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목원 2014. 2. 26. 21:22

(1) 모원당(慕遠堂)

모원당은 임진왜란 후에 세워졌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에 종가가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래서 여헌 선생은 15년 동안이나 고향에 돌아올 수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를 중심으로 한 종인들이 선조 39년(1606)에 불탄 자리에다 2칸 방 하나에 2칸 마루 하나인 작고 단순한 서향(西向)집을 지었다. 그리고 양쪽에 반 칸짜리 가재기를 달아서 북쪽 것은 부엌으로 사용하고 남쪽은 서책(書冊)을 넣은 것으로 보인다. 이 집은 난리(亂離)가 끝난 바로 뒤에 지었기 때문에 물자(物資)가 귀하고 재력(財力)이 달려 짓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뒷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걸쳤으나 지붕을 덮을 기와가 없어서 당시 부사(府使)에게 요청해 관아(官衙)를 잇고 남은 기와를 얻어다 덮었다고 한다.

집이 완성(完成)되자 여헌 선생은 이 집을 모원당이라 명명(命名)하고 기문(記文)을 직접 찬술(撰述)하셨는데 그 기(記)에는 추원보본(追遠報本 먼 조상을 그리워하고 근본에 보답함의 뜻)이 담겨 있다. 이 부분을 국역(國譯) 여헌집(旅軒集)에 실려 있는 모원당기(慕遠堂記)에서 발췌(拔萃)해 본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父母)이고 부모를 낳은 이는 조부모(祖父母)이고 조부모를 낳은 이는 증조모부(曾祖母父)이니, 미루어 올라가면 십대(十代), 백대(百代), 천대(千代), 만대(萬代)로부터 저 옛날 원초(原初)에 인류(人類)를 낳은 조상(祖上)에 이른다. 그렇다면 원초에 인류를 낳은 조상은 우리 몸이 처음 시작해 생겨난 것이니 그 이하 백, 천, 만 대가 쌓여 내려옴은 다만 그 신체(身體)를 바꾸었을 뿐이다. 오직 그 기맥(氣脈: 서로 통하는 낌새)은 백, 천, 만대를 내려오면서도 한 기맥을 전하였는데, 형세(形勢)가 미치지 못함이 있고 정(情)이 다하기 어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제사(祭祀)는 한계(限界)가 있고 효도(孝道)는 미치기 어려우나 무궁(無窮)한 이치(理致)와 무한(無限)한 효성(孝誠)은 어찌 대(代)가 쌓였다 하여 혹 그칠 수 있겠는가?

이 내용의 요점(要點)은 현재의 나(我)는 갑자기 돌출(突出)한 내가 아니라 원초의 조상으로부터 백 천 만 대를 흘러 내려온 기맥을 이어받은 나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훈계(訓戒)의 말씀을 새겨 몸가짐을 신중(愼重)히 해야 할 것이다.

나의 몸을 가벼이 여김은 나의 선조(先祖)를 가벼이 여기는 것이요, 나의 몸을 소홀(疏忽)히 함은 바로 나의 선조를 소홀히 하는 것이니, 하물며 가벼이 여기고 소홀히 할 뿐만 아니라 혹 그 몸을 욕(辱)되게 하고 혹 그 몸을 패망(敗亡)하게 한다면 이는 모두가 그 선조를 욕되게 하고 그 선조를 패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조에게 사랑의 이치(理致)를 다하고 효성(孝誠)의 도(道)를 지극(至極)히 하는 것이 과연(果然) 자기(自己) 몸을 아껴 공경(恭敬)하고 소중(所重)함에 벗어나겠는가.

한 번 사려(思慮: 마음을 써서 생각함)할 적에 선조를 생각하여 선조의 마음에 위배됨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한 번 말할 적에 선조를 생각하여 선조의 덕(德)에 위배(違背)됨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한 번 동작(動作)할 적에 선조를 생각하여 선조의 도(道)에 위배됨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전전긍긍(戰戰兢兢)하여 항상(恒常) 깊은 못(淵)에 임(臨)한 듯이 여기고 살얼음을 밟는 듯이 여긴다면 우리 성(姓)을 함께 한 자들이 거의 선조의 남겨주신 가르침을 실추(失墜)하지 않을 것으로, 우리 선조들 또한 훌륭한 자손(子孫)을 두었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이 기문(記文) 말미(末尾)에 우리 성(姓)을 함께 한 자들이....란 구절을 미루어 볼 때 자기 후손들에게만 당부하신 말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모원당기문은 장씨(張氏) 성(姓)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가슴에 새겨 실천(實踐)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모원당은 청천당과 함께 2000년 9월 5일에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90호로 지정(指定)되어 2005년에 도비(道費) 2억 5.000만원을 들여 중수(重修)하였다. 당(堂) 앞에 있는 해묵은 회화(槐)나무는 보호수(保護樹)로 지정되어 구미시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