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법 이야기

김창겸 2019. 12. 3. 16:41

이 글은 2019년 11월 말에 어느 시립미술관 관장님께 등기속달과 이메일로 보냈던 편지입니다.
그 후 글을 보충 수정하여 정리된 글로 완성했습니다.
10년간의 작가로 활동하면서 느끼게 되었던 미술계 제도의 불합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2009년 ‘전 기무사 공간’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을 알리는  ‘신호탄’ 전에 참여했던 미디어작가 김창겸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2019년 11월 ‘한국비디오아트 7090’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시에 참여하며 달라진 제도를 확인했습니다.
작가비, 사례비, 제작비 등 3가지 항목으로 작가에게 돈 지급을 한다 라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제도가 변한 것을 확인하게 되어 나름 감회를 느끼게 되어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선생님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큐레이터로 신호탄전을 기획 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몇 명의 작가는 전체작가에 인건비를 달라고 요구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설치작가에 대해 재료비, 영상작가는 장비임대, 사진작가에는 프린트비를 지원할 수 있
고 회화, 동양화, 조각 등의 작가에 대해서는 운송비 외에는 아무런 지원을 할 수 없다고 국가제도에
대해 말하셨습니다.
신호탄 전시를 위해 50명에 가까운 작가들에게 새 작품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작가에게 새 작품을 요구한다면 의뢰 한 쪽이 제작에 필요한 재료비, 창작인
건비, 스탭인건비 등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일반적인 상식을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친구 간에도 일을 시켰으면 재료비와 인건비는
조금 주고, 밥이라도 삽니다.
그럼에도 일부 작품 장르에 따라 재료비만 준다는 것은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인간의 권리에 반대되
는 부당한 제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국공립미술관 전시, 해외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전시 등을 많이 참여하지만 전시 횟수가 많아질 수록
먹고 살 길은 더 막막해 집니다.

국가, 공공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 생활이 어려워져야 한다는 것은 이상한 논리입니다.
■■■선생님과의 논쟁 뒤에, 새 작품을 만들었던 작가는 50만원 씩 받기는 했지만 만족할 만한 것은
못되었습니다.
제가 50만원을 작가들에 지급하게 한 것이 작가들에 오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한 작가가 전화해서 “김창겸이 전시종료 후 자신의 작품을 못가져가게 하라고 했다”
고 제게 항의를 했습니다. 사실 무슨 말인지 저부터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저에 대해 불편해 했습니다. 국공립미술관의 전시가 많지 않기에 돈을 못받더라도 전시를 하고 싶은
작가들이 많았습니다.
전시 참여작가 중 일부는 상당한 액수의 돈을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별 차등 제작비를 준다는 것은 동의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작가그룹은 한푼도 못받고 다른 소수
의 그룹은 많은 액수를 받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작가들이 최종 받은 50만원도 인건비가 아니라 재료비로 지급이 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문제제기를 하는 저의 행동을 “공명심으로 하시는 것” 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저는 일을 시키고 돈을 안주는 국립현대미술관은 ”정의롭지 않다”, “악의 근원이다.“라는 생각을 했
었습니다.


그 후,
2012년에 대구사진비엔날레에 참여했었는데
전시가 종료될 무렵 사무국에서 ”제작지원비를 받은 작가의 작품은 파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라는 메
일을 받게 되었습니다.
메일을 보고 신호탄 전을 하면서 문득 ■■■선생님으로부터도 동일한 말을 들었던 것 같은 생각도 들
었습니다. 1.
즉각 “어떤 놈들이 그 따위를 원칙이라고 만들었는지 이 개새들아
작가작품이 소모품이냐 이 개새들아” 라고 답변을 보내고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600만원 자비를 지출하며 작가는 작품을 제작했는데, 창작에 대한 고뇌와 노력, 시간을 투
자해 만든 창작품을 기껏 100만원을 보태주었다고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모품처럼 작품을 파기한다
는 원칙은 부당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작품파기는 곧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겁
니다.


2012년 겨울에 문화공장오산의 개관전시를 기획할 일이 있어 총무과 직원과 면담 할 수 가 있었습니
다. 그리고는 당시 제도에서는 작가에게 인건비를 줄 수 없다는 것을 확인 했습니다.
이 전시에 저는 작가들에게 작품대여비, 작가회의비, 작가설치비 등의 명목으로 작가들에게 돈을 지
급하고는
“모든 법적인 책임은 기획자인 김창겸에 있다.”라고 인감 도장을 찍은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2.


