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일본고류검술

촛불하나 2008. 8. 1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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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검술 유파 중 강검 중의 강검이라고 인정받은 시현류의 동영상입니다.
신선조의 초대 국장 곤도 이사미는 조원들에게 '시현류의 첫공격은 받아치거나 막을 생각하지 말고, 일단 피하고 봐라.'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막게되면 칼과함께 막은 사람도 베어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示現流木刀

示現流木刀
示現流剣術は東郷藤兵衛肥前重位を始祖とし薩摩島津藩の代表的なお留め武術です。東郷重位は初学にタイ捨流と天真正自顕流を修業し、その奥義を極めた後に二流を統合して編み出したのが示現流と云われています。示現流の特徴はその初太刀にあり、一太刀の斬撃のみで敵を倒す事ができ、諸藩からは「示現流は初太刀をはずせ」とまで呼ばれ恐れられた流派です。
画像の名前入れは別途となります。
全長:101.5センチ
重量:赤樫 約 650g  :白樫 約 740g

 

 지겐류(示現流).


사쓰마번(가고시마)의 무사들 고유의 검도유파. 일본 최강의 실전검 유파.

일격필살의 명실상부한 살인검.

시현류 가는 곳에 피바람이 분다 하여 별명이 혈풍시현류.


             

 

지겐류의 창시자 도고 시케타다는 1561년 사쓰마 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쓰마의 다이묘 시마즈 씨의 무사였으니 그 또한 세습 무사였다. 때는 전국시대였느니만큼 그 역시 어린 시절부터 무술을 닦는 데 힘써 태사류라는 검술을 익혔다. 비전까지 몽땅 전수받은 것을 보면 그 실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가 시현류를 창시하게 된 배경


그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영주 시마즈 요시히사를 따라 교토를 방문했을 때 만난 한사람의 스님입니다. 교토에서 시케타다는 텐네이치라는 절의 선승인 젠키치를 만납니다. (젠키치는 스님이지만 천진정자현류라는 검술의 달인) 젠키치는 청소용 빗자루를 들고 자현류의 기본 동작 중 몇가지를 보여줍니다. 시케타다는 그 동작만 보고 자현류의 매력에 빠져 가르쳐달라고 조르기 시작합니다. 젠키치는 처음에는 겸손히, 다음은 완곡히, 그 후로는 매몰차게 거절하며 두사람 사이의 두달에 걸친 실랑이는 시작됩니다.


60일째 되던날, 시케타다는 문 옆에다가 목검을 숨겨두고 젠키치를 만나러 들어갔습니다. 물론, 젠키치는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시케타다는 포기하고 돌아가는 척 하며 나가다가 숨겨둔 목검으로 마중나오는 젠키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물론, 자현류의 달인답게 검기가 섞인 호통을 쳤고, 시케타다는 검기에 눌려 나자빠졌다고 합니다.


60일간의 끈질긴 간청, 그리고, 목검을 들고 달려들 정도의 절박한 심정... 이런 것들이 젠키치를 감동시킨 것일까   젠키치는 목검사건 이후, 시케타다에게 입문을 허락했습니다. 당시, 시케타다는 28살, 젠키치는 22살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케타다는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젠키치에게 스승의 예를 다하며 배웠습니다.

 

    
    사쓰마 대도


한편, 시케타다는 시마즈의 가신이었기 때문에, 영주 시마즈가 교토에 있는 6개월동안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도장에서 자현류를 수련했고, 6개월만에 모든 기술을 전수받고 사쓰마로 되돌아갑니다. 시케타다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집 마당에 있는 나무를 상대로 혼자서 수련과 연구를 거듭합니다. 전해지는 바로는, 너무나 수련을 열심히 한 나머지, 마당의 나무들이 모조리 맞아서 말라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나서, 그는 젠키치로부터 배운 자현류에 자신의 검술인 태사류, 그리고 3년간의 연구와 수련에서 얻은 교훈을 합쳐 자신만의 검술을 창안합니다. 그것이 일본 근대화의 키를 쥐고 시대를 좌지우지했던 사쓰마의 검술, 시현류입니다.


물론, 창안당시 시현류는 신흥 검술이었고, 당시의 사쓰마 공식 검술은 태사류였기 때문에 대립은 필연이였습니다. 시케타다는 태사류 검객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시현류의 우수성을 과시합니다.


사쓰마 18대 당주인 시마즈 이에히사는 지시를 내려 태사류 검술사범과 시케타다를 대련하게 합니다. 시케타다는 이 대련에서 승리하고, 그의 이름은 사쓰마 전역에서 유명해집니다.


이후, 시케타다는 시마즈 이에히사의 무술사범으로 임명되고, 시현류는 사쓰마의 공식 검술이 됨과 동시에, 사쓰마 내에서 타류 검술의 수련이 금지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지겐류는 그 후 일본의 메이지 이신기에 유명해진다. 사쓰마가 에도 바쿠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일본을 만들기 위한 대열의 선봉에 서면서 바쿠후를 지키려는 무사들 (대표적으로 신선조)과 수많은 싸움을 해야 했다. 단지 정면베기 한 기술만으로 일격필살하여 상대를 죽이는 지겐류에 어찌나 혼이 났는지 신선조의 초대 국장 곤도 이사미는 조원들에게 '시현류의 첫공격은 받아치거나 막을 생각하지 말고, 일단 피하고 봐라.'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막게 되면 칼과 함께 막은 사람도 베어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지겐류는 하루에 통나무치기만 만 번을 한다.


