영림초
산촌 삽살개는 제 주인 맞을 줄 몰라 / 산방불식영기주
구름 사이에서 시끄럽게 짖어대는구나 / 각재운간폐자노

처질 김공이 부여 수령이 되어 가는 길에 찾아왔기에 김공은 승지 김경여이다 [처질금공작재부여귀력견 즉승지경여]

친친의 후한 의리를 알아서 / 친친지후의
내게 들렀다 무성으로 돌아가누나 / 과아무성귀
옥수는 풍연 앞에 서 있고 / 옥수림풍연
동장은 햇살을 받아 빛난다 / 동장영일휘
행주는 대숲 가에 설치했고 / 행주의죽오
관리들은 사립문에 둘러섰어라 / 관리옹형비
종일토록 진귀한 음식 내오니 / 경일공진찬
온 집안 주린 창자 달랠 만하네 / 능료혼사기

겨울날 심ㆍ이 두 선비가 찾아왔기에 심경징과 이정읍이다 [동일침리량조대견방 침경징리정읍]

골짜기 어귀엔 잔설이 환하고 / 곡구명잔설
황량한 마을엔 까막까치 짖어댄다 / 황촌오작훤
두 분 옥수를 반가이 만나고 / 흔봉량옥수
한 사립문에서 서로 이별하도다 / 림별일봉문
절의로는 평원이 있고 / 절의평원재
문장으로는 자건이 있어라 / 문장자건존
섬돌 앞에서 전송하고 나니 / 계전상송파
산 위에 해가 머물려 하누나 / 산일욕생혼

섣달에 심 선비와 사신사에서 노닐며[랍월유습신사침조대]

용궁은 절벽에 감추어졌고 / 룡궁장절벽
선방은 높은 봉우리 마주했어라 / 선황대층만
바위틈에 패옥 소리를 듣고 / 석두청환결
구름 저편에서 옥쟁반을 보노라 / 운단간옥반
길손은 좋아 신선 흥이 많고 / 객가선흥족
중은 늙어서 범패 소리 잦아든다 / 승로범음잔
송료를 다 마시고 취하노니 / 일취송료진
안개를 마시기 원하지 않노라 / 명하불원찬

호남으로 가는 벗을 보내며[송우인지호남]

사해에는 풍진이 자욱한데 / 사해풍진암
아 그대는 먼 길을 가는구려 / 차군작원유
짧은 해에 말을 타고 시 읊으며 / 음편휘단경
행차가 맑은 지역에 들어가리 / 정패입청구
역로는 차령과 잇닿아 있고 / 역로련차잠
뱃길로 금강을 건널 테지 / 강선도금류
오구를 벗겨서 주고자 하노니 / 오구탈욕증
이별 앞에 다시금 머뭇거리노라 / 림별중엄류

겨울날 신자장이 방문했기에 척질인 좌랑 신이우이다 [동일신자장래방 즉척질좌랑역우]

외로운 나무 황량한 마을 저무는데 / 독수황촌모
교외의 사립문은 반쯤 닫혀 있구나 / 교비반엄시
고인이 적막한 나를 생각해 주어 / 고인련적막
깊은 산골로 안부 물으러 왔구나 / 심곡문서지
묵은 회포 풀며 술잔 자주 기울이고 / 도구배빈속
시를 짓느라 촛불 자주 옮겨 비춘다 / 제시촉루이
바라는 바는 교칠처럼 굳은 우정 / 소구교칠고
무엇하러 이별을 한탄하리오 / 하필탄상리

불성사를 찾아가니 골짜기 아래 산수가 아름다워 한참을 머물며 구경하다 불성사는 관악산에 있다 [왕심불성사동하산수명려애상류련 재관악산]

아름다운 경치 구경 좋아하여 / 애간청경려
소나무 아래 수레를 멈추었다 / 송하주정륜
좋아하는 것마다 좋은 경치이니 / 매호매진경
어디로 갈지 물을 필요 있으랴 / 하증문요진
선분이 많음을 스스로 아노니 / 자지선분후
거령이 성냄을 어찌 두려워하랴 / 녕파거령진
현포를 만약 찢어온다면 / 현포여장렬
새 그림을 보배로 삼을 만하리 / 신도가작진

추운 밤에 홀로 읊다[한소독영]

만학에 솔바람 소리 고요하고 / 만학송풍정
추운 밤은 이경에 이르렀어라 / 한소도이경
창을 여니 달은 나무에 걸렸고 / 창개월재수
문을 닫으니 눈이 뜰에 가득하네 / 문엄설영정
보금자리 찾는 새는 숲으로 가고 / 숙조의림정
날랜 노루는 물 건너편에서 운다 / 경균격수명
초가집에 사람은 홀로 누웠노니 / 모재인독와
고요한 밤 어떻게 마음 달랠거나 / 잠격약위정

병들어 삼춘 내내 한번도 꽃구경을 하지 못했는데 병이 나았기에 김 상사에게 보이다[포병삼춘일미상화병이시정금상사]

삼춘이라 좋은 계절이 병중에 돌아와 / 삼춘가절병중회
금수 같은 봄 풍광을 전혀 구경 못했네 / 금수소광총미재
정원에 가득한 신록이 도리어 볼 만하니 / 신록만원환가상
한 동이 술을 그대 오면 열어 마시리라 / 일준료부대군개

종형 신함종이 성천에 시사하러 갔다가 강선루에 시를 남겼기에 뒤미처 그 시에 차운하다 신함종은 표종형 신광립이다 [종형신함종시사성천류제강선루추차기운 즉표종광립]

우리 형의 명성과 절조는 청류에 으뜸이라 / 오형명절관청류
상대에 출입한 지도 어언 십년이 되었구나 / 출입상대차십추
한 편의 소장을 올렸다가 벼슬에서 물러났네 / 일수봉장매원퇴
반생 동안 서검 가지고 한가히 노닐었네 / 반생서검작한유
상담에서 홀연 봄 우레가 울더니만 / 상담홀보춘뢰동
강현에서 덕정을 베푼단 소문이 들리네 / 강현환문덕정휴
서향에 일보러 가게 하늘이 편의를 주어 / 차사서향천차편
뛰어난 경관인 강선루를 구경할 수 있었네 / 竒관잉득강선루

늦봄에 벗들과 대곡폭포를 찾아가다[모춘여우왕심대곡폭류]

유거가 본래 시끄러운 속세에서 멀지만 / 유거본자사효진
청산에 들어와 보니 흥취가 더욱 새롭네 / 래입청산흥경신
세 갈래 옥 같은 물이 바위 위에 흐르니 / 삼도옥천류석상
맑고 맑은 것이 어쩌면 유람객을 반기는 듯 / 랭랭환사열유인

앞 지당에 버들솜[전지류서]

저 숲 나무 위에서 사뿐히 날아 내려 / 표연비하자림단
지당에 어지러이 들어가 푸른 물결 덮누나 / 란입방당복벽단
흡사 여인네 동방의 밝은 거울 속에 / 흡사동방명경리
긴 바람 차가운 눈꽃을 불어 떨어뜨리는 듯 / 장풍취락설화한

관악산 영주대에 올라[상관악산령주䑓]

바위 벼랑 부여잡고 가파른 봉우리 올라 / 반암문벽척최외
높고 높은 이 영주대에 올라왔어라 / 래상령주상상대
생각건대 여기서 천상이 멀지 않으리 / 상득거천응불원
우러러보니 머리 위에 삼태성이 있으니 / 앙간두상유삼태

비 온 뒤에 김 상사 중사의 시 〈한거〉에 차운하다 김 상사는 이름이 채문이고 자는 중사이다 [우후차금상사중사한거운 명채문자중사]

간밤의 비가 아침에 그치니 / 숙우당조헐
맑은 구름이 어지러운 봉우리 덮었다 / 청운멱란잠
홰나무 뿌리엔 오르는 개미 보이고 / 괴근간상의
소나무 뒤에는 돌아가는 새 보여라 / 송배견귀금
물색은 호중에서 늙어가고 / 물색호중로
광음은 머리털에 침노하누나 / 광음빈상침
한거하는 중에 좋은 벗 없더니 / 단거무호반
이웃에 마음 알아주는 그대 있어라 / 린옹유지심

한거 중에 읊어서 옥담에게 삼가 드리다 원운 [한거음경정옥담 원운]

초가집이 외진 숲가에 있어 / 초옥의림벽
쑥대 사립이 먼 봉우리 마주한다 / 봉비대원잠
지역이 깊으니 속된 사람 안 오고 / 경심무속객
밤이 고요해 그윽한 새들만 우누나 / 야정□유금
시내 안개는 시 읊는 곁에서 젖고 / 간애음변습
산 기운은 자리 위에 스며든다 / 산람석상침
서성이며 긴긴 낮을 보내노니 / 배회소영주
천석이 절로 마음 즐겁게 하네 / 천석자오심

유종숙의 국오 벽에 걸린 안수재의 시에 차운하다 2수 [류종숙국오벽상차안수재운 이수]

이끼 낀 헌함 고요히 소제하고 박산향로 대하니 / 정소태헌대박산
한 떼 귀여운 새들은 꽃 속에서 지저귀누나 / 일군교조어화간
주인의 그윽한 흥취가 그 얼마나 많은가 / 주인유흥지다소
새 시를 읊느라 잠시도 한가롭지 않아라 / 부득신시불잠한

한 구비 시내 한 자락 산에 / 일곡계류일편산
쓸쓸한 초가집 두세 칸이 있어라 / 소조백옥량삼간
집이 가난하니 술 떨어져도 한탄 않고 / 가빈막한준무주
담배를 길게 들여마시니 또한 한가해라 / 장흡연다역자한

삼암에게 삼가 바치다 삼암은 채문이다 [봉정삼암 즉채문]

그대는 시내 북쪽에 가고 나는 시내 동쪽 / 군거계북아계동
둘 사이엔 하나의 푸른 봉우리가 막았을 뿐 / 지격중간일취봉
산 위의 달이 떠오를 때는 시상이 함께 일고 / 산월욕래음사공
바위틈에 꽃이 활짝 피면 구경하는 마음 같다 / 암화작탁상심동
공부처럼 글 짓는 데 마음 쏟은 사람 아니건만 / 유신한원비공부
이옹이 티끌세상에서 만나길 청함에 감격하였네 / 식면진도감리옹
이제부터 우리 교칠의 우정을 가지고서 / 종차호장교칠도
임하에서 지팡이 짚고 날마다 서로 만나세 / 부공림하일상봉

차운 김채문 [차운 금채문]

푸른 시내 동쪽에 유거를 막 정하니 / 유거초점벽계동
봉우리 하나 너머 좋은 이웃 기뻐라 / 정희방린격일봉
달빛 비친 시내에 낚시하매 고기 잡는 마음 함께하고 / 월간투륜어사공
안개 어린 창가에서 붓 잡고 취해 시 읊음이 같아라 / 하창파필취음동
빈한한 아이 누추한 모습이라 장백을 슬퍼하고 / 한아루태비장백
어린 아낙네 새로운 글이라 채옹을 우러른다 / 유부신사앙채옹
담소하며 연사의 교분을 잘 이루거늘 / 담소호성련사계
세상에서 지기 만나기 어렵다 누가 말했던가 / 숙운지기세난봉

영흥정의 집에 작약이 활짝 핀 것을 보고 짓다 주인이 상경하여 돌아오지 않았기에 김중사에게 보이다. 2수 [관영흥정가작약만개 주인상락미환잉시금중사 이수]

기이한 꽃 그 이름이 낙양홍인데 / 기화명시락양홍
붉은 꽃잎 노란 꽃술 섬돌을 휘감았다 / 자타금빈요체농
다만 아쉽게도 왕손이 대궐에 갔으니 / 독한왕손조북궐
누가 술병 열어 이 산옹 취하게 하리오 / 개준수부취산옹

듣건대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하는데 / 문도화무십일홍
섬돌 앞에 작약이 바야흐로 농염해라 / 계전작약염방농
꽃구경에 어진 주인이 있을 필요 없나니 / 심방불필수현주
허리에 술통을 차고 두 늙은이 취하노라 / 요대주통취량옹

차운 김채문 [차운 금채문]

백 송이 꽃 교태부리며 난만히 붉으니 / 백타쟁교란만홍
사람에게 끼치는 향기 온 뜰에 짙어라 / 핍인향기만정농
왕손은 본래 풍류를 즐기는 분이니 / 왕손자시풍류객
꽃 앞에서 술 취하지 않으려 할 것인가 / 긍작화전불취옹

기이한 꽃이 바람에 나부껴 특히 붉으니 / 이악번풍특지홍
다정하게도 이슬을 흠뻑 머금고 있구나 / 다정초대로화농
어이하여 술병의 술을 마시지 않고 / 여하불음청준주
속절없이 인간 세상 백발 늙은이 되는가 / 공작인간백발옹

한거[한거]

은거하는 집 바로 푸른 시냇가에 있는데 / 유거단재벽계심
흰 머리털에 가는 세월만 속절없이 시름한다 / 쇠빈공수세월침
화정은 바둑 못 두니 소일하기가 어렵고 / 화정불기난견일
무홍은 술 못 마시니 마음 달랠 수 없어라 / 무홍간주미관심
집안에는 옥경만 걸려 있어 속세 얘기 끊어졌고 / 가현옥경진담절
몸에는 금어가 없어 길에 풀이 우거졌다 / □□금어초경심
만년에 뜰 앞에 세 개의 대나무 심어 / 만유정전삼개죽
아침마다 잘 가꾸어 푸른 그늘 기다린다 / 조조봉식대청음

삼암의 고시에 삼가 차운하다[봉차삼암고시운]

푸른 바위 단단하여 바람에 아니 깎이고 / 청석막막풍불마
흰 물은 찰랑찰랑 물빛이 투명해라 / 백수린린광수철
내 여기에 집을 두어 날마다 몸을 씻노니 / 아가우차일세탁
몸을 깨끗이 씻으니 마음도 청결해진다 / 결신지여심역결
언덕은 깊고 골짜기 그윽해 속인이 안 오니 / 안심곡밀단속자
평생에 마음의 벗은 오직 어사 뿐이로세 / 백년심계유어사
봄 산에는 새 울고 자지가 자라는데 / 춘산책책장자지
막막한 높은 노래 화답하는 이 적어라 / 막막고가화자과
호중에는 태곳적 일월이 길고 / 호중태고일월장
비옥한 들판에는 말이 풀 뜯기 좋구나 / 무무원두불해마
남에게 보이려 자신을 갈고 닦으려 않나니 / 세마막긍향인전
어찌 문아를 지켰던 안석과 같길 기약하랴 / 기기안석지문아
주진이라 바로 이웃에 살며 절로 마을 이루니 / 주진격옥자성촌
달을 낚고 구름 낚음은 이 집 덕분일세 / 월조운경위차사
늘 어로를 식별하는 것은 누구와 할거나 / 상분어로여자주
날마다 모기떼 모인 듯 촌스런 사람들뿐 / 일취비문도박야
빙호옥뢰 같은 그대 문득 찾아와 주니 / 빙호옥뢰홀일면
청풍이 천지간에 시원히 부는 것 보겠구나 / 가견청풍륙합쇄
웅명이 어찌 아름다운 시구만 독차지하랴 / 웅명기특천미구
적선과 소릉조차도 그대 밑이로다 / 적선소릉풍사하
아득히 먼 옛날 요순 시대를 생각하나니 / 당우세원기하상
완염을 공연히 내게 준 지 두 해가 되었어라 / 완염공포당재하
넉넉하고 뛰어난 면모는 왕사를 능가하고 / 우여탁락가왕사
남다르고 우뚝한 풍모는 굴가를 밀쳐낸다 / 이범고표추굴가
지미의 풍모로 너그럽게 누차 맞아 주었고 / 지미성의루용접
진심을 다 쏟아 보이고 가식이 없었어라 / 경진진충비외가
창 앞에는 푸른 대나무가 늘 서 있었고 / 창전록옥매상주
책상 위의 〈황정경〉을 때로 함께 읽었지 / 안상황정시공파
남금을 한가한 중에 다시 부쳐 주시니 / 남금능부정중기
남은 빛을 수습하여 버려질까 염려한다 / 철습여광공견사
빈한한 아이가 누추한 모습 추한 줄 모르고 / 한아불식루태추
누가 더 용모가 고운지 서자와 겨루려 하네 / 욕여서자쟁안완
문형을 잡아 행여 내 글을 평가해 주시면 / 문형당득사근전
대장간에서 만들듯 나를 다듬을 수 있으련만 / 리기환여출도야
그런 뒤에 빈빈하게 질과 문이 조화 이루리니 / 연후빈빈질여문
나는 지금 사숙하는 자가 되고자 한다오 / 아원위금사숙자

연환체로 회포를 써서 삼암께 삼가 바치다[용련환체사회봉정삼암]

참새 나는 황량한 마을이 저잣거리와 멀어 / 조작황촌원시성
줄지어 선 소나무 잣나무에 한가한 정 부친다 / 성행송백기한정
청산에 길은 막혔는데 세월 빨리 흐르고 / 청산로격년광박
백설의 곡조는 높고 머리털 희게 세었어라 / 백설조고빈발명
달빛 비친 정자에서 거문고 타니 맑은 흥 일고 / 월사휴금청흥지
흙 침상에 누워 노래하니 취한 잠이 깨누나 / 토상가침취면성
별빛이 허리에서 잘 움직이니 / 성망동색요간호
한밤에 용천검이 칼집에서 우는구나 / 자야룡천갑리명

삼가 연환체 시에 차운하다 김채문 [경차련환운 금채문]

조운하는 신세로 강성에서 살고 있노니 / 조운신세기강성
연하를 몹시 좋아함이 만년의 마음이로세 / 성벽연하만세정
푸름이 호숫가 밭에 들어오니 봄 농사 급하고 / 청입호전춘사박
흰빛이 산옹의 귀밑에 보태지니 머리털 하얗다 / 백첨산빈설경명
달빛 어린 창가로 시인이 와 주니 늘 고맙고 / 월창매하소인지
토방에서는 초객의 술 깸이 몹시 가련해라 / 토실편련초객성
성두가 찬란하여 시가 더욱 좋으니 / 성두찬연시경호
자첨이 어찌 홀로 웅명을 독차지하리오 / 자첨하독천웅명

민사호의 정자에서 홍칠 고령을 만나서 주다 민사호는 민안협의 호이고 고령은 홍익한이다 [민사호정우홍칠고령잉증 민사호안협호고령즉익한]

동남방에서 헤어진 지 이십 년 동안 / 현시동남이십추
몇 번이나 들보의 달빛 보며 꿈속에 그렸던가 / 기간량월몽유유
그대는 벼슬길에 올라 일찍 관복을 걸쳤고 / 군등악로우청조
나는 어촌에서 병들어 목칠을 그만두었다 / 아병어촌목칠휴
강해에서 거듭 만남 참으로 운수 있으니 / 강해중봉진유수
연못 정자 한가한 곳에서 함께 머문다 / 지대한처즉상류
오늘밤에는 한바탕 흠뻑 취해야 하리 / 금소일취수응진
변방에는 전란의 먼지가 만 리에 자욱하니 / 옥새황진만리부

차운 홍익한 [차운 홍익한]

하루를 이별해도 삼추와 같거늘 / 규리일일즉삼추
하물며 호산에 이별하는 길이 멂에랴 / 황시호산기로유
은퇴하리라 깊이 약속해 놓고 이 몸 늙었거늘 / 심약이지종자로
작은 벼슬을 무엇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는가 / 소관하사미능휴
시를 구상하느라 짙게 우거진 녹음에 가고 / 농음록수심시지
가랑비 올 제 등잔불 아래 술 취해 머문다 / 세우등화피주류
부평초 만남에 그저 행락을 즐길 따름이니 / 평수단령행악이
우리네 인생 어딘들 덧없지 않은 곳 없어라 / 차생무처불상부

연환체를 써서 회포를 읊다[용련환체영회]

산인이 푸른 구름 사이에 높이 은거하며 / 산인고와벽운간
날마다 조롱 속에 든 백한을 짝하노라 / 일일롱중반백한
조수와 무리지어 사는 건 내 뜻이 아니나 / 조수위군비아지
산속을 등지지 않으리 마음으로 기약한다 / 심기불욕부림만

달밤[월석]

구름 가에 달빛이 바야흐로 배회하고 / 운단월색정배회
창 밖에는 솔바람이 만 리에 불어온다 / 창외송풍만리래
이러한 때 광경은 한 마디로 말할 수 없으니 / 광경차시비일개
유연히 이는 맑은 흥을 주체하기 어렵네 / 유연청흥야난재

과거에 낙방한 김 상사 중사에게 위로 삼아 주다 김 상사 중사는 김채문이다 [위증금상사중사하제 즉금채문]

