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검도(Kendo)

촛불하나 2008. 7. 29. 08:22

검도 본의 의미


(사사키 히로츠구 49세, 검도연사 6단)

(*주: 다음 글은 검도형을 <검 술 형><검 리 형><검 도 형>, 즉 술,리,도라는 세가지 관점에서 고찰한 글로서 유익한 글이 아닐까하여 <검도일본>잡지 2005년 1월호에서 번역한 글입니다.

사실 승단 시험에 중요한 포션을 차지하는 검도형이지만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형태만 모방한 경우가 많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거기에 대한 하나의 좋은 착안이 될 수 있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글 중에는 일본 문화이므로 우리의 국민감정에는 다소 거북한 말도 있는 것 같으나 좋은 것만 취사 선택한다면 무방하리라 생각됩니다.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1. 검도형이란 무엇인가?


검도를 시작하여 1-2년 정도, 어린이라면 초등학교의 고학년부터 중학생 정도가 될 때, 반드시 직면하는 것이 <일본검도형>의 연습이다. 지도 선생님으로부터 1급의 심사 혹은 초단 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이 <검도형>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고, 우선은 1본목부터 <형의 수순>을 선도 후도로 나누어 배우게 된다.

그때까지는 호구를 쓰고 죽도를 잡고, 기본이 되는 중단의 겨눔자세로부터의 <머리><손목><허리>등의 올바른 타격방법을 열심히 수련해온 사람으로서는, 처음 잡는 상단의 겨눔자세라든가, 그때까지는 배운 일이 없는 <찌름>기술 등을, 평소에 익숙한 죽도가 아니고 약간 만곡된 목도를 사용하여 행하는 것에 적지 않게 당혹감을 가진 것은 아닐까. 그리고 거기서부터 반드시 <검도형은 무엇 때문에 하지?> 라고 하는 의문이 솟아 오르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 검도형의 실정


일본 검도형은 구대일본무덕회가 대정원년 10월에 제정한 것을 1981년 12월에 전일본검도연맹이 그 표현을 현재적으로 다시 쓰고 제정한 해설서에 따른 것이다.

이것은 검도 기술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뽑아 모은 것으로, 그 이합을 집합한 것이라 말하여지고 있다. 이것을 충분히 활용하면 실제의 연습시합에도 응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검도형 강습회등에서도 이것을 확실히 연습하므로서, 다음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1) 올바른 예의와 침착한 태도가 몸에 붙는다

2) 자세가 올바르고 동작도 기민하게 된다

3) 상대의 기분과 동작을 관찰하는 눈이 길러진다

4) 기술상의 악습을 제거하고 올바른 기술이 몸에 붙는다

5) 올바른 칼날과 손매무새를 습득하여 정확한 타돌이 몸에 붙는다

6) 올바른 거리와 틈(타이밍)을 얻는 방법에 능숙해진다

7) 타돌이 정확해지고 잔심을 습득한다

8) 기가 단련되어 기합과 발성이 충실해지고 기민경묘한 동작이 몸에 붙는다

9) 마음과 기술의 이합을 습득한다

10) 기위가 높아지고 기품과 품격을 갖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현재의 검도경기의 규정으로서는 작은 소도의 죽도는 사용않고 있는데도 소도의 형이 3본이 있다.

일반적인 검도의 타돌동작은 상급자가 되면 될수록 손목과 팔꿈치를 주체로 한 작고 빠른 타돌방법이 요구되어지는데도, 검도형에서는 양팔을 크게 휘둘러 올리는 동작을 한다면, 검도형을 현대의 죽도의 검도에 살리는 것인가, 그 틀리는 점만 눈에 띄고 오히려 당혹해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닐까.

이 때문에 검도형의 연습은 승단심사의 직전에 그 형과 순서를 쫓아서 연습할 뿐으로서, 실제는 앞에서 말한 효과를 형의 연습으로 인하여 얻는다는 실감은 적은 것은 아니가 하고 생각한다.


◈ 검도형에 관한 소박한 의문

많은 검도가에게 <검도형>의 연습을 소홀하게 하기 쉬운 것은, <검도>에 있어서의 동작과 <검도형>에 있어서의 동작이 일견 전적으로 틀린 것으로 보이고, 죽도에 의한 <치고들어가기연습>과 목도에 의한 <형연습>과의 구체적인 공통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아무리 검도형의 연습을 쌓아도, 그 효과가 직접적으로 검도의 상달에 연결되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그 수련에 몸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닐까.

거기서, 우선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검도형>에 대한 <소박한 의문점>에 대하여 생각나는대로 열기해 본다.


검도형의 1본목은 <서로 상단>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까.

확실히 고교생이상의 시합에서 상단의 겨눔자세는 인정되어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검도의 기본은 중단에 있다고 한다면, 본래대로하면 <형>의 1본목은 서로 중단이 되는 것이 자연스런 것이다. 서로 상단의 시합 등은, 고교생, 일반성인의 시합에서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승급심사나 승단심사를 받는 초등학교 중학생도 현재는 이 1본목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는 사실상 <상단>이 금지되어 있는데도 상관없는 것이다.

또 이 서로 상단도, 선도는 검도에서도 보통 행하여지고 있는 좌상단인 것에 대하여, 후도는 우상단이다. 왜, 선도와 후도의 상단의 겨눔자세가 틀릴까.

게다가, 이 서로 상단에서부터 선도가 ‘머리’를 치러 오는 것은 왜일까. 일부러 칼로 방어하고 있는 ‘머리’를 치러 오지 않더라도 비어 있는 ‘허리’라든가, 좌우의 ‘손목’을 치는 것이 합리적이다. 거기다가, 선도가 후도의 ‘머리’를 치고 (후도가) 물러난 후에 앞으로 구부러져 머리를 내어미는 쓸데없는 체세가 된다. 검도에서는, 타돌 후에 체세를 무너뜨리지 말라고 가르친다. 설사 과감히 내려 치고 그것을 상대가 물러났다고 해도 앞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허리를 넣어 확실한 체세를 만드는 것이 올바른 것은 아닐까. 하물며 선도는 선생의 위치인 것이다.


이러하듯이 검도형은 조금만 생각하여도 모순 덩어리로 보인다. 따라서, 이 모순을 확실히 해명하지 않는 한 현대검도가로서는 검도형의 수련에 몸을 넣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지 모른다.


◈ 형의 목적과 분류


<형연습>이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독특한 방법의 창시자에 따라 연구되어진 검의 기술을 미리 정해진 순번에 따라 몇 번이고 반복연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죽도에 따른 기본기의 연습을 하는 <약속연습>을 죽도가 아니고 목도나 칼날이 있는 일본도를 사용하여 행하고, 그것을 실전과 같은 스피드로 수련하는 것에 의해 정묘한 검의 기술을 몸에 붙인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형연습>에서 배워 기억한 <기술>은, 그대로의 <형>으로 죽도검도에도 응용이 가능하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형>에는 그와 같이 검의 기술을 직접 전하는 것만이 아니고, 기본적인 검의 이합과 그 독특한 방식의 사고방식, 또는 유파의 목표하는 경지와 사상등을 <검의 형>으로 해서 전하여지는 것도 많다. 예를 들어 이천일류에는 유명한 <오방의 형>이라고 하는 것이 있지만, 이 <형>은 이천일류의 <검기>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무사시가 목표로 하여 도달한 병법의 원리원칙과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오방의 형>의 <형>만을 닮아 보아도 그곳에 무사시의 병법의 신수를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방의 형>은 평소부터의 엄혹한 죽도의 수련과 함께 연습할 때에, 비로소 그 <형>에 내포하고 있는 검의 진리가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형>에는 그것이 전하고 있는 내용과 그 목적에 따라서 몇 가지의 종류가 있다. 거기에서 나는 목적별로 세가지로 분류해 본다.

그 하나는, 검의 <술기> 그것을 전하려고 하는 <형>이다. 적이 이렇게 치러 온다면, 이쪽은 이렇게 대처한다고 하는 검의 <기술>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형>이라 하면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검의 술기를 가르치는 형>이라는 의미로서 <검 술 형>이라 분류한다.

두 번째는, 검의 기본적인 이합, 예를 들어 <간합>이나 <선> 등에 관한 사고방식, 혹은 <공세>의 요체등을 가르치는 <형>으로서, <오방의 형>에는 이러한 내용이 가는 곳마다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검의 이합을 가르치는 형>이라는 의미로 <검 리 형>이라고 분류한다.

세 번째는, 유파로서의 검에 대한 사고방식과 수행에 의해 도달하는 경지, 목적 등을 표현하고 있는 <형>이다. 많은 유파의 경우, <오전>이나 <비전>, <속의 형>등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고, 그 유파로 오랜 수행을 쌓은 사람 외에는 전하여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검에는 안과 밖이 없다>고 한 무사시는 그 내용도 숨기는 일 없이 <오방의 형>에 넣어서 전하고 있다. 이것을 <검의 진리나 목적을 전하는 형>이라는 의미로 <검 도 형>이라고 분류한다.

이상에서처럼 형이 전하려고 하는 내용과 목적에 따라서, 이것을 세가지로 분류해 보았다. <형>에 따라서는 이들 3종의 내용을 단독으로 가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두가지는 없고 세가지가 복합적으로 있는 경우도 많아, 그 중에 어느 내용이 주가 되는가에 따라 <형>의 성격이 변한다.



