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맨손무술과 격투기

촛불하나 2008. 8. 12. 13:00

정유수(yousoo@hitel.net)

1. 들어가면서

어느 중국 무술의 문파가 그러하듯이 같은 권술이라고 해도 그 계파에 따라서 이야기하고 있는 근본은 다릅니다.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뿌리는 동일하지만 후대에 이어지면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 역사를 과장한다거나 혹은 해석상의 미묘한 차이로 인해 처음 이 부분을 접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한 논란을 제공하기에 충분합니다.

팔극권은 그 기원을 모두 '나(癩)'라는 선인에게 두고 있습니다. 청나라 옹정 5년때부터 전해지는 야사에 따르면 자신을 '나(癩)'라고 말한 서역의 고수가 나무를 하다가 잠깐 잠이 든 오종의 꿈속에서 나타나 '팔극의 술'이라는 권법을 전수해 주었다고 합니다만, 이 이야기는 주몽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처럼 그저 전설의 이야기일 뿐이고 앞서 소개한 '파자권'이 시간을 두고 다듬어져서 현재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러나 나와 오종을 거치면서 현대에 이르러서는 팔극권 각 계파 간의 애매한 문제로 인해 그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계보상으로만 본다면 충분히 그 종가의 위치를 고수하고도 남음직한 맹촌의 오가 쪽에서는 민국초기에 그 무명을 떨친 이서문으로 하여금 오가가 '개문팔극'이라는 것을 알리지 못한데에서 오는 불편함을 내보입니다. 최근 10년 동안에 일본인들로 하여금 팔극권의 종가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인식이 되자 원류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덕택에 이름을 세상에 선보이게 됩니다만 어찌 되었건 그들이 가장 불만스러운 것은 이미 권보가 오가에는 없다고 주장하는 서안의 마가 팔극권과 대만의 무단 팔극권이겠지요. (자세한 내용은 오련지 노사의 오씨개문팔극권이란 저서에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대만의 무단은 이서문 노사의 마지막 제자였던 유운초 노사가 설립한 무술 학교입니다. 혹자들은 지금의 무단 팔극권 명성은 그의 스승이었던 이서문의 후광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유운초 노사만을 두고 보더라도 그러한 논란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지금도 그가 젊은 시절 정보 비밀 요원으로 활약한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재미와 스릴을 제공해 주고 있으며 대만의 텔레비전 방송으로도 여러 번 각색되었습니다. 이서문에 관계된 이야기는 세간에 널리 퍼져 있으므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출판된 장세충 선생의 '팔극권'에도 잠깐 그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서문만큼 시대의 흐름 한가운데에서 지낸 인물은 무술의 역사를 통털어 봐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의 제자들이었던 곽전각, 이건오, 유운초는 각각 청대의 마지막 황제였던 보의, 중국 공산 혁명의 기수였던 모택동, 그리고 지금의 대만을 수립한 국민당의 경호를 맡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곽전각은 17세부터 1925년까지 허란주 장군이 보의를 대동하여 천진에 천거하기까지 20년 동안 이서문 문하에 있었으며 곽전각과 헤어진 이서문은 당시 10대였던 유운초를 맡아 1934년에 사망할 때까지 이건오와 함께 팔극권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곽전각은 이서문의 양자였던 주형무와 함께 황제의 명령으로 1934년 무관을 설립하여 그의 스승이 전해준 팔극권을 발전시켜서 '동북팔극, 장춘팔극, 춘팔극' 이라 불릴 만할 성과를 거뒀으며 현재는 담길당과 그의 조카 곽경운을 통한 곽문학으로 그 전통이 전해 지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바로 팔극권의 기원에 관한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내용이라고 해도 팔극권은 창현맹촌진(滄縣孟村鎭), 현재의 맹촌회족자치현(孟村回族自治縣)에서 발원하였으며 그 개조(開祖)는 오종(吳鐘, 1712~1802)이라는 것입니다. 오종에게 기예를 전수해준 이가 '나'라는 서역의 고수라고 이 지방의 향토역사지인 '창현지'에 소개되어 있습니다만 그 시대에 나돌던 '파자권'이라는 권술이 척계광의 기효신서에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미 명대 초기 이전에 그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분명해 집니다.