그 후 크고 작은 전시의 기획자로서도 활동하게 됩니다.
문예진흥기금을 받아 전시를 기획하기보다 회사나 갤러리와 문화재단의 전시를 기획했는데 그때마다
작가의 이익을 대변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처음보다 2배 정도로 작가에게 예산이 갈수 있도록 했
습니다. 작가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새로운 작업을 요구하기보다 기존 작품을 출품해 달라고 했
습니다.
저 말고도 기획전에서 작가에게 돈을 주도록 노력하고 시도라는 기획자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14년에는 정부에 여러 번 민원을 올렸습니다.
내용은 거의 동일하게 “왜 미술작가에게는 재료비만 줄 수 있고 인건비를 줄 수 없는가?” 라는 내용
인데, 온라인 답변 후 담당자를 만나 녹취하면서 면담을 했습니다. 3.
그때 만난 시립미술관 큐레이터의 답변은 “국공립미술관에서 작가가 전시한다는 것은 특혜이다.
돈을 주어 이중특혜를 줄 수 없다”
그 다음의 국선변호사 답변은 “예술가는 피고용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건비를 적용할 수 없다”,
“작가 협약서는 계약서가 아니다. 돈을 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4.” 등등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2014년 JTBC의 뉴스에서 “작가로 활동하며 재료비만 있었지 인건비를 받을 수 없었다.” 라고 말했
습니다. 5.
그러다가 마지막 문화체육관광부의 담당공무원 면담에서는 “그래서 제도를 개선하고자 진행 중에 있
다” 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다른 실험도 했습니다.
법인회사를 만들어 나의 작품제작, 전시 등의 예술행위가 영리가 목점임을 밝히고 돈을 받는 경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국공립기관에서 전시제의가 오면

“저희업체에서는 각종전시에 작품임대사업과 장비임대사업을 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작가주의 정신에 의해 설치를 한다.”고 하고 공문과 견적서를 보냈습니다. 6.
현재까지 이런 방식으로 전시에 참여하고 예산을 받는 결과 60% 성공적이라 봅니다.
저는 현행제도에서 적법하게 나의 인건비를 받는 방법이라 확신 합니다.


대형전시에서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내가 참여하는 전시에 어떻게 예산이 쓰이는지 나라장터를 통해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7.


또 스터디 그룹에 들어가 문화관련법을 2년가량 열람하고 토론하는 공부도 했습니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토론회에 패널로 참여하고 ’작가보수제도‘에 대해 발언을 했습니다.
저는 ’인건비‘라는 용어를 선호했지만 ‘아티스트피’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제도를 만들겠다는 내용의
정책토론회였습니다.

2017년 아티스트피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을 확인 후 지원제도에 대해 묻고 8.
무용, 음악 등의 타장르의 문제점도 인터뷰하고 녹취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최근의 전시인 ‘광장’전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이 작가들에게 지불한 출품대가가 ‘하루 250원’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돈을 한푼도 안줄 때는 문제를 기사화도 안하더니, 돈을 주기는 하니까 기사꺼리가 된다는 것에 아이
러니를 느꼈습니다.
10년간의 노력이 겨우 ‘하루 250원’.
그래도 제도는 만들어졌으니까 나아지겠죠?


1998년경 저는 미술계에서 활동하기 직전에 2~3년간 돌공장에서 석공을 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였습니다.
노동자인 석공의 입장에서는 유학까지 갔다 온 사람이 자신의 일자리를 뺐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마지못해 나를 동료로 받아들인 석공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형 같은 석공세계를 잘아는 사람이 나중에 우리를 더 착취할 것이라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15년 정도가 지나갔습니다.
선생님이 저에 대해 말씀하신 “공명심으로 하시는 것” 이라는 말은 지난 10년간 내 자신에 대한 자기
검열의 단어였고,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려 노력 했었습니다.


