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일본고류검술

촛불하나 2012. 7. 1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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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육군 군용검술 토야마류 거합

 

 

토야마류 - 정식 명칭은 토야마류거합(戶山流居合)
1925년 제정된 일본육군의 군도술 체계인 군도의 조법(軍刀の操法)을 기반으로 전후에 여러 요소를 덧붙여 현대에는 민간 거합술 유파로 명맥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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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특징
3 약점
4 한국과의 관계
5 관련 항목


1 개요 #


일본육군러일전쟁 시대까지 프로이센의 화력전 교리를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도나 군도술을 정비하는 데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는 이미 일본 군내에 복무하는 장교들이 구 무사 계층으로써 검술에 소양이 있다는 점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일본이 생각하는 미래전쟁은 대포와 총 즉 화력으로 승부가 나지 구태의연한 칼이 나설 여지는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러일전쟁에서 재고를 맞게 된다. 세간에 알려진 상식과는 반대로 러시아는 프랑스식 돌격주의 교리를 신봉하고 있었는데 일본군이 큰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방어선에 접근하게 되면 러시아군이 일제히 검을 뽑아 휘두르며 총검돌격을 가하는 터라 백병전이 결코 옛날 이야기가 아니었고 일본군이 이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미 청일전쟁에서도 도검전투가 간간히 벌어졌으나 어디까지나 후진국인 청국이기에 그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유럽 강대국인 러시아의 경우에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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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1차대전의 양상은 일본의 생각을 바꾸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1차대전은 과거의 전쟁 양상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참호전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으며 이 과정에서 적 참호에 돌입하거나 돌격시 서로 백병전을 벌이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정글도너클,너클나이프, 야전삽, 커틀러스, 철퇴등의 원시적인 무기들이 큰 활약을 했던 것이다.

일본의 교습모델이었던 서구 열강들의 이러한 행동을 본 일본은 미래전에서도 백병전은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고 이에 따라 1900년대도 20여년이 지나 장교들과 부사관의 세대가 바뀌어 검술의 소양도 차츰 사라져가는 세태를 반영하여 검도의 형성에도 관여한 나카야마 하쿠도(中山博道), 쿠니이 젠야(國井善弥),다카노 사사부로(高野佐三郞) 등의 유명한 검객들이 모여 토론하여 군도술의 제정을 위한 기술을 개발했고 대정14년(1925년) 토야마육군병학교 검술과장인 모리나가 세이(森永清)중령이 그중 거합술 5본을 채용했으나, 아직 토야마육군병학교에서 교습-연구중이었을 뿐 전 육군에 보급되지는 않았다.

그후 소화 15년(1940년), 소화시대의 검성으로까지 불린 모치다 모리지(持田 盛二), 사이무라 고로(斎村五郎) 두 검객이 참여하여 기술의 개정과 추가가 이루어졌고, 1940년 11월에는 육군장교의 친목단체인 해행사(偕行社)에서 전군에 소책자 <군도의 조법(사용법) 및 시참:軍刀の操法及試斬> 을 배포하여 이때 비로소 전군에 완전한 보급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소화17년(1942년)에는 돌격하면서 검을 쓸 수 있도록 달리면서 발도하고 베는 기술이 추가된다.

전쟁에서 패전하고 토야마육군병학교가 폐지되면서 군도의 조법은 배웠던 사람들에 의해 토야마류(戶山流)라는 유파명이 붙여지고 민간 검술로써 계승되게 된다. 그러나 민간 검술화되면서 옛 기술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에 따라서는 자체적인 기술의 추가와 개정을 행하는 경우도 있고, 고류 거합의 피뿌리기 동작을 넣는 등의 경우도 있다. 유파이니만큼 류조나 창시자가 있어야겠지만 군용검술로써 처음부터 많은 검객들과 군인들이 관련하여 만들어졌고, 1925년부터 1945년까지 20여년에 걸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개정과 개량이 이루어졌으므로 누가 류조인가를 주장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체에 따라 1925년 토야마육군병학교 검술과장인 모리나가 세이(森永清)를 류조로 삼는 곳이 있고, 역시 검술과장으로 재직했던 야마구치 유우키치(山口勇喜)를 류조로 삼는 곳이 있다. 두명 다 전후에도 토야마류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 힘썼던 사람들이다.

2 특징 #


토야마류는 검술이라기보다는 거합술로 분류된다. 즉 제자리에서 칼을 뽑아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을 주로 하고 있으며 특히 일도양단의 기세로 상대를 일격에 참살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하며, 이에 따라 다양한 상황에서의 발도술, 그리고 상하좌우와 대각선까지 8방향의 베기를 연습하는 것, 그리고 물체를 베는 타메시기리(試斬)훈련 등이 가장 중시된다.

