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하늬 2015. 11. 1. 19:37
전설에서 걸어나온 현실

- 독서와 대화를 통해 일군“행복한 성장”-

부산에 가면 보수동 책방골목이 있다. 옛날옛적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시월유신이 불가피 ” 한 것이라고 고등학교에서 정치경제 선생들이 가르치던 시절에, 한 문학소년이 이곳을 배회하였다. 그에게 역사와 사회가 다가왔다. <양철북>에서는 철북이라 한다. 철북이는 3학년 여름방학에 법운이란 괴짜 스님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전설이 된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철북이가 걸어나온다.

한여름날의 기억

때는 유신 말기 1978년, 암자에서 철북이랑 한 방을 쓰는 고시생은 비록 세속의 출세를 위해 고시를 준비할지언정 “긴조정권”(45쪽: 긴조=긴급조치) 에 맹목적이지는 않다. 법운은 스님이지만 철북이와 함께 길을 갈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시원시원한 친구이다. 철북이는 책을 읽으면서 “영혼이 감전”된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특별한 감수성의 비밀을 지닌 사람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감수성 깊은 소년이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인데, 그 말에 몇 가지를 보태려 한다.

철북은 법운 스님과 함께 대화하다가 <관촌수필>, <순이삼촌>에서 읽은 그 “서북청년단”이란 단어를 환기한다. 무불스님의 발언 중 “김지하”를 듣고 <오적> 읽은 경험을 살려낸다. 활자화된 언어를 언어 이전의 감성으로 환원해 내는 찰나들이 철북이에게는 또 그 이전의 경험과 연결되어 기억이 펼쳐진다.

보수동 책방 점원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단순히 책을 팔거나 대여해 주는 사람이 아니다. 활자에서 얻은 것을 생생하게 육성으로 살려내도록 철북이를 이끌어 준다.

활자가 담은 내용은 아직 떠도는 전설이지만 대화를 통해 전설은 현실과 밀착되었다. 게다가 철북이가 다닌 학교 도서관 사서 선생님은 <오적> 사본을 진땀 흘리며 지켜낸다.

철북이는 독서를 매개로 하여 대화하고 대화를 통해 생생한 인식을 확장해 갔다. 게다가 동지애 같은 인간관계까지 첨부된다. 포함된 행복한 성장이다.

하얀 들풀처럼

철북이가 <행복한 성장>이란 표현을 들으면 한가한 소리 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철북이가 법운과의 여름여행 이전에 겪은 아픔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잠바 속에 품고 다닌 약병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의 끝에 철북이가 바라보는 하늘의 별빛은 처절하다. 그 별빛과 함께 사립문 옆 동백꽃(180)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한국사회의 문제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무겁지 않다. 철북이의 삶에 외할머니와 산사의 풍경이 베이스로 깔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철북이가 이니 “적당히 가불한 희망”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무겁지 않다는 것은 가볍다는 뜻이 아니라 무거움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양철북>은 길가에 핀 하얀 들풀 같은 책이다.

사람의 행복이란 것이 돼지처럼 많이 먹고 사치로운 것을 맘껏 즐기는 데 있지 않다면 철북이의 성장 이야기는 <행복한 성장>이 틀림없다. 그런데 그렇게 성장한 청년이 국가폭력에 부딪히고 갇힌 몸이 되었을 때 청년의 아버지는 가슴이 무너져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10쪽에 달하는 <후기>에 나오는 작가의 이야기는 철북이의 <행복한 성장>이 겪어야 한 댓가를 말해 준다.

<한라산>과 <적멸보궁>의 시인

작가 이산하 (본명 이상백)는 1960년생으로 부산 혜광 고등학교과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시인으로 활동하던 중, 제주 4.3 항쟁을 다룬 장편서사시집 <한라산>을 발간하여 지독한 탄압을 받았다. 4.3 항쟁 당시 국가폭력에 대해 국가가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이제 제주도의 4.3 기념관에는 이산하의 사진이 걸려 있다 한다.
이산하는 산사기행 <적멸보궁을 찾아서>를 통해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산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풍경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면서도 깨달음을 주어 신비롭다.

2003년 초간된 바 있는 <양철북>은 12년 지나 작가가 손을 보아 다시 이름이 같은 출판사 <양철북>에서 발간하였다.

지난 9월 22일 서울 합정동 국민 TV 국민카페에서 열린 <양철북> 북콘서트에는 국민카페 생긴 이래 처음으로 2백여 명이 빼곡하니 들어서 성황을 이루었다. 후일담에 따르면 50여 명은 자리가 없어서 돌아갔다.

<양철북>은 출판기념회 후 3주 지난 10월 12일 현재, 알라딘 청소년 분야 주간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