그대 재주는 우뚝하여 참으로 출중하니 / 군재탁락능초승
지금에 가장 뛰어난 인재라 일컬어지지 / 준채우금제일칭
도협의 문장은 자건을 가볍게 보고 / 도협사원경자건
현하의 담설은 진등을 작게 여긴다 / 현하담설소진등
천리마가 잠시 실족했다고 실망할 것 없으니 / 상제잠궐비위실
날개 잠시 접었으나 마침내 하늘 높이 날으리 / 운한수수경유등
듣건대 우리 성상께서 연이어 과거 연다 하니 / 문도성군련책사
틀림없이 가장 높은 성적으로 천화를 꺾으리 / 천화수절최고층

광릉에 있는 민사호의 정자에 올라 민사호는 민호이다 [등광릉민사호정 즉민호]

건곤이 한 골짜기에 넓게 열린 곳 / 건곤관일학
초가 정자가 높은 기슭에 서 있도다 / 모동세림위
해초는 붉은 비단을 펼친 듯하고 / 해초명홍금
호산은 푸른 봉우리에 가까워라 / 호산읍취미
연잎 깊어 만 개 일산이 펄럭이는 듯 / 하심번만개
버들이 우거져 천 가닥 실이 드리운 듯 / 류암직천사
과객이 지금 여기 올라 구경하며 / 과객금등상
맑은 풍광을 칭찬해 마지 않노라 / 청광설불휴

달밤에 김중사와 더불어 두성의 연못가 정자에 가서[월혼여금중사조두성련정]

벗과 함께 작은 숲 속의 정자에 나아가니 / 휴붕득조소림정
아름다운 경치가 오늘밤 몹시도 맑구나 / 미경금소분외청
달이 못물에 비치니 옥거울이 잠긴 듯 / 월인지심함옥경
바람이 나뭇가지에 이니 금아쟁 울리는 듯 / 풍생수초전금쟁
기이한 향기 소매에 어리니 연꽃 움직이는 줄 알겠고 / 기향옹수지하동
맑은 기운 사람에게 스며드니 이슬이 내림을 알겠구나 / 호기침인각로횡
미물도 좋은 손님이 옴을 반겨주는 듯 / 미물역련가객지
물고기 발랄하게 뛰는 소리 물에서 들리누나 / 도어발랄수중명

〈국화 핀 화단에서 새로 심은 대나무를 읊다〉라는 시에 차운하다[차국오영신죽운]

서리 눈 이기는 높은 풍모에 수석이 맑은데 / 상설고표수석청
몇 떨기 대나무를 이제 초당에다 심어 놓았다 / 수총금기초당생
은을 체질하는 달빛 아래 새 가지가 움직이고 / 사은월하신초동
옥을 찧는 바람 앞에 빽빽한 잎사귀 우는구나 / 용옥풍전밀엽명
이미 소나무 매화와 벗하여 절조가 같으니 / 기우송매동절조
장차 복사꽃 오얏꽃을 함께 섞어 심어야겠다 / 의장도리혼휴정
공이 이 나무를 좋아해 정원에 심은 줄 아노니 / 지공애차위정실
오랜 세월 고락 속에 함께 곧은 절개 지키리라 / 이험다년공보정

송오장의〈아침에 일어나 보여주다〉란 시에 차운하다[차송오장신흥시운]

무모하고 큰 계책 하나도 이룬 게 없고 / 광모류산백무성
만년에는 경치가 맑은 전원을 사랑하누나 / 만애전원경색청
잎사귀 너머 꾀꼬리는 두 마리 지저귀고 / 격엽황리량개어
바람을 따라 백로는 한 줄로 가벼이 난다 / 수풍백로일행경
장편 시 작은 글씨로 쓰는 건 한가한 중의 일 / 장편소자한중사
듬성한 머리털에 외로운 비녀는 노경의 정 / 단발고잠로경정
어이하면 좋은 사람들과 좋은 모임 가져 / 안득가인도승회
잔 가득 담긴 술 권하여 백천 번 기울일꼬 / 심배상속백천경

연환체를 써서 서울의 벗을 생각하다[용련환체회락중우생]

멀리서 서로 그리워하며 아침에 앉았으니 / 상사초체좌조상
나뭇잎 이제 떨어지고 날씨도 서늘해지누나 / 목엽초번천기량
서울에 있는 벗은 바다와 산에 막혔건만 / 경락고인격해악
산성에는 해가 지고 서신이 끊어졌어라 / 산성락일단린상
술잔을 멈추면 시름을 풀기가 어렵고 / 우상정처수난해
회오리바람이 불 때 꿈에 자주 찾아간다 / 양각취시몽루양
주역의 말 생각하지만 참으로 망상이니 / 역언수회진망상
이 밤에 머리털이 희게 세었음을 아노라 / 심지차야빈성상

회문체를 써서 회포를 읊어 삼암에게 삼가 드리고 화답을 청하다[용회문체영회봉정삼암구화]

원숭이ㆍ학과 함께 그윽한 자연 속에 살며 / 원학동서유석림
삭거하여 한가히 살면서 광음을 보내누나 / 색거한송도청음
촌락의 꽃 찾아가서는 긴 붓으로 시 쓰고 / 촌화멱처휘장필
골짜기 물 찾아가서는 시원스레 시 읊는다 / 곡수심시상일음
술 마시는 자리에는 바람이 흥을 끌어오고 / 준주대조풍인흥
차를 달이는 저녁엔 달빛이 마음을 비추네 / 정다연석월징심
속세의 번뇌 씻고 좋은 경치 남겨 두니 / 번진척득류가경
거리에 찾아오는 이 누가 고관대작인가 / 문항래수인자금

고관대작 그 누가 이 거리 찾아오는가 / 금자인수래항문
경치 좋은 곳 머물러 속진의 번뇌 씻어낸다 / 경가류득척진번
달 밝은 밤 마음이 맑으니 차를 달이고 / 심징월석연다정
바람 부는 아침 흥이 일기에 술병을 대하네 / 흥인풍조대주준
한 번 상쾌히 읊을 제 물 흐르는 계곡 찾아가고 / 음일상시심수곡
긴 붓을 휘두르는 곳에 꽃이 핀 마을 찾아간다 / 필장휘처멱화촌
흐리고 맑은 날씨 속에 한가한 세월 보내니 / 음청도송한거삭
그윽한 자연 속에 원숭이ㆍ학과 같이 사누나 / 림석유서동학원

선산의 초당에서 호운으로 지어 기생이 없음을 탄식하는 신 찰방 자장에게 보이다[선산초당호운시신찰방자장탄무기]

객지에서 잠이 안 와 등잔불 대하노니 / 려관무면대벽등
꽃다운 인연 어느 곳에서 홍승을 맺을꼬 / 방연하처결홍승
그 누가 고운 벗을 데려와 주어서 / 수장옥우래상명
나그네 만 섬의 시름을 녹여줄거나 / 소파기수만곡응
○무진년(1628)에 종형 광립(광립) 씨가 선산 군수(선산군수)가 되었기에 내가 외숙부를 모시고 그 관부(관부)에 갔다. 신 찰방도 선산 군수의 척질로서 와서 머물고 있었기에 함께 모여 호운하여 읊었다.

차운 신이우 [차운 신역우]

외로운 객관에 가을 등잔만 비추는 깊은 밤 / 야심고관조추등
빈 처마 아래 홀로 앉아 옥승을 바라보노라 / 독좌허첨대옥승
어이하면 서주의 세 사발 술을 얻어서 / 안득서주삼완주
나그네 시름을 단번에 녹일 수 있을거나 / 일휘소파려수응

다시 앞의 시에 보운하여 신 찰방 자장에게 보이다[경보전운시신찰방자장]

덧없는 생은 바람 앞의 등잔불처럼 빨리 가니 / 부생숙홀감풍등
가는 해를 붙잡아 맬 긴 밧줄을 구하기 어려워라 / 계일난구백척승
한가한 밤 촛불 밝힘을 그대 귀찮아하지 말라 / 병촉한소군막권
관아 다락에 죽엽이 푸른 빛으로 잘 익었으니 / 관증죽엽록방응

선산 동루에서 감회를 읊어 신자장에게 보이다[선산동루감회시신자장]

맑은 가을 홀로 중선의 누각에 오르니 / 청추독상중선루
영남의 풍광이 눈에 가득 보이는구나 / 령외풍연만안부
임하에 어찌 어조의 흥이 없으랴만 / 림하기무어조흥
타향이라 나그네 그리움에 머리 긁적이노라 / 이향기사입소두

차운 신이우 [차운 신역우]

천 리 타향 호산에서 홀로 누각에 오르니 / 천리호산독의루
가을의 경물이 눈 안에 가득 보이누나 / 구추운물안중부
주남에 체류한 길손을 누가 가련해 하랴 / 수련류체주남객
북쪽으로 고향 바라보매 흰 머리털만 가득해라 / 북망향관설만두

신자장이 우거하는 곳에서 벗들과 모여 술을 마시고 호운하여 읊다[신자장우소여제우㑹음호운]

보도를 보는 곳에서 곧 회포를 열고 / 보도간처즉피금
진결을 논할 때 도리어 마음을 본다 / 진결론시각견심
만남과 이별 정처 없음을 알 것이니 / 취산응지무정적
오늘 밤에는 백 잔의 술을 비워야 하리 / 금소당진백배심

선산의 동헌에서 신자장과 이별하며[선산동헌여신자장서별]

아득히 멀리 가 오래 돌아가지 않으니 / 정패유유구미회
가을이 깊으매 머리털이 이미 다 세었구나 / 추심쇠빈이전애
동강에는 물이 빠져 어류가 고요하고 / 동강수락어룡정
남포에는 서리 날리어 기러기 오누나 / 남포상비홍안래
누각에 기댄 중선은 먼 고향을 생각하고 / 루의중선기사원
시가 이뤄진 공부는 이별의 회포 편다 / 시성공부별회개
가인은 새 곡조를 멈추지 말라 / 가인차막정신곡
내일 새벽달이 지기 전에 떠나야 하니 / 명효음편진월최

신년 제비[신연]

만 리 밖에서 한 쌍 제비가 옛집 찾아오니 / 만리쌍비심고루
은근한 정이 흡사 주인의 얼굴을 아는 양 / 은근사식주인안
지난 해 중구절에 일찍이 이별했는데 / 거년구구증상별
오늘 삼짇날에 문득 다시 돌아왔구나 / 금일삼삼홀견환
들보 모서리에서 지저귐이 제 집을 좋아하는 듯 / 량각니남흔유탁
처마 아래 오고 가는 게 한가함을 탐내는 듯 / 첨전래거약탐한
온 세상이 점차 태평해지고 있으니 / 건곤점입청녕지
숲 속에 돌아가 둥지 틀 걱정 하지 말라 / 막환귀소림목간

동지에서 저물녘 읊다[동지만음]

은거하는 이 하는 일 없어 / 유인무작업
못가로 날마다 집을 삼노라 / 지상일위가
땅에 솟는 외로운 대 어여뻐하고 / 병지련고죽
섬돌 따라 뻗은 여라를 사랑한다 / 연계애녀라
낚싯줄 드리워 비단 붕어 낚고 / 침륜견금즉
돌을 던져서 청개구리 희롱하네 / 투석롱청와
저물도록 좋은 경치 찾아다녔으니 / 경석탐한승
시로 읊은 시가 얼마나 되는가 / 신시부기하

중추 십오야에 달을 구경하며[중추십오야완월]

오늘 밤에 술벗들을 불러 모아서 / 차야중당회주도
중천에 뜬 밝은 달을 보아야겠네 / 요간백월도천구
차가운 빛 일렁거리니 은두꺼비 잠기고 / 한광탕양은섬몰
흰 그림자 서성이니 옥토끼가 외로워라 / 소영배회옥토고
머리 들어 멀리 보니 아득히 가는 맑은 생각 / 교수하관청사극
술잔 멈추고 한 번 물으니 마음이 몹시 즐겁네 / 정배일문상심도
부디 술 취해서 일찍 잠들지 말라 / 빙군차막훈면조
이렇게 둥근 달 밝은 밤은 좀처럼 없으니 / 원경명소정득무

회문체로 성취를 읊어 김중사 삼암에게 보이다[용회문체영성취시금중사삼암]

명리를 잊을 때 머리털 다 희고 / 명리망시두진애
사는 집 깊은 곳에 속진이 끊어졌다 / 복거심처단진애
푸른 산기운 문에 드니 산이 가까움을 알고 / 청람입호지산근
흰 학이 문에서 맞으니 객이 옴을 보노라 / 백학영문견객래
이슬 떨어져 옷 적시니 등라 우거진 길 좁고 / 령로점의라경협
좋은 바람 대자리에 부니 대나무 창 열렸네 / 호풍취점죽창개
맑고 참된 이 도리 아무도 아는 이 없으니 / 청진차도인무회
취미를 이룬 건 무능한 내가 먼저로세 / 성취한오선산재

무능하여 먼저 내가 한가한 취미 이루니 / 재산선오한취성
마침 아무도 이 맑고 참된 멋 아는 이 없네 / 회무인도차진청
창을 여니 대자리에 부는 바람이 좋고 / 개창죽점취풍호
길 좁으니 나의에 떨어지는 이슬 젖는다 / 협경라의점로령
손님이 오니 문에 마중하는 학이 희게 보이고 / 래객견문영학백
산이 가까우니 문에 들어오는 산기운 푸름을 알겠다 / 근산지호입람청
속세 먼지 끊어진 곳에 은거하는 곳이 깊고 / 애진단처심거복
머리털이 하얗게 다 세었을 때 명리를 잊는다 / 애진두시망리명

가을날 하팔의 옛 별장으로 가며 하팔은 평택의 별호이다 [추일향하팔구장 하팔평택별호]

나의 길 남쪽 땅으로 향하니 / 오행향남토
시절은 중양절에 가까웠어라 / 시월근중양
가는 국화는 가을빛으로 단장했고 / 세국장추색
외로운 노을은 새벽빛에 흩어진다 / 고하산효광
황량한 들판은 가는 곳마다 멀고 / 황교수처원
시내 길을 갈수록 어찌나 긴지 / 천로거하장
배와 대추가 전원에 익어 가니 / 리조전원숙
집에 돌아갈 기약 잊어선 안 되지 / 귀기불가망

남쪽 땅의 집으로 돌아가는 현제 유덕명에게 증별하다[증별류현제덕명귀남장]

사정에 보배로운 나무가 생기니 / 사정생보수
우리 숙부 어진 자제를 뽑았어라 / 오숙간인순
의리는 명령의 후사에 무겁고 / 의중명령사
정은 골육의 부모와 같아라 / 정동골육친
이별하여 산 것은 난리 때문 / 리거인세란
전별에 임하매 가난해 부끄럽네 / 림전괴가빈
이곳에 그대 송추가 있으니 / 차지송추재
자주 만날 수 있음을 알겠어라 / 응지회면빈

늙은 말[로마]

사람의 집에서 기른 지 오래 / 복력인가세월심
지금은 힘이 다해 강가에 누웠구나 / 어금력진와강심
피부 마르고 근육 끊어져 움직이기 어렵고 / 피고근단종난동
눈 움푹하고 머리 떨군 채 죽을 마음뿐 / 목함두수유사심
번화한 큰 거리를 어찌 다시 걷겠으며 / 자맥향가언경보
누른 먼지 눈 쌓인 벌판을 어이 달리랴만 / 황사적설거능침
바람 타고 달리던 기상은 아직도 남았으니 / 승풍일기지유재
한밤중 긴 울음을 스스로 금하지 못하네 / 반야장명자불금

가을날에 불성사를 유람하며[추일유불성사]

맑은 서리 내리는 구월에 산행을 하니 / 상청구월작산행
눈에 가득한 가을빛이 곳곳마다 환하여라 / 만목추광처처명
가는 국화는 알록달록 돌틈에 피었고 / 세국반반영석봉
성근 소나무는 짧디짧게 바위 병풍에 누웠다 / 소송단단도암병
샘물을 시험하러 물병 가지고 노승을 따르고 / 시천병설수잔납
술을 가득 부은 잔을 전하는 일성이 있어라 / 숭주상전유일성
선도에 오르내리매 숲이 어둑해지고 / 척강선도림색명
반쯤 둥근 달이 이미 동쪽에서 떠올랐네 / 반륜신월이동생

작은 집[소축]

한가히 살 작은 집을 지어 / 한거성소축
티끌세상을 길이 멀리하노라 / 진세영상위
물이 빠지니 바위들 어여쁘고 / 수락련간석
마을이 깊으니 사립 닫지 않는다 / 촌심불엄비
소나무 대나무는 같이 늙어가고 / 송황동작로
원숭이와 학은 함께 기심(기심)을 잊었네 / 원학공망기
어찌 명성을 피하는 자이랴만 / 기시도명자
일년 내내 속객이 오지 않누나 / 종년속객희

지당에 이르러[도지]

이미 세상과는 아주 멀어져 / 기여세상원
한가한 종적이 물가에 있도다 / 한종재수미
백구는 뜻이 있는 듯이 오고 / 백구래유의
꾀꼬리는 때도 없이 지저귀네 / 황조전무시
비에 젖어 솔잎은 빽빽하고 / 우읍송염밀
바람 가벼워 실버들이 드리웠다 / 풍경류대수
유인은 늘 병든 몸 정양하지만 / 유인장양병
그래도 앞 지당에는 갈 수 있어라 / 유득도전지

한거의 노래를 읊어 삼암에게 보이다[단거음시삼암]

한 해 내내 마을을 안 벗어나고 / 종년불출경
마음은 더구나 한가하게 머문다 / 심황재단거
병중에도 외려 경치를 좋아하고 / 병리유탐경
밭을 가는 여가에 책을 읽노라 / 경여차독서
전원에는 풀숲에 길을 열고 / 전원개초경
거리에는 찾아오는 수레 적구나 / 문항소헌차
늘 외로운 처지라 한탄하지 말자 / 막한상고루
동쪽 이웃에 날 일으키는 이 있으니 / 동린유기여

가을 뜻 육언이다 [추의 륙언]

비온 뒤 산의 단풍은 금수요 / 우후산풍금수
서리 오기 전 뜰의 국화는 금닢 / 상전계국금전
숲 아래에서 학이 춤을 추고 / 림하선금자무
달빛 아래 객은 잠 못 든다 / 월중고객무면

가을날의 농가 풍경[추일전가즉사]

절기가 서성에 가까워 날씨가 서늘하니 / 절근서성천기량
농가의 풍경을 어떻게 한량할 수 있으랴 / 전가풍치약위량
은어가 통발에서 나오니 횟감으로 좋고 / 은진출순긍반설
청각이 상에 오르니 국거리로 좋구나 / 청각등상가정탕
나무에 가득한 붉은 과일은 햇살에 빛나고 / 만수단제방요일
이삭에 가득한 금빛 좁쌀은 서리를 맞았다 / 영지금속이경상
처마 앞에 늙은 국화는 더욱 볼 만해 / 첨전로국우감상
노란 꽃잎 가져다 옥술잔에 띄워야겠다 / 수파황수범옥상

가을날의 풍경[추일즉사]

오각건을 쓴 태일산인이 / 태일산인오각건
가을 들어 병석에 누운 지 열흘이 지났네 / 추래음병와경순
촌락 가에 비 걷히니 무지개 끊어지고 / 촌변우권홍예단
골짜기 어귀에 서리 내리니 금수가 새롭다 / 곡구상표금수신
날 저무니 소와 양이 마을 북쪽에 돌아가고 / 일모우양귀항북
날씨 추우니 황새 두루미가 시냇가에 내려온다 / 천한관학하계빈
한가히 은거하니 일신에 일 없다 하지 말라 / 유거막도신무사
아침저녁 창 앞에서 시구를 자주 생각하느니 / 조만창전멱구빈

임기가 찬 뒤에 방문한 이 도사에게 답하다[사리도사과만후래방]

병석에 누워 한 해가 가도록 문 밖에 안 나가니 / 음병종년불계관
약 달이는 창가에 누가 한적함을 달래 주리오 / 약창수여반청한
사립문 두드리는 소리에 문득 잠을 깨고서 / 시문박탁경잔몽
이끼 낀 섬돌에서 맞이하니 반가운 얼굴이어라 / 태체상영희구안
미미한 담론은 마치 옥가루가 날리는 듯하고 / 미미담봉비옥설
아련한 정서로 금란의 우정을 얘기한다 / 의의정서도금란
부디 그대 앵무를 멈추지 말라 / 빙군차막정앵무
만남과 이별은 본래 덧없이 순환하는 것일세 / 산취종래사전환

이 도사의 시에 차운하다[차리도사운]

계산은 수려하고 초가집은 고요한데 / 계산수려모재정
만사에 무심한 채 술잔 기울일 뿐 / 만사무심주일치
서울의 벗이 적막한 이곳 찾아오매 / 경락고인심적막
회포를 풀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무네 / 금기론파조서시

