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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zs 오진수 2017. 10. 24. 00:11

■ 고정된 지식체계의 함정

학술적으로 정의를 엄정하게 하는 것은 학문 발전의 기초를 다진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학문 발전을 위해 정의를 놓고 갑론을박 따지고만 있는 것도 문제가 있다. 생물 진화도 종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너무 종에 집착하다 보니 종을 고정 불변의 대상으로 보는 문제도 발생한다. 이러한 오류를 늘 경계한다고는 하지만 지식체계를 고정시켜 안정을 취하려는 인간의 습성은 생각보다 깊다. 필자 역시 같은 잘못을 범했다.

과거 한동안 숲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류가 숲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숲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는 주장을 곧잘 펼쳤다. 한 세미나에서 한 발표자도 같은 요지의 주제발표를 했다.

인류 진화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던 필자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어 발표자에게 물었다. “인류의 진화는 숲에서 벗어나서 직립보행을 한 것에서 출발점을 찾고 있는데, 어떻게 인류가 숲에서 진화를 했다는 말입니까?” 우물쭈물 답변을 하던 그분은 그날 저녁자리에서 “솔직히 그때 머리를 한방 맞은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분은 “말로는 당신이 맞지만, 나는 지금도 나무를 안으면 고향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 이후 여러 공부를 하면서 필자 역시 인류란 종의 진화에 불변성을 덮어씌우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류 역시 미생물 시대부터 파충류, 포유류 시대를 거쳐 온 진화의 역사를 품고 있다. 특히 포유류 진화의 초기에는 나무에 의지해 덩치가 크고 사나운 공룡으로부터 피난처를 구했을 것이다. 나무에서 내려와 인류 진화의 첫발을 뗐더라도 매우 오랜 기간을 여전히 나무에 의존해 살았을 것이다. 인류가 나무에 친근성을 느낀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합당해 보인다. 인류의 두뇌는 파충류 시대의 뇌와 포유류 시대의 뇌를 기반으로 형성됐다고 하지 않는가. 필자는 그런 시간적 규모를 고려하지 못하고 인류 진화에 대한 지식만 전개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은 지식이 모여야 새로운 지식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고뇌나 성찰이 매개돼야 새로운 지식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또한 ‘내가 맞아’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경직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신준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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