아무튼 전해지는 역사서에는 오종이 1727년부터 3년동안 고승에게 파자권이라는 무술을 전승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종이 무술 연습을 하고 있을 때 바람처럼 나타난 그는 역시 사라질 때도 바람처럼 사라지는데 이 장면이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입니다.

"스승님, 저는 아직 배움이 부족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날련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스승님 함자 조차 알지 못합니다."

"'나'라고만 알고 있으면 된다."

오련지 노사의 창술그런데 '나'가 오종에게 전해 준 것이 오종의 생각대로 조금 모잘랐나 봅니다. '나'가 떠나고 2년 뒤(1732년) 벽(癖)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이 '나'의 제자라고 말하며 권법과 대창술을 전해 줍니다. 스토리가 묘하게 되어 가지요? 난데없이 떠난 '나'가 자신의 제자를 보내어서 전해 주지 못한 기예를 전수해 준다는 것 말입니다. 분명히 '그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가 실존의 인물이고 또 오종에게 파자권이라는 팔극권의 뿌리가 될 만한 것들을 전해 준 것은 분명하지만 오종의 피나는 공부로 나름대로의 성과를 얻어 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갑자기 등장한 벽은 그저 개조의 정통성을 보태주는데 일조한 허구의 인물이겠지요.

여하튼, 오종은 1735년 절강 소림사를 찾아서 그의 실력을 천하에 알립니다. 덕분에 이듬해 황태자의 무술 교사가 되었으며 그의 밑에 150여명이나 되는 학생까지 받아 들입니다. 1776년 낙향한 오종은 무관을 여는데 이른바 그것이 '오씨개문팔극문'입니다.


오종에게는 그의 장녀인 영, 그리고 오영(장녀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마지막으로 오종육이라는 세 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만 영은 언제 어디로 시집가게 될지 모르는 당시의 풍습에 의해서 진전을 잇지 못합니다. 영에게는 나탄에 사는 이대중이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진전을 잇지 못한다는 풍습 때문에 계보상으로는 오영의 밑으로 들어갑니다. 즉 실제로는 오종의 장녀에게 배웠지만 비슷한 이름으로 인해 계보만 오영으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이것으로 인해 팔극권이 맹촌 외에 다른 곳으로 최초로 팔극권이 퍼지게 된 사건이 되었습니다. 다만, 영이 이대중에게 전해 준 것은 소가, 그리고 단타(혹은 대타 ; 다른 계파에서는 대팔극이라고 합니다)뿐이었으므로 나탄의 팔극권은 맹촌의 팔극권과는 독자적으로 발전합니다.

아래는 맹촌의 팔극권에서 말하는 계보입니다.

그런데 맹촌 팔극은 최근까지 두문불출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만 아마 다른 계파가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역사를 재해석하는데 발끈해 버린건지 표면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물론 그 계기가 일본의 무술연구가 마츠다 류치의 맹촌 방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맹촌의 7대 종사인 오련지 노사는 그 유명한 세가사의 폴리곤 격투게임 '버추어 파이터 2'의 감수를 맡게 되며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만화 '권아(拳兒)'로 절정이던 팔극권의 인기는 다시한번 게임으로 인해 최정상에 오릅니다. 중국내에서 마이너의 위치에 있던 팔극권은 단숨에 홍콩, 일본,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일대에서 열풍을 몰아칩니다

 

2. 마지막 황제의 보디가드 곽전각

곽경운 노사곽전각은 17세부터 20년 동안 이서문에게 팔극권과 창술을 배웠습니다. 이서문 휘하에서 무술을 배우던 곽전각은 훗날 이서문이 무술 교관으로 추천하여 그의 조카인 곽경운과 함께 1921년 천진으로 갑니다. 청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보의는 군주제로의 복귀를 꾀했는데 1911년 중국의 공산혁명과 1912년 중화민국의 설립으로 계획이 무산됩니다. 보의는 일신상의 위협을 느껴 무술의 고수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는데 당시 그의 참모였던 허란주 장군의 천거로 조카 곽경운과 함께 1927년 보의의 전통어위로 임명이 됩니다.

