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서 보낸 가을

하늬 2008. 12. 18. 16:32

어떤 선배가 고국의 모친을 모시고 유럽을 여행할 때 모친께서 이런 말씀 하셨다고 한다.

 

"맨나 부서진 집터만 봐서 뭐하나?"

 

그러게, 부서졌건 부서지지 않았건 남의 집터 그리 돌아다녀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끔 다른 세대 다른 계층 다른 나라 사람이 산 흔적은 우리 세대 우리 계층 우리나라 사람이 사는 이야기와 비교거리가 되기도 하고 영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쉔브룬은 부서진 집터가 아니다. 헝가리에 지배의 손길을 뻗치는 바람에 터키인들이 비엔나를 공격하고 파괴한 일이 있지만 파괴된 집터는 복구되고 확장됐다. 1945년 2차대전 말에 쉔브룬 궁전 뒤 공원 높이 있는 "글로리에테"의 오른쪽 날개가 파손된 것도 20세기 말에 고쳤다. 2007년에는 천백만 유로를 궁전을 수리하고 다듬는 데 투자했다.

 

 

 브룬 공원 언덕 "글로리에테"에서 내려다 본 쉔브룬 궁전과 비엔나 시가 (c) 이창 

 

서울이 도읍지가 된 14세기, 이곳 쉔브룬 자리에는 아직 방앗간과 포도밭이 있었다.

그후 방앗간 자리를 인수받은 신흥부르조아가 별장을 지었고, 별장은 1559년 막시밀리안 황제 2세가 인수하여 사냥 별장으로 사용했다. 1529년과 1683년 터키인의 침공으로 파괴되었으나 터키인이 물러간 후 복구했다. 1740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즉위 후 프랑스와 프로이센을 상대로 소위 "상속 전쟁"을 치루면서 아버지의 집보다 자신의 집으로 선택하여 확장했다. 나폴레옹이 진주했을 때는 나폴레옹이 먹고 잤으며, 2차대전 후 영국군 지휘부가 이 곳에서 지니기도 했다. 오늘날은 오스트리아 국내외 여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모두 1441개 방 중 40개 방만이 개방돼 있지만, 1918년까지 유지된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 지배체제의 화려한 흔적을 충분히 볼 수 있다.

사실은, 유럽 각국의 건축사와 화가와 수공예가들의 솜씨가 집약된 흔적이라 해야겠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지배자로 군림하는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력을 합리화하고 자찬하는 데 기여했다. "대회랑"의 천정벽에 이탈리아 화가가 그린 그림은 마리아 테레지와 여제와 로트링엔 출신 그의 남편의 즉위식과 주변국가들에 대한 지배력을 상징한다. 이곳은 공화국 체제 도입 이후에는 음악회에 사용되었다. 1961년에는 케네디와 후루시초프의 역사적 만남이 있은 곳이기도 하다.

상속전을 치루며 고생한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의 자녀들을 유럽각국에 결혼시킨 이야기 또한 유명하다. 프랑스로 시집가서 혁명기에 교수대에 처형된 마리 앙뜨와네트도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쉔브룬 궁전에는 사냥복을 입은 마리 앙뜨와네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6세 모차르트가 연주했다는 "거울이 있는 방"은 모차르트 아버지의 기록을 인용해 여행자들에게 쇤브룬 궁전의 의미를 더해 준다. 

 

 궁전 바로 뒤 '황태자의 정원'이라 불리는 곳 (c) 이창

 

쉔브룬의 매력은 왕가의 화려한 흔적이 아니라, 그 궁전 뒤로 펼쳐진 공원이다. 1779년부터 대중에게 개방되었다. 동서 1,2 km, 남북 1 km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공의 건축과 자연의 조화를 꾀한 바로크 정원의 일례로 꼽힌다. 공원의 석조물은 하나하나가 예술품이다. 현재 상태가 마리아 테레지아 말년에 확장한 상태와 거의 같다.

 

 좀 걸어야 할 것이니 궁전 구경 후 가방 속 빵을 꺼내 여기 벤치에 앉아 먹을 수 있다. (c) 이창

 

 

올라가는 길에는 여기 저기 분수가 있다. "쉔브룬"이란 궁전이름의 원조가 된 "쉐네 브룬넨" 즉 "아름다운 우물" 자리에는 1799년, 님프가 물을 바치는 모습이 담긴 석조물이 있다. 이 물을 마시면 아름다워진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샘을 마티아스 황제(1557-1619)가 발견했다고 한다. 요셉 1세 황제는 물을 이곳에서 꼭 떠오게 했다고 전해진다.

 

나야덴 브룬넨"은 넵툰의 수하 나야단의 이름을 땄다. 

나야단 분수, 공사중이다. (c) 이창

 

방앗간이 있고 아름다운 물의 전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물의 신과 물의 요정에 대한 갖은 상상력이 이곳에 동원됐다.

 

(c) 이창

 

오벨리스크 분수는 거북이 등 위에 오벨리스크르 세우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무궁한 번영을 염원한 흔적이 있다. 거북이 등에는 원래 금박까지 씌웠다 하니, 물방앗간 여주인이 아닌, 피로 지킨 권좌에서 무궁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것 같다.

설흔 세살 마리아 테레지아가 아버지의 궁전을 떠나 이 곳을 선호한 것 또한 물 좋은 자리 찾아온 것은 아닐까? 마리아 테레지아의 살롱이 온통 중국 가구로 채워진 것을 보면, 마리아 테레지아의 여성성이라던가 친동양문화 성향이 궁전 선택에 자리할 수도 있었으리란 추측을 문득 해 본다. 

