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하늬 2010. 10. 6. 20:25

동이를 폄하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보여

오늘 도서전시회 나가기 앞서 몇 자 적습니다.

 

***

 

연속극 동이 58회는 참으로 통쾌한 반전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그 반전은 이미 복선으로 깔려 있었습니다.

이미 57회에서 중전이 의문을 제기했죠.

왜 동이는 세도가의 딸을 연잉군의 짝으로 정하지 않았을까?

장무열은 연잉군의 장인 서종제가 살던 집이 '왕기가 흐르는 집'이라는 소문을 이용한 것이라 하고

중전은 갸웃뚱하며

'그럼 왜 동이는 그 '왕기가 흐르는 집'으로 가지 않고 궁궐에 남길 원했을까 하고 또 묻습니다.

장무열은 그처럼 의중을 알 수 없으니 위험하다는 것이라고 또한번 부채질합니다.

그리고 58회는 모두 장무열의 뜻대로 돌아가는 듯했습니다.

 

<복선>

 

그렇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서 다시 58회를 보면

연출의 뛰어난 전략을 알 수 있습니다.

 

중전이 동이의 보경당을 찾았을 때

중전이 장무열의 조종을 받고 온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조금 있으면 드러납니다.

 

중전이 동이에게 그날로 출궁하라 명할 때

그 복선을 함께 읽지 않은 시청자는

중전이 그냥 꼬박 장무열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합니다.

 

58회에도 복선이 있습니다.

 

"궐에 군사들이 있는데 왜?"

하는 나인들의 질문에 대해

"하명이다" 하면서

감찰부에서는 동이의 처소를 관찰합니다.

 

이는 그 하명이 중전의 명령이란 것을 알리는 것이지만

이미 패배주의 미학에 젖은 시청자들은

모든 것이 장무열의 뜻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이가 장무열의 계략을 뒤늦게 깨닫고 "함정이다" 하며 

알려야 한다고 하자

감찰부 최고상궁이 급히 달려갑니다.

누구에게 달려갔을까요?

 

얼핏 생각하면

함정에 빠질 수 있는 차도사에게 알리라는 지시를 할 수도 있겠지만

감찰부는 이미 하명에 따라 - 장무열과 무관하게- 동이의 처소 보경당을 지키고 있었지요.

 

그리고 그 감찰상궁은 다시 한단계 건너 어떤 편지를 동이에게 전합니다.

 

누구의 편지일까요?

왜 감찰상궁은 직접 동이에게 편지를 전하지 않을까요?

 

여기 보이지 않는 중전의 게임이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중전은 세자가 가야할 곳이 연희당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동이는 좀 늦게야 우연히 알았지만 말입니다.

 

그럼 그 길이 동이가 출궁할 경우 가야할 길과 같은 길이란 것도

알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함정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것이지요.

 

동이를 어거지로 그날 출궁하도록 해놓고

가마꾼 핑게로 궁에 남기고

그 사실을 아직 모르는 차천수는 습격을 받을 수도 있을 동이를 지키기 위해

노론의 사병을 모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길목을 지키는데

세자를 그 길로 보내고

자작극을 꾸미고 차천수가 개입하게 한 후

정식 군대가 나타나면

차천수가 세자를 해치려 했다는 증험이 확실해지니까요.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졌다고 자신하는 장무열이

연잉군과 동이와 그의 수족들을 모두 체포하게 해 달라고 중전에게 요청하는데...

 

"... 사특한 무리"를 처단하겠다고 중전이 장무열에게 말하는 순간에도

그 사특한 무리가 장무열 일당을 겨냥한 것이라는 것을

장무열은 물론 시청자들은 거의 눈치채지 못합니다.

 

단 중전의 장면에서 극의 전개에 대한 복선을 읽은 시청자들은

'행여나' 중전이 모두 파악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뿐입니다.

 

<속아넘어가는 시청자 마음>

 

사람이 바라는 바가 크면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놓친다 하지요.