2. 검도형의 이합


검도형의 1본목부터 3본목까지를, 검의 술기를 가르치는 <검 술 형>으로 해서 보자. 그러면 1본목은 서로 상단으로부터의 <머리 빼어 머리>라고 하는 기술이 되고, 2본목은 서로 중단에서의 <손목 빼어 손목>, 3본목은 하단으로부터의 <찌름 돌려서 2단 찌름>라고 하는, 죽도검도에서는 대략 생각할 수 없는 무언가 이상한 <기술>이 되어 버리고 만다.

특히 1본목에서 선도가 상단의 겨눔자세를 하고 있는 후도에 대해서, 갑자기 발아래까지 쳐내리는 것 같은 타돌 동작을 하는 것은, 검의 이합에서 말해도 아무래고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서로 상단으로 겨누고 있는 상대의 ‘머리’는 칼자루에 의해 방어되어지고 있음과 동시에 그 검은 언제라도 후려 내릴 위치에 있는 것이다. 검의 이합에 따르면, 상대의 겨눔자세가 무너져 있지 않은 것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발아래까지 쳐내려서 앞으로 고꾸라질 뻔하게 되는 것 같은 타격방법은 무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본래대로라면, 확실히 신체를 일으킨 상태에서 칼끝은 후도의 주먹을 가르는 위치에서 멈추는 듯한 쳐내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 2본목에서는 선도는 발아래까지 쳐내리는 듯이 하지 않고 후도의 손목을 가르는 위치에서 검선을 멈추고 있다.


거기서, 이 검도형의 1본목이라는 것은, 검도에 있어서 서로 상단의 공방이나 상단에서부터의 타돌의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러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1본목을 <검 술 형>으로서가 아니라, 검의 이합을 가르치는 <검 리 형>이라는 것으로 보면, 그 가르침이 떠오르는 것이다.


◈ 1본목---간합


검도형을 <검 술 형>이 아니고 <검 리 형>으로 보는 것에 의해, 검도형 1본목에 있어서 서로 상단의 이상한 공방의 의미가 보이는 것이다. 즉, 검도형 1본목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상단으로부터의 머리치기>라고 하는 <기술>이 아니고, 검도에서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간합>을 재는 방법과 그 중요성이다.

간합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는 <일족일도의 간합>을 기준으로 해서, 그보다 <먼 간합><가까운 간합>이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 간합을 올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초심자의 단계에서는 서로 중단으로 겨눌 때의 검선과 검선이 교차하는 경우에 따라서, 이것을 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검선을 맞추지 않으면 간합을 잴 수 없다고 해서는 곤란하다. 본래 간합이라고 하는 것은, 검선에 의해 재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자신과의 상대적인 거리감을 가지고 재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검도형의 1본목에서는, 스승의 위치에 있는 선도가, 제자의 위치인 후도에 대해서 <간합>의 올바른 <재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일부러 검선을 맞추지 않고 상단으로 겨눔자세를 하여, 후도가 검선에 따른 간합을 재기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 동시에 후도에 대해서도 중단 겨눔자세로부터 그대로의 기위로 곧바로 휘둘러 올려, 서로 검선을 맞추어 간합을 재는 것을 하지 않도록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선도는 스승의 위치이므로 검도에서 통용되는 올바른 좌상단의 겨눔자세를 잡고 있지만, 제자의 위치인 후도에 대해서는, 그 단계에서 거기까지는 요구하지 않고, 단지 중단의 겨눔자세에서부터 통상의 타돌동작과 마찬가지로 곧바로 휘둘러 올리는 것만의 겨눔자세를 잡도록 한다. 이 때문에 선도가 좌상단, 후도가 우상단이라고 하는, 쌍방이 약간 다른 겨눔자세가 되는 것이다. 여담이 되지만,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채로 지도자가 마치 검도에는 검도형의 후도가 겨누는 것 같은 <우상단>이라고 하는 겨눔자세가 존재하는 것처럼 가르치면, 초심자 중에는 죽도를 이용한 검도에서도, 이 <우상단>의 겨눔자세가 통용하는 것을 생각해 버려, 상단의 겨눔자세에 대한 혼란을 일으킨다. 검도형에 있어서 <우상단의 겨눔자세>는 검도형에 있어서 간합을 가르치기 위한 편의상의 겨눔자세이고, 검도에 있어서 올바른 상단의 겨눔자세는, 선도가 잡는 <좌상단의 겨눔자세>, 혹은 좌우의 손을 바꿔 넣어서 우수우족 앞으로 좌상단과는 전적으로 역의 모양으로 겨누는 <우상단 겨눔자세>이라는 것을 확실히 가르쳐야 한다.


또, 선도, 후도의 쌍방이 상단의 겨눔자세로 검선을 맞추지 않은 상태 그대로 <일족일도의 간합>까지 걸어서 다가온다. 후도는 검선으로 재지 않더라도, 확실히 이 간합을 잡아서 선도와 대치할 수 있도록 되지 않으면 안된다. 선도는, 후도가 올바르게 일족일도의 간합을 재어 제압하고, 언제라도 상단으로부터 후려내리는 선의 기위를 보인다면, 이것을 <기회>로 보아 크게 오른발을 내고, 동시에 검선을 멀리 후려 내듯이 하면서 발아래까지 베어 내리고, 후도에 대해서 선도의 검선이 도달하는 최대의 간합을 가르친다. 여기서 간합의 최대치를 가르치기 때문에, 선도의 체세는 과감히 밟아 들어간 앞으로 구부린 자세가 된다. 한편 후도는 약간 몸을 빼어서, 그 검선을 아슬아슬할 때까지의 간합을 알고, 다시 거기서부터 일보 밟아 들어가서 자신의 검선이 후도의 머리 위에 도달하는 간합을 알게 된다. 이에 따라서 선도는 앞으로 고꾸라지듯이 크게 체세를 무너뜨릴 정도로 밟아 들어가는 것에도 상관하지 않고, 후도는 이 정도로 크게 밟아 들어가지 않고도 후도의 ‘머리’를 치는 것이 가능하다는, 소위 <적보다 멀리, 나보다 가까이>라고 하는 간합의 묘미를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검도형 1본목은 <간합>의 공방을 가르치는 <검 리 형>이다 라고 생각함으로서, 서로 상단으로 겨누는 것, 선도가 오른발을 밟아 나가면서 앞으로 고꾸라지듯이 크게 발아래까지 베어 내리는 도법을 하는 것, 후도가 우상단이라고 하는 특수한 겨눔자세로부터 뒤로 물러나 빼고, 다시 앞으로 나와 선도의 ‘머리’를 베는 것 등등, 여러 가지 의문이나 모순에 대해서도 이론적인 설명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 2본목---정중선


마찬가지로 2본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검도형 2본목은, 선도가 중단의 겨눔자세로부터 후도의 ‘손목’을 베러 나오는 것에 대해서, 후도는 몸을 좌후방으로 움직여 이것을 피하고, 다시 전진하여 선도의 ‘손목’을 베고 있다. 여기서 최초의 선도의 동작을 엄밀히 <손목 베기의 기술>이라고 보는 경우, 선도는 신체를 왼쪽으로 움직여 밟아 들어가 후도의 코등이를 피하여 대각선으로부터 ‘손목’에 대해서 보다 직각 가까운 각도로 베는 방법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2본목의 형에서는, 선도는 곧바로 앞으로 나와, 후도의 도신에 아슬아슬하게 연하여 ‘손목’을 베러 나간다. 이래서는 술리상으로는 후도의 코등이에 맞추어 버리는 가능성이 높게 된다.


이것으로 보아, 선도의 동작은 반드시 <손목 베기의 칼솜씨>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 생각되어진다. 그렇다면, 선도는 어디를 베고 있는 것일까. 실은, 선도는 자신의 <정중선>을 베어 보이는 것이다.


<정중선>이라는 것은, 자신이 있는 위치, 향하고 있는 방향, 상대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전후좌우의 간합 등, 그 모든 기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가 있는 자세의 기준을 아는 것, 그리고 자기자신이 있는 기준을 알고 있는 것, 이것을 아는 것이 정말로 <적을 알고 나를 안다>는 것이 된다. 따라서, 검도형 2본목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선도의 ‘손목’치기에 대한 <손목 빼어 손목>이라고 하는 <기술>이 아니고, 검도의 이합이라고 해서 <간합>과 나란히 대단히 중요한 <정중선>에 관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스승의 선도는, ‘손목’치기라는 <기술>을 가지고, 실은 자신의 정중선을 베어 보인다. 제자인 후도는, 그 정중선 베기를 좌후방으로의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다시 후도 자신의 정중선을 바로 베러 나간다. 그 결과, 이것이 ‘손목’치기라는 <기술>이 되어 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도는 자신의 정중선을 베어 보임으로서, 후도에게 정중선의 위치와 중요함을 가르치고, 후도는 몸을 대각선으로 움직이는 것에 의해 1본목에서 배운 전후의 간합을 확인하고, 또 좌우의 확인을 안다. 또 상대의 정중선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에 몸을 (좌대각선 상에) 두면서 자신의 정중선 상으로부터 상대를 벗어나지 않게 하고, 그 정중선 상에서 기술을 사용한다고 하는 <정중선>을 기준으로 한 공방의 요체를 배운다.


◈ 3본목---중심


검도형 3본목은, 선도가 곧바로 명치를 찌르고 오는 것에 대해서, 후도는 좌수와 검선을 정중선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게 하면서, 소위 <약하게 하여 넣는다(나야시 이레)>라는 방법으로, 가슴품 깊숙이 유인하여 넣고 나서 곧바로 다시 찌른다.

이것도 선도와 후도에 따른 상호의 <찌름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검도에 있어서 <공세>의 근간이 되는 <중심>을 빼앗기의 중요성과 그 방법을 가르치는 <검 리 형>으로 볼 수 있다.