말 그림[화마]

어느 곳 용면이 솜씨가 매우 좋아서 / 저처룡면심장교
신마를 그려내어 창가에 들어가게 했나 / 신구사출입창변
주리면 먹고 목마르면 마심을 천성대로 두나니 / 기찬갈음종천방
맨 땅에 자고 바람 속에 울게 내버려 두노라 / 로숙풍명임자연
머리에 옥굴레 쓰는 건 바라는 바 아니거늘 / 옥륵롱두비소원
금안장 등에 걸치는 것이 어찌 편안하리오 / 금안피배역하편
구속 받지 않는 기상이 유일과 같으니 / 무구기상동유일
앉고 누울 때 어루만지며 날로 더 좋아하노라 / 좌와마사일익련

삼암에게 삼가 드리다[봉정삼암]

운산 계곡에서 같이 은거해 사니 / 운산수곡공서지
취미가 함께 한가해 날마다 즐거워라 / 의미동한일전미
바위 위에서 바둑 두니 흰 학이 다투는 듯 / 석탑위기쟁호학
꽃 핀 마을에서 술 마시러 금귀를 풀도다 / 화촌멱주해금구
맑은 얼음 깨끗한 옥 같은 우정을 다지고 / 빙청옥결심교의
씻은 비단 향기로운 꽃 같은 글을 보노라 / 금탁파분견미사
임하에서 몇 사람이나 길이 은거했던고 / 림하기인장병적
저 세간의 하는 짓들을 백안으로 보도다 / 간타백안세간위

가을밤의 감회[추야감회]

병든 객이 잠 못 이뤄 베개 자주 옮기노니 / 병객무면침루이
푸른 창가의 가을 상념을 그 누가 알리오 / 벽창추사유수지
우물 가 꽃은 닭 운 뒤에 이미 피었고 / 정화기발계명후
산 위의 달은 새 잠든 때 막 지는구나 / 산월초침조숙시
위태한 머리털은 십년 만에 반백이 됐으나 / 위빈십년성반백
속진에 찌든 옷은 오늘 오로지 검지는 않아라 / 진포차일미전치
괴화 필 때 과거 시험은 덧없는 꿈 같나니 / 괴황전예혼여몽
눈 감고 읊으며 예전에 지은 시를 고친다 / 합안장음개구시

깊은 가을에 감회가 있어[심추유감]

유관을 잘못 쓰고 몸은 반쯤 늙었으니 / 오착유관신반로
노년에 산수 속에서 맘껏 머물러 사노라 / 모년계학임서지
거울을 볼 때마다 반생의 한이 일어나고 / 림동매기반생한
낙엽을 쓸며 늘 송옥의 슬픔이 많아라 / 소엽상다송옥비
손가락 꼽아 보니 평생에 무슨 일 했는가 / 굴지평생하사업
팔 굽혀 벤 오늘 저녁 한가한 시 읊는다 / 곡굉금석부한시
좋은 날이라 중양절을 다행히 만났으니 / 량진행치중양절
응당 국화를 따서 옥술잔에 띄워야지 / 합파황화범옥치

구일[구일]

세상 인심을 겪은 지 오래 / 열진인정구
임천에서 은거하여 사노라 / 림천학우장
마음 즐거운 건 오직 이 날 / 환심유차일
좋은 날이라 중양절을 만났네 / 가절득중양
손으로 금빛 국화꽃을 꺾어서 / 수절금자눈
향기로운 죽엽청 술동이를 여노라 / 준개죽엽향
백년 평생 이제 반이 지났으니 / 백년금기반
어찌 무한히 즐기지 않으리오 / 하불악무강

가을날 회포를 쓰다[추일사회]

청산 백석 사이에서 생애를 보내노니 / 청산백석도생애
아름다운 경치 좋은 날에 몸은 늙어간다 / 미경량진로항해
유달리도 단풍은 서리 내린 뒤에 붉고 / 특지한풍상후염
시냇가에 가득 핀 국화는 빗속에 아름다워라 / 영계눈국우중가
시름을 쓸어내려도 빗자루 없어 쓸기 어렵고 / 소수무추수난소
근심을 물리치려 시 지어도 근심을 못 물리치네 / 배민재시민불배
늙고 병들어 이미 제주의 뜻이 없건만 / 쇠병이무제주지
과거 보는 사람들 보고 그래도 신발을 손질한다 / 간타유득리망혜

가을날 벗과 산행을 하며[추일여우산행]

나뭇잎 막 떨어지고 서리와 이슬 맑은데 / 목엽초조상로청
좋은 벗과 손을 잡고 높은 산에 오르노라 / 가인휴수척쟁영
단사와 옻칠 같은 숲속의 열매를 찾고 / 단사점칠수림과
옥저와 금경 같은 석청을 캐노라 / 옥저금경채석청
지팡이 짚지 않으니 다리 힘을 알겠고 / 불책고등지각력
벼랑에 자주 시 적어 한가한 정 기록한다 / 빈제창벽기한정
동쪽 봉우리에 달이 뜰 때 돌아가니 / 동잠월출환귀거
골짜기 어귀에 깃든 새 곳곳에서 우누나 / 곡구서금처처명

병중에 우연히 읊다[병중우음]

오십 년 광음이 홀연 지나가니 / 오십광음지홀언
요즈음 앓는 병은 예전보다 심하구나 / 종래일병극어전
병석에 오래 누워 세 계절이 지났고 / 침금침석경삼절
벗들을 사절한 지도 벌써 일년이어라 / 사절빈붕이일년
일곱 아들이 비록 근심하여 울지만 / 자유칠인수민읍
삼대의 의원이 없으니 어찌 치료하리오 / 의무세삼거능진
하늘이 행여 이 목숨 불쌍히 여긴다면 / 황천당혹련미명
물약의 큰 은혜를 시원스레 내려주련만 / 물약홍은하패연

병중에 눈을 만나[병중우설]

육화가 날고 날아 이리저리 흩뿌리니 / 륙화비비사경횡
보이는 곳마다 기이한 자태 제각각 다르네 / 기자간처각수형
바람에 날리는 버들솜이 뜰에 가득 춤추는 듯 / 인풍류서영정무
나무에 가득한 배꽃이 유달리 환히 핀 듯 / 만수리화특지명
해진 신발 신고 길을 간 높은 자취 따르고 / 리천행경추고촉
쭝긋 솟은 어깨로 나귀 탄 상쾌한 마음 사모한다 / 견용기려모상정
병중에도 맑은 흥취가 넉넉할 수 있으니 / 병리역능청흥족
길게 눈을 노래하며 작은 술병을 기울인다 / 장음부설소준경

기심을 잊고[망기]

운산에 은거해 낚시하며 세상 기심 잊노니 / 은조운산망세기
이끼 낀 헌함 적적한데 사립문은 닫혔어라 / 태헌적적엄형비
깊은 숲에서 꾀꼬리 우는 소리 마냥 들리고 / 심림임청황앵전
긴 하루해에 흰 새가 나는 광경 천천히 본다 / 장일서간백조비
스스로 취하고 스스로 깨며 몸은 반쯤 늙었고 / 자취자성신반로
한가로이 졸다 한가로이 깨니 더 바랄 게 없네 / 한면한각원무위
사람들아 장안이 가깝다 말하지 말라 / 방인막도장안근
천 척의 홍진이 푸른 산을 막고 있는 것을 / 천척홍진격취미

봄 흥취[춘흥]

봄날 농가에 봄기운이 아름다우니 / 춘일전가춘기휴
유거에 봄 흥취는 봄 누각에 있어라 / 유거춘흥재춘루
절로 피었다 절로 지는 건 촌락 가의 살구꽃 / 자개자락촌변행
한가히 갔다 한가히 오는 건 지붕 위 비둘기 / 한거한래옥상구
대나무 잠박에 바람 따스해 누에 반쯤 늙었고 / 죽박풍훤천반로
표주박 술병에 술 익으니 개미가 막 뜨누나 / 포준주록의초부
농부가 내게 서쪽 논밭에 일이 있다고 알리니 / 농인고아서주사
때로 검은 소 채찍질하여 밭두둑으로 가노라 / 시책오건향맥두

세모[세모]

은거하는 곳 작은 집이 시냇가에 있으니 / 유거소축재계미
세상의 명리 따위야 어찌 감히 엿보리오 / 리호명추기감규
늙어가매 한가한 마음 그저 궤에 기댈 뿐 / 로거한정유은궤
병중의 심사는 턱을 괴는 데 들어온다 / 병중심사입지이
여섯 모난 눈꽃이 날리니 하늘은 저물고 / 화표륙출천장석
절기는 삼양에 가까우니 해가 바뀌려 하네 / 절근삼양세욕이
홀로 사립문을 닫고 늘 나가지 않으니 / 독폐송관장불출
새로 지은 시는 마음 맞는 벗만이 알 뿐 / 신시지유가인지

우연히 짓다[우제]

늙어가매 인정에 익숙하고 병드니 잠에 익숙해 / 로관인정병관면
전원에서 수졸하면서 천성대로 즐거이 사노라 / 전원수졸악오천
촌락의 벗이 갑자기 왔기에 거위를 잡고 / 촌붕졸지아두설
산중의 손님이 때로 오기에 작설차 달인다 / 산객시래작설전
도를 알지 못하는 건 근심할 바가 아니요 / 유도막지비소환
세상사에 무심한 것이 참으로 편안함일세 / 무심관사시진편
한가한 중에 좋은 경치 즐기나니 / 한중자희탐가경
근래에 새로 지은 시가 백 편이 되겠구나 / 이일신시차백편

새벽의 정황[효황]

병든 몸 시름겨워 잠 못 이루고 / 병객수래수불성
일어나 베개 밀치니 정신이 맑아라 / 기래추침각신청
창 앞에서 천 길 백발을 빗질하고 / 창전백발소천장
지붕 모서리에 주관은 오경을 알리누나 / 옥각주관보오경
눈 내린 뒤 달빛은 뜰에 가득 빛나고 / 설월만정광교교
솔바람은 방문에 들어와 맑게 울린다 / 송풍입호향랭랭
산중의 아름다운 경치 오늘밤이 제일이니 / 산중미경금소최
내게 향응을 베푸는 천공의 정에 감사하오 / 자감천공향아정

감회가 일어 읊다[감음]

잎이 다 진 빈 산에 하늘빛은 푸른데 / 엽진공산천색창
싸늘한 바람은 불어서 서재에 들어온다 / 음풍취랭입서당
맑은 서리 내리더니 굳은 얼음 이르고 / 청상이락견빙지
싸락눈 막 내리매 짙은 구름이 뭉게뭉게 / 미산초령밀설방
보는 곳마다 다단한 이치 모두 조짐이니 / 촉리다단개점□
기미 아는데 어디선들 미리 막지 않으랴 / 지기하처불선방
전원에서 오래 살며 이치를 깊이 봤으니 / 림거세구명관묘
이내 생애 그저 은거만 한다고 하지 말라 / 막위오생단우장

절유의 시를 읊어 삼암에게 보이다[절유음시삼암]

한가히 서당에 칩거한 지도 어언 십년인데 / 한엄서당차십상
교유를 끊고 오늘 밤 소나무 침상에 누웠노라 / 절유금석와송상
노쇠해 백발이 됨은 나의 운명에 맡기노니 / 종쇠득백안오명
수련하고 신선이 되는 비법을 알지 못하도다 / 동골소단미해방
새 곡조를 매양 연주해 고적함을 달래고 / 신곡매조소적막
향긋한 술 늘 마시며 세월을 보내노라 / 향료장파송훤량
더구나 그대처럼 좋은 이웃을 만났으니 / 방린황접여군가
무엇하러 굳이 배 타고 대안도를 찾아가랴 / 하필로승방대항

한가로이 읊다[한영]

많은 녹봉 높은 벼슬은 감히 탐내지 않나니 / 후록존명불감도
은거 생활에 한가한 취미는 자연에 있어라 / 유거한취재림고
천 줄기 푸른 대나무에 생애가 넉넉하고 / 천간록죽생애족
한 가닥 맑은 향 연기에 상념이 사라진다 / 일주청향세려소
등라에 비친 달빛이 약속한 듯 발에 들어오니 / 라월입렴여유약
문에 들어오는 남풍도 어찌 부른 적 있으랴 / 훈풍래호기증초
게다가 좋은 손님이 부지런히 찾아와서 / 경다가객근상방
자주 바가지로 탁주를 권하여 취하노라 / 빈속포준취백료

한가한 일[한사]

머무는 사람은 속물이 없으니 / 류인무속물
그윽한 일에 늘 마음 한가해라 / 유사장한정
죽사를 씩씩하게 읊을 수 있고 / 죽사영능건
암벽에 쓴 글자는 자획이 맑네 / 제암자각청
거문고와 바둑을 벗으로 삼고 / 금기위말계
백구와 해오라기를 새로 사귀었다 / 구로작신맹
산골에 깃들어 살며 늙어가니 / 로아서구학
홍진 세상과는 영영 멀어졌어라 / 홍진격차생

〈무더위에 대한 탄식〉으로 삼암의 〈장맛비에 대한 탄식〉에 차운하다[이고열탄차삼암고우탄]

삼복이라 무더위 노염(노염)이 식지 않으니 / 삼복경염로불쇠
병든 몸 더위에 시달린 지 이미 오래일세 / 병부집열이다시
동쪽 누각에 뜬 붉은 해를 시름겨워 보나니 / 수간적일림동각
점심 짓는 푸른 연기인들 어이 차마 닿으랴 / 인촉청연기오취
겨우 맑은 얼음 잡고 대자리에 앉아서 / 재파청빙좌죽점
소나무 울을 둘러싼 푸른 옥을 보노라 / 번규창옥요송리
그 언제나 북쪽 포구에 서늘한 바람 불어 / 하당북포량풍지
한 번 옷깃을 헤치고 시원히 바람 쐴거나 / 일석피의쾌수지

분수에 따른 삶[수분]

어지러운 세상이라 칠실의 근심 깊지만 / 란세수심칠실우
한거하는 터라 조정에 계책을 올릴 길 없네 / 단거무계납모유
이내 신세 늘 빈천할 것임을 아노니 / 지지신세장한천
하늘도 원망 않고 사람도 탓 않노라 / 불향천인유원우
성곽을 등진 논밭에 벼와 기장 익었고 / 부곽전심화서숙
산을 의지한 촌락에는 긴 대나무숲 / 의산촌벽죽황수
문 앞에 번잡한 속진이 없어 기쁘니 / 문전자희진훤절
아마도 무릉도원이 이곳인가 한다 / 의시도원즉차구

회포를 써서 삼암에게 보이다[서회시삼암]

한 세상에 이름 없어 낯이 부끄러우니 / 무문일세전오안
어느 곳 고관대작 집에 가 벼슬을 구할꼬 / 하처주문멱주관
병든 지 오래니 늙은 아내가 늘 약을 구하고 / 병구로처상색약
홑옷뿐이라 어린 아이는 자주 춥다고 징징댄다 / 의단치아수호한
책은 있어도 읽지 못해 시렁에 올려놓았고 / 유서불독장제각
농사지을 적은 땅 있어 저 산에 밭 일구었네 / 소지용경전피산
남쪽 시냇가 친구가 이런 뜻 가련히 여겨 / 남간고인련차의
때때로 좋은 시구로 나의 고생을 위로하누나 / 시장가구위신산

정영숙의 시 〈바닷가의 집〉에 차운하는 한편 이 시를 해장에 제하는 시로 부쳐 보내다 2수 [차정영숙해장운이인기이제 이수]

나의 집이 멀리 푸른 시냇가에 있기에 / 농거하재벽계심
바닷가 그대 처소에 한 번도 못 찾아갔네 / 해상유서미일심
다리 아래 연하에 맑은 흥취가 드넓고 / 각저연하청취활
문 앞에 백구와는 오랜 맹약이 깊어라 / 문전구로구맹심
어촌 집은 역력히 백사장 언덕에 섰고 / 어가력력의사안
신선 산은 창창히 물 가운데에 솟았네 / 선교창창출수심
속세 밖 한가한 정이 참으로 드넓으니 / 물표한정진호탕
인간 세상에서 조롱에 든 새는 되지 말자 / 인간막작폐롱금

그윽한 거처 소쇄해 세상 인연 끊어졌고 / 유거소쇄절진연
단풍잎과 갈대꽃만 푸른 바닷가에 고와라 / 풍엽로화창해변
세상 밖 건곤에 일월이 한가롭고 / 중외건곤한일월
호중의 광경에 운연만 늙어가누나 / 호중광경로운연
사람 마음은 영화와 잇속을 따지려 않고 / 인정불욕분영리
하늘의 도는 취해 잠자는 것에 관대하여라 / 천도유관계취면
무엇보다 그대가 찾아오는 게 좋으니 / 최시오군승흥처
달밤에 벗을 불러서 고기잡이배에 오른다 / 초붕월석상어선

가을밤에 감회가 있어[추야유감]

백발의 몸으로 한거하니 분수에 편안해 / 백수단거분소안
첩첩 산속에 홀로 사립문 닫고 사노라 / 시문독폐란봉간
높새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어 가을이 저물고 / 고풍진엽추장만
흰 달이 창을 엿보니 밤이 깊어가누나 / 소월규창야욕란
공부의 삼여는 마음속으로 슬퍼하고 / 학지삼여중자도
집은 사벽뿐이라 즐거움이 전혀 없어라 / 가도사벽고무환
상 위에 녹색 거문고 주현이 있으나 / 상두록복주현재
곡조 타지 않을 때가 탈 때보다 나아라 / 곡불탄시승수탄

섣달 그믐날에 감회가 있어[랍월회일유감]

황량한 촌락 나무 한 그루 선 유인의 집 / 황촌독수유인댁
계절은 봄으로 바뀌어 추운 기운 물러갔네 / 절환청양음기궁
쉰 살이라 중년 몸이니 늙은 게 아니지만 / 오십중신비위로
삼년 동안 병치레가 많아 벌써 늙은이 됐네 / 삼년다병이성옹
지신밟기 소리 저물녘 들리니 아이들 어지럽고 / 향나만진아동란
한 해가 다해 아침에 씩씩한 호표가 늘어섰네 / 세진조배호표웅
내일이면 깜짝 놀라게도 또 한 살 더 먹으니 / 명일우경첨일치
도소주를 미리 마셔 얼굴을 붉게 해야겠다 / 도소선파차안홍

숯장수의 고생[매탄고]

숯 파는 일 얼마나 고생인가 / 매탄하고업
숯 팔아도 남은 양식이 없어라 / 매탄무여량
자신은 작은 땅 한 뙈기 없으니 / 신무립추지
본업은 농사와 양잠이 아닐세 / 본업비농상
아침엔 산속에 들어가 나무를 베고 / 조입산중벌산목
저녁엔 구덩이 파서 숯을 굽는다 / 모촉심갱소벽탄
나는 재 얼굴에 묻어 용모는 검고 / 비회입면상모흑
뜨거운 불길 몸을 데워 땀은 줄줄 / 렬염훈신류자한
열 손가락은 쇠갈고리 피부는 거칠고 / 십지여구기부렬
허름한 옷 너덜너덜 다리도 못 가린다 / 단갈현순불엄각
고생스레 숯을 지고 저잣거리에 들어가니 / 신근담부입성시
추위에 언 다리 힘 없어 쓰러질 듯 걷네 / 동각무력행의경
아동들은 거리에 모여 손뼉 치며 웃나니 / 아동란가박수소
산귀신이 어이하여 이 대로에 왔느냐고 / 산귀하능진자맥
올해는 날씨가 푸근해 숯이 귀하지 않아 / 금년무빙탄불귀
동쪽 서쪽 다 다녀도 하나도 팔지 못했구나 / 족편동서종미죽
돌아오매 아내는 원망하고 아이는 배고파 우니 / 귀래처원자제기
우러러 호소해도 하늘은 아득하기만 해라 / 앙소황천천막막
사람의 타고난 운명이 저마다 다르니 / 인생부명각유차
술과 고기 냄새 풍기는 고대광실을 보라 / 청견주문취주육

봄에 감회가 일어[감춘]

뼈만 앙상히 여윈 몸에 병은 안 나았건만 / 수골릉릉병미전
광음은 덧없이 빨라 꿈속에 지나가는구나 / 광음졸졸몽중천
복사꽃 오얏꽃 피고 지는 것 자주 보았거니 / 빈간도리개환락
달이 이지러졌다 둥근 것 몇 번이나 보았던가 / 기견섬서결부원
올해도 봄이 이미 다 갔음을 알겠으니 / 금세청춘지기진
지난 해 생긴 백발이 더욱 가련하여라 / 거년백발우감련
마음 달래려 술 찾는 건 내 할 일 아니라 / 관심멱주비오사
근심을 물리치려 시를 백 편도 넘게 짓는다 / 배민재시강백편

