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조단경 특강 ◈

    참좋은날 2021. 1. 25. 06:00

    육조단경 無一우학스님 강의. 불교TV 방영

     

     

    제삼. 의문품(第三 疑問品)
    제16강 - 14

     

    사군(使君)은 선청(善聽)라 혜능(惠能)이 여설(與說)호리라 세존(世尊)이 재사위성중(在舍衛城中)하사 설서방인화(說西方引化)하사대 경문(經文)에 분명거차불원(分明去此不遠)이라하시고 약론상설(若論相說)인댄 이수(里數)가 유십만팔천(有十萬八千)은 즉신중(卽身中)에 십악팔사(十惡八邪)니 변시설원(便是說遠)이라 설원(說遠)은 위기하근(爲其下根)이오 설근(說近)은 위기상지(爲其上智)니 인유양종(人有兩種)이나 법무양반(法無兩般)이라 미오(迷悟)가 유수(有殊)하야 견유지질(見有遲疾)일새 미인(迷人)은 염불(念佛)하야 구생어피(求生於피)하고 오인(悟人)은 자정기심(自淨其心)하나니

     

    위 사군은 잘 들어라. 내가 설하여 주겠노라. 세존이 사위성에 계실 때에 서방으로 인도하여 교화한다고 설하셨는데 경문에 보면 분명히 이곳에서 멀지 않다 하셨고 만일 현상계로 논하여 말한다면 거리가 십만 팔 천리다 하셨는데 이것은 곧 몸 가운데 십악(十惡)과 팔사(八邪)를 가리킨 것으로 멀다 하신 말씀이다. 멀다고 설하신 것은 낮은 근기를 위한 것이고 가깝다고 설하신 것은 높은 근기를 위한 것이다. 사람에게는 낮고 높은 두 가지가 있으나 법에는 두 가지가 없느니라. 미혹함과 깨달음이 다르므로 견해가 더디고 빠르니라. 미혹한 사람은 염불하여 저 곳에 나기를 구하고 깨달은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느니라.

     

     

     

    그래서 불교가 다른 종교하고 크게 다른 점은, 무조건 자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불을 열심히 해서 가피를 입는다하지만, 자기가 염불하지 않으면, 자기가 정진하지 않으면, 가피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만큼 가피가 있어요.

    자기가 정진한 만큼 어떤 결과가 있는 것이지, 다른 종교에서처럼 '너의 뜻이 아니라 주관자의 뜻, 창조자의 뜻이 따로 있다.' 이런 얘기는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에 불교는, 겉모양으로는 우리가 열심히 기도를 해서 부처님 가피가 있었다고 말하지만 결국엔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스스로 자기 부처님을 찾아가는 겁니다.

    마음가운데 부처님, 우주법계에 가득한 부처님의 가피를 입는데, 자기 정진만큼만 얻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결국 자력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염불하는 것을 조금 하찮게 보는 것은, 아마 당시에 염불하는 사람들이 부처님 경전이라든가 또 마음 닦는 본래적 수행은 모르고, 그냥 미련하게 염불이나 했던 그러한 경우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요.

    그래서 누가 묻거들랑 불교는 자력이다. 이렇게 얘길 해야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