흔히 검도에서는 <중심 빼앗기가 중요>하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일족일도의 간합에서 서로 검선을 맞추고, 상대의 죽도를 옆에서부터 눌러 중심을 빼앗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검도형 3본목에서, 후도가 선도의 찌름을 약하게 할 때, 검선을 왼쪽으로 벗어나게 하여 옆으로부터 눌러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받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닐까. 즉, 검선으로 중심을 빼앗는다고 하는 동작으로 중요한 것은, 검선을 상하좌우로 움직여서, 상대의 검선을 누른다든지 턴다든지 하여 중심을 빼앗는 것이 아니고, 검선을 중심에 놓은 그대로, 곧바로 앞으로 공세해 나가는 것에 의해, 결과적으로 상대의 검선이 이쪽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버리게 하는 것이다. 이 <중심>을 빼앗는 공방의 기본원칙을 형으로 나타나게 하고 있는 것이 검도형 3본목이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상과 마찬가지로, <간합, 정중선, 중심 빼앗기가 검도의 공방에 있어서 기초적 이합이라고 해서 중요한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검도형 1-3본목이다고 이해하면, 상단이나 찌름 기술 등, 초등학생 중학생에서 금지되어 있는 기술이 들어있는 것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초심자부터 수련하는 것이 검도형이라는 것도 납득할 있는 것은 아닐까.



3. 검도형의 재고찰


전항에서, 일본검도형의 1-3본목은, 검도에 있어서의 기초적 이합인 <간합><정중선><중심>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단순히 이들 세가지를 가르치는 것뿐이라면, 무엇 때문에 일부러 어마어마한 검도형에 위탁하여 가르쳐 전달할 것까지 없고, 통상의 죽도 연습 가운데 기초연습이라고 해서 가르쳐 갈 수 있는 것이다.


실은, <일본검도형>의 모체가 되고 있는 <대일본제국검도형>이, 대정 초에, 아직 <무도>라고 하는 말이 일반화 되어 있지 않고, 현재의 검도도 <격검, 검술>등으로 불려지고 있던 시대에 제정되었다는 것에도 불구하고, <검술형>이 아니고, 굳이 <검도형>이라고 명명되고 있다. 이것은 왜 일까. 앞에서 기술한 검의 이합을 가르치는 <검 리 형>이라고 하는 성격은, 오히려 부가적인 것이고, 어쩌면 일본검도형은 그 이름 그대로 <검 도 형>이라고 해서 거기에 검의 <술리>를 초월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표현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도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하긴, 이 검도형이 제정 되어진 대정 시대에 있어서는 <인간이라고>하기 보다는 <대일본제국의 국민이라고> 말하는 관념이 강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현대에서 말하면 <일본 국민이라고> 말하는 것이 되지만, 지금의 감각으로 말하면, 오히려 <일본인이라고> 말하는 뉘앙스에 가깝다고 생각되어진다. 따라서, <대일본제국검도형>이라는 명칭은, 현재라면 <일본인의 검도형>이라는 의미인 것은 아닐까.


그럼, 이 <검도형>이 우리들 일본인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을 생각할 때인, 2001년 11월 25일에, 어떤 인연으로 해서 시즈오카의 검도범사 이노우에 요시히코 선생에게 눈에 띄게 되어 선생으로부터 검도형에 대한 귀중한 이야기를 들음과 동시에, 검도형을 직접 지도받게 되었다. 그 만남은 나로서는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 경험이야말로, 내가 진지하게 검도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하는 이노우에 요시히코 선생의 가르침을 밑바탕으로 해서, 거기에 미숙하지만 나나름의 고찰을 보탠 내용을 발표해 보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 검도형의 성립


일본검도형 <구대일본제국검도형> 제정의 경위를 보면, 1본목부터 3본목까지는 당시의 문부성이, 구제 중학교에 격검교육을 집어 넣을 때 제정된 것으로, 4본목 이하는 이것에 부가된 형태로, 당시의 무덕회가 제정했다고 한다. 즉, 명치 44년 당시의 중학교(구제)의 정과에 <격검>이 추가되어 그 지도목적과 지도방법을 통일하기 위하여, 동년 11월에 문부성 주최의 강습회가 열려서, 그 자리에서 제정되었다는 것이 <문부성제정형>의 3본이고, 그 후에 대일본무덕회가 거기에 4본목 이하를 추가하여, 대도 7본, 소도 3본의 계 10본이 된 것이, <대일본제국검도형>이라고 해서 대정 원년에 제정되고, 다시 소화56년(1981년)에 이것을 현대어로 다시 쓴 것이, 현재의 <일본검도형>이라고 하는 것이 된다.


이것을, 알기 쉽게 쓰면, <문부성제정형(대도 3본)> + <무덕회제정형(대도 4본, 소도 3본)>=<대일본제국검도형(대도 7본, 소도 3본)>이고, 이것의 현대어판이 <일본검도형>이다.


여기서, 이것을 쫓아서 우선 <일본검도형>의 1본목부터 3본목까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현재의 <일본검도형>의 1본목부터 3본목까지는, 명치 말기에 당시의 중학생에 대한 정과인 검도지도의 목적을 위해, 문부성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로부터 보면, 이 형의 지도대상은 당시의 일반 중학생이고, 결코 검도전문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문부성이 만들은 이상, 거기에는 무언가의 교육적 의의가 들어가 있다고 하는 것이 상상되어진다.


그럼, 당시의 문부성이 일반 중학교생에 대하여 요구한 교육적 의의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각류파의 검술형을 모은 것이라고 말해도, 적지 않은 수의 검도의 기본기 중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상호 상단에서부터의 머리 빼어 머리><상호 중단에서 손목 빼어 손목><상호 하단으로부터의 찌름 돌려 찌름>이라고 하는 고유의 기술의 <형>만을 가르친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중학생에게 가르치는 검도형의 1본목이 상호 상단일까.

실은, 여기에 이노우에 범사가 가르침을 준 것이지만, <정><인><용>이라고 하는 일본 고래로부터의 세가지의 가르침이 있다.


일본의 천황가에는,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황위 계승의 증거로, 3종의 신기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일본신화의 천손강림 시에, 천조대신으로부터 받은 세 개의 보물(신기)로, 팔지경, 팔척경구, 초체검의 3종이다. 그리고 이들 3종의 신기는 천황이 나라를 통치라는 데 있어 중요한 것, 즉 일본국의 통치이념이라 해서, 경(거울)은 <정(바를 정)>의 상징, 옥은 <인>의 상징, 검은 <용>의 상징이라고 한다. 지금에서도 <천손강림> 등의 이야기를 학교교육의 장에 가져간다면 일부로부터 비난을 받을지 모르지만, 당시 대일본제국헌법하의 국가원수로 있는 천황과, 그 천황에 의한 국가통치의 이념이, 학교교육에 있어서의 검술형의 이념으로 해서, 거기에 주입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다.


여기서, <문부성제정형> 3본은, 당시의 중학생(사족이지만, 당시의 중학생은 의무교육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진학률이 아직 낮은 시대이어서, 중학에 진학한 사람은 소위 일본의 장래를 지지하는 엘리트였던 것이다)에 대하여, 일본국가 통치의 이념인 <정><인><용>의 사고방식을 검술의 형을 빌려서 가르치고, 거기에 따라서 일본국민, 일본인으로서의 존재방식, 생활방식을 교육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 1본목 <정>


검도형 1본목에 있어서, 선도, 후도의 쌍방이 상단으로 겨누는 것은 <정>의 상징이다. 고래로부터 <싸움>은 <정의>와 <정의>의 부딪침이다. 자신이 <정의>를 주장하여 싸운다면, 상대도 상대나름의 <정의>를 주장하여 도전하는 것이다. 가면 라이다*는 <정의>이고 거기에 대한 쇽카**는 <악>이라고 말하는 것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검도의 시합 등에서 자신의 팀은 <정의>이지만, 상대의 팀은 <악>이라는 것은 없다. 싫은 쇽카라도 쇽카나름의 정의는 있는 것이다. 농민민족인 일본인으로서는 영토의 확장은 <정의의 행위>였다. 서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면, 이윽고 경계선에서의 부딪침이 생긴다. 여기서 이기면 이기는 쪽이 <정의>이고, 진 쪽은 영토를 잃는다. 이것이 <정의의 싸움>이다. (주 * **--사전에 안나오고 무슨 뜻인지 모르겠음)


<정의의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적을 알고, 나를 알고, 그 상호관계를 항상 알 필요가 있다. 이것을 1본목의 형은, 검술에 있어서의 <간합>의 확인과 <선선의 선>의 기위를 통하여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스승의 위치인 선도는, 후도가 서로의 <간합(관계)>를 끝까지 보는 관찰안과 상대의 동향을 놓지지 않고 항상 선수를 취하여 대처할 수 있는 <기위>가 충실한 것을 본다면, 이것을 <기회>라고 보고, 크게 밟아 들어가면서 후도의 양 주먹과 코등이를 함께 바로 정면 양단하는 칼날로 내려 베어, 결과적으로 선도의 검선이 도달하는 그 최대의 <간합>을 후도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후도는 선도의 치고 들어옴과 그 칼날을 순식간에, 그리고 아슬아슬할 정도로 피해서, 거기서부터 밟아 들어가 자신의 칼이 선도의 두개(머리)를 가르는 일족일도의 <간합>을 배운다. 항상 <선선의 선>의 기위와 정확한 <간합>을 끝까지 봄으로서, 적의 공격에 순식간에 대응하여 격퇴하고 <정의의 싸움>에 승리하는 순간이다.


두개가 갈라진 선도는, 술리상은 그 자리에서 넘어진다.

