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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군자 2021. 3. 8. 17:43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공개된 운암강수만경래 경만장 안내성 성도 私家에 전한

임술생 문왕 사명자 3父子 都安 초,중,말복(壬戌, 甲午, 丙申) 세살림 司命旗 엠불럼(emblem) 로고.

초중말복 5진주 세명. 5+5+5(6)=15(16).마지막 5진주는 판모리 6서시

 

 

<통합경전>다음 밴드에 들어가면 전체 파일 다운됩니다. 비회원 입장 가능.엄밀히 말하면 동지한식백오제 105년만에 밝혀지는 '천지공사 진법을 설명해주는 안내서'로 <통합경전 서문>입니다.<통합경전> 전체는 본문 포함 기독교 신구약 두배가 넘는 분량입니다. http://band.us/#!/band/61758246

Digest:

에센스 축약다이제스트통합경전.pdf

 

 

 

 

공동리더

금강

2021년 3월 3일 오후 3:03

 

♤♤동곡약방이 곧 조화정부.
정읍이 곧 고부.

 김준상
  김준상 종도는 만국의원인 구릿골 약방이 차려진 집의 주인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른 어떤 종도 못지않게 중요한 사람입니다

1908[戊申]년 4월, 동곡(銅谷, 구릿골)01에 살고 있는 김준상(金俊相, 1878∼1966)의 부인이 발바닥에 난 종창으로 죽을 고생을 하고 있었다. 김준상은 김형렬의 사촌동생이자 상제님의 종도인 김갑칠(金甲七)의 형이었다. 상제님께서는 그 소식을 들으시고 “환부가 용천혈이니 살기 어려우리라. 준상과 갑칠은 오늘 밤 서로 번갈아 환자를 잠에 들지 못하게 하면서 밤을 새우라. 명부사자와 나의 사자 중 누가 강한가 보리라.”고 말씀하셨다. 
 두 사람은 상제님의 명을 따라 환자를 돌보았고, 환자는 정신이 혼몽하고 한때 위독해지다가 날이 밝자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상제님께서는 김준상과 김갑칠에게 안심하게 하시고, 쌀뜨물을 환자의 종창 자리에 바르시고 100냥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김준상이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가옥을 방매하여야 되겠나이다.”고 하면서 난감해하자, 상제님께서는 김준상의 집을 상제님께 팔도록 하셨다. 김준상은 부인의 병을 고쳐주신 상제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면서 기꺼이 상제님께 집 문서를 내어드렸다. 상제님께서는 그 문서를 잠시 동안 가지고 계시다가 불사르신 후, 김준상을 계속 그 집에서 살도록 하셨다. 대신 방 한 칸을 빌려 약방으로 쓰고자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동곡약방이다. 
  
  김준상 종도의 집은 증산상제님의 소유로 되었고 약방은 증산상제님이 이땅에서 유일하게 소유한 재산이죠. 다른 재산은 갑진년에 일진회에 모범을 보이기 위해 모두 팔아서 전주 시내로 나가 거지에게 나누어 줍니다

 갑진년 여름에 대선생께서 구릿골에 계시더니 제자가 아뢰기를,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겨 친일파 세력이 대두하면서 이용구 등이 일진회를 만들어 그 세력이 매우 크니, 만약에 민폐를 끼치면 백성들의 일이 불쌍하지 않겠습니까?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내가 모범을 보이리라 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시어 집안의 재산을 모두 팔아 없애시고 전주 남문으로 가시어 거지들에게 나누어 주시니, 온 가족이 남의 곁방살이로 지내니라. 
말씀하시기를, 일진회는 나를 본받아 앞으로 제 돈을 쓰게 되리라. 
甲辰夏(갑진하)에 大先生(대선생)이 在銅谷(재동곡)하시더니 弟子(제자)이 告曰(고왈), 日俄之戰(일아지전)이 日勝(일승)하야 親日之勢(친일지세)가 擡頭(대두)하니 李容九等(이용구등)이 作一進會(작일진회)하야 其勢(기세)이 浩大(호대)하거늘, 若作民弊(약작민폐)하면 民事(민사)가 不悶然乎(불민연호)잇가. 
曰(왈), 汝言(여언)이 是也(시야)로다. 我(아)난 垂範也(수범야)리라. 歸家(귀가)하사 蕩盡家財(탕진가재)하사 行全州南門(행전주남문)하사 分賜乞人(분사걸인)하시니, 上下家眷(상하가권)이 在人挾戶(재인협호)하니라. 曰(왈), 一會(일회)난 範我(범아)하야 將自費也(장자비야)리라. [갑진 6장]

