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하늬 2010. 10. 9. 06:35

시월의 프랑크푸르트

6일-10일 세계도서전시회


시월 프랑크푸르트는 책시장판이다. 프랑크푸르트 세계도서전시회라는 이 행사는 문화행사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시장판이다. , 사진, 영화 등 온갖 저작권 거래가 오가고 크고작은 책 매매, 그리고 출판사들의 수입 증대를 위해 각종 이벤트를 하고 유명작가들과 정치인 스타들이 심심찮게 오가는 장터다. 무역전시장 뿐 아니라 시내에서도 심심찮게 책전시회의 파도를 느낄 수 있다. 닷새 전시회 기간 중 마지막날 이틀은 관련 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인들이 입장하여 세상 책 구경을 한다. 전시장에 나온 출판사들은 할인 가격으로 책을 팔기도 하고 전시 기간 동안 장식용으로 사용한 장식품도 행인의 필요나 전시자의 기분에 따라 넘겨 주기도 한다. 폴크스스포츠 곧 대중운동이라고까지 하는 책전시장 구경가는 일을 물로 지독히 빽빽한 인파들 사이을 밀고 당기며 걸어가야 하는 힘든 날이지만 왜 사람들은 이 책전시회에 기를 쓰고 갈까?


책 홍수


장터란 것은 거대한 동상이몽의 광장이다. 책이란 이름 아래 오가는 이 많은 사람들은 사정에 따라 바라는 바가 모두 다르다. 장사할 사람은 장사를 생각하고 번역가 작가 사진작가들은 자신의 부가가치를 인정해 줄 출판사를 찾아나서고 에이전시는 저작권 중매사업으로 바쁘다. 이 장터에서 일차 주역이 아닌 일반인은 닷새 전시 기간 중 마지막 이틀 토요일 일요일에만 입장이 가능하지만 이들 또한 책 장터 풍경에 중요한 주인공들이다. 많은 것을 갖고 싶기도 하지만 딱히 모두 갖지 않더라도 그것을 가능성의 영역 속에 머무른다는 기분으로 오가는 구경꾼의 자유를 한껏 누리는 이들이다.

학자나 전문가, 학생들은 평소 사고 싶었던 책이나 관심 있는 출판사 신간을 눈여겨 보아 두었다가 이날 가방을 여럿 끌고 와서 한껏 챙겨간다. 책방 정가의 몇십 퍼센트가 할인되기도 하는 책 판매날을 기다렸다가 집중 구입하는 날이다. 교육열에 불타는 한국 어머니들이나 한글학교 교사들은 출판사 직원에게 기증하고 가거나 싸게 넘길 것을 권하기도 한다.

책장터에는 이벤트형 독자도 있다. 평소 책 한 권 사지 않지만 이날만큼은 책 홍수 속에서 하루짜리 문화인이 되는 경우다. 이날만큼은 한글 애호가가 되어서 모국어 독서에 대한 갈망을 절절이 호소해 본다. 그리고 온전한 실속형.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전시회라서 왠지 둘러 보아야 할 것 같아서 왔지만 할인하는 도서 가격도 여의치 않아서 실컷 둘러보며 “모두 도서관에 가면 있는데 뭐” 하면서 돌아서는 실속형. 비좁은 책전시장을 헤치며 툴툴거리며 돌아간다. “다시는 오나 봐라” 하면서도 다음 해에 또 온다.


옛날 책시장


프랑크푸르트 세계책전시회 주최측에 따르면 프랑크푸르트에서 책시장을 차렸다는 맨 첫 기록은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2세기에는 동서남북에서 모여온 사람들이 시내에서 책을 사고 팔거나 교환했다. 그 지역에는 지금 '책골목'(뷔허가세)라는 거리 이름도 남아 있다. 1450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나온 뒤로는 책을 사고파는 시장이 형성되어 갔다.

16세기 초 프랑크푸르트에는 성직자와 교수와 문서 수집가들이 모여 들었다. 출판인을 만나기 위해서라든가 자신의 새로운 연구결과를 널리 알릴 목적이었다. 가족 전체가 몇 달 먹고 살 만한 돈이나 물건을 주고 성경을 사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아직 이교도로 낙인 찍혀 있던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 성경을 들고와 제공한 곳도 프랑크푸르트다. 프랑크푸르트가 자랑하는 자유주의 전통과 책시장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가 라이프치히에 책시장의 전통을 빼앗기는 시간이 왔다.