부의는 그들이 보디가드의 자질이 있는가 시험해 보기 위해 초빙한 일본인 무술가 두 명과 시합을 하게 했는데 그들은 보통의 덩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곽전각은 가볍게 상대방의 손가락을 꺾어 승리해 버립니다. 자신이 직접 상대할 필요가 없음을 느꼈는지 아니면 조카 곽경운의 무력도 보여주고 싶었는지 다음 상대를 곽경운에게 맡겼는데 곽경운 역시 배나 되는 덩치의 일본인 무술가를 어깨에 들쳐 내던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무사히 시험에 합격한 곽전각과 곽경운은 스승인 이서문의 만류를 뿌리치고 1932년 보의가 일본에 의해서 설립된 괴뢰정부 만주국의 국주에 오르자 장춘으로 옮겨갑니다. 뒤이어 1934년 이서문의 또 다른 제자인 주형무가 장춘으로 오면서 곽전각, 주형무 두 사람이 새로운 시스템의 팔극권을 보급하게 됩니다. 이를 '동북팔극', '장춘팔극', '춘팔극'이라고 사람들이 칭합니다. 그러나 그의 문하생들과 일본인들과의 충돌이 잦아지고 양국간의 군대에 충돌이 일어나면서 급기야 황궁의 호위군은 해산을 맞이하게 되었고 곽전각, 곽경운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이 진행됩니다. 곽전각은 1942년에 그리고 곽경운은 1987년에 각각 사망하였으며 현재 장춘에는 곽전각의 제자인 담길당이 그리고 천진에는 곽경운의 아들인 곽문학이 그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3. 산동소패왕 유운초

유운초노사의 지도모습팔극권의 역사상 이서문에 이어 유명한 이는 뭐니해도 유운초일 것입니다. 전설적인 무술가 이서문의 마지막 제자였다는 것 자체로서도 세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지만 분명, 그의 무술은 스승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산동성에서 무패의 행진, 또 전쟁 기간의 정부의 비밀 요원으로서의 활약, 대만 총통부 시위관의 훈련 교관으로서의 무력은 영웅의 그것이었으며 실제로도 대만의 텔레비전에서 그의 일화를 소재로 다수의 드라마로 제작 되었습니다.

유운초는 매우 어린 시절부터 이서문 밑에서 무술을 익혔습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창현 일대의 관리를 맡고 있었으므로 이서문을 초빙해서 유운초의 무술 교육을 맡길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그 시절 유운초의 일과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수련하고 다시 점심 후 수련하는 극히 단순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이서문의 제자가 된지 반년이나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이서문이 유운초에게 가르쳐 준 것은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유운초는 싫증을 느껴 수련에 흥미를 잃게 되자 그의 아버지가 이서문에게 아이가 흥미를 가질 만할 것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이서문은 단호한 얼굴로
"내 교수 방식은 천천히 한 단계씩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 내 방식이 싫다면 내가 떠나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결국엔 이서문의 뜻을 꺾을 수 없었던지 유운초는 이서문의 교수 방식에 따라 무술을 수련 받았습니다. 당시 이서문은 이미 60대였지만 그가 말년에 집대성한 성과가 유운초에게 전수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유운초에게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이서문이 사망한 뒤 그는 팔괘장, 당랑권을 수련했으며 1937년 군사학교에 입학해서 1939년 소위로 임관하여 정부의 비밀 요원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1949년 국민당 정부를 따라 대만으로 건너온 그는 1968년 정부 고위직을 경호하는 기관의 책임자로 임명이 되었으며 1971년에 무단을 설립하여 소욱창, 서기 등과 같은 걸출한 제자를 길러냅니다. 1992년 1월 21일, 8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4. 현대 무술 영웅 마현달 (번역 : 전홍철 xyz357@hitel.net)

마현달노사의 중국전통개문팔극권중에서 팔극권부분의 번역입니다.

팔극권의 역사는 청대의 후기까지로 판명되어 있지만 명대의 장군인 척계광이 쓴 '기효신서' 속에 기재되어있는 '呂紅八下'에서부터 발전했다고도 말해진다. 현시점에서 볼수있는 자료에 의해서 기원의 확증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현재 밝혀져 있는 것은 청대후기에 (강희 51년~ 가경 7년) 하북성 창주(현) 지방의 회족인 오종에 의해 팔극권이 전해졌다고 하는 것이다.