 그리고 이 자리에 조화정부를 열었으므로 동곡약방이 곧 조화정부 청사(廳舍)입니다. 흔히 조화정부는 병겁 개벽 후에 출현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천자를 도모하는 이들의 난법난도이고, 대순전경 천지공사 제1장에 명시된 대로 조화정부는 천지공사의 시작 시점에 설립되었습니다.

 [대전 4- 1] 임인(壬寅)년 사월에 천사 김형렬(金亨烈)의 집에 머무르사 형렬에게 일러 가라사대 시속(時俗)에 어린 아해에게 개벽쟁이라고 희롱하나니 이는 개벽장(開闢長)이 날 것을 이름이라 내가 삼계(三界)대권(大權)을 주재(主宰)하여 천지를 개벽하며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고 조화정부를 열어 재겁(災劫)에 싸인 신명(神明)과 민중(民衆)을 건지려 하니 너는 마음을 순결히 하여 공정(公庭)에 수종(隨從)하라 하시고 날마다 명부공사(冥府公事)를 행하시며 가라사대 명부공사의 심리(審理)를 따라서 세상의 모든 일에 결정되나니 명부의 혼란으로 인하여 세계도 또한 혼란하게 되느니라 하시고 전명숙으로 조선(朝鮮)명부 김일부로 청국(淸國)명부 최수운으로 일본(日本)명부를 각기 주장케 한다 하시며 날마다 글을 써서 불사르니라
 
 조화정부는 임인년 사월에 이미 설립되었고, 6년 동안 지상의 청사 없이 천상 신명계의 조직으로 지내다가, 무신년 동곡약방의 개설로 지상에 유일한 하느님 소유의 집에 정식으로 출범한 것입니다.
  그 관리인이 김준상 성도이므로 “김준상을 불러 자내는 날 보담 나은 사람일세. 자내를 차자야 나를 알기 될 참이니 날 보담 났단 말일세.  [성화진경(동곡비서) 15]” 라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김준상 종도의 이름에는 ‘빼어난(俊) 정승(相)’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
  약방공사 이외의 도운 분야에서는 김준상 종도의 이름 뜻에 담긴 도수를 받는 사람은 교단을 창설하여 포교한 모든 창교주들이 후보가 됩니다. 그들을 통해서 증산상제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서 누가 좌상과 우상의 자리를 차지하는 진정한 ‘준상(俊相)’인지는 병겁이 지나 보아야 알게 되겠네요.
 
  고부 선인포전
  약방을 개설하면서 “공우로 하여금 고부에 가서 장판을 사오라 하사 깔으시며 가라사대 이는 고부 선인포전(仙人布氈) 기운을 씀이로다” 하셨는데, 박공우 종도를 시켜 장판을 사 오게 한 점만 보더라도 약방 개설이 얼마나 중요한 공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박공우 종도에 대한 중요한 공사만 살펴보아도 그 분의 비중이 확인되기 때문이지요.

