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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영상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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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비타민 글[2]

2021. 10. 11.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지하철에서 할아버지가

오래된 핸드폰으로

전화를 받는다.

 

옆자리의 초등5학년생이

신기한 듯 묻는다.

 

할아버지

그 핸드폰 몇년 되셨어요.

칠년째 쓰지

앞으로 십년은 더 쓸거다.

 

십년이면 죽는데--

초등5학년 아이가

불쑥 한 말인데,

 

그 말에 할아버지

정신이 드는듯

아 그래!

 

나는 내가 살 날이

많이 남았는 줄 알았는데

십년이 못 남았구나 ~!

 

할아버지는

초등학생 말이 맞는 말이라고

정색을 합니다.

 

그렇제 네 말이 맞아 ~!

인간 수명이 늘었다 하나

 

노인병동에 수용된 기간은

세상 사는게 아니지...

 

"인생 칠십 고래희"라는

말이 아직도 통하는 사람이 있지...

 

--<좋은 글>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lOoMkhbRdlo 

 

고희古稀, 인생칠십고래희 人生七十古來稀

예로부터 사람이 칠십을 살기는 드문 일이라는 뜻이다.

唐 詩聖 두보杜甫(712~770)의 곡강시曲江詩의 마지막 구절이다.

朝回日日典春衣(조회일일전춘의) 

每日江頭盡醉歸(매일강두진취귀) 

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항처유)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조정에서 돌아와 날이면 날마다 춘의 겉옷 잡히고

매일 곡강변 주점에서 술취하여 돌아오네

술빚이야 다니는 주점마다 쌓여가지만

인생 칠십은 고래로 드물도다.

이렇게 외상술 퍼마시면서 취생몽생 하다가 70세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두보는 젊어서 각지를 방랑하였다.

30세 넘어 長安으로 돌아와 벼슬길에 오르고 싶었다.

그러나,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다.

현종玄宗은 난을 피해 四川으로 도망가고, 나라는 온통 혼란스럽기만 하였다.

두보도 난을 피하여 새로 즉위한 숙종肅宗이 있는 영무靈武의

행재소行在所로 가려다가 반군에게 붙잡혔다.

9개월 동안 갇혀 있다가 탈출하여 봉상鳳翔의 행재소로 갔다.

두보는 757년 그 충정으로 좌습유左拾遺에 임명되었다.

관군이 장안을 탈환하자 숙종을 따라 환도하였다.

장안의 동남쪽에 한무제가 지은 의춘원宜春園 궁원宮苑이 있어 매우 경치가 아름다웠다.

궁원 연못물이 굽이쳐 흐른다 하여 곡강曲江이라 불렀다.

唐 현종玄宗이 곡강변에 자운루慈雲樓, 행원杏園, 부용원芙蓉苑,

자은사慈恩寺, 낙유원樂遊原을 짓고 명절 때마다 호화로운 행사를 벌렸다.

그 무렵 두보는 전쟁에서 패한 재상宰相 방관을 변호하는

상소로 인하여 숙종의 노여움을 샀다.

 

두보는 조정의 업무가 끝나면 곡강 변曲江邊에 나가 술로 마음을 달랬 다.

758년 두보는 취중에 곡강을 소재로 詩 곡강曲江을 읊었다.

이때 두보의 나이는 47세였다.

두보는 곡강에서 읊은 대로 고희를 훨씬 못미친 59세에 세상을 떠났다.

두보가 세상을 떠난지 1,300년 세월이 흘렀다.

두보가 지금 환생한다면,

人生七十古來稀가 아니라 人生一百古來稀라고도 하지 않을 것 같다.

두보의 조각상

두보 의 흉상

두보 초당 의 사립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