오종은 산동성경운현(현재의 하북성)의 사람으로 오충이라고도 한다. 그 딸인 오영이 맹촌에 시집을 가서 팔극권이 맹촌에 전해졌다. 거기에 창현, 나탄에 전해졌다. 또 경운현의 전승에 의하면 하남성 집작(集作)현 악산사(岳山寺)의 장악산이 환속해 아내를 얻고 무자수업에 나갈 때 오종에게 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것에 의하면 오종은 창에 능한 인물로 경운현일대에 문하의 제자 천 명을 거느린 유복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장악산이 제자를 얻기위해 산동성의 후압과촌을 방문했을 때 오종이 제자에게 가르치고 있는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 때 오종의 태도가 너무나 오만했기 때문에 장은 자세히 보고서 '그 기술이 실제로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오에게 물었다. 이것에 화가 난 오는 장에게 창으로 도전했지만 단 한 번의 찌르기에 당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시합 후 장은 오를 훈계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후 오는 깊이 반성하고 제자들을 해산시키고 장에게 부탁하여 제자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오는 장의 밑에서 연습을 하게 되었지만 어떤 날 장이 볼 일이 생겨 나간 때 오의 연습을 우연히 본 장부인이 잘못을 지적해 주어서 바르게 가르치고 있는 때 외출에서 돌아온 장은 그것을 보고 심정을 해쳐 오를 파문하였다.그러나 장의 가르침을 받고싶다는 일념으로 가득찬 오는 다시 장에게 애원하여 자기 집에 초청하였다. 오는 장부부를 위해 가장 좋은 방과 사후의 관을 준비해주었고 그것을 본 장은 오의 각오를 알고서 드디어 마음이 움직여 제자로 하였다.

그 후 장부부는 오의 집에서 일생을 보냈다. 그리고 장부부의 사후 오는 자기의 아버지의 묘 앞에 장부부의 묘(불교식으로 건립되어 1970년대의 문화대혁명까지는 법요가 행해져 왔다고 한다)를 세워 정성스레 이장했다.또 오는 육합대창을 장악산에게서 배웠다.이것은 미담으로서 지금도 창현, 경운현에 이야기되는 것이다.

하북성 창주지방의 향토사를 모아쓴 '창현지'의 '인물지 - 무술'의 부분에 '오종, 북방팔극문권술의 초조(初祖). 자를 홍성(弘聲), 맹촌진천방교(孟村鎭天方敎)(천방교는 회교를 의미한다)의 사람'이라고 되어있고 '오종은 '나'라고 칭하는 도사에게서 '팔극의 술'을 배우고 그 후 '벽'이라고 칭하는 '나'의 제자에게서 대창법과 '팔극비결' 한 권을 받았다'라고 되어있다.

따라서 맹촌의 팔극문에서는 '나'를 팔극문의 초조로 써놓고 오종을 2세로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마봉도의 생애의 노작인 '유예록' 등에 의하면 '팔극권은 하남성집작현에 있는 악산사의 중인 장악산이(이 것은 중국불교협회불교국서문물관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단 옛날에는 수무현악산사라고 했다) 환속해서 각지를 유력하던 중 당시 산동성경운현 후압과촌(이것은 경운현체육운동위원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단 1976년 문화대혁명의 때의 정리에 의해 장악산, 오종의 묘는 파괴되었다)에 거주하며 무예를 가르치고 있던 오종(충)과 만나 팔극권과 육합대창법을 전수했다'라고 써있다.

그리고 '유예록'에 의하면 오종의 진전은 오융(吳融)에게 전해져 오융부터는 오양(吳樣)과 오남(吳楠)의 두 사람에게 전해져 2계통으로 나뉘는데 오양의 계통을 이원(里院, 종가)으로 그리고 오세과(吳世科)(춘야(春爺))에게 전해져 갔다.또 오남의 가르침은 오옥린(吳玉麟)에게 전해져서 그 후 오무당(吳懋堂)에서부터 오수민(吳秀敏)(중일전쟁에 전사했지만 자손은 천진에 남아있다)에게로 전해져 갔다. 그리고 오종의 딸인 오
영은 맹촌(외원(外院))에 시집 가 팔극권을 전해 그것은 오개(吳愷)에서 오회청(吳會淸), 그리고 오수봉(吳秀峰)을 통해 오련지(현재)에 달하고 있다.