이 정도로 휘둘러대니 휘두르는 힘이나 속도가 무시무시해서, 지겐류 달인이 통나무를 치면 나무에서 연기가 올라올 정도라고 한다. 이런 사람이 투쟁본능(연습할 때도 기합으로 "죽어라!(체스토!)"를 외친다)으로 똘똘 뭉쳐 일격필살로 덤벼든다고 생각해보자. 피하기는 고사하고, 막더라도 칼이고 뭐고 죄다 두동강이 난다. 이러한 막강한 전투력은 일개 번에 불과한 사쓰마의 유신 지사들이 일본 전토를 지배하는 에도 바쿠후를 붕괴시키는 과정에서 있었던 수많은 전쟁에서 그 위력을 증명한다.


그 후, 유신지사들이 세운 메이지 신정부가 시조쿠(士族)의 특권을 빼앗고 징병제를 실시하여 무사들의 일자리를 빼앗자 사쓰마의 무사들은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 전쟁(세이난西南 전쟁)에서도 현대적인 병기로 무장한 정부군을 닥치는 대로 전멸시키며 자신들의 칼솜씨를 과시한다. 보다 못한 신정부가 검술발도대를 편성하여 진압에 나설 때까지 지겐류의 무사들은 승승장구한다.


지겐류의 창시자 도고 시케타다는 시현류의 오의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공격을 의심하지 않고 삼천지옥(三千地獄)까지 베라."

 "첫일격에 모든 것을 담아 적을 죽여라. 그렇지 못하다면 죽음으로써 적을 죽여라."


지겐류를 설명하는 데 이 두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

 

 http://www.gorekun.pe.kr/blog/trackback/284

 

원본 http://blog.naver.com/lowfeel/120000782653

 

일본 막부말 크게 명성을 떨쳤던 검술유파중의 하나인 지겐류(시현류) 수련모습입니다. 

지겐류가 무조건 힘을 써서 베는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일도류의 검리와는 틀리게 오른손의 힘을 중요시하며 왼손의 힘을 빼도록 합니다.


이는 톤보자세(잠자리자세,팔상세와 비슷함)에서 기세와 원심력을 이용하여 단번에 베어버리는 것이 지겐류의 특징으로 왼팔 팔꿈치가 항상 몸에 붙어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겐류는 인간의 동물적감각을 중요시하는 유파입니다.
영상에서 나오는 나무기둥을 치는 것이 가장 중심이 되는 수련법입니다.
목도 또한 일반적인 나무목도가 아니라 보통의 참나무를 깍아서 만든 나무몽둥이입니다.
초급과정에선 나무기둥을 있는 힘껏 치라고 가르치지만 시간이 지나고 수련의 깊이가 조금씩 쌓이면 자연히 몸에서 힘이빠지게 됩니다.

 

지겐류에서 실력을 평가하는 법 역시 나무기둥을 목도로 쳐보는 것입니다.
기둥을 쳤을 때 검에 힘이 제대로 실려 목도가 부러지면 중고급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여기며, 다시 고급으로 올라가면 몸의 힘이 완전히 빠져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되므로 목도가 부러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겐류에 당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자신의 검의 코등이가 이마에 박혀있거나 검과 몸이 통체로 두동강 나있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후타를 생각하지 않고 어찌보면 무모할 정도로 강한 일격으로 베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막부말 신센구미(신선조)의 대장인 곤도 이사미는 지겐류의 첫타는 무조건 피하라고 했을 정도라니까 그 위력이 대단하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른 유파에서 하는 말이 지겐류의 위력을 볼려면 "모노기리-정확한 정면베기/유효타- 에 당한 상대방을
볼 것이 아니라 그가 앉아있던 다다미를 보라" 라고 했답니다.

 

(덧붙임 설명: 지겐류의 기합은 '체스토' 혹은 '체이' 가 사용됩니다. 사츠마 지방 특유의 고함이라고들 하며 일부에서는 사츠마의 절규라고도 합니다. 일본어 '시네'가 변화된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시네라는 말이 '죽어라' 의 의미를 담고있습니다.

이것은 지겐류가 얼마나 인간본연의 투쟁심리를 중요시 여기는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에도시대의 지겐류 수련자들은 남몰래 다치키(나무기둥)를 아침에 3천번, 오후에 8천번을 쳤다고 합니다. 지금도 연무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다치키 우치는 머리에서 스리아시(끄는발)로 간격을 맞출 수 있게 재빨리 다가간 후 간격에 들어오면 톤보자세에서 케사기리로 좌우를 번갈아 빠르게 여러번 칩니다. '체스토'란 기합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치게 되는데, 달인이 치는 경우에는 다치키에서 연기가 난다고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치는 순간 항상 왼팔꿈치가 가슴에서 떨어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겐류의 엄청난
스피드와 파워의 비밀은 이 왼쪽팔꿈치에 있다는 것인데, 이는 지겐류의 11대 종가 도고 시게마사 선생의 말씀처럼 직접 지겐류를 수련하며 다치키를 치면서 스스로 그 요령을 깨우쳐야 알 수 있는 것이겠지요. 지겐류는 현재 우리가 수련하는 현대의 검도정신과 너무나 상반된 수련법과 정신을 추구한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나른한 오후
글쓴이 : 다르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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