삼암이 보여준 시에 차운하다[차삼암시운]

창을 열어 놓고 벗님과 마주 앉아서 / 가인상대벽헌창
막힌 강물을 틔운 듯 종횡무진 담론한다 / 담론종횡약결강
좋은 만남 가지려 자주 노력해야겠네 / 호회응수빈면력
원래 북쪽 오랑캐가 아직도 기세를 떨치니 / 원래서적미귀강

저물녘에 시냇가에 이르러[만지계상]

저물녘에 좋은 흥을 타고서 / 만래승호흥
지팡이 짚고 방초 물가에 섰노라 / 부장립방주
얼굴 아는 듯 반가운 청조를 보고 / 식면간청조
마음을 알아주는 백구가 있구나 / 지심유백구
물결이 잔잔하니 산그림자 반듯하고 / 파념산영직
바람이 고요하니 나무 그늘 짙어라 / 풍정수음조
오래 읊조리느라 돌아갈 줄 모르니 / 영구망귀거
한나절이나마 한가한 틈을 가졌네 / 청한반일투

가을날 시냇가에서 장난 삼아 짓다 벽적체이다 [추일계상희작 벽적체]

산속에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 산우소소부삽삽
시내에 바람은 쏴쏴 불어오누나 / 계풍절절경산산
붉은 빛 단풍잎 물들어 붉은 치마 젖은 듯 / 단풍엽적홍군습
푸르른 대나무 숲은 차가운 푸른 휘장인 듯 / 록죽림청취만한
흰 학과 하얀 구름은 다 같이 흰 바탕 / 백학소운동호질
검은 원숭이 검은 돌은 둘 다 검은 얼굴 / 현원흑석량검안
맑고 깊은 물가에서 시를 읊조리고 / 징담철소청음리
먼 산봉우리 보며 아득히 상념에 잠긴다 / 원수하잠형상간

사시를 읊은 시를 서재의 벽에 적다[제서헌벽상영사시]

시냇가에다 그윽하게 작은 집을 지으니 / 유거소축림계상
철 따라 좋은 경치가 내 마음 기쁘게 하네 / 미경수시열아정
특별히 높은 꽃은 저물녘 나비 맞이하고 / 특지고화영만접
짙게 우거진 푸른 나무는 꾀꼬리 감싸누나 / 중음취수호신앵
만학에 서리 맞은 단풍 붉은 비단보다 밝고 / 상풍만학명홍금
천봉 눈이 쌓여 옥병풍이 벌여 섰어라 / 설압천봉렬옥병
무엇보다 맑은 풍광 형언하기 어려운 곳은 / 최시청광난설처
숲에서 바람 불어오고 달이 떠오를 때이지 / 림풍입호월동생

섣달 그믐에 우연히 두보의 율시에 차운하다[제석우차두률]

틀림없이 내일 아침이면 새해임을 아노니 / 정지명효입신년
옷깃에 드리운 흰 머리털이 더욱 쓸쓸해라 / 수령상모경삽연
동복들은 줄을 지어서 세배를 올리고 / 동복수행공세사
아손들은 나이에 따라 자리에 앉았구나 / 아손축치렬장연
선옹은 벽에 기대 배고픔을 견디는데 / 선옹부벽기능면
하늘이 천도(천도)를 주어 수명이 길어지리 / 천우변도수필면
잔 가득 도소주 부어 한바탕 취하니 / 만작도소성일취
얼큰히 취한 오늘밤 즐거움이 끝없어라 / 훈훈금석악무변

구름을 읊다[영운]

산 속 못에서 나와 허공에 오르니 / 출자산연승태현
날개 없이 날고 당기지 않아도 멈춘다 / 비무우익지무견
하늘 저편에 흰 옷이 보이는가 하더니 / 백의재견부천제
해 곁에서 푸른 개가 문득 보이는구나 / 창구아간엄일변
솟아서 높은 산 만들고 늘어서서 진을 만들며 / 용작층만횡작진
가볍기는 얇은 솜이요 두텁기는 무명 같아라 / 경여박서후여면
모이고 흩어지는 모습 비록 천 가지이지만 / 응류점철수천상
뭉게뭉게 일어나 고마운 비 내리느니만 하리오 / 하사유연하패연

동대에서 저물녘에 읊다[동䑓만영]

동대에 올라와 앉아 돌아가지 않노니 / 래상동대좌불귀
대 앞에 펼쳐진 물색은 참으로 아련해라 / 대전물색정의의
쌍으로 나는 흰 새는 늦더위를 겪었고 / 쌍비백조경잔서
나란히 앉은 꾀꼬리는 푸른 산에서 지저귄다 / 병좌황리전취미
몸 늙으니 나라 구할 계책 없음이 부끄럽고 / 신로자참무장략
땅이 외지니 속진의 일 적음이 외려 기쁘네 / 지편환희소진기
석양이 지는 줄도 모르고 시상에 잠기노라니 / 침음불각사양모
시원한 산바람이 옷깃에 가득 불어오누나 / 소주산풍취만의

계해년(1623) 4월에 처자식이 염질에 걸려 홀로 모친을 모시고 서촌으로 피우하다[계해사월처노환염질독봉자친피우서촌]

서촌에 피우한 지도 얼마나 지났는가 / 피우서촌증기일
이 여름에 명협이 세 번 시듦을 보았도다 / 주명삼도견명조
처자식 소식은 매우 걱정이 되고 / 처노소식감의구
친구들 서신은 끊어져 적막하구나 / 친구음서단적요
담장 틈으로 매양 약만 넣어줄 뿐이니 / 장극매령투약물
집안에는 땔나무나 있는지 늘 염려되네 / 가간장념절신초
자주 좋은 소식 가지고 모친께 올려 / 빈장길보정훤실
시름을 달래 드리며 아침 저녁을 보낸다 / 위열수정석우조

남쪽으로 떠난 벗을 생각하며[억남유우인]

골짜기 어귀엔 봄풀이 돋건만 / 곡구생춘초
왕손은 어느 곳에 노닐고 있는고 / 왕손하처유
서신이 드무니 자주 기러기 바라보고 / 서희빈망안
몹시 그리워 중선의 누각에 오르리 / 억고매등루
바닷가 저편에 청안이 막혔고 / 해외격청안
산중에서는 백발로 시름한다 / 산중수백두
지음의 벗을 언제나 만나리오 / 지음봉기일
그윽한 한은 공후에 있어라 / 유한재공후

회문체를 사용하여 정 원외에게 보이다 2수 [용회문체시정원외 이수]

그윽한 산골에 있는 내 집을 좋아했노니 / 증애아거유곡수
세상 벗어난 외진 곳에 사립문이 있었지 / 소훤진처벽시형
멀리 산사의 종소리 들리는데 종이 홀로 외나무다리 건너고 / 승귀독각종성원
맑게 갠 저녁 골짜기에 학이 외로운 솔에 섰노라 / 학립고송모학청
높은 산 위에 구름은 짙어 물방울 떨어질 듯 / 층악운광농적적
저무는 들판에 안개는 푸른 빛으로 어둑하여라 / 만교연색취명명
난간에 기대어 하릴없이 긴긴 날을 보내고 / 빙헌만견소일장
흥이 일면 시를 읊으며 스스로 취하고 깬다 / 탁흥청음자취성

도사의 그윽한 회포를 멀리 추모하노니 / 도사유회원상추
끝없이 펼쳐진 맑고 고운 경치 보기에 좋구나 / 호간청경려무애
붉은 복사꽃은 햇살에 비쳐 아침에 고운 비단 같고 / 도홍휘일조성금
버들솜은 안개 속에 떨어져 저녁에 어둑한 실 같아라 / 류서수연모암사
높은 제비가 처마 밑에서 지저귈 제 봄잠이 따스하고 / 고연어당춘수난
때 늦은 꾀꼬리 침상 가에서 울 때 낮잠이 느긋하다 / 만앵훤탑오음지
도도히 흐르는 세월은 동쪽으로 흐르는 물 / 도도세거동류수
때 놓치지 말고 촛불 밝혀 밤늦도록 놀아야지 / 리촉한유당급시

때 놓치지 말고 한가히 촛불 밝혀 놀아야지 / 시급당유한촉리
물은 동쪽으로 흐르고 세월은 도도히 흐르누나 / 수류동거세도도
침상에서 느긋하게 시 읊는데 때 늦은 꾀꼬리 울고 / 지음오탑훤앵만
날 따스해 자는데 처마에 높이 제비가 지저귄다 / 난수춘당어연고
어둑한 실처럼 버들솜은 안개 속에 떨어지고 / 사암모연수서류
비단처럼 햇살에 비쳐 복사꽃은 붉어라 / 금성조일휘홍도
맑고 고운 경치 끝없이 펼쳐진 것 보고 / 애무려경청간호
아득히 멀리 회상하며 사도를 생각한다 / 추상원회유사도

취했다 깨어 시 읊으며 맑은 흥 부치고 / 성취자음청흥탁
긴긴 날 하릴없이 난간에 기대노라 / 장일소견만헌빙
어둑한 푸른 빛 안개 저녁 들판에 자욱하고 / 명명취색연교만
물방울이 떨어질 듯 구름 낀 산은 놓아라 / 적적농광운악층
맑은 날 저물녘 솔에 학은 외로이 섰고 / 청학모송고립학
멀리 종소리 울리고 외나무다리 중은 홀로 돌아간다 / 원성종각독귀승
사립문 외진 곳에 있어 세상 시끄러움이 적고 / 형시벽처진훤소
깊은 산골에 있는 내 집을 진작부터 좋아하노라 / 수곡유거아애증

맑은 밤의 풍경을 안 상사에게 보이다[청야즉사시안상사]

헌함에 기대 홀로 잠 못 이루나니 / 빙헌독불매
좋은 경치는 누구에게 자랑하는 건가 / 가경향수과
달빛은 오늘밤 이토록 고요한데 / 월색금소적
두견새 소리는 이곳에 유독 많아라 / 견성차지다
맑은 노래는 이슬과 섞이고 / 청음화로삽
처량한 상념은 구름 멀리 가누나 / 량사도운하
시골 벗을 찾아가고 싶지만 / 종욕심촌우
산길이 먼 것을 어이하리오 / 산정내원하

옥담사집        

영흥정의 집 벽에 적힌 조삼산의 시에 차운하다[영흥정벽상차조삼산운]

약속을 천금으로 여김은 신릉군의 기풍이니 / 천금연낙신릉풍
도박과 탐환의 풍속이 눈앞에 다 사라졌어라 / 종박탐환목하공
나이가 늙어서 꽃과 대나무 속에 머물고 / 년로서지화죽리
해는 길어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소일한다 / 일장소견화도중
영고를 염려치 않으니 한가히 은거함이 당연하고 / 영고막려의고침
치란이 들리지 않으니 귀머거리라도 무방하네 / 리란무문불해롱
우리 종족 중에서 백발의 몸은 나와 그대뿐이니 / 종당백두오여자
한 병의 술 서로 권하며 불콰하게 취해 보세나 / 일준상속차안홍

영흥정의 집에 그려진 잡화에 제하다. 분운(분운)하여 나는 우 자를 얻었다[제영흥정벽상잡화득우자]

갈기와 뿔 보고 소와 말을 구별할 뿐 / 렵각유능변마우
구름 사이 신령한 비늘은 보지 못했어라 / 신린미득견운두
저 벽에 꿈틀거리는 형상을 보니 / 간타벽상완연상
천하에 기이한 광경 다시 찾을 것 없구나 / 천하기관불재구
위는 용 그림을 읊은 시이다.

맹호는 태어나자마자 소 잡아먹을 기상 있으니 / 맹호재생기식우
뉘라서 가까이 다가가서 범의 머리를 만지리오 / 수능압근편료두
왕손이 범을 그린 데 깊은 뜻 있음을 알겠노니 / 왕손입화지심의
오랑캐 막는 씩씩한 위엄이 이와 같기를 바란게지 / 어모웅위류차구
위는 범 그림을 읊은 시이다.

밝은 달은 중천에 뜨고 두우가 보이는데 / 명월중천견두우
새로 난 대나무에 소슬하게 바람이 불어온다 / 신황소슬옥풍두
신선 새는 짝을 찾아 울며 밤중에 섰지만 / 선금규려청소립
청성이 만 리 밖이니 어느 곳에서 찾으리오 / 만리청성하처구
위는 달밤의 학을 읊은 시이다.

천태산에 가고자 해도 풍마우의 거리이니 / 욕왕천태풍마우
숙원은 이루지 못하고 눈 같은 백발만 가득해라 / 난성숙원설영두
푸른 절벽에 떨어지는 폭포 지금 이와 같으니 / 비류창벽금여허
신선 산을 멀리서 찾을 것 없음을 비로소 알겠네 / 시식선산불원구
위는 산의 물을 읊은 시이다.

봄바람 부는 바위 아래서 소를 치며 / 자목춘풍암하우
혹은 들판에서 혹은 시냇가에서 조노라 / 혹면원상혹계두
곡식을 쌓아 두고 먹을 직위는 없으나 / 위제홍속수무질
수레를 힘들여 끄는 일은 구하지 않으리 / 력복차상차불구
위는 들판의 소를 읊은 시이다.

일찍이 듣건대 직녀가 견우와 헤어져 / 증문직녀별견우
해마다 칠월이면 물가에서 만난다 / 칠월년년회수두
유독 한스럽게도 인간세상에서 이별한 뒤 / 독한인간상별후
천애 멀리 소식 아득해 만나기 어려워라 / 천애소식묘난구
위는 아내를 생각하며 읊은 시이다.

뒤틀린 늙은 줄기 소를 덮을 만큼 큰데 / 로간반선대폐우
가지 사이 한 쌍의 까치가 나란히 앉았구나 / 지간쌍작좌련두
일생을 해로하여 서로 이별함이 없으니 / 일생해로무상별
봉황새와 짝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 봉필란주불원구
위는 한 쌍의 까치를 읊은 시이다.

험준한 옛 산골짜기가 황우와도 같은데 / 기구고협사황우
난초 혜초 떨기가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네 / 란혜총생기석두
영균이 구원에서 기르기를 기다릴 것 없이 / 불대령균자구원
소인이 차고 다니는 것 여기서 찾노라 / 소인패복차중구
위는 난초를 읊은 시이다.

우인 벽에 적힌 오 상사 상지의 시에 차운하다 오 상사는 진사 오상이다. 두양과 동년 급제이다. [우인벽상차오상사상지운 상사즉진사오상야두양동년야]

초가집이 그 얼마나 소쇄한가 / 모동하소쇄
그윽한 창문이 옥봉을 마주했다 / 유창대옥봉
연하의 풍경을 묵객에게 바치고 / 연하공묵객
풍월의 경치를 산에게 대접하누나 / 풍월향산용
굳은 절개 있는 대숲이 어여쁘고 / 고절련총죽
차가운 소리 나는 노송이 사랑스럽다 / 한성애고송
뽕밭 삼밭이 서로 우거져 있는데 / 상마상엄영
여기 은거하고 또 농사에 힘쓰누나 / 명은우명농

아내를 귀녕(귀녕) 보내준 사위 여온에게 주다 여온은 윤진이다 [증서랑여온권귀기처 여온즉윤진야]

딸아이를 얼마나 늦게 낳았던가 / 침지생하만
늙은 아비가 유달리 사랑했었네 / 편련로부정
혼례를 치른 뒤 석별할 때 / 지초금석별
눈물 머금고 언제 올지 물었지 / 함루문귀녕
적경은 군자로 말미암는 법 / 적경유군자
영특한 외손자를 안게 되었구나 / 해아포준영
의가에는 비록 미치지 못하지만 / 의가수불체
채봉의 진실한 마음 변치 말거라 / 무체채봉성

오수로 부임하는 안 찰방에게 증별하다[증별안찰방지임오수]

금오로 국사에 수고한 날 얼마였던가 / 금오기일로왕사
다시 찰방이 되어 멀리 남원으로 가누나 / 원향남주경독우
강가 누각에 눈 녹으니 매화 꽃잎이 피고 / 강각설소매악눈
들판 정자에 바람 따스하니 버들가지 길어라 / 야정풍난류사수
나는 듯 날랜 병졸은 천 명이나 부리고 / 비등쾌졸조천지
잘 달리는 말을 만 마리나 보게 되리 / 용약신구열만두
산골의 친구는 병석에서 신음한 지 오래니 / 산곡고인음병구
때로 금옥을 가지고 한가한 시름 달래 주구려 / 시장금옥위한수

눈 내린 뒤에 우연히 읊다[설후우음]

눈 내린 뒤 검은 구름이 사방을 에워싸니 / 설후음운옹사방
이 늙은이 마음속이 평안하지 않아라 / 로부심황불평강
자수라 주문의 사람을 멀리서 가련히 여기노니 / 요련자수주문객
스스로 경치 번화한 천상 사람에 비기노라 / 자의번화천상랑

이거한 중에서 우연히 읊다[이우중우음]

쓸쓸한 사립문 적막한 물가에 / 요락시문적막빈
초당 깊은 곳 고요해 티끌 없어라 / 초당심처정무진
옛 시내에 눈 녹으니 옥 울리는 듯한 물소리 / 빙소고간문환결
앞 봉우리에 달이 뜨니 옥바퀴가 보이누나 / 월상전봉견옥륜
이곳의 광경이 몹시도 아름다우니 / 광경차간편미호
주인의 마음 전혀 가난하지 않구나 / 주옹심황미전빈
봄밤이 이슥하도록 턱 괴고 잠 못 들어 / 지이불매춘소반
서글피 하늘을 보며 새 시구를 찾노라 / 창망운천멱구신

또 앞의 운을 사용해 읊다[우용전운]

은거할 곳을 시냇가로 옮겨 잡으니 / 유서이복간지빈
송백이 소슬하여 세상 티끌 아주 없다 / 송백소소절세진
대나무 침상 늘 한가해 책을 뒤적이고 / 죽탑상한피간질
사립문 늘 닫혀 찾아오는 행차 적어라 / 시문장폐소차륜
녹옥을 짚고 다니니 몸 건강한 줄 알겠고 / 부휴록옥지신건
솥에 황정이 넉넉하니 내 가난하지 않도다 / 정잉황정불아빈
서울에서 서신이 끊어진 지 몇 해이니 / 경락수년서신단
친구들의 얼굴은 새롭게 바뀌었겠지 / 고인안면간응신

또 앞의 운을 사용해 읊다[우용전운]

나라의 위태한 난리가 끝이 없으니 / 방가위란호무빈
변방에는 해마다 조용할 날 없어라 / 옥새년년미정진
전란이 쉽사리 평정되길 기다려 보지만 / 저견광회유반수
세월이 빨리 흐르는 게 도리어 걱정일세 / 번수시월약분륜
제나라 성 오래 지키느라 삼군이 늙고 / 제성구수삼군로
노나라 곡식이 전혀 없으니 백성들은 가난하다 / 로맥전무만성빈
그 언제나 성군이 국가의 옛 모습 회복하여 / 하일성군광구물
백성에 끼치는 교화가 하루 아침에 새로울꼬 / 은민대화일조신

또 앞의 운을 사용해 읊다[우용전운]

전란의 화가 이어져 나라가 망할 지경이니 / 병련화결란망빈
우리 동토에 십년 동안 전쟁의 먼지 자욱해라 / 동토십년융마진
장사들은 창을 잡고 변방을 지키고 / 장사촬과둔옥새
장군은 갑옷 걸치고 수레에 앉았다 / 장군피갑좌주륜
천금을 묻지 않고 계책을 미리 정하고 / 천금불문모선정
만 섬 곡식 늘 수송하니 군량이 넉넉해라 / 만곡상수향불빈
짐작건대 하늘이 재앙 내린 것 뉘우쳐서 / 료득황천능회화
앞으로 이 나라 운명이 새로 안정되리라 / 유래방명정응신

또 앞의 운을 사용해 읊다[우용전운]

압록강 가에 주둔한 군영 이제 거두었으니 / 둔영이파압강빈
만리 변방에 전쟁의 먼지가 일지 않누나 / 만리관산불동진
변새에 나간 장군은 막사 안에서 졸고 / 출새장군면옥장
출전한 무사는 수레에 편히 앉았다 / 안차일사좌포륜
뽕과 삼 우거지니 의복이 늘 넉넉하고 / 상마엄영의항족
조와 벼 풍성하니 음식이 가난치 않네 / 서직영주식불빈
오계에 칭송 비석 세움을 어찌 그만두리오 / 헌송오계오가이
이 서생은 이제 새 세상을 보고자 하노라 / 서생장욕목청신

난리 뒤에 우연히 읊다[난후우음]

