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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군자 2006. 4. 4. 17:41
 


 



나라 팔아먹는 교수들...

1. 들어가는 말

대학을 사랑하는 저는 대학이 상아탑 본연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학사과정에서 자신의 전공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사회와 시대의 흐름, 교양 전반에 걸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중국과 일본에 의해서 역사왜곡을 당하고 있는 지금 당시 우리나라 역사는 이병도를 비롯한 친일 식민사학에 의해서 극심하게 왜곡 되었다
사학계(史學界)의 거두 고(故) 이병도가 친일이었으니 그의 추종자들이 앞세우고 있는 친일의 사학은 반드시 뿌리 뽑혀야할 친일 식민사학의 잔재이다.

물론 늦었지만 대오각성을 한다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또한 강단사학자를 모두 질책하는 것은 아니다.

  강단사학자들 중에서 기골이 있는 사람은 그래도 이에 굴하지 않고 자기의 독특한 민족 사관을 학교에서 가르치다 보면 식민 사학자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 화살을 퍼붓는 통에 한국 땅에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가 없어서 미국으로 도피하는 실례도 있다.
<국사통론>을 쓴 건국대학교의 박형표 교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비록 식민 사학자들에게서 배웠지만 일부 뼈대 있는 소장 학자들이 그 천편일률적인 식민 사학에 싫증을 느끼고 이에 반기를 들려고 하면 그들은 대스승인 이병도 박사가 그런 짓을 좋아하지 않으니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고 한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밥줄이 끊어지는 고통을 당하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식민 사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정말 통탄할 일이었다.

이제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역사를 알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곧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2. 반민족적 강단사학자를 모조리 처단하자!

우리나라는 해방 60주년을 맞이한 오늘날도 우리나라의 국사가 일제의 칼에 짤려서 머리도 없는 유령의 역사에 몸통은 전신이 유린되어 오늘도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으나 대한의 아들딸들은 왜독에 중독되어 이미 넋을 잃고 눈멀고 귀가 먹어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있으니 한국인의 고질병을 그 누가 치유활수 있겠는가?
우리는 아직도 식민잔재의 친일파 척결의 과거사 청산을 해결하지 못한 것은 역사학계를 장악했던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를 민족사학을 정립한 선구자로 추종하는 세력들의 소위 강단사학자 들이 한국사회의 각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나 존재양태를 철저히 규명하여 척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역사를 말살, 왜곡, 조작한 일제의 만행을 영원히 은폐하기 위한 일제의 공작은 지금도 은밀히 진행 중에 있으나 넋을 잃은 정부교육기관과 각 대학교는 일제의 마수를 깨닫지 못하고 일제의 마수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가 만든 망국적 치욕의 현행 국사를 적극적으로 사수하고, 독립 운동가이며, 조국에 목숨을 바친 한민족의 사학자 계연수 선생이 편찬한 국보적 정통사서의 [환단고기]를 僞書(위서)라고 주장하고, 있는 얼빠진 자들은 한민족의 반역자 이병도 보다 더욱 악랄한 반민족적 반역 행위자임을 직시하고, 현행국사를 사수하고 있는 민족반역자들을 시급히 모조리 발본색출 소탕해야 한민족정기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전기가 마련 될 것이다. 정부당국자는 국사의 중요성을 진실로 각성하고 반민족적 반역행위자를 시급히 색출 처단하자!

그렇다면 친일의 행적 중에 가장 큰 죄가 역사를 왜곡한 부분이다

교과서에서 이병도, 신석호가 민족을 살리는 우국지사가 되었다.
  6차교과서(97년 초판 발행~ 2002년)153쪽의 내용이다.
일제의 침략정책에 한국사를 왜곡시키고 있는 일본 어용학자에 대항하기위하여 이병도, 손진태 등은 진단학회를 설립하였다. 진단학회에서는 진단학보를 발간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의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일제는 민족말살정책을 강행하면서 진단학회를 강제로해산시켜 진단학보의 간행도 중지시켰다.
교사용 지도서의 내용
이병도, 손진태, 신석호는 일제의 어용단체인 청구학회에 대항하기위하여 민족단체인 진단학회를 설립하였다.,<= 이런 천인공노할 거짓말을 한다. 사실 나 자신도 그렇게[ 배웠다.