사람에 따라서는, 선도는 넘어지지 않고, 줄줄 피를 흘리면서도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는 것 같지만, 그런 상태로 있으면서, 선도가 타돌 직후의 검선을 내리고 약간 앞으로 숙어지는 자세를 가진채 일보, 이보 물러나는 것은, 약간 부자연스럽다. 아직 절명하지 않고 반격을 위해서 뒤로 물러난다고 말한다면, 우선은 검선을 올리고 몸을 일으키는 것이 자연스런 것은 아닐까.


거기서 나는, 선도가 후도에게 맞은 후에, 그대로의 자세로 작게 1보 물러나가는 것은, 베어진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고 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의 <형으로의 행위>는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흔히 칼싸움 연극에서 베어지는 역이 주인공에 의해 베어지면, 그 베어진 그대로의 자세로 뒤로 물러나면서 무대의 끝으로 사라져 버린다고 하는 광경을 보는 일이 있다. 연극의 이야기 상에는 베어진 자는 그 자리에서 넘어지는 것이지만, 그래서는 베어진 사람이 무대의 가운데 여기저기 있는 것이 되어, 다음 연극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베어진 동시에 무대의 끝으로 물러나는 것이다. 관객은 베어진 역이 무대의 끝을 피했다는 것이 아니고 베어진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해석하여 연극을 보고 있다. 이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두개가 갈라진 선도는 그 자리에서 넘어지지만, 그것을 형으로서는 베어진 그대로의 자세로 1보 물러난다고 하는 행위로 표현한다. 그러나, 넘어졌다는 것만으로 절명한 것인가 어떤 것인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아직 숨이 남아 있어 반격해 올지도 모른다. 거기서 후도는 넘어진 선도에게 검선을 붙여서 <방심이 없는 잔심>을 나타낸다. 본래대로라면 넘어진 선도에게 검선을 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검선을 하단으로 붙이는 것이지만, 형으로는 선도가 서 있는 그대로 1보 물러나는 것이므로, 그 안면에 검선을 붙이는 것에 의해, 이 <방심이 없는 잔심>을 표현한다. 즉 <형 상>으로는 안면에 향하여 조금 검선을 내리는 것뿐이지만, <술리상>으로는, 넘어진 선도에게 방심없는 검선을 붙이는 마음 가짐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도는 여기서부터 다시 더 1보, 그대로의 자세를 가진 채 뒤로 물러난다. 이것은 선도의 절명, 소위 <사>를 표현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선도의 죽음을 확인한다면, 더 반격당할 무서움은 없다. 거기서 후도는 상단으로 휘둘러 올린다.


이 상단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선도는 이미 죽어 있으므로 반격에 대한 준비의 잔심은 없는 것이다. 또 설사 <준비>라면 하단으로 붙이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이것은 <정의의 싸움>에 확실히 이긴 것을 표현하고, 그리고 자신의 정의를 다시 확인하기 위하여, 소위 <승리의 이름 대기>의 자세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노우에 범사는 <단순한 승리의 이름 대기는 아니다>라고 가르쳐 주었다. <설사 정의의 싸움이었다 해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악행이다. 인간이라면 정의를 위해서라고 말하지 않고, 어쩔수 없는 살인을 범했다는 것에 따르는 참회의 기분이 반드시 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후도가 최후로 상단을 취하는 것은, <<참회>>의 기분과, 빼앗은 생명을 하늘로 돌려 보내는 <기도>의 기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가르쳐 준 것이다. 그리고 이 <참회>의 기분이 있으므로야말로 2본목의 이념에 연결되어 간다는 것이다.


확실히, 일반 사회에 있어서도 <정의>를 계속해서 주장하는 것은, 때로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나 자신도 사소한 정의를 주장하는 것에 의해, 결과적으로 상처를 주지 않아도 좋을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 버린다든지, 그에 따라서 나의 편이 될 사람을 적으로 돌려 버린다든지 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이상, 결코 정의만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하는 반성을 넣어서, 검도형 2본목의 고찰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 2본목 <인>


검도형 2본목의 중단의 겨눔자세는 <인>의 상징이다. <인>이라는 것은, 타인을 귀중하게 하는 기분, 소위 자비인애의 마음이다. 1본목이 서로 정의를 주장하여, 승리야말로 유일의 것이라고 <싸움>의 자세로 임하는 것에 대하여, 2본목의 중단 겨눔자세는, 1본목에서 배운 <간합>을 중요시 하고, 상대와의 상호관계를 다시 중시한 공방일치의 겨눔자세이다. 스스로 나아가 싸움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싶은 기분이 겨눔자세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결코 <막는다>나 <피한다>고 하는 기분은 아니다. 겨눔자세는 조용하다 하더라도 마음은 항상 싸움터에 있고, 항상 상대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 일어난다면, 곧바로 기선을 제하여 적을 격파하는 <선선의 선>의 기위이다. <물에 떠있는 물새의 몸은 겨눔자세로 발은 마음이다> 이 중단의 겨눔자세가, 검도의 언제나의 겨눔자세, 기본의 자세로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스승의 위치인 선도는, 후도의 이 중단 겨눔자세와 기위가 충실한 순간을 잘 보고, 그것을 <기회>로 보고, 후도의 ‘손목’을 베러 나간다. <인>의 이념을 가진 2본목의 기술에는, 1본목같은 살인의 칼날은 없다. 후도가 미숙하면 팔 하나를 베에 떨어뜨린다는 칼솜씨이다. 따라서, 1본목 같은 아래까지 베어내리는 <베어내리기>의 도법은 아니고, 팔을 베어 떨어뜨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는 <상처내기>의 도법이 된다.


후도는, <왼발부터 오른발을 데리고 좌 대각선 뒤로 물러난다>고 하는 동작에 의해, 선도의 치고 들어오기를 피한다. 1본목처럼, 힘과 힘이 바로 정면으로부터 맞부딪치는 듯한 싸움으로는, 힘이 이기는 쪽이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승리를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정중선을 보지한 그대로 상대의 정중선을 벗어난 위치에 선다면, 이 시점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서는 것이 가능하다. 이 몸의 운용이, 무술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정중선을 이용한 몸 운용에 의해, 상대보다 우위에 선다면, 거기에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1본목에서 생긴 <참회>의 기분이, 마음의 여유에 동반하여 <자비인애>의 마음이 되어 소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의 이념이다.


일반적인 기본기에서는 <손목 빼어 머리>가 당연한 것인데 대하여, 검도형 2본목이 <손목 빼어 손목>이 되는 것은, 거기에 <인>의 이념, 자비인애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머리’를 베어, 1본목과 같이 상대를 베어 죽일 수 있는 체세를 만들면서도, ‘머리’를 베지 않고 ‘손목’을 베어 떨어뜨리는 것만으로 승부를 마친다. 즉, 1본목에서는 적의 <목숨>을 빼앗아서 승리하지만, 2본목에서는 <목숨>까지 빼앗지 않고, 그 전투력을 빼앗는 것만으로 승리한다. 상대는 죽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손목을 베인 체세 그대로 <방심없는 잔심>을 나타낸다. 검선을 안면에 붙인다든지 상단으로 휘둘러 올린다든지 하는 쓸데없는 동작을 필요하지 않다.


이노우에 범사로부터는, 1본목이 <싸움에 승리하기 위한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형이라고 한다면, 이 2본목은 <기술로부터 검도 본래의 길로 나아간다>는 그 입구를 가르치고 있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기술로부터 길(도)로, 검도의 수행은, 이 2본목의 형의 수련을 통해서, 검도 본래가 지향하는 <도>에로 향한 3본목의 수행에로 들어간다.


◈ 3본목 <용>


검도형 3본목, 하단의 겨눔자세는 <용>의 상징이다. <용>이라고 하는 것은, 기력이 몸 가운데 가득찬 상태로서, 무엇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겁먹지 않고 나아가는 강한 마음이다. 그러나 그 <강한 마음>을 겉으로 나타내 버리면, 그것은 단지 만용이 되어 버린다. 진정한 용 <대용>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냉정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부동의 마음>이다.

하단의 겨눔자세는 <겨눔이 있고 겨눔이 없다> 소위 <유구무구(얽을 구)>의 겨눔자세이다. <싸운다>든가 <싸우지 않는다>든가, <이긴다>든가 <진다>든가. 이러한 것에 일체 잡히지 않는, <무심의 겨눔자세><자연의 겨눔자세>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용>의 마음은 전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부동심>이다. 그러나, 마음이 정지해 있는 <지심>은 아니다. 상대의 마음의 움직임을 적확히 잡아, 각일각 변화하는 주위의 정세에 대해서, 순식간에, 그러나 조용히 결코 당황한다든지 달린다든지 하는 일 없이 자연히 대처하여 가는 <무심>의 마음이다.


간합에 접한 선도는, 후도의 <부동심>을 시험해보려고, 검선을 조용히 올린다. 후도는 이에 자연히 반응하여, 후도의 동작에 찰싹 붙어 추종한다.


조금 여담이 되지만, 검도형을 가르치는데, 선도는 스승의 위치, 후도는 제자의 위치라고 하여서, 선도의 동작이 먼저, 후도의 동작이 뒤라고 흔히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후도는 약간 늦게......>라고 하는 표현을 가지고, 선도와 후도의 동작에 시간차를 가지도록 지도하는 선생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것은 아닐까. <후도가 뒤>라고 하는 것은, 후도가 선도에 앞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선도보다 늦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생각한다. 후도의 동작이 선도의 동작보다 늦는다면, 물리적으로 말해서, 후도가 선도가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후도가 뒤>라는 것은 마치 물체본체와 그 그림자 같은 관계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피터팬의 만화 애니메이션이 아닌 한, 그림자는 결코 본체보다 앞서 움직이는 일은 없다. 선도의 동작에, 마치 그림자처럼 추수하여 대처한다. 휘둘러 털더라도 결코 늦는 일 없이 찰싹 붙어 가는 것이다. 이런 상태야말로, 그것이 <후도의 공세>라고 해서 살아 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이야기를 본래대로 돌아가 보자.

