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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 2014. 2. 26. 21:30

(2)양양재(洋洋齋)와 평고사(平皐祠)

양양재(洋洋齋)는 월포 선생(月浦先生)을 존모(尊慕)하기 위하여 세운 재사(齋舍)이다. 양양(洋洋)이란 곧 중용(中庸)의 “조상(祖上)의 신(神)이 어렴풋하게 좌우(左右)에 계시는 듯하다(洋洋乎如在其左右)”고 한 뜻을 인용(引用)한 것이다.

창건(創建) 연대는 고종(高宗) 경인년(庚寅年 1890)에 후손(後孫)인 휘(諱) 형표(衡杓)가 주관하여 주손(冑孫)이 살고 있는 신동(新洞 새올)에 창건(創建)하였다.

갑자년(甲子年 1924)에 형표의 종자(從子)인 석호(錫琥)가 중심이 되어 종인(宗人)이 합심(合心)해 중건(重建)하였다. 기미년(己未年 1979)에 중수(重修)하였는데, 우상(羽相)이 경영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작고(作故)함에 따라 아우 영상(瓔相)이 병갑(炳甲)과 종인들의 뜻을 모아 완성(完成)하였다. 기묘년(己卯年 1999)에 문중(門中) 회장인 석민(錫敏)이 공의(公議)에 따라 1백 20여 년 간 중단되었던 평고사 제향(祭享)을 복원(復元)키로 하고, 이 해 4월 양양재에서 지방행사(紙榜行事)를 하였는데 격년(隔年) 봉행하기로 하였다. 임오년(壬午年 2002) 회장인 지원(芝遠)이 문중의 결의(決議)에 따라 4월 2일 행사를 봉행하고 격년제(隔年制)를 매년(每年)으로 변경하여 시행(施行)하였다. 무자년(戊子年 2008) 3월에 회장인 명무(炳茂)가 이사회 결의에 따라 평고사 복원(復元)과 양양재 중창(重創) 공사를 착공하여 기축년(己丑年 2009) 3월에 준공(竣工)하였다. 이상은 양양재의 간략한 연혁이다.

평고사가 준공됨에 따라 기묘년(1999)이래 양양재에서 지방행사로 행사하던 월포 선생의 재향을 평고사에서 위판(位版)을 봉안하여 행사하게 되었고 이때 아들 네분도 종향(從享)하여 매년 4월 첫째 일요일에 행사한다. 평고사의 전신은 평고서당(平皐書堂)이다. 평고 서당에서 병인년(1866)에 향중(鄕中)과 사림(士林)의 중의(衆意)로 월포 선생의 위판을 봉안하고 제향을 올렸다. 이때 봉안문은 사미헌 (휘 福樞)선생이 지었고 그 봉안문에서 평고서당을 확인 할 수 있다. 평고사는 그 내력을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다만 족보에 의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월포 선생에 대한 기사 가운데“ 평고사에서 제향하다”라는 대목이 그 것이다. 추측컨대 병인년에 위판을 봉안 하면서 서당을 사(祠)로 개칭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양양재 재호(齋號)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친필이다. 이 친필은 월포 선생의 출후(出后) 10대손 인원(仁遠)이 이조참판으로 있을 때 대원군과 친면이 있어서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