오종에 의해 회족의 오가를 중심으로 전해져온 팔극권이었지만 오양이 나탄의 한족인 왕사(王四)에게 전한 것에 의해 나탄의 한족간에도 행해져 왕사의 가르침은 한족의 장동문(張同文)과 이대충(李大忠)에게 전해져 장동문의 가르침은 아들인 장경성(張景星)(공신(公臣), 공진(拱辰))과 황사해(黃四海)(자신있는 것은 창이어서 이서문은 황사해에게서 창을 배웠다. 단 배사는 장경성에게서 이다)에게 전해져 장경성의 가르침은 아들인 장옥형(張玉衡), 마영도(馬英圖), 한화신(韓化臣) 등에게 전해졌다.

황사해(장동문의 제자)의 가르침은 이서문에게 전해졌지만 이서문은 장경성의 배사제자이다. 그리고 장옥항(張玉恒)(장옥항 일족은 중일전쟁 때 모든 것을 이어받은 전승자는 모두 전사하여 그 전승은 끊어졌다), 한화신, 마영도들과 함께 나탄 사걸의 한 사람이다.시대의 흐름과 같이 팔극권의 전승계통은 복잡하게 되어 있지만 오종-오융-오양-오세과 계통을 이원(종가)로하고, 다른 계통은 외원(분가)로 하고있다.

오세과를 포함해 오무당의 후대의 오수민은 항일전쟁에 의해 전사하여 세습상의 전승은 끊어졌지만 오세과의 딸을 어머니로 가진 마봉도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조부인 오세과(오양傳) 팔극권의 진전을 배워, 그 모든 가르침을 받아 이었다. 또 오세과는 나탄의 장가가 독특한 발전을 이루어온 것을 알고 마영도를 장가의 당시 종가인 장경성에게 배사시켜 장가의 팔극권과 육합대창을 배워오게 하였다. 이 때에 의해 마가에서는 회족오가와 한족장가의 두 가문의 팔극권을 통일하여 재편성하게 되었다.


5. 역사의 진실은?

이렇듯 각파에서 주장하는 과거의 행적들이 모두 다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많은 이들이 상당히 중심을 잡고 있지 못하는 이유는 전술했지만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것은 팔극권의 개조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종에게 무술을 전수해 주었다는 나선인이 실재로 존재했다는 부분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만약에 나와 그의 제자 벽이 실존의 인물이라면 그들은 청나라에 대항한 반정부주의자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비교적 한족과는 달리 억압이 적었던 회족, 즉 이슬람 교도들에게 무술을 전수해주었던 이유도 여기서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척계광의 기효신서외의 무서들에서는 나와 벽의 이름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허구의 인물들일 가능성이 높으며 창현지에 기록되어 있듯이 10여년이나 무술을 가르쳐 주었던 제자에게 이름조차 밝히지 않았음을 미루어 짐작해 본다면 누군가에 의해 창작된 인물임을 뒷받침 해 줍니다. 물론 그들이 오종에게 '팔극의 술' 이라는 기예를 전수해 주었다 함은 당시 항간에 전해지던 파자권을 바탕으로 '팔극권'을 만들어 내었던 오종의 정통성의 무게를 실어주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이후에 이서문이라는 걸출한 문도가 등장하게 되어 팔극권은 전성기를 맡게 됩니다. 문제는 그들의 제자들의 관계인데 각각 제자들이 정치 상황에 따라 운명적으로 서로 엇갈린 길을 걸어 갑니다. 미묘한 관계 때문에 그들간의 위치 정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위의 계보에서 보듯 대륙의 팔극권 계파에서는 유운초 노사를 정식으로 팔극문도로 인정을 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에 그는 팔괘장과 당랑권의 권보에 올라 있습니다)