[대전 3- 22] 천사 경석과 공우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精神)이 나오노라

[대전 4- 89] 하루는 경석의 집 서쪽 벽에 이십사장(二十四將)과 이십팔장(二十八將)을 써 붙이시고 공우의 왼팔을 잡으시며 소리를 높여 만국대장(萬國大將) 박공우라고 부르시니라 이 뒤로 공우 어디를 심부름 가든지 문밖에 나서면 어디선가 방포성(放砲聲)이 나더라

[대전 9- 29]. 이날 밤에 공우를 침실로 불러들여 일러 가라사대 네 입술에 곤륜산을 달라 무진(戊辰) 동지(冬至)에 기두(起頭)하며 묻는 자가 있으리니 의통인패(醫統印牌) 한벌을 전하라 좋고 나머지가 너희들의 차지가 되리라

  증산상제님과 통정할 수 있는 종도 중 한 분으로서, 차경석 성도에게는 난법 도수를 붙였으므로 진법을 간직한 유일한 성도요, 만국의 신병(神兵)을 지휘하는 대장이요, 후일에 무진 동지에 기두한 이상호 에게 의통인패를 전함으로서 진법도수를 성사시키게 됩니다 이로써 용화동 대법사 증산교를 통해 마지막 추수일꾼의 문왕 사명자에게 의통이 전수되게 됩니다 박공우 성도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이정도로 소개를
마치고, 고부 선인포전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먼저 고부(古阜)는 익히 알려진 대로 증산상제님의 탄강지입니다. 전라북도 정읍시의 옛 지명이므로 고부가 곧 정읍이며, 동학 농민운동의 시발지로서 우리 민족사에서도 중요한 지역이 됩니다.

고부 [古阜]
정의 ; 전라북도 정읍 지역의 옛 지명.
내용
본래 백제의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으로 후기에 5방 중 중방(中方)이 설치된 요지였다. 663년당나라 치하에서 고사주(古四州)로 개칭하고 평왜(平倭)ㆍ대산(帶山)ㆍ벽성(辟城)ㆍ좌찬(佐贊)ㆍ순모(淳牟)의 현을 관할하였다. 757년(경덕왕 16)고부군으로 고치고 부령(扶寧)ㆍ희안(喜安)ㆍ상질(尙質) 등을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936년(태조 19)영주(瀛州)로 개칭되고 951년(광종 2)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안남도호부가 낭주(朗州)로 이전되고 1019년(현종 10)고부군으로 회복되었으며, 대산군(大山郡)과 정읍ㆍ인의(仁義)ㆍ부령ㆍ보안(保安)ㆍ상질ㆍ고창 등의 현을 임내(任內)로 관할하였다. 충렬왕 때 일시 수령(守令)이 폐지되고 영광군의 임내로 편입, 격하되었다가 곧 복구되었다.
1466년(세조 12) 지군사(知郡事)가 군수(郡守)로 바뀌었다. 임내 중 각 군ㆍ현은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독립 고을로 분리되고 나머지는 조선 초기에 직촌(直村)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전주부 고부군, 1896년전라북도 고부군이 되었으며, 1906년 월경지(越境地)인 부안면이 흥덕군에 이관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일부는 부안군에, 나머지는 정읍군에 분할, 병합되어 고부면이 되었다. 1995년정읍군과 정주시가 통합되어 정읍시가 되었다.
1765년(영조 41) 옛 읍성 남쪽으로 읍이 옮겨졌고, 고려시대 전의 읍치는 동남쪽 두승산(斗升山) 기슭의 성내에 있었다.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지로 백산(白山)에 집결한 동학군과 정부군 사이의 격전이 황토현(黃土峴)에서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부 [古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런데 천지공사에서 고부는 보다 깊은 의미를 숨기고 있습니다. 먼저 ‘고(古)’라는 글자는 열십 밑에 입 구로써 하느님께 기도하는 고대의 신전과 신상(神像)을 가리키는 글자입니다.

