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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도 2014. 4. 15. 09:57

14\북한인권 무시한 햇볕관료들 14.04.14


채경근씨가 쓴 상기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서 보고 내가 논평한것이다.

이문제는 대수롭지않은 하나의 지나가는일로 보이기쉬우나,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여, 여기에 기록한다.

먼저 채결근씨의 글을 옮긴다.


채경근******북한인권 무시한 '햇볕 관료'들******


공공부문의 지적(知的), 도덕적, 문화적 자질을 비관(悲觀)하지 않을 수 없다!

찻잔 속 태풍이었는지는 몰라도,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 당국자들의 도덕적 인간적 안목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며칠 전 있었던 어이없는 해프닝의 전말부터 다시 한 번 훑어보자.


조선일보 4월 8일자 1면에 기사 한 편이 실렸다. 유엔 북한인권 현장사무소가 생기게 되었는데 우리 외교부가 그 한국유치를 기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피의 이유인즉, 그런 사무소를 한국에 유치할 경우 그것이 자칫 북한의 심기를 건드려 박근혜 대통령이 막 시동을 건 남북교류 노력에 누가 되지 않을까, 우려해서란 것이었다.


이 기사를 보고 느낀 것은 분노, 걱정, 절망감이었다. 왜 분노하는가? 학살자와 피(被)학살자가 마주선 한반도에서 우리 당국자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학살하는 교형리(絞刑吏)의 눈치를 살펴, 학살당하는 동포들을 뒤로 밀쳤느냐 하는 데 대한 분노다. 명색이 자유 민주 인권의 나라 공무원들 아닌가? 그런 그들이 어떻게 나라의 녹을 먹으면서 “북한인권 너무 떠들지 말라, 김정은 화나실라”라고 말할 수 있느냐 말이다. 양심인(良心人)들의 피가 거꾸로 치솟을 일이다.


한반도 제1의 이슈는 물론 평화(平和)의 문제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당국자 사이에 일정한 양보가 성립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의 최고 이상(理想), 국가의 존재이유와 관련한 사항에서는 양보란 있을 수 없다. 북의 그것이 그들의 이른바 ‘최고 존엄’을 지키는 것이라면, 우리의 그것은 자유 민주 인권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햇볕관료’는 북의 그것을 존중한답시고 우리의 그것을 깔아뭉개려 했다. 알아서 긴 것이다. 이들을 과연 자유국가의 공무원이라 할 수 있는가?


왜 걱정하는가? 세월이 바뀌었어도, 북한 주민들의 인권참상을 아파하기보다 북한 권력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관료들이 곳곳에 대못처럼 박혀 있구나 하는 데 대한 걱정이다. 특회 외교부, 통일부, 교육부, 문화부 같은, 국가의 노선을 결정하는 부처가 그런 왕년의 ‘역주행(逆走行) 공무원’들에게 계속 장악돼 있다면, 윗선이 아무리 무얼 새롭게 해보려 해도 그들이 사보타지 하는 한, 말짱 헛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외교부 통일부 관료들이 사보타지 하면 박근헤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은 자칫 ‘이미테이션 햇볕’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교육부 관료들이 사보타지 하면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편향을 바로잡을 길이 더욱 멀어진다. 문화부 관료들이 사보타지 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문화융성은 자칫 ‘박근혜 귀태(鬼胎)’ 운운한 패거리의 ‘더더욱 융성’으로 갈 우려가 있다. 그래서 걱정인 것이다.


왜 절망감(絶望感)인가? 그들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우리 사회 최고의 지식 엘리트층에 속한다 할 때, 그렇다면 우리 교육이 어디가 어떻게 됐기에 그들이 전체주의, 수용소체제, 고문, 공개처형, 정치범 화형(火刑), 탈북자 처형, 지하교회 학살...에 대해 그렇듯 무감각하고 냉담한 로봇처럼 반응한다는 것인지, 사실이라면 오늘의 우리 공공부문의 지적(知的), 도덕적, 문화적 자질을 비관(悲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절망감(絶望感)인 것이다.


조선일보 기사가 나오자 시민사회 단체들과 새누리당 국회의원 55명이 성명을 발표하고 외교부의 처사를 지탄했다. 그러자 외교부는 서둘러 “사실이 아니다” “유엔 사무소를 유치하겠다”고 발뺌했다. 당국이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난센스를 두고서 “그런 일 없었다‘고 덮어버린, 그 결말은 물론 다행이었다. 그러나 뒷맛은 여전히 개운치 않다. 북한인권 같은 문명적인 이슈와 관련해 박근혜 시대의 관료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얼마나 투철(透徹)한가가 의심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이는 ’자유, 번영‘을 통일 키워드로 삼은 박근혜 대통령이 관료를 얼마나 그 쪽으로 다잡고 있는지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명박 전(前) 대통령은 대못을 뽑지 못해 차관 아래는 여전히 전정권(前政權)이었다. 그는 정권 바꾸기를 중도포기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측근실세 한 사람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못을 무슨 수로 뽑아요? 그 사람들 엄청 쎕니다” MB는 그래서 ‘청와대로 유배당한’ 대통령이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가? 예컨대 외교부 관료가 북한인권을 우습게 여긴 것은 단순 해프닝이었나, 아니면 대통령과 따로 노는 관료의 존재를 의미했나? 후자일 경우에 대비해 대통령 곁에는 반드시 ‘악역(惡役)’ 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지금 정부에서는 누가 그런 역할을 하나?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얼마나 다를지 지켜볼 일이다.


이상이 채경근씨의 글입니다. 다음이 내가 댓글을 단것입니다.


대단히 유익한 글이다. 이글은 두고 두고 역사에 남겨야할 의미를 지닌글로 보인다.

자유(自由),번영(繁榮)이 우리의 키워드이면, 독재(獨裁)와 쇠퇴(衰退)의 키워드는 북한이다. 그런 잔혹(殘酷)한데를 한국사람들은 69년동안 정부고 국민이고 '나몰라라'하고 지낸 죄가 너무나 크다.

그런데를 장기간, 주(主)로 외국인 인권운동가들이 피나는 노력으로 그나마 유엔에서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설치되고, 징계(懲戒)해야한다는 보고서까지 발표가되었는데, 우리는 이제도 '나몰라라'할작정인가? 오히려 훼방을 놀생각인가?! 천인공노(天人共怒)할짓말기바란다. 남북한의 외교적인 협력관계는 그것대로의 문제이고, 그 윗 차원(次元)의 문제를 까뭉게면 한국은 망(亡)한인간, 망(亡)한나라로서 저주(咀呪)받아마땅할것이다.


아무나라도 더 이상 상종을 안해줄것이다. 이제껏 수십년 북한을위해 노력해온 수많은 외국인 인권운동가들과 정부,비정부기관들이, 고만 실망을 넘어 허탈감에 빠질것이다. 세상에 무슨놈의 나라가 저희동족이 개돼지만도 못하게 3대에걸쳐 수천만이 맞아죽고 굶어죽었는데도 외눈하나 깜짝 않느냐면서, 분노의 불덩이가 끓어오를것이다. 더이상 도울생각조차 없어질것이다. 그럼 외톨이되어 김정은이하고 다정하게 어깨동무할것인가? 정신빠진 위정자(爲政者)들의 대오각성(大悟覺醒)을 바란다.<어쩌면 세상이 잘못되어도, 인간들이 나빠도, 이지경에 이를수가 있단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