서북쪽 변방의 맹호가 오래 이빨 갈더니 / 서관맹호구마아
근래 적서에 난리가 더욱 크게 일어났지 / 적서중년란경다
나라 재물 실어서 가니 만 고을 텅 비고 / 진화련귀공만읍
백성들 묶여서 가니 천 집이 다 몰락했네 / 연민계루몰천가
철통같이 변방 지킬 장수 얻지 못했거니와 / 안변막득지금쇄
구원을 요청할 언변 좋은 사신은 누군인가 / 봉사수능자곡과
대궐에서 임금이 와신상담 복수를 꾀하니 / 현담자신금유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날을 보게 되리라 / 세병응견만은하

이거 중 이른 봄에 3수 [이우중조춘 삼수]

곡구로 이거한 지도 반년이 지났으니 / 곡구이거경반세
동쪽 숲에 일찍 온 춘색을 홀연 만났구나 / 홀봉춘색조림동
구름 깊은 골짜기엔 교룡이 비를 뿌리고 / 운심동학교룡우
눈 녹은 산과 들엔 초목이 바람에 나부낀다 / 설진산원초목풍
물색이 바뀌고 시절이 가니 지사가 놀라고 / 물환시이경지사
머리털 듬성하고 치아 빠지니 시인이 슬퍼하네 / 두동치락감시옹
해마다 변방에서는 조두 소리 들려오니 / 년년옥새문조두
어드메 도원에서 이 몸을 쉴 수 있을꼬 / 하처도원식차궁

노년에 아무런 일 없이 한가로이 사노니 / 쇠년고침백무위
어김 없이 찾아온 봄빛 반가이 보노라 / 희견춘광불부시
창가의 매화 비에 젖으니 옥색 나무 환하고 / 득우창매명옥수
시냇가 버들 바람 맞으니 금빛 가지 하늘댄다 / 영풍간류불금지
바위 위에 졸졸 흐르는 샘물 빛이 움직이고 / 연연석상천휘동
구름 사이에 환히 빛나는 달빛은 더디구나 / 교교운간월색지
맑은 경치 많으니 하늘이 내게 베푼 것 / 청경기다천소향
이 그윽한 흥취를 세상사람 알게 하지 말자 / 막교유흥세인지

봄 창가에 병든 몸 일으키니 바깥 구경 하고파 / 병기춘창동상심
지팡이 짚고서 홀로 나가 신록 우거진 숲에 섰다 / 부려독출의방림
남쪽 전원에 비가 내리니 매화가 옥빛을 머금고 / 남원우읍매함옥
서쪽 시내에 바람이 돌아오니 버들이 금빛을 흔드네 / 서간풍회류불금
이 좋은 계절에 새로운 시를 짓지 않는다면 / 가절약무신구득
한가한 중에 어디에서 좋은 회포 찾을거나 / 정중하처호회심
문 앞에 찾아오는 사람이 적다 말하지 말라 / 문전막도차륜소
이곳 그윽한 거처가 깊지 않은 게 한스러운데 / 차지유거한불심

매화를 보고[견매]

쌓인 눈 막 녹아 따스한 기운 생기니 / 적설초소난기생
매화가 홀연 피어 몇 가지가 환하여라 / 한매홀탁수지명
그윽한 향기 움직여서 바람 앞에 가늘고 / 암향부동풍전세
성긴 그림자 들쭉날쭉 달 아래 비꼈다 / 소영참차월하횡
곧은 절개는 언제나 시인의 감탄에 오르고 / 고절매등소객탄
아름다운 자태는 오래 묵객의 마음에 남누나 / 방자장류묵옹정
해마다 좋은 꽃 소식 봄에 앞서 알려 / 년년호신선춘보
화려한 뭇 꽃들을 모두 부끄럽게 하네 / 괴병천홍렬중영

맑은 구름이 봉우리에 머물기에[청운주봉]

비온 뒤 맑은 구름이 푸른 봉우리에 머물러 / 우후청운주벽봉
아침 내내 흩어지지 않음이 공로를 자랑하는 듯 / 숭조불산약과공
무심한 저 구름도 모습과 자취가 있으니 / 무심피물존형적
회음이 가봉 청했던 것 부끄러워 말라 / 막괴회음청가봉

관상인에게 부치다[기관상인]

회상하건대 예전 난리 때에 / 억증란리일
부평초처럼 절에서 우연히 만났지 / 평수회선당
내게 자주 경거를 주었건만 / 수피경거증
금수의 창자가 아님이 부끄러웠네 / 참비금수장
이별한 지 지금 얼마나 되었는가 / 별래금기일
멀리 떨어진 채 삼년을 보냈어라 / 요격도삼상
그대 아직 병환을 앓고 계신다니 / 선황문유구
약 안 써도 쾌차하시리라 믿는다오 / 종지물약강

비올 때 누각에서 한가로이 읊다[우각한음]

유유히 세월은 흘러가서 / 유유경세월
좋은 계절이라 청화에 가깝구나 / 가절박청화
나무에 비 내리니 꾀꼬리 노래가 젖고 / 우수앵가습
처마에 바람 부니 제비 춤이 기우뚱 / 풍첨연무사
박산향로는 가볍게 안개를 토하고 / 박산경토무
등나무 자리는 윤택하게 물결 이는 듯 / 등점윤생파
그윽한 흥취가 도무지 끝이 없으니 / 유흥혼무제
산림에 산다고 탄식하질랑 말자 / 림거차막차

반가운 비가 내릴 때 풍경[희우즉사]

봄 내내 가물다가 혹독한 더위 펼치니 / 한발경춘포학염
논밭에 푸른 싹들이 죄다 죽고 말았네 / 전간록묘이잔섬
은실 같은 비가 산촌 감싸는 게 보이니 / 은사홀견롱산곽
강구에서 배 두드릴 조짐 있어 반가워라 / 고복강구희유점

삼가 위 시에 차운하다 두영 [복차 두영]

천지가 화롯불인 듯 더위가 혹심하니 / 천지홍로혹한염
논밭은 갈라지고 싹은 다 죽어가는구나 / 전주구탁묘장섬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지금 보노니 / 패연금견동운하
천 이랑에 풍년이 들 조짐 이미 얻었어라 / 천경양양이득점

삼가 위 시에 차운하다 두평 [복차 두평]

주작이 하늘을 지나 더위가 혹독해 / 주작경천선혹염
백성들이 죄도 없이 다 죽게 생겼는데 / 조민무죄약장섬
하룻밤에 용이 구름을 일으키니 / 룡사일석번운염
농가에서 풍년이 들 조짐을 얻었구나 / 전득농가악세점

한 찰방 자첨이 찾아왔기에[한찰방자첨래방]

개는 대나무 울 아래에서 짖고 / 견폐죽리하
닭은 뽕나무 사이로 날아간다 / 계비상수간
이끼 낀 헌함에서 옥설을 맞이하고 / 태헌영옥설
달팽이집만한 오두막에서 지란과 함께한다 / 와실공지란
늙은 나는 외진 산골에 살면서 / 로아서궁곡
그대 낮은 관직에 머묾을 탄식하노라 / 차군체소관
밤이 새도록 세상사 얘기하노라니 / 통소담세무
밝은 달이 가을 산에 반쯤 잠겼네 / 명월반추산

적성으로 이임하는 과천 태수 최공 응형에게 주며, 겸하여 내가 병들어 서로 만나지 못한 채 먼 이별을 하게 되었다는 뜻을 보이다 2수 [증과천태수최공응형이임적성겸시병불증상봉잉작원별지의 이수]

파성에 숙도가 오는 것이 어찌 늦은고 / 파성숙도래하모
가시나무에 깃들어 산 지도 다섯 해나 됐어라 / 지극란서오재다
매화 핀 누각에 거문고 울려 마음은 자유롭고 / 매각금명심불루
꽃 핀 마을에는 개가 졸고 정치는 너그러우리 / 화촌견수정무가
담대는 문안 인사에 인색한 게 아니건만 / 담대불시간추후
사마는 늘 숙환을 앓고 있음을 탄식했어라 / 사마상차포숙아
습지를 소제하여 와서 머물게 하려 했거늘 / 장결습지정급개
친분 오랜 동파와 홀연 이별하게 될 줄 어이 알았으랴 / 녕지홀별구동파

일개 고을은 큰 재능 펼칠 곳 못 되거늘 / 일현종비전기로
무성의 금각에서 몇 해나 세월 보냈던가 / 무성금각기한훤
삼년 동안 병들어 칩거하느라 찾아뵙지 못했는데 / 삼년병칩위청면
오년 동안 은덕을 베풀어주니 지극히 감사하구려 / 오재인첨감지은
구공을 빌려 고을 더 다스리게 하고 싶어했더니 / 욕차구공잉구정
소자의 떠나는 부임 행차에 도리어 놀라노라 / 번경소자동신번
노잣돈 주는 산음의 노인을 본받지 못했지만 / 휴전미효산음수
멀리 훌륭한 풍모 상상해 길이 잊지 못하리라 / 요상풍류영불훤

또 장편을 읊어서 이별하는 태수에게 주다[우술장편증별태수]

쓸쓸한 옛 고을이 산기슭에 있는데 / 소조고현재산록
척박한 땅 가난한 백성에 못된 아전들 / 토척민빈무선리
어명 받든 관리들이 몰려와 묵어가는 곳이요 / 총진함명관숙처
진상하는 공물들이 이어져 수송하는 땅일세 / 락역방헌귀수지
요역과 명령이 번다해 견디기가 어려우니 / 요번령극백불감
온 고을 백성들 원망해 근심이 그치지 않았네 / 일경오오수미식
전란을 겪은 뒤로는 백성들 더욱 피폐하여 / 자경병선익조채
여자는 과부 남자는 홀아비로 고독한 신세 / 녀과남환경차독
마을마다 삭막해 밥 짓는 연기가 적고 / 천촌색막소인연
집집마다 텅텅 비어 닭과 개가 드물었지 / 십실공허계견한
우리 원님 부임한 뒤로 날마다 백성 보살펴 / 아후림정일마휼
때 벗기고 가려운 곳 긁어 쉬지 않고 일하니 / 즐구파양무소간
고을의 폐단 다 고쳐지고 호구가 늘었으며 / 창이진기호구증
떠났던 백성들 돌아와서 들판이 개간됐어라 / 류포련귀전야벽
공의 행차 가는 곳마다 비가 수레 따르고 / 공행소지우수차
공의 교화 미치는 곳에 벼가 모두 풍년일세 / 공화소급화진숙
연산에서 석종유가 다시 나온단 말 들었고 / 련산기문유이부
영천의 들에서는 이제부터 뱀을 잡지 않으리 / 영야종금사불착
백리는 비록 대현이 있을 고을 아니지만 / 백리수비대현로
구중궁궐의 근심을 나눔에 공 스스로 힘쓰네 / 구중분우공자욱
못난 나는 당시 오랜 숙질을 앓던 터라 / 추생시포적년아
그대의 풍모를 한번 찾아 뵐 길이 없어라 / 청범무연용일적
전야에 칩거하며 덕화를 입고 있는데 / 전려절복목청화
임기가 한 해 밖에 안 남은 게 한스럽구려 / 지한과기년일격
차구하여 은택을 마저 베풀게 하려 했건만 / 방장차구졸대혜
어찌 왕명으로 다른 고을로 옮길 줄 알았으랴 / 기의왕명이타읍
하동의 소자가 이미 떠날 차비를 갖추었으니 / 하동소자이재할
풍천의 백성들이 다투어 와서 모인다 / 풍천민서쟁래집
수레 잡고서 차마 어진 원님 못 보내어 / 반원불인사인후
노소를 막론하고 수레 아래에서 우누나 / 대백수초차하읍
노잣돈 주는 산골노인을 본받지 못하니 / 휴전미효산곡수
홀로 집안에 틀어박혀 속절없이 울적할 뿐 / 독엄형문공울읍
그대의 훌륭한 풍모 산천에 막혔으니 / 풍류문채격산천
가을 하늘에 목을 빼고 그리워해도 뵐 수 없네 / 인령추천사막급
훗날에 행여 조정에 들어가 높은 벼슬 하면 / 타년당작랑묘신
큰 은택에 다시 젖을 수 있기를 기다려 보리라 / 저견륭은점경흡

밤비[야우]

밤비가 숲을 울리며 지나가는데 / 야우명림과
창가에 앉아 있는 병든 한 늙은이 / 창간일병옹
처마의 풍경 소리는 꿈속에 떨어지고 / 첨령화몽락
산의 바람소리는 공연히 시정(시정) 부른다 / 산뢰야음공
은은하게 맑은 시내소리 들리고 / 은은청계전
쏴쏴 푸른 나무에 바람 부누나 / 수수록수풍
아침에 초가집에 앉아서 보니 / 조래좌모각
뜰의 풀 푸른 빛이 짙어졌어라 / 정초벽성농

통제사 원균의 부인에 대한 만사[만곡원통제균부인]

묘령 때부터 규문에서 교양을 쌓아서 / 규문육덕자방령
군자의 배필 되니 사람들이 부러워했어라 / 군자위구중소영
제사의 예법 잘 갖추어 효성이 일컬어졌고 / 례집빈번칭효사
정경부인 작위에 올라 높은 작명 누렸지 / 작봉정경향존명
과부로 지낸 반평생에 비록 후사는 없지만 / 상거반세수무사
전성으로 봉양하는 사위가 있어 기뻤어라 / 봉양전성희유생
나이 백년에 미쳐서 세상을 떠나시니 / 치급백년승화거
마침내 맹서한 대로 지아비와 함께 묻혔구나 / 경동천혈부전맹

가돈을 대신해 지은 당성 이 장로에 대한 만사 공의 장남이 공보다 먼저 죽었다 [위가돈만곡당성이장로 공장자선공사]

여든이란 장수를 누렸으니 / 팔십고년향
인의 이치가 어긋나지 않구나 / 위인리불건
청운의 벼슬길일랑 아주 잊고서 / 청운망세리
황발로 자연 속에서 늙어갔어라 / 황발로림천
이는 비록 몸이 죽었지만 / 리야신수몰
삼은 효성이 온전하였어라 / 참호효기전
오늘 옛 세상을 훌쩍 떠나시니 / 금조연구관
모실 자리가 다시는 있지 않으리 / 무부배화연

봄날 못가에서 읊다 2수 [춘일지상즉음 이수]

산속 집에서 병든 몸이 봄 구경도 더뎌 / 포병산려완절지
봄이 깊어서야 비로소 앞 연못에 내려왔다 / 춘심시득하전지
시냇가 꽃은 햇살에 웃어 붉은 비단이 환하고 / 계화소일명홍금
물가 나무는 녹음이 짙어서 푸른 휘장을 쳤구나 / 간엽농음울취유
푸른 새는 홀연 와서 구면을 반기는 듯하고 / 청조홀래흔구면
노란 꾀꼬리는 막 울어 시흥을 돋구어주는 듯 / 황리초전조신시
풍광은 흐르는 세월 따라 가지 않으니 / 풍광불축류년거
용모가 예전보다 늙은 것이 한스러울 뿐 / 지한안용이석시

늦게야 사립문 나서서 발걸음을 재촉하여 / 만출시문보리망
도리어 시냇가 찾아 방초를 구경하노라 / 각심계상애년방
비단 물결 잔잔한 연못 수심은 파랗고 / 파함세기지심벽
얇은 깁을 짠 듯 언덕 풀빛 푸르구나 / 안직경라초색창
홀로 솔뿌리에 의지하니 정신이 상쾌하고 / 독의송근신기상
홀로 바위에서 조니 꿈속마저 시원해라 / 고면석탑몽혼량
인간 세상에 즐거운 일이 얼마나 되는고 / 인간악사지다소
속세 밖에 한가로이 사는 흥취가 가장 좋구나 / 물표한거최흥장

편안히 쉬며[언식]

칩거하고 있지만 은둔할 마음은 아니고 / 폐문불시두문심
산 속에 살지만 은거할 뜻은 아니로다 / 산거역비은거지
삼년 동안 병이 많아 누운 채 외출 않으니 / 삼년다병와불岀
세인들이 날 버렸지 내가 버린 게 아닐세 / 세인자기비아기
때로는 혼자서 옛사람의 책을 읽지만 / 유시자독고인서
팔구할은 잊어버리고 한둘만 기억하며 / 유득팔구존일이
때로는 지팡이 꽂고 남새밭을 매지만 / 유시식장서채휴
햇살이 뜨겁게 내리 쬐면 호미질 멈춘다 / 외일소두서역지
집에 돌아와 북창 아래에서 편안히 쉬니 / 귀래언식북창하
북창의 풍색이 내 몸을 시원하게 하누나 / 북창풍색량오구
내 몸 시원한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노니 / 량오구역자족
이 밖에 무엇을 더 바라리오 / 차외하소도

잠 깨어 일어나[수기]

낮잠을 막 깨어 보니 봄날 낮이 고요해 / 오몽초경춘주정
굽은 난간에 그윽한 생각이 하염없어라 / 곡란유사정유유
둥지 다투다 함께 떨어지는 참새를 보고 / 쟁소병락간황작
새끼 지키느라 우는 비둘기 소리 들린다 / 호자교명청자구
방문에 드는 서늘한 바람이 책장을 넘기고 / 입호청풍번도질
산을 감싸는 가랑비가 문 앞의 발을 적시네 / 롱산소우습렴구
노년에 시 짓는 솜씨가 몹시 못해져서 / 모년시률편미세
봄 경치를 마음껏 거두어 읊을 수 없구나 / 막득소광진의수

봄이 다 갔기에 느낌이 있어 조삼산에게 부치다[춘진유감기정조삼산]

산중에 봄이 다하니 꽃이 죄 떨어지고 / 춘진산중화진비
뜰 가득한 나무에는 녹음이 막 짙어라 / 만원기수록초비
하늘거리는 맑은 나무 그늘을 비록 얻었지만 / 청음종득파사호
좋은 계절이 빨리 지나가는 게 몹시 슬프니 / 가절편상숙홀귀
날마다 술 마시는 일 어이 그만둘 수 있으랴 / 일대방준오가이
자주 시구를 짓는 일도 하지 않을 수 없어라 / 빈제시구막상위
난정이 적막하니 지금 어디에 있는고 / 난정적막금하재
물굽이 시냇가에 들풀만 무성하여라 / 곡수계변야초비

외진 곳에 살며[벽거]

봉황과 용 같은 산들이 푸른 병풍 두른 곳 / 봉수용강환취병
건곤 안에 이 땅이 홀로 맑고 평안하여라 / 건곤차지독청녕
전답 열고 집 지어 내 평생을 보내며 / 개전축실종오로
화초나 가꾸면서 이 내 인생을 즐기리라 / 양초이화락차생
쓸쓸한 사립문은 늘 적막하게 닫혔고 / 요락시문상격적
높고 낮은 돌길은 가파르건 말건 / 고저석로임쟁영
경쇠를 치며 강호에 산다 말하지 말라 / 휴언격경서강해
반곡에 흐르는 시냇물이 갓끈을 씻을 만하여라 / 반곡류천가탁영

늦게 일어나서[만기]

깊은 집안 쓸쓸한데 대숲과 나무 푸르러 / 심원요요죽목청
빈 뜰은 적적하고 푸른 이끼만 끼어 있네 / 공정적적벽태상
유인은 병이 많아 해가 높아서야 일어나고 / 유인다병일고기
좋은 새는 봄에 교태를 부려 꽃 위에서 운다 / 호조교춘화상명
홀로 외로운 거문고를 안으니 흐르는 물 맑고 / 독포고금류수령
때로 높은 곳 올라 휘파람 불면 떨어지는 매화 향기롭다 / 시등청소락매형
누가 자연 속에 사는 나의 흥취를 알 수 있으랴 / 수능회차림거흥
오직 산승이 있어 때로 산속의 집을 찾아오누나 / 유유산승구석경

전원의 저물녘 흥취[전원만흥]

지긋지긋한 난리에 여러 해 동안 숨어사노니 / 염란다년임우장
전원의 그윽한 흥취가 어찌 한량이 있으리오 / 전원유취약위량
서쪽 들에 빗물 넉넉해 벼가 푸르게 자라고 / 서주우족화생록
남쪽 들에 바람 따스하니 보리가 한창 누렇다 / 남맥풍훤맥정황
말 타고 문을 나서 맘껏 눈길 돌려 구경하고 / 과마출문궁제면
지팡이 짚고 물가에 가서 맑은 기운 쐬노라 / 장려림수읍청량
도원도 반드시 편안히 사는 곳은 아니니 / 도원불필안서지
지금 자연 속에 사는 흥취가 더욱 유장하구나 / 차일림거흥갱장

새소리를 듣고[문금]

나의 집은 외진 곳에 푸른 산이 둘러쳤으니 / 아옥벽거위취병
그윽한 새들이 절로 모여 정겹게 울어대누나 / 유금자집화상명
제호가 술 권하니 깊은 마음을 알겠고 / 제호권주지심의
포곡이 밭 갈라 재촉함도 정겹게 느껴진다 / 포곡최경각유정
구름 낀 산에서 우는 저 촉백이 가련하고 / 규파산운련촉백
햇살 비친 산골짜기에 우는 꾀꼬리 소리 듣는다 / 제잔곡일청림앵
광음이 이목 안에서 죄다 바뀌어 가니 / 광음환진제령리
속절없이 이 시옹의 머리털만 세게 하누나 / 공사시옹빈발명