중단까지 검선을 올려온 선도는, 후도의 마음이 전혀 움직이는 일 없이 자연히 추종해 오는 것을 간파한 이상, 그것을 <기회>라고 보아, 후도의 그 <부동의 마음>을 곧바로 찌른다. 여기서 후도의 마음이 움직여져, 쓸데없는 동작을 보이면 후도의 미숙이다. 그러나, 후도는 전혀 움직이는 일 없이, 선도의 검선이 도달하는 간합을 적확히 간파하여, 스스로의 정중선을 확실히 계속 지키면서, 가볍게 들어온 찌름을 약하게 함과 동시에, 후도의 마음을 다시 찌른다.

후도의 마음을 움직일 요량으로 찌른 선도의 마음이 역으로 움직여져, 선도는 좌우 자연체의 겨눔자세로 간신히 후도의 검선을 계속 막고 뒤로 물러난다. 그러나 후도의 마음과 검선은 전적으로 부동 그대로 선도의 마음과 중심을 계속 공격한다.


정신적인 압도(쿠라이 즈메)로 공세를 당해서, 얼굴의 중심에 찰싹 붙게 검선이 붙여진 선도는 완전한 패배다. 본인뿐만 아니라, 누가 보아도 완벽한 후도의 승리다. 그러나, 선도의 몸은 어디에도 상처를 받지 않고 있다.


다시 여담이지만, 여기서 검도형의 공방을 검도의 시합에 견주어 보자. 만약 검도형을 심판한 경우, 1본목이라면 망설일 것도 없이 후도의 <머리>에 기가 올라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2본목도 후도의 <손목>에 기가 올라간다. 그럼, 3본목의 경우는 어떨까. 후도의 기술에 기를 올리는 것이 가능할까. 3본목에서는 확실히 후도가 이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검도경기의 룰에서는 기를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노우에 범사는, 여기가 스포츠 경기라고 하는 검도와 무도라고 하는 검도의 경계이고, 이 검도형 3본목의 수행에 의해 <술>로부터 <도>에 이르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최근, 검도의 올림픽화가 의론되고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올림픽 격투종목처럼, 만약 검도의 승패를 포인트제로 해서, 그 기준을 스포츠적인 관점에서 만든다면, 검도형 1본목 같이 확실히 상대를 숨을 끝내주게 하는 강렬한 <머리>치기에 대해서는 5포인트를 주고, 2본목처럼 ‘손목’을 치는 것만으로 아직 상대가 완전히 숨이 끊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는 2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3본목처럼 상대를 추격해 들어가 물러나게 하는 것은 가능해도, 상대의 어디에도 검이 닿지 않은 상황에서는 0포인트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의 무도적 감각으로서는, 1본목처럼 상대의 목숨을 뺏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것은, 아직 미숙하므로 1포인트가 되고, 2본목처럼, 상대에게 상처를 주어도 , 목숨까지 빼앗은 것은 아닌 경우에는 3포인트, 3본목처럼, 상대를 일체 상처를 입히는 일 없이 승리하는 것이 최고의 5포인트라고 하는 판정이 된다.

현시점에서, 검도의 올림픽화에 대해서는 굳이 찬부를 말하지 않지만, 설사 올림픽화가 된는 경우에는, 이 차이점을 세계에 어떻게 이해시킬 것일까, 그리고 승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에 이 차이점을 어떻게 반영할까가 어려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시 본제에 돌아가지만, 이처럼 검도수행의 최종목표가 검도형 3본목에 있다고 하면, 이것은 적을 죽이지 않고 상처도 입히지 않고 이기는 경지를 목표로 하는 것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적을 <살려서> 이기는 것이 되고, 다시 바꾸어 말하면 <상대의 몸을 멸하지 않고 살려서> 이기는 경지를 목표로 하는, 소위 <활인검>의 사상에 연결이 된다.

많은 무도나 무술이라고 불리는 것이, 어느 쪽이냐 하면, <적을 제압하여 내 몸을 보호한다>고 하는 <호신술>이라고 하는 의미를 강하게 하면서 현대에 계속 받아 들이고 있는데 대하여, 검도의 경우에는, 일본도라고 하는 사람을 살상하기 위한 무기를 취급하면서, <내 몸을 걸고, 목숨을 걸고의 수행>의 끝에 있는 것은 <내 몸이 아니고, 적의 몸을 보호한다>고 하는 곳에 도달한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이상과 마찬가지로, 대일본제국헌법 하에서, 당시의 중학생 교육을 위해서 작성되어진 <문부성제정형> 3본은 대일본제국의 국민이라기 보다는, 무사라고 하는데 있어서 당연히 있어야 할 자세, 목표를 지향하는 경지를 가르쳐 주었다. 대단히 숭고한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역사의 흐름은, 이 검도형에 담겨진 <숭고한 정신>이 없는 듯이 해서, 검도를 단순히 전쟁에의 도구로 이용해 버리고 있다.

후년, 나카야마 학쿠도 선생이 <검도형이 올바르게 전해지고 있지 않다. 지금의 검도는 형의 마음이 없는 형없기 다>라고 말하며 탄식한 것은, 이러한 것에도 원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4. 4본목 이하의 고찰


전호에서는, 일본검도형 1본목부터 3본목까지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검도해설서와는 조금 틀린 시점에서 다시 보았다. 금회는, 계속해서 4본목 이하에 대해서 고찰해 보기로 한다.


검도형 제정의 경위를 보면, 전호에서도 말한대로, 1본목부터 3본목까지는, 명치 44년에 문부성이 구제 중학교에 격검교육을 집어 넣을 때 개최한 강습회용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4본목 이하는 문부성과는 별도로, 당시의 무덕회가 제정했다는 것이다. 제정 시의 원문을 읽어보면, 1~3본목이, 겨눔자세를 상단, 중단, 하단이라는 호칭으로 통일하고 있는 것에 비하여, 4본목 이하에는 <청안>이라는 말도 등장하기 때문에, 이들 형은, 문부성 제정형의 3본을 졸업한, 보다 상급자용으로 편찬되어진 것이라 생각할 수있다.


◈ 음양오행설


검도형 1본목부터 3본목까지와 비교해서, 4본목 이하의 특징적인 것은, 그 <겨눔자세>이다. 1본목~3본목은, 선도와 후도 쌍방이 원칙적으로 같은 겨눔자세인데 비하여, 4~6본목은, 각각이 별도의 겨눔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먼저 이 <겨눔자세>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검도형 큰 칼 일곱 본의 형에 이용되고 있는 겨눔자세는 크게 나누어서 다섯 가지가 있고, 그들의 겨눔자세는 <음양오행설>이라고 하는 일정의 법칙에 따르고 있다고 한다. 음양오행설이라는 것은, 사물을 음과 양의 두가지 면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방법이다. 즉,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음과 양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라 한다. 예를 들어, 주간의 양초의 빛은 음이지만, 어둠 속의 양초는 양이 된다.

이 음양의 생각을 검도의 겨눔자세에 가지고 갈 때, 일반적으로는 상단이 양, 하단이 음이라고 생각되어지지만, 음양설에서는 통상, 하방으로 향하는 운동을 <음>이라 하고, 상방으로 향하는 운동을 <양>이라 하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로 향하여 공세해 내리는 겨눔자세의 상단이 음이 되고, 아래에서부터 위로 공세해 올라가는 겨눔자세의 하단이 양이 된다. 그런데, 우선은 이 음양설에 따라서 4~6본목의 겨눔자세를 보자.


○ 4본목, 선도가 팔상(핫소)으로 겨누고 있는 것은 <음>의 겨눔자세이다. 그런데 후도는 팔상에 대해 <양>의 겨눔자세라고 하는 협(와키)의 겨눔자세로 대응하고 있다.


○ 5본목, 선도가 상단의 <음>의 겨눔으로 향하여 오므로, 후도는 이것을 아래에서부터 맞아 치는 <양>의 겨눔자세가 되는 중단으로 대응하고 있다


○ 6본목, 선도는 청안(중단보다 약간 검선이 높고 양 눈의 사이를 겨눈다고 생각한다)으로 겨누고 있기 때문에, 후도는 이것을 <음>으로 판단하여, <양>의 겨눔자세가 되는 하단으로 겨누어, 아래로부터 공세해 올라간다. 선도는, 후도의 공세에 참지 못하고, 다시 <음>의 겨눔자세, 상단으로 변화한다. 거기서 후도는 상단에 대응하는 <양>의 겨눔자세가 되는 중단으로 변화시킨다.


이상이, 음양설에 기초한 겨눔자세의 사고방식이지만, 여기에 오행설의 생각이 조합되는 것이다. 오행설이라는 것은, 아시는 사람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의 점장이 등에서 흔히 나오는 말로써, 흔히 정월 경에 책방에서 태어난 해에 따른 일년간의 점을 치는 책을 사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사상을, 목, 화, 토, 금, 수의 다섯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는 방법이다.

