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소리

차라의 숲 2012. 6. 12. 12:13

시이불견 청이불문 視而不見 聽而不聞.

시청은 흘려 보고 듣는 것이고, 견문은 깊이 보고 듣는 것.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읽는 중, 이 설명에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 나이가 들수록 시청하는 건 많아지는데, 견문은 짧아진다.

 

고등학교 시절, 교장선생님은 늘 오전 10시경이 되면 전교생을 운동장에 불러모아 지루한 훈화말씀을 반복적으로 하셨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이 되라"는 말씀과 함께, "감동하는 인간이 되라"는 말씀이었다. 감동할 줄 아는 인간이 되라는 말씀이 그땐 깊이 와닿지 않았다. 낙엽 떨어지는 것만 봐도 눈물 흘린다는 감수성 절정의 십대여서인지도 모르지만, 그것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체득하지 못했던 탓이다.

 

견문을 하려면, 소설가 김훈의 말을 빌려 "무엇을 보든 천천히 보아야 한다."고 조언한 것처럼, 감동 역시 천천히 보고 듣는데서 더 열린 마음으로 더 풍부한 감동을 맛보게 될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 감동하는 인간이 되라고 주문하실 때, 이런 것까지 담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그 말씀이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나는 거 보면,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던 모양이다.

박웅현씨는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지겹다고 하는 건 시청이요, 사계의 한 대목에서 소름이 돋는 건 견문이 된 거"라고 예를 들어준다. 돈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감동을 잘 받는 친구들이 지식이 많은 친구들보다 일을 더 잘한다고도 했다.

 

천천히라...

시대의 속도감을 따라가기 버거워하는 우리에게 어려운 주문일 수 있다.

그러나 천천히 해보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리겠지.

이젠 시청이 아니라 견문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