한가로운 정[한정]

남들이 욕심내지 않는 이곳 나 스스로 사랑해 / 자애청구미소쟁
적갑에 은거한 뒤로 세월 빨리도 흘렀구나 / 단거적갑세쟁영
늘 소리 내며 흐르는 흰 물은 마을을 휘감고 / 장훤백수위촌항
언제나 그대로인 푸른 산은 뜰에 가득하여라 / 유소청산만호정
아침에 일어나 애틋한 마음에 꽃을 쓸지 않고 / 신기관심화미소
밤에 시 읊느라 늦게 잠들어 달을 맞이하노라 / 야음지수월장영
이러한 즈음에 새로운 시가 없어서는 안 되니 / 차간불가무신어
오동잎에 한가히 시 적느라 손을 쉬지 않는다 / 동엽한제수불정

장난 삼아 민 상사 자진에게 보내다. 가까운 이웃에 살면서 병환으로 여러 달 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다[희간민상사자진방린병환루월불상통]

묻노니 근간에 건강은 어떠하오 / 위문근간면식하
삼춘 내내 못 만나니 이별 회포 많구려 / 삼춘불견별회다
저마다 병고 때문에 얼굴은 못 본다 해도 / 각인병고안수조
서신마저 끊어진 것은 어이 된 이치인가 / 병폐음서리칙나
달 아래 시 읊는 일 이제 이을 수 있겠소 / 월하청음금가속
꽃 핀 마을에서 술 마시는 일 어이 늦추리오 / 화촌미주기완사
앞으로 혹 날씨 맑은 날을 만나거든 / 유래당득천청일
지팡이 짚고 자건의 집을 찾아주시구려 / 부장경심자건가

꾀꼬리 소리를 듣고 감회가 있어[문앵유감]

난리 겪은 뒤에 살아남은 몸 / 여생상란후
초가집에 와서 누워 있노라 / 래와초려중
머리털은 시 읊느라 다 세었고 / 위빈음성설
늙은 얼굴 술기운에 잠시 붉네 / 쇠안잠취홍
흰 망아지라 빠른 세월에 놀라고 / 백구경세월
노란 꾀꼬리 울어 춘풍이 지나간다 / 황조도춘풍
오는 봄 은택을 그 누가 막으랴 / 치택수금득
자연 속에서 이 몸은 늙어가노라 / 림간로작옹
초당[초당]

만 길 봉우리 앞에 하나의 초당 / 만인봉전일초당
초당 앞엔 대숲과 나무 둘러쳤어라 / 당전죽목요성행
그윽한 새들은 스스로 모여서 지저귀고 / 유금자집성상화
산사람은 외로이 시 읊느라 흥에 겨워라 / 산객고음흥욕광
무릎 위의 금부는 울음이 끊어질 듯 / 슬상금부명욕단
창가의 보압은 잠이 막 들었구나 / 창간보압수초장
자연 속에 늘 은거하는 삶 사양하지 않으니 / 불사림하항위은
대궐에서 임금 보필하는 직분을 저버렸어라 / 고부룡지보곤상

띳집[모재]

푸른 산의 밝은 산빛을 내 사랑하여 / 아애벽산산색명
몇 칸 조촐한 띳집을 짓고 사노라 / 모재일축수간정
서책이 벽에 가득해 원래 속되지 않고 / 도서만벽원비속
송죽이 늘어섰으니 끝없이 맑아라 / 송죽성행불진청
난리 때 십년 동안 고초를 겪었는데 / 병화십년상고초
자연에서 지금 사립을 닫고서 사누나 / 림천즉일엄시형
은거할 곳으로 고요한 도원을 얻었으니 / 유서이득도원정
무엇하러 구구하게 태평시대 물을 건가 / 하필구구문태평

조삼산의 시에 차운하다[차조삼산운]

연기 잦아드는 박산향로 마주한 채 / 보점연소대박산
쓸쓸히 살며 종일토록 방 가운데 앉았노라 / 색거종일좌영간
용순을 홀로 안고서 놓을 때가 없고 / 룡순독포무시사
계거를 늘 휘두르느라 잠시도 한가하지 않다 / 계거장휘불잠한
옥날개는 구름 뚫으며 오고 또 가고 / 옥익천운래우거
금베틀북은 비를 띤 채 던졌다 돌아온다 / 금사대우척번환
삼복더위 혹독하여 뼛속을 찌는 듯하니 / 경염로혹인증골
얇은 적삼을 벗고 또 머리에 관도 벗노라 / 선탈라삼우탈관

앞 시의 운을 사용하여 삼산의 뜻을 풀이하다 2수 [용전운석삼산 이수]

바다 저편에 삼산이 있단 말 일찍이 들었건만 / 증문해외유삼산
신선세계가 이곳에 있는 줄을 어찌 알았으랴 / 기식선구재차간
불로초 신령한 뿌리 이슬에 젖어 두루 자라고 / 불사령근화로편
장생하는 늙은 학은 한가히 구름에서 우누나 / 장생로학규운한
진시황의 행차 이곳에 이르지는 못하였고 / 진황안가래무급
서자는 신선세계 찾느라 돌아갈 줄 몰랐지 / 서자심진막긍환
천년 뒤에 그대가 신선세계 독차지하여 / 천재오군전일경
몸엔 학창의 걸치고 머리엔 운관을 썼구려 / 신피학창수운관

바다에 금빛 자라가 푸른 산 이고 있으니 / 해상금오대벽산
그 어느 때나 옮겨서 인간 세상에 들어올꼬 / 하년이입별인간
보배 샘물은 절로 솟고 홍진은 못 오는데 / 요천자용홍진격
보배 나무 늘 봄이요 백일은 한가롭구나 / 기수장춘백일한
도사는 난새를 타고 구름 너머서 오고 / 우객참란운외지
모군은 패옥 울리며 달 속에서 돌아온다 / 모군명패월중환
주인은 손으로 황정경을 잡고서 / 주인수파황경결
관도 쓰지 않아 검은 머리 바람에 날리네 / 록발수수차불관

병자년(1636)의 난리를 추술하고 이어 조삼산에게 부치다[추술병란인기조삼산]

예전에 나라가 큰 난리 만났을 때 회상하면 / 억석방가몽대란
하나둘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고 원통해라 / 추사일이의번원
풍진이 온통 자욱하니 건곤이 갈라지고 / 풍진홍동건곤탁
용호가 서로 싸우니 일월이 어두웠지 / 룡호상나일월혼
군량이 바닥난 수양에 사태가 위급하고 / 식진휴양위이급
군사가 지친 즉묵에 구원할 계책 없어라 / 병잔즉묵계무원
하늘이 재앙을 그쳐서 사람들이 평안히 사니 / 황천회화인안도
남은 이 목숨 보전하여 고향에서 살 수 있구나 / 공보여생수고촌

한가로운 회포[한회]

사립문 이 초가집을 뉘라서 찾아와 주랴 / 시문모옥숙상심
고요한 중에 한가한 회포 하염없이 일어난다 / 정리한회좌불임
산빛이 발에 들어오니 푸른 안개 습하고 / 산색입렴청애습
비 자욱 땅에 남으니 파란 이끼가 깊어라 / 우흔류지벽태심
양보음을 읊고 나서 소나무 침상에서 자니 / 음휴량보면송탑
천풍의 곡조 마치고 대숲 가에 서 있노라 / 곡파천풍의죽림
밝은 달 높이 떠서 시름에 잠 못 이루노니 / 명월기고수불매
옥인인 지음의 벗은 어느 곳에 있는고 / 옥인하처유지음

여름날 저녁에 풍경을 읊다[하일석좌즉사]

뉘엿뉘엿 석양은 서산에 넘어가는데 / 의의잔일도서강
여름 더위 막 걷혀 저녁 기운 서늘해라 / 염서초수기석량
집 주위로 매미 울음 요란히 그치지 않고 / 요옥선쟁훤불철
지당에 가득 개구리 소리 울었다 그쳤다 / 만당와고동무상
창 앞에 떨어지는 앵두 몇 번 보았던고 / 창전기견앵도락
문 밖에 누른 보리 이삭을 자주 보았어라 / 문외빈간맥수황
병든 몸 해마다 계절 변화에 놀라노니 / 포병년년경절서
이 몸이 어이 늘 강건할 수 있으리오 / 차신안득매강강

노쇠한 중에 아들에게 명하여 운을 부르게 해 짓다[소중명자호운]

솔잎 씹고 눈 먹어 스스로 양식 삼으니 / 찬송담설자위량
암혈의 고아한 풍모 헤아릴 수 없이 높지만 / 암혈고표불가량
어찌 옥으로 꾸민 화사한 비단 자리에서 / 하사금연요석리
침향 사르며 얕게 술 따르고 낮게 노래함만 하리오 / 천짐저창설침향

아들들의 차운[제자차운]

청낭에 든 옥가루로 양식을 삼으니 / 청낭경설이위량
도를 얻어 장수 누림이 어찌 한량 있으랴 / 득도하령기가량
표륜을 타고 삼천 밖으로 가서 / 표륜의가삼천외
달 속의 옥토끼가 찧는 약을 가져오고저 / 요취섬궁옥저향
위는 두양(두양)이 지은 것이다.

구름 갈고 달 낚아 양식 삼을 만하니 / 경운조월가위량
고량진미 먹는 것 따위야 염두에나 두랴 / 지교량비기족량
반평생 묻혀 살아 자연에 정이 들었으니 / 반세림천성만계
날마다 뜰에 가득 향기로운 송국을 읊조린다 / 일아송국만원향
위는 두영(두영)이 지은 것이다.

지초 뿌리 나무 열매 양식 삼을 만하니 / 지근목실가위량
무엇하러 분수에 넘치는 호의호식 바라리오 / 포난하로분외량
하는 일 없이 늙어가는 게 스스로 우스워 / 자소무위장로대
잔 기울여 향긋한 술로 입을 적신다오 / 각경은옥수신향
위는 두평(두평)이 지은 것이다.

갈포로 옷 짓고 현미로 양식 삼으니 / 갈작의상려작량
인간세상 고락이야 생각이나 하리오 / 인간고악경하량
봄 오매 고맙게도 천공이 향응 베풀어 / 춘래뢰유천공향
뜰의 한 그루 나무에 꽃향기 가득해라 / 영득정전일수향
위는 두광(두광)이 지은 것이다.

한가한 정[한정]

전원은 이미 취미를 이루었고 / 전원이성취
촌락은 마치 가동과 같아라 / 촌락사가동
즐거운 일은 붓을 휘두르는 것이요 / 악사휘장필
한가한 정은 거문고 어루만지는 것 / 한정무고동
성근 대숲에서 가랑비 소리 들리고 / 죽소미청우
늙은 소나무에서 작은 바람 소리 / 송로세문풍
이웃 사람 와서 함께 술 취하니 / 린비래상취
왁자지껄 말이 많아 뿔없는 양도 만드네 / 다언비출

난리를 겪은 뒤 교외에 살며 감회가 있어[난후교거유감]

난리통에 보낸 오십 년 세월 / 간과오십재
머리털 희게 쇠어 이미 늙은이 / 두백이성옹
정처 없는 이내 생애는 괴롭고 / 표탕생애고
피난 다니느라 친지들 못 만났네 / 하담계활궁
임금을 도운 큰 업적도 없고 / 반린무현업
전쟁터에서 세운 전공도 없어라 / 한마핍기공
만년엔 고요한 전원을 좋아하노니 / 만희전원정
뽕과 삼이 함께 우거져 푸르구나 / 상마일취동

가을밤에 회포를 읊다[추야영회]

서늘한 밤은 절로 소슬한데 / 량야자소슬
하늘은 높고 달은 중앙에 떴구나 / 천고월정중
대숲에 바람이 부니 지사가 놀라고 / 풍황경지사
나뭇잎에 서리 내리니 늙은이 슬퍼라 / 상엽도쇠옹
경물을 보매 회포는 비록 같지만 / 람물수동포
사람마다 그 감흥은 다른 법 / 흥회역이충
초가집에서 잠을 이루지 못해 / 모재인불매
비스듬히 죽훈롱에 기대 앉는다 / 사의죽훈롱

유거감회[유거감회]

유관은 곧잘 몸을 그르치나니 / 유관다오신
적왕의 공로를 이루지 못하였네 / 고부적왕공
장사는 때로 격분하여 치를 떨지만 / 장사시능격
노쇠하는 얼굴은 해마다 다르구나 / 쇠안세불동
괴구는 속절없이 스스로 보배롭거니 / 괴구공자보
주리인들 어찌 서로 자랑하리오 / 주리기상웅
그저 기쁜 일은 송료가 익어서 / 단희송료숙
때로 벗들이 찾아와 취하는 것뿐 / 시장취과봉

초가을 밤중에 읊다[신추야음]

베옷에다 초식을 하고 있으니 / 마의역초식
헐뜯음도 없거니와 명예도 없구나 / 무훼차무예
무릎이 들어갈 삼 칸의 집이요 / 용슬삼간옥
마음을 거둘 한 부의 서책이라 / 수심일부서
더위 지난 뒤 서늘한 바람 불고 / 량풍경서후
장마가 온 뒤 초승달이 떴구나 / 신월적림여
이 맑은 경치 누구와 함께 볼꼬 / 청경인수공
한가로운 회포를 홀로서 푸노라 / 한회독자서

가을에 회포를 읊다[구추영회]

맑은 가을이라 날씨가 써늘해 / 고추천기숙
초목들이 이미 다 시들었구나 / 초목이귀근
들판 저편엔 누런 구름 같은 곡식 / 야외황운편
시내에는 옥척 같은 물고기 뛴다 / 천중옥척번
술병을 들고 높은 산 위에 오르고 / 휴호등절헌
시구를 찾느라 동산에 오르노라 / 멱구상산원
세상에서 웃을 일 만나기 어려워 / 인세난봉소
변방에는 아직도 전쟁이 안 끝났네 / 간과상새원

감회[감회]

건곤에 바야흐로 화살 비 내리니 / 건곤방전우
사해는 아직 전란의 상처투성이 / 사해상창이
문무의 의관은 다 바뀌고 / 문무의관진
공사간에 예의는 다 이지러졌네 / 공사례의휴
하동에서는 곡식을 옮기던 날 / 하동이속일
여염집에서는 백성을 징발하던 때 / 려좌발민시
대궐에서는 소간의 근심이 깊어 / 소간풍신리
늘 팔채의 미간을 찌푸리시리 / 장빈팔채미

가을날 골짜기에 들어가[추일입곡]

찬 서리 내려 가을빛 저물 제 / 상한추색만
산림을 보고픈 그윽한 흥취 일어라 / 유흥재산림
휘파람 불며 맑은 골짜기 굽어보고 / 일소림청학
외로이 읊으며 작은 산 가에 섰노라 / 고음의단잠
아롱진 국화는 바위 틈에서 환하고 / 국반명석봉
늙은 소나무는 시내 그늘에 누웠네 / 송로와계음
종일토록 맑은 경치 실컷 구경하고 / 경일요청적
집에 돌아와서 옥거문고를 뜯노라 / 환가롱옥금

홀로 회포를 풀며[자서]

수레 부수고 적막한 곳에 사노니 / 훼차빈적막
원숭이와 학이 함께 산 지 오래일세 / 원학구동거
촌스런 태도는 사람들 다투어 웃고 / 야태인쟁소
한가로운 회포는 나 홀로 푸노라 / 한회독자서
가을바람에 짧은 머리털 빗질하고 / 추풍소단발
석양 빗길 제 남은 책을 읽는다 / 사일독잔서
고요한 중에서 무엇을 보는가 / 정리간하물
뜰 앞에 대나무 그림자 성글구나 / 정전죽영소

한가한 흥취[한흥]

그윽한 집이 자연 속에 있으니 / 명서재림학
한가한 흥취 절로 참되고 맑아라 / 한흥자진청
술은 일천 시름 대적하는 검이요 / 주적천수검
시는 일백 근심 공격하는 병사일세 / 시공백민병
양아는 달빛 비친 정자에서 듣고 / 양아문월사
유수는 바람 시원한 창 가에 크게 들린다 / 류수은풍령
학을 내기로 걸고 바둑을 두고 나니 / 도학쟁기파
꽃이 만발한 나무가 뜰 앞에 서 있네 / 계화만수명

시세[시세]

골짜기 시내엔 날마다 피가 흐르고 / 천곡일류혈
산기슭에는 온통 해골이 널렸구나 / 산원개촉루
연나라 진나라 군사 자주 교전하니 / 연진병루합
추나라 초나라 형세 대등하기 어려워라 / 추초세난모
볼모를 보낸 건 백성들 위한 계책 / 위질생령계
기미를 쓴 것은 사직을 위한 모책이지 / 기미사직모
그 어느 해나 전란이 그쳐서 / 하년파정전
변방의 군사들이 갑옷과 투구 벗을꼬 / 변사탈두무

느낌이 있어 읊다[감음]

찬 바람은 낡은 집에 부는데 / 한풍취고옥
날마다 생각은 근심에 잠겼어라 / 우사일충충
난리를 풀 좋은 계책이 없거늘 / 석란휴장책
위태한 나라 위해 몸 던질 이 누군고 / 부위숙비궁
북채 잡고 독전(독전)할 좋은 장수 없나니 / 원포무상장
패전해 도망친 장수가 몇 사람이던가 / 기갑기원융
주옥이 끝내 재앙을 면치 못하겠구나 / 주옥종난면
서쪽 봉우리에 저녁 봉화가 붉게 타오르니 / 서봉석화홍

가을밤에[추야즉사]

초목은 서리 내려 죄다 시드는데 / 초목상조진
빈 집에 밤은 이슥히 깊어가누나 / 공재야욕란
옥승은 은하수 가에서 빛나고 / 옥승명한사
은궐은 구름 가에 드러났어라 / 은궐로운단
차가운 상념에 쑥대 우거진 집에서 졸고 / 한사면봉각
맑은 시름에 겨워 대나무 난간에 기댄다 / 청수의죽란
염량 세월에 사람은 쉬이 늙어가니 / 염량인이로
흰 머리털 생겨 속절없이 탄식하노라 / 공탄빈모반

사위 박종번 무숙이 찾아왔기에[서랑박종번무숙래방]

강호 저편으로 한 번 이별한 뒤 / 일별강호외
아득히 멀어져 소식 접하지 못했지 / 음서묘불반
백발의 몸으로 병들어 신음하는 날 / 백두음병일
청안을 뜨고 돌아오는 그대 반기노라 / 청안희군환
밤이 새도록 정다운 얘기 이어지고 / 미미통소화
긴긴 밤 내내 아쉬운 탄식이 있어라 / 의의영석환
춘당이 자네를 몹시 기다리시니 / 춘당귀사촉
자네를 더 붙잡기가 어렵구나 / 류득차행난

시국을 근심하여[우시]

옥형이 아직도 바르지 못하니 / 옥형태미정
병화가 얼마나 오래 끄는지 / 병화일하장
백성들은 죄다 도탄에 빠졌고 / 도탄생령진
사졸들은 충원인 양 죽어가누나 / 충원사졸망
급보는 대궐에 연이어 이르고 / 우서련위궐
봉화 불빛은 백사장을 비추네 / 봉화조사장
편안히 깃들 곳을 얻지 못하여 / 미득안서지
한밤중에 홀로 상심에 잠기노라 / 중소독자상

겨울밤에 잠들지 못해 읊다[동야불매즉사]

황량한 마을 십이월이요 / 황촌십이월
초가집에 밤은 삼경이어라 / 모옥야삼경
앞 시내는 얼어붙어 흰 눈빛 / 동설전계색
옛 골짜기엔 찬바람 소리 / 한풍고학성
자던 새들은 놀라 잠을 깨고 / 서금경불정
산속의 사람도 잠을 못 이룬다 / 산객몽난성
오래 앉았노라니 차 연기 잦아들어 / 좌구다연헐
솥에는 게 눈 거품이 꺼지노라 / 당중해목평

〈산촌도〉에 적다[제산촌도]

어느 곳 그윽한 산 속 마을을 / 하처유거지
용면이 종이 위에 옮겨놓았나 / 룡면지상번
소나무 아래에 사립문이 있고 / 시문송수하
대숲 아래에 초가집이 있어라 / 모옥죽림근
닭과 개 소리 유안의 집이요 / 계견류안댁
오리 갈매기 노는 금수의 마을일세 / 부예금수촌
세상 홍진이 절로 오지 못하니 / 홍진자불도
여기가 별천지임을 알겠노라 / 지시별건곤