하늘이 울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이지 지겹지도 않습니까? 속고 사는 것도 한 두 번이지 ...
이제 더도 덜도 말고 제대로 된 우리의 역사를 알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왜곡되고 남의 정신에 의해 씌어진 역사를 가르치고 싶지 않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고 내 아들, 딸들에게 떳떳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3. 나라 팔아먹는 교수들

그러나 이병도는 죽기 바로직전에 조선일보 기고를 통하여
"단군은 신화가 아닌 실존의 역사"이며, "단군제사가 일제때 끊겼다"며
참회의 글을 남기고 죽었다.

(식민매국사학의 계보 : 이병도, 신석호와 그 제자들)
|역사 바로알기2005/08/30 03:25
http://blog.naver.com/manushya/120016871443  친일 명단 3000여명이 발표 되었다. 이 친일명단 자료를 참고하였다.

역사왜곡의 대가로 이병도는 국립서울대학교 교수로
신석호는 고려대 교수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병도 직계는 이기백, 이기동, 최몽룡, 노태돈이고
신석호 직계는 김정배이다

이병도, 신석호 그 일파들이 민족역사를 팔아먹었고 또 그 밑의 제자(지금도 대학 강단에서 이런 역사왜곡을 아직도 주장하는 이기동, 최몽룡, 노태돈, 김정배 등)이 있는 것이다.
또 식민사학의 잔재에 벗어나지 못한 김철준...
역사학자중 '국사대사전'을 쓴 이홍직 역시 이병도에 버금가는 식민사관의 태두죠, 이러한 자들이 조선의 사학을 말아 먹습니다.
식민매국사학의 흐름은
제1세대 이병도, 신석호, ·손진태,
제2세대 김철준(전 서울대 교수)으로
제3세대 노태돈(서울대)·이기동(동국대)·주보돈(경북대) 교수 등 소위 내로라하는 학자들
제3세대 직계는 교원대 노태돈의 제자 송호정 자칭 고대사 국내 1호박사라는 사람입니다

계보에 적힌 사람들이 애국민족사학자로 경력을 변조하려 갖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만행을 막아야만 합니다.
매국노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고....
이완용의 조카 이병도는 만주역사를 팔아먹고 반도사관 만들어 놓고............
이병도의 제자들이 국사교과서편찬자이자 우리나라 대표적 역사학자이다.
이러니까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하고 삼국사기만 가지고 대륙백제 조차 인정을 안 하는 것이다.

식민사학의 거두(巨頭) 이병도(이완용의 조카)(李丙燾 1896∼1989)
광복 후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195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이듬해 국사편찬위원, 1956년 진단학회 이사장, 1960년 교육부장관, 1966년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거친 식민 사학의 거두(巨頭)이다.

손진태 (孫晋泰 1900∼?)
1949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장에 재직 중 6·25로 납북되었다.

이홍직[李弘稙] 1909 경기 이천~1970.
8·15해방 후 연세대학교 교수(1953~58), 고려대학교 교수(1958~70)를 지냈다.

이기백 (李基白 1924∼2004)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963~1985년 서강대학교 교수, 1985년~1995년 한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런데, 이기백이 이병도씨가 생전에 활동하였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사 시민강좌』란 이기백이 책을 펴내는데,
한국사 시민강좌 제 2권은 완전히 단군을 신화로, 도깨비로 만드는 특집시리즈입니다..
『단군신화론』이라는 책을 내면서 자기 할아버지를 귀신으로 만들고, 그것이 과학적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 비록 표현을 완곡하게 쓰고는 있지만, 이것은 강력한 단군부정론입니다.
이 자는 한림대학교 사학과 교수로서 "고조선의 국가 형성" 등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논문의 주요내용은 “단군신화는 후대에 많은 윤색 첨가된 것으로, 그 신화의 원형을 찾는다고 해도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단군을 역사적 실존인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라는 것이며 이러한 주장은 일부 기독교 목사들의 반민족적 행위를 부추기는 역사적 자료이다.

'단군신화의 문제점'이라는 글에서
'오늘날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단군을 신화라 생각하는 쪽과 반대로 단군을 역사적 사실로 믿는 쪽이 서로 대립되어있는데, 신화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늘의 상식이요 사실이라 믿는 쪽이 상식 밖이다'

이기동 교수
성균관대 이기동(53) 교수로 '곰이 성공하는 나라'를 펴내 ‘변신’이 뜻밖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식민사학자의 대표주자인 이기동 교수의 본색을 숨길 수가 없다. <단군은 신화이다>라는 망할놈의 식민사학이 보인다.

