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문방송 기사

    참좋은날 2021. 1. 15. 05:58

    깨달음은 自內證…그 과정 일목요연하게 정리

    깨달음은 자내증(自內證)이기 때문에 깨달음의 그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내증이라 해서 대충 얼버무려 넘어간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제 나름 많은 고민을 하면서 객관성 있게 정리하였습니다. 다음은 오도체계(悟道體系) 요약입니다.

    첫째, 업아(業我)는 심사자기(心使自己)로 마음이 자기를 다스림입니다.

    둘째, 몰아(沒我)는 심멸인무(心滅人無)로 마음이 멸하고 사람이 없음입니다.

    셋째, 묘아(妙我)는 지현사심(智顯使心)으로 지혜가 나타나 마음을 다스림입니다.

    넷째, 공아(空我)는 지심원융(智心圓融)으로 지혜와 마음이 원융함입니다.

    업아(業我)에 대하여

    업아는 중생의 ‘나’입니다. 중생의 나, 즉 업아는 순전히 중생심에 지배를 받습니다. 업아로 존재케 하는 원동력인 이 마음에는 어떤 종류가 있겠습니까? 첫째 탐·진·치의 삼독심이요, 둘째 습관으로 고착된 마음, 습심(習心)이요, 셋째 애착심입니다. 여기서 삼독심의 탐심(貪心)은 능력, 분수 밖의 욕심이요, 진심(瞋心)은 화냄, 스트레스, 짜증이요, 치심(癡心)은 진리에 대한 무지입니다. 그럼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眞理)는 무엇일까요?

    첫째 연기의 도리, 이치요, 둘째 반야의 도리, 이치요, 셋째 일승의 도리, 이치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모름으로 무명(無明)의 칠흑 같은 세계에서 천방지축 힘들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인생의 주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최상의 행복, 열반이요, 둘째 대자유, 해탈이요, 셋째 영원한 삶, 오도요, 넷째는 참자아, 주인공입니다. 우리는 수행을 통하여 이 자리에 들어가는 것인데, 이 자리가 본래의 자기 자리입니다.

    필자 우학스님이 생각하는 오도체계를 요약한 도표

     

    몰아(沒我)에 대하여

    몰아는 심멸인무(心滅人無)의 자리, 즉 마음도 없고 사람도 없는 경계인데, 이 과정을 겪지 않고는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는 가아(假我)인 오온(五蘊)은 없습니다. 그리고 6근(六根)도 6경(六境)도 6식(六識)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철저히 ‘나’는 짓뭉개지고 죽어 버립니다. 이러한 자기 소멸 없이는 다시 새롭게 태어날 수 없습니다. 방하착(放下着) 정도가 아니라 대사일번(大死一番) 하여야 합니다. 그리해야 절후소생(絶後蘇生)할 수 있습니다.

    이 몰아의 경지를 체험하려면 생명을 의식하지 않는 고도의 수행이 있어야 하는데, 운이 좋아서 생명을 앗아갈 만한 위중한 병이나 정신적 충격이 함께 하면 훨씬 수월해집니다. 화두 수행자라면 화두만이 성성할 뿐, 다른 여타의 것들은 이미 없어지고, 마음도 없고 육신도 없습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인욕선인의 고초를 겪어야 합니다. 마음길이 끊어지고 할 말이 없어져야 합니다(心行處滅, 言語道斷).

    저는 이 과정을 암이 찾아와 도와주었습니다. 구차하게 사느니 차라리 이렇게 좋은 공부 기회를 만났을 때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도나 깨치고 죽겠다는 용맹심(勇猛心)이 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밀어붙이니 몰아(沒我) 그 자체였습니다. 모든 것이 백지상태였고, 나는 없었습니다. 철저한 무심(無心)이었습니다. 도를 구하는 사람들은 심멸인무의 경지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도(道)는 험난한 과정을 요구하는데, 중생의 기질이 그만큼 끈질기기 때문입니다.

    묘아(妙我)에 대하여

    철저한 몰아의 체험이 중요합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중생인 나의 모든 것이 널브러져 꼼짝달싹 못하게 해야 합니다. 어떠한 미련의 자국도 남기지 않고 마음이 백기를 들어야 합니다. 항복기심(降伏其心)한 자리에서 새 움이 터서 올라오는 그 무엇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반야 지혜입니다.

    그 반야 지혜가 드디어, 천방지축 날뛰며 안하무인, 오만방자하던 마음을 컨트롤하기 시작합니다. 반야 지혜는 참으로 묘심(妙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지현사심(智顯使心), 지혜가 마음을 다스리면서 지금껏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면의 자기 부처가 세상의 신통한 모양을 보고 참성품을 노래합니다.

