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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하나 2008. 8. 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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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니스/에스크리마’의 역사 (The History of Kali/Arnis/Eskrima) | 칼리/아르니스
2005.07.24 02:43
이천일류(dhehdljh) http://cafe.naver.com/muye/2702

‘칼리/아르니스/에스크리마’의 역사 (The History of Kali/Arnis/Eskrima)

‘칼리/아르니스/에스크리마’의 역사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있었고 서로 다른 견해들이 풍부하게 존재한다. 여기에 있는 것은 단지 여러 견해들 중에서 하나이며,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정보들이 난무해왔기 때문에 이것만이 유일하게 진실된 것이며 옳은 견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제시된 역사는 다음의 하위부분들로 나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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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부터의 기원과 서남아시아로의 이동
스페인 점령 이전의 시대
스페인 점령과 식민지 시대
미국 점령과 2차 세계대전 중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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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부터의 기원과 서남아시아로의 이동

‘필리핀 무술(Filipino Martial Arts - FMA, 필리핀 사람들의 무술)’은 그 기원이 인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그것은 ‘칼리리파야트’로 알려진 가장 오래된 무술 중의 하나로 그 기원이 이어진다. ‘칼리리파야트’는 다양한 종류의 무기 사용과 타격 및 그래플링 모두를 사용하는 맨손 격투를 포함하는 완벽한 격투 체계이다. 그것은 힌두교의 죽음의 여신인 ‘칼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고, 이 ‘칼리’는 여섯 개의 손마다 칼을 쥐고 있는 무장한 여자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인도, 태국 등의 나라들이 한때 ‘마쟈파히트’ 제국의 영토의 일부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 뒤에 놓여있는 진실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러한 나라들의 문화가 많은 부분에서 서로 공통적이라는 점을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사롱(허리부분을 두르는 긴 천)’을 걸치고 있고, 비슷하게 보이는 춤을 추고, 비슷한 종류의 음악을 공유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칼리리파야트’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로 퍼져나갔고, 그 무술의 서로 다른 부분들을 특화하여 서로 다른 형태의 무술로 진화해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그 무술이 주로 ‘펜칵 실라트’라 불리고, 말레이시아에서는 오늘날 ‘버실라트’로 진화했다. ‘펜칵 실라트’와 ‘버실라트’는 일반적인 명칭이라는 점 그리고 그 두 가지 아래에서 수백 가지의 서로 다른 스타일과 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전설에 따르면, 열 명의 보르네오 부족장과 그들의 가족들이 오늘날 필리핀의 ‘파나이’로 불리는 곳에 이주한 최초의 인도-말레이 인종이라고 한다. ‘푸티’ 족장에 의해 인도되었기 때문에, 이 이주민들은 땅을 얻기 위해 이 섬들의 최초 이주자들 중의 하나의 후예인 곱슬 머리의 흑인 종족의 지도자인 ‘마리쿠두’ 왕과 물물교환을 할 수 있었다. 이 족장들과 함께 필리핀 무술의 선조들이 들어왔다.


스페인 점령 이전의 시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처럼, 초기 필리핀의 격투술은 ‘칼리’, ‘팍카칼리칼리’, ‘칼리 실라트’ 등의 서로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이름들은 각 지방의 사투리에 따라 다르거나 또는 그 무술을 수련한 부족이나 가족의 이름에 기초하고 있다. 그래서 ‘타우숙 실라트(타우숙 부족의 격투 체계)’ 또는 ‘라푸라푸’ 스타일(‘라자 라푸라푸’와 그의 부족이 ‘막탄’에서 수련한 체계)과 같은 이름들이 있다. “칼리”라는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있다. 민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견해들 중의 하나는 그 단어가 칼을 의미하는 “칼리스”라는 필리핀 사람들의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단어가 힌두교의 죽음의 여신 ‘칼리(앞서 여신 칼리가 칼을 휘둘렀다는 것을 말했다는 점을 주목하라)’의 이름에서 나왔다든가 그녀의 이름을 딴 인도의 무술인 ‘칼리리파야트’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전히 일부의 사람들은 그 단어가 몸의 움직임 또는 손의 움직임을 의미하는 “카타완(몸)” 또는 “카마이(손)”와 ‘리호’(필리핀 사투리의 하나로 움직임을 의미)의 축약형이라는 견해를 지지한다.