오행설에 검도의 겨눔자세를 대응해보는 생각방식은, 유파에 따라서 여러가지로 다르지만, 금일 일반적으로 생각되어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상단.......화의 겨눔자세

중단.......수의 겨눔자세

하단.......토의 겨눔자세

팔상.......목의 겨눔자세

협 .......금의 겨눔자세


또, 오행설에는 오행상극설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화에 대하여서는 그것을 끄는 수가 강하고, 수에 대해서는 그것을 흡수하는 토가 강하고, 토에 대해서는 그 토에 서있는 목이 강하고, 목에 대해서는 그것을 균열시키는 금이 강하고, 금에 대해서는 그것은 녹이는 화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오행상극설의 사고방식에 4본목~6본목의 겨눔자세를 대입해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 4본목, 선도가 <목>의 겨눔자세인 <팔상>을 취하기 때문에, 후도는 <금>의 겨눔자세인 <협>으로 응한다.


○ 5본목, 선도가 <화>의 겨눔자세인 <상단>을 취하기 때문에, 후도는 <수>의 겨눔자세인 <중단>으로 응한다.


○ 6본목, 선도가 <수>의 겨눔자세인 <중단>을 취하기 때문에, 후도는 <토>의 겨눔자세인 <하단>으로 응하고, 선도가 <화>의 겨눔자세인 상단으로 전환하므로, 후도는 <수>의 겨눔자세인 <중단>으로 변화한다.


이상이, 검도형 4~6본목에 대한, <겨눔자세>에 대한 생각방식이 된다.


◈ 4본목---상호머리(아이 멘)


검도형 4본목은, 선도는 팔상의 겨눔자세, 후도는 협의 겨눔자세로 서로 걸어서 다가간다. 여기서 양자의 겨눔자세는, 앞에서 말한 음양오행설에 따른 다섯가지 겨눔자세 중에서, 나머지 두 개의 겨눔자세를 소개하고 있다. 즉, 1본목부터 3본목까지에 있어서, 이미 상단, 중단, 하단이라고 하는 세가지의 겨눔자세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4본목에서는 나머지 두 가지의 겨눔자세인 <팔상>과 <협>을 소개하고 있다.

거기에, 4본목의 형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검도수련상 가장 중요한 <상호 머리>의 연습의 중요성이다.


현대검도에서는, 죽도의 <격자부위(모노우치)>로 상대의 머리를 두드리고 있기 때문에, 검도의 <멘 우치(얼굴치기)>라는 것은 진검으로 적의 두개(skull)를 바로 둘로 가르는 기술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본래의 <얼굴치기>라는 것은 진검의 칼끝으로 적의 미간, 즉 안면을 치는 것이다. (*우리나라 말로는 ‘머리’치기라고 하고 있으나 일본말은 직역하면 ‘얼굴’치기(멘 우치)임. 따라서 여기서는 일본말의 ‘얼굴’치기를 우리나라 관습대로 ‘머리’치기로 번역하였음). 단지 연습의 단계에서 안면을 칼끝으로 치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전이 되면 몸이 오그라들어 도달하지 않게 되기 쉽기 때문에 연습의 때에는, 실제의 진검보다도 약간 긴 죽도를 이용함으로써, 보다 먼 간합(거리)로부터 상대의 뒤까지 뛰어서 나갈 정도의 기세를 갖고 뛰어들어 치고, 그리고 죽도가 긴 만큼, 상대의 안면이 아니고 멀리에 있는 두정부를 치는 훈련에로 발전했다고 생각되어진다. 따라서 검도에서는 <아타마!(머리)>가 아니고 <멘!(얼굴)>이라고 발성하는 것이다.

실전에 있어서는, 적의 체세가 무너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가사베기(중의 옷이 어깨에서 허리로 걸친 것 모양대로 베는 것)로 숨을 끊어놓는 간합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은 첫칼의 안면공격으로 적의 체세를 무너뜨리고, 계속해서 제 2의 칼에 의해 가사베기로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 theory가 된다. 이 첫칼로 적의 체세를 무너뜨리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죽도를 이용한 치고 들어가기 연습(우치코미 케이코)이고, 현대검도는 여기서부터 발전해 왔다고 생각되어진다.

인간은 안면을 공격당하면, 설사 그 공격이 맞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무심결에 눈을 감는다든지, 혹은 손잡이를 올려서 방어하려고 하는 반사행동을 취하기 쉽다. 이것이 한 순간의 체세의 무너짐에 연결되는 것이다. 이때 공격하는 측의 체세가 무너져 있지 않으면, 거기서 제 2의 칼로 적의 숨통을 끊어놓는 가능성이 생긴다. 즉 첫칼의 공격부위는 안면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므로, 검도의 기본이 <멘 우치(=얼굴치기=머리치기)> 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 때문에, <계속해서 제 2의 칼로 확실히 숨통을 끊어놓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고 판단되어지는 타돌이 인정되어지는 때가, 검도에서 <유효타돌>이라고 하는 것이고, 이때에 직접적으로 제 2의 칼로 연결되어지는 체세나 마음의 겨눔자세(코코로 카마에)가 <잔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평화로운 현대에 있어서는, 굳이 적을 가사베기로 숨통을 끊어놓을 필요는 없다. 따라서 지금의 검도의 룰으로는, 잔심을 확실히 취하고 있으면, 그 시점에서 한판이라고 해서 승부가 되는 것이다.


한편, 실전에서는 나만이 아니고 적도 이쪽의 체세를 무너뜨리려고 해서, 이쪽의 안면을 노리고 치러 온다. 이것에 대해서 자기자신이 체세를 무너뜨리고 피하려고 한다면, 그 틈에 가사베기로 잘려버리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적의 안면 공격에 대하여 결코 겁먹지 않고, 이쪽도 안면공격을 거는 훈련을 쌓을 필요가 있다. 이것이 검도에 있어서 <아이 멘(=상호 얼굴=상호 머리)>의 연습이다. 따라서, 검도의 연습은 서로의 안면공격, 즉 <상호 머리>의 연습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을 검도형 4본목은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검도형 4본목의 연습 때 <팔상, 핫소>과 <협, 와키>는 서로 상대의 검의 길이를 알 수 없는 겨눔자세이기 때문에, 선도, 후도는 공히 이것을 경계하여 쌍방이 작게 걸어서, 원간으로부터 검을 치러 나와 머리 위에서 칼날을 맞부딪쳐 접전한다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설사 적의 칼의 길이를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검의 길이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검이 도달하지 못하는 간합(마아이)으로부터 치러 나가는 행위는 쓸데없는 타격일 뿐 대단히 위험한 행위이다. 그야말로 상대의 검이 자신의 검보다 길다면, 자신은 헛 휘둘러서 상대의 검에 맞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4본목은, 일족일도의 간합으로부터 선도가 후도의 안면을 노려서 벤다. 즉 칼끝으로 상대의 미간을 베는 칼 솜씨로 확실히 안면을 타돌하지 않으면 안된다. 후도는, 그 안면 공격에 대하여 자신의 체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1본목에서 배운 가르침을 살려서 <간합>을 끝까지 보고, 동시에 2본목에서 배운 <정중선>을 지키고, 자신도 선도의 안면을 공격한다. 이것이 <상호 머리>의 연습이다. 물론, 초심자에 있어서는 안정성을 고려하여 어는 정도의 간합을 취해서 치도록 지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숙달 되어지면 상대의 치러 들어오기를 종이 한 겹으로 끝까지 보는 기술을 이 4본목의 형을 통해서 체득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서로 정중선을 지키고, 안면으로 치러 들어간 칼은 거의 얼굴의 높이에서 칼날이 맞부딪쳐 접전하고, 코등이와 코등이가 싸울 정도로 깊게 교차하여, 도신의 호(시노기)와 호를 깍듯이 하면서 정중선을 서로 쟁탈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대로는 다음의 공격으로 이행되지 않기 때문에, 선도는 중단이 되면서 주의 깊게 몸을 빼어 간합을 취하려고 한다. 이 호흡은, 죽도검도에 있어서 코등이 싸움에서부터 헤어질 때의 호흡과도 공통된 것이라 생각한다.

쌍방이 호를 깍는 싸움으로부터 선도는 몸을 빼어 현황타개를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하여, 후도는 3본목의 가르침에 따라서 일보도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몸을 넣어서 중심을 공세하여 취하려고 하는 기미를 보인다. 이 때문에 선도는 한번은 빼어 간합을 취한 몸을 다시 앞으로 내어 대항하여, 후도의 검을 감아 누르고, 스쳐 넣듯이 하면서 돌려 찔러서 중심을 되찾으려고 한다. 그 순간을 후도는 놓치지 않는다. 재빨리 몸을 움직여 되돌려 감았기 때문에, 선도는 후도의 오른쪽 폐를 찌르는 듯한 모양으로, 전방으로 신체를 나아가게 하고, 후도는 그 머리를 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이처럼, 검도형 1본목~3본목에서 배운 <간합><정중선><중심공세>라고 하는 검도의 기초적인 이합을 기초로 해서 <상호 머리>의 연습법과 도신의 호의 활용법, 또 검도에 있어서 원칙이라고 해서 결코 물러나지 않고 나아간다고 하는 마음자세(코코로 카마에)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 이 4본목의 형이라고 할 수 있다.



◈ 5본목---응하는 기술


검도형 5본목은, 좌상단으로 겨눔자세인 선도에 대하여, 후도는 검선을 선도의 왼주먹에 겨누는 중단(평정안)의 겨눔자세로 응한다.

문부성이 제정한 1본목부터 3본목까지의 형태가 <정><인><용>의 이념을 기초로, 검도수련의 목표로 하여 거기에 따라 더듬어 찾아 가는 인간적인 경지를 단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무덕회가 정한 4본목 이하의 형은, 숙달도에 따른 구체적인 검의 수련 방법과 습득해야만 하는 기술상의 목표를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5본목의 형은, 4본목에 있어서 <상호 머리>의 수련을 경과한 결과로서, 그다음 단계가 되는 후의 선에 따르는 <응하는 기술>의 가르침이다.