 

동이 애청자들은 그냥 동이 불쌍한 생각에 차천수 마음이 되고

동이를 어떻게든 폄하하려는 시청자들은 당연히 장무열이 편에서 극을 볼 터이니

한 수가 낮아서 볼 수 없을 것이구 말입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면을 읽고

통쾌한 장면에 고무되어

다시 돌려 읽으면 다음 장면이 다르게 보입니다.

 

중전은 57회에서 장무열에게 보인 의구심을

본인 스스로 확인하러 한밤중에 동이를 찾습니다.

 

동이는 이미 중전의 의중을 궤뚫어 봅니다.

중전이 이미 동이의 진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는 동이가 세자에게 먼저 보여준 믿음과도 같습니다.

 

대화가 진행되면서 

동이가 중전이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고 하는데

장무열이 급히 중전을 만나려 한다는 전갈이 옵니다.

 

중전이 또 속는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3초의 묘미>

 

극에서는 동이가 그사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고

딱 3초 후에 이미 중전은 장무열을 만납니다.

 

이것은 영상물이 갖고 있는 장점을 활용한 것입니다.

극에서는 3초만에 중전이 동이의 보경당 처소에서 장무열을 만나는 장면으로 이동하지만

 

사실 중전이 장무열이 중전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말을 듣고

바로 일어났다 하더라도 3초 안에 뜰에서 장무열을 만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물론 이 극의 묘미는 또

실제 시간보다 훨씬 늦게 장면이 계속되기도 합니다.

거의 동시에 여러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실 3초 안에 이어져야 할 장면이지만

 

다른 곳에 갔다 오느라

몇 분 후에 이어지기도 하지요.

 

그러니 여기 중전의 장소이동 3초가

10분의 생략이든 20분의 생략이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3초의 생략으로 극을 흥미진진하게 하면서

동시에 반전의 쾌감과 함께

위엄있는 동이의 모습은

 

<희망을 주는 극>

 

새로운 사극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릴 때는 착한 사람들이

늘 당하는 사극만 보았던 것 같습니다만,

 

이렇게 착한 사람이 영리하고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진짝 착한 사람은 당연히 영리하고 당당할 수 있다는 믿음을 부추기는 장면입니다.

 

원래 한국인에게 자리하고 있는 심성을

동이를 통해 재현해 준

 

이병훈 pd에게 갈채를 보냅니다.

 

이병훈 피디를 두고

지금 "권선징악, 동화" 같은 극이나 만드는 이병훈 피디라면서

폄하하는 사람들은

극의 전개가 자신들의 인생철학과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극의 전개와 구성에 대해 좀더 관심 가졌으면 싶군요.

 

극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된 극은 그냥 희망을 소나기로 내리 붓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전개, 영웅과 주변과의 부대낌, 사랑, 의지,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

뭐 이런 것들을 얼마나 절묘하게 섞어 빚어내느냐에 달려 있는 거지요.

 

희망을 주는 극이 가짜라구요?

 

그럼, 비싼 밥 먹고

아까운 시간 들여 재미 보는 일인데

인생에서 권력에 빌붙는 인간들의 승리만 보여주고

권력다툼하고 비자금 갖다바치는 인간들만 잘되는 극을 보여주어서

세상 살면서 더 절망하게 하는 극은 진짜인가요?

 

<왠 역사왜곡?>

 

대장금보다 더한 희망을 주기 때문에

동이를 애청합니다.

 

역사왜곡이라구요?

역사는 받아쓰기가 아니지요.

 

그런 주장하는 사람들은

타임머신 타고 가서 다큐 찍어 오세요.

 

인원왕후가 연잉군을 양자로 삼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인원왕후가 처음에는 소론에 기울었으나

나중에는 노론과 가까웠다는 기록은 역사 소재입니다.

