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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여행] 척화비가 왜 총알 세례를 받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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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도장깨기/여행지 도장깨기

2013. 9. 25.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라면 수능에 대한 관심이 큰데

특히 이번에 수능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바로 2017년부터 한국사가 부활하게 될 것인데요 ^^

 

한국사는 1982년 학력고사가 도입되면서 독립 필수과목이 되었다가

1993년 학력고사가 폐지될때까지 유지되다가 그 이후로 슬그머니 사라졌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한국사에서 빠지지 않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척화비에 대해서 알려드릴께요^^

 

 

 

 

 

 

척화비는 조선 후기

1866년의 병인양요와 1971년의 신미양요에서 외적을 격퇴한 후에

온 국민에게 서양배척의 의지를 확괴 하기 위해서 1871년(고종 8)4월에

대원군이 서울 종로를 비롯한 전국의 요지 200여곳에

화강석으로 세운 석비를 뜻하는 말이예요~

 

척화비의 내용은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양이침범 비전칙화 주화매국)

戒我吾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 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대원군의 강력한 쇄국의지를 새겨서 백성들에게 쇄국정책의 의미를 새기게 한 글이지요^^

 

 

 

 

 

 

옥천에 남아있는 척화비는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각 면이 많이 파손된 모습으로 멀리서 보면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아서

6.25 전쟁 때 적으로 오인받아 기관총 세례를 받은 흔적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전국에 있는 척화비의 대부분이고종 19년에 대원군이 실권하고

서구 각국과 교역을 시작하면서 철거되었는데

옥천에 남아있는 비는 산기슭에 있었던 이류오 철거당하지 않고 남았다고 하네요 ^^

 

지금은 진입로와 계단, 철책 등을 시설하여 보고 관리되고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이들 한국사 교육을 위해서 한 번 찾아보면 정말 좋은

여행이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삼양리 산4-2번지

 충북 기념물 제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