  박용숙 선생은 고대가 단순히 [오래된 시대]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古]라는 글자가 지닌 고유의 의미가 통하던 시대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혀 내었다. 이에 대한 선생의 논문인 <[古]와 古墳의 역사>에 주장된 주요 내용들을 간추려 봅니다
 1. 시대적으로 [고대]에는 세 가지 시대구분이 있다. <강희자전(康熙字典)>에서 "伏羲上古 文王中古 孔子下古"라고 되어있는 바, 복희의 시대가 상고요, 문왕의 시대가 중고요, 공자의 시대가 하고라는 뜻이다.
 2. [古]는 처음에는 신전을 나타내는 말이었다가 후세에는 신상(神像)으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강희자전>에서 "先古謂先祖也(선고를 선조라 한다)"라고 하여, 古와 祖가 같은 뜻이라하였고, 또 "祖狀尸也(祖는 尸의 모습이다)"라 하였는데, 다시 尸(시)를 "又神像也 古者祭祀皆有尸以依神(또 신상이다. 옛날에 제사에는 신을 의탁시키는(대신케하는) 시(尸)가 있는데 그것이 신상이다)"라고 한다.
 3. 古의 옛글자는 덮개(지붕같은 것)가 있는 건조물 속에 휘장을 치고, 성직자가 신상에 예배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복희씨가 하도를 보고 팔괘를 그린 것이 역의 시초가 되는데. 여기서 복희씨가 보았다는 하도는 천문현상(天文現象)이고, 또 천문현상을 본떠 만든 신전이기도 하다.
  복희씨가 그 모습을 보고 팔괘를 그릴수 있었으니, 복희씨의 시대까지는 천신(天神)이나 지신(地神)의 감응에의해 하도와 팔괘가 나온것이다


  이 그림이 하도이다. 하도는 하나(一)부터 열(十)까지의 자연수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에서 홀수는 하얗게 표시되어 볕(陽)을 상징하고 짝수는 까맣게 표시되어 그늘(陰)을 상징한다. 이 음양이 서로 안고 안기어 서로 밀고 당기는 힘으로 만물을 낳아 기른다는 것이 하도가 담고 있는 핵심사상이다.
 하도의 자세한 설명은 뒤로 미루고, . 하도가 낙서와 함께 역(易)의 원조인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이 그림이 신교의 삼신산(三神山 이라는사실은 아직까지 알려져 있지 앉지요.

삼신산은 우리민족의 발상지로 알려진 태백산(太白山)이요, <삼국유사>에 궁홀산(弓忽山), 백악산(白岳山)으로도 표기된 바로 그 산이요, <삼성기(三聖記)>에서는 사백력(斯白力)과 파나류산(波奈留山)으로 기록된 산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부르는 백두산(白頭山)이나 장백산(長白山), 중국사서에 자주 등장하는 곤륜산(崑崙山), 천산(天山), 태산(泰山)등이 실제로는 모두 이 삼신산의 별칭이다. 
 , 이렇게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삼신산의 실체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피라밋(Pyramid)이다. 피라밋이 삼신산이라고 생각하고 하도를 보게되면, 하도가 피라밋의 평면도인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읍니다
 가운데 다섯 개의 흰점을 모아 만들어진 십자는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어 피라밋의 네 모서리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는 점과 일치하며, 또 이 십(十)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네 개의 삼각형은 피라밋의 네 비탈의 세모꼴과 일치한다. 십자를 둘러싼 세 겹의 네모꼴은 피라밋의 삼층 기단(基壇)을 나타냅니다. 또 그 네모꼴의 사방에 희고 검은 점으로 표시된 숫자가 방위를 상징하고 있음은 역학(易學)의 상식입니다
 이 세 겹의 네모 위에 피라밋이 있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중앙의 십자를 네모 위로 뽑아올린 것이 [古]자이다. 피라밋에 삼층 기단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피라밋의 내부가 삼층으로 나뉘어 있으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읍니다. 삼신산은 삼층으로 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성산(聖山)인 백두산도 크게보아 삼층으로상징되어 집니다 . 삼신산은 환단산(桓檀山)을 거쳐 혼돈산(混沌山)이 된 후 다시 곤륜산(昆崙山)이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요.
 