먼저도 말한대로, 검도의 수련은 첫칼에 따라 서로 상대의 안면을 공격하는 <상호 머리>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이 수련을 통해서 <버린다>고 하는 대단히 중요한 정신성을 배운다. 즉, 상대에게 맞는다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실전이라면 죽음을 두려워 않는다는 것이 된다) 모든 것을 버려서 <첫칼의 일격>이라는 훈련을 쌓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정신성, 죽음을 걸고 전력으로 사태에 맞서는 정신성을 기르고, 최종적으로는 <죽는 것을 발견한다>고 하는 <무사 정신>에로 승화되어지는 것이지만, 기술적으로는 <상호 머리>의 연습을 통해서 <타돌의 기회를 확실히 잡는 방법>과 동시에 <끝까지 보기(미키리)>를 수득해 가는 것이다.

<상호 머리>의 연습을 통해서 타돌의 기회와 <끝까지 보기>의 기술을 충분히 수득하면, 검도의 수련은 다음의 단계로 나아간다. 즉, 상대의 첫칼의 안면 공격을, 이쪽이 올바르게 끝까지 보고 체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피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다음의 순간에는 그것을 상대의 체세가 무너졌다고 해서, 이쪽의 <제 2의 칼>(기술로는 이쪽으로서는 최초의 일격일지 모르지만, 국면으로서는 대처해서 친다고 하는 것으로 제 2의 칼이라 생각되어진다)로 숨통을 끊어 놓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돌려치기 기술이라든지, 스쳐올리기 기술 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후의 선의 <응하는 기술>이다.


선도는, 상단의 겨눔자세로부터 4본목의 때와 똑같이 후도의 안면을 노리고 벤다. 후도는 4본목으로부터 배운 <끝까지 보기>의 기술을 가지고, 선도의 밟아들어 오는 것을 피하고, 동시에 역시 4본목에서 배운 도신의 <호>를 충분히 활용하여, 이 치고 들어옴을 스쳐 올려, 역으로 선도의 머리 위로 베러 들어간다.


여담이지만, <타돌의 기회>나 <끝까지 보기(미키리)>를 충분히 수득하지 않은 단계에서, 안이하게 받아서 돌리는 <응하는 기술>로 대처해 버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내 몸을 지키고 치려고 하는 <도망가는> 기분으로 연결되어 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지도자에 따라서는, 초심자가 <응하는 기술>만 사용하는 것과, 상위자에 대하여 내가 치지 않고 상대의 타돌을 기다리는 타돌, 소위 <기다리는 검>이 되는 것을 엄격히 경계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검도는 단순히 <스포츠 경기>라고 해서, 일정한 룰을 기초로 포인트를 경쟁하여 승패를 결정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각각의 레벨에 따르는 <응하는 기술>을 몸에 익히는 것도 중요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그 기술은 그 레벨의 상대밖에 통용되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역으로 기술을 기억하고 있는 단계에서, 검도의 기술로 대단히 중요한 <기회를 잡는 방법>이나 <끝까지 보기>의 수득이 소홀히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면, 이것은 황송한 이야기다. 흔히 아이들일 때 시합에 강한 아이가 나중에 커서 뻗어나가지 못하고, 혹은 고생한다고 하는 이야기가 많은 것은, 이러한 요인이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따라서 실제의 검도 지도에 있어서, 검도형 4본목부터 5본목의 술리에 이행해 가는 단계에서의 지도자가 달성해야 할 역할과 책임은 대단히 크다고 생각한다.



◈ 6본목---공세(공격겨눔, 세메)


검도형 6본목은, 5본목에 있어서의 <응하는 기술>의 이합을 밟은 위에서, 검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메>의 가르침에 들어간다.


검도형 5본목의 수련을 통해서 <응하는 기술>로 확실히 대처할 수 있게 된다면, 상대의 공격이 두렵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쪽의 <마음>과 <겨눔자세>에 많은 여유가 생겨나고, 그것이 상대에 대한 <세메>가 되어 살아난다. 여기서, 이 <세메>를 <형으로 나타나지 않는 첫칼>로 해서 활용하는 것에 따라, 이번에는 상대의 체세만이 아니라, 그 <겨눔자세>나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6본목은, 선도는 중단으로 겨눔자세, 후도는 하단으로 겨눔자세를 취한다. 여기서, 검도형 전반에 있어서, 선도가 시동하고 후도는 이에 따라가는데, 이 6본목에서는 선도가 중단 그대로 움직이지 않으므로 후도가 먼저 움직이는 하단의 자세를 취하는 것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이것은 음양오행설에 기초를 둔 겨눔자세의 곳에서도 설명했듯이, 선도의 중단의 자세를 <음의 겨눔자세>로 보고, 후도는 그것에 대응하는 <양의 겨눔자세>로 해석하는 것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실은, 현재의 검도형 해설서에서는, 선도의 겨눔자세는 <중단>이 되지만, 무덕회 제정 시의 원문에서는 <청안>이라고 하는 표현으로 되어있다. 청안이라는 것은 양안 사이에 검선을 겨누는 겨눔자세라고 하기 때문에, 현행의 중단의 겨눔자세보다는 약간 검선이 높게된 겨눔자세라고 생각되어진다. 즉, 6본목의 겨눔자세를 제정시로 돌아가서 엄밀히 생각해 보면, 선도는 중단의 겨눔자세로부터 검선을 약간 올려서<청안>의 겨눔자세가 되기 때문에, 후도는 이것에 대응하여 검선을 내린 하단의 겨눔자세를 취한 것이 된다. 때때로 검도형의 연무의 장소에서, 선도가 후도의 하단 겨눔자세가 되는 것에 응하여 조금 검선을 내리는 움직임을 보게 되는 일이 있지만, 앞에서 기술한 이합을 안다면, 이 움직임이 틀렸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도 중단, 후도 하단으로 간합에 접하여, 선도가 공세하여 들어온 순간을, 후도는 하단으로부터 기로 공세하여 올리면서 간다. 선도는, 후도의 이 기 세메를 위에서부터 제압하려고 하지만, 후도의 세메의 기력이 예리하기 때문에 제압할 수 없게 되어, 오른발을 빼어 간합을 벗어나면서 상단으로 휘둘러 올려 <겨눔자세>를 변경시킨다.

여기서 후도가 최초의 기 세메 그대로 치러 나오면, 선도는 <기다렸습니다>라는 것만이 되어 상단으로부터의 기술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후도는 일기에 간합을 좁힘과 동시에 평정안으로 겨누어, 5본목과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 선도의 상단으로부터의 기술을 봉쇄해 버린다. <기>의 공세 싸움에 지고, 다시 상단으로부터의 <기술>까지 봉쇄 당해 버린 선도는, 다시 왼발을 빼면서 중단으로 돌아와 후도를 유인해 끌어 들이려 한다. 여기서 theory대로 후도가 추격해 들어가서 머리로 뛰어들면, 그 나오는 순간을 손목으로 베어 버리지만, 후도는 어디까지나 냉정히 세메하여, 그 세메에 반응하여 예리하게 나오는 손목을 베러 나온 선도의 <검>을 <옳다 됐다>고 하여 5본목에서 배운 호(시노기)를 이용한 스쳐 올리기 기술로 돌려 응하여, 역으로 손목을 치러간다.

이것이 <기를 죽이고><기술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검을 죽이고> 이긴다고 하는 삼살법의 가르침이다.

(주: 기를 죽인다: 후도가 하단으로부터 세메하여 선도는 기에 져서 상단이 된다

기술을 죽인다: 선도의 상단에 대해 후도는 평정안으로 겨누어 선도의 기술이 못나오게

한다

검을 죽인다: 손목치러 나온 선도의 검을 스쳐 올려 손목을 벤다)


조금 사족이지만, 전일본 선수권에서 연패를 계속하고 있을 때의 미야자키 마사히로 선수가 때때로 보여준 기술로, 상대가 조금 물러난 순간을, 쓰윽 추격해 들어가 2회 정도 죽도를 누르면서 머리를 치는 전법이 있다. 보고 있으면 <왜 상대는 저 ‘머리’를 피하지 않을까>하는 이상한 기분이 들지만, 이것이 이 6본목의 <삼살법>의 이합에 대단히 가까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야자키 선수는, 서로의 기 공세에 쳐서 이겨 상대가 조금 물러난 순간을 공세해 들어간다. 이때 최초의 기 세메 그대로 치러 들어간다면, 상대는 재빨리 ‘손목’이나 ‘허리’로 돌려치기 기술로 반격하지만, 이때 미야자키 선수는 재빨리 상대의 죽도를 누르고 들어가면서 세메해 들어가므로, 상대는 응하는 기술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 기술이 나오지 못하게 된 상대가 다시 간합을 끊고 다시 서려고 하는 순간을 다시 한번 죽도를 강하게 누르고 들어가, 검을 죽이면서 크게 세메해 들어가, 그대로 ‘머리’로 뛰어든다. 정말로 <기를 죽이고, 기술을 죽이고, 검을 죽이고> 친다는 <삼살법>이 아닐까. 원래 말로써 쓰는 것은 간단하지만, 시합이 한창일 때, 순식간에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역시 미야자키 선수의 천재성인 것이다.