서안의 마가 팔극권에서는 나의 존재조차 부정해 버립니다. 그들은 오종에게 기예를 전수해 준 이가 장악사의 환속한 무승이었던 장악산이라고 주장하여 그 계보를 따라서 진정으로 팔극권의 극의를 전해 받은 이들은 오씨 집안이 아니라 마씨 집안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주장을 펼칩니다.표면적으로 이 주장을 펼친이는 마현달이었습니다. 그는 현대 중국의 무술 영웅으로 추앙을 받는 인물로 젊은 시절의 무술 대회에서 화려한 번자권을 선보여 우승을 여러 차례 차지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복싱영웅이었던 무하마드 알리와의 일전으로도 사람들의 회자에 올랏습니다. (사진을 보면 이연걸과 나란히 있는데 이연걸의 출세작이었던 소림사에서 무술감독을 맡은 이가 마현달입니다) 그가 저서를 통해 이런 내용을 발표하자 당연히 오가의 종손이었던 오련지가 발끈하여 역시 그의 저서 '오씨개문팔극권'에 조목조목 마현달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구성모(ESPER@chollian.net)

팔극권 기술은 독특한 풍격으로 무술계에서 독립문파로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통상 어느 문파나 볼 수 있는 '권타각척(拳打脚척)'이외에 '붕감돌격'과 '첩신근발(貼身近發)'을 중시하고 있다. 즉, '근신단타(近身短打)'를 이르는 말이다.

1. 동작건취(動作乾脆), 발력폭렬(發力爆烈)
팔극권의 초식은 간단명료한데 언제나 거칠지 않고 고요하고 맑게 움직인다. 발력을 할 때에도 언제나 흉맹하지 않으면서 파괴력은 크다. 발력시 온 몸으로 기를 운용하며 육합으로 폭발력을 이끌어 낸다. 손이 가면 다리가 이르고 몸이 붙으면 힘이 나오는 것이다. 애, 방, 제, 고, 전신을 땅으로 가라앉히지 않으면 안된다.

2. 결구엄근(結構嚴謹), 박실무화(樸實無華)
팔극권의 동작은 절제되어 있어 꾸미지 않으며 펴고 굽힘이 명확한 동작이다. 동작이 간소하다 보니 우아하기보다는 소박하고 처음 보기에는 단조로울지 모르나 속은 꽉 차있으며 공격은 확실하다. 강함 중에 부드러움이 있는 것은 즉 한번 나아가면 완만하게 변화하는 것이다. 부드러움 속에 강함을 가지고 있고 천근을 막아내는 방어와 기세를 타는 공격이 있다.

3. 이심온정(二心穩定) 기침해저(氣침海底)
이심온정이란 중심(中心)과 중심(重心)의 안정을 가리킨다. 연습할 때 중심(重心)을 몸의 중심(中心)으로 이동시켜 몸을 곧게 펴고 기울어지지 않게하고 손을 뻗거나 거두어들일 때는 몸의 중심(中心)선을 지켜 몸이 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연히 아래에 기가 가라앉는다. 따라서 중심(重心)을 안정시키면 강대한 힘이 나온다. 자신의 중심(重心)을 잃지 않으면서 상대의 중심(重心)을 무너뜨리면 상대를 쳐 쓰러뜨릴 수 있다.

4. 동작령활(動作靈活), 서전대방(舒展大方)
팔극권 기술이 쓰일 수 있는 범위는 매우 광대하고 변화의 폭 또한 크다. 또한 동작을 기민하고 크게 펼칠 수 있다. 신법과 초식들은 동물의 동작, 모습을 채용하여 이름을 지은 것이 매우 많다. 예를 들면 교룡출수(蛟龍出水), 맹호번신(猛虎번身), 백사토심(白蛇吐芯) 등으로 정(精), 기(氣), 신(身)을 온몸에 적용한다. 자연히 동작이 기민하면서도 변화가 많다.