 

드라마를 쓰는 사람은

당시 사가들이 쓴 시선과 문체를 그대로 받아 쓰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결과론적으로 당파성으로 분류한 표현의 실질적인 근간을 찾아보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때야 요즘처럼 감시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지 않으니

동이가 출궁 후 사가에 있을 때

숙종이 얼마나 함께 있었는지 일일이 기록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설혹 숙종이 동이를 홀대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또 그런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하더라도

드라마에서는 그런 개인사적인 동기는 충분히 바꿀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동이를 역사왜곡이라 하시는 분들은

쉴러의 '마리아 스튜어트'와 실존인물 마리아 스튜어트를 비교해 보시고

그외 여러 버전들 비교해 보는 것이 정리를 위해 도움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원왕후>

 

인원왕후의 성격에 관해서도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극작가가 매우 치밀하게 구성한 것이 돋보입니다.

 

궁에 들어올 때야

인현왕후 측근쪽에서 선발된 것 아닌 다음에야

당연히

소문도 있고 하여 동이라는 존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로 당시 문화맥락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충실성을 말하는 것이며

 

이어서 거듭 확인하고 스스로의 판단을 해 나가는 과정은

바로 극작가의 치밀한 구성 없이는 불가능했다 싶습니다.

 

배우들의 표정 또한

58회 마지막 장면을 다 보고 나서

다시 돌려 보면

다르게 해석된다는 점

 

극중 인물 동이만 멋있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동이가 멋있습니다.

 

**

<여자들이 이겼다>

 

그리고 또하나

58회가 안방사극의 거대한 전환기를 뜻한다는 것은

 

바로 여자들이 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칼을 휘두르는 남자들보다 강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극 속 여주인공들이 당파정쟁의 희생물 혹은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문화 코드 속에서 정석을 지키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본질을 지키려 한 노력이 승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없는 틈을 타 사특하게 권력을 장악하려 한 장무열의 최후가 어떻게 될까요?

 

****

 

 

시원하게~~ 풀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ㅋ
재미있게 보고갑니다..
이 모든것은 숙종의 농간입니다..
이미 중전과 감찰부에 비밀리 내려진 교서에 의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 진행되는 과정입니다..

뭐 그럴 듯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잘 이해되지 않는 주장 같습니다.

극 속 내용은 극 속 인물의 성격과 전개과정을 참고로 하여 평가하는 것이 정석인데 좀 특이하게 해석하는 방법을 취하시네요. 이미 숙종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 진행한다면, 중전은 왜 한밤중에 동이를 찾았으며, 숙종은 어떤 편지를 받고 왜 부르르 떨었을까요?

중신들이 휘두르는 정치판에 찬물 끼얹는 스타일 숙종이란 인물 (여기서는 진짜 숙종이 그랬냐 아니냐 하는 식의 논란은 또다른 촛점이구요)이 극 속에서 하는 행동을 두고 '숙종의 농간'이라 단언한다면, 상당이 숙종이 중신들이 휘두르는 정치판, 천출에 대한 선입견이 팽배한 소위 양반 나리들과 정서가 비슷한 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농간'이란 식의 표현이 나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극 중에서 생략되는 부분은 무조건 생략하고 추정으로 남겨 두는 것이 아니라 복선으로 까는 것인데, 숙종이 중전에게 원래 동이가 중전 자리를 마다했다는 사실과 어느 정도의 계획은 이야기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서술된 것으로 보아 중전과 감찰부에게까지 비밀교지를 내렸을 정황을 유추할 수 있는 극 중 정황은 없습니다.

단지 양반 세도를 누르려는 극중 숙종의 지향점이 '농간'으로 이름 붙여진다면, 이것은 해석자의 개인 취향이 들어간 작품 외적인 해석인 것 같네요. 드라마 이야기를 하며 작품 외적이 해석이 너무 많으면 좋은 작품을 제대로 분석하는 힘이 상승하기 힘들 것이며 좋은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에게도 힘이 빠지는 일이겠지요.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서 보통 스토리 정리나 작품 해설을 하는 것은 공유를 위해 좋은 일이지만
작품 분석이 아닌 작품 외적 해설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곤란한 것 같습니다.
1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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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58회 있는 곳EvbNX6YvRY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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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58회 있는 곳boMmdpofxX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