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도원~♡/참선도(參禪道)

참선사 2020. 3. 7. 14:18

나는 무엇인가?

 



나의 진여를 알아차리려면 나는 누구인가로 화두를 던지지 말구 나는 무엇인가로 화두를 던져서 존재의 본성을 찾아보라.

 

시방 마이가 요케 머물러 있는 건 어릴 적 언젠가부터 88년도까지 나를 찾기 위한 질문의 화두를 나는 누구인가로 나의 본성을 보려고 했었다. 해서 88년도 어느 날 나를 본다고 봤는데, 나를 마중하는 순간, 그 때 당시의 의식으론 감내하지 못하고 헤매기 시작 했었다.

 

헤맬 때 당시에는 왜 그랬을까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날을 다시 한 번 반추해보면, 어리석기도 허구 웃음이 나기도 허구 헌데, 그 때 당시에는 참말로 힘들어 했다.

 

어째 헤매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여 궁금한 님이랑 마이를 위해서 살짝꿍 그 때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 때 의식 상태를 올려본다.

 

어릴적 나는 누구인가의 화두를 품고 나를 찾기 위해 늘 보듬고 댕겼는데, 어느 날 나란 시방의 보이는 모든 것이요. 인식하는 모든 것이 바로 나라고 보였다. 헌데 그 때 당시에 봤던 내 의식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나의 심기와 대자연과 구분도 못 했었고, 내 기운도 모르고 우주 공간에 나를 던져 버려서 육신은 존재하나 허수아비에 불과 했었다. 텅빈 육신에 외기는 들랑달랑 했었고, 혼돈의 오랜 시간은 결국 자연스럽게 진여를 알아차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시방은 나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해서 혹여 자신의 본성을 알아차리려면 나는 누구인가의 화두는 맞지 않다라고 본다..

나는 누구인가로 나를 찾지 말고 나는 무엇인가로 화두를 품고 댕기면서 자신의 본성을 알아차리기를 바란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시방 여기 시공간에서 우주라고 지칭하는 공간의 지구별로 인식하는 자리에서 헤아릴 수 없는 과정으로 시방의 형상을 갖추고, 의식이란 사고력으로 인식을 하는 기능을 간직하며 인간이라 부르고, 숨 쉬며 생동하면서 지구벌판을 잠시 머물러 있는 존자이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그라지는 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름답게 피어난 꽃은 어디서 와서 어떻게 피우며 어떻게 자신의 본질에 향기를 내 뿜고 있는 건가?

존하는 모든 건 연기와 인과로 인해 형상의 본상과 본색으로 실존 한다.

 

나는 우주요 대자연이며, 시방 여기저기 보이는 형상과 공존하며,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는 미립자이며 초양자장이며 의식의 한계의 보이지 않는 것을 기반으로 한 인식 할 수 있고 의식이 알아차린 순간의 찰라의 심신이 곧 나다.

 

나는 영원히 무상(無常)하기에 무궁한 존자이며, 시방의 존재성을 인식하기에 나는 영원히 존재한다.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던 단 한 번의 변화가 없이 존재를 하는 실체는 의미가 없다. 그 존재성이나 미 존재성은 그냥 영원히 변화하지 않고 존재하던, 영원히 존재를 하지 않던 그 존재는 의미가 없다.

 

나는 시방삼세의 우주의 시공간의 대자연의 산물이며, 이 형국의 조건부가 갖춰진 시방의 순간 잠시 찰라의 형상으로 심신을 지닌 존재다. 시방 여기에 머물러 있는 순간의 형상의 의식의 본체의 심기를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고 본다. 그 심기가 곧 본질의 본성이며, 존재성의 실체라고 보니까.

 

해서 시방 어떤 환경과 어떤 여건으로 어떤 형상을 간직하고 어떤 심기로 왜 거기에 머물러 있는지를 알아차려야 한다.

 

시방의 찰라의 자신의 존재를 중요하게 여기든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그 모든 건 다 자신의 성품과 성향이며, 자신의 의식의 본색이다.

 

하지만 생동하는 건 살아 있는 것이고 시방 순간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의식이 깨어 있다면, 자신의 심신이 중요하게 여기듯, 존하는 모든 것이랑 보이던 보이지 않던,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자신의 존재성만큼이나 존귀하다.

 

이런 소중한 오늘, 각각의 연기와 인과로 인해 조화롭게 펼쳐지는 시방삼세에서 바르게 의식을 형성하지 못해서 혹여 오늘의 문화 환경에서 버거워 하는 분들에게 바른 의식을 형성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간직한 심기를 다시 살펴보고 새 걸음의 의식을 바로 세우며, 새심으로 재 발심을 해보면서 나는 무엇인가를 재 조명해본다.


-선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