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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늬 2015. 9. 12. 17:26

1983년 2월의 마지막 토요일.


우리 학교는 2월의 마지막 토요일이 졸업식날이었더지라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무슨 억하심정인지 졸업식장에 가기 싫었던지라 그날을 출국일로 잡았더랬습니다. 


출발하기 전 두 가지 꿈 (잠자면서 꾼 꿈) 은 지금도 기억납니다. 


우리들의 작문시간 강사셨던 독일인 보카타 수녀님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제가 유창하게 독일말을 잘 하였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거적때기 아래 누워있는 시체가 히틀러라고 하는 장면입니다. 어릴 때 본 동네 미친 언니가 죽었을 때 장면이 변용된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이 꿈에서는 사실은 히틀러가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들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만큼 독일은 내게 도전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땅이었나 봅니다. 


난생 처음 타보는 비행기였습니다. 비행기 안에서는 내내 공항에 내려서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가서 말 한 마디 물어볼 문장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김포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모두 28시간 걸린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알래스카를 거쳐 도착한 프랑크푸르트 공항. 여기서 저는 거듭(?)나야 했습니다. 마치 엄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태어나는 것처럼. 


안내데스크로 가서 길을 물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수십번은 반복했을 문장이었습니다.


"Wie kann ich an die Universität Frankfurt kommen?"

큰도시건 작은도시건 시골이건 중앙에서만 살아보신 아버지는 독일에 도착하면 반드시 학교 부근에 가서 집을 잡으라 하셨기에 그것 하나는 확실하게 순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노버 부근에 사신다는 아버지 동창생의 연락처, 하이델베르크에 사신다는 어머니 젊은 시절 교회 중등부 제자분의 연락처를 사용하지 않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다부진 독립정신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내가 감행한 첫 소통의 시작은 여지없이 무너져내렸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터뜨린 나의 첫문장은 그냥 아우성일 뿐이었습니다. 안내데스크 아저씨는 상냥하세 미소지으며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Do you speak 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