    지혜는 자각입니다. 삼독심에 대한 자각이요, 습심에 대한 자각이요, 애착심에 대한 자각입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어느 날 묘아(妙我)의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공부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안주하거나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더 높은 정신세계로 더 밀고 들어가야 하며, 가행정진의 필요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공아(空我)에 대하여

    공아는 참다운 나, 진리적 나, 중도적 나, 대승적 나를 집약하는 말입니다. 공아의 자리에 섰다는 것은 지심원융(智心圓融)의 경지에 들어 일체에 걸림 없으면서도, 또한 모든 곳에 주체적 의식을 갖고 녹아드는 대보살도의 삶을 말합니다. 명력력로당당(明歷歷露堂堂)한 주인공이 우주적 마음을 갖고, 스스로의 진면목(眞面目)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비로소 마음을 깨쳐 오도송(悟道頌)이 나오니 ‘지혜 즉 마음’이 되어, 하는 일이 다 놀랍고 불가사의합니다. 모양은 업아(業我)와 다를 바 없으나, 그가 가진 의식은 더없이 맑고 또렷합니다. 쓰는 생각을 마음이라 붙일 수도 있으나 이제, 그 마음은 업아의 삼독심, 습심, 애착심 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불심(佛心)이며 부동심(不動心)이며 청정심(淸淨心)입니다.

    그런데 이 공아(空我)의 경지는 새로 구해진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하여 회복된 본래성(本來性)의 자리이므로, 업장의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없습니다. 오욕(五欲)의 가장 뿌리 근성인 명예욕마저 없어졌으니 그 어떤 찬탄도 용납지 않습니다.

    오도체계에 따른 심론(心論)

    세상은 마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빛깔이 천차만별인데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업아(業我)에서는 업심(業心)으로 나타나고,

    몰아(沒我)에서는 무심(無心)으로 나타나고,

    묘아(妙我)에서는 묘심(妙心)으로 나타나고,

    공아(空我)에서는 공심(空心)으로 나타납니다.

    똑같은 행도 중생이 지으면 중생 놀음이라 하고 불보살이 지으면 불보살 공덕행이라 하듯, 이 마음 또한 중생이 쓰면 중생심이요 불보살이 쓰면 불심이라 합니다. 특히, 묘아에서 나타나는 반야지 또한 넓은 의미에서는 ‘마음’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업아에서 나타나는 업심과는 차원이 다름으로 특별히 ‘묘심’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아(空我)의 공심은 지심(智心)이 원융해져 만물의 주재자이며 주인공인 참자아를 일컫는데, 앞의 마음의 개념과는 또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아무튼 공심(空心)이야말로 수행을 통하여 증득해야 할 바입니다. 표현하거나 말할 수는 없습니다. 활발발(活潑潑)하고 무위무불위(無爲無不爲)한 그 당체(當體)가 분명히 있으니, 이는 인인개개(人人個個)가 본래로 다 구족하고 있는 실상(實相)의 보물 그 자체입니다.

    그 어떤 공간에도 걸림이 없고, 그 어떤 시간에도 제한받지 않습니다.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 항상 나와 함께 있을 뿐입니다. 우주가 생기기 전에도 있었고 우주가 멸한 뒤에도 있을 것이니, 세상에 이보다 더 숭고할 것이 없습니다. 무진장한 보배라서 써도 써도 다함이 없습니다. 관세음보살!

    * 한국불교대학 유튜브불교대학에서는 다양한 불교이야기를 시청할 수 있습니다.


    無一 우학 한자성어

     

    ⑳ 無一家風 生日亦無(무일가풍 생일역무)

    하나도 없는 무일가풍에는 생일 또한 없다

    이 한자성어는 제 세속 생일에 쓴 글입니다. 저는 제 개인 생일을 챙긴답시고 상좌들이나 신도님들에게 말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간혹 어떻게 알고 ‘생일을 축하한다’는 엽서만 와도 저는 내심 난감합니다. 세속의 생일이 출가자의 경우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법호인 무일(無一)에 걸맞게 모든 절 살림을 공적으로 살려고 애를 씁니다. 비오지물 단오등물(非吾之物 但吾等物), 즉 ‘내 개인의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모두의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무일가풍(無一家風), 하나도 없는 무일가풍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생일에 대한 관념 또한 그러합니다. 누가 생일에 대해 물으면 이리저리 둘러대기 일쑤입니다. 우리절 창건일인 5월15일을 말할 때도 있고, 저의 출가일인 12월20일을 말할 때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무문관 수행 7년 해제일인 2월2일을 말해 왔는데, 이 또한 해마다 닥치는 일이라 최근에 아예 멀리 잡아두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날은 2041년 음력 10월1일이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니 매년 받는 생일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2041년 10월 1일을 구체적으로 말한 것은 이날이 제가 회주로 있는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의 33년 대수행정진 회향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희 절은 13년째, 제45차 백일기도 중에 있습니다. 제121차 백일기도 중에 33년 대수행정진의 회향일을 맞습니다.

    왜 33년인가 하면 첫째는 우리가 말하는 33조사, 즉 육조 혜능스님까지의 그 기라성 같은 인물이 이 무일선원 무문관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 둘째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의 33응신에 부합하는 천 개 도량을 33년 동안 건립해보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여러 환경상 포교 패러다임이 많이 바뀐 상태라서, 유튜브불교대학을 활성화 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33년의 숫자에 맞게 2041년 기도 회향일에는 333만명의 구독자가 생기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원력보살님들의 많은 성원을 바라 마지않습니다. 아무튼 저는 2041년 10월1일에 무일선원 무문관에서 배출된 도인들과 유튜브불교대학 333만 신도님들과 의미 있는 생일파티를 대판 치르고 싶습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