 고(古)가 피라밋으로서 삼신산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증산상제님이 삼신을 자처하고 고부를 택하여 강세한 사실들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지공사가 지향하는 원시반본 이념의 ‘원시(原始)’가 동이족의 배달국과 고조선의 문화인 삼신상제님의 신교 풍류라는 사실도 확인되지요.
  고부의 부(阜)는 ‘언덕, 대륙, 크다’는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이 또한 십자 모양의 큰 언덕으로서 피라밋 삼신산의 다른 글자이지요. 십(十)자를 언덕 아래에 쓰는 이유는 삼신산에서 음양조화를 통해 세상을 다스리던 신정(神政) 풍속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부(阜)에는 삼신산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가 하나 더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던 골고다 언덕의 뜻이 상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고부의 옛 이름이 정읍(井邑)이었으니, 이는 신농씨가 태어났을 때 그 주변에 아홉 우물이 있었다는 전설과 연결됩니다. 삼신산의 우물은 용이사는 용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곳을 택하여 강세하신 증산상제님은 “화룡(畵龍) 천년에 진룡(眞龍)이 이름을 모른다”고 한탄하셨지요. [대전 3- 131]
천지개벽경에는 “陣木花開萬樹春(진목화개만수춘)이오 井海水流四海源(정해수류사해원)이라. (묵은 나무에 꽃이 피니 모든 나무에 봄이오고, 우물 바다에 물이 흐르니 사해의 근원이로다.) [갑진 4장]”는 시가 나옵니다. 
 ‘진(陣)’은 복희씨와 신농씨가 도읍했던 곳의 지명인 ‘진(陳)’과 같은 글자이고, ‘정(井)’은 고부가 행정구역 개편으로 바뀐 정읍을 가리킵니다.

 炎帝神農氏 姜姓, 人身牛首, 繼太昊伏羲氏而立. 斲木爲耜; 揉木爲耒, 始敎耕. 嘗百草, 始有醫藥. 敎人日中爲市, 交易而退. 都於陳, 徙曲阜, 傳姓凡八世, 五百二十年.[사기 삼황본기]
 염제신농씨는 강씨의 성으로 사람 몸에 소의 머리를 하고 있고 태호복희씨를 이어 등극했다. 나무를 깎아 보습을 만들고, 나무를 휘어 쟁기를 만들어 처음으로 농사를 가르쳤다. (그리고) 여러 풀을 맛봐 처음으로 의약을 지었다. 사람들에게 해가 떴을 때 시장을 형성하여 물물을 교환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가르쳤다. 진에 도읍한 후에 곡부로 천도했으니, 성을 이어받은 지 8대나 지나, 520년이나 재위했다.증산 상제님께서는 스스로 백대 일순이라 하셨죠

  이와 같이 증산상제님의 고부 탄강은 천지신명에 의해 빈틈없이 예비된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약장의 구조와 약장 가운데 칸에 넣은 단주수명(丹朱受命)까지 풀면 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고부의 비밀을 풀었으니 다음에 살펴 볼 내용은 선인포전(仙人布氈)이네요. 선인포전이란 신선이 자리를 펴고 수련하는 형국의 명당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자료를 먼저 소개합니다.
 
 내장산(內藏山)에서 삼신산(三神山)을 낳았으니 방장산(方丈山), 변산(邊山) 그리고 두승산(斗升山)을 말한다. 두승산은 삼신산 중에 중심산인 영주산 격이요 그래서 두승산 아래의 객망리에서 증산께서 탄강하였다. 또한 증산께서는 영주산 정기이므로 상제라 하는 것이고 영주산인 두승산 아래의 마을 이름인 만수(萬修)가 보호신이었다. 두승산을 배경으로하여 서향(西向)을 하면 선인포전형 명당자리로 추측됩니다 선인포전(仙人布氈)이란 신선이 자리잡고 앉아 수행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왜곡된 만수산(萬壽山)이라는 수(壽)자는 맞지않고 닦을 수(修)자 만수산인 것이다.
 만수(萬修)란 만년동안 수행한다는 뜻이고 만인(萬人)이 수도한다는 뜻입니다. 후천 오만년 동안 모든 사람들이 이 선인포전(仙人布氈)형 명당 기운으로 수행하여 신선이 되고 선화(仙化)하여 만수(萬壽)한다는 명당입니다. 이산을 두승산의 남서쪽에서 바라다보면 마치 큰 의자에 정좌한 선인 모습이죠. 혈처의 뒷산이 신선인데 안개 낀 날씨로 그 신선의 모습을 감추었고
명혈은 실혈(失穴)되어 실제 혈처는 비어있다.고 합니다
 