병자년(1636) 난리 후에 집으로 돌아와 피난 중에 있었던 일들을 추술하여 조여벽에게 부쳐주다 40운 [병자란후환가추술피란중사기증조여벽 사십운]

자연 속에 가돈하여 몇 해나 지났던가 / 가둔림천세기주
작은 시냇가에다 초가집을 지었었지 / 모재기재소계두
형문에서 홀로 즐거이 사니 세상사 고요하고 / 형문독악진기정
화사에서 유람하니 한가한 흥취가 많아라 / 화사종유일흥조
중울의 문 앞에는 잡초 속에 길을 열었고 / 중울문전개초경
도잠의 거리 밖에는 방초 우거진 물가일세 / 도잠항외읍방주
땅이 외져 반곡은 휘감아 돌고 굽었으며 / 지편반곡료이곡
마을이 후미져 도원은 단절되어 더욱 그윽해라 / 촌벽도원절경유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은 내 뜻이 아니요 / 타자우청비아지
부귀영화 누리는 것도 뜬구름과 같아라 / 승초건절약운부
삼천 길 백발 빗질해 보니 듬성해졌고 / 삼천장발소래소
일만 섬 시름은 늙을수록 하염없구나 / 만곡한수로경유
홀로 티끌 세상에 서매 좋은 벗 없지만 / 독립진환무호반
속세 밖에 어진 이 있을 줄 어이 알았으랴 / 녕지물표유현류
우뚝 뛰어난 재주는 장경보다 낫고 / 기재탁락장경우
펼쳐진 아름다운 문장은 자건의 짝이어라 / 려조련편자건주
반평생 동안 전원에서 재능을 숨긴 채 살았고 / 반세구원장우익
바둑에만 마음을 쏟으며 즐거이 노닐었네 / 전심기국악오유
날마다 서책을 탐독하니 마음에 속됨 없고 / 도서일기심무속
늘 술동이 그득하니 술을 사지 않아도 되었지 / 준표장영주불모
금란의 우정은 평소에 쌓아온 지 알겠거니 / 탁계금란지유소
교칠과 같이 서로 사귄 지 그 몇 해이런고 / 상종교칠기경추
때로 와력을 가지고 맑은 서안(서안)을 더럽히고 / 시장와력진청안
매양 경거를 가지고 늙은 눈을 부비게 하였지 / 매파경거괄로모
좋은 밤엔 다정히 누워서 보내던 그 날을 그리워하고 / 량야상사동와탑
꽃 피는 시절엔 함께 누각에 오르던 때를 생각한다오 / 화진일억공등루
용순은 반드시 은자가 잡기를 기다리고 / 룡순필대유인설
작설차는 늘 좋은 손님과 함께 마신다 / 작설항종미객수
세로에 지음으로 오직 그대가 있으니 / 세로지음군독재
인간세상 만남과 이별엔 근심이 없어라 / 인간리합서무우
먼지가 옥새에 이니 삼정이 어두워지고 / 진경옥새삼정암
말이 금하를 건너니 팔도가 짓밟히었네 / 마도금하팔로유
달무리 진 외로운 성에는 새벽 딱따기 소리 울리고 / 월훈고성신격탁
구름처럼 모인 용맹한 병사들 밤에도 북채 안고 잔다 / 운둔맹사야원포
백성들 붙잡혀 가니 들판마다 곡하는 소리 / 연민계루천원곡
재물을 쓸어가느라 촌락마다 다 뒤지누나 / 진화담귀만락수
학가는 서쪽으로 먼 요동 변새를 순시하고 / 학가서순료새원
용안은 삭풍이 몰아치는 북쪽을 바라보셨어라 / 룡안북망삭풍수
수레와 시종(시종) 이어져 길에는 먼지 자욱하고 / 차종락역황진합
피난하는 행차 어지러워 밝은 해도 시름겹다 / 관개빈분백일수
조정에서는 기미의 계책 쓰느라 세월만 보내고 / 묘산기미엄세월
정벌의 계획은 고식적이라 창칼은 녹이 스누나 / 정모고식로과모
많은 식구 거느리고 남쪽 고을 수령 의지해 / 제휴백구의남재
갖은 신고 다 겪으며 바닷가에서 피난했네 / 비력천신뢰해추
객지에서 뜻밖의 상봉은 참으로 드문 일이니 / 역려상봉진유수
진창길에서 이렇게 만나는 일 어찌 쉬우리오 / 니도회면역안투
남은 술 식은 고깃점에 나그네 회포가 같고 / 잔배랭자동기포
필마에 여윈 아이종 데리고 객지를 떠돌았지 / 필마리동공려유
칡이 모구에 굵으니 세월이 오래 흘렀고 / 갈탄모구시이만
외가 기협에 생기니 한 해가 지나갔어라 / 과생기협세장주
멀리 고향을 바라보며 유린당한 강토를 슬퍼하고 / 요첨고국비진衂
모임을 신정에서 마치매 초나라 죄수처럼 울었지 / 회파신정읍초수
다행히도 하늘이 내렸던 재앙을 거두시고 / 뢰득황천능회화
마침내 성상으로 하여금 이 나라 안정케 하셨네 / 종교예산정신주
타향은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내 땅이 아니라 / 타향신미비오토
여장을 꾸려 서로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니 / 행리상장반고구
죽은 사람 산 사람 안부 물으매 슬픔은 끝없고 / 조사문생애불진
홀아비 과부 위로하며 곡소리 그치지 않았어라 / 비환위과곡무휴
여염집들은 죄다 불타서 잿더미만 담았고 / 려염탕설여회신
텅 빈 마을에는 간간이 해골만 널려 있는데 / 촌항공허간촉루
집안에 두었던 주현은 어디로 갔는지 뵈지 않고 / 옥리주현망불견
상자 속의 서책은 흩어져 수습할 수 없었네 / 롱중황권산무수
백성들은 스스로 삼생의 괴로움 탄식하고 / 제민자탄삼생고
임금은 깊이 국가 재생의 계책을 도모하셨지 / 성주심도재조유
자극에서는 한밤중에 측루를 생각하고 / 자극중소사측루
단루에서는 전석하여 방구를 물었어라 / 단루전석문방구
외로운 백성 불쌍히 여겨서 정치에 애를 쓰고 / 애상경독로왕정
피폐한 민생 보살피느라 내수에 힘을 다하누나 / 존휼창이진내수
혼란이 극도에 이르면 다스림 생각하는 때가 됐나니 / 란극사치시이재
성공을 거둠이 패배로 말미암는 이치는 당연한 것 / 공성인패리응우
변방에 난리가 안 일어나 조두 소리 그치고 / 변성불기정조두
봉화 연기 일어나지 않아 군대 깃발 누웠어라 / 봉화무연언패유
군사들은 이 때 응당 철마를 쉴 테고 / 장사시당휴철마
장군이 투구를 벗는 것을 장차 보게 되며 / 장군저견탈두무
시인들은 황하 맑음을 칭송하는 시를 짓고 / 사인의작하청송
은사들은 바다로 들어가는 노래를 그치리 / 은사휴가입해구
태평을 즐거워하는 것이 참으로 즐거운 일 / 상악태평진소악
함께 왕의 교화를 도울 길이 어찌 없으리오 / 공첨왕화기무유
남은 생애 지금은 다 같이 일 없이 한가해 / 여생차일동무사
나란히 물가에 앉아서 낚싯대나 드리우세 / 병좌태기인조구

차운 조완. 호는 삼산이다 [차운 조완 삼산]

길가엔 푸른 솔이 우거져 그늘을 드리우고 / 협항청송음도주
한가함 달래는 서책만 책상에 놓여 있어라 / 소한황권정상두
사립문 정갈하여 속세의 인연 드물고 / 시비소쇄진연소
초가집은 그윽하여 시골 정취 많구나 / 모옥유심야취조
붉은 여뀌 우거진 기슭 가랑비 속에 낚시 드리우고 / 세우수간홍료안
흰 마름꽃 핀 물가에 저물녘 바람 불 제 젓대를 분다 / 만풍횡적백빈주
한 마리 소로 농사짓는 언덕에서 방공은 늙고 / 일리롱상방공로
백 가지 화초 우거진 정원에서 사마는 한가로워라 / 백훼원중사마유
적막한 연하 속에 은거해 서로 만나기 어렵고 / 요락연하성계활
아득한 천지에서 속세에 부침하는 일 떠났어라 / 창망천지사침부
젊어서부터 술과 바둑 즐기며 세상 명리 멀리했고 / 소종기주명장원
늙어서는 낚시 땔나무나 하며 한가로운 흥취 유유하네 / 로작어초일흥유
정갈한 거처는 무엇보다 속세의 속박 없는 게 좋고 / 정계최련무세루
한가로이 살매 도리어 시벗을 만남이 반가워라 / 단거환희득시류
안영처럼 오래 공경함을 나는 늘 흠모하노니 / 안영구경오상모
관중의 마음 통하는 벗에 그대 비길 만하도다 / 관중신교자가주
산 속 집에서 바람과 안개 속에 농담을 주고받았으며 / 산관풍연개학랑
들판 정자에서 꽃과 버들 속에 한가로이 맘껏 노닐었네 / 야정화류임우유
서로 운자(운자)를 부르며 시를 자주 썼나니 / 상호옥운시빈사
함께 금귀를 잡고 술을 몇 번이나 마셨던고 / 공파금구주기모
백년 평생 세월은 임하에 저물고 / 백재광음림하만
우리 두 늙은이 머리털 거울 속에 세었어라 / 량옹봉빈경중추
산골 늙은이는 북쪽으로 바라보며 고개 돌리고 / 산옹북망응회수
물가 늙은이는 남쪽을 보며 눈길만 보낼 테지 / 담로남첨만빙모
늙고 병든 몸 늘 침석에 엎드려 있으니 / 쇠병전신상복침
이별의 회포에 몇 번이나 누각에 기댔던고 / 별리상포기빙루
짚신에 죽장 차림으로 찾아가지는 않으나 / 망혜죽장휴심방
술병 놓고 지은 글 품평하며 술잔 주고받는다 / 준주론문간작수
한 번 조정에서 계책을 잘못 세운 뒤로는 / 일자묘당류산책
구중궁궐 임금께서 국사에 근심 많았네 / 구중소간진우우
전란의 먼지 천지 가득한데 금고 소리 울리고 / 진혼우주금비동
불길 훑는 산하를 적군의 철마가 짓밟고 갔지 / 화렵산하철마유
그 누가 조생이 형수 건너던 노 두드릴꼬 / 수격조생형수즙
전장(전장)은 적성의 북채를 아직 잡지 않았네 / 미원전장적성포
곳곳마다 백성들은 마구 살육을 당하고 / 인민처처분주륙
집집마다 재물을 죄다 수탈해 갔으니 / 옥백가가자괄수
사해가 혼란해 임금은 시름이 가득하고 / 사해분파안척척
벼슬아치들은 허겁지겁 피난을 갔어라 / 천관전도빈수수
닭이 울어도 용루의 침소에 문안하지 않으니 / 계명휴문룡루침
변방에는 응당 학가의 시름을 보태리 / 연새응첨학가수
노신들은 흐르는 눈물 주체할 수 있으랴 / 진로가감수체루
군사들은 더 이상 창칼을 쓰지 않는구나 / 위사무부시과모
군신들이 멀리 음산 저편에 가 있으니 / 군신지격음산외
소식이 하늘 저편 외진 한해 쪽에 있어라 / 소식천분한해추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하는 의리 알거니 / 주욕고지신사의
국가가 수치를 당했거늘 도리어 내 살 길을 도모하리오 / 국수환구아생투
타향이라 새해를 맞는 감회가 곱절로 더하고 / 타향배감봉신세
나그네 길에 예전 노닐던 곳 만나면 몹시 놀란다 / 역려편경치구유
덧없이 떠도는 신세 강호에 오래 머무노니 / 신세표령호외체
세월은 빨리 흘러 나그네 곁을 지나가누나 / 년광숙홀객변주
백성들 도탄에 빠지니 간장은 끊어질 듯하고 / 생령도탄장감단
국사에 대해 말이 없으니 혀는 감옥에 갇힌 듯 / 국사무언설사수
회포는 그야말로 향수에 젖은 것과 같은데 / 회포정동사고토
객지생활 다행히 함께 당주에 있었어라 / 탁낭행공뢰당주
꿈속에서 아스라이 멀리 선영을 찾아가 / 초초객몽심선롱
시름에 잠긴 나그네 혼 옛 동산 맴돌았네 / 암암기혼요모구
옛 집터에 돌아오매 슬픔을 견디지 못해 / 적반고허비불내
황량한 주춧돌 보며 눈물만 줄줄 흘렸지 / 안수황체루무휴
동쪽 이웃집 버려진 우물엔 이끼만 자욱하고 / 동린폐정봉태선
북쪽 거리엔 시체가 가득 해골만 널려 있어라 / 북항전시란촉루
벽에 남은 책들을 잿더미 속에서 거두고 / 벽상여서회리습
풀 속에 뒹구는 깨진 기왓장을 빗속에 주워모은다 / 초간괴와우중수
종묘사직 회복하도록 신명이 도와주시니 / 중회종사신명우
이 나라 새로 일으킨 건 성상의 계책일세 / 재조환구성주유
종들은 흩어지고 없으니 반가이 모일 수 있으랴 / 동복산망언득탄
자손들을 보전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 자손전보부하구
산 사람 위문하고 죽은 사람 조문하매 성은이 넉넉하고 / 문생조사연은협
과부 보살피고 홀아비 돌보아 훌륭한 정치 폈어라 / 휼과애환한정수
유해가 된 군사 측은히 여겨 보상금을 넉넉히 주고 / 사측유해수백감
전쟁 겪은 땅 불쌍히 여겨 조세 많이 감면해 주었지 / 지긍경전면조우
훗날 우리 동국이 장차 소생할 것이니 / 타년동국장소식
지금 관서 지방에 군사 깃발이 거두어졌네 / 금일서관권패유
수자리 서는 군졸들은 창칼 갈무리한 채 구름을 갈고 / 수졸경운장검극
건장한 남아들은 투구 벗고서 한가로이 휴식하리라 / 건아휴양해두무
강산은 아득한데 변방에는 경보를 알려오는 사람 없고 / 강산막막변무사
들판의 보리는 푸릇푸릇 거리에는 아이들 동요 소리 / 야맥청청항유구
나라 걱정에 이내 작은 충정이 속절없이 격할 뿐 / 우국촌성공자격
적을 무찌를 삼략을 얻을 길이 실로 없구나 / 섬융삼략실무유
강호에 사는 이 늙은이 끝내 어디에 쓰리오 / 강호로수종하용
세상 밖에서 남은 생애 낚시질로 보내리라 / 물외여생기조구

차운 오상. 계유년(1633, 29세) 진사시에 두양과 동방 급제하였다 [차운 오상 계유진사두양동방]

안연의 표주박 한 즐거움에 도가 이미 넉넉해 / 일악안표도기주
세간은 명리 따위에는 고개 돌리지 않으시네 / 세간명리불회두
초가집 처마에 해는 긴데 금서가 고요하고 / 모첨일영금서정
집 앞 거리엔 사람 드물고 초목만 우거졌어라 / 문항인희초목조
마음은 청풍에다 제월과 같이 맑고 / 심사청풍겸제월
정신은 용포와 인주에 한가로이 노니네 / 신유룡포여린주
산수에 평소부터 살아온 터라 그 속에서 늙어가나니 / 계산유소신장로
물고기와 새에 기심을 잊으매 흥취 더욱 그윽하여라 / 어조망기흥전유
구름 가에 옥을 심으매 아침 해가 저물고 / 종옥운변조일만
숲 속에서 차 달이니 저녁 연기 피어오른다 / 자다림하석연부
자취를 감추려니 매양 세상이 좁은 게 한스럽고 / 장종매한진환착
옛날을 생각하며 속절없이 성인의 길이 멂을 슬퍼한다 / 사고공비성로유
젊은 날 뛰어난 재주로 좋은 정치 이루길 기약했는데 / 소일재화기치택
만년에는 시 읊고 술 마시며 풍류나 즐기시네 / 모년시주속풍류
반계에서 어찌 주왕이 사냥 나오길 바라리오 / 반계거망주왕렵
율리에서는 진사의 짝이 되기에 충분하여라 / 률리감위진사주
마치 공자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처럼 공부하니 / 여재공문승훈회
곧 문학이 상유를 능가하는 것을 보게 되리라 / 즉간문학매상유
뛰어난 문학의 재능 집안 대대로 이었으며 / 승당한묵전가미
술상을 차려 놓고서 손님들을 불러들이네 / 두주배반견객모
한 쌍의 나막신으로 매양 눈 덮인 남악 지나가고 / 쌍극매천남악설
하나의 낚싯대 때로 가을 옥담에 던지누나 / 일간시척옥담추
일곱 개 보배 구슬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따르고 / 칠매보벽수상운
한 쌍의 금빛 연꽃은 사람들 눈 부비고 본다 / 쌍타금련식중모
대숲에다 집을 지었는데 색동옷 나란하고 / 가작죽림련채복
하늘을 도는 북두성이 동쪽 누각에 모였어라 / 천회북두취동루
조숙한 덕이 천성에서 나온 것임을 내 아노니 / 오지숙덕유천성
신명이 고문을 돌보아 복록으로 보답하리라 / 신권고문이복수
무릎을 안고서 속절없이 제갈량처럼 노래하고 / 포슬공로제갈소
시국에 상심하여 늘 범중엄처럼 몹시 근심하네 / 상시항절중엄우
병자년 난리 때의 고난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 추사병자간우사
금구가 오랑캐에게 짓밟힌 사실 어이 차마 말하랴 / 인설금구갈구유
한 모퉁이 외로운 성이 적의 공격 받을 제 / 일우고성방수전
오경에도 차가운 성가퀴에는 북소리 그치지 않았지 / 오경한첩불정포
곰과 범 같은 장졸들 부르짖는 소리에 산이 찢어질 듯 / 웅포호후산장렬
멧돼지 고래처럼 돌격해 오니 바다도 시름에 여윌 듯 / 시돌경분해역수
밝던 해도 빛을 잃어 하늘은 흐릿한데 / 백일무광천막막
슬픈 바람 피비린내 풍겨오고 비는 부슬부슬 / 비풍취혈우수수
산천은 죄다 병사 주둔하는 곳이 되어 버리니 / 림천진입둔병지
원숭이와 학은 속절없이 임금 연모하는 정 많아라 / 원학공다련주수
한 달 동안이나 피난하며 쇄미한 신세 슬퍼하니 / 발섭삼순비쇄미
전란의 먼지 자욱한 천 리에 창칼이 뒤덮었어라 / 연진천리폐간모
고향은 아득히 멀어 산은 첩첩 천 겹인데 / 향관묘묘산천첩
외로운 섬 망망한 바다 한 귀퉁이에 있었네 / 고도망망해일추
그곳에서 일백 식구 무사한 게 참으로 다행 / 백구무상진소행
호공이 가졌던 비결을 홀로 훔칠 수 있었던 게지 / 호공유결독능투
고향 두곡은 잡초만 무성해 황폐해졌으니 / 봉심두곡성진적
학이 요양에 돌아오매 옛일에 감회가 일어라 / 학반료양감구유
하늘의 뜻 은연중 사람의 일에 호응하고 / 천의암수인사응
순박한 풍속은 날로 세월 따라 사라져 가네 / 순풍일축세화주
진나라 관문에서 그 누가 닭 울음 흉내를 낼까 / 진관숙효계명술
연옥에는 한나라 사람들이 많이 갇혔어라 / 연옥유다한절수
꿈속에서도 슬픔이 일어 세도를 보노니 / 몽리흥애간세도
도성에 계신 임금님 소식 알 수 없어라 / 일변소식조황주
천추에 이어온 예악 문물 어디로 사라졌나 / 천추례악귀하지
당대의 영걸들 중년 나이에 땅 속에 묻혔네 / 일대훈영반세구
남쪽은 두렵고 북쪽은 걱정돼 갈 곳이 없나니 / 외남우북무처적
군사 검점하고 군량 실어나르는 일 언제나 그칠꼬 / 점군수속기시휴
오직 변방의 노인처럼 그저 운명에 맡기고 / 유종새로안시명
다시금 장공이 해골을 베고 누운 것 배우노라 / 경학장옹침촉루
천 섬의 한가한 시름을 잔의 술로 씻을 수 있고 / 천곡한수배가척
만 숲의 경치는 붓으로 거두어들일 수 있어라 / 만림운물필능수
도사와 함께 도 닦는 비결을 얘기하고 싶을 뿐 / 사휴우객담진록
금문에서 큰 문장을 지어 올리길 원치 않는다 / 불원금문헌장유
다행히도 내가 공의 마을 근처에 사는 터라 / 행아복거인리근
의기투합하는 사귐을 일찍이 이정에서 찾았지 / 신교조향리정구
아양곡 속에서 마음을 서로 허여했고 / 아양곡리심상허
난옥이 모인 속에서 학문이 이미 닦였어라 / 란옥총중학이수
일산 기울이매 매양 친밀한 정에 기쁘고 / 경개매흔정의밀
침상 아래 절하고 넉넉한 예우를 받았었지 / 배상잉하례용우
종횡하는 문장은 창칼을 가득 벌여놓은 듯 / 종횡필진삼과극
문단에 우뚝하여 깃발을 높이 세웠으니 / 추崪사단건패유
만 마리 말이 발굽 모으매 마구(마구)가 삼엄하고 / 만마찬제엄현인
일천 군인 무기 잡으니 갑주(갑주)가 정연하여라 / 천군집예정두무
훗날 악부에서 새 시편들 고를 때 / 타년악부조신률
응당 이소와 함께 초나라 노래에 들리라 / 응공리소입초구
주신 시편에 답하지 못해 도리어 부끄러운데 / 욕증미수환자괴
새로 지은 시편을 보고 싶은들 무슨 수로 보리오 / 신편욕도경하유
남쪽 교외 달 밝은 밤에 자주 머리를 들고 / 남교월야빈대수
창 밖에 성근 발을 드리우지 않고 달빛을 본다오 / 창외소렴불하구