고류 거합술과의 가장 큰 차이는 고류 거합술이 상대와의 대면 중 불의의 사태, 즉 기습이나 암살, 습격에 대비하여 급히 칼을 뽑아 제압하고 생존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으므로 잔심(残心)을 중시하고 앉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을 상정하는 데 비하여, 토야마류는 전쟁터에서 적과 마주쳤을 때를 상정하므로 서서 발도하는 것을 가장 큰 차이로 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가진 이유는 우선 제정 당시인 20세기 초반의 전쟁터에서는 검대 검의 싸움이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보았고, 따라서 굳이 배워야 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칼을 빨리 뽑고 강하게 베는 것을 추구하여 불시의 조우나 급변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 군인들로 하여금 쉽고 빨리 배워 얼른 소양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현대의 토야마류는 민간 유파가 되어서 그런지 군복과 군도가 아닌 전통 복장과 전통 카타나를 사용하며, 예법이나 잔심, 칼을 든 상대를 제압하는 이치 등의 옛 요소를 도입한 경향이 있다. 대체적으로 군대스러운 모습은 별로 남아있지 않으나, 오리지널 군도술은 군도의 조법(軍刀の操法)이라 불리며 현대 토야마류에도 남아 있다. 군도의 조법 및 시참軍刀の操法及試斬 매뉴얼의 내용이 토야마류의 가장 근본이자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으며, 이 매뉴얼은 현대에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여기에 군도의 조법 및 시참軍刀の操法及試斬 매뉴얼을 남긴다. 근본적으로 혼자서 하는 수련법으로 되어 있으므로 일본어를 이해하고 매뉴얼을 충실히 따라하여 체득하면 기본적인 일본도 사용법의 소양은 누구나 갖출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아래의 영상은 토야마류의 기초거합으로써, 군도의 조법과 동일한 동작이므로, 영상을 보고 따라하면 좋다.






(토야마류의 시참은 다른 유파의 그것에 비해 호쾌하다는 평을 받는다. 뭐 애초에 이걸 가장 중시하기는 했지만..)

3 약점 #


비록 검성이라 불리는 유명한 검객들이 나서 체계를 확립했다고는 해도 근본적으로 혼자서 하는 거합술이며, 가장 기본적인 내용들만 빠르게 습득하도록 한 만큼 칼을 든 사람을 제압하거나 다른 무기를 든 병사들과 싸워 이기는 방법은 따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세이버 검술이 옛 중세 검술에 비해 교습의 편의성과 도보 검술의 보조적인 위치를 고려하여 빠진 부분이 많아 검술적인 면에서 약점이 많았는데 이 군도의 조법은 상대와 공방을 벌이는 부분까지 빼버렸으므로 당연히 전통적인 검술의 관점에서는 검술이라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다. 물론 그래서 모두들 군도의 조법과 토야마류를 근본적으로 검술이 아닌 거합술로 부르기는 하나, 군도술이라는 카테고리 면에서는 옛 세이버 검술이나 커틀러스 검술에 비하면 매우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가 현대전의 효시인 1차대전 이후이고, 그러한 점에서 빠른 소양 교육과 습득, 당시의 전장을 고려한 실용적 기술들만을 간단하게 제정한 점에서 볼 때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이러한 점은 검술로써의 면에서는 분명히 문제이기 때문에, 현대의 토야마류에서는 고류에서 모방한 쿠미타치 등의 훈련법을 추가하여 이런 문제를 일부나마 보완하고 있는 편이다.

4 한국과의 관계 #


식민지 지배자의 검술이었다는 점 말고도 이 토야마류의 기법을 배운 장교들이 남경에서 민간인을 참살하는 못된 짓을 하고 다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한국과는 인연이 깊다.

토야마류를 배워 부사관으로써 중일전쟁과 2차대전에 참전했던 나카무라 다이사부로(中村大三郞)는 남경을 비롯한 중국 각지에서 민간인을 벤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전후 그는 자신의 전쟁중의 경험과 토야마류를 배운 것을 살려 자체적으로 연구를 더해 나카무라류 팔방베기 발도도(中村流八方切り抜刀道)를 창시한다. 베기술과 도검 그 자체에 대한 연구가 매우 깊어 전후 일본 검술계에서는 이름이 높았는데,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베기술이나 시참에 대한 인식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이에 베기술을 추구하던 비천 이영식씨가 우연히 나카무라류의 교본을 입수하여 자체적으로 연구에 연구를 더하고, 마침내 나카무라 다이사부로를 초빙하여 나카무라류를 직접 사사받아 베기술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데, 마침 세를 한창 늘리던 해동검도에 이영식씨의 제자들이 들어가게 되고, 해동검도에서 마침내 베기술이 확립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베기라는 것이 짚단과 대나무를 베는 일본식 시참의 형식을 그대로 따오게 된 것이다. 나카무라류의 근원이 곧 토야마류이니 한국의 베기술은 토야마류 거합술의 제자쯤 되는 셈인데, 진검, 실전베기를 강조하며 검도를 왜놈칼질이라고 까대는 해동검도가 정작 자신은 일본제국의 군용검술을 가져다 쓰는 판이니, 이래저래 토야마류와 한국의 관계는 깊고도 아이러니하달수밖에.


5 관련 항목 #


* 일본군도
* 신군도
* 검도(劍道)
* 나카무라류(中村流八方切り抜刀道)
* 해동검도(海東劍道)
* 세이버 검술(Saber Exersice)
출처 : rockstream
글쓴이 : rockstream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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