그리고, 6본목에 있어서 후도의 손목 베기는 2본목처럼 선도의 손목을 잘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고, 얕게 상처를 입히고 제압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도는 경상을 입고서도 이것에 굴하지 않고, 좌후방으로 일단 크게 물러나, 다시 체세를 정리하여 반격하려고 한다. 그러나 후도는 숨쉴 틈도 없이 선도가 도망간 방향으로 세메해 들어가 상단으로 겨눔자세를 취해, 몸을 무너뜨려 횡방향의 자세가 된 선도를 자기의 정중선상으로 잡아서 반격을 허용하지 않는다. 선도는 방향을 고쳐서 중심을 다시 잡는 것이 불가능한 그대로 후도의 사정권 내에 있기 때문에, 이미 반격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여담이 되지만, 최근의 중고생의 시합을 보면, 나오는 손목이나 퇴격 손목을 친 후, 상대에 대해 옆 방향이 된 그대로 죽도를 왼 어깨에 메고서는 <손목, 손목, 손목!>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심판에게 자기의 타돌을 어필하는 광경를 흔히 본다. 그러나 이 어깨에 멘 죽도를 내리면, 이것이 6본목에서 선도가 패할 때의 체세 그대로 이다. 자기의 정중선으로부터 상대를 벗어나게 하는 잔심은, 본래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시합에서 쳤다 맞았다는 것만이 중시되는 작금, 잔심의 진정한 의미와 심판에의 어필을 혼동하고 있는 젊은 검사도 많다고 생각한다. 검도 6본목의 연습을 통해서, 이러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도 필요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이상에서처럼, 검도 6본목은 <세메>를 기본 원칙으로 해서의 <삼살법>의 이합을 가르치는 것과 함께, 항상 상대에 선을 취해, 선수, 선수와 공세를 계속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앞의 4본목과 5본목이 1본목과 마찬가지로 적을 죽이고, 혹은 죽이지는 않더라도 중상을 입혀서 이기는 것에 대해, 이 6본목은 경상을 입혀서 이기는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1본목부터 3본목에 담고 있는 검도수련의 목표인 <활인검>의 사고 방식이, 4본목 이후에도 계승되어 있는 것을 살필 수 있다. 이것을 밟아서, 계속되는 7본목의 고찰로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 7본목---끌어낸다


검도형 7본목은, 6본목에서 가르친 <삼살법>을 응용으로 해서, 더욱 고도한 <세메>에 의해, 상대를 <끌어낸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7본목은, 선도는 후도의 중심을 세메하여, 후도가 1보 물러난 순간에 세메하여 이겼다고 판단하여 머리를 치러 들어갈 것이지만, 실은 후도는 선도의 최초의 세메를 <검전체후>(검은 앞에, 신체는 뒤에)라고 하는 방식으로, 선도의 검을 밑으로부터 저지하면서 작게 물러나고, 선도가 ‘머리’를 치기 쉬운 상황을 만들어, ‘머리’치기를 유인한다. 즉, 상대의 중심 세메에 대하여, 이쪽의 검도 앞으로 내는 것에 의해 상대의 세메하는 검을 끄집어 내어, 그 검을 밑에서부터 저지하는 것에 의해 ‘머리’치기의 기술을 끄집어 내고, 다시 작게 물러나는 것에 의해 상대의 치려는 기분을 끄집어 내고 있다.

여기서의 <검전체후>라고 하는 <형태>는 그러한 <기술>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상대에 의해 공세 당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은 상대를 공세하여, 역으로 상대의 공세의 기분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놀게 한다>고 하는 마음과 마음의 싸우는 상황을 <검의 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상대를 자기가 생각한 그대로 끄집어 내는 것에 성공한 후도는,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선도의 ‘허리’를 빠져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이 ‘허리’치기는, 자신의 손매무새의 가감 하나로 상대의 허리를 양단하여 즉사시키는 것도, 허리띠 한 매를 자르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도 가능하다. 소위 <활살자재>이고, 이 시점에서 상대의 생명조차도 손바닥에 올려 놓고 있는 것이 된다. ‘허리’를 빠져 나가는 것을 당한 선도는, 방향을 바꾸어 후도와 검선을 맞추어도, 이미 반격할 기력도 잃고, 후도의 자비에 의해 간신히 목숨을 건진 것에 감사하고,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 칼을 거둘 수밖에 없다.


다시 여담이지만, 앞의 4본목의 설명 시에 <검도는 첫칼로 적의 안면을 공격하는 훈련이 발전해 온 것이다>라고 하여, <검도는 상호 ‘머리’의 연습으로부터 시작한다>고 기술하였다. 그러면, 현대검도에 있어서 <머리>이외의 타돌부위, <손목>과 <허리>와 <찌름>이라는 타돌부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전술한 것처럼, <첫칼>의 주된 목적이 <나의 체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거기에 적의 체세를 무너뜨린다>고 하는 점에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안면공격> 이외에는 그다지 주효하지 않기 때문에, 검도에서는, 다른 타돌부위에로의 타돌은 제한되어 있고, 우선은 오직 <첫칼로 머리를 친다>고 하는 연습법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머리> 이외의 타돌부위는, 그것을 타돌하는 자체가 주된 목적이 아니고, <머리치기>의 수련과정에 있어서, 그것을 지도하는 측이 <타돌의 기회를 적확히 잡지 못하는 것>이나 <동작의 쓸데없음과 완만함> 등을 지적하기 위해 쳐서 가르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즉, <머리치기>의 과정에서 손잡이가 너무 올라간다든지, 겨드랑이가 무르다든지 하면 <손목>이나 <허리>를 치고, 중심을 확실히 잡지 못하다든지, 타돌시 턱이 올라간다든지, 왼손이 떠버린다든지 한다면,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 <찌름>으로 인후를 찌른다. 이러한 것은 아닐까. 그러기 때문에, 현재에도 하위자가 상위자에 대해 갑자기 <찌름>을 낸다든지, <머리라고 보이고 손목> 같은 페인트 기술을 사용한다든지, 혹은 <머리>를 치지 않고, 항상 <손목>이나 <허리>만 노린다면, 검도수련의 본래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난 받는 것이다.


그래서, 역으로 보게 되면, 상대에게 <허리>나 <찌름>을 맞는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수행에 미숙함을 지적당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대외시합 등에서 상대에게 <허리>를 맞는다든지, <찌름>을 찔린다든지 하는 것을, 옛날 무사는 <대단한 수치>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도 남겨놓고 있다.

막말에 에도의 삼대도장의 하나라고 말하여지는 신도무념류 <연병관> 사이토 미카즈로의 3남 요시노스케는 ‘찌름’이 득의로서, 매일 <나는 허리를 맞는 것 같은 미숙자는 아니야>라고 말하여, 연습에서 <허리>의 호구를 결코 쓰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날, 화려한 ‘허리’기술을 득의로 하는 북진일도류의 치바 슈사쿠의 2남 에지로와 시합을 하게 되었다. 시합 당일, 요시노스케는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언제나처럼 허리에 호구를 착용않고 시합에 임했다. 결과는 치바 에지로의 무시무시한 ‘허리’치기가 멋있게 성공하였지만, 요시노스케는 허리를 맞고서도 태연히 서있었다. 실은 그는 도복 밑에 여성용 허리띠를 두 번 감았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서, 무사의 의지를 나타내었던 것이다.


이야기가 본래대로 돌아가지만, 무덕회가 정한 검도형 7본목은, <상대를 끌어낸다>고 하는, 검도에 있어서 구극의 <세메>를 가르치는 것과 동시에, <활살자재>의 ‘허리’기술에 의해, 최종적으로는 적을 죽이지 않고 이긴다고 하는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앞에 문부성의 강습회에서 제정된 1본목~3본목에 담겨져 있는 검도수련의 목표라고 해도 당연하다는 생각과 전적으로 공통된 것이라 생각한다.



◈ 끝으로


이상, 2회에 걸쳐서 일본 검도형에 관한 고찰을 했다.

원래는 서로 싸우는 데 있어서 살인기술인 검도는, 그 발전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죽음을 초월하여 생에 이를까 하는 중요한 과제를 가지고, 단순한 기술론에서부터 인간의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심법에까지 넓혀져서, 그 결과로서 적을 죽이지 않고 살려서 소위 <활인검> 사상에로 승화되어 왔다.

대정 원년에 제정된 <구일본제국 검도형>은, 당시의 일본이 일청전쟁, 일로전쟁에 승리하여, 전쟁의 길로 오로지 달리기 시작한 시기인데도 구애받지 않고, 검도수련의 최종 목표인 활인검의 사상, 나아가서는 일본인이 갖고 있는 평화강조의 사상을 멋있게 검도형으로 해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정할 때에는, 당시 검술제류파의 영향이 아직 진하게 남아 있어, 각류각파의 각각의 생각이 여러 가지로 교착되어지고 있는 중이어서, 많은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현대에도 통하는 멋있는 검도형이 되었고, 제정에 종사한 선생님들의 위대함에 마음으로부터 경복한다고 생각한다.


전후 부활한 현대검도는, 어느쪽인가 하면, 검도가 가지고 있는 사상에 대해 말하는 것을 타부시 하여, 오직 스포츠 경기라고 하는 기술론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 그렇기 때문에 검도형도 세심한 행위만이 클로즈업 되고, 단순히 승단심사에 합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되어 기술적인 지도밖에 하지 않는 것이 현상이다.

이번에 발표된 검도형에 관한 고찰은, 어디까지나 저 개인의 생각이고, 아직 수행도상에 있는 몸이기 때문에 반드시는 올바르지 않은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본론을 단서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검도형에 흥미를 가지고, 검도형에 관한 이해와 고찰을 다시 깊게 해준다면 기쁘다고 생각한다.

 

출처:충무검도관


출처 : ★인천 서해검도관★
글쓴이 : 백민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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