필리핀에서 발전된 체계에서 독특한 것은 무기 수련을 맨손 수련보다 먼저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리핀 무술 특히 ‘칼리/아르니스/에스크리마’가 단지 무기술 또는 막대기 격투술이라는 일반적인 오해가 있다. 그 문제의 진실은 손으로 치기, 차기, 꺽기, 던지기 그리고 그래플링을 포함하는 맨손 격투가 또한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칼과 불로 단련된 막대기를 가지고 훈련하고 싸우며, 이와 똑같은 격투의 개념들을 그들의 맨손 무술 체계에도 이용한다. 스페인 식민시대 이전에는 이러한 무술들을 실험해볼 많은 기회들이 있었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부족과 마을 사이에서 많은 전투가 있었고 또한 산적 등에 대항하여 방어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필리핀 사람들과 무역을 하고 또한 그들이 필리핀으로 이주해오던 시대에는 필리핀 사람들이 중국 쿵푸라는 새로운 형태의 무술과 만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중국무술의 테크닉에 대항하기 위한 차원에서 필리핀 무술은 좀더 깊은 발전으로 이어졌다. 어떤 필리핀 사람들은 그들의 비밀스런 중국인 이웃들을 몰래 염탐하여 쿵푸 테크닉을 그들 자신의 무술 체계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는 ‘쿤토’ 또는 ‘쿤토 실라트’와 같은 잡종 무술 체계로 이어졌다.


스페인 점령과 식민지 시대

16세기에 스페인 사람들이 필리핀에 도착했다. 새로운 무역항해로를 찾기 위해서 배를 타고 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던 포르투갈 탐험가인 ‘페르디난드 마젤란’에 의해 안내를 받은 스페인 사람들은 필리핀의 남부 섬들에 이르게 되었다. 즉시,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에게 로마 카톨릭을 전파하기 시작했고 그들로 하여금 스페인과 동맹관계를 맺도록 요구했다. ‘세부’ 섬에서 마젤란은 개종을 할 수 있었고 ‘라자 후마본’의 총애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성공을 보아왔기 때문에 마젤란은 群島들을 더 많이 정복하기로 결정했다. ‘라자 후마본’과의 동맹의 표시로 마젤란은 ‘후마본’의 라이벌이었던 ‘막탄’에 있는 ‘라자 라푸라푸’를 공격하기는 데에 동의했다.

원주민들에 대한 자신의 우월성을 지나치게 과신했고 또한 칼과 대포,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젤란은 1521년 4월 27일 ‘막탄’을 공격하기 위해 49명의 정복자 무리를 이끌고 갔다. 그는 약 1000명에 달하는 전사들과 맞닥뜨리게 되고 곧바로 압도당하였고 이로써 그는 몰락을 맞이하게 되었다. 원주민들은 죽창, 칼, 불에 단련된 나무 막대기를 유럽인들이 전혀 보지 못한 형태의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휘둘러서 공격하였고, 스페인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전투에는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마젤란이 독화살을 맞고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생존자들은 스페인으로 돌아갔고, 이후 스페인 사람들이 필리핀 땅에 발을 딛기까지 44년이 더 걸렸다.

결국 스페인 사람들은 필리핀 群島를 점령하게 되었다. 원주민들은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부족 중심으로 분리되어 서로 배타적이었기 때문에, 조직적인 저항을 받지 않았던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은 섬과 부족들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점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群島에서 가장 용맹스런 전사들의 터전이었던 ‘민다나오’ 섬 만큼은 전체적으로 장악하지 못했다. 이것이 필리핀 무술의 발전에 있어서 또 하나의 시대가 되었다. 격투 기법들이 또한 유럽인들의 검술 기법을 극복하기 위해 적응해갔다.

