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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늬 2006. 3. 26. 15:20
 

-독일영화 “본질(Elementarteilchen)"-


56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모리츠 블라이브트로이가 은곰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독일영화 “본질(Elementarteilchen, 2005년, 113분)”을 둘러싸고 독일언론이 절찬을 아끼지 않는다. “가차없는 토론을 불러일으킨다”고. 영화에 대단한 액션이 있는 것은 아니다. 히피 세대인 어머니를 둔 두 이복형제가 제각기 여성을 만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독일말로 “관계극”이라는 이 영화가 무엇 때문에 평론가들의 뇌관을 건드렸을까?


영화는 프랑스의 미셀 울레베끄(Michel Houllebeque)가 1998년 발간한 소설을 원전으로 했다.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섹스에 굶주린 현대사회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스캔들이 된 내용으로서 독일의 오스카 뢸러(Oskar Roehler) 감독이 유명스타를 동원하여 만들었다. 일부 소재는 좀 아슬아슬하다. 인종차별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싶은 학교선생, 아이들의 어머니이기보다 자유를 맘껏 구가하고 싶은 여성에 대한 비판적 시선 등이 드문드문 비친다. 만약 토론이 유연하지 못한 나라 같으면 “진보주의자”들이 당장 “꼴통보수”라고 낙인찍을 만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가서 꽂히는 곳은 아나벨(프랑카 포텐트 분)이 어릴 때 좋아한 남자친구 브루노(크리스티안 폰 울멘 분)를 다시 만났을 때 이웃집 사람들을 가리키며 지나치듯 드러내는 표현 속에 들어 있다.


“저 사람들은 결혼한 지 수 년 지났는데 아직 한 번도 싸우지 않았대.”


토론이 유연한 독일사회에서도 80년대 같으면 당장 “소시민적”이라고 낙인찍을 만한 부분이다. 그렇지만 스타 블라이브트로이 스스로도 이 시선에 동의한다. 독일 텔레비전 “본질”의 광고 장면 속에 삽입된 인터뷰 장면에서 스타는 안정되지 못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평범하고 보수적인 가정들이 부러웠다고 토로한다.


이런 시선이 독일 지성의 흐름과 통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종전 60년이 지난 독일의 모습이다. 미국이 입에 집어넣어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감사함은 유효기간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제는 “패전” 60주년이 아니라 “승전” 60주년이라 해야 한다고 했다. 즉 나치에 저항한 독일의 양심과 독일 지성의 승리에 대한 시선을 살리자는 것이다. 그와 함께 독일인 속에 깃든 경건주의의 단편들을 소시민적인 독일 모습으로 폄하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주장들도 있었다. 이러한 반성이 패전 60년의 콤플렉스를 벗어나려는 독일인들의 희망과 결합하여 “본질”에 대해 반가운 시선을 보내는지도 모른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블라이브트로이(Bleibtreu)"란 이름은 우연히도 우리말로 ”바람피지 마세요“(Bleib treu)란 뜻이 된다. 어느 독일 관객이 “요즘 아시아 영화는 관계 파괴, 변태적인 것이 성행한다”고 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2006년 3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