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극으로 본 세상

하늬 2015. 5. 29. 01:28

독일말로 ‘프시호파트(Psychopath)’ 혹은 한국에서 영어를 받아써서 ‘싸이코패스’라고 하는 인간형은 과도한 자신감과 현실조작의 달인들이다. 그들은 이웃을 모함하고 제거하는 데에 인생을 낭비한다. <펀치>와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대한민국 검사들도 그렇다.
특히 <펀치>의 첫장면에서 세상을 주물럭거리듯 말하며 걷는 검사들의 클로즈업된 얼굴이 툭툭 잘라져 온전히 못한 상태로 화면을 채운 기법은 정상적이지 않은 사이코패스들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적나라하게 보내준 최고의 표현법이다. 온전하지 못한 사회가 조성하는 음습감이 만만치 않다. 

 

주연은 정상적이고 패기있는 검사들이지만 정작 이 연속극의 분위기는 막강한 조연이다. 배우를 잘 썼다.  2014년 12월 15일부터 2015년 2월 17일까지 방영한 SBS 월화드라마 <펀치>에선 조재현,  2014년 10월 27일부터 2015년 1월 13일까지 방영한 MBC 월화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선 최민수다.


<펀치>에서 여검사 신하정은 운전수의 개인적인 일탈로 처리된 유치원 버스 사고의 진상을 파헤치며 위험에 처한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한열무 (백진희 분)가 검사가 되어 유괴살해된 동생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간다. 진상규명 과정은 검찰내부서 걸림돌에 부딪히고 주인공들은 여러가지 위험에 처한다. 두 사건 모두 종국에 가서는 검찰내부의 뿌리깊은 부패고리에 기인한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데올로기 혹은 알리바이

 

영화사 초기의 이론가이자 아도르노의 멘토였던 클라카우는 모든 영화에는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게 마련이라고 했다. 달리 말하자면 이데올로기란 알게모르게 잠입한 핑게의 정서이다. <펀치>와 <오만과 편견>을 보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이 핑게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는 것이다. 반부패의 드라마라고 선전하지만 이 두 드라마는 검찰내부 부패를 기정사실로 인정하라는 패배주의를 은근히 조장한다. 오늘날 경제발전이란 미명 아래 달려온 한국사회가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부와 권력에 대한 고개숙임이 철저히 깔려 있다.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르는 이태준 검찰총장 (조재현 분)은 찢어질듯 가난하게 자라 입신양명한 오늘날 50대를 대변한다. 가난으로부터 탈출하여 권력지향형 출세로 달려온 50대 검찰총장의 회상에 형제간의 우애까지 덧보태지면서 그의 모든 부패는 삶의 “어쩔 수 없음”으로 변명된다. 가난을 훈장으로 만들며 현재의 모든 부패에 대한 알리바이로 내어줄 때 과거의 가난을 오히려 수치스럽게 한다는 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시한부 인생이 되어 자신이 저지른 일을 조금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애쓰는 박정환 검사 (김래원 분) 또한 법무부장관(최명길 분)과 이태준 검찰총장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한 쪽을 선택해야 했다면서 자신의 과거를 거듭 알리바이처럼 반복한다. 그러한 알리바이에 비해 그의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 사건, 시한부 인생이란 내용은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핑게를 뒤엎기엔 좀 미진하여 아쉽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문희만 부장검사 (최민수 분)가 부패의 고리에 들어 있지만 젊은 시절에 무척 정의로운 검사였다는 사실이 극 진행 내내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다. 마지막에 가서 갑자기 드러나는 진실은 문희만이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지만 문희만이 태도를 바꾸어 진실을 밝히는 결정적인 과정은 감히 후배 검사가 자신이 두려워한 ,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자였다는 사실이다.
두 작품은 대한민국 검찰의 부패상을 보여주는 흥미를 제공하였으나 종국에 가서는 부패의 핑게를 제공하는 그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인식의 전환이 설득력 있게 제공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혹은 리얼리티

 

한 작품의 마무리는 극작가와 비평가들에게 어떻게 쓸 것이며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뜨거운 감자이다. 희망과 절망을 얼마나 섞을 것인가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교합문제이기도 하고 수용자와의 대화에 대한 적정성 문제이기도 하다.


<펀치>에서 검찰총장은 실형을 받고 박정환 검사는 죽는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마무리가 무척 어둡다. 진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문희만이 법정을 나와 자동차를 타자 뒷좌석에는 이미 누군가가 타고 있다. 사태를 짐작한 문희만은 집에 늦을 거니 기다리지 말라는 전화를 한다. 그 다음 장면은 이미 죽은 소녀의 환영이다.


전 검찰총장이 실형을 받는 마무리가 리얼한 것일까? 부장검사가 암살되는 마무리가 더 리얼한 것일까?


물론 리얼리티는 개연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속에 품은 희망과 저항의 씨앗까지 포함하여 생각할 때 어떤 경우가 더 철저한 현실인식에 기여할까?


시청자 혹은 독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끝없는 토론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연속극은 글로 쓰인 것이 아니라 영상으로 만들어졌다. 또 만들어진 것 외에 마음에 남는 것들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을 함께 이야기해 보면 연속극을 보는 맛이 좀 더 쫀득쫀득할 것이다.                     

(풍경 62호)

 

* 연속극을 통해 본 세상 (1) 두 가지 유산 -<힐러>에 나오는 유혹과 단절 혹은 인간에 대한 소박한 믿음

http://www.punggyeong.de/ko/magazin/artikel/1-du-gaji-yus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