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백두산대장정

찰라 2009. 9. 12. 18:39

 

 

 

홀본이냐, 졸본이냐?

 

백두산 천지에서 내려와 퉁화에서 하루 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오녀산성으로 출발했다. 퉁화에서 오년산성을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였다. 적막강산이 첩첩산중으로 싸인 도로는 구불구불했고, 쿠션이 좋지 않은 버스는 몇 번이나 머리를 천장에 박치기를 하게 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첫 도읍지 홀본으로 가는 마음은 궁금증과 함께 호기심을 더욱 불러 일으켰다. 사극 '주몽'에서 이미 이 지역에 대한 역사와 배경을 대강 알게 되었지만 실제로 역사의 현장으로 가는 마음은 설래이고 가슴이 뛴다.

 

마침 북한 출신 가이드 왕서방이 서길수 교수의 '홀본이냐, 졸본이냐?'라는 주제로 EBS에서 방영했던 강의내용을 DVD로 보여주었다. 역사의 현장으로 가는 버스에서 들려주는 고구려 건국역사에 대한 강의는 매우 의미가 있었다. 서교수는 광개토대왕비문에 홀본(忽本)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고구려의 첫 도읍지는 졸본이 아니라 홀본이 맞다고 했다.

 

"於沸流谷 忽本西城 山上而建都焉 不樂世位 天遣黃龍來下迎王 王於忽本東岡 黃龍負昇天"(시조 추모왕(주몽)께서는 비류곡을 지나 홀본 서성산 위에 도읍을 정하시다) 라는 글이 나온다. 나는 이미 백두산으로 가기 전에 광개토왕비유적지를 방문하여 희미하게 새겨진 이 비문을 답사했다. 비문에 홀본(忽本)이라 분명히 새겨져 있으니 졸본이 아니라 홀본이다.

 

홀본으로 가는 길은 천혜의 요새처럼 산새가 험악했고, 길은 좁았다. 가는 중간에 양떼들이 길을 막아 한참을 양떼를 보내기 위해 버스가 서 있기도 했다. 옥수수 밭이 끝없이 이어졌고, 용변이 급해지면 차를 세우고 남녀가 각가 반대편 옥수수 밭으로 들어가 볼일을 끝내곤 했다.

  

오녀산성의 999계단

 

 마침내 3시간여의 비포장도로를 달려 우리는 오녀산성에 도착했다. 원래 이번 여행 여정은 오녀산성으로 가는 입구에서 관망만 하는 것으로 여행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우리는 왕서방에게 추가 비용을 부담할테니 산성을 올라가 현장을 답사하게 해 달라고 때를 썼다. 왕서방은 순순히 응해주었고, 우리는 즉석에서 입장료와 교통비조로 120위안을 거출하여 왕서방에게 건네주고 산성을 오를 수 있었다.

 

아직은 8월의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햇볕은 따갑고 날씨는 더웠다. 오녀산성 입구에 도착을 하니 매우 한적하여 관광객은 우리 일행밖에 없었다. 산성으로 가는 길에는 오녀산성 박물관이 새로 개장을 한듯 세워져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이란 비문이 빨간 글씨로 새겨져 서있었다. 박물관입구에 들어서니 역사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고구려벽화가 매우 인상 깊게 걸려있었다. 실내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되어 있었다.

 

박물관을 돌아본 뒤 산성으로 올라가는 버스를 30분이나 넘게 기다려야 했다. 여기서도 중국의 만만디 정신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드디어 산성을 가는 버스가 출발하여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갔다. 높이 823m의 산은 하나의 완벽한 성벽 같았다. 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999계단의 가파른 길을 일직선으로 올라가거나, 열여덟 굽이(十八盤)를 돌아서 올라가야 한다.

 

산세의 웅장함은 과연 주몽이 고구려의 도읍지로 정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지땀을 흘리며 999계단을 오르는데 마지막 정상입구에는 단애의 절벽이 양편에 칼날처럼 서 있고, 말 한필이나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옹문이 나 있었다. 천창문이라 쓰여진 빨간 글씨는 하늘로 가는 길이라는 표시렸다.

 

그 옹문(瓮門)을 지나니 신기하게도 펀펀한 평지가 나왔다. 산성의 서문이다. 이 옥문만 지키면 적들은 정상의 성터로 침입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왼쪽을 바라보니 고주몽이 얼굴처럼 생기 바위가 희한한 모습으로 주위를 살펴보고 있다.

 

 

고구려의 생명수, 천지

  

서문 정상에는 그래도 무언가 고구려의 유적이 남아 있으려니 기대를 했는데 유적은 흔적이 없고, 기념품을 파는 가게만 있다. 

 

고주몽 시조사당이 있었던 자리조차도 없는 쓸쓸한 도읍지. 고구려의 역대 왕들이 몇 백년 동안이 이곳에 올라 참배를 했다는 주몽왕의 흔적은 찾아볼길이 없다. 그러나 오녀산성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경관은 환장하게 아름답다.  

 

깍아지른 절벽 아래로 고구려의 젖줄이었던 비류수 물결이 아스라이 한눈에 들어오고, 천혜의 산성처럼 굽이굽이 험준한 산맥들이 오녀산성을 에워싸고 있다. 비류수와 어우러진 산세의 풍경은 과히 절세경관이다. 때마침 날씨가 맑아 푸른 하늘아래 펼쳐진 절경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산길을 돌아 우측에 비류수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연못이 하나 나타났다. 이렇게 깎아지른 산정에 못이 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천지(天池)라고 새겨진 비석 하나가 외롭게 연못을 지키고 있었다. 이 천지는 아루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아 3천명이 일시에 먹을 수 있는 물이 항상 솟아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천지 한 가운데는 커다란 동전이 떠 있고 그 위에는 복을 기원하는 중국 동전들이 난잡하게 얹어져 있다. 천지 건너편의 나무에는 역시 복을 기원하는 조롱박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이것이 우리민족의 성스러운 성지의 모습이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백두산과 백두산 천지가 우리민족에게 영감을 주는 영산이라면, 이곳 홀본의 오녀산성은 우리민족의 성산이요 성지이다. 그러나 주거지는 잡초에 묻혀있고, 길가에 버려진 맷돌은 아직 2천년 동안이나 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구려 건국이전에 해모수가 하늘에서 오룡거를 타고 내려와 당도했다는 비류수와 오녀산성은 이처럼 우리민족의 흔적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이란 역사왜곡 밑에 서서히 지워져 가고 있다.

 

 

 

 18굽이를 표시한 표시석

 

정상으로 올라가는 천창문은 옹문처럼 좁다. 

 

점장대에 걸려 있는 복전표 

 

 박물관 벽에 걸려 있는 고구려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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