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단상

차라의 숲 2012. 6. 14. 10:55


 

누군가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지구 외에도 생명체가 산다고 생각하느냐, 외계인이 있느냐는 등 불교에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설명하느냐고 법륜스님께 여쭸다.  최근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보고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서양 사람들은 자꾸 믿음의 문제로 인류의 시원을 보려는걸까. 기독교 세계관에서 그렇게 벗어나기가 힘드나. 불교라면 애초에 물음을 그렇게 던지지 않았을텐데. 막연한 생각이라 더 깊이 들어가진 않았는데, 스님 말씀을 들으니 좀 더 명확해진 기분이다.

"불교는 믿음을 다루지 않는다. 누군가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믿으면 되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안 믿으면 된다. 불교는 마음 작용을 살피고, 이치에 맞는 진리를 추구하며 그 진리를 자기화하는 것이다."

다 받아적지는 못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새겨지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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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선 기본적으로 우주가 얼마나 크며 어떻게 생겼냐를 연구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연구한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의 작용이다. 마음의 작용을 깊이 연구해보니 두 가지 법칙이 있는데 첫째 변하지 않는 건 없다, 둘째 단독의 실체도 없다는 것이다. 제행무상과 제법무아.

불교는 물질 연구를 하지 않지만, 물질의 법칙과 정신의 법칙이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과학과 불교는 배치되지 않는다.불교 자체가 법칙을 연구한다. 그래서 불법(佛法)이라고 한다. (물질의 법칙과 정신의 법칙이 일치하는 예를 아주 쉽고도 상세하게 설명해주셨는데, 아쉽게도 못 적었다.)

불교는 항상 실재가 어떤지 연구하므로 이 우주에 인간만 산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주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많은 세계가 있고 정신 수준도 다 다른 생명이 살고 있다. 수많은 생명이 우주에 존재하고 수천수만의 번뇌가 존재한다. 생명의 작용에서 보면 인간과 다람쥐가 같지만 정신 작용에서는 다르다.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존재를 부처라 한다. 믿음은 깨달음과 관련이 없다. 이 세상을 누가 만들었느냐. 만들었다고 믿으면 그렇게 믿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 믿으면 된다. 인간의 믿음은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없다.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은 귀신을 봤다고 하고, 한 사람은 귀신을 못 봤다고 하면, 누가 옳은 거냐. 만약 천 명의 사람들이 귀신을 봤다고 하면, 그 생각이 옳은것인가.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사람이 일억명이고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믿는 사람이 한명이라면 전자가 옳은거냐. 인식은 주관적인 것이고,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부처님은 옳다 그르다 말씀 대신 모순을 보게 해주신다. 이치에 맞는 게 진리이다. 진리에 눈 뜨는 것,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불교이고, 그것이 깨달음이다. 눈 감고 있으면 무지이고 어리석은 중생이다. 불자란 불교의 이치를 자기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다.

                                                                         -2012년 6월 13일 수요일 법륜스님 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