 

오벨리스크 분수 (c) 이창 

 

물을 다스리는 바다의 권력자 넵툰도 분수의 주인공으로 모셨다. "넵툰 분수"라 한다.

 넵툰 분수는 쉔브룬 궁전에서 언덕위 승전기념관 "글로리에테"로 오르는 직선 거리에 있다. (c) 이창

 

이미 1770년도 마리아 테레지아가 쉔브룬 궁전 확장을 계획할 때 들어 있던 컨셉이다.

 

삼지창을 손에 든 바다의 교통순경 넵툰. 왼쪽에는 님프, 오른쪽에는 바다의 신 테티스의 간청하는 모습이 있다. 테티스가 아들 아킬이 무사히 항해하도록 부탁하는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천적으로도 칭해지는 바다의 깡패신, 물의 신 넵툰은 삼지창을 들고 위력을 보이려 한다. 그런 넵툰은 16세기와 18세기 사이에는 자신들이 지배하는 구역의 힘의 관계를 잘 호도하고 싶은 제후들에게는 이상적인 비유대상이라, 백성을 물처럼 이리저리 다루고 싶은 마리아 테레지아도 넵툰을 모셨다.

 

넵툰상을 모신 권력자는 물의 요소를 사회 내 힘의 역학구조의 비유로 이해했다. 넵툰이 물 다루듯 백성 다룰 생각 한 것이다. (c) 이창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학교에서 단체로 소풍온 분위기 청소년들이다. (c) 이창

 

걸어오르기 귀찮은 이들은 마차를 타기도 한다.

 

비엔나에서는 시내에서도 이런 마차를 볼 수 있다 (c) 이창

 

언덕 위에는 승전기념관 "글로리에테"가 모습을 드러낸다.

 

 글로리에테가 보이는 언덕 (c) 이창

 

글로리에타는 승전을 기념하는 곳이었다. 1775년에 지었다. 19세기에는 만찬 장소로 활용되었다. 1925년에는 이 글로리에테 부근에 있던 부엌이 철거되고 1926년에는 원래 건축에 들어 있던 유리문이 철거됐다. 승전 기념관 글로리에테가 다시 복구된 것은 동구권 몰락 이후 온갖 서방세계가 흥청망청 신나하던 90년대 중반, 1995/96년에 재건됐다. 유리도 원래모습대로 들어섰다 한다. 단지 과거와 다른 것은 이곳에서 왕족과 귀족의 만찬이 진행되지 않고 여행자들이 담화하는 커피숍이 들어선 점이다.

1995/96년대에 유리를 다시 채워넣었다. (c) 이창 

 

이 곳에서 쉔브룬 공원과 궁전을 내려다본다. 물 많은 방앗간 자리에서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 시대 계몽사상을 받아들여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쉔브룬을 증축하고 합스부르크가를 든든히 세웠다. 그러나 인류사의 흐름은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면서 왕가와 귀족들은 그들끼리의 구석으로 돌아갔다. 아직도 세상에는 지난 시대 혹은 잘못된 시대의 기득권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이 있지만, 쉔브룬 바로크식 공원을 거닐며 참으로 깊이 저며드는 생각은, 그래도 사람세상은 골고루 행복해지려는 의지와 노력으로 밀려간다는 사실이다. 

 

 

글로리에테 아래 호수 (c) 이창

 

쉔브룬 궁전 관리회사 측에 따르면 매년 궁전 방문객은 평균 150만 (2007년 통계는 260만 명), 공원과 부대시설 방문객은 520만 명이다. 모두 합해 연간 평균 670만 명이다.

 

입장권은 3종이 있다.

 

첫째, "임페리알 투어"다. 궁전의 1441개 방 중 22개 방만 볼 수 있다. 프란츠 요셉 황제 부부가 공적으로 사용한 공간을 볼 수 있다. 9유로 50 (할인: 5유로 50), 입장할 때 받는 오디오 가이드는 35분짜리다.

둘째, "그랜드 투어"다. 개방된 40개 방 모두 볼 수 있다.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사용한 방, 프란츠 요셉 황제 부부가 사적으로 사용한 방까지 포함됐다. 12유로 90 (할인: 9유로 90)이다. 오디오 가이드 길이는  50분 가량이다.

세째, 시시 티켓이다. 제국의 몰락시기에 죽은 아나키스트에게 암살된 후, 갑자기 제국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황제비 엘리자베스의 별명 "시시"에서 따온 티켓 이름이다. 시시 전시관과 은빛 박물관 등 황제 아파트 등 시내에 있는 황제 관광명소 입장권을 포함한다. 22유로 50 (할인: 11유로 50)이다.

비엔나를 며칠 머물다 보면 밥값보다 입장료가 더 많이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리 계획하는 경우는 이런 입장권 콤비를 통한 절약방법을 활용할 수 있겠다. 전차비와 각종 전시관 입장료를 일정 퍼센트 할인받을 수 있는 "비엔나 카드"도 검토 활용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계절에 따라 특별대우 입장권 기획이 있다.

 

1996년 세계문화유산위원회 20차 회의 이후 세계문화유산기록에 등재되었으며 2007년 수입총액은 3150만 유로다. 이 중 2천만 유로가 입장권 발매 수입이고 670만 유로가 기념품 가게 수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