5. 건신방병(健身防病), 기격성강(技擊性强)
팔극권은 단지 기격술만 뛰어난 것이 아니다. 일종의 양생법이 될 수 있는데 체질을 다스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수련을 계속하면 건강한 신체를 보존할 수 있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팔극권을 양생술로 쓴다면 그것으로도 매우 실용적이며 강하고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고 기격술로서도 높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팔극권 기격법의 공격성이 흉맹한 것은 초식을 보고 초식을 발할 때 상대가 치면 나도 친다는 것 때문이다. 이것은 상대방 움직임에 반격하는 것을 뿌리에 두되 동시에 상대방을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팔극권은 수련시에는 형이 있지만 실전 중에서는 형이 없다. 무형의 단계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인체 8대부위를 십분 발휘하여 전후좌우, 상하, 어느 방향으로든 연속적인 공격을 할 수 있게 된다.

※ 이상 - 오씨팔극권 풍격특점

 


팔극권은 창현일대에 존재하는 권법으로 그다지 널리 퍼지진 못했으나 이미 무술계에서는 그 이름이 널리 퍼져 명문권법으로서 공인받게 되었다. 현재는 남경이남까지 전해져 익히는 자가 많아졌다. 지금은 점점 더 늘고있는 추세다. 그곳이 그렇게 된 것에는 또한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팔극권이 우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팔극권의 이러한 특징은 모두 8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 수련할 때에는 순서가 있다. 중국 권법은 내용이 비록 매우 오묘할 지라도 수련할 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반드시 순서를 따라 차례차례 익혀가야 하며 다음 단계로 배울 권법을 정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는 팔극권이 그만큼 익히기 힘든 권법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소팔극은 기초를 닦는 것으로, 대팔극은 그 기술을 거리낌없이 쓰는 것으로, 그리고 육대개는 그 궁극의 기예를 터득하는데 있다. 팔극권에 있어 단조의 기예는 다음에 익힐 것에 도움이 되고 시일이 점점 지나면 더더욱 다양해지는 변화를 숨기고 있다.

두 번째로 발경에는 방법이 있다. 발경이 없는 지르기는 단지 몸만 건강하게 할 뿐이다. 근본이 없는 무술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금이 수많은 권법이 있지만 이미 발경법을 잃은 것이 많다. 팔극권의 발경방법은 아주 간단한데 아마 그래서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 방법을 주고받으며 서로 공부를 터득했던 것이다.

세 번째로 실용적이다. 팔극권은 절대 크고 화려하지 않다. 한동작, 한동작의 목적은 오직 상대에 대한 응수이며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실효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 타자(타子)의 기초이다. 권법의 근본은 다리에 있다. 이는 다리의 수련이 극히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무술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이 수련을 견디지 못해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팔극권의 타자는 수년에 걸쳐서 수련하여 투로 속에 융합한다. 팔극권을 수련할 때에는 이 단계를 반드시 지나지 않으면 안된다. 고통이 없으면 얻을 수 없고 견디지 못하면 그만 두는 수밖에 없다. 그 단계를 딛고 넘어서야 성취할 수 있다. 도중에 그치면 안되며 도중에서 다시 배우는 것은 어렵다.

다섯 번째로 간단한 역학이다. 팔극권은 화려하지 않고 초식 또한 극히 간단하여 외우기도 쉽고 사용하기도 쉽다. 이러한 특징은 수련시 하반공부에 있으며 복잡하지 않고 표면상으로 이해가 안간다든지 공허한 부분이 없기 때문에 수련하는 사람이 어려워하지 않는다.

여섯 번째로 변화가 많다. 팔극권은 간단하고 허식이 없어 처음 배울 때는 그 기술이 얕고 보잘 것 없으나 시간이 지나면 깊고 중후해져 마지막에는 정수를 얻게 된다. 그리고 보기에는 비록 단순하나 담고 있는 것은 풍부하다. 숙련하게 되면 변화가 끝이 없어진다. 상대에 따라 변화하니 마치 거울 같고 그 하나하나가 진짜가 아닌 것이 없으니 진정 무궁무진하다 하겠다.

일곱 번째로 초식이 접근전용이다. 팔극권은 적과 가까이서 싸울 때 쓰는 것이 목적으로 고안된 기술의 묶음들이다. 따라서 한 초식마다 결정적인 때 치명적인 부위에 쓸 수 있고 수 백가지 초식 중에 가장 근접한 상태에서 쓸 수 있는 것 중 하나이다.근접한다는 것은 가장 빠르고 , 가장 직접적이고 또한 가장 유효하고 가장 쉽게 변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팔극권 초식의 오묘함과 깊고 풍부함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없다.