10년 후인 오늘 ■■■선생님께 질문을 합니다.
혹시 선생님은 10년 전 ‘신호탄전’에서 본인의 공명심이나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한국을 대표했던 작
가들에게 제작비도 안주면서 굳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도록 요구했었나요?
또 어떤 작가들의 작품제작비는 엄청났었는데, 대부분의 작가그룹은 한 푼도 못 받은 기준이 무엇인
지 설명할 수 있는가요?
열정페이로 작가들이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권위에 눌려 알아서 기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주면 전
시가 성과가 있고, 전시의 성과는 책임큐레이터의 성과가 되는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닙니까?
저는 일해서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의 예술가를 국가가 창작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주기를 원했던 것입
니다.
국가에서 예술가의 노동의 가치, 창작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자본 시장에서 예술가가 휘둘립니
다.


A. 로이엔터테이먼트
음악계의 착취에 대한 소송이었던 로이엔터테이먼트 사건을 아십니까?
JTBC 의 드라마 ‘송곳’의 배경음악과 각종 티비프로그램의 배경음악을 만드는 20여명의 작곡가들이
있는데 수많은 곡을 작곡을 했어도 로이엔터테이먼트 회사 대표가 음악가들에 작곡비를 안주고 저작
권도 뺏고 거액의 이익을 챙겼던 노동 착취 사건입니다. 9.
이것이 미술계의 미래일 수 있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B. 지원비
저는 악덕 기업인이 국회에서 예산을 승인받아 수억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대형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
들에 갑질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해외에서 있는 국가 홍보차원의 미술전시 기획을 기업이 입찰을 통해 선정되어, 작가들에게는 팜플렛
만 잘 만들어주는 조건만으로 참여케 하는, 무늬만의 미술프로젝트에 기획자로 참여하곤 그 모순적인
구조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기업이 작가에게 일을 시키면서 ‘지원비’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이번에
는 지원비가 없다”며 국가와 똑같이 말하며 뒤로는 이익을 챙기는 등 수 많은 나쁜 사례를 경험 했습
니다.
국가는 정의로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국가가 그렇지 않은데 기업에게 ‘정의로와야 한다.’ 라고 말
하기가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는 노동, 창작의 대가에 대해 ‘지원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
니다. 국가 행사는 작가인 내가 국가를 도와주는 것인데 ‘작가를 도와주는 돈 , 지원비’로 통용되는 것
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원비’라고 사용하지 않아야 할 때도 ‘지원비’라 합니다. 용어를 구별했으면 합니다.
‘예술가는 가난해서 지원비나 받아야 한다.’ 라는 나쁜 프레임입니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용어 ‘작가비, 사례비, 제작비’가 적합한지 사회적 합의한 후 정착되기
바랍니다.


