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서 보낸 가을

하늬 2008. 12. 20. 00:28

비엔나 이야기 7 

 

 

 

 프로이트 카페의 단추 초상화 

  

 

프로이트 기념관에 갔다.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있는 창문도 비엔나스럽게 풍성한 장식이다.

 

프로이트 기념관에는 프로이트에 관한 문서와 사진 뿐 아니라 당대 비엔나의 문인과 친지들이 주고받은 말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프로이트의 고민이 개인의 고민만이 아니라, 바로 당시 비엔나가 안고 있던 모순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프로이트

 

19세기 후반, 유럽에선 대도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시끄러워지고

사람심사가 어지럽고 복잡해진 시대,

비엔나의 의사 프로이트는 아주머니들을 치료하다

인간심사의 또한가지 비밀을 찾아냈다.

 

문학과 미술이 그 비밀을 표현하는 데 전문인 줄 알았으나

의사 프로이트도 그 비밀을 밝히는 데 일조하여 그 후 인문학에 기여했다.

 

 

반무의식이라느니, 무의식 같은 것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것에 의해 움직이는 행위,

혹은 자신의 현재의 품위와 일상유지를 위해 억제한 심사가

숨어만 있지 않고 때론 실착행위로 때론 폭발하는 원리를

명쾌하게 이름붙인 프로이트

 

 

무지무지 쿨한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본 의사이자 작가인 슈니츨러와

저기 저 흑백사진에 함께 찍혀 있다.

 

그땐 대도시의 급부상으로

억압심리와 억압의 힘보다 갑절의 힘으로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와 꽂히는

모순과 정서혼란이 두드러진 시대

 

 

눌린 것 숨은 것들이 스스로 올라와서

정신없게 할 수 있다는 원리

 

아니 혹은

 

숨은 것고 숨기고 싶은 것들을 오히려 정직하게 응시하고

인정하면서 치유할 수 있다는 메시야적인

위대한 인간발견의 소식. 

 

비엔나에서 그 흔적을 만났다.   

 

 

그 흔적은 문헌과 사진과 비데오가 널린 프로이트 기념관이 아니라

그 부근 <프로이트 카페>에서 만난다.

 

<프로이트 카페>란 그곳을 들어서니 별난 프로이트가 있다.

 온통 종양 난 듯 우둘투둘한 표면.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추로 만든 그림이다.

프로이트 외에 베토벤, 카프카, 슈니츨러 등... 비엔나 예술가들 초상도 있다. 

 

 

<프로이트 카페>에서 진짜 비엔나 커피 <멜란쥐>를 마시며

 

<단추>를 명상한다.

 

구멍에 끼워서 두 차원을 이어주는 물건. 단추.

 

우리가 스스로를 아끼며 바라보는 정직한 시선이 모여

단추처럼

우리의 올바른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까?

 

우리가 억압한 희망이

우리가 꿈꾸다 숨긴 미래가

다시 우리들의 삶과 이어질 수 있을까?

 

좌절된 꿈에 대한 기억 혹은 좌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 속 깊이 꼭꼭 숨겨둔

 

새로움에 대한 기대

변화에 대한 의지를

다시 응시하고

원시의 천진함과 건강함으로 다시 인정하며

  

 

슬그머니 일상으로 끄집어 올려

무한한 상상력으로, 거대한 실천력으로

우리의 삶을 우리의 역사를 복구할 수 있을까?

 

이럴땐 훌훌 떠나고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