이 진사가 찾아와서 준 시에 차운하다 10수 ○이 진사의 이름은 종룡이다 [차이진사래방증운 십수 이진사명종용]

고산 곡조 연주하고 나니 지음이 드물어 / 고산탄파지음과
홀로 서재에 들어앉아 그대를 꿈꾸었지 / 독하서유몽아군
어느 저녁 사립문에 그대 발길 이르니 / 일석형문관개도
속진을 벗어난 빙옥 같은 풍모 보았어라 / 정간빙옥岀진분

찾아뵙고 인사 드린 지 얼마 안 되어 / 고병집지증무일
아직도 이군을 가까이서 모시지 못했는데 / 미득동승어리군
오늘은 옥설 같은 분을 모실 수 있으니 / 옹추금진영옥설
한번 담소를 나누매 온갖 번뇌가 사라진다오 / 일개담설석번분

몸에는 질병이 들고 우환까지 겹쳐서 / 전신질병겸우환
목을 늘이고 봐도 높은 산 너머 그대 뵈지 않았네 / 인령운산미견군
이제 난봉 같은 모습 보니 정녕 꿈은 아니겠지 / 즉대란봉비몽상
다시 경옥 같은 시를 받으매 색채도 찬란하여라 / 경몽경옥색빈분

예순에도 이름 없이 초가에서 시 읊는데 / 륙십무문음백옥
누추한 내 집에 찾아와 준 그대 감사하오 / 석문래구감오군
신교는 한 길이라 고금에 다르지 않거늘 / 신교일도무금고
먼저 이렇듯 예모를 갖출 필요가 있으리오 / 하필선용례모분

손님이 문을 두드리며 나를 불러내더니 / 유객구문호아출
빙옥처럼 맑은 풍모의 바로 그대였구려 / 청빙수옥견오군
이끼 낀 마루에 문득 진번의 걸상 내리고 / 태헌홀하진번탑
진종일 마음이 통하여 얘기를 나누었어라 / 일구신교설갱분

안개와 눈 먹으며 산골에 은거하지만 / 찬하담설와송석
조정의 큰 재목으로 누가 그대만 하리요 / 랑묘지자숙사군
그대는 부디 담장 넘는 일 본받지 마오 / 빙군막학유원사
사도 당시에는 분란을 풀 수 있었다오 / 사야당년역해분

채신의 근심 중하여 늘 집안에 틀어박혔더니 / 채신우중장구축
방문해 주신 정 보답하기 어려워 몹시 부끄럽구려 / 욕왕난수심괴군
홀로 첨두를 불러서 이내 뜻을 펼치게 하니 / 독환첨두진비억
시편 가득한 말들이 그저 분분할 뿐일세 / 만편사설단운분

소나무 울타리 초가집은 그대가 나와 같고 / 송리초옥군동아
거친 음식에 삼베옷은 내가 그대와 같아라 / 려식마의아사군
만약 이 봄바람에 내 묵은 병이 낫는다면 / 약득춘풍소구양
함께 분분히 흩날리는 배꽃을 구경하리라 / 공간리설백분분

내 집은 산이 휘감고 시냇물 구비 도는 곳 / 아옥산회계백전
이렇게 멀리 그대가 찾아올 줄 생각지 못했다오 / 궁심원방불료군
이제부터 눈에 가득 보이리 서로 자주 만나서 / 종금만안빈상패
달밤에 술 취해 꽃 앞에 춤추는 분분한 그림자 / 취무화전월영분

우명 거리라 거처가 서로 매우 가깝건만 / 지격우명거밀이
그저 높은 명성 흠모할 뿐 만나지 못했네 / 단흠산두미봉군
송당에서 한 번 만나 마음을 터놓은 뒤로 / 송당일조피심후
분분한 눈비도 아랑곳 않고 서로 만났지 / 불탄상수우설분

원운 이종룡 [원운 리종룡]

오랫동안 명성 우러르고 만나지 못했으니 / 구앙성화불상견
자제분 만나매 흡사 그대를 만난 듯했다오 / 옥랑봉처황봉군
오늘 여기에 와서 문장을 토론하노라니 / 래심차일론문지
가슴 속이 후련해 속세의 근심 없어진다오 / 흉차헌연절세분

이 진사가 찾아온 데 답례로 주다 2수 [사증리진사래방 이수]

말발굽 소리 귀에 울리고 삽살개 짖더니만 / 마제은이산방폐
홀연 반가운 손님이 석문에 이르렀어라 / 홀견가객도석문
혹 소릉이 백곡을 찾은 게 아닐까 했더니 / 막시소릉심백곡
유자가 진헌에 들른 것인 줄 알겠구나 / 환지유자과진헌
좌중을 격동하는 고상한 얘기는 옥가루가 날리는 듯 / 고담격좌비경설
사람을 놀라게 하는 빼어난 시구는 골짜기에 쏟아지는 물살 / 수구경인도협원
돌아보건대 이 몸 뛰어난 점 무엇이 있으랴 / 환고차신하소유
부질없이 그대 먼 길을 걸어오시게 했구려 / 만로차마섭천원

동가의 좋은 손님이 찾아와 대문을 두드리기에 / 동가미객구문호
허겁지겁 나가 반겨 맞으며 예의를 다하였지 / 전도상영례의부
높은 산처럼 우러르며 명성을 평소에 알았는데 / 앙지고산지유소
누추한 거리 찾아주실 줄 생각지도 못했다오 / 선심루항불증도
처음 만나 수인사 나누매 모두 청안이요 / 신교설파구청안
만년의 친교 얘기하노라니 둘 다 백발일세 / 만계론성량백수
아양곡 연주가 오늘부터 시작하였으니 / 득주아양금일시
원컨대 금석처럼 굳은 우정 길이 변치 않기를 / 원장금석영무투

계미년(1643) 겨울밤에 두광을 시켜 운자를 부르게 하고 여러 가지 일을 읊다 11수 [계미동야사두광호운잡영 십일수]

얼음과 눈 숲에 가득하고 북풍은 부는데 / 동설영림진북풍
대나무 사립 닫은 채 밤은 깊어가누나 / 죽문심폐야장중
쏟아지는 잠과 시상이 서로 싸우니 / 수마음사래상홍
등잔 앞에 병든 한 늙은이 시름에 잠긴다 / 수살등전일병옹

네다섯 채 집 있는 쓸쓸한 산골 마을 / 요락산촌사오가
밤 깊을 제 눈보라가 산허리에 몰아친다 / 야란풍설옹산아
흰 눈썹 묵객이 창 아래에서 시 읊는데 / 방미묵객음창하
돈이 없으니 좋은 술을 어디에서 살거나 / 미주무전하처사

아홉 구비 계산은 봉성과 멀리 떨어졌는데 / 구곡계산격봉성
작은 초가집 속에서 매형을 벗하노라 / 수연모동반매형
때때로 술에 취해 술동이 앞에서 자노니 / 시래침국준전와
좋은 말 타고 좋은 옷 입는 호강은 원치 않는다 / 불원승비차의경

밤 깊을 제 달빛 아래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 야구한성월하침
나무 그늘 속 초가집이 더욱 그윽하게 보여라 / 수중모옥전유심
병풍 앞에서 무릎 안고 〈양보음〉을 읊노라니 / 병간포슬음량보
만 섬의 시름 귀밑에 들어와 백발이 늘었네 / 만곡한수빈상침

바람은 빈 숲에 가득하고 눈은 뜰에 가득한데 / 풍만공림설만정
산중에 작은 술잔 구태여 가득 채울 것 없어라 / 산배소작불수영
한가로이 지낸 지 십년에 참된 흥취가 많으니 / 단거십재다진흥
무능하고 나태해 뜻 못 이루었다 말하지 마오 / 막도소용지미성

차가운 별들은 흩어져 푸른 하늘 가득한데 / 한성착락만청공
묵객은 시를 읊느라 하염없는 생각에 잠긴다 / 묵객침음의불궁
직설로 자처했건만 나는 이미 늙었으니 / 직계허신오로의
그저 나라 걱정해 풍년이 들기를 기원할 뿐 / 단능우국원년풍

금문에서 오리걸음을 배우는 데 뜻이 없어 / 금문무의학추부
외로운 밤 소나무 침상에 늙은이 누웠노라 / 독야송상와로부
만뢰는 악기처럼 온갖 소리로 들려오니 / 만뢰조조문옥관
맑은 음향 그 어디에 봉이 새끼를 거느리는가 / 청상하처봉장추

세모라 시골 마을에 눈서리가 많이 내려 / 세모황촌요설상
한가로이 장작불 피우고 따뜻한 방에 누웠노라 / 한소골돌난송상
산골 늙은이 밤에 앉아서 무슨 일을 하는고 / 산옹야좌영하사
낮을 이어 외로운 등잔불 아래 그물을 꿰매누나 / 결망고등계일광

뽕나무 활로 쑥대 화살 사방에 쏘는 건 원치 않고 / 불원상봉사사방
고대광실에서 고운 여인네에 취하는 것도 싫어라 / 역혐화옥취홍장
아침엔 졸고 밤에 앉아서 시 읊느라 고심하노니 / 조면야좌음시고
이내 마음이 늘 세상 상식과 달라 스스로 웃노라 / 자소심정매반상

옥충도 꺼져 밤은 춥고도 적적한데 / 옥충도진한경적
은갑은 연주 그치고 눈보라 소리 울린다 / 은갑탄정설뢰명
어떻게 하면 좋은 벗과 이 밤을 같이 보내며 / 안득가인동와탑
함께 맑은 풍경 노래하고 한가한 정을 읊을거나 / 공음청경철한정

만학은 소리 없이 고요하고 눈 내린 밤은 긴데 / 만학무성설야장
한가로이 작설차 달여서 마른 창자를 적시노라 / 한팽작설윤고장
아이들이 귀반곡이란 글을 외울 줄 아니 / 아동해송귀반곡
서안을 두드려 장단 맞추며 흥이 마구 이누나 / 격절서상흥욕광

겨울밤 새벽녘에 읊다[동야효음]

추운 밤 닭 울고 새벽 동이 터오건만 / 한계규파서광등
방 안에 산골 늙은이 게을러 일어나질 않는다 / 옥저산옹권미흥
멀리서 생각노니 대궐에서 출근하는 신하들은 / 요상명가조옥궐
오경에 서리와 눈발이 옷에 가득 묻었겠지 / 오경상설만의릉

겨울날 저녁에 읊다[동일모음]

눈발이 흩날려서 작은 마을을 덮으니 / 동설빈분멱소촌
대숲에 깃든 새들이 시끄럽게 울어댄다 / 죽림서조란상훤
산골 늙은이 방문을 닫고 오궤에 기대 있노라니 / 산옹폐합빙오궤
저물녘 성남에서 분주히 가던 시절 문득 생각난다 / 홀억성남모야분

함경 도사로 부임하는 심인시 술지에게 증별하다[증별함경도사침인시술지]

아득히 먼 함경도는 큰 번진(번진)이라 / 적의함관쇄약웅
고을의 도사로 어진 그대를 선발했어라 / 이거당백간현공
위엄과 사랑 병용하는 데 그대가 보좌로 제격 / 엄화병용군의좌
상벌을 분명히 내림은 자네도 그렇게 해야지 / 출척유명자소동
순시하다 국경에 이르면 용맹한 군대를 볼 테고 / 순도새원관호대
안찰하러 고을에 가서는 백성들 풍속을 보겠지 / 안림주현적민풍
업무를 보는 여가에 한가로운 유람 많으리니 / 주모가일다한승
때로 술자리에서 기생을 불러 놀기도 하리라 / 시념명화석상홍

모재팔경[모재팔경]

아침 해가 솟을 때 산봉우리에 걸린 새 모양의 붉은 구름 / 조봉적조
바람에 흔들리는 비단과 같은 꽃봉오리 / 풍전수악
맑은 시내에 서 있는 옥같이 흰 새의 날개 / 청계옥익
모든 산에 비단처럼 물든 단풍 / 천림금엽
저녁 산등성이 위에 떠오르는 차가운 달 / 모교한섬
비가 온 뒤에 더 짙푸른 소나무 / 우후창염
푸른 버들 속을 누비며 나는 노란 꾀꼬리 / 취류금사
나무들마다 돋아나는 옥빛의 꽃 / 만수경파

옥담팔경[옥담팔경]

바람결에 찰랑이는 푸른 물결 / 함풍압록
연잎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 청전소점
용문의 고목나무 / 룡문로간
바위 가의 푸른 소나무 / 암변만취
햇살을 받으며 노는 노란 오리 / 롱일아황
자줏빛 비단 같은 해당화의 짙은 향기 / 자면농향
해곡의 새 순이 돋은 대나무숲 / 해곡신총
햇살에 먼저 붉게 물드는 물가 언덕 / 안상선홍

한거팔경[한거팔경]

이난이 만난 좋은 자리 / 이난기득
술동이 속의 좋은 술 / 준중록의
안주로 오른 월척의 물고기 / 천효옥척
꽃 앞의 금곡 / 화전금곡
사미가 다 갖추어짐 / 사미불고
무릎 위의 금부 / 슬상금부
푸른 실 같은 들나물 / 야속청사
달빛 아래 아름다운 시문(시문) / 월하경사

춘일팔흥[춘일팔흥]

껍질이 알록달록한 죽순 / 황손포탁
붉은 빛을 머금은 저녁 이슬 / 홍함석로
집 뒤에서의 논밭갈이 / 최경옥후
꽃 핀 마을에서 옷 잡혀 술 마시기 / 화촌의전
주먹 모양으로 돋은 고사리 / 궐아성권
푸른 들판에 낀 아침 안개 / 록대조연
숲 가에서 비 부르는 비둘기 / 환우림변
갈고리 모양으로 뜬 초승달 / 월항구현

하일팔흥[하일팔흥]

주명으로 계절이 바뀜 / 주명환절
흰 눈처럼 누에고치를 켬 / 조성백설
맑은 물결에 몸을 씻음 / 청련탁결
술병을 기울여 맑은 술을 마심 / 호경옥로
적제가 수레를 돌림 / 적제회원
누른 구름 같은 보리를 거둠 / 할취황운
푸른 장막 아래서 서늘한 바람을 쐼 / 취악영량
사발에 가득 시원한 음료를 마심 / 완일경장

추일팔흥[추일팔흥]

술병에 가득한 맑은 술 / 호중로숙
숲 속 시내에서 비단을 씻음 / 계림탁금
고운 쌀밥을 지음 / 장요미취
동이에 가득한 맑은 술 / 영준옥액
속세를 벗어난 듯한 맑은 서리 / 상외상청
주렁주렁 달린 동산의 과일 / 원과수령
신선한 축항어 / 축항신선
한 섬 가득한 금전 / 만곡금전

동일팔흥[동일팔흥]

삼양의 절기가 가까움 / 삼양절근
창가에서 바둑 두기 / 창간수담
향기를 머금은 준치 / 함향준치
사발에 막걸리 따라 마시기 / 와구짐백
환하게 밝은 육출화 / 륙출화명
등잔 아래서 설경(설경) / 등하설경
안개를 뿜는 반룡 / 분무반룡
붉은 빛으로 이글거리는 지로 / 지로소홍

처 종손녀 남편인 정국상이 흥덕에 살면서 집 한 칸을 짓고 백운당이란 편액을 걸고 시 두 수를 지었기에 그 시에 차운하고 또 한 수를 부연하여 부치다[처손종녀부정국상거재흥덕구일당게호백운유시이수인차기운우연일수이기]

지은 집 얼마나 운치가 맑은가 / 복축하소상
집 앞에는 대나무와 매화 심었어라 / 당전죽여매
흰 구름은 같이 고요히 떠 있고 / 백운동정산
밝은 달은 함께 배회하는구나 / 명월공배회
정절이 가신 지 천년 뒤에 / 정절천년후
드높은 풍모 백대 뒤에 돌아왔네 / 고풍백대회
부끄러워라 축지법을 할 수 없어 / 참무축지술
가서 자네와 맘껏 술 마실 수 없음이 / 난여취심배

또 한 수 읊다[우]

덩그런 집 새로 지으매 한가한 거처 즐거워 / 화당신벽악유거
눈에 가득한 풍광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라 / 만목풍광설불여
무슨 일로 유독 ‘운(운)’ 자를 편액에 걸었는가 / 하사독장운게액
한가한 그림자가 서재에 떨어짐을 사랑해서겠지 / 정련한영락금서

일찍이 듣건대 반악이 한거를 노래하며 / 증문반악부한거
유유히 사는 맑은 흥취 날로 넉넉하였다지만 / 청흥유연일유여
백운당 주인이 시인묵객을 맞아들여서 / 하사주인영묵객
다투어 좋은 시를 남겨 벽에 써 둔 것만 하랴 / 경류가작벽간서

담배를 읊다[영연다]

신령한 뿌리를 해산에서 옮겨왔나니 / 령근이득해산간
이슬 젖은 잎새는 봉황의 아롱진 꼬리인 듯 / 로엽의희봉미반
가위로 자르니 가는 금실처럼 떨어지고 / 전락교도금루세
곰방대에 눌러 담으니 자줏빛 구름 덩어리 / 성래중합자운단
바람 서늘한 창가에서 밤에 피우니 별빛이 반짝이고 / 풍창석흡명성동
비 오는 마루에서 아침에 내뿜으니 초록 안개 서리네 / 우함조분록무반
병을 치료하고 수명 늘이는 게 이 담배에 있으리니 / 격질연년응재차
인삼 복령으로 늙음을 멈추게 할 필요가 있으랴 / 삼령하필주쇠안

김길보의 〈청풍군 한벽루에 올라〉란 작품에 차운하다[차금길보등청풍군한벽루운]

누대에는 일월이 머무는데 / 누대엄일월
나그네는 봄바람을 만났어라 / 기려득춘풍
시냇가 버들은 푸른 빛 물들겠고 / 간류장서록
강가의 매화는 붉은 꽃망울 터뜨릴 듯 / 강매욕방홍
좋은 손님은 마음이 옥과 같고 / 가빈심사옥
어진 주인은 기운이 무지개 같구나 / 현주기여홍
취한 뒤에 시를 읊을 때에는 / 취후시단상
그 누가 가장 으뜸이 될까 / 하인제일공

또 근체시에 차운하다[우차근체]

누차 여윈 말 채찍질해 먼 길 나서 / 루책리참작원유
저물녘 한벽루에 올라 경관을 조망한다 / 만등한벽빙쌍모
물결 거슬러 오르는 외로운 돛단배 어선을 보고 / 고범역랑간어정
바람 따라 나는 만 점의 옥 같은 백구가 보인다 / 만옥수풍견수구
십리 고운 백사장에는 낙조가 환하고 / 십리경사명락조
천 겹 푸른 산봉우리는 맑고 그윽하여라 / 천중취수읍청유
막걸리 열 잔 마셔도 좀처럼 취하지 않으니 / 황류십작난성취
바로 어진 주인이 손님 대접하는 때 만났구나 / 정치현동례객추

또 십운에 차운하다[우차십운]

나그네로 맑은 지경에 노닐다 / 객자유청경
때로 강가의 누각에 오르니 / 시등강상루
천고의 한을 능히 녹여 없애고 / 능소천고한
백년의 시름을 씻을 수 있구나 / 가척백년수
빼어난 경치를 만나 기쁜 날이요 / 승경흔봉일
맑고 사랑스런 풍경 감상하는 때일세 / 청애광상추
붉은 벼랑은 물결 위에 우뚝 섰고 / 단애파상촉
푸른 안개는 시야 저편에 떠 있네 / 청애망중부
목동의 피리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