‘민다나오’는 식민정복자들에게서 상대적으로 손이 닿지 않았다. 그래서, ‘칼리’는 계속해서 자유롭게 번성할 수 있었다. 이는 ‘루손’ 섬과 ‘비자얀’ 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칼리’의 효과를 눈으로 본 스페인 정복자들은 그 사용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필리핀 사람들은 혁신적이고 회복력이 빠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하는 무술이 죽어 없어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은 식민정복자들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해주기 위해 ‘모로모로’(카톨릭과 이슬람 간의 십자군 전쟁을 묘사하는 놀이)와 같은 놀이를 창조해냈다. 필리핀 사람들이 그들의 재주를 연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칼리’ 테크닉의 연습은 그 놀이를 하는 동안에 안무처럼 짜여진 싸움(스페인어로 ‘에스크리마’) 안에 숨어있었다. 필리핀에서는, 작은 싸움을 의미하는 스페인어 “eskrima/escrima"가 검술 또는 칼싸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에스크리마’는 ‘비자얀’ 지방에서는 ‘칼리’를 대신하여 더 널리 사용되는 용어가 되었다. ‘루손’ 섬에서는 ‘칼리’를 대신하는 일반적인 용어가 ‘아르니스 디 마노(Arnis de Mano - 손의 무장)’이다. 놀이를 하는 동안 필리핀 사람들은 일종의 가죽 안전띠(스페인어로 “아르네스”) 또는 가죽 갑옷을 입는다. “아르네스”의 변형된 단어인 ‘아르니스’는 ‘칼리’를 대신하는 일종의 암호명이 된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필리핀 사람들이 그들의 옷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는 필리핀 사람들은 ‘칼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술의 이름과 그들이 입는 옷을 구별하기 위해서 필리핀 사람들은 그들의 무술을 ‘아르니스 디 마노’ 즉 손의 무장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아르니스’와 ‘에스크리마’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전쟁 기간 동안에 널리 이용되었고 발전되었다. Kataastaasang Kagalang-galangang Katipunan ng mga Anak ng Bayan (국가의 아들들 중에 가장 고귀하고 영예로운 사람들의 모임) 또는 Katipunan 또는 줄여서 KKK라불리는 혁명적인 운동단체는 총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르니스/에스크리마’를 수련했고 정글용 외날칼(볼로-bolo)을 가지고 싸웠다. 그들의 주무기인 이 칼과 미국인들의 도움으로 필리핀 사람들은 1898년 스페인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것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필리핀 무술의 효용성이 훌륭하게 무장한 그들의 적들로부터 압도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미국 점령과 2차 세계대전 중의 발전

필리핀 사람들의 자유는 오래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필리핀이 곧 미국에 의해 점령되었기 때문이다. '민다나오'의 필리핀 전사들(특히 필리핀 남부 '모로'족 사람들)의 명예는 미군의 38구경 권총에 의해서는 쉽게 죽지도 않고 결국 거리를 좁혀 와서 미군을 공격했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기 때문에, 미군 병사들에게는 결국 45구경 권총이 지급되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은 미국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필리핀 사람들은 미군과 함께 일본군에 대항하여 싸웠다. 극동지방의 미군 소속 하에서 뛰어난 '볼로 부대(정글용 외날칼로 무장한 부대)'는 게릴라 저항군으로 형성되었다. '아르니스'의 분노와 효과가 다시 한번 빛을 보게 된 것이 바로 이 전쟁에서 였다. 일본군들은 그들에게 돌진하는 '볼로 부대'를 보기만 해도 도망을 갔다는 말이 나오곤 했다. 곧 연합군은 일본군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 기간 동안의 마스터들은 오늘날 필리핀 무술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졌던 사람들이다. 많은 수의 전쟁 베테랑들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후에 이 무술을 미국인들에게 소개했다. 처음에 필리핀 무술은 매우 비밀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그러나 ‘GM 앤졀 카발레스’ 같은 사람들의 개척 노력에 의해 필리핀 무술은 미국의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대다수의 필리핀 무술의 마스터들은 뒤에 남아서 여전히 그들의 지식을 필리핀의 현재와 미래 세대들에게 계속 전수하고 있다. ‘UP AngKAN ng Mandirigma-LESKAS’ 멤버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때마침 우리가 그곳에 있게 될 것이다!

*웹서핑중 칼리. 아르니스의 역사에 관한 글을 발견하고 카페에는 없는 자료이기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출처 : Abuka & Banamu
글쓴이 : 아부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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