선인포전의 명당 기운은 이 내용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시반본 이념과 관련된 신교 풍류의 관점에서는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전(氈)’이라는 글자의 뜻이 ‘모직물로 짠 깔개’로서, 융단 또는 카펫이라고 불리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동양의 농경사회에서는 모직물로 짠 자리를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띠(茅)라는 풀로 만든 자리인 돗자리인 석(席)을 깔고 공부하였고, 부유한 귀족들은 솜을 천으로 감싸서 만든 방석을 주로 썼지요. 특히 신선이 되려고 공부하는 선인(仙人)들은 돗자리를 많이 썼으므로 선인이 수련하는 형국의 명당이라면 선인포석(仙人布席)으로 불러야 옳은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인포전(仙人布氈)이라고 쓴 것은 그 선인의 기운이 시작된 곳이 유목민들의 땅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유목민들의 땅이란 파미르 고원과 티벳고원 주변의 땅으로서, 중앙아시아 일대 천해인 배달 동 이국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지역이며, 이 지역은 지금도 유목민들이 열악한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지역입니다.
 
배달환웅이 신시를 열었던 장소인 태백산 신단수를 티벳 피라밋이 있는 카일라스 성산이라고 추정하는 역사학자 도 있습니다. 여기서 지금의 중동 지역으로 뻗어나간 배달국의 동이족이 세운 나라가 아시리아로서, 이 나라가 고조선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물론 배달국이나 고조선은 둘 다 전 세계를 교화하던 천자의 나라인 천국으로서 동방에도 제후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상고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문헌들에 등장하는 고조선의 대단군(大檀君)인 진한(辰韓) 용왕(龍王)이 거주하던 중심신전이 있던 곳이 중앙아시아였다고 얘기하고 있읍니다 좀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약방에 쓴 선인포전의 기운을 풀이하면, 신농과 환웅과 단군왕검에 뿌리를 두는 신선이 되기 위한 수행의 기운이 선인포전입니다. 그리고 환단고기를 비롯한 한겨레 상고사에서 환웅과 단군의 가르침은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이고, 그 중에서 수행법은 삼일신고에 수록된 지감(止感), 금촉(禁觸), 조식(調息)으로 일의화행(一意化行)하여 반진일신(返眞一神)하는 참전법(參佺法)입니다. 
  이 참전법이 후대에 전해지면서 신선도(神仙道) 또는 신선술(神仙術)로 불리게 되었고, 증산하느님이 소개한 신선인 여동빈의 저술로 알려진 태을금화종지라는 책을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태을금화종지에는 참전법인 신선술의 수행법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인포전에는 이렇게 큰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배달국과 고조선을 동북아 지역의 한겨레 고대국가라고 설명하는 주장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이 민족정기의 회복에는 큰 기여를 할 수 있지만, 나라와 민족들 사이의 분쟁의 불씨를 후천으로 가져갈 위험성이 큽니다.
사실이 아닙니다.강역과 기원이 축소되었읍니다.
증산상제님이 원시반본 이념을 천지공사의 바탕으로 삼으면서 남조선이 세계를 통일하도록 도수를 짜신 것은 고대에 세계를 교화한 신성국(神聖國)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신성국이 배달국이며 고조선 이었고, 그 지역이 동서양의 중심인 티벳ㆍ파내류ㆍ중앙아시아 일대였으므로, 그 기운을 옮겨오는 공사가 고부 선인포전 기운을 쓰시는 약장 장판공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