송호정은
"어찌 곰이 사람이 되냐 ? 미신일뿐 단군은 신화다"라고 교사들에게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합니다

(이병도 영향을 받은 식민매국사학자들..)
1. 고병익 - 24년생, 前 서울대 총장 식민매국사학자
2. 천관우 - 사망, 25년생(前 국사편찬위원), 서울대
3. 이기백 - 24년생 - 前 이화여대 석좌교수, 진단학회 대표간사
4. 차하순 - 29년생 - 서울대 서양학 전공 - 한, 일 역사가회의 공동의장
5. 한우근 - 15년생, 사망 - 일본도쿄대 중퇴
6. 김철준 - 23년생, 사망 - 서울대, 前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7. 김원용 - 22년생 - 사망, 경성제국대 동양사 - 前 서울대 교수
8. 유원동 - 24년생, 사망 - 서울대, 前 숙명여대 대학원장
9. 변태섭 - 25년생 - 서울대, 서울대 명예교수
10. 이기동 - 43년생, 서울대 - 국사편찬위원,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대책반 자문위원
- 문화관광부 매장문화재 위원
- 이기동의 교우
* 민현구(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 한영국(인하대 사학 교수)
* 이태진(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 유영익(연세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11. 박영률 목사
12. 김승동 목사
13. 길자연 목사
14. 김명석 목사
15. 방철호 목사
16. 이승영 목사

따라서 이들에게서 역사를 배울 수는 없습니다.

3. 일본황실 도서관에 소장되어있는 우리 역사서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압수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몇몇 선각자에 의해 민족사서가 오늘날에 이르러 빛을 보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규원사화, 단군세기외에 환단고기가 오늘날에 출토된 민족사서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전화나 환란 속에서 사라져 간 민족사서의 고갈 속에서 그나마 이것들의 가치는 국보급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학계에서는 이 사서들이 '신빙성이 없다', '황당하다' 는 이유로 천시되고 위서로 따돌림 받는 이유는 어인 일인가?
 환국과 배달국의 존재 등 우리 민족의 고대사에 관한 자료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조시대 왕조실록 등에 엄연히 존재하며, 일제에 의해 없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일본 황실문고에 대량으로 소장되어 있다.
  일본 관헌에게 붙잡혀 일본 황실문고에서 일하다 해방직후에 귀국한 박창화氏 (당시 56세, 이미 사망)는 “일본 황실문고에는 한국의 중요한 고대사 관련 사서들이 모두 있다고 할 만큼의 역사서가 많았는데, 대부분이 단군관련 자료였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한 박씨는 해방후에 이들 자료를 되찾아야 한다고 수차 당국에 호소했으나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7천년간의 왜곡된 역사를 되찾는 일에 정부와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일본에 당당히 공개적으로 공식 요구해야 한다.
일본 황실문고에 소장된 수탈 자료의 목록공개와 반환을! 우리 정부대표단의 일본 황실문고 방문 및 조사를!
 
4. 친일 역사학자의 거두 이병도의 고백

인생 말년의 이병도는 최태영 옹의 설득으로 한국상고사입문 등 저서와 인터뷰에서 식민사학을 답습한 자신의 학설을 전면 뒤집고 단군을 국조로 인정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모처럼 제정신으로 돌아온 이병도에 대해 그의 학설을 신의 말씀으로 신봉하던 그의 후배들은“노망들었다”는 비아냥을 하고 있다
이병도는 죽기 전에 최태영씨와 공저한 "한국상고사입문"에서 생전의 일을 후회하고 반성했습니다.고조선의 법통은 주변의 열국중에 부여국이 가장 크게 되어서, 부여에서 단군이라 일컬어지고, 그 뒤에 부여 고구리로 법통이 계승되었다고 인정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또한 일연의 삼국유사 중, 석유환인(昔有桓因) 부분을 금서룡(이마니시 류)가 석유환국(昔유桓國)에서 고쳤다는 말이 나옵니다. (단, 여기서의 국은 나라 國자의 약자입니다.)