‘지원비’라는 용어는 유효한 경우도 있습니다.
국가는 예술가들에게 문예진흥기금 등으로 ‘지원비’를 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것은 엄밀히 말하면 지원이 아닙니다. 문예진흥 기금에서 지원비를 받는 예술가, 기획자와
비영리전시공간, 사립미술관에서는 인건비를 가져갈 수 없게 만들고 오히려 자부담을 내게 하고 증명해야
합니다.
한 기획자가 많은 시간 노력하여 기획해서 1억의 지원비를 받았다고 할 때, 1년 내내 프로젝트를 위
해 진행하고 예산을 집행하고 정산처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면, 1년 동안 본인이 살아 갈 수 있는 돈
을 만들 시간도 노력할 여유도 없습니다.
국가는 지원비를 받는 기획자를 ‘잠재적인 범법자’로 여기는지 정산 보고도 어렵고 많은 시간을 불필
요한 노동에 시달리게 만듭니다. 사업의 자기부담금을 증명하는 정산처리도 해야 합니다. 다시 다음
해를 위하여 기획안을 만들고 사업을 집행하고 하는 식으로 몇 년의 시간이 반복해 흐르면 결국 파산
하게 되는, 혹은 편법을 하도록 유도하는, 창작활동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입니다. 8.
적어도 제가 아는 한, 일본과 캐나다의 지원제도는 지원을 받는 주체자 본인의 ‘인건비’를 가져갈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오래전에는 지원제도에 대해 ‘국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아마 유인촌 장관 이후 제도가 바뀌었다고 생각되는데 ‘지원비’라는 당근으로 국가의 정책을 대변해
작가들이 무엇인가 하도록 몰고가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예술가를 통제하는 이
런 의도는 찬성하기 싫습니다. 그래서 유인촌 장관이후 저는 문예진흥기금을 직접 신청해서 지원비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아까 언급했던 기업이 어떤 경로인지 국회에서 ‘지원비’을 땃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목격 했습니다.
대규모 아트페어를 만든다고요. 이것은 영리입니다. 작가작품을 팔아 이익금을 낼 수도 작가에게 부
스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립미술관의 전시 지원비에서는 사립미술관은 어떤 수익을 낼 수도,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
안되는 입장료도 받을 수 없습니다.
개인이 설립한 사립미술관의 입장에서는 공공성을 위하여 사비를 털어 미술관을 만들었는데 수익은
없고 지출만 해야 하는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기업은 ‘지원비’로 인해 수익을 가져가고 사립미술관은 ‘지원비’이니까 수익을 못만듭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몇몇 사립미술관들이 지출만 하다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문예진흥기금을 받는 사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는 작가들의 경우 공공기금을 신청할 수 없도록 만
들었습니다.
중복지원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사립미술관은 1년에 기획전을 포함한 전시가 몇 차례 열리고 운좋게
지원금을 받아도 2~3천만원 정도입니다. 이 지원금으로는 1회 기획전 비용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전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막아버리니 사립미술관에서는 개인전 대신 기획전을 선호합니다
많은 작가들이 미술관 기능과 역활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싶어하지만 제
도적 모순으로 인해 희망이 좌절되고 맙니다.
드문 경우에 해당되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갤러리에서 사립미술관을 만듭니다. 표면적으로 공공
성을 획득하고 내부적으로 작품 거래를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상속세 등 법적 의무를 피하기 위한 경우도 있고 미술관 등록은 안하고 이름만 미술관을 사용하
는 등 편법으로 운영하는 일부 사립미술관도 있습니다.
사립미술관을 제대로 평가하여 선택과 집중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문화기본법 제5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에서 ‘문화 활동을 장려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강
구하여야 한다.’ 라고 합니다. 한국의 지원비 제도는 문화 활동을 장려하기는 커녕 예술 종사자를 망
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C. 예술인 복지법
예술인 복지법이 있습니다,
그 법률 안에 예술가에 대한 정의가 있습니다. 문화관련법 전체에서 유일한 예술가에 대한 정의입니다. 필요한 법이지만 충분치 않습니다.
예술가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생력을 가지고, 예술가의 보편적인 창작노동에 대한 직업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나 권익에 대해 포괄 할 수 있는 국가적인 장치가 필요합니다.

법에서 그 정의에 대해 언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술가에 대한 정의가 문화기본법에서 언급되었으면 좋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D. 예술행사
한국에서는 비엔날레, 국공립 미술관 등의 예술행사에서 예술가를 비영리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열심히 하시는 분도 있지만, 공무로 예술, 문화를 위해 일하시는 분들 중에 복지부동 하는 모습을 보
곤 합니다.
비정규직 실무 큐레이터는 월급은 받겠지만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것을 봅니다.
역시 ‘잠재적 법법자’로 여기는지 지원처에 보고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 같습니다.
예술가들의 열정페이를 요구합니다.
오로지 영리법인만이 그런 행사에서 이익금을 가져갈 수 있게 제도화 되었습니다. 9.
비엔날레를 들여다보면 작가들의 노력을 통해 해당 지역경제에 이바지하여야 하는 속셈이 있습니다.
비엔날레, 국공립 미술관 전시는 ‘국민의 문화권을 보장케 하는 국가의 책무’를 위해 예술가들이 동원
되어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참여하는 작가가 누가 되었건 일을 시키는 것이고 그렇다면 합당한 인건비, 작품대여비를 주어야 한
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국내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미술관의 관장님이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국가의, 지방자치의 정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방향과 결정이 예술가들에 많은 영향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노력에 의해 많은 작가에게 제도의 순 기능을 보여줄 수 있는 위치에 있을 수 있습니다.
10년전 신호탄전에서 저와 논쟁을 했던 것에 대해
지금은 시립미술관 관장이라는 위치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국공립미술관 관장님들, 예술 행정 공무원들도 예술가들의 권익에 대해 행동으로 답변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9년 11월 21일부터 12월 4일 까지 씀

김창겸
















































김창겸 선생님, 정말 올바른 문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이야기 전해주신 바 많은 예술가들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 동료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옮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