17세기 18세기 프랑크푸르트에 통제와 검열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황제 막시밀리안 2세는 이른바 '이단 서적'을 금지하고 책방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려 자유주의를 구가하던 프랑크푸르트 책시장은 위축되고 책시장의 중심이 북쪽으로 옮겨 갔다. 라이프치히가 책시장 중심으로 발흥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백여 년 지나 2차 대전 이후 라이프치히가 동독에 들어갔을 때, 서독에 있는 출판인들은 라이프치히를 대신할 책 시장 중심도시를 찾게 되었다. 1949918일부터 23일까지 현대판 책전시회가 프랑크푸르트 바울 교회에서 열렸다. 1회 세계도서전시회가 열렸다. 205명 전시자가 84종 책을 전시했다. 방문객 4천 명.


폴리차이부스메세


히틀러 독일이 패배했다 하지만 히틀러 독일에서 탄압 받았던 공산당은 아데나워 정권이 금지했다. 60년대는 다시 재무장을 할지도 모를 독일과 부모세대의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에 대해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청년들이 반항하고 거리로 나온 시대였다. 1967년에서 1969년 사이 당시 독일청년들은 독일의 정신사와 생명을 망가뜨린 부모 세대의 권위에 저항하고 자신들이 속한 '허위로 가득한 공화국'에 강력하게 대들었다. 1968년 도서전시회 내부는 미디어 권력 스프링어를 규탄하는 시위대로 들끓었고 바깥에는 세네갈의 제다르 셍로르 대통령이 독일 서적상 협회가 주는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으로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셍로르 대통령은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를 대표하는 아프리카 이데올로기"로 불렸다. 물대포와 최류탄이 터지고 체포가 이어졌다. 도서전시회 마지막날인 일요일은 주최측에서 전시장을 폐쇄하기까지 했다. 1968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시회는 그래서 폴리차이부흐메세 즉 경찰 책전시회라는 명성을 얻었다. 경찰력을 동원하여 책전시회와 현실정치참여의 맥박을 분리시키려 한 사건은 결국 그 후 '() 책전시회'라는 대안 전시회가 생겨나게 했으며 다음 해에는 도서전시회 전시관에서 정치집회의 자유를 허용하라는 요청이 들끓었다.


주빈국 행사


70년대는 독일 정신사에서 '다시 돌아온 내면화'의 시대였다. 60년대의 활력은 가라앉았다. 내면화 경향이 갖는 모순, 정신적인 것을 드높이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기존 지배질서에 순응하는, 비정치를 가장한 정치성이 독일에 안개처럼 내렸다. 주빈국 행사가 시작한 것은 1976년이었다. 따지고 보면 주빈국이라기보다는 와서 특별히 돈 많이 쓰고 많이 이득을 남겨갈 최고 손님을 선정하는 프로그램이다.

주빈국 행사는 처음에는 2년에 한번씩 국가 혹은 주제를 정했다. 매년 주빈국을 정한 것은 1988년부터다. 도서전시 주최측과 주빈국이 될 나라 사이 긴밀한 협의를 거쳐 결정되는 주빈국은 도서전시 주최측에서 장소를 무상제공 받고 대부분 자체 경비로 조직위를 구성한다. 주빈국 행사는 주빈국이 된 나라에게 자국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전세계에 불러 일깨우고 책시장에서 실질적 기회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도록 한다는 목적을 지닌다. 한국은 2005년에 주빈국을 맡아 떠들썩했고 당시 주빈국 기념으로 도서전시회 조직위는 백만유로를 들여 지은 한국정원을 프랑크푸르트 시에 기증했다. 그 후 한국문학 해외 수출 발전에 관한 통계와 주빈국 이전 상태와의 규모 비교와 분석을 앞으로 여러 단위에서 해 나가야 할 과제다. 올해 주빈국은 아르헨티나내년 주빈국은 아이슬랜드. 내년 책시장은 1012일부터 16일까지.


독일도서상


주빈국 행사 외에 세계책시장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책전시회 주최자 독일 출판서적상 협회 한계회사(GmbH)가 주는 독일도서상이다. 지난 1년간 독일어로 발간된 책 중 최고 서적에게 주는 상이다. 현재 여섯 후보가 2심을 거쳐 결심에 올라 있다.

 

yeh

 

2010년 10월 1일자

독일에서 발간하는 한글문화신문 풍경 2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