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하바나 2010. 10. 2. 01:14

    요즘 서울에서도 걷기 좋은 길 만들기가 한창이란다.

    이 추세에 부응하여 나도 그 중 하나인 서울성곽길을 걸어보겠다고 나섰다.

     

    서울성곽 중 유일하게 가본적 없는 낙산 코스를 경유하기 위해

    선택한 2구간길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일단 동대 입구역

    4번 출구로 나왔다.

     

    점심으로 부대찌게를 먹고 4번 출구에서 약수역 방향으로 걷다가

    GS25가 나오자 왼쪽 골목으로 신당동 성당을 찾아 올라갔다.

     

    아직 성곽은 보이지 않지만 이 골목부터 웬지 운치가 느껴진다.

    일요일 정오, 화창한 날씨, 으리으리한 저택의 돌담길, 그 옆 성당을

    지나가면서 복잡한 서울 한 복판에서 나름 걷는 재미가 붙을 즈음

    성곽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끝에 광희문이 보인다.

    서울의 사소문 중 하나, 예전에 시체가 나오던 문이라고 한다.

     

     

    다시 끊기는 성곽을 뒤로하고 동대문으로 향한다.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동대문 역사 공원에도 복원된 성곽의 한 토막이 눈에 띈다.

     

    동대문을 지나 낙산 방향으로 도로를 건너 다시 시작되는

    성곽을 따라 올라가면 낙산공원을 볼 수 있다.

     

     

    낙산은 참 친근한 산이다. 워낙 달동네다 보니 산 거의 정상까지

    집들이 빼곡하고 몇 걸음 내려오다보면 다시 대학로이니 말이다.

     

     

     

    낙상공원 정상에서 보면 성곽은 산위에서 아래로 미끄러지듯 마을로 

    흘러내리다 빼곡한 집들 사이 어딘가로 스며들어 사라진다.

    이런 서울 성곽을 보고 있으면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 안타깝기도 하고,

    도심속에 숨죽이고 이렇게 가까이 우리 주위에 남아 있어 줬다는

    사실에 고마운 마음도 새삼 느끼게 된다.

     

     

    낙산을 내려오면 혜화문까지 한참동안 성곽이 끊겨 있다.

    안타깝게도 혜화문부터 성곽이 이어져 있는지 확인하질 못했다.

    그냥 그 옆동네 길상사를 돌아 삼청각을 지나 삼청공원으로 내려

    왔으니 말이다. 삼청공원에서 보니 혜화문 방향으로 성곽이 쭉

    이어져 있는 것 같아 보이긴 하나 직접 확인해 보지를 못했으니

    담에 3구간 시작은 혜화문에서 출발해야 겠다는 각오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옆길로 새어 들른 길상사.

     

    역시 법정스님의 맑고 깨끗하게라는 표어대로 검박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하지만 이 소박함 속에 범상치 않게 놓여 있는 멋진

    소품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마치 성모상으로 착각할 만큼

    세련된 관세음보살상과 뒷쪽 시냇물 주위 선방옆의 의자, 난간,

    계단 들에서 언듯언듯 보이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과 경사면의

    나무들를 배려한 옹벽 설계 등에서 만만치 않은 고민과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길상사를 나와 한적한 대사관길을 지나 삼청각에 잠시 들렀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남북회담을 위해서 북의 옥류관에

    견줄만한 장소를 석달만에 뚝딱 만들었단다. 그런데도 지금까지도

    방탄 건물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한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본 중앙 건물은 목조 한옥처럼 보이도록 만든

    콘크리트 건물이어서 전통 가옥의 고풍스러운 운치 대신 70년대

    군사 독재 시절 밀어붙이기식 토건 공화국이 만들어 낸 모조품의

    조잡함이 느껴져서 씁쓸했다.

     

    문제는 이 건물을 보면서 웬일인지 한강, 청계천, 광화문 광장이

    생각나고 거기에 더하여 4대강까지 생각이 난다는 거였다.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삼청각 옆길로 올라가면 숙정문 가는 길이 보이는데 이 길로

    창의문까지 이어지는 3구간을 걸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4시간을

    걸은 관계로 오늘은 여기까지만...

     

    숙정문 앞에서 시내로 가려면 말바위 전망대를 이용하여 성곽을

    넘어 와룡공원이나 삼청공원으로 내려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