여덟 번째로 기술이 가장 완전하다. 팔극권의 수련은 세 투로의 단계에 있다. 각 투로마다 약간씩 다른 목적이 있고 수련법이 틀리다. 상대와의 접전시 응용단계에 이르면 자기 방어, 상대제압, 상중하반, 길고 짧은 싸움, 하나하나에 대한 마땅한 방법은 없으나 팔극권은 각 상황에 맞는 가장 정형적인 방향을 제시하여 준다.

※ 이상 '팔극권술술요' - 유공운초선생

 


경도공법(勁道功法)

팔극권에서 경의 훈련할 때에는 반드시 순서를 지켜야 한다. 처음은 침추경( 墜勁). 다음은 십자경(十字勁), 마지막으로 전사경(纏絲勁)이다. 이와같은 순서를 밟아가며 익히면 어떤 무술에서 익히는 발경이라도 그 기초가 된다.

침추경 : 다리와 사지백해(四肢百骸)의 단련으로 체중을 낮춰야 하며, 경을 단련할 때에는 산과 같이 우뚝 서 있어야 한다.

십자경 : 상하좌우 4방향 즉, 마치 십자형태로 펼쳐진 경이다. 침추경을 익히고 있어야만 경력을 모을 수 있으며 생각 또한 사면팔방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전사경 : 십자경이 꼬이고 속에서 모여 나가는 경이다. 영활하면서 민첩해야만 경이 나갈 수 있고 느낌을 받아 쏠 수 있다.

위에 서술한 것은 팔극권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 차례대로 익히게 되면 위로 올라가기 위한 기초가 된다. 팔극공법에서 나타나는 손발부위는 가장 기본적으로 웅보(곰형), 통배(호랑이형)의 두 개이다.

웅보는 팔극권만의 독특한 것으로 경을 훈련할 때 관계 있으며 응용보법으로도 관계가 있다. 또한 다른 훈련법도 많이 존재한다. 통배는 상체 훈련이다. 어깨와 등에서 경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으로 '통비'라고도 쓰며 그 뜻은 팔을 펼치다 혹은, 경을 펼치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자의 뜻과는 달리 훈련 동작은 다른데 외관상 좌우로 두팔이 앞으로 나아가 치는 것을 통상 '통비'라고 적는다. 통배, 통비는 읽을 때 같은 소리로 들리기 때문에 구별이 안된다.

팔극기공은 '마쉼'과 '들이쉼' 두 호흡이 기본이다. 다만 마쉼과 들이쉼을 훈련하기 전에 반드시 기를 단전에 가라앉히고 (축기, 납기) 기를 온몸에 돌게하는(인기, 행기) 두가지 기초공부가 되어야 한다. 첫 번째로 기를 쓸 수 있게끔 하고 두 번째로 기를 한 곳에서만 운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기초공이 끝나면 다시 신체의 다른 부위를 사용하여 '흥'하고 코로 내�은 다음 입으로 '하'하고 들이쉬어 동작과 합쳐 발경에 쓴다.

팔극공법 중에는 반드시 도구를 사용해서 단련해야 하는데 '첩산고'와 '타사대'가 그것이다. 첩산고는 외부에서는 '철산고'라고 쓰는데 이는 이 공이 그만큼 신체를 철이나 돌처럼 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타사대는 각 문파마다 가지고 있는 훈련법 중 하나이다. 다만 이를 이용해 얻으려 하는 바가 서로 다르고 연습법 또한 다르다. 팔극문에서 사대의 단련방법과 사대의 종류도 많고 사용방식도 각기 다르다. 또 지방마다 그 방법이 다르다. 그 중에 사대를 몸위에 올려놓는 방법은 창현 지방의 특수한 가는 모래를 이용한다.(창현에는 어린아이의 아랫도리를 불에 구운 모래를 기저귀에 넣어 채우는 풍속이 있다. 기저귀에 오줌을 싸지 않고 수시로 모래만 갈아줄 수 있어 위생적이고 편리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작이 어렵다. 때문에 공업사회인 지금은 외부에서 대량으로 생산한 도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 이상 '팔극권술술요' - 유공운초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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