< 출 전 ><천하 삼국지/김상길/뿌리 출판사> 

5. <출전>천하 삼국지-2권 내용 발췌

천하삼국지 제 2권
천하의 정세

고구려의 어전회의에서 첩보대장 묵거가 지팡이를 짚고 참석하여 말했다.
“폐하, 지금 요동이 고구려에 대한 침략을 준비하는 징후를 포착하였고, 내정을 정비한 다음 필시 고구려를 침공할 것이라고 요서의 정세를 첩보대로부터 보고 받았사옵니다.”
--------------- 중 략 -----------------
“지도에 보시다시피 한사군은 위만조선이 멸망한 뒤 한(漢)나라가 한반도 북서부 만리장성의 끝자락 요동지역에 설치한 낙랑(樂浪)·임둔(臨屯)·진번(眞番)·현도의 4군<註 16>을 말하옵니다.”

註 16 - 중국은 한나라 무제(武帝) 때 동방을 점령할 목적으로 요동지방으로 진출하였다. 당시 동방은 위만조선이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동방진출은 위만조선과의 대결이
--------------- 중 략 -----------------
“으음, 과연 그렇군요.”
“그런데 여기서 낙랑군은 한(漢)나라가 한반도 북서쪽인 요동지역에 한사군을 설치하여 세운 군으로, 단군조선이 패망함으로써 그 유이민들이 세운 대동강변의 낙랑국<註 17>과는 전혀 다른 명칭이옵니다.”
註 17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주몽의 손자 대무신왕조에서, 여름 4월에 왕자 호동(好童)은 옥저지방을 유람하고 있었는데, 낙랑국왕 최리(崔理)가 그 곳에 출행하여 그를 보고 묻기를,
"그대의 안색을 보니 보통사람은 아닌 듯 한데, 혹시 북쪽의 나라 신왕(神王: 대무신왕)의 아들이 아닌가?"
--------------- 중 략 -----------------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사군이 설치되었던 시기는 BC 108년이고, 그 장소는 한반도 북부가 아닌 한반도 북서부 만리장성의 끝자락 요동지역이라는 것이다.
--------------- 중 략 -----------------
일제시대에 조선사편수회와 어용식민사학자들을 중심으로 한국사를 한반도의 울타리에 가둬놓기 위하여 한사군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집요한 날조행각을 벌였던 것이다. 그러니 사실을 조작하여 우리 민족을 반도사관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 중 략 -----------------
한나라 식민지인 한사군, 남쪽은 일본의 식민지인 임나일본부에서 시작됐다는 것. 이씨조선은 자체적 동력(動力)이 아니라 타율로 발전했으므로 일본의 지배는 역사적으로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 중 략 -----------------
그러니 한(漢)나라가 설치한 한사군(漢四郡)의 하나인 군(郡)을 다스리는 지방관리의 호칭인 ‘태수’가 다스리는 난하지역의 '낙랑군'과 한반도 북쪽 대동강의 ‘왕’이 다스리는 '낙랑국'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그렇다면 '낙랑군'과 '낙랑국'은 따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호동왕자와 낙랑공주’가 한반도 북쪽 대동강의 '낙랑국'에서 유래된 이야기인 것이다.
사실 이것<註 18>을 가지고 ‘한사군은 한반도 안에 있었다.’라고 중국과 일본은 물론 역사학자라 할 수 없는 사대주의 및 식민지 역사학자(?)는 물론 식민지 역사학자(?)의 이병도박사(?)와 그의 제자 이기백, 그리고 신석호 그 일파들이 민족역사를 팔아먹었고 또 그 맡의 제자(지금도 대학 강단에서 이런 역사왜곡을 아직도 주장하는 이기동, 최몽룡, 노태돈, 김정배 등)이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저자 자신도 대학에서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을 보고 공부했으니 모든 학생이 처한 상황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지만 반성할 줄 모른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식민사학의 원흉 이병도의 수제자 이기백의 죽음을 보고서도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식민사학자가 민족사학자로 돌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 중 략 -----------------

하늘이 울고있습니다.
민족의 정기를 앗아간 이병도, 신석호, 손진태가 민족사학자가 되었습니다.
피를 토합니다.
어떻게 이런일이 ..
그것도 국가의 장래를 짊어질 청소년(중3)를 가르치는 국정교과서에 버젖이
나와이 민족의 장래를 망치고 있습니다.
Daum 블로그에 <이천만의 한국사>를 연재하는데 자문을 기대합니다.
좋은 자료이네요. 감사합니다.^^
퍼가요
잘 읽고 퍼갑니다.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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